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3
페미니즘의 성취: 그건 바로 여기, 우리
*참가자 소개
-꼬깜(여는 민우회 사무처장): 출근길에 꽃집 노상에서 은쑥을 보았는데 반짝이더라고요. 가깝게 빛나는 것들에 설레는 사람이고 싶어요.
-날씨(여는 민우회 회원): 파트너와 열네 살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는 2인+1멍 가족입니다. 작년부터 요가를 시작했는데 추천추천 드려요!
-문어(여는 민우회 회원): 일하는 1인 가구 여성. 어린 시절부터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들어 온, 본투비 페미니스트입니다.
-숨비(여는 민우회 회원): 고양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지요
-행크(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 페미니즘밖에 모르는 바보
20대 대선은 페미니스트라면 참 할 말이 많은 선거였는데요, 매일같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여성혐오 말들에 분노와 실망이 교차하는 날들이었습니다. 시끄러웠던 선거와 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나고 낙담했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다며 서로를 다독이던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 마음들이었을지, 정말 절망할 이유는 없는지? 어떤 상상으로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하고 있을지, 안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5월 18일, 알음알음 몇몇 회원분들에게 연락을 드려 민우회 사무실에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키워드1. 2022 대선
- 꼬깜: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죠. 다들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날씨: 선거 과정도 그렇고, 결과 나온 이후엔 진짜 생각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누가 돼도 참 싫어서 가타부타 말을 안 했는데 이제 막 체감되고 있어요.
- 숨비: 저는 그때 게임 회사에 다녔는데요. 여성 페미니스트 프로그래머들 톡방이 있어요. 다음 날 아침까지 돌아가면서 자다 깨다, 서로 “망했다” 톡을 올렸어요. 출근해서 ‘2번남’들이 활개 치는 꼴을 어떻게 볼까 했는데 팀에 코로나 걸린 분이 계셔서 다행히(?) 재택을(웃음) 근데 다른 팀 사람한테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남성 직원이 회사 로비에서 큰 목소리로 대선 결과 얘기를 하며 엄청 비웃었다고 하더라고요. 개표 방송 보면서 소주를 마셨는데 12시 넘어서 완전 환호를 했다, 1번 찍은 사람은 어쩌구 저쩌구.
키워드2. 출근길
-꼬깜: 최근에 대통령 출퇴근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시위 이야기와 함께 직장인들의 출근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여러분은 출퇴근에 뭐 타고 이동하세요?
- 숨비: 저는 전장연 시위가 있는 날은 출근을 일찍 했어요. 동료가 ‘그 시위 때문에 늦었구나’라고 말하는 거 듣기 싫어서요. (꼬깜: 그런 말을 진짜로 하는군요?) 네. 팀 메신저에 “장애인 시위 때문에 저 늦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요. 한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을 때 플랫폼 노동자 노동 조건이 문제라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도 옆에서 “그 사람들 돈 많이 번다는데요?” 그러더라고요. 돈을 많이 번다고 과로로 길바닥에서 죽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 문어: 저는 지하철 타면서 딱 한 번 전장연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했겠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 오늘 시위 효과 있네’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 날씨: 시위가 경복궁역에서 많이 있었는데, 제 일터가 안국역 근처예요. 3호선에서 갈아타려고 할 때 연착이 안 되는데도 “전장연 시위로 늦어질 수 있다” 나쁜 뉘앙스로 주입하듯이 계속 방송하는 거예요. 근데 2, 3호선은 (원래) 연착이 많거든요. 예전에 성수 쪽에서 불이 나서 연착된 적이 있었는데, 그땐 그냥 이해해 달라고 방송했기 때문에 다들 불만 없었거든요. 요새는 불 났을 때보다 더 자주 방송하는 것 같아요.
-꼬깜: 공식성의 영향력이 정말 큰 것 같아요. jtbc에서 이준석 씨와 박경석 대표가 나왔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도 여성운동 할 때 반박하는 논리가 훨씬 어렵거든요. ‘피해를 준다’ 이 한마디를 반박하려면 수많은 논리와 감수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복잡하잖아요. 박경석 대표는 일정 부분 언어로만 대항하기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호소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 장면을 보고 댓글에 ‘징징거리는데 받아준다.’, ‘이준석이 대단하다.’ 이런 걸 보면서 혐오가 스피커가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생각했어요. 지하철 공사든 이준석이든 공식적인 스피커로 그런 이야기가 될 때 시민에게 주는 영향이 많은 것 같아요.
키워드3. 여가부 폐지? 인구가족부?
-꼬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가 계속 이야기되고 있어요. 인구가족부를 신설 하겠다고 하면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혹시 주변 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날씨: 지금 다른 공약은 ‘미안하다. 못 지킨다’ 이러면서 여가부 폐지는 계속 추진 하는 게 좀 아찔하고 예상을 넘는 느낌이에요. 작년에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를 읽었어요. 미래 사회가 배경인 소설인데 여성이 출산 도구가 되는 이야기거든요. 인구가족부란 말을 들었을 때 완전 시녀이야기의 현실판 같았어요. 일전에 문제됐던 가임기 여성 지도도 떠오르고…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데 구조가 뭔지 성차별이 뭔지 그들은 알까요? (일동 : 모르는 거 같아요)
- 숨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사람들이 다 여자는 ‘입과 머리가 떨어지니까’ 쉬운 일만 줘야 돼, 그게 기본. 또, 제가 기혼이니까 결혼한 여자는 중성인 거예요. 여성인 직장 동료를 자기들만의 섹션으로 그런 식으로 먼저 구분하는데 무슨 차별이 없다는 건지.
또 남자들은 이직할 때 임신과 출산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하지만 법적으로 여성은 6개월 이상 근무를 하지 않았으면 (사측에서) 육아 휴가를 거부할 수 있어요. 여성은 일할 때도 퇴사할 때도 이직할 때도 임신, 출산, 육아 계획을 항상 생각해야한단 말이에요. 이런 법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돼요.
-문어: 대선을 보면서 저의 정치적 선택지가 굉장히 많이 제한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여성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 후보를 추리는 것만으로도 선택지가 많이 사라지는 거예요. 좀 더 많은 필터를 갖고 보고 싶은데…그게 뭐랄까? 좀 슬펐어요.
키워드4. 설거지만 해도 칭찬 받는 남성들
-꼬깜: 우리의 일상과 남성의 일상이 되게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지하철을 타도 남성들은 사람이 있는데 몸을 가로 질러서 치면서 지나가요. 마치 짐이 있고 방해되는 것처럼. 나를 투명인간처럼 막 치우면서 갈 때가 있어요.
-행크: 자기를 향해서 웃어주는 것을 굉장한 호감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래요. 직장 생활 하면서 여성이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남성들은 개인적인 호감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꼬깜: 진짜 큰일이네요.)
-문어: (회사에서는) 남성들도 그렇게 하잖아요? 상사랑 밥도 먹어주고 술도 먹어주고 눈썹 하나만 움직여도 ‘눈썹이 움직이셨구나’ 이렇게 살펴봐주고. 그런데 집에서는 설거지만 해도 남성들에게는 칭찬을 해주고요.
-날씨: 아는 분이, 어릴 때 자기주장도 있고 적극적이고 이러니까 ‘너는 여자애가 왜 이렇게 드세냐’ 이런 말을 맨날 들은 거예요. 똑같이 행동하는 남자애들한테는 학생회장 감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런 코멘트 때문에 여성들은 자꾸 주변 시선을 보게되는 것 같아요. 남성이 팔을 휘휘 저으며 간다면 우리는 어깨를 움츠리고 가잖아요? 그렇게 자라는 것 같아요.
저는 박원순씨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지만…권력이 그 사람을 좁은 세계로 몰아넣었을 것 같아요. 자기 말 한마디면 ‘심기가 불편하신가?’ 걱정하는 상황에 노출이 자꾸 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나 싶고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던 이준석, 윤석열은 한 번도 어떤 차별도 받아본 적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떤 정치인들은 자기가 가난했기 때문에 최소한 공감하는 게 있었잖아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확장되는 게 있었다면 (이준석, 윤석열은) 그런 경험이 평생에 한 번도 없었던 거 아닐까.
키워드5. 나에게 농담일 수 없는 일들
-꼬깜 : 너무 진지한 영역이어서 농담 할 수 없는 주제가 있으세요? 저부터 얘기해보면…저한테 ‘갑자기 왜 이렇게 정색해’ 이런 주제는 계급과 관련된 거예요. 예를 들어 주식? 저희 엄마랑 이모는 주식 얘기, 삼성전자 얘기를 진짜 맨날 해요. 제발 내 앞에 있을 때만이라도 주식 얘기 좀 안 하면 안 될까…
-숨비: 저는 집값이요. 집, 주거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거잖아요. 가끔 주변에서 친구들이 저 아파트 피 얼마 붙었대~ 이런 얘기할 때 솔직히 천박스러워요.(일동: 피가 뭐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아파트 청약을 1천만 원에 했는데 이번에 저 아파트가 프리미엄 붙었다고 이야기할 때 피라고 해요.
-날씨: 우린 아예 우린 용어도 몰라(웃음)
-꼬깜: 팟캐스트 ‘비밀보장’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서도 요즘 부동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부동산 전문가가 나와서 노하우나 비밀처럼 어디를 사야 한다…누가 송은이 씨에게 다른 주제를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 해줬으면 했어요.
-날씨: 어릴 때 저희 집안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고 많이 가난했거든요. 오히려 정말 힘들면 말을 못 해요. 그런 걸 숨기려고 밥을 더 산다든지 돈을 더 많이 쓴다든지 그런 행동을 제가 항상 했어요. 주변한테 더 밥을 많이 사고 그런 거요. 돈이 많고 집 있는 사람들은 밥을 안 사거든요.(웃음)
-행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제목이 유행했잖아요. 패러디도 많이 되고. 출판 업계에서는 되게 잘 나온 제목이라고도 하던데 저는 불편했어요. 주변에 우울한 친구들도 많고 생사를 넘나드는 친구도 있어요. 정말 죽고 싶었던 내 친구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을까? 우울증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는 시대에, 쉽게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화가 나요.
키워드6. 이것만은불법이었으면
-문어: ‘잔소리 유료화에 관한 법률’이요. 명절이나 개인적 만남에서 결혼했냐, 출산 할꺼냐, 취업했냐 등등 명절마다 나오는 잔소리 메뉴판 있잖아요.
-꼬깜: 저는 노상방뇨하면 한 3년 정도 구금하는 거요. 서부간선도로에서 정말 수백명이 보는데도 소변 보는 남성을 볼 때 진짜 문명사회 맞나 싶었습니다.
-날씨: ‘어쩌면 실격당한’이라는 민우회 소모임에 참여하며 접근성을 좀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휠체어 이용자는 외출하면 배리어프리한 화장실을 찾는 게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찾더라도 거기 턱이 있진 않은지,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 휠체어가 충분히 출입 가능한지…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맨날 싸워야 되는 거예요. 모든 이용자를 고려한 화장실이 모든 곳에 설치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어: 전장연 활동가들이 얘기하는 것도, 대중교통이 ‘모든’ 대중에게 오픈돼야 한다는 것에 불과하잖아요. 지금의 대중교통은 장애가 없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니까. 사실 저상버스에서도 휠체어 이용자를 본 적이 없어요.
-숨비: 전 고양이 유기묘 두 마리랑 살고 있는데 환경, 동물권 관련된 모든 법이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물티슈도 분해되는 거 개발이 됐으니까 더 많이 확산되면 좋겠고 길고양이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사람이 구조할 수 없으니까. 사실은 그들의 땅이기도 했고요.
키워드7. 앞으로 5년,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꼬깜: 윤정부 5년, 상상되는 가장 구체적인 불안이 뭘까요?
-문어: 그간 예측 가능한 마지막 보수 정부가 이명박이었던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도 그랬지만, 가장 불안하고 두려운 건 프로토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특히 윤석열 정부는 정치 경험도 없고…프로토콜을 어기는데 어떤 주저함이 없어 보여는 사람이어서 걱정이 많이 돼요.
-숨비: 저도요.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행크: 전 우선은 집값이 눈 앞의 걱정이긴 한데 윤석열이 무서운 건 검사 출신이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공정하게 심판하고, 범죄를 없애고 부패를 척결하는 게 검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검사가 앞장 서서 정치적으로 사람을 쳐내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는 모른다고 해도, 검사는 잘 아니까 그 권력으로 자기에게 정치적으로 해가 될만한 사람은 다 꺾어 놓거나 감옥에 보낼 것 같아서 그게 무섭더라고요.
-날씨 : 그런 건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한 명을 망하게 할 수 있는지…단체도 예외가 아닐 것 같고요.
-꼬깜: 민우회는 이명박 정부 전까진 행정안전부 프로젝트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면서 회원 명부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정부 보조금은 받지 않아야겠다는 결의를 하게됐어요. 그 이후로 회원을 늘리고 후원행사를 하는 등 재정 독립성을 가지려고 애써왔어요. 윤정부가 시민단체 투명성을 위해 가산세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는데, 뭐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예상은 하고 있어요.
-숨비: 그건 이제 싸워야죠. (웃음)
*사진설명: 대담을 위해 모임 참가자들
키워드8. 페미니스트가 꾸려본 내각
-꼬깜: 내가 대통령이 돼서 내각을 꾸려본다면 어떤 내각을 상상하세요? 예를 들어 김진숙 님이 노동부 장관인 세상이랄까.
-문어: 저는 정희진님을 좋아하는데 뭔가 하심 좋겠지만 정치인을 안 하실 것 같긴 하네요.(웃음)
-날씨: 전 이반지하요(웃음) 젠더이퀄리티부 장관.
-문어: 일단 차별금지법부터 만드시겠네요.
-꼬깜: 저는 법무부 장관에 김지은 씨 생각했어요.
-행크 : 서지현 검사님은 어때요? (-날씨: 검찰총장으로!)
키워드9.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
-꼬깜: 5년의 뒷걸음질을 예상 해봤는데요. 그래도 빛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 날씨: 좀 쾌적한 곳에서 오랫동안 안전하게 살려면 도시에 살아야 된단 말이에요. 특히 퀴어들은 큰 도시에 살아야 돼요. 그러면 돈이 많이 들어요. 둘이 살아도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못 하니까, 1인가구로 집계돼서 세금은 더 많이 내는데 아무 지원을 못 받아요. 쉽진 않겠지만 같이 사는 파트너랑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오랫동안 살면 좋겠다, 그 희망이 언젠가는 이뤄지면 좋겠어요.
-숨비: 오히려 대선 이후에 “이제 우리는 싸워야 한다”가 모두에게 장착되어서 ‘오히려 윤이 우리를 깨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속한 직군에 ‘셀럽’ 개발자들이 있어요. 남성 분들인데, 어느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여성 이슈를 공론화하시는 거예요. 여성 동료 모임에서도 슬쩍,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보면 다 오픈되어 있어요. 우리가 단군 이래로 언제 또 이렇게 싸움을 기본으로 장착할까? 그런 면에서라면 전 희망적이라고 봐요. (윤정부가) 5년을 채울지 안 채울지 사실 모르겠기도 하고.
-날씨: 5년은 어차피 가고 이후에 또 다른 5년이 올 거다. 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2016년부터 민우회 회원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더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본 것 같아요. (그 다음 조치가 안 나와서 문제지만) 낙태죄도 폐지되었고요. 백래시가 있기도 하겠지만, 다들 베개 같은 책도 읽어가며 무장하고(일동 웃음) 용기가 생긴 사람들이 더 많이 싸울 거라는 게 희망인 것 같아요. 예전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도, 그걸 어떻게 말하고 활동할지 몰랐는데 비정규직 노동을 하면서 노동자 정체성을 갖게 되기도 했구요. 퀴어 당사자로서 임신중지에 대해서도 “내 몸에 대한 권리로서 국가 통제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제 관점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작년에 변희수 하사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트랜스젠더 권리를 더 많이 고민해보게 됐고, 올해는 장애인 이동권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큰 변화는 잘 안 보이니까, 제가 변화해왔던 걸 더 많이 생각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아까 말한 책 『시녀이야기』에서 좋은 말이 있어서 적어왔어요. “제정신이라는 것은 소중한 재산이다. 사람들이 한 때 돈을 비축했듯이 나는 맑은 정신을 비축한다” 제정신으로 살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제정신을 잘 비축해서 다음 5년을 살아가야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아, 제가 정신질환이 있어서 당사자성 있는 발언이라고 꼭 써주세요(웃음)
-문어: 종종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저의 존재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가질 때가 있거든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제 존재가 페미니즘의 결과물이기도 하죠.(일동 웃음) 페미니즘의 성취인 것이죠. 여자가 혼자 일을 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꼬깜: 재밌는 표현이네요. 페미니즘의 성취.
-날씨: 페미니즘의 아웃풋(웃음)
-문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맞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게 많이 도움 되는 것 같아요. 제정신으로 사는 데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죠. 그런 친구들과 앞으로도 잘 지내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가끔은 이렇게 민우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살다 보면 좀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꼬깜: 전 진짜로 진짜로 희망은 발견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희망이 아무리 있어도 발견을 못하면 그건 절대 희망이라고 이름 붙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회원 분을 많이 만나다 보면, 오늘처럼 바쁘신데도 저녁 늦은 시간에 민우회 사무실까지 오셔서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다양한 페미니스트가 활동하는 걸 보면 그거야말로 정말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문어: 좀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이 시대에 한국여성민우회에 가입을 해서 많은 희망을 발견했으면 좋겠네요. 제가 월 회비 1만원을 내고 있는데요. 이게 만원의 행복이잖아요(웃음)
[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기획03
페미니즘의 성취: 그건 바로 여기, 우리
*참가자 소개
-꼬깜(여는 민우회 사무처장): 출근길에 꽃집 노상에서 은쑥을 보았는데 반짝이더라고요. 가깝게 빛나는 것들에 설레는 사람이고 싶어요.
-날씨(여는 민우회 회원): 파트너와 열네 살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는 2인+1멍 가족입니다. 작년부터 요가를 시작했는데 추천추천 드려요!
-문어(여는 민우회 회원): 일하는 1인 가구 여성. 어린 시절부터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들어 온, 본투비 페미니스트입니다.
-숨비(여는 민우회 회원): 고양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지요
-행크(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활동가): 페미니즘밖에 모르는 바보
20대 대선은 페미니스트라면 참 할 말이 많은 선거였는데요, 매일같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여성혐오 말들에 분노와 실망이 교차하는 날들이었습니다. 시끄러웠던 선거와 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나고 낙담했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다며 서로를 다독이던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 마음들이었을지, 정말 절망할 이유는 없는지? 어떤 상상으로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하고 있을지, 안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5월 18일, 알음알음 몇몇 회원분들에게 연락을 드려 민우회 사무실에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키워드1. 2022 대선
- 꼬깜: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죠. 다들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 날씨: 선거 과정도 그렇고, 결과 나온 이후엔 진짜 생각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누가 돼도 참 싫어서 가타부타 말을 안 했는데 이제 막 체감되고 있어요.
- 숨비: 저는 그때 게임 회사에 다녔는데요. 여성 페미니스트 프로그래머들 톡방이 있어요. 다음 날 아침까지 돌아가면서 자다 깨다, 서로 “망했다” 톡을 올렸어요. 출근해서 ‘2번남’들이 활개 치는 꼴을 어떻게 볼까 했는데 팀에 코로나 걸린 분이 계셔서 다행히(?) 재택을(웃음) 근데 다른 팀 사람한테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남성 직원이 회사 로비에서 큰 목소리로 대선 결과 얘기를 하며 엄청 비웃었다고 하더라고요. 개표 방송 보면서 소주를 마셨는데 12시 넘어서 완전 환호를 했다, 1번 찍은 사람은 어쩌구 저쩌구.
키워드2. 출근길
-꼬깜: 최근에 대통령 출퇴근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시위 이야기와 함께 직장인들의 출근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여러분은 출퇴근에 뭐 타고 이동하세요?
- 숨비: 저는 전장연 시위가 있는 날은 출근을 일찍 했어요. 동료가 ‘그 시위 때문에 늦었구나’라고 말하는 거 듣기 싫어서요. (꼬깜: 그런 말을 진짜로 하는군요?) 네. 팀 메신저에 “장애인 시위 때문에 저 늦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요. 한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을 때 플랫폼 노동자 노동 조건이 문제라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도 옆에서 “그 사람들 돈 많이 번다는데요?” 그러더라고요. 돈을 많이 번다고 과로로 길바닥에서 죽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 문어: 저는 지하철 타면서 딱 한 번 전장연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본 적 있어요.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했겠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 오늘 시위 효과 있네’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 날씨: 시위가 경복궁역에서 많이 있었는데, 제 일터가 안국역 근처예요. 3호선에서 갈아타려고 할 때 연착이 안 되는데도 “전장연 시위로 늦어질 수 있다” 나쁜 뉘앙스로 주입하듯이 계속 방송하는 거예요. 근데 2, 3호선은 (원래) 연착이 많거든요. 예전에 성수 쪽에서 불이 나서 연착된 적이 있었는데, 그땐 그냥 이해해 달라고 방송했기 때문에 다들 불만 없었거든요. 요새는 불 났을 때보다 더 자주 방송하는 것 같아요.
-꼬깜: 공식성의 영향력이 정말 큰 것 같아요. jtbc에서 이준석 씨와 박경석 대표가 나왔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도 여성운동 할 때 반박하는 논리가 훨씬 어렵거든요. ‘피해를 준다’ 이 한마디를 반박하려면 수많은 논리와 감수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복잡하잖아요. 박경석 대표는 일정 부분 언어로만 대항하기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호소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 장면을 보고 댓글에 ‘징징거리는데 받아준다.’, ‘이준석이 대단하다.’ 이런 걸 보면서 혐오가 스피커가 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생각했어요. 지하철 공사든 이준석이든 공식적인 스피커로 그런 이야기가 될 때 시민에게 주는 영향이 많은 것 같아요.
키워드3. 여가부 폐지? 인구가족부?
-꼬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가 계속 이야기되고 있어요. 인구가족부를 신설 하겠다고 하면서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혹시 주변 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날씨: 지금 다른 공약은 ‘미안하다. 못 지킨다’ 이러면서 여가부 폐지는 계속 추진 하는 게 좀 아찔하고 예상을 넘는 느낌이에요. 작년에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를 읽었어요. 미래 사회가 배경인 소설인데 여성이 출산 도구가 되는 이야기거든요. 인구가족부란 말을 들었을 때 완전 시녀이야기의 현실판 같았어요. 일전에 문제됐던 가임기 여성 지도도 떠오르고…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데 구조가 뭔지 성차별이 뭔지 그들은 알까요? (일동 : 모르는 거 같아요)
- 숨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사람들이 다 여자는 ‘입과 머리가 떨어지니까’ 쉬운 일만 줘야 돼, 그게 기본. 또, 제가 기혼이니까 결혼한 여자는 중성인 거예요. 여성인 직장 동료를 자기들만의 섹션으로 그런 식으로 먼저 구분하는데 무슨 차별이 없다는 건지.
또 남자들은 이직할 때 임신과 출산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하지만 법적으로 여성은 6개월 이상 근무를 하지 않았으면 (사측에서) 육아 휴가를 거부할 수 있어요. 여성은 일할 때도 퇴사할 때도 이직할 때도 임신, 출산, 육아 계획을 항상 생각해야한단 말이에요. 이런 법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돼요.
-문어: 대선을 보면서 저의 정치적 선택지가 굉장히 많이 제한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여성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 후보를 추리는 것만으로도 선택지가 많이 사라지는 거예요. 좀 더 많은 필터를 갖고 보고 싶은데…그게 뭐랄까? 좀 슬펐어요.
키워드4. 설거지만 해도 칭찬 받는 남성들
-꼬깜: 우리의 일상과 남성의 일상이 되게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지하철을 타도 남성들은 사람이 있는데 몸을 가로 질러서 치면서 지나가요. 마치 짐이 있고 방해되는 것처럼. 나를 투명인간처럼 막 치우면서 갈 때가 있어요.
-행크: 자기를 향해서 웃어주는 것을 굉장한 호감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래요. 직장 생활 하면서 여성이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남성들은 개인적인 호감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꼬깜: 진짜 큰일이네요.)
-문어: (회사에서는) 남성들도 그렇게 하잖아요? 상사랑 밥도 먹어주고 술도 먹어주고 눈썹 하나만 움직여도 ‘눈썹이 움직이셨구나’ 이렇게 살펴봐주고. 그런데 집에서는 설거지만 해도 남성들에게는 칭찬을 해주고요.
-날씨: 아는 분이, 어릴 때 자기주장도 있고 적극적이고 이러니까 ‘너는 여자애가 왜 이렇게 드세냐’ 이런 말을 맨날 들은 거예요. 똑같이 행동하는 남자애들한테는 학생회장 감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런 코멘트 때문에 여성들은 자꾸 주변 시선을 보게되는 것 같아요. 남성이 팔을 휘휘 저으며 간다면 우리는 어깨를 움츠리고 가잖아요? 그렇게 자라는 것 같아요.
저는 박원순씨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지만…권력이 그 사람을 좁은 세계로 몰아넣었을 것 같아요. 자기 말 한마디면 ‘심기가 불편하신가?’ 걱정하는 상황에 노출이 자꾸 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나 싶고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던 이준석, 윤석열은 한 번도 어떤 차별도 받아본 적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떤 정치인들은 자기가 가난했기 때문에 최소한 공감하는 게 있었잖아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확장되는 게 있었다면 (이준석, 윤석열은) 그런 경험이 평생에 한 번도 없었던 거 아닐까.
키워드5. 나에게 농담일 수 없는 일들
-꼬깜 : 너무 진지한 영역이어서 농담 할 수 없는 주제가 있으세요? 저부터 얘기해보면…저한테 ‘갑자기 왜 이렇게 정색해’ 이런 주제는 계급과 관련된 거예요. 예를 들어 주식? 저희 엄마랑 이모는 주식 얘기, 삼성전자 얘기를 진짜 맨날 해요. 제발 내 앞에 있을 때만이라도 주식 얘기 좀 안 하면 안 될까…
-숨비: 저는 집값이요. 집, 주거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거잖아요. 가끔 주변에서 친구들이 저 아파트 피 얼마 붙었대~ 이런 얘기할 때 솔직히 천박스러워요.(일동: 피가 뭐예요?) 그러니까 내가 이 아파트 청약을 1천만 원에 했는데 이번에 저 아파트가 프리미엄 붙었다고 이야기할 때 피라고 해요.
-날씨: 우린 아예 우린 용어도 몰라(웃음)
-꼬깜: 팟캐스트 ‘비밀보장’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서도 요즘 부동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부동산 전문가가 나와서 노하우나 비밀처럼 어디를 사야 한다…누가 송은이 씨에게 다른 주제를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 해줬으면 했어요.
-날씨: 어릴 때 저희 집안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고 많이 가난했거든요. 오히려 정말 힘들면 말을 못 해요. 그런 걸 숨기려고 밥을 더 산다든지 돈을 더 많이 쓴다든지 그런 행동을 제가 항상 했어요. 주변한테 더 밥을 많이 사고 그런 거요. 돈이 많고 집 있는 사람들은 밥을 안 사거든요.(웃음)
-행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 제목이 유행했잖아요. 패러디도 많이 되고. 출판 업계에서는 되게 잘 나온 제목이라고도 하던데 저는 불편했어요. 주변에 우울한 친구들도 많고 생사를 넘나드는 친구도 있어요. 정말 죽고 싶었던 내 친구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을까? 우울증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는 시대에, 쉽게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화가 나요.
키워드6. 이것만은불법이었으면
-문어: ‘잔소리 유료화에 관한 법률’이요. 명절이나 개인적 만남에서 결혼했냐, 출산 할꺼냐, 취업했냐 등등 명절마다 나오는 잔소리 메뉴판 있잖아요.
-꼬깜: 저는 노상방뇨하면 한 3년 정도 구금하는 거요. 서부간선도로에서 정말 수백명이 보는데도 소변 보는 남성을 볼 때 진짜 문명사회 맞나 싶었습니다.
-날씨: ‘어쩌면 실격당한’이라는 민우회 소모임에 참여하며 접근성을 좀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휠체어 이용자는 외출하면 배리어프리한 화장실을 찾는 게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찾더라도 거기 턱이 있진 않은지,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 휠체어가 충분히 출입 가능한지…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맨날 싸워야 되는 거예요. 모든 이용자를 고려한 화장실이 모든 곳에 설치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어: 전장연 활동가들이 얘기하는 것도, 대중교통이 ‘모든’ 대중에게 오픈돼야 한다는 것에 불과하잖아요. 지금의 대중교통은 장애가 없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니까. 사실 저상버스에서도 휠체어 이용자를 본 적이 없어요.
-숨비: 전 고양이 유기묘 두 마리랑 살고 있는데 환경, 동물권 관련된 모든 법이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물티슈도 분해되는 거 개발이 됐으니까 더 많이 확산되면 좋겠고 길고양이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사람이 구조할 수 없으니까. 사실은 그들의 땅이기도 했고요.
키워드7. 앞으로 5년,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꼬깜: 윤정부 5년, 상상되는 가장 구체적인 불안이 뭘까요?
-문어: 그간 예측 가능한 마지막 보수 정부가 이명박이었던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도 그랬지만, 가장 불안하고 두려운 건 프로토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특히 윤석열 정부는 정치 경험도 없고…프로토콜을 어기는데 어떤 주저함이 없어 보여는 사람이어서 걱정이 많이 돼요.
-숨비: 저도요.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행크: 전 우선은 집값이 눈 앞의 걱정이긴 한데 윤석열이 무서운 건 검사 출신이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공정하게 심판하고, 범죄를 없애고 부패를 척결하는 게 검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검사가 앞장 서서 정치적으로 사람을 쳐내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는 모른다고 해도, 검사는 잘 아니까 그 권력으로 자기에게 정치적으로 해가 될만한 사람은 다 꺾어 놓거나 감옥에 보낼 것 같아서 그게 무섭더라고요.
-날씨 : 그런 건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한 명을 망하게 할 수 있는지…단체도 예외가 아닐 것 같고요.
-꼬깜: 민우회는 이명박 정부 전까진 행정안전부 프로젝트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면서 회원 명부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정부 보조금은 받지 않아야겠다는 결의를 하게됐어요. 그 이후로 회원을 늘리고 후원행사를 하는 등 재정 독립성을 가지려고 애써왔어요. 윤정부가 시민단체 투명성을 위해 가산세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는데, 뭐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예상은 하고 있어요.
-숨비: 그건 이제 싸워야죠. (웃음)
*사진설명: 대담을 위해 모임 참가자들
키워드8. 페미니스트가 꾸려본 내각
-꼬깜: 내가 대통령이 돼서 내각을 꾸려본다면 어떤 내각을 상상하세요? 예를 들어 김진숙 님이 노동부 장관인 세상이랄까.
-문어: 저는 정희진님을 좋아하는데 뭔가 하심 좋겠지만 정치인을 안 하실 것 같긴 하네요.(웃음)
-날씨: 전 이반지하요(웃음) 젠더이퀄리티부 장관.
-문어: 일단 차별금지법부터 만드시겠네요.
-꼬깜: 저는 법무부 장관에 김지은 씨 생각했어요.
-행크 : 서지현 검사님은 어때요? (-날씨: 검찰총장으로!)
키워드9.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
-꼬깜: 5년의 뒷걸음질을 예상 해봤는데요. 그래도 빛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 날씨: 좀 쾌적한 곳에서 오랫동안 안전하게 살려면 도시에 살아야 된단 말이에요. 특히 퀴어들은 큰 도시에 살아야 돼요. 그러면 돈이 많이 들어요. 둘이 살아도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못 하니까, 1인가구로 집계돼서 세금은 더 많이 내는데 아무 지원을 못 받아요. 쉽진 않겠지만 같이 사는 파트너랑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오랫동안 살면 좋겠다, 그 희망이 언젠가는 이뤄지면 좋겠어요.
-숨비: 오히려 대선 이후에 “이제 우리는 싸워야 한다”가 모두에게 장착되어서 ‘오히려 윤이 우리를 깨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속한 직군에 ‘셀럽’ 개발자들이 있어요. 남성 분들인데, 어느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여성 이슈를 공론화하시는 거예요. 여성 동료 모임에서도 슬쩍,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보면 다 오픈되어 있어요. 우리가 단군 이래로 언제 또 이렇게 싸움을 기본으로 장착할까? 그런 면에서라면 전 희망적이라고 봐요. (윤정부가) 5년을 채울지 안 채울지 사실 모르겠기도 하고.
-날씨: 5년은 어차피 가고 이후에 또 다른 5년이 올 거다. 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2016년부터 민우회 회원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더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본 것 같아요. (그 다음 조치가 안 나와서 문제지만) 낙태죄도 폐지되었고요. 백래시가 있기도 하겠지만, 다들 베개 같은 책도 읽어가며 무장하고(일동 웃음) 용기가 생긴 사람들이 더 많이 싸울 거라는 게 희망인 것 같아요. 예전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도, 그걸 어떻게 말하고 활동할지 몰랐는데 비정규직 노동을 하면서 노동자 정체성을 갖게 되기도 했구요. 퀴어 당사자로서 임신중지에 대해서도 “내 몸에 대한 권리로서 국가 통제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제 관점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작년에 변희수 하사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트랜스젠더 권리를 더 많이 고민해보게 됐고, 올해는 장애인 이동권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큰 변화는 잘 안 보이니까, 제가 변화해왔던 걸 더 많이 생각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아까 말한 책 『시녀이야기』에서 좋은 말이 있어서 적어왔어요. “제정신이라는 것은 소중한 재산이다. 사람들이 한 때 돈을 비축했듯이 나는 맑은 정신을 비축한다” 제정신으로 살기가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제정신을 잘 비축해서 다음 5년을 살아가야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아, 제가 정신질환이 있어서 당사자성 있는 발언이라고 꼭 써주세요(웃음)
-문어: 종종 저는 아무것도 안 해도 저의 존재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가질 때가 있거든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제 존재가 페미니즘의 결과물이기도 하죠.(일동 웃음) 페미니즘의 성취인 것이죠. 여자가 혼자 일을 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꼬깜: 재밌는 표현이네요. 페미니즘의 성취.
-날씨: 페미니즘의 아웃풋(웃음)
-문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맞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게 많이 도움 되는 것 같아요. 제정신으로 사는 데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죠. 그런 친구들과 앞으로도 잘 지내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가끔은 이렇게 민우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살다 보면 좀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꼬깜: 전 진짜로 진짜로 희망은 발견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희망이 아무리 있어도 발견을 못하면 그건 절대 희망이라고 이름 붙여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회원 분을 많이 만나다 보면, 오늘처럼 바쁘신데도 저녁 늦은 시간에 민우회 사무실까지 오셔서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다양한 페미니스트가 활동하는 걸 보면 그거야말로 정말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문어: 좀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이 시대에 한국여성민우회에 가입을 해서 많은 희망을 발견했으면 좋겠네요. 제가 월 회비 1만원을 내고 있는데요. 이게 만원의 행복이잖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