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트랜스젠더에 대한 두 가지 오해와 편견
2020년은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이슈가 가장 드러난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당한 고(故)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트랜스젠더 여성 A씨,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군인도 대학생도 될 수 없었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국가기관에서 성소수자 전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만 집중해서 진행한 최초의 실태조사였다. 연구 결과, 트랜스젠더는 학교나 직장,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같은 공공시설, 군대와 같은 국가기관, 그리고 언론을 포함한 미디어 등 삶의 전반에서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고 있었다.
트랜스젠더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젠더 이분법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젠더는 (그 무한한 다양성이 배제된 채) 남성 또는 여성으로만 구분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 두 가지는 성별화된 신체 특징과 함께 정의된다. 〈트랜스젠더의 역사(수잔 스트라이커, 2017)〉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는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과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에게만 특권을 부여한다. 그리고 시스젠더의 정체성, 출생 시의 지정성별과 부합하는 성별 표현만을 규범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혹은 타인으로부터) 경험하는 혐오와 차별은 시스젠더만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이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생소함과 무관심 그리고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설명: 3월 15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오랜 기간 ‘정신 질환’으로 잘못 분류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트랜스젠더 정체성 그 자체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별정체성 중 하나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국제 질병 분류 개정판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된 항목들(‘성주체성장애’와 ‘성전환증’)을 삭제했다. 이와 더불어, 세계보건기구는 개정판 내 ‘성별불일치’라는 항목을 ‘성적 건강과 관련된 상태’라는 범주 내에 새로 만들었는데, 이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필요로 하는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 등과 같은 의료적 조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남겨둔 것이다.
해외에서 진행된 많은 연구들은 트랜스젠더 정체성 그 자체가 정신 질환이 아니라,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차별과 폭력이 트랜스젠더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근거들을 발표해왔다. 여전히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정신 질환이라고 여기는 오해와 편견에 기반해 트랜스젠더가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환치료’가 행해져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전환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경우는 없으며, 오히려 전환치료를 받은 개인들은 이후 트라우마를 겪거나 우울 또는 불안 증상을 보이고,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러한 전환치료는 그 자체로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인 행위로 여겨져 많은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서 반대의 성별로 신체를 ‘바꾼’ 사람들이다?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은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서 반대의 성별로 신체를 ‘바꾼’ 사람들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많은 사람들이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이러한 의료적 조치는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과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서 겪는 성별위화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학적 요구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조치를 원하거나 받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개인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여성적’ 혹은 ‘남성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신체를 가지고 싶어 하거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트랜스젠더를 남성 또는 여성, 둘 중의 하나의 성별로 편입시키려고 한다. 일례로 국내에서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고 할 때 사전에 정신과 진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신과 진단을 받을 때에도 트랜스젠더는 ‘남자’ 혹은 ‘여자’로 자기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사회가 정해놓은 성별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거나 치마를 입고 가면 정신과 진단을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의료적 조치를 받는 트랜스젠더도 모두 같은 수준의 의료적 조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호르몬 요법은 보통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성전환 수술의 경우에는 수술 후 입원과 돌봄이 필요하고 회복을 하는 동안 자신의 커리어에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의학적 요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상황이나 조건 등에 따라 의료적 조치를 언제 어느 수준까지 받을지는 다르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관공서를 방문하거나 투표를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분증에는 성별 정보가 명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직 과정에서도 성별 정보가 포함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도 법적 성별정정은 트랜스젠더에게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기 위해서는 “성전환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성에 관한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구비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사실상 국가가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 수술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조치는 다양한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젠더 이분법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모든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없이 ‘오롯한 당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본인이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의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혜민
❚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수료
〈오롯한 당신 -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의 공저자. 우리 모두 ‘오롯한 당신’으로 살아가길 꿈꾸며 연구합니다.
[2021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트랜스젠더에 대한 두 가지 오해와 편견
2020년은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 이슈가 가장 드러난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당한 고(故)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트랜스젠더 여성 A씨, 이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군인도 대학생도 될 수 없었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국가기관에서 성소수자 전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만 집중해서 진행한 최초의 실태조사였다. 연구 결과, 트랜스젠더는 학교나 직장,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같은 공공시설, 군대와 같은 국가기관, 그리고 언론을 포함한 미디어 등 삶의 전반에서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고 있었다.
트랜스젠더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젠더 이분법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젠더는 (그 무한한 다양성이 배제된 채) 남성 또는 여성으로만 구분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 두 가지는 성별화된 신체 특징과 함께 정의된다. 〈트랜스젠더의 역사(수잔 스트라이커, 2017)〉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는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과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에게만 특권을 부여한다. 그리고 시스젠더의 정체성, 출생 시의 지정성별과 부합하는 성별 표현만을 규범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혹은 타인으로부터) 경험하는 혐오와 차별은 시스젠더만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이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생소함과 무관심 그리고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설명: 3월 15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정신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오랜 기간 ‘정신 질환’으로 잘못 분류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트랜스젠더 정체성 그 자체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별정체성 중 하나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국제 질병 분류 개정판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된 항목들(‘성주체성장애’와 ‘성전환증’)을 삭제했다. 이와 더불어, 세계보건기구는 개정판 내 ‘성별불일치’라는 항목을 ‘성적 건강과 관련된 상태’라는 범주 내에 새로 만들었는데, 이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필요로 하는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 등과 같은 의료적 조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남겨둔 것이다.
해외에서 진행된 많은 연구들은 트랜스젠더 정체성 그 자체가 정신 질환이 아니라,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차별과 폭력이 트랜스젠더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근거들을 발표해왔다. 여전히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정신 질환이라고 여기는 오해와 편견에 기반해 트랜스젠더가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환치료’가 행해져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전환치료의 효과가 입증된 경우는 없으며, 오히려 전환치료를 받은 개인들은 이후 트라우마를 겪거나 우울 또는 불안 증상을 보이고,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러한 전환치료는 그 자체로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인 행위로 여겨져 많은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서 반대의 성별로 신체를 ‘바꾼’ 사람들이다?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은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서 반대의 성별로 신체를 ‘바꾼’ 사람들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많은 사람들이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이러한 의료적 조치는 본인이 인지하는 성별과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서 겪는 성별위화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학적 요구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모든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조치를 원하거나 받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개인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여성적’ 혹은 ‘남성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신체를 가지고 싶어 하거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트랜스젠더를 남성 또는 여성, 둘 중의 하나의 성별로 편입시키려고 한다. 일례로 국내에서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고 할 때 사전에 정신과 진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신과 진단을 받을 때에도 트랜스젠더는 ‘남자’ 혹은 ‘여자’로 자기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사회가 정해놓은 성별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거나 치마를 입고 가면 정신과 진단을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의료적 조치를 받는 트랜스젠더도 모두 같은 수준의 의료적 조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호르몬 요법은 보통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성전환 수술의 경우에는 수술 후 입원과 돌봄이 필요하고 회복을 하는 동안 자신의 커리어에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의학적 요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상황이나 조건 등에 따라 의료적 조치를 언제 어느 수준까지 받을지는 다르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관공서를 방문하거나 투표를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분증에는 성별 정보가 명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직 과정에서도 성별 정보가 포함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도 법적 성별정정은 트랜스젠더에게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기 위해서는 “성전환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성에 관한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구비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사실상 국가가 트랜스젠더에게 성전환 수술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조치는 다양한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젠더 이분법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모든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없이 ‘오롯한 당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본인이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의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혜민
❚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수료
〈오롯한 당신 -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의 공저자. 우리 모두 ‘오롯한 당신’으로 살아가길 꿈꾸며 연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