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다이어리
용감하지는 못해도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
갑자기 전신에 통증이 찾아왔다. 이번 항암치료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할거라더니 통증은 예상치도 못한 부작용이다. 온 몸의 임파선이 지나가는 자리에 살짝만 닿아도 아프다. 이렇게 새삼 아프다는 감각을 생경하게 느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온갖 진통제가 용량별로 구비되어 있지만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약을 삼키고 누워도 그닥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누운 주변을 보면 방 안은 이미 난장판이고 밥을 차려 먹을 여유 따윈 없다. 온몸 신경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긴 밤을 안절부절 못하고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 일찍 어렵사리 급하게 병원 예약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켜 병원에 나섰다. 걸을 수는 있지만 빈혈과 저혈압이 심해 금방 숨이 차고 특히 더운 날에는 쓰러질뻔 한 적도 있는지라 이 체력으로 대중교통으로 병원을 가는 것은 무리다. 출근시간과 겹치면 앉아서 이동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지만 노약자석에라도 앉았을 때 젊은 여자인 내게 오는 수많은 상황들이 스트레스이기만 하니까. 하지만 아침에는 정말 택시 잡기가 힘들다. 심할 땐 택시 어플을 삼십분을 붙잡고 택시를 잡아보아도 택시가 잘 없어서, 거리가 가까워서 잘 잡히지 않는다. 장애인 콜택시를 하염없이 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어렴풋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더 늦기 전에 길바닥에 쓰러질 각오를 하고 큰 길까지 걸어가 겨우 택시를 잡았다.
얹혀살고 있는 모부(母夫)의 오래된 아파트 윗층은 이른 아침이고 늦은 밤이고 여전히 무심하게 쿵쿵거린다. 반 년 전부터 급격히 나빠진 몸 상태에 주로 방 안에 있게 되면서 이 시도 때도 없는 층간소음을 그대로 받아냈어야 했는데, 새벽에도 이 소음에 깨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었다. 어느 때는 층간소음에 대한 법령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누워있다가 차림 그대로 심장을 부여잡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제발 주의해달라고 연락이라도 넣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층간소음문제는 조정하기가 까다로운 문제이니 이왕이면 내가 잘 해결해보라는 대답이었다. 그 무심함에 슬프고 고립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연달아 누워있던 며칠 째, 조금 괜찮아졌나 싶은 순간 또 생각지도 못한 항암 부작용이 날 주저앉힌다. 늘 고장난 배터리 같은 몸상태이니 조금만 뭘 해도 소진되어서 또 누웠다. 일상이 이렇게 지치는 일일 줄이야. ‘어쩌면 실격당한’ 이라는 민우회 책읽기 소모임 단톡방이 그 때마다 모임을 알린다. 줌 모임이어서 누워서라도 참여할 수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통해 정상성과 다른 몸들의 존엄의 언어와 철학을 배우고, <어쩌면 이상한 몸>을 통해 장애여성의 치열한 고민과 투쟁의 실천에서 내 삶의 힌트를 얻는다. 내가 아프면서 고민하던 아픈몸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존엄, 성평등, 돌봄, 노동, 이동권 등에 대한 의제는 사실 장애운동에 이미 수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그들의 운동에 빚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내 혈연가족과 친구마저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묘하게 이해받지 못하는, 존중받는 아픈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내 디테일한 소망이 일상에서 공명되지 못하는 내 삶이지만, 이 때만큼은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겨우 숨을 고르며 지내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에게서 연락이왔다. 내 SNS로 최근 몸상태의 근황을 본 모양인지 함께 아픈몸 당사자로 연극을 했던 동료들이 오랜만에 안부 연락을 전해왔다. 코로나 상황에 아픈몸들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만남을 미뤄왔는데 이래저래 연락도 뜸해진 차였다. 다들 열심히, 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아픈몸과 장애인 당사자로 활동하고 글을 쓰고 공부하며 살고 있었다. 작년과 올해 내내 속 시끄러운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애 이동권과 탈시설 투쟁, 백래시의 시대에 내 몸 사정 또한 시끄러워 여러모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픈몸 정체화 이전부터 페미니스트로 노력한다 했지만 ‘다양한 삶’을 상상해보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내가 크게 ‘아픈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들. 그런 생각을 하다 밥이라도 한 수저 떠보려 부엌으로 나설 힘이 생겼다.
최근 연대하기 위해 광장에 잘 나갈 수 없는 몸이 되면서, 투쟁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서 무기력함을 많이 느꼈다. 대신 올해부터는 내가 사는 동네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마을에서 환경과 성평등을 의제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가입해 활동에 참여해보기 시작했고, 지역 청년정책네트워크에 한 참여자로 몸이 허락하는대로 참여한다. 몸이 허락하지 않은 날이 너무 많아 늘 아쉬움 투성이지만, 마침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평등 정책에 대해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고 지선 후보에게 제안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나는 여기에서 어떤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떤 주체의 이야기들이 함께하면 좋을지 관심을 가져본다.
누군가를 덜 해치기 위해 노력하고 착취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 고민을 다른몸들의 고민들로 확장해보고 또 정상성의 세상에 공감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용감한 운동가가 되진 못해도 비겁하지 않은 연대자가 되고싶다. 작은 방에서 자꾸자꾸 접점을 상상해본다.
쟤
❚ 여는 민우회 회원
아픈몸과 살고 있는 젊은-유방암-말기-페미니스트-생존자소개글 : 아픈몸으로 존중받는 돌봄이 있는 생을 꿈꿉니다. 그러기에 아픈몸을 관통하는 사회적맥락을 살피고 말해보려 합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아픈몸 당사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했고 그 뒤 어렵게 성평등 새내기 활동가로 임금노동에 도전했지만 아픈몸으로 통상적인 8시간 노동을 견딜 수 없어 실패했고, 평생 해야하는 항암치료와 함께 아픈몸 말하기에 집중하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다이어리
용감하지는 못해도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
갑자기 전신에 통증이 찾아왔다. 이번 항암치료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할거라더니 통증은 예상치도 못한 부작용이다. 온 몸의 임파선이 지나가는 자리에 살짝만 닿아도 아프다. 이렇게 새삼 아프다는 감각을 생경하게 느낀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온갖 진통제가 용량별로 구비되어 있지만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약을 삼키고 누워도 그닥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 누운 주변을 보면 방 안은 이미 난장판이고 밥을 차려 먹을 여유 따윈 없다. 온몸 신경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긴 밤을 안절부절 못하고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 일찍 어렵사리 급하게 병원 예약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켜 병원에 나섰다. 걸을 수는 있지만 빈혈과 저혈압이 심해 금방 숨이 차고 특히 더운 날에는 쓰러질뻔 한 적도 있는지라 이 체력으로 대중교통으로 병원을 가는 것은 무리다. 출근시간과 겹치면 앉아서 이동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지만 노약자석에라도 앉았을 때 젊은 여자인 내게 오는 수많은 상황들이 스트레스이기만 하니까. 하지만 아침에는 정말 택시 잡기가 힘들다. 심할 땐 택시 어플을 삼십분을 붙잡고 택시를 잡아보아도 택시가 잘 없어서, 거리가 가까워서 잘 잡히지 않는다. 장애인 콜택시를 하염없이 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어렴풋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더 늦기 전에 길바닥에 쓰러질 각오를 하고 큰 길까지 걸어가 겨우 택시를 잡았다.
얹혀살고 있는 모부(母夫)의 오래된 아파트 윗층은 이른 아침이고 늦은 밤이고 여전히 무심하게 쿵쿵거린다. 반 년 전부터 급격히 나빠진 몸 상태에 주로 방 안에 있게 되면서 이 시도 때도 없는 층간소음을 그대로 받아냈어야 했는데, 새벽에도 이 소음에 깨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었다. 어느 때는 층간소음에 대한 법령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누워있다가 차림 그대로 심장을 부여잡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제발 주의해달라고 연락이라도 넣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층간소음문제는 조정하기가 까다로운 문제이니 이왕이면 내가 잘 해결해보라는 대답이었다. 그 무심함에 슬프고 고립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연달아 누워있던 며칠 째, 조금 괜찮아졌나 싶은 순간 또 생각지도 못한 항암 부작용이 날 주저앉힌다. 늘 고장난 배터리 같은 몸상태이니 조금만 뭘 해도 소진되어서 또 누웠다. 일상이 이렇게 지치는 일일 줄이야. ‘어쩌면 실격당한’ 이라는 민우회 책읽기 소모임 단톡방이 그 때마다 모임을 알린다. 줌 모임이어서 누워서라도 참여할 수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통해 정상성과 다른 몸들의 존엄의 언어와 철학을 배우고, <어쩌면 이상한 몸>을 통해 장애여성의 치열한 고민과 투쟁의 실천에서 내 삶의 힌트를 얻는다. 내가 아프면서 고민하던 아픈몸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존엄, 성평등, 돌봄, 노동, 이동권 등에 대한 의제는 사실 장애운동에 이미 수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그들의 운동에 빚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내 혈연가족과 친구마저도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묘하게 이해받지 못하는, 존중받는 아픈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내 디테일한 소망이 일상에서 공명되지 못하는 내 삶이지만, 이 때만큼은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겨우 숨을 고르며 지내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에게서 연락이왔다. 내 SNS로 최근 몸상태의 근황을 본 모양인지 함께 아픈몸 당사자로 연극을 했던 동료들이 오랜만에 안부 연락을 전해왔다. 코로나 상황에 아픈몸들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만남을 미뤄왔는데 이래저래 연락도 뜸해진 차였다. 다들 열심히, 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아픈몸과 장애인 당사자로 활동하고 글을 쓰고 공부하며 살고 있었다. 작년과 올해 내내 속 시끄러운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애 이동권과 탈시설 투쟁, 백래시의 시대에 내 몸 사정 또한 시끄러워 여러모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픈몸 정체화 이전부터 페미니스트로 노력한다 했지만 ‘다양한 삶’을 상상해보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내가 크게 ‘아픈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들. 그런 생각을 하다 밥이라도 한 수저 떠보려 부엌으로 나설 힘이 생겼다.
최근 연대하기 위해 광장에 잘 나갈 수 없는 몸이 되면서, 투쟁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서 무기력함을 많이 느꼈다. 대신 올해부터는 내가 사는 동네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마을에서 환경과 성평등을 의제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가입해 활동에 참여해보기 시작했고, 지역 청년정책네트워크에 한 참여자로 몸이 허락하는대로 참여한다. 몸이 허락하지 않은 날이 너무 많아 늘 아쉬움 투성이지만, 마침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평등 정책에 대해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고 지선 후보에게 제안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나는 여기에서 어떤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어떤 주체의 이야기들이 함께하면 좋을지 관심을 가져본다.
누군가를 덜 해치기 위해 노력하고 착취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 고민을 다른몸들의 고민들로 확장해보고 또 정상성의 세상에 공감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용감한 운동가가 되진 못해도 비겁하지 않은 연대자가 되고싶다. 작은 방에서 자꾸자꾸 접점을 상상해본다.
쟤
❚ 여는 민우회 회원
아픈몸과 살고 있는 젊은-유방암-말기-페미니스트-생존자소개글 : 아픈몸으로 존중받는 돌봄이 있는 생을 꿈꿉니다. 그러기에 아픈몸을 관통하는 사회적맥락을 살피고 말해보려 합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아픈몸 당사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했고 그 뒤 어렵게 성평등 새내기 활동가로 임금노동에 도전했지만 아픈몸으로 통상적인 8시간 노동을 견딜 수 없어 실패했고, 평생 해야하는 항암치료와 함께 아픈몸 말하기에 집중하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