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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백래시'라는 암호문 읽어내기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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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2

‘백래시’라는 암호문 읽어내기

 

 

성평등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무고죄 처벌 강화를 약속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언론과 정치권은 20대 여성들과 20대 남성들을 대립 구도로 몰아가면서 20대 여성들을 시장의 경쟁질서를 해치는 불공정 행위자이자 ‘가짜’ 피해자로, 20대 남성들을 역차별의 ‘진짜’ 피해자이자 국가의 각별한 돌봄과 인정을 받아 마땅한 이들로 재현하고 있다. ‘구조적 불평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더불어 성평등 정책은 불필요한 젠더 갈등만 부추기는 불공정 행위로 폄하되고 있으며 여성 정책은 다시 ‘생물학적 여성’ 혹은 가임기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출산 및 인구 정책으로 회귀하려는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 대중화의 시대로 명명될만큼 빠르고 폭넓게 확산되면서 활력을 보여주었던 새로운 페미니즘의 물결과 그 주체들 또한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공격과 혐오 앞에서 위축되거나 불안감을 겪고 있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조금씩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 비난, 공격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이 변화를 우리는 아마도 ‘백래시’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운동에 대한 반대나 반발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20세기 초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매력없는 남자같은 여자’로 놀림 받거나 공격받았으며 여자답게 남기를 원하는 동시대 다수 여성들의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바꾸려든다는 비난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68세대의 급진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한 여성해방운동가들 또한 ‘자연스러운’ 이성애 질서와 가족관계를 파괴하고 여성들에게 커리어라는 잘못된 꿈을 심어주면서 여성들의 삶을 피곤하고 외롭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달리 말해 반페미니즘의 언어는 종종 파퓰리즘의 문법을 구사하는 가운데 페미니즘이 ‘보통’ 여성들의 정체성이나 이해관계를 왜곡한다고 비난하면서 성평등과 변화에 대한 ‘보통’ 여성들의 요구와 희망을 가리고 보수 정치학을 여성들의 ‘친구’로 포장한다. 

 

한편 오늘날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나 반발은 주로 신자유주의적 포스트 페미니즘 문법, 즉 성평등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으며 여성들은 더 이상 페미니즘을 필요로 하는 구조적 약자나 제도의 피해자가 아니며, ‘과도한’ 페미니즘 정책은 남성들을 역차별의 피해자로 만들거나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왜곡한다는 식의 주장들로 나타난다. 덧붙이자면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와 반발에는 또한 전통적인 가족질서와 이성애규범적 삶으로의 ‘회귀’를 요구하는 보수개신교와 가족주의 담론이 반복적으로 발견되며 성소수자와 이주민과 같은 소수자들이 조용히 침묵하며 지냈던 과거를 ‘좋은 시절’로 회상하며 ‘전통’의 회복을 호소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파퓰리즘 전략 또한 쉽게 발견된다. 한국사회의 경우 주류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보수개신교를 배경으로 삼는 종교 집단이 반페미니즘 담론을 조직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면서 한층 체계적이고 영향력 있는 백래시의 흐름이 출현하고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를 성적 혼란과 가족질서 파괴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보수개신교의 반-젠더 운동과 페미니즘을 젠더갈등과 불공정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보수정치권의 ‘20대 여성’ 담론은 동전의 양면처럼 오늘날 한국사회의 반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 이성애 가족주의와 공정 담론은 매우 다른 듯 하지만 서로 맞물리면서 보수개신교와 보수정권의 반페미니즘 연합을 만들어낸다. 

 

최근 미국에서는 Roe vs. Wade1)판결과 더불어 반세기 이상 보장되어온 임신중지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 텍사스를 비롯한 보수적인 주들을 중심으로 임신중지 권리행사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규정들이 통과되어 왔으며 ‘수잔 B. 앤서니 리스트’와 같은 임신중지 반대운동을 조직하는 보수단체의 움직임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비록 다수의 미국 시민들은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의회와 정치권에서도 프로-초이스가 여전히 우세하고 트럼프 정부에서 임용된 3명의 보수적인 대법원 판사들의 존재와 얼마 전 누출된 대법원 의견서 초안은 뜨거운 논쟁과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고 있다. 하나씩 던져진 보수 정치의 패들이 모여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고 있다. 흥미롭거나 혹은 어이없는 부분들 중의 하나는 임신 중지 권리를 제한할 것을 요구하는 보수 정치학의 수사가 여성의 선택권과 안전을 내세우고 수잔 B. 앤서니 같은 역사적 인물을 ‘프로-라이프 페미니스트’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한국사회에서 반페미니즘의 문법이 여성들을 ‘유능한’ 신자유주의적 주체들로 호명하듯 미국사회에서의 반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여성들의 선택할 자유와 능력을 강조해하면서 페미니즘을 ‘반여성적’ 정치학으로 비난해왔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백래시와 반페미니즘 담론의 부상에 대응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이중적으로 곤궁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정책이 여전히 한계적이고 보수적이라 생각하고 이를 비판하고자 하지만 언제나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여성가족부의 위태로운 제도적 위치는 이러한 비판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 적극적으로 여성가족부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게 만든다. 페미니즘과 백래시 사이의 정치화된 이분법적 대립 사이에서 ‘보다 나은 논쟁’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지며, 백래시를 통해 반사적으로 투영되는 주류 여성운동과 국가주도 여성정책의 한계와 사각지대는 여전히 다루어지지 못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비단 오늘날에만 유난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내일 당장 없어질 수 있는 문제거리가 아니라면, 페미니스트들은 백래시를 부정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백래시의 문법을 전복적으로 재독해하면서 페미니즘의 미래를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래시의 역사적 사례들은 페미니즘이 그 시작에서부터 반페미니즘과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고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의 역사 또한 일방향적인 진보라기보다는 지그재그 같은 움직임이나 두 발 나가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로 진행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페미니즘의 “물결들”은 페미니즘의 활력이 대중적으로 고양되고 확산되는 시기(들)와 그 사이(들)에 존재하는 휴지기를 암시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물결과 휴지기라는 구별에는 일정 부분 페미니즘의 대중적 확산과 분출을 열망하고 기다리는 기대와 정서가 담겨 있으며 그 이면에는 운동의 휴지기에 대한 실망이나 무관심 또한 엿보인다. 운동의 휴지기나 백래시의 시간은 페미니즘이 다음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준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래시는 찬찬히 뜯어보고 독해해야 할 문화적, 정치적 암호문이다.

 


 

편집자주)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 410 U.S. 113, 1973년)은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가 낙태의 권리를 포함하는지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가장 중요한 판례이다.미국 연방 대법원은 여성은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절을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하였다. 이 로 판결에 따르면,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의 법률들은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다. 이로 인해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미국의 모든 주와 연방의 법률들이 폐지되었다. 이 사건의 판례는 미국 대법원이 내린 판결 중 역사상 가장 논쟁이 되었고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판례중 하나가 되었다. (wikipedia)  

현지시간 기준 2022년 6월 24일, 미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50년만에 번복했다. 이번 판결로 미국 50개 주 중 절반가량이 임신중절을 금지할 전망이다(amnesty)

 

 

 

김보명

❚ 이화여대 여성학과 조교수

다양한 페미니즘의 이론과 역사를 연구하고 나누며 페미니즘과 더불어 배워가는 삶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