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을 먹이고 불법촬영되는 몸
뇌물이 되는 몸
전시되고 평가되는 몸
여성의 몸에 대한 성적 착취는
도처에서 벌어져왔다.
버닝썬 사건, 김학의 사건, ‘고 장자연’ 사건
그리고 단톡방 집단 성희롱 사건들은 모두
오래된 강간문화가 만든 범죄다.
기획
그것을 ‘강간문화’로 부른다는 것은
호연(강호연) | 여는 민우회 소식지 편집팀
몸에 근육을 키워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러두기
· 인용된 문장은 〈내가 목격한 강간문화를 말해주세요–내가 직접 겪은 강간문화의 말/장면〉 온라인 설문 응답자의 이야기를 발췌·편집하였습니다.
•
강간문화라는 용어는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강간의 경험을 사회에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강간이 ‘사회 현실(Public Reality)’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1)70년대까지 많은 미국인들은 강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겼다.2)여성들은 강간에 대해 알리고, 그것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화의 문제임을 알려나가면서 인식과 법 제도도 바꾸어 갔다.
“취하게 하고 한번 자면 돼”, “야 여자가 같이 술 마시고 슬쩍 기대면 섹스하고 싶단 거야”, “여자가 술 먹고 뻗어있는데 어떻게 손을 안대냐”, “여자는 밤에 일찍 들어가야 된다” –익명
“나도 젊을 때 순진한 여자 확 납치해서 결혼했어야 했는데”, 회사 점심시간에 한 남직원이 말했다. –은
구 남친이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다”라고 ‘장난’하듯 말했다. 그리고 강간 상상을 하며 자위를 한다고 했다. –정재희
“여자는 과일이라 따먹어야 한다”라고 학교 선생이 남학생들한테 말했다. –익명
마주앉아 술 한두 잔 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서 토한 뒤 다음 날 아침까지 필름이 끊겼던 일. –별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중년 남성 배우가 자기를 또 불러달라며 농담조로 “중간에 강간 씬도 하나 넣고~”라고 했다. 농담일 뿐이라며 ‘하하호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익명
이 모든 장면들은 ‘성폭행과 성적 괴롭힘이 용인되고 정당화되는, 불가피하고 언제든 예상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를 말하는 강간문화3)의 정형들이다. 강간문화는 강간을 자연스럽고, 보통의 성적인 관계로 여기도록 독려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남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긴다.4)또한 강간문화는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 또는 강간이 만연한 환경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5)
여자가 ‘안 돼요’ 하는 거는 ‘돼요’라는 뜻이라며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들의 대화. –익명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가 갑자기 키스하거나 우악스럽게 잡아서 안거나 하는 등의 장면. –익명
매체에서 강간처럼 보이는 섹스 씬을 격렬한 사랑 나눔처럼 묘사하는 것. –익명
일상의 문화는 주고받는 말과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SNS 단체대화방(이하 단톡방)에서 벌어진 최근의 사건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내 미투운동이 1년이 되던 2019년 1월, 가수 승리가 성매매를 알선한 것이 단톡방 대화를 통해 드러나며 ‘버닝썬 게이트’가 열렸다. 그 단톡방에서 불법촬영물 공유와 약물강간 등의 정황도 발견됐다. 성매매, 강간, 불법촬영은 그들의 ‘일상놀이’처럼 희희덕대며 얘기됐다. “승리가 죄라면 대한민국 남자는 다 죄인”. 두 달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럽 버닝썬 대표가 했던 말이다. 버닝썬 MD로 불리는 영업직원들이 강간에 사용된 약물(GHB, 중추신경억제제)을 유통하고 투약한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던 때였다. 포털사이트 지식질문에는 ‘정준영은 그렇다 쳐도 승리, 용준형은 왜 욕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성매매 알선6)과 불법촬영물을 보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닌데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노의 질문이었다. 그 가운데 ‘정준영동영상’은 며칠간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2019년 3월 29일자로 등록된 포털사이트 지식 질문
2019년 3월, 수년간 한 교육대학교 남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남자 대면식’ 행사에서 여자 후배들의 얼굴과 나이 등 개인정보를 정리한 책자를 돌려보며 집단 성희롱을 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해당 구성원들의 단톡방이 공개되었고, 그 중 졸업생인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겉모습 중3인 초5 여자애”, “따로 챙겨먹어요. 이쁜애는” 등의 발언을 한 게 알려지며 관할
교육청이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7)또 다른 교육대학교에서도 남학생 단톡방 집단 성희롱 문제가 드러났고, 여자 신입생이 남학생의 손에 입을 맞추도록 강요한 신입생 환영회, 남학생에 의한 여자 화장실 불법촬영 사건이 연이어 알려지며 교육부가 전국 10개 교육대학교에 대해 특별 전수조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뒤 4월, 이번에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클럽 버닝썬에서 촬영된 불법촬영물 등 유출영상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화창에는 ‘(영상을) 구해주세요’, ‘형들 나누셔야 합니다’, ‘유출영상이 궁금하다ㅋㅋ’와 같은 말들이 올라왔다. 연초부터 단톡방에서의 범죄행위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었지만 기자들은 그것을 보도하면서 입수한 범죄의 증거물을 서로 돌려보며 유희로 소비한 것이다.
‘기자 단톡방’ 화면 캡처
오랜 반성폭력운동을 통해, 한국 형법에서 성범죄를 규정한 장의 제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뀐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여성이 ‘정조’를 잃은 것으로 불리던 폭력을 ‘강간’으로 명명하기 시작한 역사는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남성들의 소소한 언어적 성적 희롱까지 법적 제재가 가능하도록 문제시하기 위해 ‘성희롱’이라는 언어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8)이렇게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은 여성운동의 중요한 전략이자 운동의 방식이다.
강간문화가 너무 ‘과한’ 언어가 아니냐는 얘기가 흔치 않게 들려온다. 그런 문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순간 목격하고 있는 이 현실은 무엇인가. 온라인 단톡방에서부터 일상을 영위하는 일터, 지하철, 화장실에서도 여성들이 성적 대상화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이 현실이, 바로 강간문화이다. 우리는 이것이 강간문화의 문제임을,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하며 강간문화를 부수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 Alexandra Rutherford,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Putting Rape Research in Context”, SAGE Journals, 2011.6.1.
2) Flora Davis, 『Moving the Mountain: The Women's Movement in America Since 1960』, 1992
3) Alexa Dodge, 2016
4) Dianne F. Herman, 『The Rape Culture』, McGraw Hill, 1994
5) Rebecca Solnit, 『Men Explain Things to Me』, Haymarket Books, 2014
6) 이후 직접 성매매를 한 혐의도 추가되었다.
7) 강동웅, “‘서울교대 단톡방 성희롱’ 현직교사도 조사”, 동아일보, 2019.5.13.
8) 한희정, "성희롱이란 말이 처음 어떻게 쓰였는지 아시나요", 미디어오늘, 2018.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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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기획
그것을 '강간문화'로 부른다는 것은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쉽고, 빠르게 복귀하는 그들
오래된 유착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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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을 먹이고 불법촬영되는 몸
뇌물이 되는 몸
전시되고 평가되는 몸
여성의 몸에 대한 성적 착취는
도처에서 벌어져왔다.
버닝썬 사건, 김학의 사건, ‘고 장자연’ 사건
그리고 단톡방 집단 성희롱 사건들은 모두
오래된 강간문화가 만든 범죄다.
기획
그것을 ‘강간문화’로 부른다는 것은
호연(강호연) | 여는 민우회 소식지 편집팀
몸에 근육을 키워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러두기
· 인용된 문장은 〈내가 목격한 강간문화를 말해주세요–내가 직접 겪은 강간문화의 말/장면〉 온라인 설문 응답자의 이야기를 발췌·편집하였습니다.
•
강간문화라는 용어는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강간의 경험을 사회에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강간이 ‘사회 현실(Public Reality)’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1)70년대까지 많은 미국인들은 강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겼다.2)여성들은 강간에 대해 알리고, 그것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화의 문제임을 알려나가면서 인식과 법 제도도 바꾸어 갔다.
“취하게 하고 한번 자면 돼”, “야 여자가 같이 술 마시고 슬쩍 기대면 섹스하고 싶단 거야”, “여자가 술 먹고 뻗어있는데 어떻게 손을 안대냐”, “여자는 밤에 일찍 들어가야 된다” –익명
“나도 젊을 때 순진한 여자 확 납치해서 결혼했어야 했는데”, 회사 점심시간에 한 남직원이 말했다. –은
구 남친이 “나는 강간판타지가 있다”라고 ‘장난’하듯 말했다. 그리고 강간 상상을 하며 자위를 한다고 했다. –정재희
“여자는 과일이라 따먹어야 한다”라고 학교 선생이 남학생들한테 말했다. –익명
마주앉아 술 한두 잔 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서 토한 뒤 다음 날 아침까지 필름이 끊겼던 일. –별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중년 남성 배우가 자기를 또 불러달라며 농담조로 “중간에 강간 씬도 하나 넣고~”라고 했다. 농담일 뿐이라며 ‘하하호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익명
이 모든 장면들은 ‘성폭행과 성적 괴롭힘이 용인되고 정당화되는, 불가피하고 언제든 예상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를 말하는 강간문화3)의 정형들이다. 강간문화는 강간을 자연스럽고, 보통의 성적인 관계로 여기도록 독려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남성’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여긴다.4)또한 강간문화는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 또는 강간이 만연한 환경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5)
여자가 ‘안 돼요’ 하는 거는 ‘돼요’라는 뜻이라며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남자들의 대화. –익명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가 갑자기 키스하거나 우악스럽게 잡아서 안거나 하는 등의 장면. –익명
매체에서 강간처럼 보이는 섹스 씬을 격렬한 사랑 나눔처럼 묘사하는 것. –익명
일상의 문화는 주고받는 말과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SNS 단체대화방(이하 단톡방)에서 벌어진 최근의 사건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내 미투운동이 1년이 되던 2019년 1월, 가수 승리가 성매매를 알선한 것이 단톡방 대화를 통해 드러나며 ‘버닝썬 게이트’가 열렸다. 그 단톡방에서 불법촬영물 공유와 약물강간 등의 정황도 발견됐다. 성매매, 강간, 불법촬영은 그들의 ‘일상놀이’처럼 희희덕대며 얘기됐다. “승리가 죄라면 대한민국 남자는 다 죄인”. 두 달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럽 버닝썬 대표가 했던 말이다. 버닝썬 MD로 불리는 영업직원들이 강간에 사용된 약물(GHB, 중추신경억제제)을 유통하고 투약한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던 때였다. 포털사이트 지식질문에는 ‘정준영은 그렇다 쳐도 승리, 용준형은 왜 욕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성매매 알선6)과 불법촬영물을 보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닌데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노의 질문이었다. 그 가운데 ‘정준영동영상’은 며칠간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2019년 3월 29일자로 등록된 포털사이트 지식 질문
2019년 3월, 수년간 한 교육대학교 남자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남자 대면식’ 행사에서 여자 후배들의 얼굴과 나이 등 개인정보를 정리한 책자를 돌려보며 집단 성희롱을 해온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해당 구성원들의 단톡방이 공개되었고, 그 중 졸업생인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겉모습 중3인 초5 여자애”, “따로 챙겨먹어요. 이쁜애는” 등의 발언을 한 게 알려지며 관할
교육청이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7)또 다른 교육대학교에서도 남학생 단톡방 집단 성희롱 문제가 드러났고, 여자 신입생이 남학생의 손에 입을 맞추도록 강요한 신입생 환영회, 남학생에 의한 여자 화장실 불법촬영 사건이 연이어 알려지며 교육부가 전국 10개 교육대학교에 대해 특별 전수조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뒤 4월, 이번에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클럽 버닝썬에서 촬영된 불법촬영물 등 유출영상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화창에는 ‘(영상을) 구해주세요’, ‘형들 나누셔야 합니다’, ‘유출영상이 궁금하다ㅋㅋ’와 같은 말들이 올라왔다. 연초부터 단톡방에서의 범죄행위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었지만 기자들은 그것을 보도하면서 입수한 범죄의 증거물을 서로 돌려보며 유희로 소비한 것이다.
‘기자 단톡방’ 화면 캡처
오랜 반성폭력운동을 통해, 한국 형법에서 성범죄를 규정한 장의 제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뀐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여성이 ‘정조’를 잃은 것으로 불리던 폭력을 ‘강간’으로 명명하기 시작한 역사는 채 30년이 되지 않는다. 남성들의 소소한 언어적 성적 희롱까지 법적 제재가 가능하도록 문제시하기 위해 ‘성희롱’이라는 언어를 만들고 정착시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8)이렇게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은 여성운동의 중요한 전략이자 운동의 방식이다.
강간문화가 너무 ‘과한’ 언어가 아니냐는 얘기가 흔치 않게 들려온다. 그런 문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순간 목격하고 있는 이 현실은 무엇인가. 온라인 단톡방에서부터 일상을 영위하는 일터, 지하철, 화장실에서도 여성들이 성적 대상화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이 현실이, 바로 강간문화이다. 우리는 이것이 강간문화의 문제임을, 끊임없이 말하고 또 말하며 강간문화를 부수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 Alexandra Rutherford,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Putting Rape Research in Context”, SAGE Journals, 2011.6.1.
2) Flora Davis, 『Moving the Mountain: The Women's Movement in America Since 1960』, 1992
3) Alexa Dodge, 2016
4) Dianne F. Herman, 『The Rape Culture』, McGraw Hill, 1994
5) Rebecca Solnit, 『Men Explain Things to Me』, Haymarket Books, 2014
6) 이후 직접 성매매를 한 혐의도 추가되었다.
7) 강동웅, “‘서울교대 단톡방 성희롱’ 현직교사도 조사”, 동아일보, 2019.5.13.
8) 한희정, "성희롱이란 말이 처음 어떻게 쓰였는지 아시나요", 미디어오늘, 2018.2.10.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각각의 글(텍스트)로 연결됩니다
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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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강간문화'로 부른다는 것은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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