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하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이야기
반투명한 이야기
내가 투명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공간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내 앞이나 옆에 있는 사람은 나를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할까? 혹시 ‘내 옆에는 없었으면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다 보면, 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가 인식되지 않는 사람 같다.
대중교통을 탈 때 “삐빅, 카드를 다시 대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면 허둥지둥 카드를 다시 찍고 자리에 앉아 한숨 고르며 생각한다. 삐빅, 존재가 인식되지 않습니다. 삐빅, 존재를 다시 증명해보세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을 날이 올까 겁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길에서 스친 사람만 해도 몇천 명은 될 텐데 없을 리가 있나. 내가 여기 있다고 외쳐도 소리가 잘 닿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모임에선가 아주 잠깐이지만 나는 투명 인간이 ‘되는’ 경험을 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모임에 온 한 분이 과거에 겪었던 성적 괴롭힘에 관해 이야기했고, 다들 가해자의 행동에 분노했다.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수가 있냐”, “너무 화가 난다” 등등 여러 가지 말이 오갔다. 나도 그런 말을 보태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 분이 허공에 삿대질하면서 말했다. “가해자 완전 그거 아냐? 정신병자.” 그리고는 머리 옆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빙글빙글 돌리더니 한마디 더 했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면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순간 나는 완전히 투명해져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병을 숨기고 넘어갔더니 내 몸 구석 어딘가 휑 하고 바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민우회 소모임 ‘페미정신'에서 함께 읽던 책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에 나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종종 배신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멀어지는 거리감을 느낀다. 사회에 반쪽짜리 소속감을 느낀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이 부분에 너무 공감한다”며 ‘너무’라는 말을 세번쯤 쓴 것 같다.
내가 정신병자로 보이지 않고 ‘정상’ 같아 보여서 “가해자는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은 걸까? 아니다.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병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이렇게 좁은 걸 확인할 때마다 나야말로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수가 있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매우 복잡하게도 나는 그 분이 어떤 의미로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가해자가 너무 나쁘고 싫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이해가 안가고,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러게요. 정신병자 맞네요” 맞장구를 치며 ‘진단’을 내려버렸을 테고. “거참 듣는 정신병자 기분 나쁘게 말씀들 하시네요”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사람이 정신병자라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요?” 같이 맞는 말을 하는데도 혹시나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려서 묘하게 분위기가 틀어질까 봐 손끝이 저렸다. 아주 작게 정신병의 ‘정’만 꺼냈는데도 입가가 떨려서 “정.. 정말 나쁘네요” 이런 말이나 했다.
종종 그날의 일을 다시 생각한다. 모임 참여자들은 정신병자가 옆에 있다는 걸 알면 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정신병자 앞에서 ‘정신병자’라는 말을 욕으로 쓰셨네요.” 이런 말이라도 해야 했나. 아직도 고민이 된다. 모임 끝난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이렇게 반투명한 존재로 ‘정상사회’를 어슬렁대다가 민우회 페미니스트 정신질환자 회원 소모임 ‘페미정신’에 오면 나는 내 존재가 매우 선명하게 느껴진다. ‘와, 내가 병을 이야기하고 웃었다가 울먹거렸다가 남을 위로할 줄도 알고, 어이구 이젠 농담도 하네? 나 사람 맞네~’ 이런 감각이랄까. 내 말이 말로 인식된다는 감각. 내 고통을 번역해 말하지 않아도 “맞아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말해주는데다 눈빛, 끄덕임, 박수에 이마를 치기까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온갖 방법으로 알려준다. 대화가 ‘통한다’는 말이 찌릿하게 이해된다. 그렇게 내 존재가 투명해지지 않는 순간들이 온다. 그럴 때면 나는 손을 계속 움켰다 폈다 하면서 바라본다. 마치 유령이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그리고 그 손으로 가끔은 눈물을 닦았다. 나에게 내 존재가 너무 선명해서.
첫 모임 때 눈치를 보다가 슬쩍 내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는 걸 말했는데, “아침밥으로 김치볶음밥을 먹었다”는 말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에게 이런 경험은 드물어서, 집에 가는 길에 메모 어플을 켜놓고 한참이나 떠들었다. “있잖아, 나 오늘 정신병이랑 페미니즘이랑 트랜스젠더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여줬고 나는 아무런 피해도 상처도 입지 않았어. 오히려 너무 많이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야. 신기하지 않아? 내가 나임을 숨기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거야.” 이렇게 메모를 쓰다가 다시 내가 쓰던 글을 읽어보니까 괜히 눈물이 나더라. 그런 이유에서 나는 계속 ‘페미정신’에 나갔다. 그럼 언젠가 누구에게라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선명하게 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고 트랜스젠더고 정신질환자입니다.
그래서 뭐요?”
이도
❚ 여는 민우회 페미니스트 정신질환자 회원 소모임 ‘페미정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입니다.
[2021 하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이야기
반투명한 이야기
내가 투명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공간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내 앞이나 옆에 있는 사람은 나를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할까? 혹시 ‘내 옆에는 없었으면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다 보면, 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가 인식되지 않는 사람 같다.
대중교통을 탈 때 “삐빅, 카드를 다시 대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면 허둥지둥 카드를 다시 찍고 자리에 앉아 한숨 고르며 생각한다. 삐빅, 존재가 인식되지 않습니다. 삐빅, 존재를 다시 증명해보세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을 날이 올까 겁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고 흔히 말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길에서 스친 사람만 해도 몇천 명은 될 텐데 없을 리가 있나. 내가 여기 있다고 외쳐도 소리가 잘 닿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모임에선가 아주 잠깐이지만 나는 투명 인간이 ‘되는’ 경험을 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모임에 온 한 분이 과거에 겪었던 성적 괴롭힘에 관해 이야기했고, 다들 가해자의 행동에 분노했다.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수가 있냐”, “너무 화가 난다” 등등 여러 가지 말이 오갔다. 나도 그런 말을 보태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 분이 허공에 삿대질하면서 말했다. “가해자 완전 그거 아냐? 정신병자.” 그리고는 머리 옆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빙글빙글 돌리더니 한마디 더 했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면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순간 나는 완전히 투명해져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병을 숨기고 넘어갔더니 내 몸 구석 어딘가 휑 하고 바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민우회 소모임 ‘페미정신'에서 함께 읽던 책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에 나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종종 배신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멀어지는 거리감을 느낀다. 사회에 반쪽짜리 소속감을 느낀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이 부분에 너무 공감한다”며 ‘너무’라는 말을 세번쯤 쓴 것 같다.
내가 정신병자로 보이지 않고 ‘정상’ 같아 보여서 “가해자는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은 걸까? 아니다.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병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이렇게 좁은 걸 확인할 때마다 나야말로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수가 있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매우 복잡하게도 나는 그 분이 어떤 의미로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가해자가 너무 나쁘고 싫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이해가 안가고, 욕이나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러게요. 정신병자 맞네요” 맞장구를 치며 ‘진단’을 내려버렸을 테고. “거참 듣는 정신병자 기분 나쁘게 말씀들 하시네요”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사람이 정신병자라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요?” 같이 맞는 말을 하는데도 혹시나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려서 묘하게 분위기가 틀어질까 봐 손끝이 저렸다. 아주 작게 정신병의 ‘정’만 꺼냈는데도 입가가 떨려서 “정.. 정말 나쁘네요” 이런 말이나 했다.
종종 그날의 일을 다시 생각한다. 모임 참여자들은 정신병자가 옆에 있다는 걸 알면 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정신병자 앞에서 ‘정신병자’라는 말을 욕으로 쓰셨네요.” 이런 말이라도 해야 했나. 아직도 고민이 된다. 모임 끝난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이렇게 반투명한 존재로 ‘정상사회’를 어슬렁대다가 민우회 페미니스트 정신질환자 회원 소모임 ‘페미정신’에 오면 나는 내 존재가 매우 선명하게 느껴진다. ‘와, 내가 병을 이야기하고 웃었다가 울먹거렸다가 남을 위로할 줄도 알고, 어이구 이젠 농담도 하네? 나 사람 맞네~’ 이런 감각이랄까. 내 말이 말로 인식된다는 감각. 내 고통을 번역해 말하지 않아도 “맞아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말해주는데다 눈빛, 끄덕임, 박수에 이마를 치기까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온갖 방법으로 알려준다. 대화가 ‘통한다’는 말이 찌릿하게 이해된다. 그렇게 내 존재가 투명해지지 않는 순간들이 온다. 그럴 때면 나는 손을 계속 움켰다 폈다 하면서 바라본다. 마치 유령이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그리고 그 손으로 가끔은 눈물을 닦았다. 나에게 내 존재가 너무 선명해서.
첫 모임 때 눈치를 보다가 슬쩍 내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는 걸 말했는데, “아침밥으로 김치볶음밥을 먹었다”는 말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나에게 이런 경험은 드물어서, 집에 가는 길에 메모 어플을 켜놓고 한참이나 떠들었다. “있잖아, 나 오늘 정신병이랑 페미니즘이랑 트랜스젠더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여줬고 나는 아무런 피해도 상처도 입지 않았어. 오히려 너무 많이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야. 신기하지 않아? 내가 나임을 숨기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거야.” 이렇게 메모를 쓰다가 다시 내가 쓰던 글을 읽어보니까 괜히 눈물이 나더라. 그런 이유에서 나는 계속 ‘페미정신’에 나갔다. 그럼 언젠가 누구에게라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선명하게 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고 트랜스젠더고 정신질환자입니다.
그래서 뭐요?”
이도
❚ 여는 민우회 페미니스트 정신질환자 회원 소모임 ‘페미정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