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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023_하반기_함께가는 여성] 기획_돌봄 노동의 가치와 위기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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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_하반기_함께가는 여성] 기획

 

 

돌봄 노동의 가치와 위기

 

이승윤/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동아시아복지국가와 비정규직 비교연구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복지국가와 노동시장, 불안정노동, 소득보장정책이다.

한국의 불안정노동자(공저, 후마니타스, 2017), Varieties of Precarity(불안정노동의 다양성)(단독저자, Policy Press, 2023)등의 출간하였고,

최근에는 디지털전환와 노동시장 불평등에 대한 연구 중이다.

 

 

디지털 전환기에 우리 사회가 경험할 다양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불안정노동자와 불평등의 확대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전이 모든 일자리에 동등하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눈부신 기술 발전의 이면에 노동시장의 기존 격차를 확대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내포되어 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기술 등으로 노동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일부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자동화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복적이고 일반적인 인지능력이 필요한 업무는 자동화 또는 인공지능기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논의된다. 반면, 고인지적 작업과 반복적이지 않은 비정형의 직무가 요구되는 고숙련 일자리(IT기술자, 전문직 및 관리자 등)는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더 향상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회계업무나 데이타 분석업무 등의 일부 직무가 기술로 대체되어 생산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 한편, 인지가 필요하면서도 반복적이지 않은 비정형의 육체노동이 포함된 작업은 대체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돌봄 노동이 있다.

 

기술로 인한 대체가능성이 낮으면서도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노동인 돌봄 노동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디지털 전환기를 마주한 현재,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닮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다시 소환된다. 어떤 이들은 인간이 보유한 지성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인간은 여전히 지식 노동의 중심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계 안에 결정화된 '죽은 지식, 죽은 노동'이 아니라 살아있는 노동(living labour)은 기술로 완전히 포착될 수도 재현할 수 없다는 이론들은*, 인간의 무형적이고 창의적이며 인지적인 역량이 바로 '살아있는 노동'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살아있는 노동’의 가장 고도화된 상태는 정동노동(affective labour)이라 할 수 있다. 감정노동 또는 정동 노동은 노동자가 타인의 감정, 정서적 경험을 ‘생산’하거나 적어도 그것에 영향을 주기 위기 위한 노동을 의미한다.

 

'죽은 지식, 죽은 노동'이 아니라 살아있는 노동(living labour)은 기술로 완전히 포착될 수도 재현할 수 없다는 이론들은*:"죽은 노동"과 "살아있는 노동"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설명되는 개념이다. ‘살아있는 노동’은 생산 과정에서 현재 활용되고 있는 노동자의 역동적 노동력을 의미하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새로운 가치의 원천으로 설명된다. 노동의 인간적인 측면, 즉 노동자가 생산 과정에 투입하는 실제 노력과 창의적인 부분을 나타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죽은 노동'은 기계, 건물, 도구, 원자재 등 자본에 구체화된 축적된 노동을 의미한다. 즉, 죽은 노동은 생산에 사용되는 도구, 기계, 재료에 내재된 과거의 노동을 의미한다.

 

 

동자의 정체성까지 상품화되는 정동노동

 

정동노동은 노동자 개인의 감정과 상관없이 항상 밝은 표정을 유지해야하는 서비스직부터 정서적 지원이 업무의 중심이 되는 간호, 돌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포괄한다. 조직에서 정의한 규칙과 지침에 따라, 또는 더 놓은 상품성을 위해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과정이 수반되고, 노동자의 정체성까지 상품화된다.

간호, 돌봄, 고객 서비스 같은 서비스 지향적인 직업에서 주로 소비자/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배려, 공감, 편안함 또는 행복감이 바로 노동자의 정동노동을 통해 조성되고 만들어진다. 정동노동에는 감성지능, 연민, 축적된 관계와 기억에 따른 어떤 무형의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활용된다. 주로 인간 고유의 자질이라고 묘사되는 것들이다. 기계로 쉽게 자동화하거나 복제할 수 없는 노동의 측면으로, 특정 부문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업무의 대체 불가능한 특성으로 논의되어 왔다. AI와 로봇부상의 시대에 중숙련 정형노동이 대체되거나, 기술과 정보통신으로 고숙련직의 생산성이 향상된다. 생산성 향상은 보다 좋은 일자리와 괜찮은 임금조건을 만들 수 있는 요건이 된다. 반면에 돌봄과 같은 정동노동은 기술발전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대체된 중숙련 일자리에서 밀려나온 노동자들의 진입으로 인해 노동 공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때문에 노동환경이 저절로 개선되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디지털 전환기에 대체가능성이 낮으면서도 인간의 고유성이 내재된 ‘살아있는 노동’인 돌봄노동이, 저임금의 일자리로 더 밀려나고 열악한 노동환경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바로 여기에서 가장 인간적인 노동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평가하고 대하는지가 드러난다. 이미 우리나라의 돌봄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시장기제가 확대되면서 돌봄노동이 적절하게 평가되고 보호되지 못한다는 것이 자명해진 가운데, 돌봄노동을 ‘공공성’의 테두리로 보호할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장논리에 내맡긴 공공서비스

 

이러한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질과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고도화”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접근은 사회서비스의 시장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노인돌봄서비스와 아동보육서비스 정책은 민간 부문의 역할을 강조하고 디지털 전환기 기술과 로봇의 활용을 확대시키는데 있어 시장기제를 끌어오며, 공공부문의 책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노인 돌봄서비스 정책방향은 이용자 만족도를 높인다는 명목 하에 민간 부문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취약계층에서 중산층으로 사회 서비스를 확대, 복지 기술 도입, 요양 시설의 임대 허용, 더 나은 고용 기회 창출 등 일련의 정책 목표들을 살펴보면 돌봄서비스를 마치 상업화된 분야의 산업정책과 같이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장기요양 바우처를 지역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조정했던 것이 이제는 사용처의 지역적 범위가 넓혀졌다. 이는 지역 내 장기요양기관이 더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었다는 의미이다. 부실 장기요양기관을 퇴출시킨다는 명목으로 바우처 사용의 범위를 확대한 것은 겉보기에는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경쟁’이라는 시장기제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은 노인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과 접근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돌봄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될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아동보육서비스에 있어서도 윤석열 정부는 공공성보다는 시장 기반의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에 발표한 아동보육서비스 관련 계획이 효율적인 서비스 전달 체계, 돌봄 업계 종사자의 전문성 향상 그리고 수요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양육 부담 경감과 신뢰할 수 있는 돌봄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민간 서비스 제공자의 시장 확대와 경쟁 원리 도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은 2023년 대비 12.2% 증가했으나, 서비스 수요자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공급자들의 무한 ‘경쟁’이라는 시장 원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시-도 사회복지관 보조금의 대폭 삭감과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의 2020년 대비 45% 삭감, 그리고 2024년에는 추가로 15.3% 삭감되는 결과를 가져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100억 원 삭감하였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보육교사들이 보육의 공공성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파업을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노인돌봄과 아동보육서비스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돌봄노동자와 돌봄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시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이다.

 

 

 

슬픈 모순의 시대를 앞두고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할 돌봄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시장기제 맡기는 것은, 돌봄서비스의 상품화를 의미한다. 즉, 노동자이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돌봄’도 구매 해야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와 같은 공공성의 훼손은 불안정노동자가 생산수단이나 다른 물적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적영역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것까지 시장에 빼앗기는 상황을 초래한다.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어 ‘돌봄’을 구매해야만 된다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라도 개인은 노동시장의 소득에 더 의존하게 된다. 이 가운데 노동시장에서의 소득 격차가 돌봄서비스의 접근 격차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디지털 전환기, 감정과 행복감, 따뜻한, 배려감을 ‘생산하는’ 돌봄노동은 인간적 고유성이 내제된 살아있는 노동이다. 하지만, 기계화와 AI시대에 가장 인간적인 노동이 시장화의 날개를 달고 바로 우리 인간으로부터 가장 낮은 임금과 저평가 대우를 받는다. 이 슬픈 모순의 시대를 앞으로 더욱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