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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소모임 후기] 일단, 써봤는데요.어떤 글일지 궁금하시죠?

2022-01-14
조회수 1866

 

 

작년 하반기, 글쓰기 소모임 [일단, 씀]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름에서도 느껴지시죠...'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써본다!'라는 마음을 가진맛있는호떡, 매이, 숨비, 야기, 은사자가 9주 동안 함께했어요!

 

([일단, 씀] 모임 소개 이미지) 

 

 

매일매일 말을 하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살기에 글을 쓴다는 게 낯선 행위는 아니지만

막상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내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더라구요.

 

무작정 '쓰자!'하면 어디서부터, 뭘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아@_@...

한 주는 책을 읽고, 그 다음주에는 그 책에서 발견한 글감으로 한 편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사실 모임을 진행하기 전 가장 염려 됐던 건 '과연 글을 다 쓸 수 있을까까...?'라는 마음이었는데요.

모든 참여자가 (거의) 마감을 지켜 글을 보내주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wink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정세랑)

이 세 권의 책을 읽고 맛있는호떡, 매이, 숨비, 야기, 은사자가 쓴 글 일부를 살짝 공유해봅니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의 표지)


요즘 나는 직장에서 비속어를 많이 쓴다. 욕을 안 하던 나인데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범인은 직장이다. 다시 말해 학교다. 너무나 추상적인 업무가 나를 지치게 만든다.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담임이다. (...) 이번 책을 읽으며 나의 직업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김소영 작가님이 어린이의 세계를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을 보면 희망이 느껴진다. 반면 나는 건조하다.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학생들은 그리 밉지 않다.책 속의 말처럼 ‘어린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라고 느낄 때가 꽤 많다. 그러니 오늘도 살아봐야지.

_어린이라는 세계 에세이, 맛있는호떡

 

 

[작가 나이가 어린 것 같네요]


얼마 전 그런 댓글을 보았다. 작가의 신상이라곤 손톱만큼도 노출되지 않은 소설이었다. 어린 것 같다, 어리다. 난 그 표현을 한참이나 곱씹었다. 비난조로 쓰인 그 댓글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른 댓글들에 묻혔지만, 손 밑 거스러미처럼 계속 내 심기를 거슬렀다. 의도야 모르겠지만-순수한 조언인지 악의적인 품평인진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나만은 확실했다. 익명의 독자는 명백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어리다’는 표현을 썼다. (...) 
몇 살부터 어린 건지, 어린 사람이 쓴 글은 어떤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따져 묻는 게 중요한가? 글쎄.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어떤 맥락에서든지우리는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고 품평할 권한이 없다는 거다. 모두에겐 그런 무심한 존중이 필요하고, 이 존중엔 이유가 없다.

_존중의 이유, 야기

 

 

동생이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순간 지었던 표정, 꿈이 뭔지 알게 된 날 “언니, 꿈에서 만나!” 해줬던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에 “근데 새해 복이 뭐야?” 묻던 언젠가의 1월 1일, 학교 가는 연습을 하느라 일찍 자야 한다며 평소보다 이르게 끊은 저녁 전화 같은 것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누군가의 처음을 지켜보는 일은 참 설레고 신기하다.그런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내 옆에 있는 ‘어른’과의 관계까지 그 설렘과 신기함이 확장된다. 우리는 서로 알기 전까지는 각자의 세계에 없던 사람이지만, 관계가 생겨난 이후 나누는 대화, 표정, 시간 그 모든 게 서로에게 처음이라는 생각을 하면 새삼스러운 기분이 든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나서 어른도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됐다.

_나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나서 어른도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은사자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표지)

 

이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으면서 이런 대화들이 떠올라 나는 좀 심란했다. 남초의 ‘페미는 정신병이다’라는 촌스러운 조롱이야 익숙하지만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들은 차별이 존재한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극복해 낸 나’인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페미니즘을 패배자의 언어로 여기는 듯 하다. (...)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더디게 나아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에 무지한지, 새삼 생각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으며 비장애인 여성으로서 나의 정체성, 나의 언어, 나의 투쟁에 대해 돌아보기도 했지만 나 역시 당사자가 아니기에 몰랐던 또 다른 변방의 역사와도 만날 수 있었다. 
나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내 여성 동료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80년대 말의 전화교환원 정년 폐지, 서울대 신교수 사건에서 이어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호주제 폐지, 최근 스토킹 처벌법까지, 여성주의 운동이 일군 법과 제도는 여전히 성글지만 그래도 충분히 애써 엮은 안전망이 되어 우리의 삶을 지키고 있다는 걸 내 여성 동료가 알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역사를 읽어 보면페미니즘이란 투쟁의 언어이면서 어쩌면 승리의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걸.

_변방에서 다시 변방으로, 차별받는 우리의 연결에 대해서, MEI

 

 

첫번째 대학시절, 우리 과에는 추측컨대 저자와 같은 상황이었던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는 탈색한 머리, 누구보다 멋진 옷차림, 그리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캠퍼스 언덕을 오를 때면 그 동기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는 더 우월하다며 우리를 놀렸고 그 동기의 농담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즐겁기만 했다. 심지어 혼자서 자취까지 한다니 정말 멋진 동기라고 생각했다.(기숙사에 살아야만 했던 부러움, 그리고 그 용기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점이다.) 나름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지 했지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기에 비해 나는 우울하고 우울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동기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밝은 그 동기가 며칠 간 집밖을 나가지 않고 술로 보냈다고 한다. 애써 밝게 보이려고 했지만 자신의 상황이 밝겠냐며 비관해서 말이다. 다행히 다른 동기가 먼저 발견해서 달래고 달랬다고 한다. 그 동기에게 한번쯤은 괜찮냐고 물어볼 걸 했나,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예의가 없어서 안물어본건데...많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이 그냥 지인에게 '요즘 잘지내냐' 물어보는건데그 친구에게 그 말 하나 물어보지 못하고 고민한 것 자체가 편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그렇지만 또 물어보는 것이 맞았을까, 고민이 시작된다 역시 어렵다.

_읽기 힘들었던 글, 그리고 두려운 상황,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숨비


 

(책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의 표지)

 

‘영영 비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희망이다’라는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결국 끝나고 기억은 흩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남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다정한 색으로 덧칠한 추억도 그렇지만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던 파동은 어쩌면 기억보다 강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더 오래 내 안에 남는다.
두 달 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맞이한 사람들은 내 얼굴이 밝아진 것에 놀랐다. 찍어온 사진을 함께 나눠보며 가족들조차 ‘네가 이렇게 잘 웃는 애였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여행은 실제 나라는 사람을 아주 살짝 다른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_( )만큼 ( )을 사랑할 순 없어, 의 괄호 속 단어를 골라본다, MEI

 

 

여행은 혼자서도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다. 혼자 바닷가에 앉아 모래도 만지고 노을을 보며 김치만두를 먹을 수 있다. 왜 방 안에서의 나와 여행의 장소에서 나는 다를까? 아마도 장소가 주는 기氣가 나를 바꾸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다와 파도는 나를 산뜻하게 만든다. 바람도 시원하다. 내 방에 자연풍과 햇살이 든다면 조금 달라질까? 그리고 여행에서의 만남도 나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찻집에서 만난 직원분의 인상이나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격려가 새삼스레 와 닫고 생동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 순간이 소중하다. 매번 따뜻한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긴장되고 위험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때는 울적하기도 하다. 하지만사람들이 빛을 보고 살아가는 것처럼, 만약의 어둠 때문에 움츠리고 싶지는 않다. 선한 것들도 있으니까.

_여행은 점, 맛있는호떡

 

 

오랫동안 동경했던 곳에서 한 달 살기를 끝마쳤을 때엔, 싸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몸 한구석에 자국처럼 남았다. 나는 어쩌면, 나를 괴롭게 하는 곳일지언정 내가 익숙한 언어와 문화를 누리는 걸 포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적절한 단어를 골라내 배열하고, 재배치하면서 흥얼거리는 서늘한 농담은 외지인으로선 쉽게 얻기 힘든 재주였다.그만한 노력이 선행되면 괜찮겠지만…당장 외국어 공부보다 흥미롭거나 급한 일은 발치에 산재해 있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부터 ‘떠나기’는 흥미 면에서도 중요도 면에서도 밀려났다. 정을 붙인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친구들을 떠나는 건 무척 괴로울 테니까. 언제나 떠나고 싶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나를 끊임없이 갉아먹게 하는 이곳이 아니라 자유롭고 낭만적이며 유머가 있는 곳으로. 그런 곳이라면 지구 끝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과감하게 떠나기엔 난 생각보다 정이 많아, 반평생 마음을 준 곳을 미련 없이 정리하지 못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백 번쯤 고민한 뒤에 몸을 옮기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곳’은 없어서, 나는 내가 머무르는 곳을 좀 더 사랑해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만의 공간을 채울 날을 기다리며.

_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야기

 

 

관광지에서 자란 나는 관광업계 사람들 반 이상이 외지인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다. (...) 특히 최근 제주도에서 스킨스쿠버 업체들과 해녀들의 다툼이 많아졌다. 스킨스쿠버 업체들은 바다가 해녀거냐라는 논리로 맞대응 중인데 정말 일차원적인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하고 무슨 관광업에 종사하고 무슨 바다를 생각한다고 하는 것일까 싶다.
바다는 해녀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껏 장사속인 니들 것도 아니다. 다만 해녀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바다에 씨를 뿌려 각종 생명이 살아가게 하고, 산란기에는 보호하고, 바다가 오염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지키고 보존했다.그런데 한낱 장사치들이 들어와서 스킨스쿠버를 체험하러 온 관광객들에게 해녀들이 가꾼 전복도 따가라고 하고 소라도 따가라고 한다. 돈은 자기들이 챙긴다. (...) 이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역겹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떠날 때도 자기들이 한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 지역은 텃새가 심해요'라는 말로 정리하겠지…씁쓸하다.

_여행으로 인한 나쁜기억, 그리고 좋은 기억, 숨비

 

 

일본 철학자가 사색을 하며 자주 걸었다는 그 길. 철학자가 걸은 길은 뭔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길 이름에 철학이 붙다니, 친구와 기대하며 근방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천(川)을 따라 걸으며, 유유자적 물에 떠있는 오리 사진도 찍고 물소리를 한참 듣기도 했다. 길의 끝 같은 곳까지 갔는데도 철학의 길이라는 표시가 특별히 없어서(못 봤을 수도 있다) 뭐가 잘못 됐나, 지도를 찬찬히 살폈는데. 이럴 수가!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바로 철학의 길이었다. 벙찐 표정을 짓다 친구랑 눈이 마주친 순간,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아무 카페에나 들어갔다. 머리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 "아니, 저게 뭐가...특별한 길이야? 엄청 기대 했네", "야, 일본 철학 깊이 너무 얕은 거 아니냐(?)" 같은 농담 따먹기를 하며 한참 웃었다. 철학의 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까지만 해도 그 길을 따라 걷는 게 참 좋았는데. 괜한 기대 때문에 좋음이 반감된 기분이 들어 이게 바로 원효대사 해골 물이구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니. 정말 철학의 길이 맞다) (...)여행을 떠날 때면 잘 몰랐던 나를 알게 된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저런 상황에서 힘들어하는구나. 그렇게 비일상 속에서 일상의 나를 감각하는 순간이 좋다.

_비일상 속에서 감각하는 일상의 나, 은사자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서 읽는 건 정말 쑥스러운 일이었지만o//_//o...

모두가 마지막 모임까지 성실히 책을 읽고 글을 써냈습니다!(짝짝)

일정상 참여하지 못한 날에는 무려 낭독(!)을 해서 파일로 공유해주기도 했답니다...!

 

 

마지막 모임에선 그동안의 시간이 어땠는지 간단히 소감을 나눠보았어요.

9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가 어디서든 언제든 일단 써볼 수 있길 바라며, 소감으로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모임 덕분에 책도 읽고 글도 써서 좋았어요. 사실 스트레스 관리를 잘 못했는데 모임을 함께 하면서 해소했던 것 같고, 다른 분들 글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내년에도 글쓰기 모임이 있다면 또 해보고 싶어요!"

 

"어린이, 장애, 여행을 다룬 세 권의 책이 모두 좋았어요. 앞의 두 책을 읽으면서는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게 됐고, 여행 이야기를 쓰면서 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됐어요. 책을 읽는 것도, 그것을 글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오랜만에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어떤 글은 말보다 더 그 사람을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많은 글을 읽은 건 아니지만, 세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각자가 뭍어나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