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하반기_함께가는 여성] 기획
맹꽁이,저어새,흰발농게,상괭이가살지 못하면
인간도 살지 못한다.
백채영/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새만금신공항의 건설을 막아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군비확장에 반대하며 새만금갯벌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 연대단체이다.
세종시 국토부/환경부 앞에서 11월17일로 648일째 천막 농성 중이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선전전을 진행한다.
격주로 거리미사가 봉헌되며, 매주 군산, 전주에서도 선전전이 있다. 새만금신공항 취소소송도 진행 중이다.
새만금 갯벌 여성 어민 고 류기화님은 한국농촌공사가 방조제 수문 개방 시간을 알려주지 않은 탓에 갯벌에서 익사했다. 앞마당처럼 익숙한 갯벌에서 밀물과 썰물을 읽던 맨손어업 어민이 당하기에는 너무나 원통한 인재(人災)였다. 도요새는 매년 오던 갯벌이 말라붙은 줄 모르고 내려앉아 영문을 모르고 고통 속에 굶어 죽었다. 상괭이는 방조제 안쪽에서 질식해서 떼 죽음 당했다.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320km를 삼보일배로 갔던 종교인들은 아직도 무릎이 갈린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신다. 하지만 나는 말짱하게 뻔뻔하게 잘살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완공 후 트라우마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살다가 작년에서야 다시 용기를 낸 참이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
이 지구를 몇십 번이나 터트릴 만큼 파괴적인 기술을 쥐고, 무한한 경제성장을 밀어붙이는 식인 자본주의로 글을 시작해야 할까. SF작가인 더글라스 아담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 시대의 동물학자들과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며 멸종되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종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건 불타고 있는 도서관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 다시는 읽지 못할 책의 제목을 적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다고. 알기 전에 멸종한 생물은 애도할 수조차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기 쉬워진다. 전라북도의 새만금 갯벌에서 거대한 생태학살이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만 도시, 특히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23년 8월 초, 파행으로 끝난 잼버리 현장은 정말 더웠다. ‘잼버리가 거대한 생태학살을 그린워싱하고 있다, 열사병 사고 위험이 높으니 행사를 중단하라’고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하던 중, 기상청발 뉴스를 하나 접했다. 8월 초와 같은 ‘극한 열 스트레스 일’이 현재는 1년에 4.7일이지만, 금세기 말에는 두세 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아. 잼버리 현장의 극열지옥도가 그대로 한반도 전체의 미래겠구나 싶었다. 극악하게 자연을 개조한 후과(後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매립지, 폭염과 침수와 해충에 시달리며 각자도생하는 아수라장은 곧 우리 모두가 겪게 될 기후붕괴의 생체실험장 같았다.
뒤늦게 알아가는 비인간동물*들의 경이로움
누군가를 향해 멍청하다고 비웃을 때 ‘새대가리’(‘bird brain’)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치는 현재의 욕구를 누르고 미래의 필요에 대비하는 능력이 있다. 흰정수리북미멧새는 4800km 떨어진 곳에 풀어줘도 곧바로 원래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날아간다. 전 지구 수준의 지도가 뇌에 탑재되어 있는 것이다. 노란날개솔새는 초저주파음을 들어서 800km 떨어진 폭풍이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북극제비갈매기는 그린란드/아이슬란드에서 남극해까지 매년 왕복한다. 도요새가 논스톱으로 1만km 이상을 날아간다는 것이 새만금방조제 완공 후인 2008년에야 처음 밝혀졌다. 비행에 무리를 주지 않는 몸무게 3% 이내의 작은 위치추적기를 달아주고 위성으로 이동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기술은 최근에야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요새는 호주/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시베리아로 날아올 때 딱 한 번 쉰다. 그곳이 서해 갯벌인데, 새들은 체중이 40% 정도 감소한 상태로 기진맥진해서 내려앉아, 40일 정도 쉬면서 다시 체중을 회복한다. 이때 먹이활동을 하지 못하면 당연하게도 그냥 죽는다. 도요새 한 명(命)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 지구가 필요하다.
고래도 전 지구적 감각을 갖고 있다. 초음파의 반향으로 거대한 대양의 지형을 익히고 수백 킬로미터까지 전달되는 저주파 언어로 소통한다. 심지어 6,000km 이상의 거리에서도 소통할 수 있다. 대양을 두고 떨어져 있는 혹등고래 무리들은 매년 유행이 바뀌는 노래를 거의 실시간으로 배운다.
비인간 동물*: 인간이 동물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비인간동물을 ‘동물’이라고 부르고 인간은 동물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인간동물’ ‘비인간동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거시적인 감각의 생물종이 인간보다 먼저 과학기술을 손에 넣은 평행세계라면
방조제, 미사일, 핵발전, 백린탄, 고엽제 등 고도로 조작적인 위험한 기술을 도요새나 고래같이 전지구적인 관점을 가진 생물종이 먼저 획득했다면, 그 폐해도 즉각 느낄 수 있어 현명하게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전지구적 관점을 가진 종은 파괴적인 기술을 아예 개발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은 수백km 떨어진 일을 감지하기는커녕, 지척에서 누군가 죽어가도 감지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존재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개념은 작디작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노심용융 사고 당시 일본은 망했다며 조롱하는 글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서글픈 일이었다. 칠흑 같은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우주선 벽에 구멍이 나서 선내 공기가 소실되고 있는데, 구멍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구멍에 붙어 앉은 사람에게 “넌 이제 죽었다”하고 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부락 단위로 진화해 온 인류가 전 지구적 감수성을 가진 신인류로 변화할 수 있을까?
내 활동의 중심, 새만금 갯벌의 감각
살아남은 일부 갯벌에 여전히 철새들이 날아들고 미미한 해수유통에 갯벌의 저서생물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군산 앞 수라갯벌이 그런 곳이다. 멸종위기종이 50종 이상 살아가고 있고, 지금도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바닷물이 10년 만에 조금 더 들어오자, 기적적으로 멸종위기종 흰발농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라갯벌은 바로 위 서천갯벌과 이어져 있는 하나의 생태 권역이기도 하다. 서천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데, 경계를 하나 사이로 수라갯벌은 방조제 안쪽에 있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마구 매립해서 파괴해도 되는 곳이다. 이 원형 갯벌에 짓겠다는 새만금신공항 계획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힌다.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수라갯벌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소극적인 소망을 품었다. 그런데 더 큰 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만금에는 지금이라도 바닷물만 들어오면 갯벌로 되살아날 수 있는 면적이 서울 1/3 넓이 정도 된다. 매립되지 않은 구역은 그냥 밀물 때도 방조제 수문을 열어 바닷물이 갯벌로 들어오게 하면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24시간 해수유통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조제 수문의 그 좁은 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생물에는 한계가 있다. 연안에 사는 어류의 95% 가량이 갯벌에 와서 산란, 성장을 하는데 수문만 열어서는 이들은 자유롭게 오갈 수 없다. 돌고래들도 갯벌을 드나들 수 없다.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방조제를 터야 한다. 현실적으로 해수면 상승 때문에 곧 무용지물이 될 방조제. 그 방조제를 깨러 가는 상상을 한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공감력뿐이다. 우리는 도요새와 고래의 시좌(視座)를 상상하고 전지구적인 관점을 내면화할 수 있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18세기 노예에게 시간을 뛰어넘어 공감하고, 성기절제술을 받는 아프리카 소녀에게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한다. 흑인노예, 여성, 어린이, 동성애자 등이 법적 인격과 권리를 보장받는 데는 길고도 힘든 연대와 투쟁이 있었고, 이제 그 상상력을 더 확장시켜야 할 때이다. 최근 뉴질랜드의 테 우레웨라 국립공원과 황아누이 강, 미국의 클라마쓰강은 법인격으로 인정받았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아마존에 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오랑우탄 산드라는 아르헨티나 법정에서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받았고 자유로울 권리를 인정받아 쉼터로 이송되었다. 파나마 의회는 보호받고 번성할 법적 권리를 바다거북에게 부여했다. 캐나다 퀘벡주의 맥파이 카운티와 그 지역 선주민 의회는 맥파이강이 법인격을 가진다고 결정했다. 한국에서는 제주 남방 큰돌고래가 생태법인 1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내 활동의 거점, 세종시 국토부 앞의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농성 천막과 친구들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한 천막 농성이 2023년 12월 3일에 664일이 됐다.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 거리 미사, 기자회견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천막에는 새만금신공항, 가덕도신공항, 제주 제2공항 반대, 사대강 보 철폐, 기후정의행진, 세종국가산업단지 중단, 장남들판 보존 등의 다양한 피켓, 손자수 피켓, 멸종위기 생물종 그림, 그림 도구, 장구,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선물, 추위를 피하기 위한 난로, 이불 등 구석구석 사연이 가득하다. 물론 계고장이 여러 개 붙어 있어 늘 철거 위기이기도 하다. 천막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는 친구들은 반지의 제왕 속 호빗들처럼 유쾌하고 다정하면서도 꿋꿋하다. 경쟁과 속도에 찌든 각자도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천막은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다른 규칙이 있는 공간, 숨골 같은 곳이다. 숨골은 땅에 뚫린 구멍으로 지하 동굴과 통한다. 동굴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이곳은 일 년 내내 온화한 미기후(微氣候)**로 한겨울에도 파란 풀이 자라나고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혹한과 혹서가 넘나드는 기후재난의 시대에도 숨골에 가면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지하 동굴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숨골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제주 지반이 섬세하고 연약하여 제2공항 건설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약탈적 성장주의, 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의 터전을 지키는 싸움이 숨골처럼 연결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천막에 방문하길 기대한다. 서로에게 선물이자 빚***이 되자.
미기후(微氣候)**: 미기후는 주변환경과 다른 국소지역의 특별한 기후를 뜻한다.
빚***: Bill Readings가 말하는 의무의 네트워크, 즉 우리는 서로 빚을 지고 있으며 내가 생각할 수 없는 타인의 경험이나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내 안의 타자에 대한 경험 때문에, 우리는 빚을 결코 갚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관점을 가져왔다.
[2023_하반기_함께가는 여성] 기획
맹꽁이,저어새,흰발농게,상괭이가살지 못하면
인간도 살지 못한다.
백채영/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새만금신공항의 건설을 막아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군비확장에 반대하며 새만금갯벌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 연대단체이다.
세종시 국토부/환경부 앞에서 11월17일로 648일째 천막 농성 중이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선전전을 진행한다.
격주로 거리미사가 봉헌되며, 매주 군산, 전주에서도 선전전이 있다. 새만금신공항 취소소송도 진행 중이다.
새만금 갯벌 여성 어민 고 류기화님은 한국농촌공사가 방조제 수문 개방 시간을 알려주지 않은 탓에 갯벌에서 익사했다. 앞마당처럼 익숙한 갯벌에서 밀물과 썰물을 읽던 맨손어업 어민이 당하기에는 너무나 원통한 인재(人災)였다. 도요새는 매년 오던 갯벌이 말라붙은 줄 모르고 내려앉아 영문을 모르고 고통 속에 굶어 죽었다. 상괭이는 방조제 안쪽에서 질식해서 떼 죽음 당했다.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320km를 삼보일배로 갔던 종교인들은 아직도 무릎이 갈린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신다. 하지만 나는 말짱하게 뻔뻔하게 잘살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완공 후 트라우마라는 핑계로 외면하고 살다가 작년에서야 다시 용기를 낸 참이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
이 지구를 몇십 번이나 터트릴 만큼 파괴적인 기술을 쥐고, 무한한 경제성장을 밀어붙이는 식인 자본주의로 글을 시작해야 할까. SF작가인 더글라스 아담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 시대의 동물학자들과 식물학자들이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며 멸종되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종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건 불타고 있는 도서관으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 다시는 읽지 못할 책의 제목을 적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다고. 알기 전에 멸종한 생물은 애도할 수조차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기 쉬워진다. 전라북도의 새만금 갯벌에서 거대한 생태학살이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만 도시, 특히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23년 8월 초, 파행으로 끝난 잼버리 현장은 정말 더웠다. ‘잼버리가 거대한 생태학살을 그린워싱하고 있다, 열사병 사고 위험이 높으니 행사를 중단하라’고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하던 중, 기상청발 뉴스를 하나 접했다. 8월 초와 같은 ‘극한 열 스트레스 일’이 현재는 1년에 4.7일이지만, 금세기 말에는 두세 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아. 잼버리 현장의 극열지옥도가 그대로 한반도 전체의 미래겠구나 싶었다. 극악하게 자연을 개조한 후과(後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매립지, 폭염과 침수와 해충에 시달리며 각자도생하는 아수라장은 곧 우리 모두가 겪게 될 기후붕괴의 생체실험장 같았다.
뒤늦게 알아가는 비인간동물*들의 경이로움
누군가를 향해 멍청하다고 비웃을 때 ‘새대가리’(‘bird brain’)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치는 현재의 욕구를 누르고 미래의 필요에 대비하는 능력이 있다. 흰정수리북미멧새는 4800km 떨어진 곳에 풀어줘도 곧바로 원래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날아간다. 전 지구 수준의 지도가 뇌에 탑재되어 있는 것이다. 노란날개솔새는 초저주파음을 들어서 800km 떨어진 폭풍이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북극제비갈매기는 그린란드/아이슬란드에서 남극해까지 매년 왕복한다. 도요새가 논스톱으로 1만km 이상을 날아간다는 것이 새만금방조제 완공 후인 2008년에야 처음 밝혀졌다. 비행에 무리를 주지 않는 몸무게 3% 이내의 작은 위치추적기를 달아주고 위성으로 이동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기술은 최근에야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요새는 호주/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시베리아로 날아올 때 딱 한 번 쉰다. 그곳이 서해 갯벌인데, 새들은 체중이 40% 정도 감소한 상태로 기진맥진해서 내려앉아, 40일 정도 쉬면서 다시 체중을 회복한다. 이때 먹이활동을 하지 못하면 당연하게도 그냥 죽는다. 도요새 한 명(命)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 지구가 필요하다.
고래도 전 지구적 감각을 갖고 있다. 초음파의 반향으로 거대한 대양의 지형을 익히고 수백 킬로미터까지 전달되는 저주파 언어로 소통한다. 심지어 6,000km 이상의 거리에서도 소통할 수 있다. 대양을 두고 떨어져 있는 혹등고래 무리들은 매년 유행이 바뀌는 노래를 거의 실시간으로 배운다.
비인간 동물*: 인간이 동물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비인간동물을 ‘동물’이라고 부르고 인간은 동물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인간동물’ ‘비인간동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거시적인 감각의 생물종이 인간보다 먼저 과학기술을 손에 넣은 평행세계라면
방조제, 미사일, 핵발전, 백린탄, 고엽제 등 고도로 조작적인 위험한 기술을 도요새나 고래같이 전지구적인 관점을 가진 생물종이 먼저 획득했다면, 그 폐해도 즉각 느낄 수 있어 현명하게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런 전지구적 관점을 가진 종은 파괴적인 기술을 아예 개발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은 수백km 떨어진 일을 감지하기는커녕, 지척에서 누군가 죽어가도 감지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존재다. 우리가 가진 ‘우리’의 개념은 작디작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노심용융 사고 당시 일본은 망했다며 조롱하는 글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서글픈 일이었다. 칠흑 같은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우주선 벽에 구멍이 나서 선내 공기가 소실되고 있는데, 구멍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구멍에 붙어 앉은 사람에게 “넌 이제 죽었다”하고 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부락 단위로 진화해 온 인류가 전 지구적 감수성을 가진 신인류로 변화할 수 있을까?
내 활동의 중심, 새만금 갯벌의 감각
살아남은 일부 갯벌에 여전히 철새들이 날아들고 미미한 해수유통에 갯벌의 저서생물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군산 앞 수라갯벌이 그런 곳이다. 멸종위기종이 50종 이상 살아가고 있고, 지금도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바닷물이 10년 만에 조금 더 들어오자, 기적적으로 멸종위기종 흰발농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라갯벌은 바로 위 서천갯벌과 이어져 있는 하나의 생태 권역이기도 하다. 서천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데, 경계를 하나 사이로 수라갯벌은 방조제 안쪽에 있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마구 매립해서 파괴해도 되는 곳이다. 이 원형 갯벌에 짓겠다는 새만금신공항 계획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힌다.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수라갯벌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소극적인 소망을 품었다. 그런데 더 큰 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만금에는 지금이라도 바닷물만 들어오면 갯벌로 되살아날 수 있는 면적이 서울 1/3 넓이 정도 된다. 매립되지 않은 구역은 그냥 밀물 때도 방조제 수문을 열어 바닷물이 갯벌로 들어오게 하면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24시간 해수유통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조제 수문의 그 좁은 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생물에는 한계가 있다. 연안에 사는 어류의 95% 가량이 갯벌에 와서 산란, 성장을 하는데 수문만 열어서는 이들은 자유롭게 오갈 수 없다. 돌고래들도 갯벌을 드나들 수 없다.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방조제를 터야 한다. 현실적으로 해수면 상승 때문에 곧 무용지물이 될 방조제. 그 방조제를 깨러 가는 상상을 한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공감력뿐이다. 우리는 도요새와 고래의 시좌(視座)를 상상하고 전지구적인 관점을 내면화할 수 있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는 18세기 노예에게 시간을 뛰어넘어 공감하고, 성기절제술을 받는 아프리카 소녀에게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한다. 흑인노예, 여성, 어린이, 동성애자 등이 법적 인격과 권리를 보장받는 데는 길고도 힘든 연대와 투쟁이 있었고, 이제 그 상상력을 더 확장시켜야 할 때이다. 최근 뉴질랜드의 테 우레웨라 국립공원과 황아누이 강, 미국의 클라마쓰강은 법인격으로 인정받았다. 콜롬비아 대법원은 아마존에 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오랑우탄 산드라는 아르헨티나 법정에서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받았고 자유로울 권리를 인정받아 쉼터로 이송되었다. 파나마 의회는 보호받고 번성할 법적 권리를 바다거북에게 부여했다. 캐나다 퀘벡주의 맥파이 카운티와 그 지역 선주민 의회는 맥파이강이 법인격을 가진다고 결정했다. 한국에서는 제주 남방 큰돌고래가 생태법인 1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내 활동의 거점, 세종시 국토부 앞의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농성 천막과 친구들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한 천막 농성이 2023년 12월 3일에 664일이 됐다.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 거리 미사, 기자회견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천막에는 새만금신공항, 가덕도신공항, 제주 제2공항 반대, 사대강 보 철폐, 기후정의행진, 세종국가산업단지 중단, 장남들판 보존 등의 다양한 피켓, 손자수 피켓, 멸종위기 생물종 그림, 그림 도구, 장구,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선물, 추위를 피하기 위한 난로, 이불 등 구석구석 사연이 가득하다. 물론 계고장이 여러 개 붙어 있어 늘 철거 위기이기도 하다. 천막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는 친구들은 반지의 제왕 속 호빗들처럼 유쾌하고 다정하면서도 꿋꿋하다. 경쟁과 속도에 찌든 각자도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천막은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다른 규칙이 있는 공간, 숨골 같은 곳이다. 숨골은 땅에 뚫린 구멍으로 지하 동굴과 통한다. 동굴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이곳은 일 년 내내 온화한 미기후(微氣候)**로 한겨울에도 파란 풀이 자라나고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혹한과 혹서가 넘나드는 기후재난의 시대에도 숨골에 가면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지하 동굴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숨골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제주 지반이 섬세하고 연약하여 제2공항 건설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약탈적 성장주의, 자본주의에 맞서 생명의 터전을 지키는 싸움이 숨골처럼 연결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천막에 방문하길 기대한다. 서로에게 선물이자 빚***이 되자.
미기후(微氣候)**: 미기후는 주변환경과 다른 국소지역의 특별한 기후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