2020년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 주요 상담사례 분석
발행일 : 2021년 3월 12일
* 목차
0. 사례 분석 방향
1-1. 직장 내 성희롱 천태만상
“내 애인할래?”
1-2. 직장 내 괴롭힘 천태만상
“단톡방에 초대를 안 해줘…”
2.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아무래도 그냥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3.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을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3-1.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 맞닥뜨리는 상황
“그냥 니가 친절하게 대해줘라”
3-2. 해결과정에서의 회사의 문제적 조치
“두 사람의 말이 달라서 우리는 판단 못 한다.”
3-3. 기대되지 않는 회사, 문제제기를 망설이는 노동자
“지금도 회사에 미운털 박혔는데…”
3-4.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를 왜 안 받아줘?”
3-5. 회사가 행하는 불리한 조치
“나만 승진이 밀려요.”
4. 실효성 없는 법과 제도, 문제적인 고용노동부와 근로감독관
: 근로감독관 왈, “녹음 없으면 안돼요.”
5.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발생배경으로서의 조직문화
커피 심부름은 ‘여직원’만
6.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은 노동권의 문제이다.
사업주는 예방과 조치의무를 다하고,
노동부는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하라!
0. 사례 분석 방향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은 총 197건의 상담을 지원하였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직장 내 성희롱으로 113건(57%), 그 다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 58건(29%), 마지막 기타 노동사안 24건(12%)으로 분석되었다.
직장 내 우위에 있는 지위‧관계를 이용하여 발생하는 성적 언동이 성희롱이라면, 괴롭힘은 성적이지 않은 언동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이다. 둘 다 직장 내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발생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피해로 인한 노동환경의 악화, 사내에 알리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회사의 문제적인 대응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에 가장 많은 상담이 들어온 직장 내 성희롱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의 유형, 문제제기 과정에서 내담자가 당면하는 어려움, 회사 및 이를 관리‧감독 해야하는 고용노동부의 문제적 조치 등에 대해 서술하되, 괴롭힘방지법 시행 이후 증가하고 있는 괴롭힘 사례에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함께 다룰 것이다. 본 글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은 실제 상담사례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하여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1-1. 직장 내 성희롱 천태만상
“내 애인할래?”
직장 내 성희롱은 회사의 규모나 직종과 무관하게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전화‧문자‧카톡하고, 프로필에 사진을 올렸는데, 몸매가 좋다, 남자직원들이 정신 못 차린다 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팀장이 내가 오빠로 보이냐, 삼촌으로 보이냐? 자꾸 묻길래, 그냥 아저씨… 말을 흘렸더니, 자기가 어떻게 아저씨냐? 남친 없냐? 남자는 많이 사귀어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몸이 안 좋아서 약국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대뜸 콘돔 사러 가냐고 물었어요’, ‘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일찍 끝나 아쉽다고 했더니, 그럼 뽀뽀라도 해줘? 하더라고요’. 이 말들은 각기 다른 내담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일상적인 성희롱 사례들이다. 또한 프로그램 개발자가 다른 개발자와 유저들이 볼 수도 있는 명령어 등을 동료를 성희롱하는 내용으로 작성하는 유형도 확인되어 직장 내 성희롱의 양태가 다양화되고 있었다.
‘내가 사정이 잘 안 되는데 너랑 통화하니까 사정이 되네’, ‘사장이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처럼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만큼 악의적이거나, ‘옷 잘 입는다며 위아래 훑어보고, 결재 받는다고 옆에 앉으라더니 순식간에 어깨와 팔을 쓸어내린다’, ‘마우스 위로 손을 잡거나, 자리가 많은데 굳이 옆에 붙어서 어깨가 닿게’, ‘계속 밀착하고 뒤에서 끌어안는’ 신체적 성희롱도 많았다.
‘바지를 내 앞에서 추켜 올려 벨트를 풀었다가 여미고’, ‘탈의하고 치료를 받는데 상사가 갑자기 들어왔다’처럼 예의와 경계를 지키지 않는 데서 오는 무례함과 성희롱을 오가는 문제적인 사례들도 있었다. 회식이나 술자리를 매개로 한 성희롱도 여전히 많았는데 ‘회식 끝나고 상사가 나를 택시로 데려다주며 추행했다’, ‘회식하고 오는 중에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차에서 몰래 몸을 더듬었다’, ‘회식 끝나고 차 안에서 춥다면서 계속 손을 잡았다’는 등의 사례들이 있었다.
성희롱은 직장 내 위계에 기반한 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낮은 지위에 있을수록 문제제기가 어려우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성희롱이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3개월 수습기간 만료 직전에’, ‘입사 3일차 되던 날 전화로’,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인턴기간 동안 겪은 성희롱을 신고하고 싶다’는 사례는 모두 신입/수습/인턴 직원들이 겪은 성희롱이었다. 그리고 ‘원청업자가 나를 지목하여 술자리에 오라고 했는데 끌어안고 입맞춤’, ‘사장이 거래처 사람과의 사적인 만남강요’, ‘거래처 사장이 갑자기 내 애인할래? 나랑 사귀자’고 하는 등 원청과 하청, 거래처와의 관계처럼 구조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성희롱도 있었다. 때문에 평등한 고용형태 및 노동‧산업구조를 구축하는 것은, 애초에 약자라는 위치로 인해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권력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 등의 노동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1-2. 직장 내 괴롭힘 천태만상
“단톡방에 초대를 안 해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2019년부터 시행되면서 2020년 한 해 괴롭힘 관련 상담이 전체 상담의 29%로 두드러졌다. 괴롭힘 사례들에는 ‘동료들과의 단톡방에 초대받지 못해서 이유를 물으니, 나보고 친구가 없냐고 하더라’처럼 은근한 따돌림과 배제로 인해서 문제제기가 어려운 경우, ‘니 코맹맹이 소리 듣기 싫으니까 꺼져라, 꼴보기 싫다’, ‘○○년,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같은 전형적인 언어 폭력, ‘업무분장을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할 게 없으면 청소나 하라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지시하거나 직급과 경력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 시킴으로써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괴롭힘도 있었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은 해당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 내에서 일어났다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그 적정범위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갑자기 업무일지를 시간당 보고하라고 과도하게 요구하는 상담사례가 있었는데, 누군가를 이전과 다르게 더 통제적이거나 차별적으로 대한다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괴롭힘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2.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아무래도 그냥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일하는 사람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노동권 침해 행위이다. 성희롱과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많은 피해노동자들은 일을 계속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이로 인한 곤란함을 호소한다.
직장 내 성희롱은 성적불쾌감을 유발시켜 피해자로 하여금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 또한 ‘가해자와 마주칠까봐 회사 건물에 못 들어간다’, ‘그 분은 승승장구 하고 있으니 무서워서 못 나가겠다’는 내담자들의 말처럼 일터에 출근하는 것마저 어렵게 한다. 결국 ‘더 이상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퇴사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해결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등 일을 하기가 어려운 신체·정서적, 노동환경적 악영향이 이어지고, 일을 그만두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괴롭힘으로 인한 영향도 이와 비슷하다. ‘상사가 왜 얼굴에 여드름이 났냐는 등 신체적 언급을 많이한다’, ‘살 빼라, 일도 못 하면서’ 이런 언행은 당사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그냥 그만두고 나가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롭힘은 일에 집중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이다.
많은 회사들에서 불편한 농담이나 문제에 대해 누군가 이의제기 했을 때 선뜻 잘못을 인정하거나 성찰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여유가 없는 유별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옷이 안 어울린다, 촌스럽다, 머리가 왜 그러냐, 하도 그러길래 정색했더니, 칭찬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여유가 없냐’는 사례처럼 듣는 사람이 느끼는 부담이나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문제제기자들을 위축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희롱이냐 아니냐, 괴롭힘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상황을 겪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결과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3.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을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3-1.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 맞닥뜨리는 상황
“그냥 니가 친절하게 대해줘라”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회사에 알리는 것일 테지만 가까운 상사에게 용기내어 말을 하자마자, 첫 단계부터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사례들이 많다.
조직에 해결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했을 뿐인데 ‘노동부 소송까지 각오해야 할 거’라며 입을 떼자마자 엄포를 놓거나, ‘가해자와 3자대면 할 생각 있느냐?’, ‘가해자와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선배가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만나보라며 억지로 대면하게 했다’ 등의 사례처럼 당사자가 원치 않는 가해자와의 대면을 강요하고, ‘처음에 팀장한테 말했는데 해결되지 않았다. 팀장은 쉬쉬하려고 했고…’, ‘총무과에 알릴 경우 부서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본인이 가해자를 잘 타이르겠다’처럼 문제를 적당히 덮으려고 하거나, 자의적으로 자기 선에서 컷트하는 상사들이 많았다. ‘비밀을 당부하며 조용히 성교육을 시켜달라고 했는데, 비밀을 지켜주지 않아 가해자가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고 따져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문제제기 직후 긴장하거나 걱정할 수 있는 당사자에게 큰 힘이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의 문제제기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동료나 상사, 주변인의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피해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일적으로 마주쳐야하고 (가해자가) 나이가 많아서 그러니 너무 뭐라고만 하지말고 친절하게 대해줘라’며 문제 해결은커녕 참으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거나, ‘징계받은 가해자랑 친한 동료가 대화로 풀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인사팀에 신고했다고 비난하’는 사례처럼 피해자가 선택한 해결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며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또한 미투가 전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문제제기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부정하거나 농담꺼리로 삼아 희화화화는 등의 백래시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직장 내 성희롱 신고자인 것을 알면서도 식사중에 농담으로, 이러면 성희롱인가? 나 신고하지마~’라며 정당한 문제제기를 무용한 것으로 비아냥거리는 상황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은 잘못을 인정하고 일정한 조치와 사과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성추행은 지금 사람이 죽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사회적 명예 얻은 사람이 외부에 알려져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떡하냐’처럼 너무 극단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들이 나타나 피해자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2. 해결과정에서의 회사의 문제적 조치
“두 사람의 말이 달라서 우리는 판단 못 한다.”
성희롱 사실을 알렸을 때 회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조치와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참으로, 정말이지, 너-무 많다. ‘가해자는 말이 다르니 우리는 판단 못한다’, ‘생각이 다르니 전직원에게 공개해서 의견을 듣겠다’, ‘형사결과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 ‘잘 모르겠으니 경찰에 신고하라’며 판단을 유보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왜 바로 신고 안했어?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불륜이라고 볼 거다’, ‘꽃뱀취급 하는’것처럼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거나, ‘그런 희롱 할 사람 아니다’, ‘가해자가 휴직하겠다는데도, 사장이 너 없으면 안 된다며’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례들도 여전히 많았다. ‘손님에 의한 성희롱이 비일비재하는데 손님 떨어질까봐 묵인하고 넘어가는’ 무대응 사례도 있었는데,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해서도 회사는 책임있게 나서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회사가 사건을 인지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적인 사례들이 많았는데, ‘가해자가 대표니까 사건 올려도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 ‘무고죄로 역고소 당할 수 있다’며 용기를 낸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무력화하는 사례, ‘그 사람이 그 정도인지 몰랐으니까 우리도 똑같이 피해자’라며 성희롱 예방과 해결이 회사의 책무임을 인정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징계위원회를 열기 전부터 ○○정도의 징계면 적당하지 않겠냐며 설득하더라’, ‘상사들이 나를 차례로 불러서 괜히 일 키우지 마라, 외부에 알려지면 우리한테 안 좋다고 하더라’는 사례처럼 피해자를 회유하고 문제를 적당히 덮으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그리고 괴롭힘 사건을 회사에 신고하여 내부 조사결과가 나왔는데도 신고자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사례도 있었는데, 징계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신고자는 사건의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결과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3-3. 기대되지 않는 회사, 문제제기를 망설이는 노동자
“지금도 회사에 미운털 박혔는데…”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회사에 알리려면 어떤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회사로부터 자신이 보호받을 거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많은 피해자들은 회사의 평소 분위기와 조직문화가 어떠한지, 과거 성희롱 사건에 대한 처리방식이 어떠했는지 등을 떠올리며 해결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회사가 봤을 때에는 고작 손잡는 거 가지고… 이러면서 시간 끌지 않을까요?’, ‘나는 회사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그 사람이 직급도 높고 더 중요한 사람으로 보니까’, ‘이전에도 성희롱 사건이 있있어서 확인해보니 당시에 인사팀으로 사건이 넘어갔는데 내막은 모르지만 신고자는 결국 퇴사했다더라’, ‘보복이 걱정되니까 징계는 원치 않고 나만 조용히 이동시켜 달라’. 이렇듯 회사가 나의 말을 경청해 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문제제기를 망설이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많았다.
또한 직장 내부에서의 정당한 해결을 원했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기관을 통해 문제제기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가해자 징계만 해주면 되는데 직원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게 억울해서 신고함’. 그리고 불이익이 두려워 외부적 문제제기 절차를 아예 포기하거나, 회사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가해자를 상대로 한 개인 간 형사고소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노동청에 신고 안 한 이유는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목표니까. 지금도 회사에 미운털 박혔는데 밖에 신고하면 장난아닐 거 같다’(괴롭힘 사례), ‘노동부 말고 경찰서에 하려고 한다. 잘릴 거 생각하면 노동청에 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괴롭힘 사례).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과 피해 회복이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회사와 대립하고 싸움을 하는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이러한 바람과 간절함을 알아야 한다.
3-4.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를 왜 안 받아줘?”
성희롱과 괴롭힘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은 피해 회복과 사건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형식적 사과에 그치거나 아무런 변화나 대책 없이 사과로만 사건이 종결되었을 때 이후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있었다. ‘문자로 사과하길래 직접 와서 하랬더니 응답도 없었는데 조사위원은 나보고 왜 사과를 안 받아주냐고 하더라’, ‘진정어린 사과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해줄까? 이런 식’, ‘사과만 받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억지로 받아서인지 너무 괴롭다. 그 사람은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낸다’(괴롭힘 사례). 그렇기 때문에 ‘사과다운 사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 판단이 피해자 관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 의미와 유효성이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들이 병행되어야 하고, 사과가 무엇에 방점을 두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조직 내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3-5. 회사가 행하는 불리한 조치
“나만 승진이 밀려요.”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조사‧처리하여 피해자가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법에 명시된 회사의 당연한 의무이고 역할이다. 그럼에도 문제제기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불리한 조치를 취하는 회사들이 있다. ‘줄곧 맡았던 업무에서 내 경력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부서로 가라더라’, ‘업무에 트집을 잡아서 시말서를 몇 번이나 썼다’, ‘동기들은 다 승진했는데 나만 미뤄지고 있다’, ‘그냥 관리자가 네가 부족한 거라면서 점수를 낮게 주면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갑자기 날 저성과자라고 몰아가더라’는 사례처럼 합리적인 기준 없이 부당전보, 부당징계, 승진배제, 저평가 등의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사례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을 계속 할 거냐 말거냐 자꾸 묻는다’, ‘나보고 업무정지라며 회사전산도 다 막아버리고 나가라고 한다’와 같이 회사를 그만두라는 은근한 압박을 하거나 드러내놓고 해고를 강요하는 사례도 있었다. ‘괴로워서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위로금을 주겠단다. 근데 사건에 대해 외부에 발설해서 회사가 불이익을 받도록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란다’처럼 퇴사를 방조하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회사도 있었다.
‘일단 성희롱은 멈췄는데 나한테 업무협조를 안 해주고 험담을 한다’, ‘다른 직원들을 선동해서 나 때문에 모두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며 트집을 잡아 서명을 받고 다닌다’(괴롭힘 사례)는 경우처럼 문제제기 이후 가해자의 보복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보복행위를 방치하는 것 또한 회사의 잘못으로서 불리한 조치에 해당한다.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으로 인한 피해노동자의 문제제기를 불리한 조치로 대응하는 회사의 방식은 피해노동자 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 ‘문제제기하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확산시켜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을 허용하는 문화를 강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4. 실효성 없는 법과 제도, 문제적인 고용노동부와 근로감독관
: 근로감독관 왈, “녹음 없으면 안돼요.”
직장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노동자가 기댈 곳은 국가가 마련한 법과 제도다. 하지만 노동자가 피해를 구제받고 불이익 없이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금의 법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문제제기를 하면 과연 저에게 생기는 이점이 뭔가요? 성희롱이라고 인정받더라도 과연 그 사람이랑 내가 분리가 될 수 있나요? 회사가 바뀔까요? 그냥 벌금내고 버티면 끝인 거 아닌가요? 내가 처한 상황이 개선되는 게 있어야지 힘든 과정을 참고 신고할 텐데. 지금 법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거 같아요’, ‘괴롭힘도 맞고 부당징계도 맞다고 노동청에서 통보 받았는데도 회사에서 바뀌는 게 없어요’(괴롭힘 사례).
외부기관을 활용한 신고를 결심하고 피해자가 주로 도움을 요청하는 창구와 소통대상은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다. 때문에 피해자가 고민 끝에 결정한 문제제기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으려면 노동청의 진입장벽은 낮아야 하며, 담당자인 근로감독관은 성인지적 관점을 갖고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일터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근로감독관이 녹음증거가 있냐고 묻길래 내가 정황은 상세히 말할 수 있다고 하니까 녹음 없으면 어렵다더라’, ‘피해상황이 한 번밖에 안 일어나서 성희롱이라고 판단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성희롱예방교육을 직원들이 제대로 안 들어서 감독관한테 말했더니, 회사가 교육받았다고 문서 위조하면 자기들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처럼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위축시키는 사례들이 많았다.
성희롱은 사내 관계를 기반으로 퇴근 전후나 업무장소 바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사건 시간이랑 장소가 사적인 만남이라며 성희롱 인정 안 될 거라고 했는데, 인권위에서는 사건 시간 상관없이 무조건 성희롱이라고 하더라’는 사례가 있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상이한 의견을 준다면 피해자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퇴근 후에 전화를 몇 번 피했더니 집으로 찾아왔더라. 어쩔 수 없이 나갔는데 차에서 추행을 겪었다’는 사례처럼 직장 내 성희롱은 업무 내 시‧공간으로 한정짓지 않고 사건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기타 사례로 ‘기다려도 진척이 없길래 노동부에 전화했더니, 담당자가 사건 접수된 걸 행정 착오로 누락했다더라’는 있어서는 안 될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5.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발생배경으로서의 조직문화
커피 심부름은 ‘여직원’만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구조적으로 더 낮은 지위에 있는 곳, 수직적이고 차별적인 조직문화가 일상적인 곳이라면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 성별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이 정해져있다고 여기며 업무와 역할을 성별화하는 회사들이 여전히 많았는데 ‘대표는 커피 심부름도 여직원만 시켜요’, ‘사장실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커피 내리는 것도, 얼음 내려서 탕비실로 옮기는 것도 나 혼자만 한다’는 부당함을 호소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평소에도 직급이나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전직원이 다 들리게 ‘니가 뭔데’ 이런 표현을 쓰는데 수치심이 들었다’, ‘야, 너, 이거 안해?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와 같이 함께 일하는 공적 관계로서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반말을 쓰거나 하대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언급한 사례들은 모두 성희롱 혹은 괴롭힘이 발생한 회사의 평소 조직문화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한편, 경직된 조직 분위기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러이러한 점이 불편하다,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 ‘회의 때 상사가 처녀OO이라는 단어를 쓰길래, 이젠 거의 쓰지 않는 용어라고 말했더니 잘못에 대해 인정은 안 하고 무슨 그런 걸 따지냐고 하더라’, ‘사장으로부터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농담을 들어서 사장한테 문제제기했더니, 팀장이 나보고 사람들 있는데서 사장한테 대드는 것이 버릇없다고 하더라’. 이런 사례들처럼 문제제기를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오고, 비슷한 장면이 조직 내에서 반복된다면, 성희롱 등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말하기 어려워지고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차 낮아질 것이다.
6.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은 노동권의 문제이다.
사업주는 예방과 조치의무를 다하고,
노동부는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하라!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피해자의 노동환경을 악화시킴으로써, 노동자가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이다. 즉 노동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업주에게 사건을 정당하게 해결하여 해당 노동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책무가 부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을 인지했을 때 해결은커녕 역할을 방기하며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하거나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잘못된 행태들이 노동현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회사가 성희롱‧괴롭힘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고 만일 발생 시 조치 의무를 다 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에게 있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가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당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처리하지 않도록, 피해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대로된 조사와 판단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인지 감수성 및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사회적으로는 성희롱과 괴롭힘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사 구성원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는 가해자 개인의 잘못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 언행을 허용해왔단 평소 조직의 분위기, 차별적인 업무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희롱‧괴롭힘이 일어났을 때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조직문화와 노동환경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업주의 태도와 의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정의로운 해결은 노동자의 업무능률 향상과 회사에 대한 신뢰도에 연결되어 있음을 사업주는 꼭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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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 주요 상담사례 분석
발행일 : 2021년 3월 12일
* 목차
0. 사례 분석 방향
1-1. 직장 내 성희롱 천태만상
“내 애인할래?”
1-2. 직장 내 괴롭힘 천태만상
“단톡방에 초대를 안 해줘…”
2.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아무래도 그냥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3.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을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3-1.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 맞닥뜨리는 상황
“그냥 니가 친절하게 대해줘라”
3-2. 해결과정에서의 회사의 문제적 조치
“두 사람의 말이 달라서 우리는 판단 못 한다.”
3-3. 기대되지 않는 회사, 문제제기를 망설이는 노동자
“지금도 회사에 미운털 박혔는데…”
3-4.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를 왜 안 받아줘?”
3-5. 회사가 행하는 불리한 조치
“나만 승진이 밀려요.”
4. 실효성 없는 법과 제도, 문제적인 고용노동부와 근로감독관
: 근로감독관 왈, “녹음 없으면 안돼요.”
5.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발생배경으로서의 조직문화
커피 심부름은 ‘여직원’만
6.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은 노동권의 문제이다.
사업주는 예방과 조치의무를 다하고,
노동부는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하라!
0. 사례 분석 방향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은 총 197건의 상담을 지원하였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직장 내 성희롱으로 113건(57%), 그 다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 58건(29%), 마지막 기타 노동사안 24건(12%)으로 분석되었다.
직장 내 우위에 있는 지위‧관계를 이용하여 발생하는 성적 언동이 성희롱이라면, 괴롭힘은 성적이지 않은 언동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이다. 둘 다 직장 내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발생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피해로 인한 노동환경의 악화, 사내에 알리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회사의 문제적인 대응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에 가장 많은 상담이 들어온 직장 내 성희롱 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의 유형, 문제제기 과정에서 내담자가 당면하는 어려움, 회사 및 이를 관리‧감독 해야하는 고용노동부의 문제적 조치 등에 대해 서술하되, 괴롭힘방지법 시행 이후 증가하고 있는 괴롭힘 사례에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함께 다룰 것이다. 본 글에서 언급되는 사례들은 실제 상담사례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하여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1-1. 직장 내 성희롱 천태만상
“내 애인할래?”
직장 내 성희롱은 회사의 규모나 직종과 무관하게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전화‧문자‧카톡하고, 프로필에 사진을 올렸는데, 몸매가 좋다, 남자직원들이 정신 못 차린다 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팀장이 내가 오빠로 보이냐, 삼촌으로 보이냐? 자꾸 묻길래, 그냥 아저씨… 말을 흘렸더니, 자기가 어떻게 아저씨냐? 남친 없냐? 남자는 많이 사귀어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몸이 안 좋아서 약국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대뜸 콘돔 사러 가냐고 물었어요’, ‘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일찍 끝나 아쉽다고 했더니, 그럼 뽀뽀라도 해줘? 하더라고요’. 이 말들은 각기 다른 내담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일상적인 성희롱 사례들이다. 또한 프로그램 개발자가 다른 개발자와 유저들이 볼 수도 있는 명령어 등을 동료를 성희롱하는 내용으로 작성하는 유형도 확인되어 직장 내 성희롱의 양태가 다양화되고 있었다.
‘내가 사정이 잘 안 되는데 너랑 통화하니까 사정이 되네’, ‘사장이 화장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처럼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만큼 악의적이거나, ‘옷 잘 입는다며 위아래 훑어보고, 결재 받는다고 옆에 앉으라더니 순식간에 어깨와 팔을 쓸어내린다’, ‘마우스 위로 손을 잡거나, 자리가 많은데 굳이 옆에 붙어서 어깨가 닿게’, ‘계속 밀착하고 뒤에서 끌어안는’ 신체적 성희롱도 많았다.
‘바지를 내 앞에서 추켜 올려 벨트를 풀었다가 여미고’, ‘탈의하고 치료를 받는데 상사가 갑자기 들어왔다’처럼 예의와 경계를 지키지 않는 데서 오는 무례함과 성희롱을 오가는 문제적인 사례들도 있었다. 회식이나 술자리를 매개로 한 성희롱도 여전히 많았는데 ‘회식 끝나고 상사가 나를 택시로 데려다주며 추행했다’, ‘회식하고 오는 중에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차에서 몰래 몸을 더듬었다’, ‘회식 끝나고 차 안에서 춥다면서 계속 손을 잡았다’는 등의 사례들이 있었다.
성희롱은 직장 내 위계에 기반한 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낮은 지위에 있을수록 문제제기가 어려우며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성희롱이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3개월 수습기간 만료 직전에’, ‘입사 3일차 되던 날 전화로’,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인턴기간 동안 겪은 성희롱을 신고하고 싶다’는 사례는 모두 신입/수습/인턴 직원들이 겪은 성희롱이었다. 그리고 ‘원청업자가 나를 지목하여 술자리에 오라고 했는데 끌어안고 입맞춤’, ‘사장이 거래처 사람과의 사적인 만남강요’, ‘거래처 사장이 갑자기 내 애인할래? 나랑 사귀자’고 하는 등 원청과 하청, 거래처와의 관계처럼 구조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성희롱도 있었다. 때문에 평등한 고용형태 및 노동‧산업구조를 구축하는 것은, 애초에 약자라는 위치로 인해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권력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희롱 등의 노동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1-2. 직장 내 괴롭힘 천태만상
“단톡방에 초대를 안 해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2019년부터 시행되면서 2020년 한 해 괴롭힘 관련 상담이 전체 상담의 29%로 두드러졌다. 괴롭힘 사례들에는 ‘동료들과의 단톡방에 초대받지 못해서 이유를 물으니, 나보고 친구가 없냐고 하더라’처럼 은근한 따돌림과 배제로 인해서 문제제기가 어려운 경우, ‘니 코맹맹이 소리 듣기 싫으니까 꺼져라, 꼴보기 싫다’, ‘○○년,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같은 전형적인 언어 폭력, ‘업무분장을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할 게 없으면 청소나 하라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지시하거나 직급과 경력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 시킴으로써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괴롭힘도 있었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은 해당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 내에서 일어났다면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그 적정범위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갑자기 업무일지를 시간당 보고하라고 과도하게 요구하는 상담사례가 있었는데, 누군가를 이전과 다르게 더 통제적이거나 차별적으로 대한다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괴롭힘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2.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아무래도 그냥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일하는 사람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노동권 침해 행위이다. 성희롱과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많은 피해노동자들은 일을 계속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이로 인한 곤란함을 호소한다.
직장 내 성희롱은 성적불쾌감을 유발시켜 피해자로 하여금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한다. 또한 ‘가해자와 마주칠까봐 회사 건물에 못 들어간다’, ‘그 분은 승승장구 하고 있으니 무서워서 못 나가겠다’는 내담자들의 말처럼 일터에 출근하는 것마저 어렵게 한다. 결국 ‘더 이상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퇴사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는 더 이상 해결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등 일을 하기가 어려운 신체·정서적, 노동환경적 악영향이 이어지고, 일을 그만두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괴롭힘으로 인한 영향도 이와 비슷하다. ‘상사가 왜 얼굴에 여드름이 났냐는 등 신체적 언급을 많이한다’, ‘살 빼라, 일도 못 하면서’ 이런 언행은 당사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그냥 그만두고 나가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롭힘은 일에 집중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이다.
많은 회사들에서 불편한 농담이나 문제에 대해 누군가 이의제기 했을 때 선뜻 잘못을 인정하거나 성찰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여유가 없는 유별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옷이 안 어울린다, 촌스럽다, 머리가 왜 그러냐, 하도 그러길래 정색했더니, 칭찬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여유가 없냐’는 사례처럼 듣는 사람이 느끼는 부담이나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문제제기자들을 위축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희롱이냐 아니냐, 괴롭힘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상황을 겪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결과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3.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을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3-1. 문제제기를 시작했을 때 맞닥뜨리는 상황
“그냥 니가 친절하게 대해줘라”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회사에 알리는 것일 테지만 가까운 상사에게 용기내어 말을 하자마자, 첫 단계부터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사례들이 많다.
조직에 해결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했을 뿐인데 ‘노동부 소송까지 각오해야 할 거’라며 입을 떼자마자 엄포를 놓거나, ‘가해자와 3자대면 할 생각 있느냐?’, ‘가해자와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는데 선배가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만나보라며 억지로 대면하게 했다’ 등의 사례처럼 당사자가 원치 않는 가해자와의 대면을 강요하고, ‘처음에 팀장한테 말했는데 해결되지 않았다. 팀장은 쉬쉬하려고 했고…’, ‘총무과에 알릴 경우 부서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본인이 가해자를 잘 타이르겠다’처럼 문제를 적당히 덮으려고 하거나, 자의적으로 자기 선에서 컷트하는 상사들이 많았다. ‘비밀을 당부하며 조용히 성교육을 시켜달라고 했는데, 비밀을 지켜주지 않아 가해자가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고 따져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문제제기 직후 긴장하거나 걱정할 수 있는 당사자에게 큰 힘이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의 문제제기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동료나 상사, 주변인의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피해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일적으로 마주쳐야하고 (가해자가) 나이가 많아서 그러니 너무 뭐라고만 하지말고 친절하게 대해줘라’며 문제 해결은커녕 참으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거나, ‘징계받은 가해자랑 친한 동료가 대화로 풀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인사팀에 신고했다고 비난하’는 사례처럼 피해자가 선택한 해결방법이 잘못된 것이라며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또한 미투가 전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문제제기자에게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부정하거나 농담꺼리로 삼아 희화화화는 등의 백래시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직장 내 성희롱 신고자인 것을 알면서도 식사중에 농담으로, 이러면 성희롱인가? 나 신고하지마~’라며 정당한 문제제기를 무용한 것으로 비아냥거리는 상황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은 잘못을 인정하고 일정한 조치와 사과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성추행은 지금 사람이 죽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사회적 명예 얻은 사람이 외부에 알려져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떡하냐’처럼 너무 극단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들이 나타나 피해자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2. 해결과정에서의 회사의 문제적 조치
“두 사람의 말이 달라서 우리는 판단 못 한다.”
성희롱 사실을 알렸을 때 회사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조치와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참으로, 정말이지, 너-무 많다. ‘가해자는 말이 다르니 우리는 판단 못한다’, ‘생각이 다르니 전직원에게 공개해서 의견을 듣겠다’, ‘형사결과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 ‘잘 모르겠으니 경찰에 신고하라’며 판단을 유보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왜 바로 신고 안했어?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불륜이라고 볼 거다’, ‘꽃뱀취급 하는’것처럼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거나, ‘그런 희롱 할 사람 아니다’, ‘가해자가 휴직하겠다는데도, 사장이 너 없으면 안 된다며’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례들도 여전히 많았다. ‘손님에 의한 성희롱이 비일비재하는데 손님 떨어질까봐 묵인하고 넘어가는’ 무대응 사례도 있었는데,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해서도 회사는 책임있게 나서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회사가 사건을 인지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적인 사례들이 많았는데, ‘가해자가 대표니까 사건 올려도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 ‘무고죄로 역고소 당할 수 있다’며 용기를 낸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무력화하는 사례, ‘그 사람이 그 정도인지 몰랐으니까 우리도 똑같이 피해자’라며 성희롱 예방과 해결이 회사의 책무임을 인정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징계위원회를 열기 전부터 ○○정도의 징계면 적당하지 않겠냐며 설득하더라’, ‘상사들이 나를 차례로 불러서 괜히 일 키우지 마라, 외부에 알려지면 우리한테 안 좋다고 하더라’는 사례처럼 피해자를 회유하고 문제를 적당히 덮으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그리고 괴롭힘 사건을 회사에 신고하여 내부 조사결과가 나왔는데도 신고자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사례도 있었는데, 징계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신고자는 사건의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결과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3-3. 기대되지 않는 회사, 문제제기를 망설이는 노동자
“지금도 회사에 미운털 박혔는데…”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회사에 알리려면 어떤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회사로부터 자신이 보호받을 거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많은 피해자들은 회사의 평소 분위기와 조직문화가 어떠한지, 과거 성희롱 사건에 대한 처리방식이 어떠했는지 등을 떠올리며 해결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회사가 봤을 때에는 고작 손잡는 거 가지고… 이러면서 시간 끌지 않을까요?’, ‘나는 회사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그 사람이 직급도 높고 더 중요한 사람으로 보니까’, ‘이전에도 성희롱 사건이 있있어서 확인해보니 당시에 인사팀으로 사건이 넘어갔는데 내막은 모르지만 신고자는 결국 퇴사했다더라’, ‘보복이 걱정되니까 징계는 원치 않고 나만 조용히 이동시켜 달라’. 이렇듯 회사가 나의 말을 경청해 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문제제기를 망설이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많았다.
또한 직장 내부에서의 정당한 해결을 원했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기관을 통해 문제제기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가해자 징계만 해주면 되는데 직원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게 억울해서 신고함’. 그리고 불이익이 두려워 외부적 문제제기 절차를 아예 포기하거나, 회사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가해자를 상대로 한 개인 간 형사고소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노동청에 신고 안 한 이유는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목표니까. 지금도 회사에 미운털 박혔는데 밖에 신고하면 장난아닐 거 같다’(괴롭힘 사례), ‘노동부 말고 경찰서에 하려고 한다. 잘릴 거 생각하면 노동청에 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괴롭힘 사례).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정과 피해 회복이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회사와 대립하고 싸움을 하는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이러한 바람과 간절함을 알아야 한다.
3-4. 사과란 무엇인가?
“사과를 왜 안 받아줘?”
성희롱과 괴롭힘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은 피해 회복과 사건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형식적 사과에 그치거나 아무런 변화나 대책 없이 사과로만 사건이 종결되었을 때 이후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있었다. ‘문자로 사과하길래 직접 와서 하랬더니 응답도 없었는데 조사위원은 나보고 왜 사과를 안 받아주냐고 하더라’, ‘진정어린 사과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해줄까? 이런 식’, ‘사과만 받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억지로 받아서인지 너무 괴롭다. 그 사람은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낸다’(괴롭힘 사례). 그렇기 때문에 ‘사과다운 사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 판단이 피해자 관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것처럼,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 의미와 유효성이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들이 병행되어야 하고, 사과가 무엇에 방점을 두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조직 내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3-5. 회사가 행하는 불리한 조치
“나만 승진이 밀려요.”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조사‧처리하여 피해자가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법에 명시된 회사의 당연한 의무이고 역할이다. 그럼에도 문제제기자에게 다양한 종류의 불리한 조치를 취하는 회사들이 있다. ‘줄곧 맡았던 업무에서 내 경력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부서로 가라더라’, ‘업무에 트집을 잡아서 시말서를 몇 번이나 썼다’, ‘동기들은 다 승진했는데 나만 미뤄지고 있다’, ‘그냥 관리자가 네가 부족한 거라면서 점수를 낮게 주면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갑자기 날 저성과자라고 몰아가더라’는 사례처럼 합리적인 기준 없이 부당전보, 부당징계, 승진배제, 저평가 등의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사례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을 계속 할 거냐 말거냐 자꾸 묻는다’, ‘나보고 업무정지라며 회사전산도 다 막아버리고 나가라고 한다’와 같이 회사를 그만두라는 은근한 압박을 하거나 드러내놓고 해고를 강요하는 사례도 있었다. ‘괴로워서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위로금을 주겠단다. 근데 사건에 대해 외부에 발설해서 회사가 불이익을 받도록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란다’처럼 퇴사를 방조하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회사도 있었다.
‘일단 성희롱은 멈췄는데 나한테 업무협조를 안 해주고 험담을 한다’, ‘다른 직원들을 선동해서 나 때문에 모두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며 트집을 잡아 서명을 받고 다닌다’(괴롭힘 사례)는 경우처럼 문제제기 이후 가해자의 보복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보복행위를 방치하는 것 또한 회사의 잘못으로서 불리한 조치에 해당한다.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으로 인한 피해노동자의 문제제기를 불리한 조치로 대응하는 회사의 방식은 피해노동자 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에 ‘문제제기하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확산시켜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을 허용하는 문화를 강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4. 실효성 없는 법과 제도, 문제적인 고용노동부와 근로감독관
: 근로감독관 왈, “녹음 없으면 안돼요.”
직장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노동자가 기댈 곳은 국가가 마련한 법과 제도다. 하지만 노동자가 피해를 구제받고 불이익 없이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금의 법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문제제기를 하면 과연 저에게 생기는 이점이 뭔가요? 성희롱이라고 인정받더라도 과연 그 사람이랑 내가 분리가 될 수 있나요? 회사가 바뀔까요? 그냥 벌금내고 버티면 끝인 거 아닌가요? 내가 처한 상황이 개선되는 게 있어야지 힘든 과정을 참고 신고할 텐데. 지금 법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거 같아요’, ‘괴롭힘도 맞고 부당징계도 맞다고 노동청에서 통보 받았는데도 회사에서 바뀌는 게 없어요’(괴롭힘 사례).
외부기관을 활용한 신고를 결심하고 피해자가 주로 도움을 요청하는 창구와 소통대상은 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다. 때문에 피해자가 고민 끝에 결정한 문제제기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으려면 노동청의 진입장벽은 낮아야 하며, 담당자인 근로감독관은 성인지적 관점을 갖고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일터의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근로감독관이 녹음증거가 있냐고 묻길래 내가 정황은 상세히 말할 수 있다고 하니까 녹음 없으면 어렵다더라’, ‘피해상황이 한 번밖에 안 일어나서 성희롱이라고 판단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성희롱예방교육을 직원들이 제대로 안 들어서 감독관한테 말했더니, 회사가 교육받았다고 문서 위조하면 자기들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처럼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위축시키는 사례들이 많았다.
성희롱은 사내 관계를 기반으로 퇴근 전후나 업무장소 바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이 사건 시간이랑 장소가 사적인 만남이라며 성희롱 인정 안 될 거라고 했는데, 인권위에서는 사건 시간 상관없이 무조건 성희롱이라고 하더라’는 사례가 있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상이한 의견을 준다면 피해자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퇴근 후에 전화를 몇 번 피했더니 집으로 찾아왔더라. 어쩔 수 없이 나갔는데 차에서 추행을 겪었다’는 사례처럼 직장 내 성희롱은 업무 내 시‧공간으로 한정짓지 않고 사건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기타 사례로 ‘기다려도 진척이 없길래 노동부에 전화했더니, 담당자가 사건 접수된 걸 행정 착오로 누락했다더라’는 있어서는 안 될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5.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 발생배경으로서의 조직문화
커피 심부름은 ‘여직원’만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구조적으로 더 낮은 지위에 있는 곳, 수직적이고 차별적인 조직문화가 일상적인 곳이라면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 성별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이 정해져있다고 여기며 업무와 역할을 성별화하는 회사들이 여전히 많았는데 ‘대표는 커피 심부름도 여직원만 시켜요’, ‘사장실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커피 내리는 것도, 얼음 내려서 탕비실로 옮기는 것도 나 혼자만 한다’는 부당함을 호소하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평소에도 직급이나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전직원이 다 들리게 ‘니가 뭔데’ 이런 표현을 쓰는데 수치심이 들었다’, ‘야, 너, 이거 안해? 이런 식으로 강압적으로’와 같이 함께 일하는 공적 관계로서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반말을 쓰거나 하대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언급한 사례들은 모두 성희롱 혹은 괴롭힘이 발생한 회사의 평소 조직문화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한편, 경직된 조직 분위기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러이러한 점이 불편하다,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 ‘회의 때 상사가 처녀OO이라는 단어를 쓰길래, 이젠 거의 쓰지 않는 용어라고 말했더니 잘못에 대해 인정은 안 하고 무슨 그런 걸 따지냐고 하더라’, ‘사장으로부터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농담을 들어서 사장한테 문제제기했더니, 팀장이 나보고 사람들 있는데서 사장한테 대드는 것이 버릇없다고 하더라’. 이런 사례들처럼 문제제기를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오고, 비슷한 장면이 조직 내에서 반복된다면, 성희롱 등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말하기 어려워지고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차 낮아질 것이다.
6.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은 노동권의 문제이다.
사업주는 예방과 조치의무를 다하고,
노동부는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하라!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은 피해자의 노동환경을 악화시킴으로써, 노동자가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행위이다. 즉 노동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업주에게 사건을 정당하게 해결하여 해당 노동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할 책무가 부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을 인지했을 때 해결은커녕 역할을 방기하며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하거나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잘못된 행태들이 노동현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회사가 성희롱‧괴롭힘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고 만일 발생 시 조치 의무를 다 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에게 있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가 법의 취지에 맞게 집행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당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처리하지 않도록, 피해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대로된 조사와 판단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인지 감수성 및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사회적으로는 성희롱과 괴롭힘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사 구성원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는 가해자 개인의 잘못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 언행을 허용해왔단 평소 조직의 분위기, 차별적인 업무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희롱‧괴롭힘이 일어났을 때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조직문화와 노동환경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업주의 태도와 의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정의로운 해결은 노동자의 업무능률 향상과 회사에 대한 신뢰도에 연결되어 있음을 사업주는 꼭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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