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괜찮아, 정신병이야 사실 안괜찮아
2021년 11월 25일(목),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민우회 지하 1층 교육장에서 "페미니스트 정신질환자 이어말하기 - 괜찮아, 정(신)병이야 사실 안괜찮아" 행사가 있었습니다.
20명의 참여자들이 모였는데요.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이야기로 2시간을 채웠습니다.
ADHD,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조울증...
진단명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이 병명이 의미하는 바와 그리고 담지 못하는 것은 서로의 이야기와 침묵으로 채워졌습니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행복해질 수 없을 거 같다. 행복해지는 것,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2021년 1월 3일 일요일에 제가 썼던 메모입니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신다면 정신과에 꼭 가보세요. 해치지 않아요.
2020년 6월 19일 금요일. 정신과에 처음 간 날입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어느덧 구체적인 자살 방법까지 떠올리는 상황이 되었을 때 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에 못 이긴 척 정신과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년 5개월째 정신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계속 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약의 처방용량은 한 번도 줄지 않았고 항우울제의 용량은 1일 최대 복용량까지 늘어났습니다. 달라진 건 약을 먹기 시작한 것 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습니다. 습관처럼 떠올리던 ‘죽고싶다’는 생각은 ‘죽고싶나?’하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치료를 지속하면서 저는 더 명랑해지고 상태가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종종 찾아오는 무기력하고 감정이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몸이 늪에 빠진 것처럼 가라앉는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중략)
제가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 듣는 말은 해야 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항상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정 모르겠으면 남들이 재밌다고 하는 걸 따라해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얻어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만든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는 완성한 것 같아요.
나의 우울증 경험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저는 제가 원래 귀찮아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어린 시절부터 우울한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말하고 다니고 싶어요. 우울증을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병과 함께 사는 법을 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좌절하는 라이언
* 이미지 : 미친 내가 자랑스러워, 병이랑 잘 살아보자가 써진 종이
* 이미지 :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가 써진 종이
저는 이도 저도 아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고 정신 질환자입니다.
네, 정신병이 있습니다. 정신병이 있어요! 이 한 문장을 편히 말하는데 몇 년이 걸린 것 같아요. 저는 한동안 우울하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우울하지 않은 게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니까, 우울하다~ 는 숨 쉰다~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러지’ 라는 게 없었어요. 돌아가고 싶은 과거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울하지 않은 상태가, 무기력하지 않은 상태가 뭔지 구분이 잘 안되었어요. 아마도 제 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우울은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떡하니 드러 누워버립니다. 쿨한 척 담담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기까지 수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잡아떼어내려고 해보고 밀어내고 파버리고 잘라내고 쫒아내고 지워버려도 안되던 걸요. 우울증인 게 너무 짜증나서 왜 나는 이런 병이 있을까, 왕따를 당해서 그런 걸까, 내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 나는 시스젠더인데 착각하고 있어서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닐까, 사회는 왜 변하지 않을까,
사실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인데 내가 회피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질문을 던졌더니 그 질문에 맞아 아프다고 엉엉 우는 것도 저였어요.(중략)
저는 그래서 우울과 같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어디서 이 녀석이 생겨난 게 아니라, 갑자기 날 찾아온 게 아니라 그냥 나의 일부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요.
너무 싫고 미워도 저에게 찰싹 붙어있는 우울을, 잘 살피고 보살피고 달래는 건 정말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어려워요. 이 녀석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토록 구멍이 뻥 뚫린 나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너무 싫지만, 그래도 살아는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답할 수 있는 건, 저는 저의 병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을 만나고, 공간을 찾고, 나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트위터든, 자조모임이든 말이죠. 민우회 소모임 페미정신에서 저의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찾아나간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 이도
페미정신 지은님이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는데요.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맘껏 춤을 추셨답니다. ㅎㅎ 우리가 돌은 것인가? 아니, 세상이 빙글빙글하다~ 병식(병에 대한 스스로의 인지) 없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는 메시지를 담아서요.
* 원곡 : 나미, <빙글빙글>
그저~ 화만 삭히고 있지
그저~분노만 쌓이고 있지
늘 우울하면서도
안괜찮다는 그말을 못해~
그저~ 화만 삭히고 있지
그저~ 분노만 쌓이고 있지
늘 우울하면서도
약만 먹는 이 방법이 맞나
정신질환자 그게 어때서
범죄자 아냐 몰아가지마
어떻게 하나 세상의 시선은 빙글빙글 돌고
정신병자를 범죄자 취급
병식 없는 당신들이 무서운 거 모르나
*이미지 :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가 써진 종이
저는 불안하기 때문에 타인의 불안을 이해해요. 저는 오랜 시간 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행동에 보다 관대할 수 있어요. 제가 겪은 시간에 누군가를 비출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 병은 제 재능은 단면이기도 해요. 정신병을 인정했기 때문에 자신을 깨닫는 게 얼마나 어렵고 아프고 또 아름다운 일인지를 알아요. 우리가 페미니즘을 만날 때 처럼요. 정신병을 인정했을 때 정신병에 대한 사회의 수많은 라벨과 낙인이 얼마나 부당한지 깨달았어요. 처음 병원에서 집에 가던 지하철 안 공기를 떠올려요.
[페미정신] 모임을 하면서 우리는 매 시간 충분히 서로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었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 옆에 있겠다는 것은 그 이상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있구나 생각했어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책 내용에서 "결국 자살은 자살이며, 자살을 병사라고 타살이라고 자연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증상의 어떤 측면, 이를테면 어쩔 수 없음, 불가피한, 만성적인, 저항해도 좌절되는 상황을 설명해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자살은 자살이다."란 문구. 가까운 두 명의 동료를 자살로 보내고 들었던 많은 이야기 중 이 글귀가 가장 공감되었어요. 그리고 진실 같았습니다. 저는 그 두 친구를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잊지 않기 위해 해야 할 행동은 바로 오늘 같은 시간입니다.
페미니즘은 고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로서 저는 정신병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제가 겪은 혹은 누군가 겪고 있는 시간을 외면하지 않아보려고 해요. 그 길목에 함께하게 된 여러분들, 정신병의 나라에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응원합니다.
-데이지
* 이미지 : 나는 우울을 돌보고 산다가 써진 종이
모임을 마치고 참여자들과 오픈채팅방에서 소감을 나눴습니다.
저는 오늘 모든 말들마다 사이사이 침묵의 순간들마다 마음이 엄청 울렸어요. 내 얘긴데!!하는 부분 너무 많고요.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페미/정병이란 키워드로 모여서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적 같고 소중했어요. 그리고 빻음이 뭔지 레즈가 뭔지 설명할 필요 없고 정병혐오 걱정 없는 상쾌함... 안전한 공간 열어주신 페미 정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려요. 말하기에 나서주신 분들과 자리에 함께 있던 분들 다 마음으로 꼭 안아주고 싶었답니다(마음으로만요ㅎ). 다들 안녕히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 매일
* 영화 "스탠바이 웬디" (2017) 스틸컷 중
* 이미지 :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2016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1%다.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1.4%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이 일어날 경우 마치 그 병이 원인인 것처럼 대서특필하여 정신질환에 관한 왜곡된 정보와 혐오를 조장한다. 영화 속에서 웬디는 지갑과 아이폰을 절도 당하는 피해자가 되지, 가해자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되는 일을 겪으면서까지 웬디가 자신의 능력과 책임감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영화 속 일만은 아니다. (출처 : 신승은, 웬디는 스탠바이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6829?s=09)
주말에 영화 스탠바이 웬디 리뷰글을 보았는데 페미정신 이어말하기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밥 잘 챙겨먹는 하루되시길 바래요! - 매일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니까 이런 곳에 살면서 아픈 게 어쩌면 건강한 반응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프고 지칠 때, 아파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상담이 도움 됐지만, 항상 자신이 변화해야 하고 이런 세상이지만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게 싫었어요.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이 무력감은 나아질리 없을 것 같아요. 도른(?) 페미 동지들도 비슷한 마음이실 거라 생각해요
제 병에 대한 이야기, 어떤 감정이었는지, 또 매일 뭔가를 까먹는 ADHD러와 매일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하는 강박러 같이 상충하는 특성을 병적인 수준으로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어울려서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들 하고 싶었는데 그런 말은 못하고 아무 말만 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이야기 나눠 주신 분들,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들어 주셨던 분들 모두 존재해 주셔서 너무 감사 했어요 :>
-선율
* 이미지 : 오늘을 살아내느라 고생했어요가 써진 종이
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미래의 제가 잘 하겠지 하고 걍 준비를 못 하고 갔는데ㅋㅋㅋ
막상 가서 여러분들 얘기 듣고 하니깐. 공감 되는 마음이 많아서 울컥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유쾌하고 즐겁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얘기하다보니깐 눈물도 나고. 너무 길어지는 거 같아서 끊었는데 다음이 있다면 다른 얘기들도 나누고 싶네요. 여러분들 말씀해주신 것들 집중하려고 많이 노력하면서 들었는데 중간중간 제가 제어하지 못하는 딴 생각이 나서 조금씩 빈 공간이 있네요.
눈물이 난다는 건 치유되는 거라고 생각해가지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상담자가 한번 제게 그랬거든요 본인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그때 당시에는 저를 안쓰럽다 연민하고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자기연민에 빠지는 게 좋지 않다는 거예요. 왜요? 했더니 살짝 당황하시더라고요. 그러시더니 자기 연민에 빠지면 자기 자신을 약하다고 생각하니까. 피해자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래요. 근데 생각해봐요. 우리가 정병 증상들이 있고. 어디서든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사는데 어떻게 강하다는 생각을 가지는게 쉽겠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 때매 난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약하다고 믿는 게 점점 강해 진거다 얘기했더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걍 제가 못 하는걸 받아들이고 알아주는 정병인 친구들을 만나서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이게 안 좋은 생각이면? 어떻게 해야될지? 그거는 알게 되면 다시 공유 드리겠습니다.
S님 말씀에 위로 받고 갑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대로 지내는 거도 괜찮겠다 싶어요. 여태까지 두 명의 상담사님께 여쭤봤는데 이렇다 할 답변을 못 받았습니다. 다음에 우리끼리 어울려서 살아가고 사랑하고 좌절하고 회복하고 일어나는 얘기에 대해서 얘기해보는 것도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 갈릭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로서는 스스로를 어여삐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ㅎㅎ... 저도 각자의 못난 부분, 아픈 부분, 취약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나아질 수 있었어요. 나를 피해자로만 생각하면 외부의 요인에만 분노하거나 대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되니까 상담쌤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싶네요.... 저도 상담 가면 자기연민에 대해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 좌절하는 라이언
* 이미지 : 심리상담, 심리검사, 건강보험 급여화합시다가 써진 종이
민우회에서 올라온 웹자보를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나는 올해 봄, 만성 우울증과 ADHD를 진단받았다. 누군가는 병명을 얻은 것이 힘이 되기도 하겠지만 나는 반대로 너무 힘들었다. 특히 'ADHD'는 '조현병급' 진단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울증은 상담으로 나아질 수도 있지만 ADHD는 뇌의 문제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의사의 말에 좌절을 했었다. 아무튼,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건강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었다.
한(국)남(성)들이 페미는 정신병~~ 이러는데 나는 정말 정신병 걸린 페미니스트가 맞다.ㅋㅋㅋ
근데 세상에 페미-정신질환자 이어말하기라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병명을 진단받아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양상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알게 되었다. 또 정신질환 안에서도 더 편견에 시달리는 것이 있다는 것, 병에도 사회적으로 편견이 있기 때문에 '등급'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참여자들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 역시 우울증은 진단은 마음이 아팠지만 ADHD는 혐오스럽고 싫고 좌절스러웠다. 참여자 분들 중 상당수가 ADHD가 있었다. 다 어디에서 살다가 온 것일까? 궁금했다.
ADHD이지만 또 각각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들은 게 가장 신선했다. 나는 해석 진단을 듣기 전, 의사에게 "우울 때문에 잠시 기능이 저하된 것이지, ADHD아닙니다."라는 말을 듣길 바랬다. (그렇기에는 CAT 검사를 하면서 집중을 하지 못하고 배고픈데 마라탕에 청경채 몇 장 넣지, 무슨 버섯 넣지 생각했다;;)하지만 누군가는 진단명을 들은 것이 의미가 있었다니 나와는 다르구나 싶었다.
어제 행사가 끝나고 불이 나게 도망 나오듯 나왔다. 근데 이상하게 오늘 아침에 기분 좋고 마음이 가뿐했다. 어제 행사 덕에 내 안의 좌절스런 마음이 어느 정도 날아간 것 같았다. 어제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로 자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말하기 참여자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 정신병자 박복치
* 이미지 : 약이 최고야가 써진 종이
* 이미지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시마 유키오가 써진 종이
저도 최근에 생각도 못했던 진단명이 추가되서 너무 놀랬고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는데...스스로 생각한 결론은 병명이 무엇이든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받고 나아지는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해서 프레이밍에 갇히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마음이 취약해져 있을때 여러 진단명이 나오기 쉽다고 생각도 들더라구요. 문항 하나 차이로도 병증이냐 아니냐가 나뉘니까요. 똑같이 체력장(옛날사람ㅋㅋ) 하더라도 저희는 천둥번개치고 비오는날 하는거처럼요.
-구김
* 이미지 : 밥먹기, 물마시기가 써진 종이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 소모임 페미정신 회원들의 이야기로 후기를 마칠게요.
혹시 이 글을 보는 정신질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동료들이 있다면 연대한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응원을 전해보아요.
* 이미지 : 참여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음
* 이미지 : 우리가 세상을 바꿀지도 몰라 페미정신질환자가 써진 종이
* 이미지 : 종이에 각자의 메세지를 쓴 것을 한꺼번에 벽에 부착한 장면
첫 모임에서 느꼈던 따듯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병 얘기를 했는데 외면 받지 않고 동정 받지 않는 경험은 처음이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나서 한동안 우울하단 말도 못하던 내가 병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의 허름하고 구겨진 부분을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했다는 걸 그때쯤 깨달았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라도 집중하고 경청해주는데다 나도 그랬다 너무 공감된다는 말로 받아쳐주고 울고 웃기까지. 병의 존재를 스스로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며 병과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해준 사람들이다. 페미니스트로서 또 정신질환자로서 세상은 바뀌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짜증나고 좌절하고 피로하기도 했지만, 이를 같이 나눌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조적인 농담도 하고 세상에 따끔한 메세지를 전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페미정신에서 쌓은 추억은 앞으로 계속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라 믿는다.
- 이도
함께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달랐어요. 제 인생의 어떤 페이지가 스르륵 넘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 꼬깜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책제목부터 끌려서 본능적으로 이 모임에 올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들만의 모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어말하기 행사를 통해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발화를 듣고 교감할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행사를 함께 기획하면서 참여자가 저조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우려도 있었는데 발언 신청자들의 용기 덕분에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한사람 발언이 끝날 때마다 그에 대한 코멘트나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유를 둔 것도 좋았습니다. 우리들은 정병 동지구나 반갑고 눈시울 뜨거워지는 시간… 오랫동안 그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 코로나 시국인 만큼 행사 도중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하고 물도 금지할 만큼 철저하게 방역 지켜서 진행했답니다^^) 이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목소리 내고 처우 개선을 요구할수 있는 용기를 얻고 갑니다. 정신질환자가 고립되고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인정받는 그날까지 모두 파이팅해요~^^
- 지은
<괜찮아, 정신병이야 사실 안 괜찮아> 행사날. 편집부터 온갖 할 일은 쌓엿지만 이미 기획한 행사라... 과거의 나를 규탄하며 행사장으로 갔는데.
집 돌아오는 길, 차는 끊기고 부는 바람도 차디찬데 속 세상은 개운하고 아늑햇다. 행사 참여자들, 발언 신청자들이 울고 웃으며 너무 편안해하고 만족해서인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도 그러한 시간이어서.
수십년간 비가 들이치고 눈이 앉아도 한 번도 돌보지 않은 창들을 두툼하고 촉촉한 수건으로 한 번에 스윽 닦아낸 것만 같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이야기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모를만큼 너무 많은 시간이 쌓였고 문제가 집약되어있는데 그걸 다 풀어낼만큼 내 마음의 근육이 단단하지 않아서 섣불리 풀어내다가 또 다시 되려 무시, 차별, 낙인, 의심만 돌아올까 싶어 두려웠고 내 것임에도 실은 내것이라 인정못한 서사와 감정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가며 이따금씩 사람들과 눈을 맞췄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니 오롯이 현재에 서게 되는 것 같았고. 그리고나서 내 책장에 꽂힌 거의 유일한 실용사(!)의 저자 리단님으로부터 싸인을 받았다.
"고립을 피하고 연대를 구하십시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아마 다른 순간이 아닌 오늘 이 순간 내게 도착한 문장이라 더 좋은 거겠지.
-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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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괜찮아, 정신병이야 사실 안괜찮아
2021년 11월 25일(목),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민우회 지하 1층 교육장에서 "페미니스트 정신질환자 이어말하기 - 괜찮아, 정(신)병이야 사실 안괜찮아" 행사가 있었습니다.
20명의 참여자들이 모였는데요.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이야기로 2시간을 채웠습니다.
ADHD,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조울증...
진단명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이 병명이 의미하는 바와 그리고 담지 못하는 것은 서로의 이야기와 침묵으로 채워졌습니다.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행복해질 수 없을 거 같다. 행복해지는 것,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2021년 1월 3일 일요일에 제가 썼던 메모입니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신다면 정신과에 꼭 가보세요. 해치지 않아요.
2020년 6월 19일 금요일. 정신과에 처음 간 날입니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어느덧 구체적인 자살 방법까지 떠올리는 상황이 되었을 때 치료를 받아보라는 권유에 못 이긴 척 정신과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년 5개월째 정신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계속 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약의 처방용량은 한 번도 줄지 않았고 항우울제의 용량은 1일 최대 복용량까지 늘어났습니다. 달라진 건 약을 먹기 시작한 것 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습니다. 습관처럼 떠올리던 ‘죽고싶다’는 생각은 ‘죽고싶나?’하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치료를 지속하면서 저는 더 명랑해지고 상태가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종종 찾아오는 무기력하고 감정이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몸이 늪에 빠진 것처럼 가라앉는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중략)
제가 치료를 받으면서 계속 듣는 말은 해야 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항상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정 모르겠으면 남들이 재밌다고 하는 걸 따라해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얻어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만든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는 완성한 것 같아요.
나의 우울증 경험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저는 제가 원래 귀찮아하고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어린 시절부터 우울한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말하고 다니고 싶어요. 우울증을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병과 함께 사는 법을 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좌절하는 라이언
* 이미지 : 미친 내가 자랑스러워, 병이랑 잘 살아보자가 써진 종이
* 이미지 :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가 써진 종이
저는 이도 저도 아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고 정신 질환자입니다.
네, 정신병이 있습니다. 정신병이 있어요! 이 한 문장을 편히 말하는데 몇 년이 걸린 것 같아요. 저는 한동안 우울하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우울하지 않은 게 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니까, 우울하다~ 는 숨 쉰다~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러지’ 라는 게 없었어요. 돌아가고 싶은 과거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울하지 않은 상태가, 무기력하지 않은 상태가 뭔지 구분이 잘 안되었어요. 아마도 제 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우울은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떡하니 드러 누워버립니다. 쿨한 척 담담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기까지 수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잡아떼어내려고 해보고 밀어내고 파버리고 잘라내고 쫒아내고 지워버려도 안되던 걸요. 우울증인 게 너무 짜증나서 왜 나는 이런 병이 있을까, 왕따를 당해서 그런 걸까, 내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 나는 시스젠더인데 착각하고 있어서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닐까, 사회는 왜 변하지 않을까,
사실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인데 내가 회피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질문을 던졌더니 그 질문에 맞아 아프다고 엉엉 우는 것도 저였어요.(중략)
저는 그래서 우울과 같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어디서 이 녀석이 생겨난 게 아니라, 갑자기 날 찾아온 게 아니라 그냥 나의 일부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요.
너무 싫고 미워도 저에게 찰싹 붙어있는 우울을, 잘 살피고 보살피고 달래는 건 정말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어려워요. 이 녀석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토록 구멍이 뻥 뚫린 나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너무 싫지만, 그래도 살아는 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답할 수 있는 건, 저는 저의 병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을 만나고, 공간을 찾고, 나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트위터든, 자조모임이든 말이죠. 민우회 소모임 페미정신에서 저의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찾아나간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 이도
페미정신 지은님이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는데요.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맘껏 춤을 추셨답니다. ㅎㅎ 우리가 돌은 것인가? 아니, 세상이 빙글빙글하다~ 병식(병에 대한 스스로의 인지) 없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는 메시지를 담아서요.
* 원곡 : 나미, <빙글빙글>
그저~ 화만 삭히고 있지
그저~분노만 쌓이고 있지
늘 우울하면서도
안괜찮다는 그말을 못해~
그저~ 화만 삭히고 있지
그저~ 분노만 쌓이고 있지
늘 우울하면서도
약만 먹는 이 방법이 맞나
정신질환자 그게 어때서
범죄자 아냐 몰아가지마
어떻게 하나 세상의 시선은 빙글빙글 돌고
정신병자를 범죄자 취급
병식 없는 당신들이 무서운 거 모르나
*이미지 :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아요가 써진 종이
저는 불안하기 때문에 타인의 불안을 이해해요. 저는 오랜 시간 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행동에 보다 관대할 수 있어요. 제가 겪은 시간에 누군가를 비출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 병은 제 재능은 단면이기도 해요. 정신병을 인정했기 때문에 자신을 깨닫는 게 얼마나 어렵고 아프고 또 아름다운 일인지를 알아요. 우리가 페미니즘을 만날 때 처럼요. 정신병을 인정했을 때 정신병에 대한 사회의 수많은 라벨과 낙인이 얼마나 부당한지 깨달았어요. 처음 병원에서 집에 가던 지하철 안 공기를 떠올려요.
[페미정신] 모임을 하면서 우리는 매 시간 충분히 서로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었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 옆에 있겠다는 것은 그 이상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있구나 생각했어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책 내용에서 "결국 자살은 자살이며, 자살을 병사라고 타살이라고 자연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증상의 어떤 측면, 이를테면 어쩔 수 없음, 불가피한, 만성적인, 저항해도 좌절되는 상황을 설명해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자살은 자살이다."란 문구. 가까운 두 명의 동료를 자살로 보내고 들었던 많은 이야기 중 이 글귀가 가장 공감되었어요. 그리고 진실 같았습니다. 저는 그 두 친구를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잊지 않기 위해 해야 할 행동은 바로 오늘 같은 시간입니다.
페미니즘은 고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로서 저는 정신병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제가 겪은 혹은 누군가 겪고 있는 시간을 외면하지 않아보려고 해요. 그 길목에 함께하게 된 여러분들, 정신병의 나라에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응원합니다.
-데이지
* 이미지 : 나는 우울을 돌보고 산다가 써진 종이
모임을 마치고 참여자들과 오픈채팅방에서 소감을 나눴습니다.
저는 오늘 모든 말들마다 사이사이 침묵의 순간들마다 마음이 엄청 울렸어요. 내 얘긴데!!하는 부분 너무 많고요.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페미/정병이란 키워드로 모여서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적 같고 소중했어요. 그리고 빻음이 뭔지 레즈가 뭔지 설명할 필요 없고 정병혐오 걱정 없는 상쾌함... 안전한 공간 열어주신 페미 정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려요. 말하기에 나서주신 분들과 자리에 함께 있던 분들 다 마음으로 꼭 안아주고 싶었답니다(마음으로만요ㅎ). 다들 안녕히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 매일
* 영화 "스탠바이 웬디" (2017) 스틸컷 중
* 이미지 :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2016년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0.1%다.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1.4%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이 일어날 경우 마치 그 병이 원인인 것처럼 대서특필하여 정신질환에 관한 왜곡된 정보와 혐오를 조장한다. 영화 속에서 웬디는 지갑과 아이폰을 절도 당하는 피해자가 되지, 가해자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되는 일을 겪으면서까지 웬디가 자신의 능력과 책임감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영화 속 일만은 아니다. (출처 : 신승은, 웬디는 스탠바이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6829?s=09)
주말에 영화 스탠바이 웬디 리뷰글을 보았는데 페미정신 이어말하기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밥 잘 챙겨먹는 하루되시길 바래요! - 매일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니까 이런 곳에 살면서 아픈 게 어쩌면 건강한 반응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프고 지칠 때, 아파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상담이 도움 됐지만, 항상 자신이 변화해야 하고 이런 세상이지만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게 싫었어요.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어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이 무력감은 나아질리 없을 것 같아요. 도른(?) 페미 동지들도 비슷한 마음이실 거라 생각해요
제 병에 대한 이야기, 어떤 감정이었는지, 또 매일 뭔가를 까먹는 ADHD러와 매일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하는 강박러 같이 상충하는 특성을 병적인 수준으로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어울려서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이야기들 하고 싶었는데 그런 말은 못하고 아무 말만 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이야기 나눠 주신 분들,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들어 주셨던 분들 모두 존재해 주셔서 너무 감사 했어요 :>
-선율
* 이미지 : 오늘을 살아내느라 고생했어요가 써진 종이
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미래의 제가 잘 하겠지 하고 걍 준비를 못 하고 갔는데ㅋㅋㅋ
막상 가서 여러분들 얘기 듣고 하니깐. 공감 되는 마음이 많아서 울컥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유쾌하고 즐겁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얘기하다보니깐 눈물도 나고. 너무 길어지는 거 같아서 끊었는데 다음이 있다면 다른 얘기들도 나누고 싶네요. 여러분들 말씀해주신 것들 집중하려고 많이 노력하면서 들었는데 중간중간 제가 제어하지 못하는 딴 생각이 나서 조금씩 빈 공간이 있네요.
눈물이 난다는 건 치유되는 거라고 생각해가지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상담자가 한번 제게 그랬거든요 본인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그때 당시에는 저를 안쓰럽다 연민하고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자기연민에 빠지는 게 좋지 않다는 거예요. 왜요? 했더니 살짝 당황하시더라고요. 그러시더니 자기 연민에 빠지면 자기 자신을 약하다고 생각하니까. 피해자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래요. 근데 생각해봐요. 우리가 정병 증상들이 있고. 어디서든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사는데 어떻게 강하다는 생각을 가지는게 쉽겠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 때매 난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약하다고 믿는 게 점점 강해 진거다 얘기했더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걍 제가 못 하는걸 받아들이고 알아주는 정병인 친구들을 만나서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이게 안 좋은 생각이면? 어떻게 해야될지? 그거는 알게 되면 다시 공유 드리겠습니다.
S님 말씀에 위로 받고 갑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대로 지내는 거도 괜찮겠다 싶어요. 여태까지 두 명의 상담사님께 여쭤봤는데 이렇다 할 답변을 못 받았습니다. 다음에 우리끼리 어울려서 살아가고 사랑하고 좌절하고 회복하고 일어나는 얘기에 대해서 얘기해보는 것도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 갈릭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로서는 스스로를 어여삐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ㅎㅎ... 저도 각자의 못난 부분, 아픈 부분, 취약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나아질 수 있었어요. 나를 피해자로만 생각하면 외부의 요인에만 분노하거나 대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되니까 상담쌤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 싶네요.... 저도 상담 가면 자기연민에 대해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 좌절하는 라이언
* 이미지 : 심리상담, 심리검사, 건강보험 급여화합시다가 써진 종이
민우회에서 올라온 웹자보를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나는 올해 봄, 만성 우울증과 ADHD를 진단받았다. 누군가는 병명을 얻은 것이 힘이 되기도 하겠지만 나는 반대로 너무 힘들었다. 특히 'ADHD'는 '조현병급' 진단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울증은 상담으로 나아질 수도 있지만 ADHD는 뇌의 문제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의사의 말에 좌절을 했었다. 아무튼,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건강도 실력이라는 생각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었다.
한(국)남(성)들이 페미는 정신병~~ 이러는데 나는 정말 정신병 걸린 페미니스트가 맞다.ㅋㅋㅋ
근데 세상에 페미-정신질환자 이어말하기라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병명을 진단받아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양상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알게 되었다. 또 정신질환 안에서도 더 편견에 시달리는 것이 있다는 것, 병에도 사회적으로 편견이 있기 때문에 '등급'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참여자들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 역시 우울증은 진단은 마음이 아팠지만 ADHD는 혐오스럽고 싫고 좌절스러웠다. 참여자 분들 중 상당수가 ADHD가 있었다. 다 어디에서 살다가 온 것일까? 궁금했다.
ADHD이지만 또 각각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들은 게 가장 신선했다. 나는 해석 진단을 듣기 전, 의사에게 "우울 때문에 잠시 기능이 저하된 것이지, ADHD아닙니다."라는 말을 듣길 바랬다. (그렇기에는 CAT 검사를 하면서 집중을 하지 못하고 배고픈데 마라탕에 청경채 몇 장 넣지, 무슨 버섯 넣지 생각했다;;)하지만 누군가는 진단명을 들은 것이 의미가 있었다니 나와는 다르구나 싶었다.
어제 행사가 끝나고 불이 나게 도망 나오듯 나왔다. 근데 이상하게 오늘 아침에 기분 좋고 마음이 가뿐했다. 어제 행사 덕에 내 안의 좌절스런 마음이 어느 정도 날아간 것 같았다. 어제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로 자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말하기 참여자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 정신병자 박복치
* 이미지 : 약이 최고야가 써진 종이
* 이미지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시마 유키오가 써진 종이
저도 최근에 생각도 못했던 진단명이 추가되서 너무 놀랬고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는데...스스로 생각한 결론은 병명이 무엇이든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받고 나아지는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해서 프레이밍에 갇히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마음이 취약해져 있을때 여러 진단명이 나오기 쉽다고 생각도 들더라구요. 문항 하나 차이로도 병증이냐 아니냐가 나뉘니까요. 똑같이 체력장(옛날사람ㅋㅋ) 하더라도 저희는 천둥번개치고 비오는날 하는거처럼요.
-구김
* 이미지 : 밥먹기, 물마시기가 써진 종이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한 소모임 페미정신 회원들의 이야기로 후기를 마칠게요.
혹시 이 글을 보는 정신질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동료들이 있다면 연대한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응원을 전해보아요.
* 이미지 : 참여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음
* 이미지 : 우리가 세상을 바꿀지도 몰라 페미정신질환자가 써진 종이
* 이미지 : 종이에 각자의 메세지를 쓴 것을 한꺼번에 벽에 부착한 장면
첫 모임에서 느꼈던 따듯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병 얘기를 했는데 외면 받지 않고 동정 받지 않는 경험은 처음이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나서 한동안 우울하단 말도 못하던 내가 병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의 허름하고 구겨진 부분을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했다는 걸 그때쯤 깨달았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라도 집중하고 경청해주는데다 나도 그랬다 너무 공감된다는 말로 받아쳐주고 울고 웃기까지. 병의 존재를 스스로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며 병과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해준 사람들이다. 페미니스트로서 또 정신질환자로서 세상은 바뀌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짜증나고 좌절하고 피로하기도 했지만, 이를 같이 나눌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조적인 농담도 하고 세상에 따끔한 메세지를 전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페미정신에서 쌓은 추억은 앞으로 계속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라 믿는다.
- 이도
함께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달랐어요. 제 인생의 어떤 페이지가 스르륵 넘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 꼬깜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책제목부터 끌려서 본능적으로 이 모임에 올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들만의 모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어말하기 행사를 통해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발화를 듣고 교감할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행사를 함께 기획하면서 참여자가 저조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우려도 있었는데 발언 신청자들의 용기 덕분에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한사람 발언이 끝날 때마다 그에 대한 코멘트나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유를 둔 것도 좋았습니다. 우리들은 정병 동지구나 반갑고 눈시울 뜨거워지는 시간… 오랫동안 그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 코로나 시국인 만큼 행사 도중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하고 물도 금지할 만큼 철저하게 방역 지켜서 진행했답니다^^) 이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목소리 내고 처우 개선을 요구할수 있는 용기를 얻고 갑니다. 정신질환자가 고립되고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인정받는 그날까지 모두 파이팅해요~^^
- 지은
<괜찮아, 정신병이야 사실 안 괜찮아> 행사날. 편집부터 온갖 할 일은 쌓엿지만 이미 기획한 행사라... 과거의 나를 규탄하며 행사장으로 갔는데.
집 돌아오는 길, 차는 끊기고 부는 바람도 차디찬데 속 세상은 개운하고 아늑햇다. 행사 참여자들, 발언 신청자들이 울고 웃으며 너무 편안해하고 만족해서인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도 그러한 시간이어서.
수십년간 비가 들이치고 눈이 앉아도 한 번도 돌보지 않은 창들을 두툼하고 촉촉한 수건으로 한 번에 스윽 닦아낸 것만 같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이야기니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모를만큼 너무 많은 시간이 쌓였고 문제가 집약되어있는데 그걸 다 풀어낼만큼 내 마음의 근육이 단단하지 않아서 섣불리 풀어내다가 또 다시 되려 무시, 차별, 낙인, 의심만 돌아올까 싶어 두려웠고 내 것임에도 실은 내것이라 인정못한 서사와 감정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가며 이따금씩 사람들과 눈을 맞췄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니 오롯이 현재에 서게 되는 것 같았고. 그리고나서 내 책장에 꽂힌 거의 유일한 실용사(!)의 저자 리단님으로부터 싸인을 받았다.
"고립을 피하고 연대를 구하십시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아마 다른 순간이 아닌 오늘 이 순간 내게 도착한 문장이라 더 좋은 거겠지.
-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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