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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023_하반기_함께가는 여성] 기획_도시에서 만나는 수많은 축제와 애도의 공간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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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_하반기_함께가는 여성] 기획

 

도시에서 만나는 수많은 축제와 애도의 공간

 

안도/안도북스 대표

건축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오랜 시간 공간을 만나고 만들었고 현재는 대학에서 실내디자인 관련 강의를 합니다.

공간을 관찰하고, 정의하고, 발견하는 일을 꾸준히 좋아해서 건축, 디자인 도서를 소개하고 관련 문화를 만드는 <안도북스>도 운영중입니다.

 

 

가 살던 ‘집’이 없어졌다.

 

내 기억 속 ‘공간’의 시작은 85번지였다. 방학이면, 명절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좁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며칠을 지내던 곳. 할머니가 계셨고 명절에는 수십 명의 친척이 드나들던 곳이다. 언니, 오빠들과 다락에서, 옥상에서, 장독대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밤새우며 놀았던 ‘공간’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85번지는 우리 집이 되었다. 어른들의 이해 관계나 금전 관계를 깊숙이 알진 못했지만, 나는 그 집이 마냥 좋았다. 그렇지만 한옥도 아니고, 1950년대에 지어진 흙집은 살기에 참 불편한 곳이었다. 이웃집과의 간격이 좁아 알고 싶지 않은 그들의 집안 사정을 들어야 했고, 겨울이면 얇은 창 사이로 혹한의 바람이 스며 들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몇십 년씩 사이좋던 사람들은 조합원과 세입자 등으로 분류되어 ‘보상’이라는 큰 틀 안에서 혈투를 벌였다. 인심 좋기로 소문났던 뒷골목 첫 번째 집에 사는 OO 아빠는 싸움 끝에 사람을 죽여 감옥에 갔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결국 떠나간 집만큼이나 늘어가던 폐기물로 더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사라져 버린 내 고향 아현동 85번지 이야기다.

 

가끔 그곳을 지나가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 전혀 다르기에 그곳을 같은 장소,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없겠다. 사라져 버린 건 내가 살던 공간, ‘용적’의 의미만이 아닌 나의 그 시절 이야기도 포함된 것이기에 허무가 깊고 크다. 잊고자 잊힌 게 아니라, 잊을 수밖에 없어 잊힌 것이다.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사라짐’을 무작정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때의 처지가 아쉽다.

 

 

간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을 상대로 강의할 땐 정형화된 ‘공간’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지붕과 벽과 바닥이 존재하고 입구가 있어 외부로부터 진입할 수 있는 곳’ 같은 형태적 개념이다. 또는 이러한 형태적 개념이나 우리말 사전에 나와 있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곳 또는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 같은 설명이어야 한다.

 

공간의 건축적 개념을 정립한 후에는 공간의 ‘사회적 개념’을 알게 되는데, 수많은 방법과 정의가 존재하지만 그중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사용하느냐’이다. (그 점은 건축가에게 물어도 인문학자에게 물어도 예술가에게 물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사회적 요구나 문화적 가치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축물을 통해 어떤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결국 물리적으로 인간이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 설계되고 이후 인간의 행위, 이야기, 안식, 욕망 등의 크고 작은 감정과 표현들이 응축될 때, 공간은 사회적 개념을 획득한다.

 

사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적 공간이 사용자 개인의 삶에 밀접하게 관계하여 불편함을 없애는 것을 공간 제공에 중점을 둔다면, 사회적 공간은 그곳에서 어떠한 장치를 통해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장애 당사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배리어 프리*와 같이 불평등을 없애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평등의 가치가 침해되지 않을 최소한의 제공은 어쩌면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도시의 공간을 넘어 국가의 공간으로서 정체성과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뉴욕의 911테러 추모관***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국가의 공간이 구성원의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고 지원할 ‘잔치와 애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국내에는 점차 ‘잔치와 애도’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공간들이 오히려 줄어드는 현실에 직면했다.

 

배리어 프리*: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기 위해 실시하는 운동 및 시책을 말한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으로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있다.

뉴욕의 911테러 추모관***: 그라운드 제로(groundzero). 2001년 9월 미국 대폭발 테러 사건(9·11 테러 사건)으로 붕괴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자리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9·11 추모 박물관 등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는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를 겪었지만, 사회적 참사 앞에 기억이 잊히기를 강요받았다. 그동안 억울한 죽음이 쌓여가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발걸음은 함께 슬픔을 나눌 곳을 찾아 촘촘히 연대했다. 다시 생활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픔을 감춰두어야 하는 도시에 ‘우리’의 공간이 없다.

 

‘사회적 고통을 기억의 공간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가?’ 외국의 사례를 둘러보면 국가가 어떻게 사회적 고통을 이해하는지 또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오래된 역사가 있거나 역사적 기록이 잘 보관된 사회에는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산실(産室)****로서의 메모리얼(Memorial)*****이 존재한다. 메모리얼은 과거를 거쳐 현재에도 생성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이 지속해서 연결되고 연구적 가치, 상징으로서 사회와 대면하고 있다.

산실(産室)****: 일정(一定)한 일을 꾸미거나 이루어 내는 곳. 또는 바탕.

메모리얼(Memorial)*****: 기념물. 기념비(적인 것). 기념관.
 

메모리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대단하고 장엄할 듯한 느낌이 들지만,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장치’에 관한 것이다. 기억을 저장해 두는 장치로서의 공간은 돌아보기, 보고 만지기, 시각 정보 제공 등을 통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거나 잊히고 있는 사건과 사고를 다시 한번 마주치게 한다.

 

건축의 용어나 공간 경험을 통해 장치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획득하는 다소 복잡한 단계를 거치게 된다. 경험의 결론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사건이나 구성원의 불행이 그 누구에게도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장치 대부분이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역사와 사건에 대한 인간의 기억은 역순행적 구성을 거쳐 차차 희미해지고 경험할 수 있는 깊이는 점점 얕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다양한 형태에 담겨 순환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 끊임없는 ‘생산과 재생산’의 반복 속에서 정작 어떤 사실을 기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사건과 사회적 고통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지금 누가, 어떻게 정한 것인지도 모른 채 방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제하지 않았어도 ‘사라짐’을 무작정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때의 처지처럼.

 

 

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가끔 건축 투어를 나간다. 주로 새로 생긴 이름있는 건축가의 작품, 역사적 의미가 담긴 건축물로, 어떤 방식으로든 건축 공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삶에 깊게 들어온 곳일 때 시간을 내어 방문한 보람을 느낀다.

 

물론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정치적 신념, 종교적 에고가 나와 다르거나 드러냄의 정도가 내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도시를 걸을 때 찌르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일까 비난한 적도 있다. 공간의 미적 기준이 파괴되어 구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생겨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다른 한편,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해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공동체적 삶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내가 속한 집단의 불행이 아니더라도, 다른 집단이 겪는 불행 또한 나와 상관있는 일이라 여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 삶에서 발생한 사회적 고통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억장치로서의 공간은 수많은 발생 가능성을 염두하며, 고통의 기억을 위로하는 장치로 쓰인다. 기억장치로서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요소 하나쯤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단순하게 공간이란 우리가 잊지 말고 보존할 이유와 의미를 찾기 위해 함께 걸어갈 방법을 생각해 보는 곳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상실과 부재에서 오는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며 만들어진 기억장치로서의 공간을 경험하며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힘을 갖게 된다. ‘벽’과 ‘천장’과 ‘바닥’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온전히 결속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사랑해 온 공간의 힘이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책 제목에서 인용함. 김명식,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뜨인돌출판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