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샤먼〉.. 차곡차곡 무속붐이 이는 가운데 이끔이는 이런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국 무속신앙에 대해 여성주의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야기는 없을까?
그러던 와중에 민속학자 황루시의 『뒷전의 주인공: 굿의 마지막 거리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어요. “‘오너라 청하면 고마워서 오고 오지 말라면 밉살맞아서도 오는’ 뜬신들은 굿판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마음껏 춤추며 위로받고 돌아간다. 살아생전 해결되지 못한 아픔과 고통으로 생긴 이들의 한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풀어 주는 것이 뒷전이다.” 라는 책 소개글이 아주 흥미로웠답니다. 무속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바가 없어서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좀처럼 인원이 모이지 않아 마음을 졸이며 2차, 3차 홍보물을 올린 끝에..
4명의 소중한 회원분들이 뒷전(약칭)에 함께 해주셨어요! (눈물)
소모임 첫 회의 대미(?)는 역시 민우회 문화를 함께 읽는 시간이죠!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고민하고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모임원 분들 모두 소모임 홍보물을 보고 ‘무속이 왜 민우회에서 나와..?’라는 의문+호기심을 가지셨다고 전해주셔서 와하하 웃었답니다. 첫모임에서 우리 생활 속에 남아있는 무속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눴어요. 예를 들어, 차를 처음 사면 술을 뿌린다든지, 가게를 열면 가벼운 의례를 치룬다 든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남아있는 무속신앙의 흔적이 많구나,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첫번째 모임 장소에서 이끔이는 “⌜파묘 PLAYLIST⌟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를 틀어놓고 앉아서 모임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무서워하며 입장했다.)
1장은 저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장이었어요. 폰트도 가독성 있는 크기이고 분량도 적어서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모르는 단어가 참 많더라고요.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 단어들도 있고, 무속 용어도 있어서 모임원 분들과 나누기 위해서 자료를 준비해갔답니다.
어떤 분들은 느낌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잘 모르는 단어가 많아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길 나눠주셨어요. 이끔이도 단어만으로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라서 굿을 묘사한 부분에서 상상하기 어려워서 매우 공감했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모말 같은 단어는 찾아보면 나오는 이미지를 보며, ‘아! 이거 시장에서 콩 따위를 팔 때 쓰는 그거구나.’ 하며 책에서 묘사된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답니다.
앞장에 쓰인 ‘저자의말’에 자신의 글이 너무 가볍다는 피드백을 받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크게 개의치 않는 저자의 기개(?)에 흥미로워하기도 하고, 마지막 문단이 좋았다는 공통된 의견도 나누었어요. 이끔이인 저도 매우 좋아하는 문장이라 같이 나누고 싶어서 PPT 자료에 아래와 같이 포함하기도 했답니다.
참! 이날 모임원 분께서 추천해주신 무속+스릴러 만화가 있었는데요. 한혜연 작가의 『애총』이에요. 추천해주신 분이 너무 무서워서 다시는 읽지 못할 것 같다구, 하지만 무속에도, 미스터리에도 관심이 있다면! 이라며 궁금증을 남겼답니다. 『애총』과 함께 『기묘한 생물학』도 추천해주셨어요. 아쉽게도 두 작품 모두 절판이라 이끔이는 눈물을 머금고 중고도서를 살피고 있답니다.
(두번째 모임 장소에서 이끔이는 첫 번째 모임 전에 선택한 플레이리스트는 컨셉이 너무 과했나 싶어 황병기의 앨범 「침향무」를 틀어놓고 기다렸다.)
2장은 저자가 인상 깊게 봐온 뒷전의 모습들에 대한 개인적 소회나 감상이 쓰여진 파트인데요. 각 지역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도당굿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저서 놀랍기도 했어요. 공동체 굿이라고도 하는 도당굿 중 답십리 도당굿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신묘했답니다. 굿이 시작되면 “신성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들의 신과 마을 주민만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독립된 우주”가 되는 마을에는 누구도 출입이 불가하다는 굿의 규율이 흥미로웠는데,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이 굿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마치 드라마나 영화와 같았어요. (저자는 1970년대에 그 굿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굿의 마지막 순서인 뒷전은 신이 되지 못한, 뜬신들, 잡귀들, 저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귀신들을 불러 앉혀놓고 멕이고 돌려보내는 시간이라 합니다. 필연적으로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산 사람(주로 여성)의 노동으로 죽은 사람까지도 든든히 먹여 보내야 하는(의례에는 남성들만 참여함으로써 생색은 따로 내고) 이 의례에 다소 질리면서도, 제사상을 받을 수 없는 뒷전의 주인공들을 풀어 먹이는 모습에는 이제는 사라진 공동체의 테두리를 느끼게 하기도 했어요.
굿판은 엄숙하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특유의 해학과 골계미가 돋보이는 장이고, 공동체굿의 경우 꼭 마지막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정신없이 춤판을 벌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굿 안 한다’는 말이 있다는데 무당 못지 않은 신명 난 춤사위를 보이는 마을 여성들의 춤판이 그들에게 얼마나 속 시원한 자리였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굿판은 여자, 특히 할머니들의 공간”이라는 것, “동해안에서는 별신굿하는 시기에 맞춰 일종의 굿 투어를 하는 할머니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표했어요. 마치 봄에는 벚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가듯이 먹을 것도 풍부하고 여차하면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서 자면" 되니 숙식이 해결되는 이 투어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재미난 이벤트였을까 싶었답니다.
이어 세 번째 모임에서는 3장에 대한 이야길 나누었는데요. 청각장애인 "장님", 아이를 낳는 도중에 아이를 잃은 여성 "하탈귀", 발달장애인으로 추정되는 "바보귀신", 몸이 불편한 장애인 "꼽추"를 묘사하는 뒷전굿의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이 불편하고 아쉬웠는지 이야길 나눴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채 억울하게 죽은 뜬신들에 대해 뒷전의 기능이 이들을 장애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매우 불편했으며, 장애가 사회적 시선 속에서 어떻게 이들의 삶을 제한하고 구속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회복"에 머문다는 점에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유의 노래 <Love wins all>의 뮤직비디오에서 all(모든 존재)에서 두루뭉술하게 지워지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다른 모임에서는 어쩌면 나눌 수 없을 법한 이 아쉬움과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민우회 소모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는 모임원의 이야길 들으며 활동가로서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네 번째 모임에서는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아서 그간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떠올리며 내가 하고 싶은 굿(!?)에 대해 쓰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이끔이의 생각보다 다들 매우 진지하게 임해주셔서 준비하길 잘했다 생각한 시간이었답니다.
🙏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을 앞두고, 먼저 떠나간 트랜스젠더를 추모하고 위로하는 굿을 열어 트랜스젠더와 앨라이 친구들이 함께 먹을 것을 나눠먹는 '트랜스젠더 추모굿' (집회와 시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굿..!)
🙏 성차별적인 상황이나 시선, 말과 행동 속에서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말할 수 있는 '내가 페미다 굿'
🙏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엄마에게 받은 통제와 억압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그 속박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풀어나가는 굿
🙏 제각기 마음 속에 화(火)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무당이 풀어주고 춤판 끝에 그 이야기를 담은 종이를 불태우는 '화火굿'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이 모임에서 '무속'을 주제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답니다. 다음에는 어떤 모임을 통해 어떤 회원 분들과 만날 수 있을까, 또 즐겁게 궁리해보려고 해요!
🌟모임 후기🌟
낭미
뒷전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마음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루나
뒷전을 주인공으로 해석해보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제 삶에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것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선이
책 내용을 기회로 사회적 약자나 저 자신,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소하
뒷전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다루는 방식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뒷전도 중요하다!
은수
책에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아쉬운 부분들도 많았지만, 모임원 분들과의 열띤 이야기들 속에서 채워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한국의 무속신앙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의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에서 이끔이가 준비한 음악]
⌜파묘 PLAYLIST⌟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https://youtu.be/W5qqmM-ZleA?si=quaewaUmTZHTJXwu
황병기 1집 「침향무」
https://youtu.be/6lQmzedvcRs?si=Js52l2G56Bk-U4QM
마음을 울리는 사극 Playlist
https://youtu.be/_3nWZ-B6RcI?si=tXrf5lePILj_K6CT
[모임 PPT에 언급된 노래]
안예은의 <창귀*>
https://youtu.be/zcyn9HZZ6vs?si=ZbQU7j_7DQlAaKtJ
~ 내맘대로 배경지식◝(・▿・)◜~
창귀*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이 된 귀신을 칭한다. 호환마마, 산군 등으로 불리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창귀는 성불하기 위해 호랑이의 귓가에 자신을 대신할 사람의 이름을 속삭인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이 있는 집은 마을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곤 하는데, 창귀가 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름부터 말한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영화 〈파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샤먼〉.. 차곡차곡 무속붐이 이는 가운데 이끔이는 이런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국 무속신앙에 대해 여성주의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야기는 없을까?
그러던 와중에 민속학자 황루시의 『뒷전의 주인공: 굿의 마지막 거리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어요. “‘오너라 청하면 고마워서 오고 오지 말라면 밉살맞아서도 오는’ 뜬신들은 굿판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마음껏 춤추며 위로받고 돌아간다. 살아생전 해결되지 못한 아픔과 고통으로 생긴 이들의 한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풀어 주는 것이 뒷전이다.” 라는 책 소개글이 아주 흥미로웠답니다. 무속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바가 없어서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좀처럼 인원이 모이지 않아 마음을 졸이며 2차, 3차 홍보물을 올린 끝에..
4명의 소중한 회원분들이 뒷전(약칭)에 함께 해주셨어요! (눈물)
소모임 첫 회의 대미(?)는 역시 민우회 문화를 함께 읽는 시간이죠!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고민하고 실현하는 공동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모임원 분들 모두 소모임 홍보물을 보고 ‘무속이 왜 민우회에서 나와..?’라는 의문+호기심을 가지셨다고 전해주셔서 와하하 웃었답니다. 첫모임에서 우리 생활 속에 남아있는 무속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나눴어요. 예를 들어, 차를 처음 사면 술을 뿌린다든지, 가게를 열면 가벼운 의례를 치룬다 든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남아있는 무속신앙의 흔적이 많구나,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첫번째 모임 장소에서 이끔이는 “⌜파묘 PLAYLIST⌟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를 틀어놓고 앉아서 모임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들 무서워하며 입장했다.)
1장은 저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장이었어요. 폰트도 가독성 있는 크기이고 분량도 적어서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모르는 단어가 참 많더라고요.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 단어들도 있고, 무속 용어도 있어서 모임원 분들과 나누기 위해서 자료를 준비해갔답니다.
어떤 분들은 느낌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잘 모르는 단어가 많아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길 나눠주셨어요. 이끔이도 단어만으로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라서 굿을 묘사한 부분에서 상상하기 어려워서 매우 공감했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모말 같은 단어는 찾아보면 나오는 이미지를 보며, ‘아! 이거 시장에서 콩 따위를 팔 때 쓰는 그거구나.’ 하며 책에서 묘사된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답니다.
앞장에 쓰인 ‘저자의말’에 자신의 글이 너무 가볍다는 피드백을 받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크게 개의치 않는 저자의 기개(?)에 흥미로워하기도 하고, 마지막 문단이 좋았다는 공통된 의견도 나누었어요. 이끔이인 저도 매우 좋아하는 문장이라 같이 나누고 싶어서 PPT 자료에 아래와 같이 포함하기도 했답니다.
참! 이날 모임원 분께서 추천해주신 무속+스릴러 만화가 있었는데요. 한혜연 작가의 『애총』이에요. 추천해주신 분이 너무 무서워서 다시는 읽지 못할 것 같다구, 하지만 무속에도, 미스터리에도 관심이 있다면! 이라며 궁금증을 남겼답니다. 『애총』과 함께 『기묘한 생물학』도 추천해주셨어요. 아쉽게도 두 작품 모두 절판이라 이끔이는 눈물을 머금고 중고도서를 살피고 있답니다.
(두번째 모임 장소에서 이끔이는 첫 번째 모임 전에 선택한 플레이리스트는 컨셉이 너무 과했나 싶어 황병기의 앨범 「침향무」를 틀어놓고 기다렸다.)
2장은 저자가 인상 깊게 봐온 뒷전의 모습들에 대한 개인적 소회나 감상이 쓰여진 파트인데요. 각 지역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도당굿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저서 놀랍기도 했어요. 공동체 굿이라고도 하는 도당굿 중 답십리 도당굿에 대한 묘사가 매우 신묘했답니다. 굿이 시작되면 “신성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들의 신과 마을 주민만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독립된 우주”가 되는 마을에는 누구도 출입이 불가하다는 굿의 규율이 흥미로웠는데,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이 굿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마치 드라마나 영화와 같았어요. (저자는 1970년대에 그 굿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굿의 마지막 순서인 뒷전은 신이 되지 못한, 뜬신들, 잡귀들, 저마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귀신들을 불러 앉혀놓고 멕이고 돌려보내는 시간이라 합니다. 필연적으로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산 사람(주로 여성)의 노동으로 죽은 사람까지도 든든히 먹여 보내야 하는(의례에는 남성들만 참여함으로써 생색은 따로 내고) 이 의례에 다소 질리면서도, 제사상을 받을 수 없는 뒷전의 주인공들을 풀어 먹이는 모습에는 이제는 사라진 공동체의 테두리를 느끼게 하기도 했어요.
굿판은 엄숙하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특유의 해학과 골계미가 돋보이는 장이고, 공동체굿의 경우 꼭 마지막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정신없이 춤판을 벌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굿 안 한다’는 말이 있다는데 무당 못지 않은 신명 난 춤사위를 보이는 마을 여성들의 춤판이 그들에게 얼마나 속 시원한 자리였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실 굿판은 여자, 특히 할머니들의 공간”이라는 것, “동해안에서는 별신굿하는 시기에 맞춰 일종의 굿 투어를 하는 할머니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표했어요. 마치 봄에는 벚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가듯이 먹을 것도 풍부하고 여차하면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서 자면" 되니 숙식이 해결되는 이 투어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재미난 이벤트였을까 싶었답니다.
이어 세 번째 모임에서는 3장에 대한 이야길 나누었는데요. 청각장애인 "장님", 아이를 낳는 도중에 아이를 잃은 여성 "하탈귀", 발달장애인으로 추정되는 "바보귀신", 몸이 불편한 장애인 "꼽추"를 묘사하는 뒷전굿의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이 불편하고 아쉬웠는지 이야길 나눴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채 억울하게 죽은 뜬신들에 대해 뒷전의 기능이 이들을 장애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매우 불편했으며, 장애가 사회적 시선 속에서 어떻게 이들의 삶을 제한하고 구속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회복"에 머문다는 점에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유의 노래 <Love wins all>의 뮤직비디오에서 all(모든 존재)에서 두루뭉술하게 지워지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다른 모임에서는 어쩌면 나눌 수 없을 법한 이 아쉬움과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민우회 소모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는 모임원의 이야길 들으며 활동가로서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네 번째 모임에서는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아서 그간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떠올리며 내가 하고 싶은 굿(!?)에 대해 쓰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이끔이의 생각보다 다들 매우 진지하게 임해주셔서 준비하길 잘했다 생각한 시간이었답니다.
🙏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을 앞두고, 먼저 떠나간 트랜스젠더를 추모하고 위로하는 굿을 열어 트랜스젠더와 앨라이 친구들이 함께 먹을 것을 나눠먹는 '트랜스젠더 추모굿' (집회와 시위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굿..!)
🙏 성차별적인 상황이나 시선, 말과 행동 속에서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말할 수 있는 '내가 페미다 굿'
🙏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엄마에게 받은 통제와 억압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그 속박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풀어나가는 굿
🙏 제각기 마음 속에 화(火)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무당이 풀어주고 춤판 끝에 그 이야기를 담은 종이를 불태우는 '화火굿'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이 모임에서 '무속'을 주제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답니다. 다음에는 어떤 모임을 통해 어떤 회원 분들과 만날 수 있을까, 또 즐겁게 궁리해보려고 해요!
🌟모임 후기🌟
낭미
뒷전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마음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루나
뒷전을 주인공으로 해석해보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제 삶에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것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선이
책 내용을 기회로 사회적 약자나 저 자신,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소하
뒷전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다루는 방식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뒷전도 중요하다!
은수
책에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아쉬운 부분들도 많았지만, 모임원 분들과의 열띤 이야기들 속에서 채워지는 느낌이 좋았어요. 한국의 무속신앙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의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에서 이끔이가 준비한 음악]
⌜파묘 PLAYLIST⌟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https://youtu.be/W5qqmM-ZleA?si=quaewaUmTZHTJXwu
황병기 1집 「침향무」
https://youtu.be/6lQmzedvcRs?si=Js52l2G56Bk-U4QM
마음을 울리는 사극 Playlist
https://youtu.be/_3nWZ-B6RcI?si=tXrf5lePILj_K6CT
[모임 PPT에 언급된 노래]
안예은의 <창귀*>
https://youtu.be/zcyn9HZZ6vs?si=ZbQU7j_7DQlAaKtJ
~ 내맘대로 배경지식◝(・▿・)◜~
창귀*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이 된 귀신을 칭한다. 호환마마, 산군 등으로 불리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창귀는 성불하기 위해 호랑이의 귓가에 자신을 대신할 사람의 이름을 속삭인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이 있는 집은 마을 공동체 내에서 소외되곤 하는데, 창귀가 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름부터 말한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