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활동가 다이어리
가슴이 뻐렁치는 팀스포츠를 웨않해..?
농어촌식 인재 양성이 키운 단기 과몰입러의 시작
군 단위의 시골 읍내에서 자라면 사람도 자원도 없는 게 많지만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아주 약간의 소질(?)만으로도 다양한 기회가 잡힌다는 것. 한 학년 전체가 90명이었다가 20명까지 줄어든 시골에서 나는 별다른 자격이나 선발절차 없이 다채로운 단기스펙(?)을 쌓았다.
‘출전시킬 선수가 모자라서’ 육상부에 깍두기로 차출되어 멀리뛰기 선수가 되었다가, 같은 이유로 농구선수도 되었다가, "여자선수를 2인 이상 포함해야 한다"는 대회 규정 때문에 갑자기 '하루아침에' 축구선수도 되었다. 선수라 해봤자 그저 한 두 달 학교 수업을 빠지고 주먹구구식 연습을 한 것이 다였지만, 삐걱이는 성적표와 맞바꾼 다양한 경험들은 어떻게라도 내 안에 자산으로 쌓여 '나'라는 사람의 무늬를 만들었다.
중학생 시절, 농구부에서 보냈던 여름 한 철은 가장 반짝이는 구슬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다. 어느 날 체육선생님이 도내 '고등부' 농구대회에 출전할 멤버를 꾸리는데 인원이 부족하다며, 당시 열다섯 중학생이던 나와 친구들을 소환했다. 역사도 전통도 없이 다급하게 결성된 '시골 여학교 고교 농구부'에는 그렇게 소환된 4명의 '중학생' 멤버 외에, 고등학생 언니들 4명이 있었다. 모두 농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다가(?) '지각', '복장불량' 등의 소소한 사유로 체육 선생님에게 소환된 언니들로 보였다. 학교에서도 우리 중딩 4인방을 ‘고1’이라고 속이고 고등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승인하면서(우리 시골이 이렇게나 유연합니다 여러분) 나의 ‘슬램덩크 시기’가 열렸다.
슬램덩크 시기에 배운 것들
같은 팀 멤버들과 합을 맞추는 기쁨과 벅참을 배운 여름이었다. 나는 '세상에 내 동료가 7명이나 있다'는 것에 매일 아침 감격에 가까운 기쁨으로 기상했고, 약속한 플레이를 잘 해내서 우리 팀 멤버들과 힘께 기뻐하고 싶어서 훈련을 참고 버텼다. 재치대장 센스 쟁이 멤버 K가 콜 없이 던져 보낸 노룩패스를 받아 키 큰 언니들을 피해 득점에 성공한 날이나, 키가 제일 작았던 멤버 H가 갈고 닦은 ‘비장의 무기’ 3점 슛이 들어간 날은 노래가 절로 나왔다(그래서였나? 노래방도 자주 갔다). 너무 진심'이었던 나머지, 팀과 함께 하면 승리의 기쁨은 배가 되었고 패배의 설움은 트리플이 되었다.
사람을 보는 다른 눈도 얻게 됐다. 차출된 언니들은 취업을 준비하던 실업계 학생들이었는데, 선생님들이 예뻐하는 ‘모범생’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여학생'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껌 좀 깨나 씹을 듯한’ 포스와 분위기, ‘여학생답지 못한’ 큰 체구와 목소리는 코트 위에서 상대 팀을 제압할 수 있는 첫 인상, 주장으로서의 리더십, 경기 중 멤버 하나 하나를 관장하는 우렁찬 콜, 골대 아래에서의 치열한 볼 다툼과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파이팅의 근원이 되었다. 체구가 작고 소심했던 나는 언니들이 몸싸움으로 시간과 공간을 벌어주는 동안 한 마리 소금쟁이처럼 재빠르게 볼을 배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로 다른 자원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완해주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좋은 팀'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 덕에 느꼈던 여름이었다.

생활체육인의 열정과 광기
하나의 종목에 '대단히 애쓰지 않고도' 이것저것 얇고 넓게 경험할 수 있었던 유년시절의 환경은 나라는 사람과 케미(?)가 좋았다. 나는 지금도 ‘원데이클래스’가 잘 맞다. 농구, 탁구, 주짓수, 서핑, 프리다이빙, 사격, 양궁을 다양하게 기웃거리며 내 종목을 찾고 있다. ‘피땀눈물’ 없이 ‘얻어걸린 기회(?)’로 취하는 기쁨을 ‘성취감’으로 착각하며 선생님 칭찬 한 번에 ‘뭐야.. 나 재능있나..? 이러다.. 뭐 되는 거 아냐?’(시작한 지 30분 경과)로 시작해서, 일주일 정도 '국가대표급 과몰입'이 시작되었다가, 조용히 내적 은퇴를 결심한다.
그런 내가 요즘, 축구팀에 들어가 다시 팀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유니폼과 등번호도 생겼다. 팀을 위해 내가 더 잘 하고 싶고, 우리 팀 멤버들이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는 게 마치 내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한 냥 이리저리 과몰입하고 있는 내가 좀 웃기다. 실력이나 노력에 비해 의욕과 승부욕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여전해서 밤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나 프로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찾아본다. 나도 당장 새벽 5시에 일어나 100일 특훈 같은 걸 시작하고 싶다. 뻐렁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도 꼭 짱이 돼야지' 하며 잠이 든다. 보통은 생각에서 그치는데, 최근 사무실에 기질이 유사한 ‘스포츠 과몰입러 동료’가 입사하면서 생각이 행동으로, 열정이 유사 광기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풋살장 예약, 주 3-4회 풋살, 개인훈련, 영상인증, 장단점분석, 훈련용품 쇼핑, 멘탈 강화, 단백질섭취 등등을 상호 독려하며 우리의 본업은 무엇일까, 정체성의 혼란을 함께 겪는 중이다. 그게 또 그렇게나 즐겁고 행복하다.
단기 과몰입러답게 이 열정은 얼마 못 가 차갑게 식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팀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 내 안의 자체 발전 에너지가 고갈되면 동료들이 땔감을 던져준다. 오래 전, 시골마을 체육관 마루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새겨온 내 안의 무늬가 이야기하길, 나의 멤버들이 기다리는 한, 나는 다시 동료들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도 풋살공이 발바닥에 스치운다.
+이 원고를 마감한 날 저녁, 풋살 게임을 하다가 풋살공이 발에 잘못 스치는 바람에 목발 신세를 지게 됐다. 과몰입러 여러분, 부상을 조심하세요. 그라운드에서 만나요 우리!
노새(홍연지)
❚ 여는 민우회 성평등네트워크팀
승부욕 > 의욕 > 뉴욕 > 실력 > 체력
[2022 상반기-함께가는여성] 활동가 다이어리
가슴이 뻐렁치는 팀스포츠를 웨않해..?
농어촌식 인재 양성이 키운 단기 과몰입러의 시작
군 단위의 시골 읍내에서 자라면 사람도 자원도 없는 게 많지만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아주 약간의 소질(?)만으로도 다양한 기회가 잡힌다는 것. 한 학년 전체가 90명이었다가 20명까지 줄어든 시골에서 나는 별다른 자격이나 선발절차 없이 다채로운 단기스펙(?)을 쌓았다.
‘출전시킬 선수가 모자라서’ 육상부에 깍두기로 차출되어 멀리뛰기 선수가 되었다가, 같은 이유로 농구선수도 되었다가, "여자선수를 2인 이상 포함해야 한다"는 대회 규정 때문에 갑자기 '하루아침에' 축구선수도 되었다. 선수라 해봤자 그저 한 두 달 학교 수업을 빠지고 주먹구구식 연습을 한 것이 다였지만, 삐걱이는 성적표와 맞바꾼 다양한 경험들은 어떻게라도 내 안에 자산으로 쌓여 '나'라는 사람의 무늬를 만들었다.
중학생 시절, 농구부에서 보냈던 여름 한 철은 가장 반짝이는 구슬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다. 어느 날 체육선생님이 도내 '고등부' 농구대회에 출전할 멤버를 꾸리는데 인원이 부족하다며, 당시 열다섯 중학생이던 나와 친구들을 소환했다. 역사도 전통도 없이 다급하게 결성된 '시골 여학교 고교 농구부'에는 그렇게 소환된 4명의 '중학생' 멤버 외에, 고등학생 언니들 4명이 있었다. 모두 농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다가(?) '지각', '복장불량' 등의 소소한 사유로 체육 선생님에게 소환된 언니들로 보였다. 학교에서도 우리 중딩 4인방을 ‘고1’이라고 속이고 고등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승인하면서(우리 시골이 이렇게나 유연합니다 여러분) 나의 ‘슬램덩크 시기’가 열렸다.
슬램덩크 시기에 배운 것들
같은 팀 멤버들과 합을 맞추는 기쁨과 벅참을 배운 여름이었다. 나는 '세상에 내 동료가 7명이나 있다'는 것에 매일 아침 감격에 가까운 기쁨으로 기상했고, 약속한 플레이를 잘 해내서 우리 팀 멤버들과 힘께 기뻐하고 싶어서 훈련을 참고 버텼다. 재치대장 센스 쟁이 멤버 K가 콜 없이 던져 보낸 노룩패스를 받아 키 큰 언니들을 피해 득점에 성공한 날이나, 키가 제일 작았던 멤버 H가 갈고 닦은 ‘비장의 무기’ 3점 슛이 들어간 날은 노래가 절로 나왔다(그래서였나? 노래방도 자주 갔다). 너무 진심'이었던 나머지, 팀과 함께 하면 승리의 기쁨은 배가 되었고 패배의 설움은 트리플이 되었다.
사람을 보는 다른 눈도 얻게 됐다. 차출된 언니들은 취업을 준비하던 실업계 학생들이었는데, 선생님들이 예뻐하는 ‘모범생’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여학생'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껌 좀 깨나 씹을 듯한’ 포스와 분위기, ‘여학생답지 못한’ 큰 체구와 목소리는 코트 위에서 상대 팀을 제압할 수 있는 첫 인상, 주장으로서의 리더십, 경기 중 멤버 하나 하나를 관장하는 우렁찬 콜, 골대 아래에서의 치열한 볼 다툼과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파이팅의 근원이 되었다. 체구가 작고 소심했던 나는 언니들이 몸싸움으로 시간과 공간을 벌어주는 동안 한 마리 소금쟁이처럼 재빠르게 볼을 배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로 다른 자원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보완해주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좋은 팀'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 덕에 느꼈던 여름이었다.
생활체육인의 열정과 광기
하나의 종목에 '대단히 애쓰지 않고도' 이것저것 얇고 넓게 경험할 수 있었던 유년시절의 환경은 나라는 사람과 케미(?)가 좋았다. 나는 지금도 ‘원데이클래스’가 잘 맞다. 농구, 탁구, 주짓수, 서핑, 프리다이빙, 사격, 양궁을 다양하게 기웃거리며 내 종목을 찾고 있다. ‘피땀눈물’ 없이 ‘얻어걸린 기회(?)’로 취하는 기쁨을 ‘성취감’으로 착각하며 선생님 칭찬 한 번에 ‘뭐야.. 나 재능있나..? 이러다.. 뭐 되는 거 아냐?’(시작한 지 30분 경과)로 시작해서, 일주일 정도 '국가대표급 과몰입'이 시작되었다가, 조용히 내적 은퇴를 결심한다.
그런 내가 요즘, 축구팀에 들어가 다시 팀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유니폼과 등번호도 생겼다. 팀을 위해 내가 더 잘 하고 싶고, 우리 팀 멤버들이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는 게 마치 내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한 냥 이리저리 과몰입하고 있는 내가 좀 웃기다. 실력이나 노력에 비해 의욕과 승부욕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여전해서 밤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나 프로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찾아본다. 나도 당장 새벽 5시에 일어나 100일 특훈 같은 걸 시작하고 싶다. 뻐렁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도 꼭 짱이 돼야지' 하며 잠이 든다. 보통은 생각에서 그치는데, 최근 사무실에 기질이 유사한 ‘스포츠 과몰입러 동료’가 입사하면서 생각이 행동으로, 열정이 유사 광기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풋살장 예약, 주 3-4회 풋살, 개인훈련, 영상인증, 장단점분석, 훈련용품 쇼핑, 멘탈 강화, 단백질섭취 등등을 상호 독려하며 우리의 본업은 무엇일까, 정체성의 혼란을 함께 겪는 중이다. 그게 또 그렇게나 즐겁고 행복하다.
단기 과몰입러답게 이 열정은 얼마 못 가 차갑게 식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팀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 내 안의 자체 발전 에너지가 고갈되면 동료들이 땔감을 던져준다. 오래 전, 시골마을 체육관 마루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새겨온 내 안의 무늬가 이야기하길, 나의 멤버들이 기다리는 한, 나는 다시 동료들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도 풋살공이 발바닥에 스치운다.
+이 원고를 마감한 날 저녁, 풋살 게임을 하다가 풋살공이 발에 잘못 스치는 바람에 목발 신세를 지게 됐다. 과몰입러 여러분, 부상을 조심하세요. 그라운드에서 만나요 우리!
노새(홍연지)
❚ 여는 민우회 성평등네트워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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