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다이어리
숨을 비워내니 눈물이 났다
꼬깜(김희영) |여는 민우회 액션회원팀
회원슨생님들 온라인 회원공간 안오신지 오래됐쥬? 로그인 커먼 커먼.
작년, 안식년을 보냈다
가끔 내 심장은 거침없이 뛰곤 했다. 뛰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심장이 뛰면 마음도 줄곧 불안해졌다. 뛰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숨이 막혔다. 사실 10여 년 전 부터 공황이 의심되는 상황이 있었으나 그냥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 처음엔 부정맥인줄 알았고 그 다음은 단순 스트레스인줄 알았으며 그 다음은 회피했다. 스스로도 꾀병인가 싶을 정도로 증상이 왔다 갔다 했다. 이젠 안 되겠다 싶었을 때 정신과를 찾았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어릴 때 넘어지고는 못 울다가 집에 돌아와서 누가 알아주면 눈물 나는 것처럼 안심되는 마음도 있었고, 왜 이토록 오래 걸려 돌아 왔을까 한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안식년에 들어갔다. 1년 동안 뭐하며 놀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요가, 일본어 배우기가 다였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느리게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하고 최초로 청국장이며 각종 찌개를 끓여보기도 했다. 처음 식물을 키워봤는데, 유우키(일본어로 '용기'라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동네의 복지관에서 요가를 배웠다. 사바 아사나(송장자세) 동작으로 마무리를 하곤 했는데 말 그대로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이다. 그 잠깐의 순간에도 잡생각은 끊임없었다. 오늘 먹을 점심, 해야 할 것들, 어제 생긴 고민, 과거로, 또 과거로 가는 잡념들… 요가 선생님은 잡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을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바로 알아채면 된다고 했다. 이 시간만큼은 고요하게 자신 안에 있으라는말을 들을 때면 이상하게 또 눈물이 났다. 비워질 때 나는 눈물은 슬펐지만 따뜻했다. 안식년은 민우회 활동의 안식년이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안식년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으로 텅 빈 1년을 가졌다. 언제나 할 수 없던 것을 찾아다녔고, 그건 결국 일상 안에 있었다.
무리하지 말 것. 숨을 쉴 것
안식년을 보낼 때 아주 멋진 여성들을 만났다. 공황으로 뛰는 심장을 느낄 때 ‘왜 내 몸을 내가 조절할 수 없을까’ 하는 불안은 종종 극단적인 상상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것을 ‘재앙적 사고’라고 알려줬다. 원인과 이름을 알지 못했던 증상과 상황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자, 주마등처럼 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마치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희영씨, 사람은 살아있어서 심장이 뛰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해줬다. 그걸 몰라서 생긴 병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해주는 말은, 힘이 있었다. 마음의 담임선생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요가는 운동보다 명상을 위한 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흡에 의미가 있다고 알려주는 선생님에게는 요가만큼이나 삶의 자세를 배웠다. “절대 남을 보고 무리하지 말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것, 계속 숨을 쉴 것.” 선생님의 말과 목소리와 요가동작은 어찌나 멋진지 참다 참다 “선생님 진짜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분은 처음 듣는 얘기처럼 쑥스러워했다. 여성들은 가끔 자신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까먹곤 한다.
아까 말했던 그 유우키라는 식물은 이제 죽었다. 그 친구와 가족사진도 찍었는데 말이다. 1년 만에 죽다니. 혹시나 싶어 엄마에게 “1년만 사는 식물도 있지?”라며 닫힌 질문을 했는데 엄마는 1초 만에 “그 큰 게 그럴 리가 있냐”며 쿨 하게 답했다. 내가 죽인 걸까, 자책감에 펑펑 울며 화분에서 뽑아 보내줬다. 이름 붙여준 모든 것들은 결국 나를 슬프게 했다. 그래서 이제 식물을 안 키워야지 하는 결론은 뭔가 부족하고 억울해서 장날 시장에서 다른 식물을 만났고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름을 지어주진 않는다. 대신 그 식물을 잘 이해하는 게 어쩌면 이름을 붙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앞으로도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겠지. 끝은 없다.
회원 혜영이 찍어준 가족사진, 유우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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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7호)
‘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모람활짝
나는 민우회원모임 OOO을 원한다!
회원 이야기
빻은 뮤지컬계 속 페미니스트를 위한 안내서
민우칼럼
중요한 건, 완전한 정답은 없다는 것 – 민우회 특별휴가 개정에 부쳐
활동가다이어리
숨을 비워내니 눈물이 났다
아홉개의 시선
#페미니스트동네친구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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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다이어리
숨을 비워내니 눈물이 났다
꼬깜(김희영) |여는 민우회 액션회원팀
회원슨생님들 온라인 회원공간 안오신지 오래됐쥬? 로그인 커먼 커먼.
작년, 안식년을 보냈다
가끔 내 심장은 거침없이 뛰곤 했다. 뛰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심장이 뛰면 마음도 줄곧 불안해졌다. 뛰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숨이 막혔다. 사실 10여 년 전 부터 공황이 의심되는 상황이 있었으나 그냥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 처음엔 부정맥인줄 알았고 그 다음은 단순 스트레스인줄 알았으며 그 다음은 회피했다. 스스로도 꾀병인가 싶을 정도로 증상이 왔다 갔다 했다. 이젠 안 되겠다 싶었을 때 정신과를 찾았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어릴 때 넘어지고는 못 울다가 집에 돌아와서 누가 알아주면 눈물 나는 것처럼 안심되는 마음도 있었고, 왜 이토록 오래 걸려 돌아 왔을까 한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안식년에 들어갔다. 1년 동안 뭐하며 놀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요가, 일본어 배우기가 다였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느리게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하고 최초로 청국장이며 각종 찌개를 끓여보기도 했다. 처음 식물을 키워봤는데, 유우키(일본어로 '용기'라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동네의 복지관에서 요가를 배웠다. 사바 아사나(송장자세) 동작으로 마무리를 하곤 했는데 말 그대로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이다. 그 잠깐의 순간에도 잡생각은 끊임없었다. 오늘 먹을 점심, 해야 할 것들, 어제 생긴 고민, 과거로, 또 과거로 가는 잡념들… 요가 선생님은 잡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을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바로 알아채면 된다고 했다. 이 시간만큼은 고요하게 자신 안에 있으라는말을 들을 때면 이상하게 또 눈물이 났다. 비워질 때 나는 눈물은 슬펐지만 따뜻했다. 안식년은 민우회 활동의 안식년이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안식년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으로 텅 빈 1년을 가졌다. 언제나 할 수 없던 것을 찾아다녔고, 그건 결국 일상 안에 있었다.
무리하지 말 것. 숨을 쉴 것
안식년을 보낼 때 아주 멋진 여성들을 만났다. 공황으로 뛰는 심장을 느낄 때 ‘왜 내 몸을 내가 조절할 수 없을까’ 하는 불안은 종종 극단적인 상상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것을 ‘재앙적 사고’라고 알려줬다. 원인과 이름을 알지 못했던 증상과 상황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자, 주마등처럼 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마치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희영씨, 사람은 살아있어서 심장이 뛰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해줬다. 그걸 몰라서 생긴 병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해주는 말은, 힘이 있었다. 마음의 담임선생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요가는 운동보다 명상을 위한 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흡에 의미가 있다고 알려주는 선생님에게는 요가만큼이나 삶의 자세를 배웠다. “절대 남을 보고 무리하지 말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것, 계속 숨을 쉴 것.” 선생님의 말과 목소리와 요가동작은 어찌나 멋진지 참다 참다 “선생님 진짜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분은 처음 듣는 얘기처럼 쑥스러워했다. 여성들은 가끔 자신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까먹곤 한다.
아까 말했던 그 유우키라는 식물은 이제 죽었다. 그 친구와 가족사진도 찍었는데 말이다. 1년 만에 죽다니. 혹시나 싶어 엄마에게 “1년만 사는 식물도 있지?”라며 닫힌 질문을 했는데 엄마는 1초 만에 “그 큰 게 그럴 리가 있냐”며 쿨 하게 답했다. 내가 죽인 걸까, 자책감에 펑펑 울며 화분에서 뽑아 보내줬다. 이름 붙여준 모든 것들은 결국 나를 슬프게 했다. 그래서 이제 식물을 안 키워야지 하는 결론은 뭔가 부족하고 억울해서 장날 시장에서 다른 식물을 만났고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름을 지어주진 않는다. 대신 그 식물을 잘 이해하는 게 어쩌면 이름을 붙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았다. 앞으로도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겠지. 끝은 없다.
회원 혜영이 찍어준 가족사진, 유우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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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문화’에 대한 무지도 부정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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