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쉽고, 빠르게 복귀하는 그들
황효진 | 칼럼니스트, 전 〈ize〉 기자
엔터테인먼트를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 칼럼니스트
트위터에서 유명한 ‘짤’이 한 장 있다. ‘박나래의 극한직업’이라는 캡션이 붙어있는 이 이미지는 tvN 〈짠내투어〉 출연진들을 찍은 것으로, 박나래와 박명수, 김생민, 정준영, 마이크로닷이 함께 있다. 박나래와 박명수를 제외한 셋은 모두 방송에서 말 그대로 잘렸고, 그중 김생민과 정준영은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다. 성범죄를 저지른 출연자들이 줄줄이 하차하는 바람에 〈짠내투어〉 제작진이 애꿎은 피해를 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범죄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도 제작진에게 일말의 책임조차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특히 정준영은 버닝썬 게이트와 함께 단톡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 이미 2016년 한 차례 불법 촬영 건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저지른 범죄에 비해 그는 방송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복귀했으며, 그의 복귀를 도운 것은 성범죄 사실을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는 방송 관계자들이었다.
성범죄자 남성을 쉽게 복귀시키는 미디어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어땠나? 정준영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을 때, ‘1박 2일’ 제작진은 ‘너의 손길이 그립다’, ‘그 누구보다 내가 사랑한다 그 동생’ 등 정준영을 그리워하는 듯한 나머지 멤버들의 모습과 발언, 자막을 꾸준히 내보냈다. 정준영과 관련된 입장을 밝힐 때는 꾸준히 하차가 아닌 ‘휴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정준영은 불법 촬영으로 고소당한 지 약 두 달 만에 거의 환대를 받으며 ‘1박 2일’에 복귀할 수 있었다. 방송은 대체로 남성들의 범죄에 관대하지만, 그것이 성범죄일 때는 더욱더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2001년 미성년자 여성에게 “제작 중인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바 있는 이경영은 수많은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SBS 〈해치〉로 공중파에도 컴백했다. 폭행과 협박에 의한 성범죄를 저질러 고소당했던 이진욱은 SBS 〈리턴〉과 OCN 〈보이스 시즌 2〉에 이어 〈보이스 시즌 3〉에도 출연하게 되었으며, 2013년 연예인 지망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박시후는 KBS 〈황금빛 내 인생〉에 출연하며 시청률 상승의 가장 큰 요인으로 주목받은 후 같은 방송사의 〈러블리 호러블리〉, TV 조선 〈바벨〉 등에 꾸준히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미디어는 이들이 무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출연을 제지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듯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성범죄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무혐의이기 때문에 캐스팅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산업 관계자들의 게으른 핑계에 불과하다.
KBS 〈1박2일〉 정준영 복귀 방송화면
박시후 주연의 KBS 〈러블리 호러블리〉 드라마 포스터
남성 중심 미디어 산업의 무감함
유명 연예인의 성범죄 사실이 알려졌을 때 피해 여성은 목적이 있어서 그에게 접근한 ‘꽃뱀’으로 불린다. 산업 관계자들은 정확한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하게 두고 봐야 한다는 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고수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JTBC 〈아는 형님〉에 출연 중인 이수근이나 군 제대 후 콘서트까지 성대하게 치른 박유천1), 신곡을 낼 때마다 음원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이수 등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 연예인들은 모두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와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간다. 결국 성범죄자가 이토록 쉽게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성범죄가 한 남성에게 큰 오점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더해, 성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출연자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들의 무감함 때문이다. 승리의 ‘승츠비’ 캐릭터를 가벼운 웃음거리로 소비했던 MBC 〈라디오스타〉나 그를 유능한 젊은 사업가로 포장해준 〈나 혼자 산다〉, 〈아는 형님〉을 비롯해 남성 연예인들의 ‘야동’ 관련 발언을 평범한 우스갯소리로 포장해온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한류가 타격을 입을까 노심초사하던 몇몇 언론들이 남성들의 성범죄를 중대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게끔 만든다.
버닝썬 게이트 이후, 미디어 산업은 변화할 수 있을까? 성범죄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여성들의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하라는 여성 시청자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을까?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기는커녕 현재의 사태에 자신들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럴수록 여성들은 계속해서 요구하고 또 요구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깨지지 않은 남성 중심의 미디어 산업을 바꿔야 한다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1) 박유천은 2019년 2월 앨범을 발매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콘서트를 했다. 현재는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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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기획
그것을 '강간문화'로 부른다는 것은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쉽고, 빠르게 복귀하는 그들
오래된 유착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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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쉽고, 빠르게 복귀하는 그들
황효진 | 칼럼니스트, 전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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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유명한 ‘짤’이 한 장 있다. ‘박나래의 극한직업’이라는 캡션이 붙어있는 이 이미지는 tvN 〈짠내투어〉 출연진들을 찍은 것으로, 박나래와 박명수, 김생민, 정준영, 마이크로닷이 함께 있다. 박나래와 박명수를 제외한 셋은 모두 방송에서 말 그대로 잘렸고, 그중 김생민과 정준영은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다. 성범죄를 저지른 출연자들이 줄줄이 하차하는 바람에 〈짠내투어〉 제작진이 애꿎은 피해를 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범죄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도 제작진에게 일말의 책임조차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특히 정준영은 버닝썬 게이트와 함께 단톡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 이미 2016년 한 차례 불법 촬영 건으로 고소당한 바 있다. 저지른 범죄에 비해 그는 방송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복귀했으며, 그의 복귀를 도운 것은 성범죄 사실을 별거 아닌 것으로 여기는 방송 관계자들이었다.
성범죄자 남성을 쉽게 복귀시키는 미디어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어땠나? 정준영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을 때, ‘1박 2일’ 제작진은 ‘너의 손길이 그립다’, ‘그 누구보다 내가 사랑한다 그 동생’ 등 정준영을 그리워하는 듯한 나머지 멤버들의 모습과 발언, 자막을 꾸준히 내보냈다. 정준영과 관련된 입장을 밝힐 때는 꾸준히 하차가 아닌 ‘휴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정준영은 불법 촬영으로 고소당한 지 약 두 달 만에 거의 환대를 받으며 ‘1박 2일’에 복귀할 수 있었다. 방송은 대체로 남성들의 범죄에 관대하지만, 그것이 성범죄일 때는 더욱더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2001년 미성년자 여성에게 “제작 중인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바 있는 이경영은 수많은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SBS 〈해치〉로 공중파에도 컴백했다. 폭행과 협박에 의한 성범죄를 저질러 고소당했던 이진욱은 SBS 〈리턴〉과 OCN 〈보이스 시즌 2〉에 이어 〈보이스 시즌 3〉에도 출연하게 되었으며, 2013년 연예인 지망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박시후는 KBS 〈황금빛 내 인생〉에 출연하며 시청률 상승의 가장 큰 요인으로 주목받은 후 같은 방송사의 〈러블리 호러블리〉, TV 조선 〈바벨〉 등에 꾸준히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미디어는 이들이 무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출연을 제지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듯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성범죄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면 ‘무혐의이기 때문에 캐스팅해도 상관없다’는 말은 산업 관계자들의 게으른 핑계에 불과하다.
KBS 〈1박2일〉 정준영 복귀 방송화면
박시후 주연의 KBS 〈러블리 호러블리〉 드라마 포스터
남성 중심 미디어 산업의 무감함
유명 연예인의 성범죄 사실이 알려졌을 때 피해 여성은 목적이 있어서 그에게 접근한 ‘꽃뱀’으로 불린다. 산업 관계자들은 정확한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하게 두고 봐야 한다는 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고수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JTBC 〈아는 형님〉에 출연 중인 이수근이나 군 제대 후 콘서트까지 성대하게 치른 박유천1), 신곡을 낼 때마다 음원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이수 등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 연예인들은 모두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와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간다. 결국 성범죄자가 이토록 쉽게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성범죄가 한 남성에게 큰 오점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더해, 성범죄로 이어지기 쉬운 출연자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들의 무감함 때문이다. 승리의 ‘승츠비’ 캐릭터를 가벼운 웃음거리로 소비했던 MBC 〈라디오스타〉나 그를 유능한 젊은 사업가로 포장해준 〈나 혼자 산다〉, 〈아는 형님〉을 비롯해 남성 연예인들의 ‘야동’ 관련 발언을 평범한 우스갯소리로 포장해온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자마자 한류가 타격을 입을까 노심초사하던 몇몇 언론들이 남성들의 성범죄를 중대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게끔 만든다.
버닝썬 게이트 이후, 미디어 산업은 변화할 수 있을까? 성범죄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여성들의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하라는 여성 시청자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을까?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기는커녕 현재의 사태에 자신들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럴수록 여성들은 계속해서 요구하고 또 요구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깨지지 않은 남성 중심의 미디어 산업을 바꿔야 한다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1) 박유천은 2019년 2월 앨범을 발매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콘서트를 했다. 현재는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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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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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강간문화'로 부른다는 것은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쉽고, 빠르게 복귀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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