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1
‘반지성’을 넘어서는 성평등의 미래를 위하여
여가부 폐지 공약은 ‘반지성주의’의 산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선거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비롯해 이른바 젠더 갈등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지만, 장관 임명과 정부 구성이 마무리 단계인 현재까지도 성평등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1)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오히려 이런 혼선이 더 커진 것 같다. 여가부 폐지 공약에 동의한다고 했다가, 다시 권한이 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신임 장관의 오락가락 행보는 지금 성평등 정책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마디로 여가부 폐지 공약이 반지성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가부 폐지 등 조직개편에 대한 논의는 정부 전환기에 이미 여러 번 논의되었다. 폐지를 주장하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부처 폐지가 가져올 공백이나 부작용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고, 과거에 비슷한 논의를 했던 자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이 해소되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식의 막연한 선언을 반복할 뿐이다. 결국 특정 집단의 정서적 반감과 불안감을 득표 전략으로 활용하는 젠더 갈라치기, 혐오의 정치, 반지성주의가 그 이면에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선 이후 여성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성평등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별 격차를 보여주는 국제지표와 다양한 통계자료, 여성가족부 예산과 조직의 한계, 다른 나라의 성평등 전담 기구 실태 등 폭넓은 자료들이 토론회나 공청회,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제시되었다. 성평등 정책이 왜 필요한지 그 ‘입증 책임’을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가 지는 것은 21세기 현대 국가의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다.
국정과제에서 지워지는 성평등
인수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새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6대 국정목표, 이를 실천하기 위한 20개의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 선정되었고, 20개의 영역별로 다시 국정과제 110개가 배치되어 있다. 정부 초기에는 희망과 이상을 담은 정책과제들이 남발되기 마련이라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두 가지 특징은 뚜렷해 보인다. 첫째, 새 정부 국정 운영의 굵직한 뼈대라 할 수 있는 6대 목표와 20개 ‘약속’에서 성별, 여성, 성평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단지 110개 세부 과제 중 단 하나 50번째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만 포함되어 있다. 그 세부 내용은 일-가정 양립지원(육아휴직 급여 적용대상 및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등)과 성별근로공시제의 단계적 도입 같은 고용(노동)부 정책이다. 이미 도입된 성별근로공시제가 얼마나 확대될지, 임금격차 같은 중요 항목이 포함될 것인지는 앞으로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지만, 110개 정책 중에 여성가족부 단독 과제는 하나도 없다. 현재 여가부가 담당하는 다양한 가족지원 정책들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48번 과제)이라는 제목 하에 가족지원과 이주민 인권보호, 동물복지 강화 등을 포함하는 여가부 ⸳ 법무부 ⸳ 농식품부의 공통과제로 편성되었다. 64번 과제인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은 범죄피해자 원스톱 지원체계와 디지털 성범죄 대응 등을 묶어 법무부 ⸳ 방통위 ⸳ 여가부의 공통과제로 제시하였다.
성주류화의 무력화가 더 큰 문제
문재인 정부 초기 2017년에 발표된 국정운영계획과 비교해 보면, 5대 국정 목표와 20개 전략으로 구성된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20대 국정 전략 중 13번째로 “노동 존중, 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가 명시되었다. 적어도 성평등이 단지 하위과제가 아니라 국정운영의 기본 전략으로 포함된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독일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는 가족정책만 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평등 사회부터 여성폭력과 인신매매 문제, 여성의 사회참여와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성평등 이슈를 전담하는 하부조직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스웨덴의 경우 고용부에 성평등국을 설치하고, 여성노동과 고용차별 뿐 아니라 성평등 정책 전반을 추진한다. 결국 관건은 성평등을 공공정책 전반의 목표이자 원칙으로 삼는가, 아니면 부분적 지엽적 과제로 끼워 넣는가의 인식 차이, 그리고 정책추진 의지의 차이다.
새 정부가 발표한 향후 5년의 국정운영 계획에서 여가부의 존재가 거의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20년간 추진해온 성주류화 정책의 기본 정신이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확산해온 성주류화의 기본 방향은 모든 공공 정책과 국정 운영계획 전반에 성평등과 젠더 관점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에서 성평등은 사라지고 하위 과제 수준에서 부분적 지엽적으로 언급되는데 그치고 있다. 세간에서 회자되는 것처럼 만약 인구가족부를 신설하여 가족정책만을 남기고 다른 여가부 정책들을 법무부, 복지부, 기재부, 인권위원회 등으로 분산시킨다면, 성주류화의 통합적 접근은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텅 빈 자유’가 외면하는 일상의 돌봄과 안전, 시민사회가 지혜 모아야
새 대통령의 취임연설에서 ‘자유’가 35회나 언급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율,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하여, 이른바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해서 성차별이 저절로 해소되거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더욱 깊어지는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크고 작은 장벽과 차별, 불공정은 ‘자유’를 외치는 것만으로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추상적 개인이 아닌 다양한 삶의 주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일하면서 돌보는 일상, 인간이 존중받고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상적 자유를 넘어서는 촘촘하고 다양한 정책 대안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성평등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짐작하기 어렵다. 6·1 지방선거의 결과나 대통령 지지율 흐름에 따라 정부조직 개편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처 폐지나 조직 개편,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등 뜨거운 쟁점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성평등 관점에서 공공 정책 전반을 점검하는 성주류화의 원칙, 이를 추진하는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세부 정책만 남고 성평등의 큰 방향이 상실되거나 무력화된다면, 시민사회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또한 정책 실패나 혼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 역사적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긴 호흡에서 반지성주의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지혜를 모으고, 세대와 지역을 가로지르는 여성들의 다양한 네트워크와 상호지원의 경험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가는 5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주1) 본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22년 5월 중순입니다.
황정미
❚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여성이 원하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성, 공공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성평등 정책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성평등 정책과 이주여성, 1인 가구(가족)를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1
‘반지성’을 넘어서는 성평등의 미래를 위하여
여가부 폐지 공약은 ‘반지성주의’의 산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선거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비롯해 이른바 젠더 갈등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지만, 장관 임명과 정부 구성이 마무리 단계인 현재까지도 성평등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1)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오히려 이런 혼선이 더 커진 것 같다. 여가부 폐지 공약에 동의한다고 했다가, 다시 권한이 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신임 장관의 오락가락 행보는 지금 성평등 정책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마디로 여가부 폐지 공약이 반지성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가부 폐지 등 조직개편에 대한 논의는 정부 전환기에 이미 여러 번 논의되었다. 폐지를 주장하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부처 폐지가 가져올 공백이나 부작용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고, 과거에 비슷한 논의를 했던 자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이 해소되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식의 막연한 선언을 반복할 뿐이다. 결국 특정 집단의 정서적 반감과 불안감을 득표 전략으로 활용하는 젠더 갈라치기, 혐오의 정치, 반지성주의가 그 이면에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선 이후 여성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성평등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별 격차를 보여주는 국제지표와 다양한 통계자료, 여성가족부 예산과 조직의 한계, 다른 나라의 성평등 전담 기구 실태 등 폭넓은 자료들이 토론회나 공청회,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제시되었다. 성평등 정책이 왜 필요한지 그 ‘입증 책임’을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가 지는 것은 21세기 현대 국가의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다.
국정과제에서 지워지는 성평등
인수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새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6대 국정목표, 이를 실천하기 위한 20개의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 선정되었고, 20개의 영역별로 다시 국정과제 110개가 배치되어 있다. 정부 초기에는 희망과 이상을 담은 정책과제들이 남발되기 마련이라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두 가지 특징은 뚜렷해 보인다. 첫째, 새 정부 국정 운영의 굵직한 뼈대라 할 수 있는 6대 목표와 20개 ‘약속’에서 성별, 여성, 성평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단지 110개 세부 과제 중 단 하나 50번째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만 포함되어 있다. 그 세부 내용은 일-가정 양립지원(육아휴직 급여 적용대상 및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등)과 성별근로공시제의 단계적 도입 같은 고용(노동)부 정책이다. 이미 도입된 성별근로공시제가 얼마나 확대될지, 임금격차 같은 중요 항목이 포함될 것인지는 앞으로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지만, 110개 정책 중에 여성가족부 단독 과제는 하나도 없다. 현재 여가부가 담당하는 다양한 가족지원 정책들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48번 과제)이라는 제목 하에 가족지원과 이주민 인권보호, 동물복지 강화 등을 포함하는 여가부 ⸳ 법무부 ⸳ 농식품부의 공통과제로 편성되었다. 64번 과제인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은 범죄피해자 원스톱 지원체계와 디지털 성범죄 대응 등을 묶어 법무부 ⸳ 방통위 ⸳ 여가부의 공통과제로 제시하였다.
성주류화의 무력화가 더 큰 문제
문재인 정부 초기 2017년에 발표된 국정운영계획과 비교해 보면, 5대 국정 목표와 20개 전략으로 구성된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20대 국정 전략 중 13번째로 “노동 존중, 성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가 명시되었다. 적어도 성평등이 단지 하위과제가 아니라 국정운영의 기본 전략으로 포함된 것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독일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는 가족정책만 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평등 사회부터 여성폭력과 인신매매 문제, 여성의 사회참여와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성평등 이슈를 전담하는 하부조직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스웨덴의 경우 고용부에 성평등국을 설치하고, 여성노동과 고용차별 뿐 아니라 성평등 정책 전반을 추진한다. 결국 관건은 성평등을 공공정책 전반의 목표이자 원칙으로 삼는가, 아니면 부분적 지엽적 과제로 끼워 넣는가의 인식 차이, 그리고 정책추진 의지의 차이다.
새 정부가 발표한 향후 5년의 국정운영 계획에서 여가부의 존재가 거의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20년간 추진해온 성주류화 정책의 기본 정신이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확산해온 성주류화의 기본 방향은 모든 공공 정책과 국정 운영계획 전반에 성평등과 젠더 관점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에서 성평등은 사라지고 하위 과제 수준에서 부분적 지엽적으로 언급되는데 그치고 있다. 세간에서 회자되는 것처럼 만약 인구가족부를 신설하여 가족정책만을 남기고 다른 여가부 정책들을 법무부, 복지부, 기재부, 인권위원회 등으로 분산시킨다면, 성주류화의 통합적 접근은 더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텅 빈 자유’가 외면하는 일상의 돌봄과 안전, 시민사회가 지혜 모아야
새 대통령의 취임연설에서 ‘자유’가 35회나 언급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율,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하여, 이른바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해서 성차별이 저절로 해소되거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더욱 깊어지는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크고 작은 장벽과 차별, 불공정은 ‘자유’를 외치는 것만으로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추상적 개인이 아닌 다양한 삶의 주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며, 일하면서 돌보는 일상, 인간이 존중받고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상적 자유를 넘어서는 촘촘하고 다양한 정책 대안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성평등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짐작하기 어렵다. 6·1 지방선거의 결과나 대통령 지지율 흐름에 따라 정부조직 개편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처 폐지나 조직 개편,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등 뜨거운 쟁점에 대한 대처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성평등 관점에서 공공 정책 전반을 점검하는 성주류화의 원칙, 이를 추진하는 컨트롤 타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세부 정책만 남고 성평등의 큰 방향이 상실되거나 무력화된다면, 시민사회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또한 정책 실패나 혼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 역사적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긴 호흡에서 반지성주의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지혜를 모으고, 세대와 지역을 가로지르는 여성들의 다양한 네트워크와 상호지원의 경험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가는 5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주1) 본 글이 쓰여진 시점은 2022년 5월 중순입니다.
황정미
❚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여성이 원하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성, 공공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성평등 정책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성평등 정책과 이주여성, 1인 가구(가족)를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