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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후기] 노동은 쓰고, 글쓰기도 쓰지만

2021-11-24
조회수 1794

안녕하세요? 올해 여성노동팀은 ‘여성노동’을 주제로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상반기에는 ‘일터에서 사소하지 않은 싸움을 하는 여자들(일싸여)’ 소모임을 열고 여성노동을 다룬 책,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다뤘습니다. ‘일싸여’의 마지막 모임은 각자의 일경험을 에세이로 쓰고 나누는 시간이었는데요. 에세이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 잘 담겨있었어요.

 

상반기 여성노동 소모임 후기 바로가기

 

그래서, 하반기 주제는 아예 ‘여성노동 글쓰기’로 잡고, ‘노동은 쓰고, 나는 쓴다’ 소모임을 열어보았습니다. 글을 통해서 서로의 일경험을 돌아보고 다른 미래를 상상해보자는 취지의 기획이에요. 10월 7일부터 11월 16일까지 한달 남짓 4번의 온라인 모임을 가졌는데요. 글솜씨도 좋았지만 글에 담긴 고민과 질문이 더더더더 좋았답니다.

 

이렇게 모인 글과 이야기를 살짝 맛보여드릴까 해요.

 

 

 

쓰디쓴 나의 노동… 글쓰기 한 스푼, 위로격려 한스푼

 

 

“열다섯 정도였을까,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수업 시간이었다. 돌아가면서 간단한 발표를 하는데 여자아이들의 반 정도가 장래희망을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진짜 교사가 되는 일을 꿈으로 삼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제일 무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몰랐던 게 있었다. 어린이만 무대에 설 수 없는 게 아니라, 예쁘고 마르지 않은 여자도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몰랐던 게 또 있었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는 가수만 못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취업 면접을 앞둔 선배 언니들은 성형수술을 받곤 했다. 예쁜 애들이 취업도 잘했다.”

 

 

장래희망을 주제로 한 글입니다. 수업 시간에 장래희망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교실에서 어린이들이 말하는 ‘장래희망’에는 벌써부터 성별직종분리가 나타나지요. 어린이가 성별에 따라 ‘여자다운 일’, ‘남자다운 일’을 각자의 장래희망으로 발표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발생한 문제일까요? 또 무엇을 바꿔야 해결될 문제일까요?

 

예쁘고 마르지 않아서 가수가 되지 못했다는, 그리고 채용에서도 외모에 따른 차별을 느꼈다는 이야기에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채용성차별 따위 사라졌으며 오히려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백래시’의 언어들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되는 차별의 언어를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의 글과 말이 더 많아져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일을 구성하는 저임금과 감정노동과 노동통제가 성차별의 결과라면, 그 차별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걸까? 구직 사이트에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시간을 필터링해 나온 결과가, 그 중에 여성을 채용하는 회사가 콜센터, 마트, 물류센터 등 하는 일은 다르지만 어차피 모두 최저시급의 일자리뿐이었을 때?”

 

“열심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원래부터 술과 담배를 즐기긴 했지만, 이 두가지는 내 ‘기호(taste)’에 따른 기호품만이 아니라 내가 이 세계의 구성원이라고 알리는 ‘기호(sign)’품이기도 했다. 나를 증명할 기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나는 끝끝내 그들의 형제가 되지 못했다.“

 

 

직업의 내용은 다르지만, 성차별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없는 것 같아요. 여성이 많은 직업에서는 직업군의 특성에서 또한 해당 직업군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차별이 발생했고요. 여성이 별로 없는 직업에서는 남성들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외감, ‘명예남성’과 ‘페미니스트’의 정체성 사이에서의 혼란을 확인할 수 있었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차별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라면, 성별 때문에 헌법에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받는 일은 없을 거예요. 또 직장 안에서도 ‘나도 (남자만큼 또는 남자처럼) 잘 해야지’라고 스스로를 다잡지 않고도 평등한 동료로서 대우받을 수 있을 거예요.

 

 

“프리랜서의 장점은 사장이 없다는 것이고 단점은 사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달에 수입이 있다한들 다음달의 수입을 장담할 수 없는 생활이 나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했다...나름대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누워 내 이런 뒤죽박죽한 이력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쩔 때는 나의 지난 모든 결정들이 터무니 없게 느껴진다.”

 

“‘편의점치고’ 주휴수당과 최저임금을 지켜준다며 좋아했었다. 최저임금은 최저로 일하라고 주는 돈이건만. 순진하게도 알바치고는 성실하게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점장의 성희롱이었다...이 시간을 견디면 내 이력이 될 수 있을까? 3년의 경력을 채울 수 있을까?”

 

매일 8시간 이상을 일터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일’은 곧 ‘생활’입니다. 일 경험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나는 누구일까?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진지한 고민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죠. 이 과정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래서, 소모임에서 나눈 글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이 묻어나왔습니다. 글에는 다 담을 수 없고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마음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그 마음이 무엇인지 모임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다들 아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랜선을 타고 전달되었길 바라요.

 

더 신나고 행복한 ‘일경험 글쓰기’를 위하여

 

 

실제로 소모임을 운영해본 결과… 글을 쓰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글쓰기 모임이지만 사실 글을 꼭 완성할 필요는 없었어요. 좋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경험을 돌아보는 게 목적이니까요. 그런데도 글쓰기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분들도 “어렵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단지 한 문장의 글을 쓰는 과정이 아니라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거죠. 어떤 분은 “글을 쓰다 보니 지금 내가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고, 어떤 분은 “성차별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너무 어려워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글을 통해서 다시 만난 기억, 새로 만난 질문들이 모두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뒤에 글을 업그레이드한다면 또 다른 일경험이 더해지겠지요? 여성노동자의 환경이 더 좋아져서 행복한 경험이 늘어나도록, 그래서 더 재미있고 신나는 글이 나오도록 민우회도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