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하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4
장애 여성의 관점을 무대, 일상, 광장에서 확장하는 노동
“춤추는허리 배우들의 무대 위의 다양한 몸이 뒤엉킨다/보조기를 한 다리/찌그러진 얼굴/구부러진 팔/크게 나온 배/발성을 위해 소리 지르는 입/관객을 응시하는 눈/보여지는 대상으로 존재했던/장애여성들이 이제는 배우로서, 내 몸을/내가 전시한다”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춤추는허리 전시작품 ‘일평단심2’ 중에서)
요즘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이하 ‘춤허리’) 공연 ‘빛나는’의 연습이 한창이다. 다양한 장애와 상황에 놓인 배우들이 각자 몸에 맞는 소리와 움직임을 탐구하며 동선을 만들고 있다. 장애가 진화하며, 그리고 나이 들어 변해가는 서로의 몸 상태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기보다 어떻게 함께 활동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역동을 나누고 있다.
활동의 기반은 사람
“나는 중증 장애여성이기도 하고, 언어장애가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내가 일상이 아닌 공연을 위해 대화하고 관계를 맺기까지 동료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사회에선 ‘실패’라고 말하지만 나는 ‘실패는 경험’이라 말하는 사람의 곁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고, 나 역시 이런 활동을 함께 해나가는 이 공간을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2019, 문화다움기획상131 심포지엄, 서지원)
나의 몸은 섹슈얼리티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제한되는 경험(성폭력, 가정폭력 피해, 성적 대상화) 혹은 내 삶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교육·직업 선택과 기회 등에서의 배제), 장애로 인한 차별과 배제,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주도적인 삶을 쟁취한다는 건 장애여성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 자원과 타인의 조력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쉽게 내 몸을 간섭하는 명분이 된다. 내 몸은 보조기를 착용하는 경증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한계가 분명하다. 이런 한계 속에서 나는 부정당하고 노동자로서 불인정 된다. 몸의 차이와 장애에 자긍심을 갖고 이 몸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가치와 노동을 모색하는 고민은 ‘공감’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 그리고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내용을 제안하고 공유하며 공간과 시간, 관계를 조직하고 끊임없이 함께 방법을 찾았던 것이 ‘춤허리’에서의 시간이었다. 나는 13년째 끊임없이 폭풍우가 치는 ‘춤허리’라는 배에서 같이 흔들리면서도 새롭게 단단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동과 자긍심
‘춤허리’ 극단 배우로 활동하게 되면서 내 삶에 ‘장애여성배우’ 라는 구체적인 정체성이 추가되었다. ‘공감’ 안팎에서 자기소개할 때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배우 김미진입니다”로 첫 마디를 시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배우도 그랬다. 명확한 소속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위치를 가졌다는 건 삶의 큰 지지대가 세워진 것이었다.
삶의 긴 시간 동안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직장’에 진입하기 어려웠고, 노동자로 인정받은 경험이 없었다. 불인정 되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분명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20대에는 가죽 조각을 이어붙여 한 장으로 만드는 일을 했었다. 받은 돈으로 동생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주게 되면서 일에 대한 희열, 돈을 버는 즐거움을 느꼈지만 내 일은 직업으로 불리지 못했다. 이후 장애 특성상 선택하게 된 것은 한복 만드는 일. 집에서 한복 그림을 그려서 납품하던 일을 했을 때도 직업이 아닌 부수적인 부업으로 불렸다.
그간의 시간을 거쳐 ‘춤허리’라는 곳에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배우, 연출, 팀장, 조력자 등등 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제안받으며 동료의 인정과 날 선 비판을 주고받았다.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나로 서기 위해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가, 깨져야 하는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진통과도 같은 고통으로 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 안정감과 함께하는 동료를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오롯이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활동의 공간. ‘공감’은 몇 년 전부터 ‘춤허리’ 배우들이 반상근과 상근 구조를 선택해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개편을 시도했다. 함께 이 물결에 요동치며 자긍심을 지니며 살고 있다.
무대와 일상
다양한 장애여성이 자조 모임을 통해 모이고 몸의 이야기를 나누다, 차별과 배제에 분노하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 연극을 해보자고 했고, 진짜 연극을 했다. 배우가 겪은 차별 경험이 공연 기획부터 주제, 목적, 목표, 내용에 반영된다. 발달장애를 이유로 통장개설을 거절당했던 경험과 일을 함에도 내 통장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했던 이야기, 아이를 돌봄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이라서 양육자 역할을 인정받지 못했던 내 삶의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가 되어 대본으로 쓰이고, 노동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일상과 무대가 이어지는 것, 그리고 이어지다가 이어지지 않는 갈등과 긴장 속에서 내 일상이 계속 깨지고 변화하는 건 너무나 큰 역동이다.
장애여성의 독립과 탈시설 권리에 대한 극 ‘빛나는’을 연습하며,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침묵하는 순간을 떠올린다. 나는 왜 저항하지 않았던가? 못했던가? 이 불쾌감은 왜 발생하는 걸까? 당당하게 독립을 말하는 ‘은수’라는 배역을 당당하지 못한 내가 무대에서 재현하는 것이 맞나? 이런 일상과 무대의 격동이 숱하게 부딪친다. 일상이 무대로 이어지지만, 무대가 꼭 일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무대가 그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분투한다.
또 배우로서 전문성을 만들기 위해서, 연극 무대에서 ‘비장애’인의 몸을 흉내 내지 않기 위해 긴장한다. 무대 위에서 서두르지 않고, 안정적으로 호흡하며 소리 내고 움직이기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찾고 연습한다. 내 몸과 연결된 공간과 관계에서 서두름 없이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무대는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어서 그 장소와 공간, 시간 안에서만큼은 딱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안에서만큼은 내가 너무 명확해져요. 내가 계획한 ‘나’로 살 수 있죠!”
‘춤허리’에서의 노동은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공적 활동에 이어지는지, 어떻게 삶을 바꾸고 일상을 변화하게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극단 춤추는허리는 문화예술 운동을 통해 장애여성의 현실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결국은 모두가 평등한 공간과 관계,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이를 위해 오늘도 익숙하지만 낯선 몸을 이동시켜 연습 공간을 향해 간다.
김미진
❚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장애 여성 배우
[2022 하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4
장애 여성의 관점을 무대, 일상, 광장에서 확장하는 노동
“춤추는허리 배우들의 무대 위의 다양한 몸이 뒤엉킨다/보조기를 한 다리/찌그러진 얼굴/구부러진 팔/크게 나온 배/발성을 위해 소리 지르는 입/관객을 응시하는 눈/보여지는 대상으로 존재했던/장애여성들이 이제는 배우로서, 내 몸을/내가 전시한다”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춤추는허리 전시작품 ‘일평단심2’ 중에서)
요즘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이하 ‘춤허리’) 공연 ‘빛나는’의 연습이 한창이다. 다양한 장애와 상황에 놓인 배우들이 각자 몸에 맞는 소리와 움직임을 탐구하며 동선을 만들고 있다. 장애가 진화하며, 그리고 나이 들어 변해가는 서로의 몸 상태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기보다 어떻게 함께 활동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역동을 나누고 있다.
활동의 기반은 사람
“나는 중증 장애여성이기도 하고, 언어장애가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내가 일상이 아닌 공연을 위해 대화하고 관계를 맺기까지 동료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사회에선 ‘실패’라고 말하지만 나는 ‘실패는 경험’이라 말하는 사람의 곁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고, 나 역시 이런 활동을 함께 해나가는 이 공간을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2019, 문화다움기획상131 심포지엄, 서지원)
나의 몸은 섹슈얼리티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제한되는 경험(성폭력, 가정폭력 피해, 성적 대상화) 혹은 내 삶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교육·직업 선택과 기회 등에서의 배제), 장애로 인한 차별과 배제,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주도적인 삶을 쟁취한다는 건 장애여성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 자원과 타인의 조력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쉽게 내 몸을 간섭하는 명분이 된다. 내 몸은 보조기를 착용하는 경증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한계가 분명하다. 이런 한계 속에서 나는 부정당하고 노동자로서 불인정 된다. 몸의 차이와 장애에 자긍심을 갖고 이 몸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가치와 노동을 모색하는 고민은 ‘공감’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 그리고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내용을 제안하고 공유하며 공간과 시간, 관계를 조직하고 끊임없이 함께 방법을 찾았던 것이 ‘춤허리’에서의 시간이었다. 나는 13년째 끊임없이 폭풍우가 치는 ‘춤허리’라는 배에서 같이 흔들리면서도 새롭게 단단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동과 자긍심
‘춤허리’ 극단 배우로 활동하게 되면서 내 삶에 ‘장애여성배우’ 라는 구체적인 정체성이 추가되었다. ‘공감’ 안팎에서 자기소개할 때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배우 김미진입니다”로 첫 마디를 시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배우도 그랬다. 명확한 소속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위치를 가졌다는 건 삶의 큰 지지대가 세워진 것이었다.
삶의 긴 시간 동안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직장’에 진입하기 어려웠고, 노동자로 인정받은 경험이 없었다. 불인정 되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분명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20대에는 가죽 조각을 이어붙여 한 장으로 만드는 일을 했었다. 받은 돈으로 동생에게 중고 자전거를 사주게 되면서 일에 대한 희열, 돈을 버는 즐거움을 느꼈지만 내 일은 직업으로 불리지 못했다. 이후 장애 특성상 선택하게 된 것은 한복 만드는 일. 집에서 한복 그림을 그려서 납품하던 일을 했을 때도 직업이 아닌 부수적인 부업으로 불렸다.
그간의 시간을 거쳐 ‘춤허리’라는 곳에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배우, 연출, 팀장, 조력자 등등 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제안받으며 동료의 인정과 날 선 비판을 주고받았다.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나로 서기 위해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가, 깨져야 하는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진통과도 같은 고통으로 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 안정감과 함께하는 동료를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오롯이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활동의 공간. ‘공감’은 몇 년 전부터 ‘춤허리’ 배우들이 반상근과 상근 구조를 선택해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개편을 시도했다. 함께 이 물결에 요동치며 자긍심을 지니며 살고 있다.
무대와 일상
다양한 장애여성이 자조 모임을 통해 모이고 몸의 이야기를 나누다, 차별과 배제에 분노하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 연극을 해보자고 했고, 진짜 연극을 했다. 배우가 겪은 차별 경험이 공연 기획부터 주제, 목적, 목표, 내용에 반영된다. 발달장애를 이유로 통장개설을 거절당했던 경험과 일을 함에도 내 통장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했던 이야기, 아이를 돌봄에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이라서 양육자 역할을 인정받지 못했던 내 삶의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가 되어 대본으로 쓰이고, 노동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일상과 무대가 이어지는 것, 그리고 이어지다가 이어지지 않는 갈등과 긴장 속에서 내 일상이 계속 깨지고 변화하는 건 너무나 큰 역동이다.
장애여성의 독립과 탈시설 권리에 대한 극 ‘빛나는’을 연습하며,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침묵하는 순간을 떠올린다. 나는 왜 저항하지 않았던가? 못했던가? 이 불쾌감은 왜 발생하는 걸까? 당당하게 독립을 말하는 ‘은수’라는 배역을 당당하지 못한 내가 무대에서 재현하는 것이 맞나? 이런 일상과 무대의 격동이 숱하게 부딪친다. 일상이 무대로 이어지지만, 무대가 꼭 일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무대가 그저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분투한다.
또 배우로서 전문성을 만들기 위해서, 연극 무대에서 ‘비장애’인의 몸을 흉내 내지 않기 위해 긴장한다. 무대 위에서 서두르지 않고, 안정적으로 호흡하며 소리 내고 움직이기 위한 우리만의 방식을 찾고 연습한다. 내 몸과 연결된 공간과 관계에서 서두름 없이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무대는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어서 그 장소와 공간, 시간 안에서만큼은 딱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안에서만큼은 내가 너무 명확해져요. 내가 계획한 ‘나’로 살 수 있죠!”
‘춤허리’에서의 노동은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공적 활동에 이어지는지, 어떻게 삶을 바꾸고 일상을 변화하게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극단 춤추는허리는 문화예술 운동을 통해 장애여성의 현실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결국은 모두가 평등한 공간과 관계,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이를 위해 오늘도 익숙하지만 낯선 몸을 이동시켜 연습 공간을 향해 간다.
김미진
❚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장애 여성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