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ing
일고민상담실에 들어오는 달라진 질문들
달래(이가희) |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축구, 맥주, 90’s 음악 = 행복
한국여성민우회에는 ‘일고민상담실’이 있다. 여성들이 일하며 겪는 일들을 상담할 수 있는 곳으로, 민우회 창립 초기부터 상담활동을 쭉 이어오고 있다. 쉬이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인지 매년 비슷하게 들어오는 고민들도 있지만 작년은 미투운동이 있었던 해라는 점에서 이전 해와는 다른 경향성이 눈에 띄었다. 그러한 특징들을 담아 2018년 일고민상담실로 들어온 상담을 정리해보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낯선 상담실로 전화를 걸게 되었는지, 또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진 않았는지 한 번 살펴보시라. 결코… 남일 같지 않을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문제제기 또한 어렵게 한다
일자리가 불안정하면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단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소속감을 느낄 수 없어서 오는 외로움뿐일까? 직장 내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 문제를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회사의 조직문화 그리고 고충처리시스의 유무에 달려있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고용형태도 한 몫 아니 두 몫 정도는 한다. 만약 내담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만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개인 SNS 계정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렸는데 게임 유저들이 알아냈고, 회사에 알려 문제 삼으려는 것 같다. 이제 곧 정규직 전환 예정이라서 이것도 해고사유가 될 수 있는 건지 불안하다.
‘이건 성희롱입니다’라고 상사에게 말했더니 나를 무고죄로 신고하겠다고 하더라. 근데 정작 나는 계약직이라서 외부기관에 신고하기는커녕 회사에 알리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이들의 망설임과 우려는 실제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고민이다. 해고나 계약해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 그렇게 조치하겠다는 협박은 법적인 보호망이 없다면 정말로 현실이 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한 사람에게 어떤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리니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회사를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정규직이고, 나는 계약직이어서인지 나만 계약이 해지되어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6년 전 사건을 미투운동 이후, 용기 내어 밝히겠다고 하니 출근길에 전화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사건에 대한 ‘소문’의 양상이 변했다
소문은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목격자 혹은 동료들의 온갖 추측을 통해 빈번하게 발생하고, 피해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간에는 ‘알고 보니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알고 보니 피해자가 꽃뱀이더라’는 피해자유발론의 악의적인 소문들로 괴로움을 토로했지만 최근에는 조직 내에서 유별나고 예민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점과 함께 문제제기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적인 평판이 나빠지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상담이 점차 늘고 있다.
한편 소문은 피해자보다 높은 지위와 넓은 인맥을 가진 가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여론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무조건 쉬쉬하는 것보다는 사건의 사실관계와 이에 대한 회사의 판단을 사내에 게시하여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것이 피해자 입장에서 오히려 소문을 끊어내는 대응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만약 동료라면, 피해자를 조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남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끊기!’ 직장 내 고립되기 쉬운 피해자를 조력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이러한 평범한 용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사 그 역할의 부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알리겠는가?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의 직급이 주로 상사1)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상사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건 해결의 1차적인 열쇠를 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상사들의 모습은 사례에서 이렇게 나타났다.
상사의 성희롱을 상위 직급자에게 알리니 둘이 친한 거 아니냐며 그냥 넘어갔다.
성희롱을 상사에게 알렸더니 ‘내가 재판관도 아닌데 어떻게 하느냐’며 가해자와 둘이 합의하라고 하더라.
직장 내 성희롱은 ‘그들만의 사적인 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해결 및 예방을 위해 힘쓰고, 조직문화를 점검해야 할 ‘회사의 사건’이다. 그리고 상사와의 대화는 피해자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접하는 첫 단계로,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얻기도, 잃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상사가 해야 할 역할은 사건의 회피나 은폐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감, 지지, 지원을 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사가 다하는 것이다.
피해를 방관하던 회사가 달라지긴 했지만,
정말 바뀌어야 할 것
상사 포함 회사들은 그동안 성희롱 사건에 대한 어떤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듯이 사건을 당사자 개인에게 맡겨놓거나 적극적으로 사건을 덮기도 했다. 그러던 회사들이 2018년, 일고민상담실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던 회사들이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법을 어기던 회사들이 이제는 고민하며 사내규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는 자발적이라기보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사회적 흐름이 회사를 긴장하게 만든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긴장만 했을 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건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는 부족했고, 그래서 하게 되는 매우 ‘기초적인’ 질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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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FAQ
Q. 객관적으로 성희롱이라고 보기가 애매한 사건인데 둘 다 억울하지 않은 방법이 있나요?
A. 그런 건 없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과 편견들이 작동되지 않도록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첫 걸음입니다.
Q. 성희롱 사건 처리가 처음이다 보니 제3자가 판단을 대신 내려줬으면 합니다.
A. 성평등한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회사가 할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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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이후, 또 하나의 변화는 이전에는 참아왔던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들이 ‘성희롱’이라는 말로 질문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들어온 사례들은 성희롱 여부와 상관없이 충분히 문제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담자들이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주요하게 질문하게 되는 것은, 사건에 성희롱이라고 이름을 붙여야만 회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반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투운동 다음, 더 나아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희롱 여부를 가늠하고 피해를 인정받는 것이 아닌, 성희롱으로 이름 붙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조직 구성원의 불편함에 대해 듣고, 고민할 수 있는 조직문화이다. 이제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할 때이다!
가해자의 꼼수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행이라도 퍼진 것처럼, 요즘 성폭력 사건 이후에 가해자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무고니 명예훼손이니 하며 피해자를 역고소하고 있다. 매번 정의가 승리한다면야 좋겠지만, 사실상 법은 증거싸움이고, 성폭력사건의 특성 상 증거를 남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연유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불기소처분이라도 나면, 가해자들은 그것을 기회삼아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곤 한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이 곧 가해자에게 죄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고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는 협박도 만연한 가운데, 피해자의 언행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아두자. 뒤이어 참고할만한 역고소 건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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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고은 :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와 언론사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 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지만 결국 패했다.
☑ 영화감독 김기덕 :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고 말한 배우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관련 내용을 제작한 MBC 〈PD수첩〉 역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배우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고, MBC 〈PD수첩〉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비공개촬영회 성폭력사건 : 집단 성추행 피해가 있었다고 증언한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였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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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상담사례들은 개인들이 겪은 사건들이지만 2018년의 상담경향으로 짚을 수 있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 어느 누구라도 사건의 당사자, 목격자, 상사, 동료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짧은 글이지만 사건 당사자에게는 ‘내게만 일어난 억울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위안이 단단한 마음의 힘을 가져다주고, 연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욕심도 내비쳐본다.
1) 여성가족부,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각각의 글(텍스트)로 연결됩니다
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민우ing
싸우는 우리가 이뤄가는 것들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일고민상담실에 들어오는 달라진 질문들
모두에게 1인분의 삶을
김기덕이 민우회를 고소했다
가해자는 숨지 말고 링 위로 올라올 것, 추종자들은 들을 것
세상이 페미니스트인 당신을 외롭게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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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일고민상담실에 들어오는 달라진 질문들
달래(이가희) |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축구, 맥주, 90’s 음악 = 행복
한국여성민우회에는 ‘일고민상담실’이 있다. 여성들이 일하며 겪는 일들을 상담할 수 있는 곳으로, 민우회 창립 초기부터 상담활동을 쭉 이어오고 있다. 쉬이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인지 매년 비슷하게 들어오는 고민들도 있지만 작년은 미투운동이 있었던 해라는 점에서 이전 해와는 다른 경향성이 눈에 띄었다. 그러한 특징들을 담아 2018년 일고민상담실로 들어온 상담을 정리해보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낯선 상담실로 전화를 걸게 되었는지, 또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진 않았는지 한 번 살펴보시라. 결코… 남일 같지 않을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문제제기 또한 어렵게 한다
일자리가 불안정하면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단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소속감을 느낄 수 없어서 오는 외로움뿐일까? 직장 내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 문제를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회사의 조직문화 그리고 고충처리시스의 유무에 달려있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고용형태도 한 몫 아니 두 몫 정도는 한다. 만약 내담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만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개인 SNS 계정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렸는데 게임 유저들이 알아냈고, 회사에 알려 문제 삼으려는 것 같다. 이제 곧 정규직 전환 예정이라서 이것도 해고사유가 될 수 있는 건지 불안하다.
‘이건 성희롱입니다’라고 상사에게 말했더니 나를 무고죄로 신고하겠다고 하더라. 근데 정작 나는 계약직이라서 외부기관에 신고하기는커녕 회사에 알리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이들의 망설임과 우려는 실제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고민이다. 해고나 계약해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 그렇게 조치하겠다는 협박은 법적인 보호망이 없다면 정말로 현실이 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한 사람에게 어떤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리니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회사를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정규직이고, 나는 계약직이어서인지 나만 계약이 해지되어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6년 전 사건을 미투운동 이후, 용기 내어 밝히겠다고 하니 출근길에 전화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사건에 대한 ‘소문’의 양상이 변했다
소문은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목격자 혹은 동료들의 온갖 추측을 통해 빈번하게 발생하고, 피해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간에는 ‘알고 보니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알고 보니 피해자가 꽃뱀이더라’는 피해자유발론의 악의적인 소문들로 괴로움을 토로했지만 최근에는 조직 내에서 유별나고 예민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점과 함께 문제제기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적인 평판이 나빠지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상담이 점차 늘고 있다.
한편 소문은 피해자보다 높은 지위와 넓은 인맥을 가진 가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여론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무조건 쉬쉬하는 것보다는 사건의 사실관계와 이에 대한 회사의 판단을 사내에 게시하여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것이 피해자 입장에서 오히려 소문을 끊어내는 대응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만약 동료라면, 피해자를 조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남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끊기!’ 직장 내 고립되기 쉬운 피해자를 조력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이러한 평범한 용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상사 그 역할의 부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알리겠는가?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의 직급이 주로 상사1)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상사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건 해결의 1차적인 열쇠를 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상사들의 모습은 사례에서 이렇게 나타났다.
상사의 성희롱을 상위 직급자에게 알리니 둘이 친한 거 아니냐며 그냥 넘어갔다.
성희롱을 상사에게 알렸더니 ‘내가 재판관도 아닌데 어떻게 하느냐’며 가해자와 둘이 합의하라고 하더라.
직장 내 성희롱은 ‘그들만의 사적인 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해결 및 예방을 위해 힘쓰고, 조직문화를 점검해야 할 ‘회사의 사건’이다. 그리고 상사와의 대화는 피해자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며 접하는 첫 단계로,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얻기도, 잃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상사가 해야 할 역할은 사건의 회피나 은폐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감, 지지, 지원을 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사가 다하는 것이다.
피해를 방관하던 회사가 달라지긴 했지만,
정말 바뀌어야 할 것
상사 포함 회사들은 그동안 성희롱 사건에 대한 어떤 의무도 책임도 없다는 듯이 사건을 당사자 개인에게 맡겨놓거나 적극적으로 사건을 덮기도 했다. 그러던 회사들이 2018년, 일고민상담실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던 회사들이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당당하게 법을 어기던 회사들이 이제는 고민하며 사내규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는 자발적이라기보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사회적 흐름이 회사를 긴장하게 만든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긴장만 했을 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건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는 부족했고, 그래서 하게 되는 매우 ‘기초적인’ 질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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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FAQ
Q. 객관적으로 성희롱이라고 보기가 애매한 사건인데 둘 다 억울하지 않은 방법이 있나요?
A. 그런 건 없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과 편견들이 작동되지 않도록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첫 걸음입니다.
Q. 성희롱 사건 처리가 처음이다 보니 제3자가 판단을 대신 내려줬으면 합니다.
A. 성평등한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회사가 할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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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이후, 또 하나의 변화는 이전에는 참아왔던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들이 ‘성희롱’이라는 말로 질문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들어온 사례들은 성희롱 여부와 상관없이 충분히 문제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담자들이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주요하게 질문하게 되는 것은, 사건에 성희롱이라고 이름을 붙여야만 회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반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투운동 다음, 더 나아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희롱 여부를 가늠하고 피해를 인정받는 것이 아닌, 성희롱으로 이름 붙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조직 구성원의 불편함에 대해 듣고, 고민할 수 있는 조직문화이다. 이제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할 때이다!
가해자의 꼼수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행이라도 퍼진 것처럼, 요즘 성폭력 사건 이후에 가해자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무고니 명예훼손이니 하며 피해자를 역고소하고 있다. 매번 정의가 승리한다면야 좋겠지만, 사실상 법은 증거싸움이고, 성폭력사건의 특성 상 증거를 남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연유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불기소처분이라도 나면, 가해자들은 그것을 기회삼아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곤 한다. 하지만 증거불충분이 곧 가해자에게 죄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고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는 협박도 만연한 가운데, 피해자의 언행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아두자. 뒤이어 참고할만한 역고소 건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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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고은 :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와 언론사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 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지만 결국 패했다.
☑ 영화감독 김기덕 :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고 말한 배우를 무고죄로 고소했고, 관련 내용을 제작한 MBC 〈PD수첩〉 역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배우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고, MBC 〈PD수첩〉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비공개촬영회 성폭력사건 : 집단 성추행 피해가 있었다고 증언한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였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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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상담사례들은 개인들이 겪은 사건들이지만 2018년의 상담경향으로 짚을 수 있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 어느 누구라도 사건의 당사자, 목격자, 상사, 동료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짧은 글이지만 사건 당사자에게는 ‘내게만 일어난 억울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위안이 단단한 마음의 힘을 가져다주고, 연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욕심도 내비쳐본다.
1) 여성가족부,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각각의 글(텍스트)로 연결됩니다
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민우ing
싸우는 우리가 이뤄가는 것들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일고민상담실에 들어오는 달라진 질문들
모두에게 1인분의 삶을
김기덕이 민우회를 고소했다
가해자는 숨지 말고 링 위로 올라올 것, 추종자들은 들을 것
세상이 페미니스트인 당신을 외롭게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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