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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후기] 오타쿠라도 페미가 하고싶다면?

2025-11-11
조회수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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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오타쿠라도 페미가 하고 싶어!〉 모임 홍보물) 


본격 페미니스트 오타쿠 대화 모임, 

〈오타쿠라도 페미가 하고 싶어! ~덕질에서 페미니즘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통칭 오타페미!) 소모임이 

6월 16일부터 8월 25일 뒤풀이 모임까지, 여섯 번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어이, 후기 너무 늦잖냐~!👊후다닥) ← 이런 옛날 오타쿠식 표현으로 뒤늦은 후기에 양해를 구해봅니다.😢


통하는 분은 들어와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애니메이션 대사를 패러디한 수상쩍은 홍보물을 올렸는데요.

(후기에서 살짝 전해보는 패러디의 원전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미래일기〉, 〈Fate/stay night〉, 〈신세기 에반게리온〉,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외톨이 THE ROCK!〉,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입니다.)      

이런 불친절한 오타쿠 통신에 감응(?)해주신 회원 여섯 명이 모여주셨답니다. 

회원 고릴라, 공일, 센, 소해, 해준, 현지현과 활동가 온다가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첫 번째 모임은 모두가 참여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오타쿠가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은 역시 무엇을 사랑했고, 사랑하느냐를 말하는 것이겠지요…!(삶이었습니다, 삶!)

그래서 첫 모임의 이야기 주제는 나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대상)를 소개하며 덕질 여정을 이야기하기였어요. 

오타페미 모임이니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페미오타쿠인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최애(예: 페미로서 '길티플레저'인 최애, 페미니스트로서 의미 있던 사건과 관련된 최애, 이런 걸 좋아해도 될까? 고민하게 한 최애…)를 소개하기로 했답니다. 


좀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케이크를 준비해서 그 위에 최애의 사진을 꽂으며 소개했어요. 

('hear me out cake'라는 이 놀이는 원래 여럿이 돌아가며 솔직히 드러내기 어렵거나 비주류인 취향의 최애를 케이크 위에 꽂으며 소개하는 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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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다양한 캐릭터 사진이 책상 위에 늘어놓아져 있는 사진)


모임 전에 미리 각자의 최애 사진을 받아다가 열심히 오려서 픽을 만들었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캐릭터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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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작은 초코케이크 위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사진이 붙은 꼬지가 꽂혀 있는 사진)


이야기를 다 나누고 나서 완성(?)된 케이크의 모습이에요.

윤리적 문제를 던지는 작품에서 고민 없이, 인물의 비윤리적인 부분까지 미화하며 열광하는 팬 문화에 대한 고민, 

게임사가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하는 바람에 더는 플레이할 수 없게 된 게임 캐릭터들 이야기(그리고 불매라는 방식에 대한 고민…),  

여성혐오적이고 전형화된 여성 캐릭터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던 최애 이야기,

여성 유튜버를 인기 순위 경쟁에 몰아넣는 업계 속에서 팬으로서 느끼는 딜레마까지…

픽 하나 하나에 얽힌 이야기들에 서로 공감하고, 반가움에 박수를 치고, 때론 같이 탄식을 내뱉기도 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동질감이 샘솟고,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었답니다. 



두 번째 모임은 고릴라, 공일, 센, 소해, 해준, 현지현, 온다가 함께했습니다. 

탱알,『다 된 만화에 페미니즘 끼얹기』를 읽고 만났어요. 

2019년에 출간된 이 책은 '여성 서사'라는 키워드로 읽어볼 만한 웹툰 14편을 비평하고 있었어요. '코르셋', 비혼주의, 퀴어, 여성연대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지요. 

이러한 주제들은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오타쿠들이 작품을 고르고 읽고 즐기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기에,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기에 좋은 마중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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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나눈 뒤, 네 가지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1. 나의 덕질 과정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어떤 의미였나요? 

2. 내 장르에 대해서 '빻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반대로 '클린 장르'라는 말은요?  

3. '여성서사'라는 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 

4. 내가 좋아하는 페미니즘적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페미니즘과 각자의 덕질 경험이 만나고 부딪힌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페미니즘이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더 잘 읽고 즐길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기보다, 

타인의 덕질을 규정하고 단죄하는, 일종의 '오타쿠 도덕률'로 기능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나누어졌습니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만 기념 사진 찍기를 잊어버렸답니다.   



세 번째 모임은 고릴라, 공일, 해준, 센, 소해, 온다가 함께했습니다. 

키워드 토크로 진행했는데요.

주어진 키워드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각자 3개씩 고르고,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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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키워드 토크'라는 제목 아래 다양한 키워드들이 나열되어 있는 PPT화면 이미지. '폭력 재현/안전/동의/무해함/트리거워닝/유사연애/성애/젠더프리/디폴트여캐/남성임신/여성향/남성향/에이엄브렐러/젠더밴딩/TS/뇨타/단타/남성성/여성성/트랜스젠더/젠더퀴어/올젠더/오토코노코/포르노/욕망/판타지/남미새/임출육/이입/공수/리버스/삽입권력/드림/나페스/오메가버스' 라는 키워드가 쓰여 있다. )


오타쿠로서 만나게 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다양한 키워드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어요.

전형화된, 때로는 혐오적인 재현 속에서 젠더 경계를 넘나드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어떻게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지,

폭력 재현의 윤리에 관한 논의가 '트리거 워닝'의 유무에서 멈춰있지는 않은지,

또한 오타쿠계에서 어떤 가치 규범과 성적 위계가 작동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누어졌습니다.

 

나의 섹슈얼리티와 덕질 '취향'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에이엄브렐러로 정체화하는 입장에서 로맨스 서사를 어떻게 읽고 즐기고 있는지,

덕질을 하면서 인식하는, 나에게 위험할 수 있지만 멈출 수 없는 끌림이 어떤 느낌인지…(탁월한 비유와 함께!)

 

언제 이런 키워드를 가지고 구구절절한 부가 설명 없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타페미! 모임에서 함께 만난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되었어요.



네 번째 모임은 고릴라, 소해, 현지현, 온다가 함께했습니다. 

구성원들이 추천한 책 중 한 권을 골라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요. 

고릴라 님이 추천한 안지나,『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를 읽고 만났답니다. 

이 책은 주로 여성들이 읽고 쓰는 장르인 로맨스 판타지에서 다루어지는 소재와 서사구조를 통해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동시대 여성 독자들의 욕망과 의지를 읽어내고 있었어요. 


"두 작품 모두 여자 주인공이 멋진 남자 주인공과 맺어지지만, 서사의 초점은 그들과의 사랑이 아니다. (중략) 안전, 사회적 위치, 명예, 부유함, 권력, 가족의 사랑, 매력적인 이성과의 연애. 로맨스 판타지가 드러내는 여성의 욕망은 일견 어리게 보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젊은, 혹은 어린 여성들에게 이처럼 당연한 욕망을 안전하게 꿈꿀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있었는가?" 


"내가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웹소설이 그 자체로 페미니즘적인 경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성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나아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이를 응원하는 것. 로맨스 판타지의 생명력은 바로 그 여성의 생생한 욕망과 함꼐 호흡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비롯한 웹소설을 덕질하는 구성원이 있어 이야기가 더 풍부해졌는데요.

특히 '육아물'에서 엿보이는 가부장제에의 편입 욕구와 그것이 오히려 폭로하는 지금의 성별 관계의 민낯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누어졌어요.  

또한 로맨스 판타지뿐 아니라 다른 많은 장르에서도 드러나는 능력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로맨스 판타지를 비롯한 웹소설의 다양한 하위 장르, '태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타쿠의 다양한 욕망, 특히 굴절된 욕망에 대한 것으로 흘러가기도 했어요. 

욕망을 굴절시키는 오타쿠 공동체 내의 잣대들에 대해서도요.

트위터(X)에서 한창 여성향 로맨스에서의 강간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던 때여서 이에 대해 토론해보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독자들이 같은 태그에서 만날 때 생기는 충돌(가령 '피폐물'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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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보도 위에서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 책과 음료수 컵을 모아 들고 찍은 기념 사진)



마지막 모임은 고릴라, 공일, 현지현, 온다가 함께했습니다. 

내가 덕질한 작품 중 페미니즘과의 관련성 속에서 추천하고 싶은 작품, 내가 페미니즘 관점으로 읽었더니 재미있었던 작품 등을 골라 영업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페미니스트 오타쿠인 우리는 그럼에도 왜 덕질을 하는 걸까? 우리의 덕질이 어떤 정치가 되면 좋을까?라는 주제로 모임을 마무리하는 대화를 가졌습니다. 


이날 각자가 영업한 작품은 구성원들 간의 즐거운 비밀(?)로 남겨두려고 해요.

민우회의 '쏟.콘.빛'에서 이미 여러 번 추천되었을 만큼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자주 거론되는 작품에서부터,

어떤 주제는, 가령 여성과 여성 사이의 사랑은 여전히 무대 위 재현만으로도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냄을 보여준 작품,

'미소녀'라는 특정한 장르 문법 안에서지만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와 욕망을 그려내며 새로운 소비층을 구성한 작품, 

여성혐오적이라고, 성적대상화 그 자체라고 여겨지는 장르에서도 페미니즘 관점으로 다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까?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작품까지!

서로의 영업을 듣고, 질문하고, 재차 의심하고(?), 토론하고… 하지만 결코 함부로 평가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영업의 시간이었답니다. 


그리고 우리의 덕질이 어떤 정치가 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다양한 욕망에 섣부른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욕망의 존재 자체를 억압하지 않음으로써, 

그 욕망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방식과 그에 수반하는 문제들도 함께 열어놓고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래야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과 개입이 가능할 테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론은, 무엇보다 서로에게, 가까이의 오타쿠 동지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것을 좋아하며 같이 즐겁게 놀고, 대화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개입하거나 붙잡을 수 있는 관계를 더 많이 만들자고요.

남을 평가하고 단죄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같이 노는 즐거움을 되살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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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책상에 둘러앉은 현지현, 고릴라, 공일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 얼굴에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친절한 동지들과 만날 수 있어 기쁘고 의미 있었던 오타페미! 모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