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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가해자는 숨지 말고 링 위로 올라올 것, 추종자들은 들을 것

2019-06-28
조회수 3789

 

 

민우ing

가해자는 숨지 말고 링 위로 올라올 것, 추종자들은 들을 것

 

도미(김현지)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애플민트도 죽이고 다육이도 죽인 저, 식물 쓰레기인가요?

 


 

 

“증언이 개시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거기서 심판을 위한 근거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지도 않았던 시간을 반성적으로 되묻는 것이며, 거기서 전개되어온 삶이라는 투쟁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또 증언 ‘이후’와도 깊이 연동되어 있다.”1)

 

 

뜨거웠던 2018년, 반격은 거셌다


몹시 추웠던 1박 2일, 2,018분의 시간동안 ‘몸들’의 경험이 수년 수십 년 전의 과거까지 그물코 딸려 올라오듯 이어졌다. 각계각층에서 쏟아져 나온 ‘미투’, 쉼 없이 울린 상담전화, 그 가운데 청계광장에서 열렸던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에 대한 기억이다.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참석자들은 용기를 얻었다. ‘미투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지지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심의 눈초리가 생겨났다. 올해 2월 한국리서치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2)에 따르면, 미투운동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 편이다’와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에 응답한 결과가 작년 대비 10포인트 증가한 22%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57%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미투운동이 변질되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며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 한다’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증언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해자의 말을 옮기는 언론에 의해 성폭력 사건은 상이한 ‘증거’들을 다투는 진실게임이자 사설법정에 올라온 ‘스캔들’로 되어갔다. 아주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을 때 일반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기도 하다.

 


자꾸 가해자 옹호세력들과의 대리전이 된다


‘미투’로 고발당한 가해자가 유명인인 경우, 2차피해의 양상은 ‘국민의 관심사’라는 무대로 옮겨지면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고작 댓글’에 불과한 허위사실과 비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여론을 움직였다. 지지자들이 나서서 “성폭력은 없었다”며 부인하거나 “고작 그깟 일”이라며 사소한 일로 만드는 동안 가해 당사자는 사라졌다. 각계각층의 명망가였던 그들은 조용히 대리전을 관망하고, 지지자들의 위로를 받으며 ‘피해자’가 되거나 복귀했다.

 

정봉주 전 서울시장 출마자는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자 ‘수백 장의 사진’을 알리바이로 내세웠다. 지지자들은 이 고발이 준비된 공작이라며 공격했다. 알리바이가 눈속임으로 드러나자 “‘뽀뽀미수’일 뿐”이라는 두둔이 이어졌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위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비서로서 비서의 업무를 한 것이 의심의 증거가 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입수된 자료가 무차별적으로 SNS와 언론 상에 유포되었다. 피해자는 ‘유혹하는’, ‘불륜하는’ 여성으로 비난받았고 가해자의 배우자가 ‘진짜 피해자’가 되었다.

 


서로 다른 증거 사이에서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문제


‘진짜 미투’, ‘가짜 미투’를 선별하는 이 촌극이, 우리사회가 증거를 토대로 진위를 판단할 능력이 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2017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 학살현장 영상 등 방대한 자료들이 공개되었다. 문서, 사진, 증언이 아닌 ‘영상’을 찾았다는 언론의 환호 앞에서 조금 아연해진다. 여태까지의 증거는 일본군의 강제연행과 성노예제를 증명하기에 ‘좀 부족해서’ 부정론자들에 의해 공격받았던 것인가? 중요한 것은 ‘증거’를 해석하는 시선이다.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는 CCTV 영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리고 피해의 증거를 찾았다는 데에서 그치면 인권유린의 현실 속에서도 ‘평범했던’ 일상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위력이 있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머뭇거림으로 저항했다고 할 때, 사건 며칠 뒤 SNS에 웃는 사진을 올렸을 때, 성애적인 컨텐츠를 만드는 피해자가 ‘스승님’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할 때, ‘원로’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원로의 전시에 가서 인사를 나눴을 때,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성구매자에 의한 성폭력을 고소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피해자의 맥락을 상상할 수 있는 공동체란 피해자가 ‘복구불가능하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여서가 아니라 ‘폭력 이후에도 살아왔으며 살아가야 할 인간’으로서 필요하다. 2018년 겨울의 청계광장에서처럼,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듣지 않으려는 의지’에 맞서기 위해 ‘말하기’


지난 1년 간 여러 판결과 담론들을 통해 ‘성적자기결정권’, ‘성인지 감수성’, ‘동의’ 등 다양한 반성폭력 운동의 언어들이 조명되었다. 물론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는 “감성으로 재판하냐”고, ‘비동의 간음’에 대해서는 “성관계 전에 녹음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답지 않다’며 의혹을 만드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가해자가 더 이상 옹호자들의 뒤로 숨지 않고, 쉽게 면죄받거나 두둔받지 않기 위한 조건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남성중심적 성문화가 기본값인 사회에서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공동체’ 되기는 쉽지 않다. 듣지 않으려는 의지에 맞서는 방법은 항상,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풍부하게 말하는 방법뿐이었던 것 같다.


 올해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019 함께 만드는 성폭력 사전(이하 〈사전〉)〉을 만들 계획이다. 성관계 전에 “응”이라는 대답이 녹음되었다는 것만으로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어떤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구하며, ‘동의’를 하는가. ‘미투’를 거치며 널리 알려진 언어들이, 단지 ‘개념어’가 아니라 여성들이 살고 있는 입체적인 현실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단어 하나로 요약되지 않는 풍부한 경험과 고민을 〈사전〉에 채우고, 또 들리게 하려고 한다. 닫힌 귀를 여는 말들이 모여, 증언 ‘이후’를 살게 하기를 기대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많은 참여와 관심 보여주시기를!

 

 


1) 도미야마 이치로, 「증언 ‘이후’–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이미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 여성, 폭력: 일본군 ‘위안부’를 트랜스내셔널하게 기억하기』,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연구소, 2019
2) 한국리서치 2019년 2월 정기조사, ‘미투(Me Too) 1년, 대통령 국정평가, 국정방향 공감, 인덱스(경제/안보/삶)’,bitly.kr/X3Z95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각각의 글(텍스트)로 연결됩니다 

 

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민우ing

 

싸우는 우리가 이뤄가는 것들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일고민상담실에 들어오는 달라진 질문들


모두에게 1인분의 삶을


김기덕이 민우회를 고소했다


가해자는 숨지 말고 링 위로 올라올 것, 추종자들은 들을 것


세상이 페미니스트인 당신을 외롭게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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