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다고 생각이 되고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여성으로서는 기본적으로 다니기 좀 편한 것이 있고, 또 하여간에 책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깊고 세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느낌도 있어요. 편집자든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그런 점에서 괜찮은데 또 흔히 여초 직군에서 보이는, 위로 갈수록 남성이 많아지는 건 비슷해요. 여성 상급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율상으로 사장이나 부장급들은 남자가 더 많아 보이는 점은 비슷한 것 같고. 경력이 좀 덜 되거나 젊은 분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훨씬 많은 편이죠. 그런 점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냐고 한다면 전반적으로 괜찮다고 답하기는 하지만,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한계도 있고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어요.
- #페미니스트_페미니스트라는 세계([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작가, 사계절출판사 차용)
고부가같이: 언론고시를 오래 준비했다면 그 당시 하고 싶은 이야기, 관심 있는 사회이슈는 어떤 게 있었나요?
단호박: 언론에서 사회적으로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비추고 싶었어요. 특히 지역, 여성,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나 혐오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미디어가 누군가를 쉽게 혐오하게 만드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혐오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혐오 받는)어떤 대상에 대해서 더 많이 보여주고, 당사자에게 마이크를 주면 편견을 불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주도에 난민 수용한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이 공포감에 가짜뉴스도 많이 믿었고, 막연한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속지 않기를 바랐고,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전달하고 싶었어요.
고부가같이: 그랬군요. 제 친구 중에 예멘에서 난민으로 한국에 온 분과 친해진 사람이 있어요. 반면 굉장히 부정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무심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사회적으로 어떤 마이크가 되게 집요하게 안 좋은 시각을 부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냉정하게 보면 난민에 대해(또는 다른 어떤 소수자에 대해서라도) 포용적이거나, 아님 설령 따뜻한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라리 잘 모르거나 무심한 사람이 많을 수 있는데, 마치 적극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대세이고 그게 보통인 것처럼 자꾸 그게 일각에서(언론 등) 계속 재생산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단호박: 저는 그 당시에 도서관에서 이슬람 문화에 관련한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문화적인 배경 없이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가 난무했으니까요. 그런데 책에서 이슬람은 평판을 중시하고,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에게 욕 먹을 짓을 잘 하지 않는다고 써둔 게 있었어요. 이런 문화적 배경을 조금만 고려했어도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를 싫어하지 않을텐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부가같이: 무슨 십자군 전쟁 때처럼 이상한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근데 또 우리가 페미니스토로서 만났으니까 아시겠지만 일군의 혐오가 있었잖아요.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 혐오적인 것을 이유로 들어서 난민을 반대하고, 혐오하고 그랬잖아요. 이슬람이 성폭행을 많이 한다든지 그러니까 여자를 꽁꽁 묶어 가둬두고 하는 것들이 뒤섞인 것들이요.
단호박: 맞아요. 공포를 더 증폭시켰죠.
고부가같이: 그런데 그런 공포심이 동력으로 사람들에게 혐오가 되었잖아요. 그러한 혐오를 저항감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같은 여성들을 보면서 약간 위기감 같은 게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판이 짜이는구나 싶어서요. 어떤 때는 동지나 동료나, 친구인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또 갈리게 되는구나 싶어서요. 저는 트위터를 열심히 한 사람인데 2015, 16년에 페미니즘이 다시 떠오를 때 같이 놀던 사람들 중에 2018년, 19년에 다시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 블락(차단)을 하면서요. 분명히 2017년 정도까지는 각자 페미니스트였던 사람들과, 새롭게 정체화한 사람들이 서로 공부하고 다같이 욕하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어느 순간 약간 못 보겠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예요. 친구들끼리는 언어의 수위를 조정하고, 의견 차를 좁혀가는 노력을 하잖아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이는 정말 안 보이면 끝이니까. 당장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어린 남성에 대한 혐오라든지 그런 것이요. 실은 제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두려움과 혐오감, 한심함, 배제해버리고 싶은 감정들이 있기 때문에 뭔지 알겠는 면도 있고 그래서 더 아득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또 예를 들어서 탈코르셋 이런 운동도 당연히 의미가 있었지만, 탈코르셋 안 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든지, 기혼 여성을 비판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단호박: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어떤 시각에서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거든요. 여성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야 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건가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부가같이: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고 말씀하셔야 했던 적 있으세요? 스스로도?
단호박: 네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언론사 취직을 준비했으니까 ‘사상 검증을 한다’라는 이런 얘기도 들었던 거예요. 예상 질문으로 ‘페미니스트냐’라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를 고민했었어요. 그때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여성의 일자리의 질, 임금차별 같은 것을 봤을 때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다’라고 답변을 준비했었어요. 면접관에 남성이 다수잖아요. 그럼 그 사람들이 봤을 때 듣기 편한 말이 뭐가 있을까 골랐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표현을 써가면서 차별점을 드러낼 수 있게 할지가 고민했었어요. 언론인은 중도를 지켜야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고 교육받잖아요. 어떻게 낙인찍히지 않으면서 내 말에 신뢰를 갖게 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다른 생각이지만, 당시의 고민은 그랬어요.

▲책 고르는단호박
- #페미니스트_책을 좋아하세요...(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작가, 민음사 차용)
단호박: 저는 대학 다닐 때 책의 ISBN을 정리해서 도서관에 비치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그때 신기했던 점은 책에서 봤던 사회, 문화적인 것들이 향후 2년 내에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더라고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현재 출판시장에서 감지되는 트렌드가 있나요?
고부가같이: 몇 년 전, 그러니까 6~7년 전에 페미니즘 붐이 왔잖아요. 물밀 듯이, 온갖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을 달았든 안 달았든 페미니즘 서적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제는 꼭 페미니즘 책이 아니라 그냥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는 책이 나오고 있어요. 한편 이제 워낙 백래시의 시대이고, 트렌드도 늘 바뀌어서 이제 페미니스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도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보다는 조금 다른 트렌드가 더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제가 산 책만 따져봐도 그렇고… 마이너리티(비주류)를 좀 더 전반적으로 더 발견하고 싶어 하는 흐름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이름 아래 ‘일반적’ 여자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이런 여성, 저런 여성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이제 여성도 넘어서서 교차성을 생각할 수도 있고, 아시아인일 수도 있고, 혹은 오히려 아프리카인이나 이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장애인, 어린이일 수도 있고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참 잘 됐잖아요. 어린이 자체도 당연히 중요한데, 사실 여성들이 어린이 문제에 더 예민하고, 어린이를 주양육자로 키우는 경우도 많고, 본인들도 다 어린이였고, 한편으로는 마이너리티(비주류) 사회적 약자로서의 그 마음을 겹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아시아나 아시아‘계’ 여성의 이야기, 특히 한국계이든 아니든 [마이너 필링스]나 [H마트에서 울다], [파친코]도 있고, 그런 책들이 각광을 받는 게 한국 여성도 서로를 계속 대화하긴 하지만 또 세계 속에서 한국 여성, 아시아 여성, 나아가 아시아계 여성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든지 그런 식으로 좀 넓은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베스트셀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잖아요. 읽을수록 너무 재밌는 책인데, 약간 총체적인 이야기잖아요. 과학책이 아니면, 에세이야, 소설이야? 이런 궁금증이 생기잖아요. 저자가 갑자기 자기 얘기도 하다가 갑자기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가, 또 막 온갖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 모든 것이 의외의 방식으로 잘 꿰어져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는데, 그런 책이 잘 된 것도 독자들의 목마름이 좀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어쨌든 그런 책이 다 나오면 반응할 독자들이 있는 거죠.
단호박: 맞아요. 여성들이 책을 많이 구매하죠. 저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어느 시점부터는 여성 창작자의 책들만 사요. 두 개의 책이 있다면 여성 창작자의 책은 사서 보고, 남성 창작자의 책은 빌려서 봐요. 제 방식으로 여성 창작자들의 기회를 응원하는 거죠.
고부가같이: 그렇군요. 예전에 뭘 검색하다가 극우 남초 커뮤니티에서 “출판계는 완전 페미 소굴”이라고 한탄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확률적으로 페미니스트가 책을 더 많이 사고 많이 만드는 걸 어떡합니까? 억울하면 책 사!(웃음)

▲도서관의 페미니즘 도서들

▲서점의 페미니즘 도서들
단호박: 고부가같이님은 쉬는 날에도 책을 보시는지 궁금해요.
고부가같이: 저는 의외로(?) 봐요. 짐을 덜어 놓으니까 재밌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저는 책을 잘 안 봤어요. 사기만 하고. 사는 걸로 읽었다고 착각하거나 자신을 속이고, 책들을 보면서 ‘아! 그래 내가 저런 책도, 저런 책도 샀으니까’라고 생각하고, 나의 지금 정신 세계를 다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랬는데, 사실은 머리말도 안 읽은 책도 있고, 책 소개 글 보면서 ‘그래 이런 책을 사야 돼’ 그런 마음으로 샀어요. 그런데 (안 읽어도 책을 사는 것) 좋아요. 출판계를 살리는 길이에요. 과거에는 사는 걸로 읽는 걸 대신했었는데, 그게 자꾸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결국 읽지 않는 나를 계속 인식을 하니까. 요즘에는 그냥 제가 재밌을 것 같은 책을 주로 읽어요. 제가 친구에게 되게 좋은 습관을 배웠는데요. 독서대 있잖아요. 독서대를 머리 말리는 공간에 놓는 거예요. 그리고 무조건 마음 먹은 책을 펼쳐놓는 거예요. 그러면 오며가며 머리를 말릴 때나 음악을 틀어놓거나 할 때 보는 거죠. 그럴 때 10페이지도 읽고, 습관처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게 책을 펼쳐놔야 읽지,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지나도 안 읽는 책이 진짜 많거든요. 그런데 저 독서법으로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하면서 점점 계속 읽게 돼가지고 제가 은근히 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단호박: 전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해요. 읽어야 할 수밖에 없게
고부가같이: 몇 권 정도 읽으세요?
단호박: 한 달에 한 권이요. 그런데 책을 사거나 꽂아두는 건 두세 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지하철 이동 시간이 길어요. 그래서 지하철 안에서 많이 읽게 되고, 독서 모임은 진짜 마지막 그날, 그 순간까지 읽어요. 독서모임은 3년차예요.
고부가같이: 못 읽은 채로 참석하실 때는 없으세요?
단호박: 있어요. 그럴 때는 양해를 구하죠. 그런데 저희는 기본적으로 숙제가 있어요. 호스트가 매달 바뀌는데, 호스트가 책도 선정하고, 책을 선정하면서 숙제도 같이 줘요. 얼마 전에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같이 봤는데 그때의 숙제 중 하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였어요. 숙제가 있으니까 본인이 다 읽지 않더라도 자기가 읽은 범위 내에서 숙제를 해가지고 와서 얘기해요.
고부가같이: 최근에는 뭐 읽으세요?
단호박: 여성환경연대에서 나온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를 보고 있어요. 요즘 돌봄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데 돌봄에 대한 얘기도 있고, 에코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도 있고요. 그런데 책이 6~7년 전에 나와서 올드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어요. 특히 모성에 대한 부분이요.
고부가같이: 저는 페미니스트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에코 페미니스트 같아요. 생각 없는 권력자들이 일반 시민들이 쫌쫌따리(소소하게 실천하는 행위)로 하는 일들을 말도 안 되게 바꿔버리는 것들이요. 예를 들어 최근엔 원전주의자들이 오히려 환경주의자로 행세하는 거 아시죠? 화석 연료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니까 원전을 쓰는 것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하지요. 우리 설마 탈원전 정도는 합의된 거 아니었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당당하게 원전이 미래인데 왜 원전을 안 하느냐는 걸로 탈바꿈하니까 골이 아프고 띵한 거 있죠. 그니까 어디서부터 틀렸다고 말해야 하나 싶은 거요.
단호박: 그러게요.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위원회 이야기가 쏙 들어갔어요. 고부가같이 님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되요. 저도 친구들이랑 우리가 백날 텀블러 안 가지고 다녀도 모른다 싶다가도 그런데 내가 알고, 니들이 안다고 말해요. 그럼 친구들이랑 또 힘을 내게 되고, 나라 걱정은 페미니스트들만 하는 거 같고요.
고부가같이: 진짜 미래 걱정이나 인류 걱정은 우리만 하나 싶고요. 희망 중 하나는 모두가 각자 시민들로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우리의 기준에서 (인류가) 반동이 많고 자기 파괴적이잖아요. 엄밀히 보면 우리 자신도 그런 행위를 하면서 살고….
단호박: 그래도 주위에 친구들과 동료들을 보면 미래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좀 더 나아질 것이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들이 있으니까, 백래시도 있지만.. 전 여전히 사람들이 모르고, 관심이 없어서인 것 같은데요.

▲단호박의 책장
-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으셨어요?여러번 읽은 책은?
고부가같이: [마이너필링스] 최근에 읽었고요. 그 다음에 박찬욱 책도 읽었어요. 여러 번 읽은 책은 아가씨의 원작이었던 [핑거스미스]를 쓴 세라 워터스의 책 중 [끌림]인데요. 3부작 중에 제일 덜 유명하고 인기가 없었지만, 그런데 그런 책 있죠? 영화도 그렇고. 다 보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는 책이요. 읽는 동안은 도대체 어떻게 끝내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싶은 서사를 계속 풀어놔요 뭐랄까, 약간 의구심이 계속 있는데 뭐야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싶은 되게 초현실적인 일인 것 같은데 싶은데 나중에 진상이랄까 어떻게 된 것인지 밝혀져요. 그럼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해요. [끌림]보다 [티핑 더 벨벳]을 먼저 읽으세요. 그게 제일 재밌어요. 그리고 제일 밝아요.
고부가같이: 책을 많이 읽으시는 단호박 님, 저도 책 추천 하나 해주세요.
단호박: 혹시 니체 좋아하세요...?, 저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여러 번 읽었어요. 책에서 “망치를 들고 철학을 하라”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체계라든지 관습이라든지 모든 것을 깨고 철학을 해야 된다고 말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절대적이지 않을 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만년설을 주장하거든요. 인간이 계속 만년 동안 같은 회로를 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뒤의 만년도 똑같이 챗바퀴 속에서 돌게 될 거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문제가 있거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변화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얘기해요. 제가 변화 해야할까 생각하게 될 때 니체의 철학이 도움이 됐어요.
고부가같이: 그러면 단호박님의 생에 계속해서 관여를 하고 있는 문장이에요.
단호박: 맞아요. 저는 스타벅스 닉네임(요즘은 안 가요)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철인의 이름이에요.
고부가같이: 기억해 놓을게요.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이렇게 알려주시면 단호박님을 단초로 삼아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왼:고부가같이님이 여러 번 읽은 책 ▲오:단호박이 여러 번 읽은 책
▲왼: [끌림], 세라워터스 작가, 열린책들 ▲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작가, 그린비
-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평가([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 민음사)
단호박: 예전에 알던 편집자가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되고 난 다음에 [82년생 김지영] 신드롬은 한국 문학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어요. 그 사람은 [칼의노래]를 썼던 김훈 작가를 최고의 문장가라고 생각한다면서요. 아마 그 사람은 [82년생 김지영]이 문장이나 서사가 문학적으로 낮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단지 현실을 보여줬을 뿐인데 인기가 있다는 것이 본인이 생각했을 때 문학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그 이후 시간이 흘렀고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도서가 되었죠. 저는 [82년생 김지영]이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낸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부가같이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부가같이: 저는 단호박도 이해가 되고, 친구분도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아요. [82년생 김지영]은 큰 성취를 해낸 작품인데, 아까 말한 전통적 문학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좀 시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82년생 김지영]이 혁명적인 것은 그것을 소설이라고 내어놨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소설에 들어가지 못했던 글을 소설이라고 내놓은 자체가 문학적인 거죠. 그게 무슨 아름다운 문장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태도와 선언으로서 의미가 있는 거죠. 그래서 당연히 김훈 애독자는 좋아하기 어려웠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호박: 저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없었구나를 깨달았어요.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돌아보지 않았구나를 느꼈어요. 나도 우리 엄마의 삶을 들여다봤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던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여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출산과 육아로 연락이 단절됐던 나의 선배들에게 연락을 했던가, 한번 연락해 봐야겠다 같은 생각들을 했어요.
고부가같이: 대단하네요. 그런 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의 힘이. 그럼 저는 한번 더 질문해 보고 싶어요. [82년생 김지영] 이전에 박완서라든지, 문학적 성취가 있는 소설가들이나 여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관찰력이 있고, 표현력이 엄청 뛰어난 그 사람들이 있어서 사실 여성의 삶에 대해서 말했다면 충분히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82년생 김지영]이 전무후무한 것이다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러워요. 그냥 내가 모르거나 신경을 안 썼을 뿐인 부분도 있어서 그 이전에는 아무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여성의 삶을 다룬 서사의 역사가 이미 있다는 지적을 조금 이해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전 세대에서 오히려 너무 유려하게 여성의 삶을 일상에 녹아들게 표현을 해서 문학적으로 ‘여자의 인생’ 서사 재밌다, 그래 우리 어머니들, 언니들이 살고 있지, 좋은 소설을 읽었다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면, 이제 [82년생 김지영] 같은 경우는 통계와 각주를 달고 문장도 담백하고, 좀 멋이 없다고 느껴지는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영화제의 비다큐 부문에 다큐를 내버리고, 이것은 비다큐라고 주장하는 셈이죠. 그게 오히려 운동적이랄까, 약간 실험이면서 훌륭한 것 같아요.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 민음사
- #페미니스트_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디플롯 출판사 차용)
고부가같이: 사랑을 믿으세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존재가 있으세요?
단호박: 있는 것 같아요. 있어요. 네 있어요.(세 번의 과잉 긍정...)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가족이에요. 저는 여동생도 남동생도 있는데요. 제 활동에 대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물론 동생도 ‘누나 때문에 알았다’라고 깨닫는 부분이 있지만 20대 남성의 입장에서 강간 사건이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저는 동생이 알고 있고 인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말을 해요. 그 대화를 하는 것도 저는 제 동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거고, 동생도 강간·성추행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하고 싶은 존재들이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 운동도 좋지만 내 주변의 생각도 바꿀 수 없는데 어떻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편한 상황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것 같아요. 고부가같이 님은 사랑을 믿으세요?
고부가같이: 저는 사랑을 믿어요. 그게 동력인 것 같아요. 구체적인 얼굴들이 있잖아요. 사실 구체적일 필요가 없을 때도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당장 낙담하지 않게 하는 데 힘이 되는 존재가 있고, 사랑은 있어요.
단호박: 2022년에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으세요?
고부가같이: 러브버그, 파리목 털파리과에 속하는 우단털파리의 일종. 성년이 된 이후의 시간 대부분을 짝짓기에 소비한다고 알려진 러브버그. 3일밖에 못사는데 모든 순간 사랑을 하면서 사는 존재요. 지난 금요일에 쭈꾸미를 먹으러 은평구에 갔다가 러브버그를 봤어요. 정말 그 벌레가 가득했어요. 마침 은평구 일대가 난리가 났더라고요. 아직 뉴스에도 안 나고 정보가 하나도 없을 때였는데요. 이게 뭐야 싶어서 깜짝 놀랐어요. 모든 애들이 열심히 짝짓기를 하고 있어서 깜작 놀랐어요. 그래서 검은털 파리의 생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어요. 생식이 뭘까요. 현대인에게는 선택권이 있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이 파리는 이끌리듯이 짝짓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단호박: 그럼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라고 하면 뭘하고 싶으세요?
고부가같이: 마지막이면 얘기는 편하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즐기는 거겠죠. 애인을 만나서 놀 것 같아요. 가족이랑도 섭섭하니까 조금 놀고.
단호박: 애인이랑 20시간, 가족이랑 4시간 시간을 보낸다(단호박 정함)
고부가같이: 근데 20시간은 딱 정해진 거예요?
단호박: 안 정해졌어요. 애정에 비례해요. 제 마음대로.
고부가같이: 제가 꼭 애정을 시간 단위로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요(웃음). 단호박은 인생의 마지막날에 가족을 보실 거예요?
단호박: 엄마는 볼 것 같아요. 엄마만. 왜냐면 언니나 동생들은 각자 자기들의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언니나 동생들은 마지막 날에 저를 찾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는 혼자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엄마와 이모들이 같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엄마만 보고 싶어요. 이모들은 죽는 날까지 “너는 왜 짝을 안 찾아가냐”, “결혼을 안 했냐?”라고 물을 것 같아요.(웃음)
고부가같이: (웃음) 어후 정상성. 진짜 깨부십시다. 이성애 중심 사회

▲고부가같이 님의 책장
- #민우회_아무튼,민우회(아무튼,시리즈, 제철소 출판사 차용)
단호박: 민우회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고부가같이: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됐던 것 같긴 한데요. 확실히 기억나는 계기가 있네요. 출판사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만든 책의 강연회에 저자 부부가 함께 오셨어요. 그날 저자의 배우자께 명함을 받았는데 ‘군포 여성민우회’에서 일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때 민우회를 글자로 처음 읽어서 인지한 것 같고, 지역에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단호박: 가입동기는 어떻게 되세요?
고부가같이: 트위터에 공지된 신입회원 세미나 프로그램을 보니 그러잖아도 한번 읽어보려 했던 책이 올라와있더라고요. 이 기회에 책도 읽고 민우회도 후원하자 하고 가입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대선을 거치면서 사회의 위험한 변화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고, 오랫동안 가입 상태였던 정당을 탈퇴한 걸 계기로 평소 고맙게 생각하는 시민단체 후원금을 늘려야겠다 생각해서 가입했어요.
단호박: 신입회원 세미나의 도서였던 [페미니즘]은 어떠셨어요?
고부가같이: 책은 일단 얇아서 부담이 없었고 그리고 섹션별로 잘 토픽이 정리되어 있어서 딱 이런 신입사원이래 신입회원 모임으로 좋은 책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완전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책은 아니었고 압축적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잘 정리하고 뭐가 논쟁의 쟁점인지를 잘 정리한 책이었어요.
단호박: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언제셨어요?
고부가같이: 저희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야 넌 페미니스트냐?”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했거든요. 사실 제가 받아치고 싶었던 대사는 “그럼 아빠는 성차별주의자야?” 이거였지만... 옆에 다른 어른들도 있고 해서 그 정도로만 했는데 그 순간이 그래도 페미니스트 모먼트였던 것 같아요. 제가 기분 좋았던 건 옆에 있는 동생한테도 “그럼 너는 어떻냐” 그랬는데 동생이 “나도 당연하지”라고 말했을 때예요.
고부가같이: 단호박에게 궁금한 건 활동가로서 외부와의 접촉도 많고 회원도 많이 만나야 하는데 활동가가 적성에 잘 맞나요?
단호박: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송년파티 같은 걸 하거든요. 그럴 때 너무 재밌고, 많이 웃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광대에 경련이 일어나는 거 아시죠.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쓴 거죠. 방전되면 다시 충전을 하고 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고부가같이: 바로 앞에 놓인 민우회 소식지에 아주 좋은 말이 쓰여 있네요. (민우회 소식지를 들고) 낙담했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고부가같이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책 이야기로 시작해서 일터의 노동권, 정치, 에코페미니즘, 돌봄까지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밀도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작은 더위인 소서를 지나, 엄청난 비바람과, 폭우가 쏟아지는 말복이 다가오는데요. 몸 조심하시고, 이 여름도 잘 나서 우리 더 좋은 곳에서 또 만나요! 아울러 폭우로 인해 피해입으신 분들의 안전한 일상 회복을 기원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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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로스 인터뷰 읽어보기
▶ 크로스인터뷰① 내향인들의 만남.. 영지 춘을 만나다
▶ 크로스인터뷰② 노새, 효선님을 만나다-스포츠와 아드레날린과 물질만능주의에 관한 고찰(아님)
▶ 크로스인터뷰③ 제이, 엘라를 만나다- 안 친해도 세시간 반(놀랍게도 요약본)
▶ 크로스인터뷰④ 인터뷰 제목 뭐하지z (영지x장캡틴)
▶크로스인터뷰⑤ 밍기뉴x인경(전기뱀장어)의 만남. *페미니즘, 비건 그리고 음악 *
▶크로스인터뷰⑥ 노새x양수안나, 스포츠에 진심인 여자들 주목!
▶크로스인터뷰⑦ 제이x다정, 일의 좋음과 싫음
▶크로스인터뷰⑧ 밍x돌(큐캔디) ‘퀴어’한(?) 둘의 만남,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돌’을 만나다
▶크로스인터뷰⑨ 보라X은하수, 풋살, 뮤지컬, 술 - 마음의 방이 많은 은하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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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뭘 좀 좋아하는 페미니스트인데.. 인터뷰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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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무실 영화관 행사에 온 '책 만드는' 고부가같이님의 소개를 듣고 크로스 인터뷰로 꾀어 냈습니다.
우리의 인터뷰는 위의 대화와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망원동에 무궁화와 능소화가 피던 7월 7일.
작은 더위라고 불리는 본격 더위가 시작되던 소서에 민우회 사무실에서 수요일의 특별활동으로 만났습니다.
단호박: ‘고부가같이’님 안녕하세요. 닉네임으로 활동가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셨어요. 닉네임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던데요, 왜 고부가같이가 되셨어요?
고부가같이: 신입회원 세미나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스웨덴에서는 고부가 같이 사업을 하잖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한국도 그래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제가 어디서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스웨덴은 대기업도 가족 기업이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있어서 대기업도 노동자에게 악독하게 안 군다나? 뭐 그런 얘기요. 근데 모녀도 부자도 아니고 ‘고부’가 같이 사업을 하는 게 일종의 모델까지 된 사회라니 너무 신기해가지고 계속 “고부가 같이 사업을 해요?” “며느리랑? 사업이 잘 되나?” 말했는데 다들 “그렇죠~” 하면서 한참 못 알아들으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아... 고.부.가.가.치.구나’) 다 같이 깔깔깔 웃었어요. 그렇게 닉네임을 바꿨어요. 그리고 이 얘기를 제가 꼭 해야 되는데요. 혹시 마X토끼라는 분 아세요? 트위터로 짧은 말장난 웹툰 같은 것을 그리는 분인데. 그런데 제가 민우회에서 이 ‘고부가같이’로 웃은 며칠 후에 공교롭게도 똑같은 내용을 만화로 그려서 올리셨더라고요. 반응 보니까 사람들이 막 ‘마사토끼님 천재’라는 거예요. 근데 천재는 난데...(같이 웃음) 또 그런 논란도 있었어요. 고부가같이를 줄여서 뭘로 부를 것이냐, ‘고가’로 해라 ‘고치’로 해라 와글와글하셨는데 저는 ‘고부’로 정했어요. 왜냐하면 다섯 글자 중 여성을 나타내는 두 글자니까(멋있음 주의)
고부가같이: 단호박님의 닉네임은 단호박을 좋아해서 라는 그 의미인가요?
단호박: 저는 멋있는 닉네임을 하고 싶어서 친구랑 같이 고민하다가 정한 거였어요. 좀 단호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 들어있고요,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의지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단호박: 출판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고부가같이: 가족 구성원 중에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직업을 고를 때 출판사에서 일하는 선택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글을 읽는 건 좋은데 쓰는 건 그렇게까지 좋지 않고 남의 글을 잘 고쳐주는 것은 재미있고 자신도 있었어요. 다른 친구나 선후배들이 그런 일을 많이 맡겨주었고요. 남의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먹고살기에도 좋겠다 싶어서 출판사 면접에 지원을 하게 되었어요.
단호박: 저는 부모님이 서점을 하셨어요. 저는 남매가 네 명인데, 그 네 명을 먹여 살린 것이 서점이었어요. 그런데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부터 손님들이 인터넷 서점으로 많이 가면서 동네서점이 쇠락하기 시작했고, 서점업도 접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릴 적 추억 때문인지 책도 서점도 좋아하게 되었어요.(저도 알라딘, YES24, 교보문고 많이 이용하는데요, 그래도 동네서점은 못 지나쳐요. 들어가면 한권이라도 꼭 구매하려고 합니다)
단호박: 편집자로서 직업은 좋은가요?
고부가같이: 지금까지 해온 시간을 전체로 보면 길고 힘든 중반기(슬럼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직한 지 1년 반 정도 됐는데 그전까지 진지하게 탈-출판을 꿈꿨어요. 지금은 비교적 잘 맞는 직장을 만나 그럭저럭 다니고 있고요.
단호박: 저는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유명한 출판사인데 노동 착취가 굉장히 심하더라고요. 심지어 책에 편집자의 이름을 안 싣는 것도 봤어요.
고부가같이: 많아요. 그런데 이름을 싣는 것이 기계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에요. 이름이 굳이 안 드러나지 않는 쪽이 마음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그런데 복합적인 것 같아요. 음… 그런데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이름이 들어가는 건 좋은 일 같아요. 일종의 엔딩 크레딧(마지막 자막, 함께했던 제작진의 이름이 들어가는 자막) 같은 흔적인 거죠. 이 사람이 여기서 이런 일을 했다는. 제가 예전에 어느 방송작가 분의 책을 편집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국가에서 코로나 지원금 같은 것 때문에 서류 증빙을 하라고 했는데, 20년 가까이 긴 시간을 일했는데도 놀라울 만큼 제출할 게 없더라는 이야기를 쓰셨더라고요. 보통 딱히 서류를 떼지도 않고 일하고 해산하는 일이 많잖아요. 왜 우리가 생각할 때는 방송 끝나고 엔딩 크레딧(마지막 자막) 올라간다고 생각하는데 엔딩 크레딧(마지막 자막)에도 이름이 안 나오기도 하고, 이름이 잘려 있기도 하고, 방송 끝나면 광고로 바로 이어지기도 하잖아요. 정말 열심히 일해온 것에 비해 놀랄 만큼 드러나는 게 없다고 하시던 그분 글을 떠올리니 뭔가 이름을 써준다는 게 대단한 게 아니어도 이렇게 또 사람이 하는 일을 하고 이런 데서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호박: 저는 예전에 뉴스 PD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뉴스에 제 이름이 단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요. 아나운서, 기자, 촬영기자, 영상 편집 분들은 이름이 나가거든요. 그런데 주조종실에 있는 기술 스탭, 카메라 감독, 자막 CG, 뉴스PD 들은 이름이 나가지 않아요. 방송화면에 자막으로 이름을 넣는 사람들은 좀 더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저는 방송국의 비정규직이었으니까 문제 제기를 할 창구도 없고, 제 의견이 반영되지도 않고,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권력 관계에 대해서 많이 느꼈었어요.
고부가같이: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일하셨나요?
단호박: 2년 8개월을 뉴스PD로 일했는데요. 2년이 넘으니까 방송국 노조에서도 뉴스PD 정규직화를 안건으로 올려주겠다고 했어요. 그때쯤 뉴스PD나, 방송 필수 스태프들을 정규직화하는 것에 대해 논의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결국에는 정규직이 되지 않았어요. 제가 토요일, 공휴일은 나와서 일해도 일요일이나 명절은 일을 안 하는 조건이었는데 나중엔 명절에도 나와서 일하라고 요구해 오고, 노동 요구가 많아지면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당시에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 같은 걸 읽고 있었는데요. 방송국 비정규직, 그리니까 프리랜서들은 프롤레타리아도 안 되는 거예요. 프롤레타리아는 단결하라고 말하는데, 저는 제3계급 정도 되는 거고, 저는 단결할 수도, 발언권 같은 것도 아무 의미가 없구나를 생각하면서 뉴스PD를 그만뒀어요.
단호박:출판계의 노동시장은 어떤가요? 여성분들이 많이 있는 업계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나,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인지도 궁금해요.
고부가같이: 일단 출판계가 전체 산업에서 종사자 인구가 참 적은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는 것도 좀 업계가 커야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비정규직도 많고 정규직도 많아요. 4대 보험 적용되는 곳도 적지 않은 반면에, 악덕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란 곳도 있고. 1인 출판사, 2인 출판사처럼 사장이 노동자인 경우도 많으니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느끼는 경우는 소수인 듯해요. 영세한 업계인 만큼 괜찮은 회사도 있고, 너무 심각하게 안 좋은 곳도 있고, 회사가 작아 오너나 상사의 선의에 기대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노동법 사각지대처럼 (규모가 작으니까 20인 이하가 수두룩하게 많은 점에서) 되게 취약하기 때문에 ‘여성이 일하기 참 좋아요’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나이브(순진한을 뜻하는 영어표현)한 것 같기도 해요.
근데 그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다고 생각이 되고요.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여성으로서는 기본적으로 다니기 좀 편한 것이 있고, 또 하여간에 책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깊고 세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느낌도 있어요. 편집자든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그런 점에서 괜찮은데 또 흔히 여초 직군에서 보이는, 위로 갈수록 남성이 많아지는 건 비슷해요. 여성 상급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율상으로 사장이나 부장급들은 남자가 더 많아 보이는 점은 비슷한 것 같고. 경력이 좀 덜 되거나 젊은 분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훨씬 많은 편이죠. 그런 점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냐고 한다면 전반적으로 괜찮다고 답하기는 하지만,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한계도 있고 해야 될 일이 많이 있어요.
고부가같이: 단호박 님은 민우회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단호박: 언론사를 그만두고는 언론고시 준비를 했고, 그러다가 언론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됐어요. 언론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보고서를 많이 썼었는데 그러던 중 박원순 사망 사건을 접하게 됐어요. 그때 종편 언론에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발언을 많이 했고, 보도도 했어요. 그런 언론 행태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보도를 지적하는 모니터링을 하고요. 그런 와중에 다른 사회 이슈보다 여성주의관점으로 사회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고민 끝에 민우회에 오게 되었어요.
▲출판계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 원작 일본 TBS 드라마 <중쇄를 찍자>
▲방송계의 이야기를 담은 노희경 작가, 표민수 작품 KBS2TV <그들이 사는 세상>
고부가같이: 언론고시를 오래 준비했다면 그 당시 하고 싶은 이야기, 관심 있는 사회이슈는 어떤 게 있었나요?
단호박: 언론에서 사회적으로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비추고 싶었어요. 특히 지역, 여성,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나 혐오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미디어가 누군가를 쉽게 혐오하게 만드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는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혐오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혐오 받는)어떤 대상에 대해서 더 많이 보여주고, 당사자에게 마이크를 주면 편견을 불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주도에 난민 수용한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이 공포감에 가짜뉴스도 많이 믿었고, 막연한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가짜뉴스에 속지 않기를 바랐고,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전달하고 싶었어요.
고부가같이: 그랬군요. 제 친구 중에 예멘에서 난민으로 한국에 온 분과 친해진 사람이 있어요. 반면 굉장히 부정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무심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사회적으로 어떤 마이크가 되게 집요하게 안 좋은 시각을 부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냉정하게 보면 난민에 대해(또는 다른 어떤 소수자에 대해서라도) 포용적이거나, 아님 설령 따뜻한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라리 잘 모르거나 무심한 사람이 많을 수 있는데, 마치 적극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대세이고 그게 보통인 것처럼 자꾸 그게 일각에서(언론 등) 계속 재생산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단호박: 저는 그 당시에 도서관에서 이슬람 문화에 관련한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문화적인 배경 없이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가 난무했으니까요. 그런데 책에서 이슬람은 평판을 중시하고,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에게 욕 먹을 짓을 잘 하지 않는다고 써둔 게 있었어요. 이런 문화적 배경을 조금만 고려했어도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를 싫어하지 않을텐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부가같이: 무슨 십자군 전쟁 때처럼 이상한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근데 또 우리가 페미니스토로서 만났으니까 아시겠지만 일군의 혐오가 있었잖아요.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 혐오적인 것을 이유로 들어서 난민을 반대하고, 혐오하고 그랬잖아요. 이슬람이 성폭행을 많이 한다든지 그러니까 여자를 꽁꽁 묶어 가둬두고 하는 것들이 뒤섞인 것들이요.
단호박: 맞아요. 공포를 더 증폭시켰죠.
고부가같이: 그런데 그런 공포심이 동력으로 사람들에게 혐오가 되었잖아요. 그러한 혐오를 저항감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같은 여성들을 보면서 약간 위기감 같은 게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판이 짜이는구나 싶어서요. 어떤 때는 동지나 동료나, 친구인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또 갈리게 되는구나 싶어서요. 저는 트위터를 열심히 한 사람인데 2015, 16년에 페미니즘이 다시 떠오를 때 같이 놀던 사람들 중에 2018년, 19년에 다시 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 블락(차단)을 하면서요. 분명히 2017년 정도까지는 각자 페미니스트였던 사람들과, 새롭게 정체화한 사람들이 서로 공부하고 다같이 욕하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어느 순간 약간 못 보겠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예요. 친구들끼리는 언어의 수위를 조정하고, 의견 차를 좁혀가는 노력을 하잖아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이는 정말 안 보이면 끝이니까. 당장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어린 남성에 대한 혐오라든지 그런 것이요. 실은 제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두려움과 혐오감, 한심함, 배제해버리고 싶은 감정들이 있기 때문에 뭔지 알겠는 면도 있고 그래서 더 아득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또 예를 들어서 탈코르셋 이런 운동도 당연히 의미가 있었지만, 탈코르셋 안 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든지, 기혼 여성을 비판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단호박: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어떤 시각에서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거든요. 여성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야 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건가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부가같이: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고 말씀하셔야 했던 적 있으세요? 스스로도?
단호박: 네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언론사 취직을 준비했으니까 ‘사상 검증을 한다’라는 이런 얘기도 들었던 거예요. 예상 질문으로 ‘페미니스트냐’라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를 고민했었어요. 그때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여성의 일자리의 질, 임금차별 같은 것을 봤을 때 한국 사회에 문제가 있다’라고 답변을 준비했었어요. 면접관에 남성이 다수잖아요. 그럼 그 사람들이 봤을 때 듣기 편한 말이 뭐가 있을까 골랐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표현을 써가면서 차별점을 드러낼 수 있게 할지가 고민했었어요. 언론인은 중도를 지켜야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고 교육받잖아요. 어떻게 낙인찍히지 않으면서 내 말에 신뢰를 갖게 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다른 생각이지만, 당시의 고민은 그랬어요.
▲책 고르는단호박
단호박: 저는 대학 다닐 때 책의 ISBN을 정리해서 도서관에 비치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그때 신기했던 점은 책에서 봤던 사회, 문화적인 것들이 향후 2년 내에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더라고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현재 출판시장에서 감지되는 트렌드가 있나요?
고부가같이: 몇 년 전, 그러니까 6~7년 전에 페미니즘 붐이 왔잖아요. 물밀 듯이, 온갖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을 달았든 안 달았든 페미니즘 서적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제는 꼭 페미니즘 책이 아니라 그냥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는 책이 나오고 있어요. 한편 이제 워낙 백래시의 시대이고, 트렌드도 늘 바뀌어서 이제 페미니스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도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보다는 조금 다른 트렌드가 더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제가 산 책만 따져봐도 그렇고… 마이너리티(비주류)를 좀 더 전반적으로 더 발견하고 싶어 하는 흐름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이름 아래 ‘일반적’ 여자의 얘기를 듣기보다는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이런 여성, 저런 여성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이제 여성도 넘어서서 교차성을 생각할 수도 있고, 아시아인일 수도 있고, 혹은 오히려 아프리카인이나 이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장애인, 어린이일 수도 있고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참 잘 됐잖아요. 어린이 자체도 당연히 중요한데, 사실 여성들이 어린이 문제에 더 예민하고, 어린이를 주양육자로 키우는 경우도 많고, 본인들도 다 어린이였고, 한편으로는 마이너리티(비주류) 사회적 약자로서의 그 마음을 겹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 아시아나 아시아‘계’ 여성의 이야기, 특히 한국계이든 아니든 [마이너 필링스]나 [H마트에서 울다], [파친코]도 있고, 그런 책들이 각광을 받는 게 한국 여성도 서로를 계속 대화하긴 하지만 또 세계 속에서 한국 여성, 아시아 여성, 나아가 아시아계 여성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든지 그런 식으로 좀 넓은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베스트셀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잖아요. 읽을수록 너무 재밌는 책인데, 약간 총체적인 이야기잖아요. 과학책이 아니면, 에세이야, 소설이야? 이런 궁금증이 생기잖아요. 저자가 갑자기 자기 얘기도 하다가 갑자기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가, 또 막 온갖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 모든 것이 의외의 방식으로 잘 꿰어져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는데, 그런 책이 잘 된 것도 독자들의 목마름이 좀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어쨌든 그런 책이 다 나오면 반응할 독자들이 있는 거죠.
단호박: 맞아요. 여성들이 책을 많이 구매하죠. 저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어느 시점부터는 여성 창작자의 책들만 사요. 두 개의 책이 있다면 여성 창작자의 책은 사서 보고, 남성 창작자의 책은 빌려서 봐요. 제 방식으로 여성 창작자들의 기회를 응원하는 거죠.
고부가같이: 그렇군요. 예전에 뭘 검색하다가 극우 남초 커뮤니티에서 “출판계는 완전 페미 소굴”이라고 한탄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확률적으로 페미니스트가 책을 더 많이 사고 많이 만드는 걸 어떡합니까? 억울하면 책 사!(웃음)
▲도서관의 페미니즘 도서들
▲서점의 페미니즘 도서들
단호박: 고부가같이님은 쉬는 날에도 책을 보시는지 궁금해요.
고부가같이: 저는 의외로(?) 봐요. 짐을 덜어 놓으니까 재밌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저는 책을 잘 안 봤어요. 사기만 하고. 사는 걸로 읽었다고 착각하거나 자신을 속이고, 책들을 보면서 ‘아! 그래 내가 저런 책도, 저런 책도 샀으니까’라고 생각하고, 나의 지금 정신 세계를 다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랬는데, 사실은 머리말도 안 읽은 책도 있고, 책 소개 글 보면서 ‘그래 이런 책을 사야 돼’ 그런 마음으로 샀어요. 그런데 (안 읽어도 책을 사는 것) 좋아요. 출판계를 살리는 길이에요. 과거에는 사는 걸로 읽는 걸 대신했었는데, 그게 자꾸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결국 읽지 않는 나를 계속 인식을 하니까. 요즘에는 그냥 제가 재밌을 것 같은 책을 주로 읽어요. 제가 친구에게 되게 좋은 습관을 배웠는데요. 독서대 있잖아요. 독서대를 머리 말리는 공간에 놓는 거예요. 그리고 무조건 마음 먹은 책을 펼쳐놓는 거예요. 그러면 오며가며 머리를 말릴 때나 음악을 틀어놓거나 할 때 보는 거죠. 그럴 때 10페이지도 읽고, 습관처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게 책을 펼쳐놔야 읽지,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지나도 안 읽는 책이 진짜 많거든요. 그런데 저 독서법으로 여기까지만 읽어야지 하면서 점점 계속 읽게 돼가지고 제가 은근히 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단호박: 전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해요. 읽어야 할 수밖에 없게
고부가같이: 몇 권 정도 읽으세요?
단호박: 한 달에 한 권이요. 그런데 책을 사거나 꽂아두는 건 두세 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지하철 이동 시간이 길어요. 그래서 지하철 안에서 많이 읽게 되고, 독서 모임은 진짜 마지막 그날, 그 순간까지 읽어요. 독서모임은 3년차예요.
고부가같이: 못 읽은 채로 참석하실 때는 없으세요?
단호박: 있어요. 그럴 때는 양해를 구하죠. 그런데 저희는 기본적으로 숙제가 있어요. 호스트가 매달 바뀌는데, 호스트가 책도 선정하고, 책을 선정하면서 숙제도 같이 줘요. 얼마 전에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같이 봤는데 그때의 숙제 중 하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였어요. 숙제가 있으니까 본인이 다 읽지 않더라도 자기가 읽은 범위 내에서 숙제를 해가지고 와서 얘기해요.
고부가같이: 최근에는 뭐 읽으세요?
단호박: 여성환경연대에서 나온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를 보고 있어요. 요즘 돌봄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데 돌봄에 대한 얘기도 있고, 에코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도 있고요. 그런데 책이 6~7년 전에 나와서 올드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어요. 특히 모성에 대한 부분이요.
고부가같이: 저는 페미니스트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에코 페미니스트 같아요. 생각 없는 권력자들이 일반 시민들이 쫌쫌따리(소소하게 실천하는 행위)로 하는 일들을 말도 안 되게 바꿔버리는 것들이요. 예를 들어 최근엔 원전주의자들이 오히려 환경주의자로 행세하는 거 아시죠? 화석 연료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니까 원전을 쓰는 것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하지요. 우리 설마 탈원전 정도는 합의된 거 아니었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당당하게 원전이 미래인데 왜 원전을 안 하느냐는 걸로 탈바꿈하니까 골이 아프고 띵한 거 있죠. 그니까 어디서부터 틀렸다고 말해야 하나 싶은 거요.
단호박: 그러게요.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위원회 이야기가 쏙 들어갔어요. 고부가같이 님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되요. 저도 친구들이랑 우리가 백날 텀블러 안 가지고 다녀도 모른다 싶다가도 그런데 내가 알고, 니들이 안다고 말해요. 그럼 친구들이랑 또 힘을 내게 되고, 나라 걱정은 페미니스트들만 하는 거 같고요.
고부가같이: 진짜 미래 걱정이나 인류 걱정은 우리만 하나 싶고요. 희망 중 하나는 모두가 각자 시민들로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우리의 기준에서 (인류가) 반동이 많고 자기 파괴적이잖아요. 엄밀히 보면 우리 자신도 그런 행위를 하면서 살고….
단호박: 그래도 주위에 친구들과 동료들을 보면 미래가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좀 더 나아질 것이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들이 있으니까, 백래시도 있지만.. 전 여전히 사람들이 모르고, 관심이 없어서인 것 같은데요.
▲단호박의 책장
고부가같이: [마이너필링스] 최근에 읽었고요. 그 다음에 박찬욱 책도 읽었어요. 여러 번 읽은 책은 아가씨의 원작이었던 [핑거스미스]를 쓴 세라 워터스의 책 중 [끌림]인데요. 3부작 중에 제일 덜 유명하고 인기가 없었지만, 그런데 그런 책 있죠? 영화도 그렇고. 다 보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는 책이요. 읽는 동안은 도대체 어떻게 끝내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싶은 서사를 계속 풀어놔요 뭐랄까, 약간 의구심이 계속 있는데 뭐야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싶은 되게 초현실적인 일인 것 같은데 싶은데 나중에 진상이랄까 어떻게 된 것인지 밝혀져요. 그럼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해요. [끌림]보다 [티핑 더 벨벳]을 먼저 읽으세요. 그게 제일 재밌어요. 그리고 제일 밝아요.
고부가같이: 책을 많이 읽으시는 단호박 님, 저도 책 추천 하나 해주세요.
단호박: 혹시 니체 좋아하세요...?, 저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여러 번 읽었어요. 책에서 “망치를 들고 철학을 하라”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체계라든지 관습이라든지 모든 것을 깨고 철학을 해야 된다고 말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절대적이지 않을 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만년설을 주장하거든요. 인간이 계속 만년 동안 같은 회로를 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뒤의 만년도 똑같이 챗바퀴 속에서 돌게 될 거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문제가 있거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변화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얘기해요. 제가 변화 해야할까 생각하게 될 때 니체의 철학이 도움이 됐어요.
고부가같이: 그러면 단호박님의 생에 계속해서 관여를 하고 있는 문장이에요.
단호박: 맞아요. 저는 스타벅스 닉네임(요즘은 안 가요)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철인의 이름이에요.
고부가같이: 기억해 놓을게요.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이렇게 알려주시면 단호박님을 단초로 삼아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왼:고부가같이님이 여러 번 읽은 책 ▲오:단호박이 여러 번 읽은 책
▲왼: [끌림], 세라워터스 작가, 열린책들 ▲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작가, 그린비
단호박: 예전에 알던 편집자가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되고 난 다음에 [82년생 김지영] 신드롬은 한국 문학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어요. 그 사람은 [칼의노래]를 썼던 김훈 작가를 최고의 문장가라고 생각한다면서요. 아마 그 사람은 [82년생 김지영]이 문장이나 서사가 문학적으로 낮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단지 현실을 보여줬을 뿐인데 인기가 있다는 것이 본인이 생각했을 때 문학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그 이후 시간이 흘렀고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에서 1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도서가 되었죠. 저는 [82년생 김지영]이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낸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부가같이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부가같이: 저는 단호박도 이해가 되고, 친구분도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아요. [82년생 김지영]은 큰 성취를 해낸 작품인데, 아까 말한 전통적 문학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 좀 시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82년생 김지영]이 혁명적인 것은 그것을 소설이라고 내어놨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소설에 들어가지 못했던 글을 소설이라고 내놓은 자체가 문학적인 거죠. 그게 무슨 아름다운 문장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태도와 선언으로서 의미가 있는 거죠. 그래서 당연히 김훈 애독자는 좋아하기 어려웠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호박: 저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없었구나를 깨달았어요.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돌아보지 않았구나를 느꼈어요. 나도 우리 엄마의 삶을 들여다봤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던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여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출산과 육아로 연락이 단절됐던 나의 선배들에게 연락을 했던가, 한번 연락해 봐야겠다 같은 생각들을 했어요.
고부가같이: 대단하네요. 그런 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의 힘이. 그럼 저는 한번 더 질문해 보고 싶어요. [82년생 김지영] 이전에 박완서라든지, 문학적 성취가 있는 소설가들이나 여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관찰력이 있고, 표현력이 엄청 뛰어난 그 사람들이 있어서 사실 여성의 삶에 대해서 말했다면 충분히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82년생 김지영]이 전무후무한 것이다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러워요. 그냥 내가 모르거나 신경을 안 썼을 뿐인 부분도 있어서 그 이전에는 아무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여성의 삶을 다룬 서사의 역사가 이미 있다는 지적을 조금 이해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전 세대에서 오히려 너무 유려하게 여성의 삶을 일상에 녹아들게 표현을 해서 문학적으로 ‘여자의 인생’ 서사 재밌다, 그래 우리 어머니들, 언니들이 살고 있지, 좋은 소설을 읽었다 정도로 만들어 버렸다면, 이제 [82년생 김지영] 같은 경우는 통계와 각주를 달고 문장도 담백하고, 좀 멋이 없다고 느껴지는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영화제의 비다큐 부문에 다큐를 내버리고, 이것은 비다큐라고 주장하는 셈이죠. 그게 오히려 운동적이랄까, 약간 실험이면서 훌륭한 것 같아요.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 민음사
고부가같이: 사랑을 믿으세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존재가 있으세요?
단호박: 있는 것 같아요. 있어요. 네 있어요.(세 번의 과잉 긍정...)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가족이에요. 저는 여동생도 남동생도 있는데요. 제 활동에 대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물론 동생도 ‘누나 때문에 알았다’라고 깨닫는 부분이 있지만 20대 남성의 입장에서 강간 사건이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저는 동생이 알고 있고 인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말을 해요. 그 대화를 하는 것도 저는 제 동생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거고, 동생도 강간·성추행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하고 싶은 존재들이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 운동도 좋지만 내 주변의 생각도 바꿀 수 없는데 어떻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생각하거든요. 그런 이유로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편한 상황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것 같아요. 고부가같이 님은 사랑을 믿으세요?
고부가같이: 저는 사랑을 믿어요. 그게 동력인 것 같아요. 구체적인 얼굴들이 있잖아요. 사실 구체적일 필요가 없을 때도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당장 낙담하지 않게 하는 데 힘이 되는 존재가 있고, 사랑은 있어요.
단호박: 2022년에 새롭게 알게 된 게 있으세요?
고부가같이: 러브버그, 파리목 털파리과에 속하는 우단털파리의 일종. 성년이 된 이후의 시간 대부분을 짝짓기에 소비한다고 알려진 러브버그. 3일밖에 못사는데 모든 순간 사랑을 하면서 사는 존재요. 지난 금요일에 쭈꾸미를 먹으러 은평구에 갔다가 러브버그를 봤어요. 정말 그 벌레가 가득했어요. 마침 은평구 일대가 난리가 났더라고요. 아직 뉴스에도 안 나고 정보가 하나도 없을 때였는데요. 이게 뭐야 싶어서 깜짝 놀랐어요. 모든 애들이 열심히 짝짓기를 하고 있어서 깜작 놀랐어요. 그래서 검은털 파리의 생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어요. 생식이 뭘까요. 현대인에게는 선택권이 있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이 파리는 이끌리듯이 짝짓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단호박: 그럼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라고 하면 뭘하고 싶으세요?
고부가같이: 마지막이면 얘기는 편하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즐기는 거겠죠. 애인을 만나서 놀 것 같아요. 가족이랑도 섭섭하니까 조금 놀고.
단호박: 애인이랑 20시간, 가족이랑 4시간 시간을 보낸다(단호박 정함)
고부가같이: 근데 20시간은 딱 정해진 거예요?
단호박: 안 정해졌어요. 애정에 비례해요. 제 마음대로.
고부가같이: 제가 꼭 애정을 시간 단위로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요(웃음). 단호박은 인생의 마지막날에 가족을 보실 거예요?
단호박: 엄마는 볼 것 같아요. 엄마만. 왜냐면 언니나 동생들은 각자 자기들의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언니나 동생들은 마지막 날에 저를 찾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엄마는 혼자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엄마와 이모들이 같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엄마만 보고 싶어요. 이모들은 죽는 날까지 “너는 왜 짝을 안 찾아가냐”, “결혼을 안 했냐?”라고 물을 것 같아요.(웃음)
고부가같이: (웃음) 어후 정상성. 진짜 깨부십시다. 이성애 중심 사회
▲고부가같이 님의 책장
단호박: 민우회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고부가같이: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됐던 것 같긴 한데요. 확실히 기억나는 계기가 있네요. 출판사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만든 책의 강연회에 저자 부부가 함께 오셨어요. 그날 저자의 배우자께 명함을 받았는데 ‘군포 여성민우회’에서 일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때 민우회를 글자로 처음 읽어서 인지한 것 같고, 지역에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단호박: 가입동기는 어떻게 되세요?
고부가같이: 트위터에 공지된 신입회원 세미나 프로그램을 보니 그러잖아도 한번 읽어보려 했던 책이 올라와있더라고요. 이 기회에 책도 읽고 민우회도 후원하자 하고 가입했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대선을 거치면서 사회의 위험한 변화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고, 오랫동안 가입 상태였던 정당을 탈퇴한 걸 계기로 평소 고맙게 생각하는 시민단체 후원금을 늘려야겠다 생각해서 가입했어요.
단호박: 신입회원 세미나의 도서였던 [페미니즘]은 어떠셨어요?
고부가같이: 책은 일단 얇아서 부담이 없었고 그리고 섹션별로 잘 토픽이 정리되어 있어서 딱 이런 신입사원이래 신입회원 모임으로 좋은 책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완전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책은 아니었고 압축적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잘 정리하고 뭐가 논쟁의 쟁점인지를 잘 정리한 책이었어요.
단호박: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언제셨어요?
고부가같이: 저희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야 넌 페미니스트냐?”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했거든요. 사실 제가 받아치고 싶었던 대사는 “그럼 아빠는 성차별주의자야?” 이거였지만... 옆에 다른 어른들도 있고 해서 그 정도로만 했는데 그 순간이 그래도 페미니스트 모먼트였던 것 같아요. 제가 기분 좋았던 건 옆에 있는 동생한테도 “그럼 너는 어떻냐” 그랬는데 동생이 “나도 당연하지”라고 말했을 때예요.
고부가같이: 단호박에게 궁금한 건 활동가로서 외부와의 접촉도 많고 회원도 많이 만나야 하는데 활동가가 적성에 잘 맞나요?
단호박: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송년파티 같은 걸 하거든요. 그럴 때 너무 재밌고, 많이 웃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광대에 경련이 일어나는 거 아시죠.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쓴 거죠. 방전되면 다시 충전을 하고 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페미니스트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고부가같이: 바로 앞에 놓인 민우회 소식지에 아주 좋은 말이 쓰여 있네요. (민우회 소식지를 들고) 낙담했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고부가같이 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책 이야기로 시작해서 일터의 노동권, 정치, 에코페미니즘, 돌봄까지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밀도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작은 더위인 소서를 지나, 엄청난 비바람과, 폭우가 쏟아지는 말복이 다가오는데요. 몸 조심하시고, 이 여름도 잘 나서 우리 더 좋은 곳에서 또 만나요! 아울러 폭우로 인해 피해입으신 분들의 안전한 일상 회복을 기원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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