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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023 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 02_기후위기 시대, 기후의 감각이 달라지는 세대

2023-07-07
조회수 3004

기후위기 시대,

 

기후의 감각이 달라지는 세대

 

 

 

박이윤정/비건먼지 유튜브 크리에이터팀, 비건먼지 PD

비건/비거니즘을 가시화하고 비거니즘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자 영상과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는 비건 전문 크리에이터 팀이에요

페미니스트 & 비건 지향인이면서 비건 문화 대중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비건&제로웨이스트 지향하는 제작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팀이랍니다

https://youtube.com/@veganmonji

 

 

 

역사 속을 살아가는 인간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들은 모두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도, 이승만 대통령도 모두 역사 속의 인물이었다. 정치인들은 내 삶과 연결되어 있기보다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내가 모르는 이 세계 어느 곳에 존재하는 먼 타자일 뿐이었다. 초등학교에서 국가에 대한 맹세를 할 때, 나는 국가가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 마냥 나와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뉴스 속 불타는 숭례문을 볼 땐 엄청난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만 어른들의 숨과 표정으로 느낄 뿐이었다. 정치도 잘 몰라서 미국이 4년 중임제라길래 한국도 그렇다고 언니와 내기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강산이 변하는 10년마다 2명의 대통령을 만나는 걸 알게 됐다. 신종플루로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때,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대통령이 바뀌었다. 수입산 쇠고기 파동도 지나가고,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다. 초등학교에 붙어있던 “2014년 도로명 주소로 바뀐다”는 포스터를 보고 2014년이 언제 오나 싶었지만, 시간은 정박의 메트로놈 따라 흘렀다. 박근혜가 당선되고 다음 해 바뀐 도로명에 적응할 때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뉴스에서 고등학교 교실 매 쉬는 시간 TV를 틀어 생존자를 확인할 때, 어른들은 나의 수학여행은 안전을 이유로 취소했다. 대학을 위해 서울에 상경하고서 뉴스 앵커 뒤에 나오던 광화문과 숭례문의 동떨어진 사진이 머릿속에 지도로 이어졌다. 남산 아래에서 살고 나서야 숭례문이 불탔을 때 시민들의 마음이 상상이 됐다. 휘경동이 배경인 소설과 신촌이 배경인 소설이 왜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해야만 했는지도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흩어져 있던 국가의 상징 장소들이 머릿속 지도로 모아졌다. 교환학생을 가서도 한국의 역사는 쌓였다. 팟캐스트 속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회담이 뉴스 특집 편성으로 흘러나왔다. 그런 시간 속에서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내가 몇 살이었는지 떠올리는 힌트는 그런 뉴스와 정책 속에 있었다. 내 시간을 씨실로, 역사를 날실로 이 시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광장 옆 서울신문의 전광판에 뜨는 속보를 보는 일은, 역사를 내 시간 속에 새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태풍 매미가 평범한 태풍인 줄 알았던 아이

 

공통의 역사 속에서도, 지역에 따라 재난에 대한 감각은 다르게 쌓인다. 부산 해운대에서 자란 나는 1층 상점들의 조망권을 위해 높이를 낮춘 방파제 위를 걸어다니곤 했다. 조망을 얻고 안전을 포기한 방파제 때문에 태풍이 올때면 매번 파도가 넘쳤다. 태풍이 올 때면 기자들은 태풍이 육지를 지나는 초입이라며 침수된 차량과 넘실대는 파도를 배경으로 겨우 마이크를 들고 서있었다. 태풍 매미 정도가 아니라면 태풍 속에서도 강풍을 뚫고 등교했다. 신문지와 양말 한 켤레를 더 챙겨 다니는 게 태풍시 등교할 때 숙련자들의 덕목이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서울을 지나갈 때, 언론은 태풍 매미보다 더 하다며 대대적으로 태풍 대비를 하라고 했다. 매번 태풍에 휩쓸리며 등교했던 때를 떠올리며, 직장은 나오라고 하는지, 말라고 하는지 계속 사내 메신저를 들여다봤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생각하며 조직팀에게 출근 여부를 물었으나, 그냥 출근하라고 해 휴가를 내야 하나 심각히 고민했다. 그러나 서울은 꽤 내륙이라 태풍의 영향은 미미했고, 난 그저 태풍에 대해 굉장히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머쓱했다.

내 역사 속에서 첫 태풍은 132명의 사망자를 낸 태풍 매미였다. 나에겐 나무가 뽑혀 나가고 동네가 아수라장 정도가 돼야 무서운 태풍이었다. 매미가 할퀴고 가 전봇대가 넘어간 모습이 평범의 기준선이 된 것이다. 그때 대한민국 안에서도, 태풍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지역과 나이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디스토피아를 자기 삶의 첫 단추로 기억할 청소년 세대

 

힌남노가 휩쓴 2022년, 난 청소년들과 업사이클링 수업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을 처음 만나기 위해 달떴던 OT 전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선제공격했다는 뉴스가 떴다. 이어서 기상이변으로 겨울철 가뭄이 극심해져 산불이 일어난다는 뉴스가 매일 단신으로 지나갔다. 그 순간 코로나 19 뉴스 특보 로고가 보였다. 코로나19 방역 1년만에 “뉴스 특보=매일 하는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뉴스”로 해석하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비정상’의 나날들이 일상이 되어있었다. 한국뿐 아니라 매년 전 세계에서 기록적인 산불, 폭염, 폭우, 폭설, 혹한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뉴스에 한 줄 헤드라인으로 넘어가는 세계였다.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과학자들의 경고들이 켜켜이 쌓여, 뉴스가 두 시간이어도 모자랄 것 같은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보고있는 뉴스를 편집하기만 해도 디스토피아 영화 도입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확진자를 차별하고, 외국에서는 아시아인 혐오가 심해졌다는 심층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취약계층들이 무료 점심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도 허탕을 치는 일이 허다했고, 한국에서만 비대면과 위생이라는 명목하에 배달용기는 하루 700만 개, 컵 얼음은 하루 100만 개 넘게 사용됐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63빌딩 7채 분량의 비닐장갑이 투표장에서 사용된 것이 전염병 시대의 투표 모범 사례로 전 세계에 소개됐다. 전쟁 때문에 자원이 부족해져 가스비 폭등으로 옷을 겹겹이 껴입는 겨울도 지났다. 이런 극적인 나날들이, 디스토피아의 시대가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이 기억하기 시작하는 세계의 첫 조각이었다.

 

 

 

기후위기가 평범한 일상이 될 세대

 

마스크를 매일 써야만 했던 ‘비정상’의 시대가 자연스러웠던 아동들은 마스크를 벗기 싫어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마 태풍 매미가 나에게 보편적인 기준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세대에게는 코로나19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 가난한 자들이 춥게 지낼 수밖에 없는 것,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폭우에 갇혀 죽는 것이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뉴스에서 뽑은 특보가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일상처럼 기억에 남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의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기준은 자신에게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청소년과 다음 세대가 사용할 ‘예년의 날씨’라는 표현은 우리와 다를 것이다. 미세먼지와 미세 플라스틱을 먹는 것이 더 이상 큰 이슈가 아닌 세대, 감염병이 오면 또 마스크를 쓰고 항생제를 쓰며 넘어갈 세대. 폭우와 태풍에도 놀라지 않고 낙담하지 않을 세대. 큰 재난의 신호를 더 이상 위험하다고 감지하지 못할 세대가 바로 우리 다음 세대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는 이미 벌어진 일이다. 나의 세대는 초등학교 때는 신종플루, 고등학교 때는 세월호 참사, 대학교 때는 코로나가 있었다. 그 사이에 후쿠시마 핵사고도 있었지만, 우리는 핵인싸, 핵노잼과 같은 말처럼 핵이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설악산 자락 아래에서 도화꽃이 몇십번을 피는 걸 보며 살아간 사람과, 가끔 쏘카를 빌려 설악산 풍경이 담긴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 카페에서 자연을 보며 느끼는 아름다움의 결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아마 후자의 사람들이 전자의 사람들보다 이 시대를 조금 더 오래 살아있을 것이다. 그들이 역사 시간 축의 중심을 꿰고 있을 때, 그들이 전하는 자연의 보편은 아마 이전 세대의 모습과는 다를 테다.

 

 

 

짧은 나의 시간 이후에도 길게 역사가 이어질 수 있을까?

 

만년설이 쌓인 산을 가본 적 있다. 마치 어느 여행 사이트에 있는 사진처럼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하나의 풍경으로 나는 세계 모든 곳을 찍어댄 사람들의 수많은 사진을 떠올렸다. 인류가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그 장엄한 시간 속의 자연들을 말이다. 우리가 본 그 여행 사이트 속에 있는 풍경은 AI가 그린 게 아니라 실제로 있는 곳이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인류는 AI를 만들지만, 만년설은 없애고 있다. 얼음 속에 파묻혀 있는 5만 년 전의 공기 방울들과 탄소들을 공기 중에 내보내고 있다. 인간은 겨우 100년을 산다. 우리는 인류가 만들어 낸 인공물에는 주목하면서, 인류가 없애고 있는 자연물은 자꾸 잊는다. 인류는 겨우 100년으로는 감히 되살릴 수도 없는 시간을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도달 할 수 없는 그 억겁의 과거들과 미래들을 자꾸 연결해보려 애쓴다. 나의 삶이 더 이상 씨실을 만들어 내지 못해도, 누군가는 이 지구에 다시 태어나 내가 닿지 못한 역사의 날실 속에 자신의 씨실을 엮고 있을 테다. 그렇게 내가 닿지 못한 앞으로의 시간을 상상해 본다.

 

 

참고문헌

편의점 컵얼음,하루100만개 넘게 팔려역대 최다(2021, 한겨레)

배달쓰레기'하루700만개'시대..'착한포장용기'찾는 착한 소비자 늘어(2021, 뉴스 1)

 

 

이미지: 폴란드 자코파네에서 필자가 찍은 사진/ⓒ2020. 박이윤정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