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여성들아,,
광장에 모여 볼까?
: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행크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여름이 너무 덥네요
이미지: <2023 여성노동자대회: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에서 참가자들이 천을 머리 위로 들고 유리천장 부수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년 3월 4일 토요일 오후 1시. 보신각 광장에서 〈2023 여성노동자대회: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가 열렸다.
민우회가 함께하고 있는 ‘여성노동연대회의’에서 주최한 이 행사에는 500명에 가까운 여성노동자들이 참석했다.
집회 후 참가자들은 시청으로 행진하여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 합류했다.
3.8 여성의 날에 여성노동자들이 2시간 빨리 모인 이유
때는 민우회 총회를 마치고 한숨 돌리던 2월 초? 활동가 나우가 3·8 세계여성의 날에 ‘여성노동자대회’를 여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어왔다. 고민스러웠다. 여성대회가 한 달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여성대회 본 행사와 별도의 행사를 조직할 수 있을까? 시의성 있는 특정 노동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광장을 채울 만큼 많은 사람을 모으는 집회를 열 수 있을까? 하지만 “윤석열 정부 이후 연일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철저하게 자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절망적 노동정책 속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너무 절실하지 않냐”는 의견이 마음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한번 해보자고 다들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견고하지도, 너무 허약하지도 않은 유리천장 만들기?
분주하게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는 듯했다. 장소를 정하고 발언자를 섭외하고 집회 제목을 정하고 또 홍보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유리천장’ 부수기 퍼포먼스 준비! ‘유리천장’은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성장하는 데에는 보이지 않지만, 견고한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다. 2023년 한국이 ‘유리천장지수’ 11년째 꼴찌라는 사실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우리를 놀래키지도 못한다. ‘유리천장지수’는 매년 3월 8일 발표되는데 ▷관리직 내 여성 비율 ▷성별 간 경제활동 참여율 ▷성별 간 임금 차이 등의 10가지 지표를 가중평균해 결과를 산출한다. 이는 개별지표로는 알 수 없는 여성 사회진출의 한계를 직관적이고 정밀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는 집회 마지막,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노동자를 짓누르는 유리천장의 존재를 시각화하기로 했다.
반투명한 하늘색 쉬폰 천을 일일이 이어 붙이기로 했다. 노동자대회 전날 활동가들은 자그마한 사무실에 모여, 광장의 규모를 상상하며 바느질을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바늘을 움직이는 일보다 더 우리를 곤란에 빠뜨린 것은 ‘유리천장’의 강도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현실의 견고한 유리천장을 생각했을 때 너무 약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강해서 찢어지지 않으면 (현실 천장도 안 깨지는 판에) 너무 절망스러울까 우려가 됐다. 부수고 싶기만 한 ‘유리천장’을 ‘적당히 튼튼하게’ 제작해야 한다니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천이 찢어진다고 현실의 유리천장이 부서질 수 있을까?
드디어 여성노동자대회 당일.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어느새 광장은 빠르게 채워져 나갔다. 각자 자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주옥같은 발언이 이어지고 집회의 열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드디어 퍼포먼스 타임! 떨리는 마음으로 앞에 준비했던 큰 천을 참여자들이 직접 머리 위로 쭈욱 펼쳐나갔다. 사무실에서는 크게만 보였던 천이 수많은 참가자들 사이 너무 작아 보였지만 머리 위로 펼쳐 든 모습이 제법 유리천장 같았다. ‘부숴주세요!’라는 구호가 떨어지자, 참가자들은 유리천장을 힘주어 찢기 시작했다. 다행히 유리천장은 힘을 잔뜩 주어야 찢겨나가는 적당한 강도로 제작이 됐고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머리 위의 천을 함께 찢으며 꽤 즐거운 웃음을 보였다. 퍼포먼스의 순간들은 비장한 사진으로 남아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현실에 단단하게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천으로 재현해서 찢는 퍼포먼스는 무슨 효과가 있을까? 여성노동자들이 이렇게 모여서 발언을 듣고 행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집회가 있을 때마다 고민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광장에 모여 각자의 투쟁 현장, 어떤 차별과 어떤 부조리를 해쳐나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싸움을 지속하는지 서로의 투쟁을 들여다보고 의미를 읽어주는 일은 외로운 투쟁에 힘을 준다. 또 너무 견고할 것만 같은 유리천장, 여성노동자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천장을 가시화하여 시원하게 뜯어 갈겨보는 일. 그리고 즐겁게 천장을 뚫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 이런 시간들은 지속할 수 없을 것만 같던 투쟁에 제법 따뜻한 웃음과 희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집회가 끝나고 3월 6일. 정부는 69시간 노동제를 발표했다. 작년 대선 때 주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던 풍경을 생각하면, 세상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연일 노동조합 압수수색 소식이 들리고,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을 ‘후려치는’ 법안이 버젓이 발의되기도 했다. 추진한다던 성별임금공시제는 요원하고, 여성노동 정책에선 성평등이 삭제되고 육아휴직을 늘리는 것으로만 축소되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이 팍팍한 현실에서 투쟁을 지속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투쟁하는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광장에 모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연결되고 연대하고 또 현실과 싸워나가는 방식이니까.
일터의 여성들아,,
광장에 모여 볼까?
: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행크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여름이 너무 덥네요
이미지: <2023 여성노동자대회: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에서 참가자들이 천을 머리 위로 들고 유리천장 부수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년 3월 4일 토요일 오후 1시. 보신각 광장에서 〈2023 여성노동자대회: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가 열렸다.
민우회가 함께하고 있는 ‘여성노동연대회의’에서 주최한 이 행사에는 500명에 가까운 여성노동자들이 참석했다.
집회 후 참가자들은 시청으로 행진하여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 합류했다.
3.8 여성의 날에 여성노동자들이 2시간 빨리 모인 이유
때는 민우회 총회를 마치고 한숨 돌리던 2월 초? 활동가 나우가 3·8 세계여성의 날에 ‘여성노동자대회’를 여는 것이 어떤지 의견을 물어왔다. 고민스러웠다. 여성대회가 한 달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여성대회 본 행사와 별도의 행사를 조직할 수 있을까? 시의성 있는 특정 노동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광장을 채울 만큼 많은 사람을 모으는 집회를 열 수 있을까? 하지만 “윤석열 정부 이후 연일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철저하게 자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절망적 노동정책 속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너무 절실하지 않냐”는 의견이 마음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한번 해보자고 다들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견고하지도, 너무 허약하지도 않은 유리천장 만들기?
분주하게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되는 듯했다. 장소를 정하고 발언자를 섭외하고 집회 제목을 정하고 또 홍보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유리천장’ 부수기 퍼포먼스 준비! ‘유리천장’은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성장하는 데에는 보이지 않지만, 견고한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다. 2023년 한국이 ‘유리천장지수’ 11년째 꼴찌라는 사실은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우리를 놀래키지도 못한다. ‘유리천장지수’는 매년 3월 8일 발표되는데 ▷관리직 내 여성 비율 ▷성별 간 경제활동 참여율 ▷성별 간 임금 차이 등의 10가지 지표를 가중평균해 결과를 산출한다. 이는 개별지표로는 알 수 없는 여성 사회진출의 한계를 직관적이고 정밀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는 집회 마지막,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노동자를 짓누르는 유리천장의 존재를 시각화하기로 했다.
반투명한 하늘색 쉬폰 천을 일일이 이어 붙이기로 했다. 노동자대회 전날 활동가들은 자그마한 사무실에 모여, 광장의 규모를 상상하며 바느질을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바늘을 움직이는 일보다 더 우리를 곤란에 빠뜨린 것은 ‘유리천장’의 강도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현실의 견고한 유리천장을 생각했을 때 너무 약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강해서 찢어지지 않으면 (현실 천장도 안 깨지는 판에) 너무 절망스러울까 우려가 됐다. 부수고 싶기만 한 ‘유리천장’을 ‘적당히 튼튼하게’ 제작해야 한다니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천이 찢어진다고 현실의 유리천장이 부서질 수 있을까?
드디어 여성노동자대회 당일.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어느새 광장은 빠르게 채워져 나갔다. 각자 자리에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주옥같은 발언이 이어지고 집회의 열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드디어 퍼포먼스 타임! 떨리는 마음으로 앞에 준비했던 큰 천을 참여자들이 직접 머리 위로 쭈욱 펼쳐나갔다. 사무실에서는 크게만 보였던 천이 수많은 참가자들 사이 너무 작아 보였지만 머리 위로 펼쳐 든 모습이 제법 유리천장 같았다. ‘부숴주세요!’라는 구호가 떨어지자, 참가자들은 유리천장을 힘주어 찢기 시작했다. 다행히 유리천장은 힘을 잔뜩 주어야 찢겨나가는 적당한 강도로 제작이 됐고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머리 위의 천을 함께 찢으며 꽤 즐거운 웃음을 보였다. 퍼포먼스의 순간들은 비장한 사진으로 남아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현실에 단단하게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천으로 재현해서 찢는 퍼포먼스는 무슨 효과가 있을까? 여성노동자들이 이렇게 모여서 발언을 듣고 행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집회가 있을 때마다 고민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광장에 모여 각자의 투쟁 현장, 어떤 차별과 어떤 부조리를 해쳐나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싸움을 지속하는지 서로의 투쟁을 들여다보고 의미를 읽어주는 일은 외로운 투쟁에 힘을 준다. 또 너무 견고할 것만 같은 유리천장, 여성노동자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천장을 가시화하여 시원하게 뜯어 갈겨보는 일. 그리고 즐겁게 천장을 뚫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 이런 시간들은 지속할 수 없을 것만 같던 투쟁에 제법 따뜻한 웃음과 희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집회가 끝나고 3월 6일. 정부는 69시간 노동제를 발표했다. 작년 대선 때 주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걸던 풍경을 생각하면, 세상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연일 노동조합 압수수색 소식이 들리고,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을 ‘후려치는’ 법안이 버젓이 발의되기도 했다. 추진한다던 성별임금공시제는 요원하고, 여성노동 정책에선 성평등이 삭제되고 육아휴직을 늘리는 것으로만 축소되고 있다. 우리는 또다시 이 팍팍한 현실에서 투쟁을 지속하고, 각자의 공간에서 투쟁하는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광장에 모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연결되고 연대하고 또 현실과 싸워나가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