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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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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간
영
여는 민우회 회원/일을 하며 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미지: 사진 제공-영
한 해의 시간이 흐르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나의 경우에는 매일 아침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알게 된다. 날마다 오전 6시 10분쯤 2호선 합정과 당산 사이 한강을 건너는데, 겨울에는 해가 뜨기 전이라 사방이 깜깜하다가 4월쯤 되면 하늘과 강이 붉게 물들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보게 된다. 혹은 혼자 걷는 밤에 불현듯 불어오는 꽃향기로 알게 된다. 이름도 모양도 잘 모르지만 계절보다 먼저 오는 향기들. 또는 매년 돌아오는 어떤 날들을 기억하며 알게 된다. 누구의 생일, 긴 연휴, 크리스마스, 누군가 떠난 날, 한 해 두 해 셈해보며 ‘벌써 몇 주기구나.’ 생각하게 되는 날들.
지금이란각기 다른 질량을 가진 별들 사이에 떠 있는 행성 같아서 때로 더 큰 질량을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이끌려와 주위를 맴돌게 된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토요일이었고 느지막이 친구를 만나 브런치를 먹었다. 주말의 홍대치고는 골목이 조용했는데 가게에 들어가니 테이블이 가득 차 활기가 넘쳤다. 큰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브런치라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그날따라 어딘가 일상과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즐거웠던 것 같다. 이런 것도 가끔은 괜찮구나, 생각했다. 친구와 꽤 오랜 시간 마주 앉아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회사 얘기, 요즘 본 영화 얘기, 내년, 그러니까 올해가 된 아직은 멀었던 그때 같이 가기로 한 여행 얘기, 그런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나는 대화는 하나다. 홍대 골목을 걸으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핼러윈에 홍대에 왔다고, 사람 많아지기 전에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했고 친구는 저녁에도 근처에서 약속이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올해 핼러윈은 보통이 아닐 것 같다고, “이태원에 10만 명이 모인대요.” 그런 얘기를 했다. 집에 돌아와 조금 일찍 잠들었다가 연이어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오후에 헤어진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지금 소식을 보고 걱정되어서 연락한다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제야 뉴스를 봤다. 아주 많은 속보를 봤다. 그날 밤의 깜깜함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한 달쯤 전의 일이다.그날 저녁엔 종로에 있었다. 7시에 보신각에서 열리는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에 분노하며’ 집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종로3가에서 종각으로 걸어가며 큰 교차로를 지나는데 마주 보이는 하늘이 온통 붉었다. 높은 건물들 위로 옅은 구름이 층층이 깔려 있었는데, 그 넓은 구름이 노랗고 빨간 노을 색으로 선명하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 여럿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고, 그걸 보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 다른 이들도 작은 탄성을 내며 사진을 찍게 하는 하늘이었다. 그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당도한 보신각 앞에 앉아 있으면서는 또 어떤 생각을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나 찾아본 그날 쓴 일기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아마 그 밤 역시 이 깜깜함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핸드폰에 그날 찍은 사진 몇 장이 증거품처럼 남아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급하게 찍어 구도가 기울어진 하늘 사진, 바닥의 작은 물웅덩이에 고인 노을 사진, “다국적아가씨 항시대기”라고 쓰인 종각역 골목의 대형 홍보물 사진.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그 죽음들이 도저히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분노와 슬픔은 종국엔 무력감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모멸과도 같은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살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침수로 사망한 이들의 기사를 읽고 망연해졌다가도 사무실 의자에 앉으면 밀려오는 업무를 쳐내다 이내 잊고 말았다. 그렇게 치워둔 슬픔과 분노와 모멸은 아무렇게나 한데 엉겨있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건 진짜 아니야’ 싶을 때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었지만 답을 찾기 전에 생각은 늘 중단되었다. 생각을 하기엔 매일이 너무 피곤했다. 단지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할 뿐인데도 집에 돌아오면 그저 누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러니까 생각의 중단은 자의적이기도 했다. 기분이 유독 가라앉는 날엔 평소보다 더 많이 잠을 자거나 친구를 만났다. 언어를 찾지 못한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그저 가벼운 이야기만 나누다 헤어질 때도 많았다. 다른 누구를 만나고 싶지 않을 때는 영화를 봤다.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밝고 생생한 세계를 보고 있으면 영화관 밖의 세계는 아득히 멀어지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갔다.
하지만 이야기는 선별적인 기억이다.지금까지 말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가 지낸 한해를 서술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바로 옆에 놓인 핸드폰의 갤러리를 열어본다. 거기엔 드문드문 한 기억보다 일 년의 시간이 더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늘 먹은 점심, 관심 있는 영화의 시간표, 회사의 공지, 귀여운 강아지, 길 가다 본 특이한 광경……. 그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여행 사진이다. 여행지에선 평소보다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감각이 휘발되면 기억은 남은 사진들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붙잡고 싶은 순간에 갈고리를 걸어 포획하는 일이다. 혹은 싱그러운 꽃을 꺾어 책 사이에 납작하게 끼워 말려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폰 갤러리에는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주로 담겨있다. 그런 사진으로 구성된 한해는 꽤 즐거워 보여서 ‘매일 조금씩 쌓여 침잠하는 슬픔을 느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도저히 맞지 않아 보인다.

이미지: 사진 제공-영
이런 식으로 지난 일 년을 가지고 아주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시간은 무수히 생성되는 이야기만큼 무한히 증식된다. 때로 그 이야기들은 각기 너무 달라 보여서 어떤 것이 참이 되기 위해선 다른 것은 거짓이어야 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누락을 통해 성립하고 기록엔 공백이 있다. 말이 되지 않은 채 고여 있는 시간이 있다. 그 공백을 일종의 행간으로 두고 보면 이 사뭇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게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마치 다중 노출되어 상이 여러 개 맺힌 사진처럼 다른 시간과 포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으로 타인과 연결되면서도 그러한 슬픔의 효과를 두려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키고 싶으면서도 자기 안에 갇히고 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으로 인해 훼손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는 어떤 날들과 쭉 같이 살아가면서도 웃고 또 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나에게 있던 질문 중 하나는슬퍼하거나 분노하면서, 혹은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지금 보이는 이 너머를 믿고 나아갈 힘은 어떻게 생길까? 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알아낸 바가 있어 여기 적을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길을 헤매는 동안 필요한 것과 그 너머로 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시간을 포개어 각자 다른 시간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질감을 느끼고, 그리하여 그 시간의 증명이 되어주는 다른 존재다. 그를 나는 친구라 부른다. 나 또한 어느 순간 누군가의 친구일 수 있었기 때문에 헤매는 동안에도 따뜻하다고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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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민우회 회원/일을 하며 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이미지: 사진 제공-영
한 해의 시간이 흐르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나의 경우에는 매일 아침 지하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알게 된다. 날마다 오전 6시 10분쯤 2호선 합정과 당산 사이 한강을 건너는데, 겨울에는 해가 뜨기 전이라 사방이 깜깜하다가 4월쯤 되면 하늘과 강이 붉게 물들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보게 된다. 혹은 혼자 걷는 밤에 불현듯 불어오는 꽃향기로 알게 된다. 이름도 모양도 잘 모르지만 계절보다 먼저 오는 향기들. 또는 매년 돌아오는 어떤 날들을 기억하며 알게 된다. 누구의 생일, 긴 연휴, 크리스마스, 누군가 떠난 날, 한 해 두 해 셈해보며 ‘벌써 몇 주기구나.’ 생각하게 되는 날들.
지금이란각기 다른 질량을 가진 별들 사이에 떠 있는 행성 같아서 때로 더 큰 질량을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이끌려와 주위를 맴돌게 된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토요일이었고 느지막이 친구를 만나 브런치를 먹었다. 주말의 홍대치고는 골목이 조용했는데 가게에 들어가니 테이블이 가득 차 활기가 넘쳤다. 큰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브런치라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그날따라 어딘가 일상과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즐거웠던 것 같다. 이런 것도 가끔은 괜찮구나, 생각했다. 친구와 꽤 오랜 시간 마주 앉아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회사 얘기, 요즘 본 영화 얘기, 내년, 그러니까 올해가 된 아직은 멀었던 그때 같이 가기로 한 여행 얘기, 그런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나는 대화는 하나다. 홍대 골목을 걸으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핼러윈에 홍대에 왔다고, 사람 많아지기 전에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했고 친구는 저녁에도 근처에서 약속이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올해 핼러윈은 보통이 아닐 것 같다고, “이태원에 10만 명이 모인대요.” 그런 얘기를 했다. 집에 돌아와 조금 일찍 잠들었다가 연이어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이 깼다. 오후에 헤어진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다. 지금 소식을 보고 걱정되어서 연락한다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제야 뉴스를 봤다. 아주 많은 속보를 봤다. 그날 밤의 깜깜함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한 달쯤 전의 일이다.그날 저녁엔 종로에 있었다. 7시에 보신각에서 열리는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에 분노하며’ 집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종로3가에서 종각으로 걸어가며 큰 교차로를 지나는데 마주 보이는 하늘이 온통 붉었다. 높은 건물들 위로 옅은 구름이 층층이 깔려 있었는데, 그 넓은 구름이 노랗고 빨간 노을 색으로 선명하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 여럿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고, 그걸 보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 다른 이들도 작은 탄성을 내며 사진을 찍게 하는 하늘이었다. 그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당도한 보신각 앞에 앉아 있으면서는 또 어떤 생각을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나 찾아본 그날 쓴 일기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아마 그 밤 역시 이 깜깜함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핸드폰에 그날 찍은 사진 몇 장이 증거품처럼 남아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급하게 찍어 구도가 기울어진 하늘 사진, 바닥의 작은 물웅덩이에 고인 노을 사진, “다국적아가씨 항시대기”라고 쓰인 종각역 골목의 대형 홍보물 사진.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그 죽음들이 도저히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분노와 슬픔은 종국엔 무력감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모멸과도 같은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살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침수로 사망한 이들의 기사를 읽고 망연해졌다가도 사무실 의자에 앉으면 밀려오는 업무를 쳐내다 이내 잊고 말았다. 그렇게 치워둔 슬픔과 분노와 모멸은 아무렇게나 한데 엉겨있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건 진짜 아니야’ 싶을 때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었지만 답을 찾기 전에 생각은 늘 중단되었다. 생각을 하기엔 매일이 너무 피곤했다. 단지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할 뿐인데도 집에 돌아오면 그저 누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러니까 생각의 중단은 자의적이기도 했다. 기분이 유독 가라앉는 날엔 평소보다 더 많이 잠을 자거나 친구를 만났다. 언어를 찾지 못한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그저 가벼운 이야기만 나누다 헤어질 때도 많았다. 다른 누구를 만나고 싶지 않을 때는 영화를 봤다.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밝고 생생한 세계를 보고 있으면 영화관 밖의 세계는 아득히 멀어지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갔다.
하지만 이야기는 선별적인 기억이다.지금까지 말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가 지낸 한해를 서술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바로 옆에 놓인 핸드폰의 갤러리를 열어본다. 거기엔 드문드문 한 기억보다 일 년의 시간이 더 촘촘하게 기록되어 있다. 오늘 먹은 점심, 관심 있는 영화의 시간표, 회사의 공지, 귀여운 강아지, 길 가다 본 특이한 광경……. 그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여행 사진이다. 여행지에선 평소보다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감각이 휘발되면 기억은 남은 사진들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은 붙잡고 싶은 순간에 갈고리를 걸어 포획하는 일이다. 혹은 싱그러운 꽃을 꺾어 책 사이에 납작하게 끼워 말려놓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폰 갤러리에는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주로 담겨있다. 그런 사진으로 구성된 한해는 꽤 즐거워 보여서 ‘매일 조금씩 쌓여 침잠하는 슬픔을 느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도저히 맞지 않아 보인다.
이미지: 사진 제공-영
이런 식으로 지난 일 년을 가지고 아주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시간은 무수히 생성되는 이야기만큼 무한히 증식된다. 때로 그 이야기들은 각기 너무 달라 보여서 어떤 것이 참이 되기 위해선 다른 것은 거짓이어야 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누락을 통해 성립하고 기록엔 공백이 있다. 말이 되지 않은 채 고여 있는 시간이 있다. 그 공백을 일종의 행간으로 두고 보면 이 사뭇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게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마치 다중 노출되어 상이 여러 개 맺힌 사진처럼 다른 시간과 포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으로 타인과 연결되면서도 그러한 슬픔의 효과를 두려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키고 싶으면서도 자기 안에 갇히고 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으로 인해 훼손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는 어떤 날들과 쭉 같이 살아가면서도 웃고 또 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나에게 있던 질문 중 하나는슬퍼하거나 분노하면서, 혹은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지금 보이는 이 너머를 믿고 나아갈 힘은 어떻게 생길까? 라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알아낸 바가 있어 여기 적을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길을 헤매는 동안 필요한 것과 그 너머로 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시간을 포개어 각자 다른 시간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질감을 느끼고, 그리하여 그 시간의 증명이 되어주는 다른 존재다. 그를 나는 친구라 부른다. 나 또한 어느 순간 누군가의 친구일 수 있었기 때문에 헤매는 동안에도 따뜻하다고 느끼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