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스인터뷰 】 제이x다정, 일의 좋음과 싫음
*본 인터뷰 제목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민우회 회원팀은 올해 회원들과 더 지독하게(?) 얽히기 위해 매월 한 명의 회원을 만납니다.
2021 한국여성민우회 [크로스인터뷰] 프로젝트, 일곱 번째 인터뷰는 활동가 제이가 회원 다정을 만났습니다.
12년간의 디자이너-회사원 생활을 그만두고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한 10년차 민우회원다정.
인터뷰 날 독립문 근처의 아담한 작업실로 10년차 민우회 활동가제이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 제이
● 다정
본격 인터뷰 전, 갑자기 양자택일 질문.
■ 아침형 vs 올빼미형 ?
● 올빼미형.
■ 바삭파 vs 눅눅파 ?
● 바삭. 모든 걸 바삭하게.
■ 밥 vs 빵 ?
● 빵.
■ 여름 vs 겨울 ?
● 겨울. 추위를 덜 타요. 그리고 차가운 바람 좋아해요. 새벽공기 같은 거.
■ 소풍 vs 파티 ?
● 소풍.
■ 커피 vs 맥주 ?
● 헉... 너무 어렵다......! ...맥주!
■ 나는 인류애가 있다 vs 없다 ?
● 있다.
■ 초능력 갖게 된다면 텔레파시 vs 텔레포트 ?
● 텔레포트.
■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김연경 vs 안산 ?
●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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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다정 알아보기 시간이었습니다!
● 엇 뭔가 분석 결과가 나올 거 같아요ㅎㅎ
■ 그쵸 가만있어봐봐요 제가 지금 차트를 분석해보니까... 다정은 내향형이시네요, 소풍을 좋아하니까? (이 이상의 분석 실패..) 끝이고요ㅋ 사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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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올빼미형이라고 했는데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요?
● 12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요.
■ 엇 그럼 아침형 아니에요?
● 근데 일하려고 일찍 일어나진 않아요. 만약 뭔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저녁에 할 거 같아요. 아침은 커피 한 잔 마시고, 여유롭게 아침 먹는 시간이에요.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는 거지, 일은 저녁에 하고 필요하면 새벽까지 하기도 해요. 그래서 올빼미인 거 같아요. 제이는 어때요?
■ 저는... 아침형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ㅎㅎ 요즘에 아침 화상영어를 주5일 하거든요.(엄청 빡세다) 네, 이게 있어서 그나마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게 돼요. 취침 시간이 관건이더라고요. 근데 최근에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선생님 오늘 안 되겠어요’ 하고 자 버리는 때도 많아요ㅎ 전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싶어 하는데, 저녁에는 에너지가 엄청 다운돼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에요.
● 그렇군요. 저는 저녁엔 에너지가 좀 넘치는 것 같아요.
■ 올빼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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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애. 지키고 있기 어렵지 않아요?
● 근데 어떤 게 인류애에요?
■ 어떤 거 생각했어요?
● 글쎄, 사람에 대한 믿음? 일하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물건 택배 받았는데 파손돼 있으면 막 컴플레인 걸고 그럴 거 같은데 의외로 별로 안 그런 거예요. 자기한테 안 좋은 상황인데도 쿨하게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걸 보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까칠하진 않구나.’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사람에 대해서 좀 편해진 것 같아요.
■ 사람들을 온라인에서만 자꾸 보면 인류애를 더 잃게 되는 거 같거든요? 실제 생활 속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대놓고 악의적이진 않잖아요.
●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제이는요?
■ 저요? 저는 인류애가 완전 넘쳐나죠ㅎㅎㅎ 다정이 얘기한 것처럼 사람에 대한 믿음?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 혹은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저는 예술작품을 볼 때도 인류애가 폭발해요.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그 아름다운 것을.
● 오오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 그런 거구나.
■ 네 그런 것도 있어요. 물론 인류애를 잃어버릴 때도 있긴 한데ㅎ
● 잃어버린다는 건 어떤 거예요?
■ 아, 인간들 진짜 너무 싫다 이런 거?ㅋㅋ 동물 괴롭히고 막 이런 거 볼 때. ‘인간 뭐지? 극혐!’ ‘지구에서 다 사라져야 돼’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거든요. 근데 기본적으론 인류애로 돌아와요. 사람들 사이의 좋은 상호작용들, 때론 드물지만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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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안산 선수를 선택하셨나요?
● 그냥.. 김연경 선수는 너무... 쎌 거 같아요ㅎㅎㅎ 보고 있으면 재밌고 좋지만..
■ 근데 알죠, 실제로는 안산 선수가 진짜 겁나 쎈캐일 수 있다는 거ㅎㅎ
● 맞아요, 그럴 수도ㅎㅎ
모두의 예언을 뒤엎고
■ 다정이 민우회 회원이 된 게 2012년이었군요! 민우회를 만나기 전의 다정은 지금과 많이 달랐나요?
● 사실 20대에는 페미니즘이라고는 1도 몰랐어요. 단어도 몰랐던 것 같아요ㅎㅎ 디자인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대학 졸업하고 회사 생활 시작하면서 평생 이렇게 회사(=24시간 머리 맞대고 밤새 일하는 가족같은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공포와 일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대 후반이 되니 갑자기 모두가 연애와 결혼을 얘기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친구, 회사 동료, 부모님 등등 모두가. ‘넌 연애 안하니? 곧 좋은 남자 만날 거다, 결혼 생각 없다고? 언젠간 하게 될 거다, 정체성이 고민이라고? 남자 만나는 게 편한데 왜, 화장하기 싫어? 잘 보이고 싶은 사람 만나면 하게 될 거다.’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예언을 하는데 그게 답답하기도 하고 회사 생활도 지쳐서 그만두고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어요.
거기서 몇 개월 지냈던 쉐어하우스 집주인이 파독 간호사셨던 분인데, 밤마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사회운동, 페미니즘 등등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그 선생님 삶 자체가 저항이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과 연배가 비슷한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서 페미니즘을 체감했었던 것 같아요. 아, 저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선생님 인터뷰 기사를 발견하기도 했어요!
**다정에게 자신의 삶으로써 페미니즘을 소개해준, 독일의 비범한 그분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인터뷰 연재 기사를 볼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498293&SRS_CD=0000011980
■ 독일에서 운명처럼 하필이면 그 집에서 묵었군요! 그 다음에 하필이면(?) 민우회 회원가입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겼는데, 민우회 활동가였어요. 뭐하는지 잘 모르지만 열심히 재밌게 진심으로 일하는 것 같고 사실 그 사람한테서 관심 받고 싶은 마음에 가입했어요ㅎㅎ
■ 구체적인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이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경우들이 꽤 있더라고요.
● 네, 민우회 와서 3/8여성의날 행사도 처음 가봤는데 도로 점거하고 행진하는 것도 낯설고, 새롭고,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신입회원 만남의 날’ 가니까 나랑 비슷하게 일반 사회에 속하기 싫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고ㅎㅎ 결혼, 성별, 나이 얘기 하지 않으니 편하긴 한데 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처음에 엄청 쭈뼛쭈뼛 하면서도 일단 뭔지 잘 모르니까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참여해봤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여전히 페미니즘을 잘 모를 때였어요. 막 이상한 소리도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남성들을 너무 일반화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말들ㅎㅎㅎ 그럼 약간 주변에서 답답해하는 반응들이 있고ㅎㅎ 그래서 ‘아, 나는 좀 배워야 되겠다’라고 느끼면서 공부를 좀 했던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던 여성의 날 행사
■ 자기 발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접했을 때, 공부하는 걸로 이어지기보단 거부감으로 끝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나 봐요.
● 네, 신입회원 모임도 들어가고. 잘 모르니까 공부를 해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 모르긴 몰라도 뭔가 좋은 게 있을 거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나 보군요?
● 맞아요. 나는 그냥 사회에서 ‘보통’으로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모르던 다른 세계가 있었나?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하면서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나 자신을 편하게 느끼게 됐어요. 왜 처음에 페미니즘 접해가면서 알게 되는 것들 있잖아요, 특히 몸에 대한 긍정 같은 거. 당시 나는 회사에서 보기에, 남자들 보기에 ‘여자 같지 않은 여자?’로 여겨졌었는데, ‘왜 머리를 짧게 잘랐냐, 왜 치마를 안 입냐’ 이런 말들을 그냥 듣기 싫다고만 생각했지 페미니즘이랑 연결해서 생각진 못했던 거예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내가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를 고민하는 거 자체가 사실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는 상태잖아요. 단편적으로 뭐 ‘회의를 갈 때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힐을 신어야 한다’ 이런 얘길 들으면 그걸 계속 생각을 하는 게.
■ 그 말대로 안 하더라도, ‘내가 혹시 해야 되는데 안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 같은 거?
● 네, 입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근데 점점 그런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면서 되게 스스로를 긍정하게 됐어요.
민우회라는 커뮤니티를 만나기 전과 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면 안 맞는 정장을 억지로 입고 있는 과거 내 모습과 편한 옷을 입고 자유롭게 활보하는 지금의 모습이 떠올라요. 예전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환경이 설정되었다면, 민우회 가입 후에는 만나는 사람들이나 회사 선택 기준, 생활 반경도 민우회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 따지고ㅎㅎ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 계속 물어보면서 나에게 맞는 환경 설정을 점점 찾아가고 있어요.
■ 참여했던 민우회 활동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 퇴근시간을 알 수 없는 업종이다 보니 참여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갑자기 생각나는 게! 민우회에서 설문지 나눠주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 중에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캠페인 할 때 돌렸던 설문지가 있었어요. 백화점 직원이 일하는 중간에 물을 마실 수 있는지, 화장실 이용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아주 일상적인데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 신선했거든요.
친했던 직원 중 한명이 백화점 직원이 이용객들과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묻는 항목에 ‘불편하다’로 체크하는 걸 본 거예요. 나는 너무 이해가 안돼서 ‘뭐가 불편하냐, 같은 사람인데 왜 같이 사용 못하냐’ 하면서 발끈했고, 그 분은 ‘백화점은 서비스 받는 공간인데 직원도 같이 서비스 받는 거 같아서 싫다’는 마인드가 있더라고요. 너무 새로운(?) 관점이어서 언쟁이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고 체계가 이렇게 다르구나~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다~ 생각했어요.
그 뒤에도 설문지나 이슈가 있으면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특히 노동권에 대한 이슈들로 많이 싸웠는데ㅎㅎ 막 얼굴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 이해시키고 이해받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을 해봤던 것 같아요. 제 일상에서 가장 진심으로 긴 시간을 고민했던 나만의 민우회 활동이 아니었나 싶어요.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안미선, 한국여성민우회 / 2016)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 만들기 시민실천 캠페인’ 사진
*2014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시민설문조사 / 백화점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www.womenlink.or.kr/archives/4182
일, 하고 싶음과 하기 싫음
■ 다정에게서 ‘커리어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디자인 회사에서 일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만두고 쇼핑몰을 열었다는 소식이 놀라웠거든요. 저는 직업 선택이나 이직 같은 게 참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엄청 큰일이잖아요. 그런 큰 결정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어떤 이유로 하지? 그런 게 늘 궁금하거든요.
● 우와. 나는 반대로, 어떻게 그렇게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생각해요.
■ 아하하하 그럴 수 있겠네요.
● 특히 회사 다니는 사람들. 어떻게 딴생각을 안 하고 저렇게...?
■ ....딴생각을 맨날 하면서 다니는 건 아닐까요?ㅋㅋㅋㅋ 근데 맞아요, 사실 한 군데서 오래 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결국 일하며 사는 건 다 어려운 건가?ㅎㅎ 하지만 다정의 경우 이번엔 비슷한 직종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완전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 같아서, 이번 이직을 포함해 그간의 직업적 경로 설정에 작동한 요인들, 계기들에 대해 더 듣고 싶어졌어요. 회사원으로서의 본인 일의 역사?를 되짚어봐 주실 수 있나요?
● 환경디자이너로 시작해 편집디자이너까지 총 12년 회사를 다녔어요. 기본적으로 회사마다 클라이언트가 정해져 있는 편인데, 같은 클라이언트와 3~4년 하다보면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파악이 빨라져서 일은 쉬워지지만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가 힘들었어요. 정체성은 유지하되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시안 단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엔 매년 비슷한 결과물이 만들어져요. 그게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더 이상 뭐가 나오지 않는데 쥐어짜내는 기분이 있어요. 그런 한계가 오면 회사를 옮겨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욕구를 채웠던 것 같아요.
다행히 디자인은 분야별로 작업 공정이 다르고, 각 회사마다 주 클라이언트가 어디냐에 따라 작업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선택의 폭이 다양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비슷한 계열로 이직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분야-예를 들어 영화 포스터 하다가 상업 광고 하다가, 출판사로 가기도 하고-로 이직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저는 환경디자인으로 시작해 편집디자인으로 마무리했어요.
■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계속 찾고 추구해 온 과정이었군요.
● 맞아요. 나에게 부족한 것, 흥미로운 것,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커리어 선택의 동력은 결국 ‘하기 싫음’과 ‘하고 싶음’인 것 같아요. 처음 일했던 환경디자인 회사에서는 현장 조사가 많아서 거의 매주 지방 출장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 재밌었지만 점점 일의 비중이 현장조사&보고서 작성이 70%, 디자인 작업은 30% 정도였어요. 한창 디자인이 부족하고 목마르다고 느낄 때에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어 4년 다니고 이직했어요. 출장 없고 앉아서 일 할 수 있는 편집디자인 회사로ㅎ 그렇게 편집디자인 8년하고 깨끗하게 그만뒀습니다!
■ 디자인 회사 일을 아예 접어보자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뭐였어요?
● 외적으로는 회사 복지 때문에 윗사람들과 빈번하게 갈등이 있었고, 내적으로는 과장 다음 관리자인데 관리자가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어느 정도 연차가 되니까 이직을 해도 관리자가 되고, 몇 년은 실무 디자이너로 더 일할 수 있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럴 순 없을 텐데. 디자인 회사에서 관리자는 디자인보다는 클라이언트, 거래처, 직원 관리를 주로 하거든요. 그 역할에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디자인이라는 게 사람의 실력을 쥐어 짜내야 되는 게 있어요. 그걸 내가 계속 압박하면서 해내는 거 자체가 내 성격이랑 안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어요.
또 회사에서는 중간관리자가 되면, 회사 측 얘기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밑에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밑에 사람들 얘기도 또 위로 전달해서 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런 말 한마디 한 마디 하는 게 너무 고민이 되더라고요. 내 말에 따라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게 좀 무서우니까. 차라리 위로 얘기를 하는 거는 훨씬 더 쉬운데, 밑으로 얘길 하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원래는 밤에 잠 못 잘 정도로 고민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그런 일이 있으면 너무 크게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안 맞는 거 같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이 중심이 되니까 그 힘듦이 더 컸을 거 같아요. 그 노력을 하는 이유가 결국 이 사람이 무리해서 일을 더 하게 하는 거라든지.
● 맞아요, 맞아요. 내가 과연 이 얘기를 이렇게 전달하는 게 맞나? 이게 꼭 필요한 얘긴가? 이런 것부터 너무 고민이 되니까요.
단순하고 다정한 노동의 시간들
■ 그럼 좀 더 해보고 싶은 ‘디자인 일’을 찾아 이직을 해 오다가, 관리직이라는 옷이 안 맞는 느낌이 들면서 아예 직종을 전환하는 걸 생각하게 된 거군요. 근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때려친 건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네ㅎㅎ) 그럼 고민은 언제부터 한 거 같아요?
● 음? (갸웃) 제가 막 그렇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닌 거 같아요 ㅎㅎ
■ 음?
● 음? (갸웃)
■ ....아, 역시. 그래야 큰 결정을 할 수 있는 거 같아요ㅋㅋㅋㅋ (하하하하하) 주변에 보면 뭐든 큰 결정은, 너무 고민 안 하고 그냥 확 저질러야 하겠더라고요! 결혼 같은 사건도 그렇게 벌어지는 거더라고요ㅋㅋㅋ 할까말까 하면서 막 앓지 않고. 그런 거 같애.
● 네, 그냥 왜, ‘아아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때려치우고 있는...? 어느 날 그냥 ‘아 오늘이다, 이 일은 그만 해야 되겠다.’
■ 아 진짜로요? 아니 근데....... (동공지진) 오만가지 생각할 것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ㅋㅋㅋㅋㅋ 아니 당장 그만두면?ㅋㅋㅋㅋ (☜불안이 많은 오버씽킹러의 당황) (마주보며 폭소) 자, 잠깐만. 궁금한 거부터. 그만두기 전에 내가 앞으로 뭐할지에 대해 정하고 그만뒀어요, 그만둔 다음에 생각을 시작했어요?
● 그만둔다고 얘기하고 그때부터 뭐하고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ㅋㅋㅋㅋ
■ 역시, 이래야 그만둘 수 있다(?)!ㅋㅋㅋ 음... 근데 아무래도.... (☜이해하려고 노력 중) 직종을 바꾸려면 알아보고 생각할 게 많은데 회사 다니면서는 이럴 시간이나 에너지 자체가 별로 주어지지 않으니까...?
● (급 폭소) 어어 그렇게 디테일하게 생각은 안 해봤어요ㅋㅋㅋㅋㅋ
■ 전 이번 생엔 안되겠네요(?)ㅋㅋㅋ 아니 그럼 어떻게 하는(?) 거예요? 뭐 그 때려쳐야겠다, 못 버티겠다 하게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ㅋㅋㅋㅋ
● 그냥, 나는 이 일이 되게 힘들구나를 계속 느끼다가, 누적되었던 거겠죠? 힘들구나, 버티자, 힘들구나, 버티자, 하다가- 힘들구나, 때려치자 하는 그 순간이 딱 온 거 같아요. 계기가 있진 않지만, 아, 더 이상은 못 할 거 같다, 여기가 한계다 라는 생각?
■ 그쵸 그쵸. (☜이제야 간접적 불안감 극복하고 정신차림) 그럼 퇴사하고 나서 새 일에 착수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어요?
● 작년 8월에 그만둔 후에 우선 작업실을 구했어요!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혼자 생각할 공간이 필요하니까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좋아하던 동네인 서촌에 옥탑방 보고는 바로 계약해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후에, 동대문 원단시장이랑 방산시장, 고속터미널 도매시장 같은 원재료가 있는 곳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다른 사람들은 월급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수많은 재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제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제품 구상도 해보고, 판로도 찾아보고, 펀딩도 알아보고, 판매업 말고도 에어비앤비나 스튜디오 같은 공간 사업도 구상해보면서 석 달 정도 보냈어요. 큰돈을 투자하기에는 리스크가 클 것 같아서 우선 작게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싶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이것저것 판매하고 있어요.
*책상 하나, 컴퓨터 한 대로 시작했던 첫 작업실
■ 3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기간을 가지셨군요. 그럼 정말 퇴사 전까진 그만두고 나서 뭘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예 없었던 거예요?
● 아마 전혀 없었던 건 아닐 거예요. 패키지 디자인을 할 때 이것저것 재료들 알아보러 방산시장, 동대문시장 이런 데 많이 다녔었어요. 소재들을 많이 봤던 거죠. 소재들 보고 있으면 왜 ‘아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생각들을 좀 하게 되잖아요?
■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 아...?
■ 그런 분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전혀 아닌 타입ㅎㅎ
● 아, 진짜요? 그것도 되게 신기하다.
■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비자 쪽입니다ㅋ
● ㅎㅎ 전 그때부터 ‘뭔가 만들어서 판매해 보는 건 어떤 걸까’ 마음 한켠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또 ‘이거 하나 팔면 얼마 남는다’ 이런 단순한 셈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디자인은 정말 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맨날 밤새고. 야근도 많았고. 계속 한계에 부딪치는데 자기를 쥐어 짜내서 뚫고 나가야 되고 그런 게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좀 더 단순한... 자판기 같은 일? 하나 딱 만들어내면 바로 딱 결과가 나오는? 그게 제품이든 돈이든. 그런 일을 좀 해보고 싶었어요.
■ 어우 그거 너무 알 거 같은데요. 가끔 후원의밤 감사선물 박스 포장 같은 거 할 때, 마음의 안정을 느껴요. 물론 그런 일만 계속 하다보면 힘들겠지만요.
● 활동가 일도 명확히 손에 안 잡히고 끝점이 없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힘들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칼질하고 포장하고 이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동대문 부자재 상가에 가서 쫙 깔려있는 색색깔 리본들 중에 맘에 드는 컬러 끈 타래로 사다놓고, 또 종이매장 가면 다양한 재질과 촉감과 컬러 보면서~ 맘에 드는 종이 골라서 이것저것 칼질하고 펀칭하는 수작업들이 재밌어요. 생산적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의 즐거움ㅎ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들어온 거 주문 확인하고, 재고 파악하고. 1시부터는 택배를 싸기 시작해요.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릇을 네 개를 샀다 하면 그 그릇 네 개를 하나씩 포장을 하고 또 뭉쳐서 포장하고. 그런 작업들이 있는데 저는 그 시간이 되게 좋더라고요. 1시부터 5시까지, 앉아서 계속 칼질 하고, 끼우고 구멍 뚫고, 리본으로 묶고. 음악 틀어놓고 포장하는 시간들이요.
■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단순하고 정직한 노동.
● 네. 그리고 이런 일은 ‘이걸 받아보는 사람이 기분 좋았으면 좋겠다’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잖아요. 정말 친구에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그래서 그때가 제일 마음도 안정돼요. 디자인하면서 모아뒀던 자투리 종이로 텍 만들고 예쁜 끈 묶어서 포장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실제로 리뷰에 보면 포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효과가 좋아요. 판매자도 좋고 구매자도 좋고~
■ 사람들 기분 좋게 해주는 건 되게 귀하고 좋은 일이니까. 정말 기쁠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드네요. 다정이 그 단순노동이 포함된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주도하고 있는 거잖아요. 진짜 부품처럼만 수행하는 단순노동이 아니라. 그래서 더 만족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 보기도 싫은 어떤 사장 나부랭이 때문에 전체 과정도 모르면서 단순반복만 계속 하면 그렇게 즐거움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 그 의미를 다 이해하면서 뭔가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으니까.
● 그렇네요, 맞아요.
*업무 보는 공간
*포장 작업대
*포장할 때 함께 넣는 간단한 글과 계절감을 담은 엽서. 작은 즐거움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아둔 종이들
■ 그럼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한 10개월 되었군요! 어때요?
● 아직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긴 한데 생각했던 것만큼 수입적인 면에서 결과물은 안 나오는ㅎㅎ 그런 거 같아요.
■ 재미 쪽은 어떤 거예요?
● 그래도 조금씩 수입이 올라가는 거? 그리고 이전 일이랑 완전 다른 세상이잖아요. 그걸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판매를 하는 것도 내가 뭘 올린다고 바로 팔리는 것도 아니고. 처음엔 진짜 하나도 안 팔리더라고요. 매일매일 조금씩 상세페이지도 바꿔보고, 검색 키워드도 조금씩 바꿔보고, 그러면서 팔리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 그럴 거 같아요. 혼자 일해요? 재료 고르고 상품 만들어 홍보하고 배송하고, 플랫폼 운영하고?(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다는 게 자유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는 없나요?
● 없어요.
■ 왜죠?
● 내가 결정하면 되니까?
■ 아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 응
■ 어른이다.
● ㅋㅋㅋㅋ 그냥 내가 원하는 걸 하다보면, 내 스타일이 나오겠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런 정보들이 되게 많아요.
■ 어우, 그런 거에 휘둘리면 좀 힘들 거 같아요.
●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보면 내 느낌이 나는 거 같아요. 그걸 믿고 계속 하는 거죠.
회사원으로 살기 and 자영업자로 살기
: 얻은 것과 잃은 것
■ 각도를 다시 조금 틀어서 더 얘기해볼까요? 회사원 생활 12년,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 잃은 건, 체력. 몸.
■ 무리하게 되니까?(네) 근데 지금은 그렇게 혹사하게 되진 않아요?
● 네, 그렇진 않아요. 내가 힘들면 안 하면 되니까.
■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사업이니까 더 무리하기도 하던데!
● 아 난 그렇게는 못해서ㅎㅎㅎ
■ 되게 잘 맞는 거다ㅎㅎ 오히려 과몰입할 수 있잖아요. 회사가 정해주는 바운더리가 없으면 막... 폭주할 수도 있잖아요ㅋㅋㅋ 저는 약간 과몰입하는 타입이어가지고요. 옆에서 적당히 좀 하라고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계속 파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 뭘 하는 게 좀 더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 저는 그렇진 않아요.
■ 건강한 태도다.
● ㅋㅋㅋ아녜요.
■ 근데 정말로요. 열심히 하는 건 끝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태도인 거 같아요. 어떤 일을 하든. 앗 그럼 회사생활에서 얻은 것은요?
● 음.... 인내심? ㅋㅋㅋㅋㅋ 참고, 버티는 힘?
■ ㅎㅎ 중요하죠.
● 네, 버텨본 경험? 그리고 모든 일이 하다 보면 어느 단계를 밟아가면서 올라가는 거라는 걸 회사 다니면서 알게 됐던 거 같아요. 신입 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실수도 많았고, 사소하게는 전화받는 것부터, 디자인 시안 마감 시간인데 완성 못하는 일이 빈번하고...ㅎㅎㅎ 1년은 감 못 잡고 헤맸었어요. 그 뒤로 회사 이직할 때도 디자인 스타일이 달라지니까 몇 개월은 스타일 맞추는 게 힘들었고- 습득이 느린 편이어서 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 시간동안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주위에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고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됐다!” 하고 넘어서는 순간이 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그러고 나면 다른 고민들이 생기고, 그 고민들도 또 어느 순간에 넘어설 수 있다는 걸 회사 다니면서 체득했던 거 같아요.
■ 맞아요.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또 한 번 넘어서야 하는 국면에 와 있는데, 음, 이게 과연 나아지긴 할까? 싶다가도 경험적으로는 이 시기를 버텨내면 뭔가가 쌓인다는 걸 알아요. 이런 식의, 버틴 다음에 성장하는 거? 이게 지금 일을 하면서도 느껴지나요?
● 네. 회사를 다녀봤으니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좀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못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상품 사진 찍는 것부터 판매 시스템까지,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초반 3개월은 정말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싶어요. 그렇게 버티고 공부해 온 것들이 지금은 편해졌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있다가 어느 순간 또 벽이 있을 텐데. 그걸 또 넘어가는 순간들이 있겠죠. 되풀이되는 거 같아요.
■ 이제 막 창업한 상황이랑은 안 맞는 질문일 수 있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버텨봐야 할 때와, 내려놓고 나와야 될 때는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요? 다들 어려워하는 문제겠죠? 이를테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좀 더 버텨보자, 버티고 나서 성장의 경험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것일 수 있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고, 또 ‘언제나 버텨야 하는 건 아니야.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게 더 낫겠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잖아요. 정답은 없겠지만요.
● 그러고 보니... 저도 만약에 그때 회사에 계속 다녔으면 그 힘듦도 어느 순간엔 또 다음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것도 같은데.... 그러게요... 그땐 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음... 그때는 더 이상 버티게 해주는 뭔가가 없었던 거 같아요. 만약 내가 정말 생계가 엄청 궁하다거나, 아니면 누군가 옆에서 같이 좀 더 해보면 좋겠다는 얘길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디자인 결과물이 나왔을 때 뿌듯함이나 성취감이 있었다거나. 그 전엔 그런 성취감이 있었는데 그땐 다 없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새로운 종류의 성취감을 얻고 싶어졌고요. 그때까지 성취감 느껴봤고, 쏟은 체력과 노력을 돈으로나마 보상 받아봤고, 상사들이랑 갈등은 있었지만 좋은 동료들도 만났고... 그래서 미련도 없었고요, 더 이상 여기서는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점 때문에 스탑했어요.
■ 맞아요. 뭔가 잡을 게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어차피 안 힘든 일은 없고, 돈은 꼭 이 일 아니어도 벌 수 있는데. 때론 일이 버거울지라도 여기서 버티게 하는 이유.
● 저는 거기서 되게 ‘즐거움’이 큰 사람인 거 같아요. 즐겁지 않은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요.
회사원으로 살기 and 자영업자로 살기
: 천국편과 지옥편
■ 회사원 생활과 자영업자 생활, 천국편&지옥편으로 얘기해 본다면?
● 회사는 하루쯤 적당히 버텨도 월급은 들어온다! 그리고 목과 어깨, 손목 통증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을 새 없이 또 출근하고 일해야 하는 게 완전 지옥. 대지옥이죠
자영업자 생활 천국편은 조급함 없는 하루하루! 항상 나 자신을 제일 우선시 하면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음날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되고, 출근길에 날씨가 좋다! 싶으면 발걸음 천천히 걸으면서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느긋함이 생긴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 와 이건 정말 모든 사람이 꿈꾸는 그런 생활 같은데요? 출근 하고 싶을 때 하고 퇴근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은 일 안 하고.
● 큰 장점이죠. 그에 비해 자영업 지옥편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ㅜ 회사는 퇴근하면서 일 스위치를 끌 수 있었는데 자영업은 특히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정보도 많이 찾아봐야 하고 내가 모르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함정 같기도 해요. 전처럼 무리하진 않더라도 어쨌든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작은 계획들을 계속 생각해야 하고요. 완전히 스위치를 내릴 수 없는 대기전력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역시 수입이 불규칙하다는 점?
■ 맨날 매출 엄청 신경 쓰고 전전긍긍하면 진짜 힘들 거 같아요. 일희일비하지 말고 약간 멀리 보면서 오늘 할 수 있는 걸 한다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하겠죠?
● 네, 일희일비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요... 스마트스토어 운영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카페가 있어요. 거기 보면 오늘은 주문이 몇 개 들어왔다, 하루에 하나씩 새 제품을 올리겠다 이렇게 자기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아... 나는 이렇게는 못한다ㅎㅎㅎ 전 그런 스타일은 아닌 거 같고. ‘하루 8시간 일을 한다, 일을 하고 나면 집에 가서 맥주 한잔 하고 잔다.’ 이게 제 나름의 규칙이에요.
■ 이상적이네요!
●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진 게 제일 큰 즐거움이자 큰 변화에요. 7시부터 9시 사이의 아침 식사. 전엔 출근하느라 급했는데 요즘에는 음악도 들으면서, 토마토나 계란 같은 재료 좀 손질 해서 빵이랑 같이 간단한 아침을 먹는 게 좋아요.
■ 여유로운 아침의 중요성 저도 느껴요. 화상영어 끝나면 출근하러 나서기까지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거든요. 이때 저도 커피 내려서 먹고 빵 먹고 여유롭게 보내려고 하는데, 하루를 허둥지둥 시작하지 않는 게 참 좋더라고요.
● 그쵸. 출근시간도 좋아요. 매일 아침 버스 타면 작업실까지 한 40분 정도 걸리거든요. 회사 다닐 때는 출근길마다 오늘 마무리해야 할 일들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아무래도 여유가 생기니까 ‘아 나무가 이렇게 계속 변해가는구나, 계절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이런 게 눈에 보여요.
■ 여기 오면서 보니까 동네가 좋더라고요. 큰 나무들도 많고. 근데 사실 저도 출근하는 거 쫌 좋은데.(와아?) 좀 다른 이유로?ㅎㅎ 저는 좀 우울한 기질이 있어가지고 집에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약간 사람 몰골이 아닌 채로 있을 때가 종종 있거든요? 모든 게 무섭고, 걱정이 많고, 나는 너무 바보같고, 다 모르겠어어어어으아아악 이러고 있다가, 멀쩡한 사회인의 모습으로 사무실에 딱 오면 제가 좋아하는 동료들, 멋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에 보조를 맞춰서 나도 꽤나 멀쩡하게 일들을 막 해나가잖아요. 그냥 혼자 쉬는 것보다 훨씬 힘이 나게 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 그것도 엄청나다. 보통 회사를 다닐 때 생각하면, 아침에 회의 때마다 듣기 싫은 얘기 들어야 되고...
■ 듣기 싫은 얘기? 주로 어떤 거예요?
●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사장이 아침 회의 때마다 한 30분 동안 설교를 하는 날이 있었거든요. 왜 되게 끝없는 얘기, 목표 없는 얘기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뭐라 그러지...
■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 응응 그런 것들? ‘열정을 더 가져야 된다, 좀 더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
■ 헐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아니 물론 있겠죠...
● 그걸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회의 때마다 치렀는데... (절레절레)
■ 아무도... ‘그만 하시죠’ 할 순 없는 거죠? ㅋㅋㅋㅠ
● ㅋㅋㅋ 막판엔 좀 그러긴 했는데 ㅋㅋ 한 몇 년을 참은 거죠. 회사생활엔 납득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 회사 다니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납득되지 않는 불합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 나도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어떻게 이걸 참고 있는 거지?’ 했어요. 너무 막 끓어오르는데. 다들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잖아요. 그게 너무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거예요.
■ 인내심 레벨 엄청 높아지고. 지금은 훨씬 행복하게 느껴지겠네요, 그런 순간들에 비해서는.
● 응. 회사생활하면서는 다들 속에서는 끓는데 겉으로는 태연해야 하잖아요. 분노를 표출할 수 없고, 표현하면 아주 잘 표현해야 하는데. 화내고 벌컥 나가서 될 일도 아니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고민하면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있어야 하는 거? 그게 정말 힘든 일인 거 같아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다정의 아침 행복
*제이의 아침 행복
딱 한마디
■ '저 쇼핑몰 차리려고 해요'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친구에게 당신이 딱 한마디 말만 해줄 수 있다면 뭐라고 해줄 건가요?
● ‘하고 싶으면 해!’ 라고 할 것 같아요. 저도 아직 1년차라ㅎㅎ 신입의 자세로 열심히 배우는 중인데, 그나마 힘을 실어 얘기할 수 있는 깨달음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로를 공부해본 건 잘한 일이었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제품을 예쁘게 포장해서 만들었다 해도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창고에 쌓여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더라구요. 여러분이 어떤 제품을 검색했을 때 촤르르 나오는 순서들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ㅜ 첫 제품 등록하고 검색해봤는데 20페이지쯤에 있었나? 그땐 정말 막막했어요.
■ 우문현답이네요. 솔직히 ‘이것만은 하지 마라’, ‘이건 해라’ 이런 답을 예상했어요ㅋㅋㅋ
● 그런 건 없어요ㅎ
■ 그니까요! 그런 류의 규칙이 있을 거라는 기대 자체가 틀렸어!ㅋㅋㅋ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어쩌구 이런 치트키를 원하는ㅋㅋㅋ
● 제이는 뭐라고 할 거 같아요? 누가 활동가 되고 싶다고 하면?
■ 어 하고 싶음 하라고 할 거 같은데?ㅋㅋ ‘해봐.’ 역시 그렇네요. 사람마다 다르니까, 해봐야 알지.
활동가 일의 빛과 그림자 (?)
*제이 한정*
● 제이는 뭔가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 ‘자기 일’이라는 건... 내가 오너가 되는 일이요?
● 네.
■ 네. (함께 폭소ㅋㅋㅋㅋㅋㅋ)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책임지는 일 말이죠?
● 응, 아예 어릴 때도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 어릴 땐 특히 더 없었고요ㅎㅎ 음. 일단 민우회는 협업이면서도 주도적인 면이 꽤 보장되는 곳이기도 하고... 글쎄요, 기본적으로 별로 혼자 일하고 싶진 않은 거 같아요. 아까 얘기한 거 같은 과몰입의 문제 때문에도 그렇고ㅎ 불안이 많은 타입이어서인 것도 있어요. 근데 주도성은 또 중요하거든요? 내가 동의가 되는, 내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일에 참여하는 거? 그런 건 저한테 중요한 거 같은데, 어떤 일을 전적으로 내가 다 기획하고 끌어간다고 했을 땐 좀 막막해지는 느낌?
사실 민우회는 사회 운동을 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서도, 긴 시간을 거쳐 체계가 갖춰진 단체로서 움직이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자발적 개인들끼리 새롭게 결성한 단기적 그룹이거나 어떤 개인 활동가로서가 아니라? 그런 점에서 저랑 잘 맞는 면도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좀더 의지할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체계적인 구조가 있을 때 그 안정감 속에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타입 같아요. 그냥 허허벌판에 나를 갖다놓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하면 오히려 회의적이 되어버리는 타입? 그래서 지금도 완전 허허벌판에서 뭔가를 완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사람들 보면 되게 신기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완전 새롭게 시도해나가는 일을 하기도 하고 더 많이 해야 하지만, 그 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인 체계 속에서 같이 하니까, 저의 지나친 불안을ㅎㅎ 상쇄해주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제 아이디어에 대한 회의감이 많아서 나 혼자 뭐 하라고 하면 에이 이거 안될 거 같은데 라고 접는 편ㅋㅋ인데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 때 어 그거 괜찮은데? 이렇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거기에 또 다른 아이디어가 붙고 이러면서 확신이 자라나잖아요. 그런 과정이 저한텐 도움이 돼요. 그런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나의 감각이나 관점에 대한 신뢰가 생겨나고. 그러면서 전보다는 뭔가 더 치고 나갈 수 있게 되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온전한 내 일’에 대한 욕망은 잘 모르겠네요.
● 활동가가 아니면 뭘 했을 거 같아요?
■ 오래 전엔 버스운전기사 같은 일이 제게 로망이었어요. 정해진 루트가 있고 정해진 범위의 일을 하고, 어느 정도 공공에 기여하면서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는 일? 근데 전적으로 로망 차원에서요. 현실 속 업무 환경은 꽃밭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는 뭐 일단 운전면허도 없고요ㅋㅋㅋ
근데 꼭 구체적 어떤 직업에 대한 얘기라기보단, 활동가는 멀티플레이어로서 막 이것저것 다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과 사안들의 범위가 되게 넓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바운더리가 딱 있는 일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해요. 완전 다른 일. 저는 또 생각이 쩌어어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오버씽킹러ㅎㅎ라서 더욱 그래요.
제가 얼마 전에 연극을 봤는데, 그 중 한 꼭지가 십대 초반 청소년들이 워크샵을 통해 직접 만든 낭독극을 올린 거였어요. 보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이런 워크샵의 경험을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 경험해봐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 과정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이런 일 재밌겠다는 생각이 엄청 오랜만에 들었거든요? 활동가 일이랑 비슷한 면도 있겠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 소수의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하는 일에 일단은 집중하는 일이랄까. 굳이 더 깊이 생각을 해보자면야, 그 일도 끝없이 확장될 수 있고 나름의 지옥도가 매일 펼쳐질 수 있겠지만ㅎ
민우회에서 일하는 건 대사회적인 변화를 일구어나가는 일의 어려움과 부담이 있는가하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변화나, 새로운 관계들, 그 사람들의 눈빛 같은 것을 직접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그 안의 또다른 어려움도 있고요. 이 드넓은 스펙트럼과 다차원성이 매력이라면 매력인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많은 걸 다뤄나가야 하는 게 제겐 어려움이기도 해요. 저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일을 파고들어서 하는 편이라서, 층층이 다양한 일들을 내가 기대하는 퀄러티만큼 해나가려면 자꾸 무리하게 되는 고질적 문제가 있어요.
● 그 퀄러티라는 거는 내가 정하는 거예요?
■ 그런 면도 있겠죠? 저는 좀 욕심이 많은 편인 거 같고요. 근데 그런 개인적 차원 말고도... 성평등은 당장 오지 않잖아요. 우리가 어떤 행사를 했다고 되게 큰 변화가 있진 않고, 사회적으로 엄청 의제화되지도 않고. 그러면 아 뭘 해야 될까 이게 끝이 없잖아요. 그리고 꼭 내가 뭘 잘한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다같이 하는 일이고. 그런 건데도 자꾸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닥 건설적이지 않은 막연한 울적함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근데 다행히 여기가 유해한 조직문화가 아니어가지고.... 제가 만약 이런 기질로 되게 문제적인(?) 조직에서 일했으면 진짜 더 망가졌을 거 같은데ㅋㅋ 멀리 보고, 크게 보고, 내려놓고, 협업하는 과정들, 결단하고 실험하고 다음을 내다보는 과정들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 일 자체에 있는 어려움도 분명히 있는 거 같고요.
● 어떻게 보면 활동가에 최적화된 거 아닌가요?
■ 엥 글쎄요, 저는 제가 더 낙천적이면 더 잘 맞았을 거 같아요. 담력과 담대함. 사회운동가로서 보게 되는 좌절스러운 국면들에서 초연하달지. 예를 들어 한심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어떤 정치인의 지지율이 너무 높다 이런 황망한 상황 앞에서도 동요 없이 뚜벅뚜벅 초연히 가는 사람이고 싶은 거예요.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건 꼭 활동가에게 맞는 자질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 정신 붙들고 잘 살아가기 위해 갖추면 좋을 점이겠네요. 근데 저는 제 기질을 바꿀 수 없단 걸 알아요ㅎㅎㅎ 전 아마 그냥 걱정이 많고 너울을 뛰는 사람으로서, 동료들을 붙들고 잘 살아갈 거예요.
생각에 대한 생각
● 인터뷰를 하다 보니깐 제가 너무... 생각을 깊이 안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ㅎ
■ 불필요한 생각 별로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전 같이 사는 친구에게 어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태평할 수 있냐는 말을 들어요ㅋㅋ
■ 엇 저는 제가 같이 사는 친구에게 그 말을 하는 입장인데ㅋㅋ 사실 부럽기도 해요. 근데 다정 친구나 제가 다정처럼 따라하려고 하면 불안해서 망할(?) 거예요. 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거겠죠!
알아서들 할 일
■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다 보니 어쩐지... 자영업.. 너무 장밋빛으로 묘사되는 거 같은데..? 이렇게 좋단 말야? 그럴 리 없어ㅋㅋㅋㅋ 이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안돼ㅋㅋ 다 때려치고 쇼핑몰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싶네요(농담). 알아서들 할 일이겠죠? ㅋㅋ
● 음... 자영업 안 좋은 점 또 뭐가 있을까?
■ 아니에요, 쥐어짤 필요는 없어요ㅋㅋㅋ
● 그들도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죠ㅋ
■ 네, 그리고 또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요.
##
■ 마지막으로! 민우회 회원들에게 한 마디 남겨 주세요.
●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곧 만나서 맥주 한 잔 해요!!! 상상만 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
(끝)
지난 크로스인터뷰 읽어보기
▶ 크로스인터뷰① 내향인들의 만남.. 영지 춘을 만나다
▶ 크로스인터뷰② 노새, 효선님을 만나다-스포츠와 아드레날린과 물질만능주의에 관한 고찰(아님)
▶ 크로스인터뷰③ 제이, 엘라를 만나다- 안 친해도 세시간 반(놀랍게도 요약본)
▶ 크로스인터뷰④ 인터뷰 제목 뭐하지z (영지x장캡틴)
▶ 크로스인터뷰⑤ 밍기뉴x인경(전기뱀장어)의 만남. *페미니즘, 비건 그리고 음악 *
▶ 크로스인터뷰⑥ 노새x양수안나, 스포츠에 진심인 여자들 주목!
나도 페미니스트들과 적극적으로 얽혀들고 싶다?
지금, 민우회 회원으로 가입해 주세요!
friend87@womenlink.or.kr (민우회원팀) [회원가입 바로가기]
【 크로스인터뷰 】 제이x다정, 일의 좋음과 싫음
*본 인터뷰 제목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민우회 회원팀은 올해 회원들과 더 지독하게(?) 얽히기 위해 매월 한 명의 회원을 만납니다.
2021 한국여성민우회 [크로스인터뷰] 프로젝트, 일곱 번째 인터뷰는 활동가 제이가 회원 다정을 만났습니다.
12년간의 디자이너-회사원 생활을 그만두고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한 10년차 민우회원다정.
인터뷰 날 독립문 근처의 아담한 작업실로 10년차 민우회 활동가제이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 제이
● 다정
본격 인터뷰 전, 갑자기 양자택일 질문.
■ 아침형 vs 올빼미형 ?
● 올빼미형.
■ 바삭파 vs 눅눅파 ?
● 바삭. 모든 걸 바삭하게.
■ 밥 vs 빵 ?
● 빵.
■ 여름 vs 겨울 ?
● 겨울. 추위를 덜 타요. 그리고 차가운 바람 좋아해요. 새벽공기 같은 거.
■ 소풍 vs 파티 ?
● 소풍.
■ 커피 vs 맥주 ?
● 헉... 너무 어렵다......! ...맥주!
■ 나는 인류애가 있다 vs 없다 ?
● 있다.
■ 초능력 갖게 된다면 텔레파시 vs 텔레포트 ?
● 텔레포트.
■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김연경 vs 안산 ?
● 안산.
.
.
.
■ 이상 다정 알아보기 시간이었습니다!
● 엇 뭔가 분석 결과가 나올 거 같아요ㅎㅎ
■ 그쵸 가만있어봐봐요 제가 지금 차트를 분석해보니까... 다정은 내향형이시네요, 소풍을 좋아하니까? (이 이상의 분석 실패..) 끝이고요ㅋ 사실 별 의미는 없습니다.
##
■ 근데 올빼미형이라고 했는데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요?
● 12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요.
■ 엇 그럼 아침형 아니에요?
● 근데 일하려고 일찍 일어나진 않아요. 만약 뭔가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저녁에 할 거 같아요. 아침은 커피 한 잔 마시고, 여유롭게 아침 먹는 시간이에요.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는 거지, 일은 저녁에 하고 필요하면 새벽까지 하기도 해요. 그래서 올빼미인 거 같아요. 제이는 어때요?
■ 저는... 아침형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ㅎㅎ 요즘에 아침 화상영어를 주5일 하거든요.(엄청 빡세다) 네, 이게 있어서 그나마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게 돼요. 취침 시간이 관건이더라고요. 근데 최근에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선생님 오늘 안 되겠어요’ 하고 자 버리는 때도 많아요ㅎ 전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싶어 하는데, 저녁에는 에너지가 엄청 다운돼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에요.
● 그렇군요. 저는 저녁엔 에너지가 좀 넘치는 것 같아요.
■ 올빼미네요.
##
■ 인류애. 지키고 있기 어렵지 않아요?
● 근데 어떤 게 인류애에요?
■ 어떤 거 생각했어요?
● 글쎄, 사람에 대한 믿음? 일하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물건 택배 받았는데 파손돼 있으면 막 컴플레인 걸고 그럴 거 같은데 의외로 별로 안 그런 거예요. 자기한테 안 좋은 상황인데도 쿨하게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걸 보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까칠하진 않구나.’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사람에 대해서 좀 편해진 것 같아요.
■ 사람들을 온라인에서만 자꾸 보면 인류애를 더 잃게 되는 거 같거든요? 실제 생활 속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대놓고 악의적이진 않잖아요.
●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제이는요?
■ 저요? 저는 인류애가 완전 넘쳐나죠ㅎㅎㅎ 다정이 얘기한 것처럼 사람에 대한 믿음?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 혹은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저는 예술작품을 볼 때도 인류애가 폭발해요.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그 아름다운 것을.
● 오오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 그런 거구나.
■ 네 그런 것도 있어요. 물론 인류애를 잃어버릴 때도 있긴 한데ㅎ
● 잃어버린다는 건 어떤 거예요?
■ 아, 인간들 진짜 너무 싫다 이런 거?ㅋㅋ 동물 괴롭히고 막 이런 거 볼 때. ‘인간 뭐지? 극혐!’ ‘지구에서 다 사라져야 돼’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거든요. 근데 기본적으론 인류애로 돌아와요. 사람들 사이의 좋은 상호작용들, 때론 드물지만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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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안산 선수를 선택하셨나요?
● 그냥.. 김연경 선수는 너무... 쎌 거 같아요ㅎㅎㅎ 보고 있으면 재밌고 좋지만..
■ 근데 알죠, 실제로는 안산 선수가 진짜 겁나 쎈캐일 수 있다는 거ㅎㅎ
● 맞아요, 그럴 수도ㅎㅎ
모두의 예언을 뒤엎고
■ 다정이 민우회 회원이 된 게 2012년이었군요! 민우회를 만나기 전의 다정은 지금과 많이 달랐나요?
● 사실 20대에는 페미니즘이라고는 1도 몰랐어요. 단어도 몰랐던 것 같아요ㅎㅎ 디자인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대학 졸업하고 회사 생활 시작하면서 평생 이렇게 회사(=24시간 머리 맞대고 밤새 일하는 가족같은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공포와 일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대 후반이 되니 갑자기 모두가 연애와 결혼을 얘기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친구, 회사 동료, 부모님 등등 모두가. ‘넌 연애 안하니? 곧 좋은 남자 만날 거다, 결혼 생각 없다고? 언젠간 하게 될 거다, 정체성이 고민이라고? 남자 만나는 게 편한데 왜, 화장하기 싫어? 잘 보이고 싶은 사람 만나면 하게 될 거다.’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예언을 하는데 그게 답답하기도 하고 회사 생활도 지쳐서 그만두고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어요.
거기서 몇 개월 지냈던 쉐어하우스 집주인이 파독 간호사셨던 분인데, 밤마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사회운동, 페미니즘 등등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그 선생님 삶 자체가 저항이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과 연배가 비슷한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서 페미니즘을 체감했었던 것 같아요. 아, 저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선생님 인터뷰 기사를 발견하기도 했어요!
**다정에게 자신의 삶으로써 페미니즘을 소개해준, 독일의 비범한 그분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인터뷰 연재 기사를 볼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498293&SRS_CD=0000011980
■ 독일에서 운명처럼 하필이면 그 집에서 묵었군요! 그 다음에 하필이면(?) 민우회 회원가입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겼는데, 민우회 활동가였어요. 뭐하는지 잘 모르지만 열심히 재밌게 진심으로 일하는 것 같고 사실 그 사람한테서 관심 받고 싶은 마음에 가입했어요ㅎㅎ
■ 구체적인 한 사람에 대한 호감이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경우들이 꽤 있더라고요.
● 네, 민우회 와서 3/8여성의날 행사도 처음 가봤는데 도로 점거하고 행진하는 것도 낯설고, 새롭고,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신입회원 만남의 날’ 가니까 나랑 비슷하게 일반 사회에 속하기 싫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고ㅎㅎ 결혼, 성별, 나이 얘기 하지 않으니 편하긴 한데 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처음에 엄청 쭈뼛쭈뼛 하면서도 일단 뭔지 잘 모르니까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참여해봤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여전히 페미니즘을 잘 모를 때였어요. 막 이상한 소리도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남성들을 너무 일반화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말들ㅎㅎㅎ 그럼 약간 주변에서 답답해하는 반응들이 있고ㅎㅎ 그래서 ‘아, 나는 좀 배워야 되겠다’라고 느끼면서 공부를 좀 했던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던 여성의 날 행사
■ 자기 발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접했을 때, 공부하는 걸로 이어지기보단 거부감으로 끝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나 봐요.
● 네, 신입회원 모임도 들어가고. 잘 모르니까 공부를 해봐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 모르긴 몰라도 뭔가 좋은 게 있을 거라는 느낌 같은 게 있었나 보군요?
● 맞아요. 나는 그냥 사회에서 ‘보통’으로 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모르던 다른 세계가 있었나?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하면서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나 자신을 편하게 느끼게 됐어요. 왜 처음에 페미니즘 접해가면서 알게 되는 것들 있잖아요, 특히 몸에 대한 긍정 같은 거. 당시 나는 회사에서 보기에, 남자들 보기에 ‘여자 같지 않은 여자?’로 여겨졌었는데, ‘왜 머리를 짧게 잘랐냐, 왜 치마를 안 입냐’ 이런 말들을 그냥 듣기 싫다고만 생각했지 페미니즘이랑 연결해서 생각진 못했던 거예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내가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를 고민하는 거 자체가 사실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는 상태잖아요. 단편적으로 뭐 ‘회의를 갈 때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힐을 신어야 한다’ 이런 얘길 들으면 그걸 계속 생각을 하는 게.
■ 그 말대로 안 하더라도, ‘내가 혹시 해야 되는데 안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 같은 거?
● 네, 입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근데 점점 그런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면서 되게 스스로를 긍정하게 됐어요.
민우회라는 커뮤니티를 만나기 전과 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면 안 맞는 정장을 억지로 입고 있는 과거 내 모습과 편한 옷을 입고 자유롭게 활보하는 지금의 모습이 떠올라요. 예전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환경이 설정되었다면, 민우회 가입 후에는 만나는 사람들이나 회사 선택 기준, 생활 반경도 민우회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 따지고ㅎㅎ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 계속 물어보면서 나에게 맞는 환경 설정을 점점 찾아가고 있어요.
■ 참여했던 민우회 활동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
● 퇴근시간을 알 수 없는 업종이다 보니 참여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갑자기 생각나는 게! 민우회에서 설문지 나눠주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 중에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캠페인 할 때 돌렸던 설문지가 있었어요. 백화점 직원이 일하는 중간에 물을 마실 수 있는지, 화장실 이용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아주 일상적인데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 신선했거든요.
친했던 직원 중 한명이 백화점 직원이 이용객들과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묻는 항목에 ‘불편하다’로 체크하는 걸 본 거예요. 나는 너무 이해가 안돼서 ‘뭐가 불편하냐, 같은 사람인데 왜 같이 사용 못하냐’ 하면서 발끈했고, 그 분은 ‘백화점은 서비스 받는 공간인데 직원도 같이 서비스 받는 거 같아서 싫다’는 마인드가 있더라고요. 너무 새로운(?) 관점이어서 언쟁이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고 체계가 이렇게 다르구나~ 모두가 내 맘 같지 않다~ 생각했어요.
그 뒤에도 설문지나 이슈가 있으면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특히 노동권에 대한 이슈들로 많이 싸웠는데ㅎㅎ 막 얼굴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까 이해시키고 이해받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을 해봤던 것 같아요. 제 일상에서 가장 진심으로 긴 시간을 고민했던 나만의 민우회 활동이 아니었나 싶어요.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안미선, 한국여성민우회 / 2016)
*‘존중이 오가는 백화점 만들기 시민실천 캠페인’ 사진
*2014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시민설문조사 / 백화점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www.womenlink.or.kr/archives/4182
일, 하고 싶음과 하기 싫음
■ 다정에게서 ‘커리어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디자인 회사에서 일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만두고 쇼핑몰을 열었다는 소식이 놀라웠거든요. 저는 직업 선택이나 이직 같은 게 참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엄청 큰일이잖아요. 그런 큰 결정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어떤 이유로 하지? 그런 게 늘 궁금하거든요.
● 우와. 나는 반대로, 어떻게 그렇게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생각해요.
■ 아하하하 그럴 수 있겠네요.
● 특히 회사 다니는 사람들. 어떻게 딴생각을 안 하고 저렇게...?
■ ....딴생각을 맨날 하면서 다니는 건 아닐까요?ㅋㅋㅋㅋ 근데 맞아요, 사실 한 군데서 오래 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결국 일하며 사는 건 다 어려운 건가?ㅎㅎ 하지만 다정의 경우 이번엔 비슷한 직종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완전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 같아서, 이번 이직을 포함해 그간의 직업적 경로 설정에 작동한 요인들, 계기들에 대해 더 듣고 싶어졌어요. 회사원으로서의 본인 일의 역사?를 되짚어봐 주실 수 있나요?
● 환경디자이너로 시작해 편집디자이너까지 총 12년 회사를 다녔어요. 기본적으로 회사마다 클라이언트가 정해져 있는 편인데, 같은 클라이언트와 3~4년 하다보면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파악이 빨라져서 일은 쉬워지지만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가 힘들었어요. 정체성은 유지하되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시안 단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엔 매년 비슷한 결과물이 만들어져요. 그게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더 이상 뭐가 나오지 않는데 쥐어짜내는 기분이 있어요. 그런 한계가 오면 회사를 옮겨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욕구를 채웠던 것 같아요.
다행히 디자인은 분야별로 작업 공정이 다르고, 각 회사마다 주 클라이언트가 어디냐에 따라 작업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 선택의 폭이 다양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비슷한 계열로 이직하기도 하고, 아예 다른 분야-예를 들어 영화 포스터 하다가 상업 광고 하다가, 출판사로 가기도 하고-로 이직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저는 환경디자인으로 시작해 편집디자인으로 마무리했어요.
■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계속 찾고 추구해 온 과정이었군요.
● 맞아요. 나에게 부족한 것, 흥미로운 것,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커리어 선택의 동력은 결국 ‘하기 싫음’과 ‘하고 싶음’인 것 같아요. 처음 일했던 환경디자인 회사에서는 현장 조사가 많아서 거의 매주 지방 출장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이 재밌었지만 점점 일의 비중이 현장조사&보고서 작성이 70%, 디자인 작업은 30% 정도였어요. 한창 디자인이 부족하고 목마르다고 느낄 때에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어 4년 다니고 이직했어요. 출장 없고 앉아서 일 할 수 있는 편집디자인 회사로ㅎ 그렇게 편집디자인 8년하고 깨끗하게 그만뒀습니다!
■ 디자인 회사 일을 아예 접어보자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뭐였어요?
● 외적으로는 회사 복지 때문에 윗사람들과 빈번하게 갈등이 있었고, 내적으로는 과장 다음 관리자인데 관리자가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어느 정도 연차가 되니까 이직을 해도 관리자가 되고, 몇 년은 실무 디자이너로 더 일할 수 있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럴 순 없을 텐데. 디자인 회사에서 관리자는 디자인보다는 클라이언트, 거래처, 직원 관리를 주로 하거든요. 그 역할에 매력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디자인이라는 게 사람의 실력을 쥐어 짜내야 되는 게 있어요. 그걸 내가 계속 압박하면서 해내는 거 자체가 내 성격이랑 안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어요.
또 회사에서는 중간관리자가 되면, 회사 측 얘기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밑에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밑에 사람들 얘기도 또 위로 전달해서 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런 말 한마디 한 마디 하는 게 너무 고민이 되더라고요. 내 말에 따라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게 좀 무서우니까. 차라리 위로 얘기를 하는 거는 훨씬 더 쉬운데, 밑으로 얘길 하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원래는 밤에 잠 못 잘 정도로 고민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그런 일이 있으면 너무 크게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안 맞는 거 같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이 중심이 되니까 그 힘듦이 더 컸을 거 같아요. 그 노력을 하는 이유가 결국 이 사람이 무리해서 일을 더 하게 하는 거라든지.
● 맞아요, 맞아요. 내가 과연 이 얘기를 이렇게 전달하는 게 맞나? 이게 꼭 필요한 얘긴가? 이런 것부터 너무 고민이 되니까요.
단순하고 다정한 노동의 시간들
■ 그럼 좀 더 해보고 싶은 ‘디자인 일’을 찾아 이직을 해 오다가, 관리직이라는 옷이 안 맞는 느낌이 들면서 아예 직종을 전환하는 걸 생각하게 된 거군요. 근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때려친 건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네ㅎㅎ) 그럼 고민은 언제부터 한 거 같아요?
● 음? (갸웃) 제가 막 그렇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닌 거 같아요 ㅎㅎ
■ 음?
● 음? (갸웃)
■ ....아, 역시. 그래야 큰 결정을 할 수 있는 거 같아요ㅋㅋㅋㅋ (하하하하하) 주변에 보면 뭐든 큰 결정은, 너무 고민 안 하고 그냥 확 저질러야 하겠더라고요! 결혼 같은 사건도 그렇게 벌어지는 거더라고요ㅋㅋㅋ 할까말까 하면서 막 앓지 않고. 그런 거 같애.
● 네, 그냥 왜, ‘아아 하기 싫은데, 하기 싫은데...’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때려치우고 있는...? 어느 날 그냥 ‘아 오늘이다, 이 일은 그만 해야 되겠다.’
■ 아 진짜로요? 아니 근데....... (동공지진) 오만가지 생각할 것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ㅋㅋㅋㅋㅋ 아니 당장 그만두면?ㅋㅋㅋㅋ (☜불안이 많은 오버씽킹러의 당황) (마주보며 폭소) 자, 잠깐만. 궁금한 거부터. 그만두기 전에 내가 앞으로 뭐할지에 대해 정하고 그만뒀어요, 그만둔 다음에 생각을 시작했어요?
● 그만둔다고 얘기하고 그때부터 뭐하고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ㅋㅋㅋㅋ
■ 역시, 이래야 그만둘 수 있다(?)!ㅋㅋㅋ 음... 근데 아무래도.... (☜이해하려고 노력 중) 직종을 바꾸려면 알아보고 생각할 게 많은데 회사 다니면서는 이럴 시간이나 에너지 자체가 별로 주어지지 않으니까...?
● (급 폭소) 어어 그렇게 디테일하게 생각은 안 해봤어요ㅋㅋㅋㅋㅋ
■ 전 이번 생엔 안되겠네요(?)ㅋㅋㅋ 아니 그럼 어떻게 하는(?) 거예요? 뭐 그 때려쳐야겠다, 못 버티겠다 하게 만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어느 날 갑자기... 기분이...? ㅋㅋㅋㅋ
● 그냥, 나는 이 일이 되게 힘들구나를 계속 느끼다가, 누적되었던 거겠죠? 힘들구나, 버티자, 힘들구나, 버티자, 하다가- 힘들구나, 때려치자 하는 그 순간이 딱 온 거 같아요. 계기가 있진 않지만, 아, 더 이상은 못 할 거 같다, 여기가 한계다 라는 생각?
■ 그쵸 그쵸. (☜이제야 간접적 불안감 극복하고 정신차림) 그럼 퇴사하고 나서 새 일에 착수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어요?
● 작년 8월에 그만둔 후에 우선 작업실을 구했어요!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혼자 생각할 공간이 필요하니까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좋아하던 동네인 서촌에 옥탑방 보고는 바로 계약해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후에, 동대문 원단시장이랑 방산시장, 고속터미널 도매시장 같은 원재료가 있는 곳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다른 사람들은 월급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수많은 재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제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제품 구상도 해보고, 판로도 찾아보고, 펀딩도 알아보고, 판매업 말고도 에어비앤비나 스튜디오 같은 공간 사업도 구상해보면서 석 달 정도 보냈어요. 큰돈을 투자하기에는 리스크가 클 것 같아서 우선 작게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싶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이것저것 판매하고 있어요.
*책상 하나, 컴퓨터 한 대로 시작했던 첫 작업실
■ 3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기간을 가지셨군요. 그럼 정말 퇴사 전까진 그만두고 나서 뭘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예 없었던 거예요?
● 아마 전혀 없었던 건 아닐 거예요. 패키지 디자인을 할 때 이것저것 재료들 알아보러 방산시장, 동대문시장 이런 데 많이 다녔었어요. 소재들을 많이 봤던 거죠. 소재들 보고 있으면 왜 ‘아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생각들을 좀 하게 되잖아요?
■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 아...?
■ 그런 분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전혀 아닌 타입ㅎㅎ
● 아, 진짜요? 그것도 되게 신기하다.
■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사람?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비자 쪽입니다ㅋ
● ㅎㅎ 전 그때부터 ‘뭔가 만들어서 판매해 보는 건 어떤 걸까’ 마음 한켠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또 ‘이거 하나 팔면 얼마 남는다’ 이런 단순한 셈을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디자인은 정말 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맨날 밤새고. 야근도 많았고. 계속 한계에 부딪치는데 자기를 쥐어 짜내서 뚫고 나가야 되고 그런 게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좀 더 단순한... 자판기 같은 일? 하나 딱 만들어내면 바로 딱 결과가 나오는? 그게 제품이든 돈이든. 그런 일을 좀 해보고 싶었어요.
■ 어우 그거 너무 알 거 같은데요. 가끔 후원의밤 감사선물 박스 포장 같은 거 할 때, 마음의 안정을 느껴요. 물론 그런 일만 계속 하다보면 힘들겠지만요.
● 활동가 일도 명확히 손에 안 잡히고 끝점이 없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힘들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칼질하고 포장하고 이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동대문 부자재 상가에 가서 쫙 깔려있는 색색깔 리본들 중에 맘에 드는 컬러 끈 타래로 사다놓고, 또 종이매장 가면 다양한 재질과 촉감과 컬러 보면서~ 맘에 드는 종이 골라서 이것저것 칼질하고 펀칭하는 수작업들이 재밌어요. 생산적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의 즐거움ㅎ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들어온 거 주문 확인하고, 재고 파악하고. 1시부터는 택배를 싸기 시작해요.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릇을 네 개를 샀다 하면 그 그릇 네 개를 하나씩 포장을 하고 또 뭉쳐서 포장하고. 그런 작업들이 있는데 저는 그 시간이 되게 좋더라고요. 1시부터 5시까지, 앉아서 계속 칼질 하고, 끼우고 구멍 뚫고, 리본으로 묶고. 음악 틀어놓고 포장하는 시간들이요.
■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단순하고 정직한 노동.
● 네. 그리고 이런 일은 ‘이걸 받아보는 사람이 기분 좋았으면 좋겠다’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잖아요. 정말 친구에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그래서 그때가 제일 마음도 안정돼요. 디자인하면서 모아뒀던 자투리 종이로 텍 만들고 예쁜 끈 묶어서 포장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실제로 리뷰에 보면 포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효과가 좋아요. 판매자도 좋고 구매자도 좋고~
■ 사람들 기분 좋게 해주는 건 되게 귀하고 좋은 일이니까. 정말 기쁠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드네요. 다정이 그 단순노동이 포함된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주도하고 있는 거잖아요. 진짜 부품처럼만 수행하는 단순노동이 아니라. 그래서 더 만족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 보기도 싫은 어떤 사장 나부랭이 때문에 전체 과정도 모르면서 단순반복만 계속 하면 그렇게 즐거움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 그 의미를 다 이해하면서 뭔가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으니까.
● 그렇네요, 맞아요.
*업무 보는 공간
*포장 작업대
*포장할 때 함께 넣는 간단한 글과 계절감을 담은 엽서. 작은 즐거움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아둔 종이들
■ 그럼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 한 10개월 되었군요! 어때요?
● 아직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긴 한데 생각했던 것만큼 수입적인 면에서 결과물은 안 나오는ㅎㅎ 그런 거 같아요.
■ 재미 쪽은 어떤 거예요?
● 그래도 조금씩 수입이 올라가는 거? 그리고 이전 일이랑 완전 다른 세상이잖아요. 그걸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판매를 하는 것도 내가 뭘 올린다고 바로 팔리는 것도 아니고. 처음엔 진짜 하나도 안 팔리더라고요. 매일매일 조금씩 상세페이지도 바꿔보고, 검색 키워드도 조금씩 바꿔보고, 그러면서 팔리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 그럴 거 같아요. 혼자 일해요? 재료 고르고 상품 만들어 홍보하고 배송하고, 플랫폼 운영하고?(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다는 게 자유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는 없나요?
● 없어요.
■ 왜죠?
● 내가 결정하면 되니까?
■ 아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 응
■ 어른이다.
● ㅋㅋㅋㅋ 그냥 내가 원하는 걸 하다보면, 내 스타일이 나오겠죠?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런 정보들이 되게 많아요.
■ 어우, 그런 거에 휘둘리면 좀 힘들 거 같아요.
●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보면 내 느낌이 나는 거 같아요. 그걸 믿고 계속 하는 거죠.
회사원으로 살기 and 자영업자로 살기
: 얻은 것과 잃은 것
■ 각도를 다시 조금 틀어서 더 얘기해볼까요? 회사원 생활 12년,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 잃은 건, 체력. 몸.
■ 무리하게 되니까?(네) 근데 지금은 그렇게 혹사하게 되진 않아요?
● 네, 그렇진 않아요. 내가 힘들면 안 하면 되니까.
■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사업이니까 더 무리하기도 하던데!
● 아 난 그렇게는 못해서ㅎㅎㅎ
■ 되게 잘 맞는 거다ㅎㅎ 오히려 과몰입할 수 있잖아요. 회사가 정해주는 바운더리가 없으면 막... 폭주할 수도 있잖아요ㅋㅋㅋ 저는 약간 과몰입하는 타입이어가지고요. 옆에서 적당히 좀 하라고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계속 파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 뭘 하는 게 좀 더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 저는 그렇진 않아요.
■ 건강한 태도다.
● ㅋㅋㅋ아녜요.
■ 근데 정말로요. 열심히 하는 건 끝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태도인 거 같아요. 어떤 일을 하든. 앗 그럼 회사생활에서 얻은 것은요?
● 음.... 인내심? ㅋㅋㅋㅋㅋ 참고, 버티는 힘?
■ ㅎㅎ 중요하죠.
● 네, 버텨본 경험? 그리고 모든 일이 하다 보면 어느 단계를 밟아가면서 올라가는 거라는 걸 회사 다니면서 알게 됐던 거 같아요. 신입 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실수도 많았고, 사소하게는 전화받는 것부터, 디자인 시안 마감 시간인데 완성 못하는 일이 빈번하고...ㅎㅎㅎ 1년은 감 못 잡고 헤맸었어요. 그 뒤로 회사 이직할 때도 디자인 스타일이 달라지니까 몇 개월은 스타일 맞추는 게 힘들었고- 습득이 느린 편이어서 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 시간동안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주위에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고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됐다!” 하고 넘어서는 순간이 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그러고 나면 다른 고민들이 생기고, 그 고민들도 또 어느 순간에 넘어설 수 있다는 걸 회사 다니면서 체득했던 거 같아요.
■ 맞아요.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또 한 번 넘어서야 하는 국면에 와 있는데, 음, 이게 과연 나아지긴 할까? 싶다가도 경험적으로는 이 시기를 버텨내면 뭔가가 쌓인다는 걸 알아요. 이런 식의, 버틴 다음에 성장하는 거? 이게 지금 일을 하면서도 느껴지나요?
● 네. 회사를 다녀봤으니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좀 쉽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못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상품 사진 찍는 것부터 판매 시스템까지,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초반 3개월은 정말 모르는 게 많았구나 싶어요. 그렇게 버티고 공부해 온 것들이 지금은 편해졌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있다가 어느 순간 또 벽이 있을 텐데. 그걸 또 넘어가는 순간들이 있겠죠. 되풀이되는 거 같아요.
■ 이제 막 창업한 상황이랑은 안 맞는 질문일 수 있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버텨봐야 할 때와, 내려놓고 나와야 될 때는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요? 다들 어려워하는 문제겠죠? 이를테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좀 더 버텨보자, 버티고 나서 성장의 경험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것일 수 있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고, 또 ‘언제나 버텨야 하는 건 아니야. 다른 걸 시도해보는 게 더 낫겠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잖아요. 정답은 없겠지만요.
● 그러고 보니... 저도 만약에 그때 회사에 계속 다녔으면 그 힘듦도 어느 순간엔 또 다음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 것도 같은데.... 그러게요... 그땐 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음... 그때는 더 이상 버티게 해주는 뭔가가 없었던 거 같아요. 만약 내가 정말 생계가 엄청 궁하다거나, 아니면 누군가 옆에서 같이 좀 더 해보면 좋겠다는 얘길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디자인 결과물이 나왔을 때 뿌듯함이나 성취감이 있었다거나. 그 전엔 그런 성취감이 있었는데 그땐 다 없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새로운 종류의 성취감을 얻고 싶어졌고요. 그때까지 성취감 느껴봤고, 쏟은 체력과 노력을 돈으로나마 보상 받아봤고, 상사들이랑 갈등은 있었지만 좋은 동료들도 만났고... 그래서 미련도 없었고요, 더 이상 여기서는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점 때문에 스탑했어요.
■ 맞아요. 뭔가 잡을 게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어차피 안 힘든 일은 없고, 돈은 꼭 이 일 아니어도 벌 수 있는데. 때론 일이 버거울지라도 여기서 버티게 하는 이유.
● 저는 거기서 되게 ‘즐거움’이 큰 사람인 거 같아요. 즐겁지 않은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요.
회사원으로 살기 and 자영업자로 살기
: 천국편과 지옥편
■ 회사원 생활과 자영업자 생활, 천국편&지옥편으로 얘기해 본다면?
● 회사는 하루쯤 적당히 버텨도 월급은 들어온다! 그리고 목과 어깨, 손목 통증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을 새 없이 또 출근하고 일해야 하는 게 완전 지옥. 대지옥이죠
자영업자 생활 천국편은 조급함 없는 하루하루! 항상 나 자신을 제일 우선시 하면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음날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되고, 출근길에 날씨가 좋다! 싶으면 발걸음 천천히 걸으면서 음미할 수 있는 여유와 느긋함이 생긴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 와 이건 정말 모든 사람이 꿈꾸는 그런 생활 같은데요? 출근 하고 싶을 때 하고 퇴근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은 일 안 하고.
● 큰 장점이죠. 그에 비해 자영업 지옥편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ㅜ 회사는 퇴근하면서 일 스위치를 끌 수 있었는데 자영업은 특히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정보도 많이 찾아봐야 하고 내가 모르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함정 같기도 해요. 전처럼 무리하진 않더라도 어쨌든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작은 계획들을 계속 생각해야 하고요. 완전히 스위치를 내릴 수 없는 대기전력 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역시 수입이 불규칙하다는 점?
■ 맨날 매출 엄청 신경 쓰고 전전긍긍하면 진짜 힘들 거 같아요. 일희일비하지 말고 약간 멀리 보면서 오늘 할 수 있는 걸 한다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하겠죠?
● 네, 일희일비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요... 스마트스토어 운영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카페가 있어요. 거기 보면 오늘은 주문이 몇 개 들어왔다, 하루에 하나씩 새 제품을 올리겠다 이렇게 자기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아... 나는 이렇게는 못한다ㅎㅎㅎ 전 그런 스타일은 아닌 거 같고. ‘하루 8시간 일을 한다, 일을 하고 나면 집에 가서 맥주 한잔 하고 잔다.’ 이게 제 나름의 규칙이에요.
■ 이상적이네요!
●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진 게 제일 큰 즐거움이자 큰 변화에요. 7시부터 9시 사이의 아침 식사. 전엔 출근하느라 급했는데 요즘에는 음악도 들으면서, 토마토나 계란 같은 재료 좀 손질 해서 빵이랑 같이 간단한 아침을 먹는 게 좋아요.
■ 여유로운 아침의 중요성 저도 느껴요. 화상영어 끝나면 출근하러 나서기까지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거든요. 이때 저도 커피 내려서 먹고 빵 먹고 여유롭게 보내려고 하는데, 하루를 허둥지둥 시작하지 않는 게 참 좋더라고요.
● 그쵸. 출근시간도 좋아요. 매일 아침 버스 타면 작업실까지 한 40분 정도 걸리거든요. 회사 다닐 때는 출근길마다 오늘 마무리해야 할 일들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아무래도 여유가 생기니까 ‘아 나무가 이렇게 계속 변해가는구나, 계절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이런 게 눈에 보여요.
■ 여기 오면서 보니까 동네가 좋더라고요. 큰 나무들도 많고. 근데 사실 저도 출근하는 거 쫌 좋은데.(와아?) 좀 다른 이유로?ㅎㅎ 저는 좀 우울한 기질이 있어가지고 집에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약간 사람 몰골이 아닌 채로 있을 때가 종종 있거든요? 모든 게 무섭고, 걱정이 많고, 나는 너무 바보같고, 다 모르겠어어어어으아아악 이러고 있다가, 멀쩡한 사회인의 모습으로 사무실에 딱 오면 제가 좋아하는 동료들, 멋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에 보조를 맞춰서 나도 꽤나 멀쩡하게 일들을 막 해나가잖아요. 그냥 혼자 쉬는 것보다 훨씬 힘이 나게 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 그것도 엄청나다. 보통 회사를 다닐 때 생각하면, 아침에 회의 때마다 듣기 싫은 얘기 들어야 되고...
■ 듣기 싫은 얘기? 주로 어떤 거예요?
●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사장이 아침 회의 때마다 한 30분 동안 설교를 하는 날이 있었거든요. 왜 되게 끝없는 얘기, 목표 없는 얘기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걸 뭐라 그러지...
■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 응응 그런 것들? ‘열정을 더 가져야 된다, 좀 더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
■ 헐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아니 물론 있겠죠...
● 그걸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회의 때마다 치렀는데... (절레절레)
■ 아무도... ‘그만 하시죠’ 할 순 없는 거죠? ㅋㅋㅋㅠ
● ㅋㅋㅋ 막판엔 좀 그러긴 했는데 ㅋㅋ 한 몇 년을 참은 거죠. 회사생활엔 납득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 회사 다니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납득되지 않는 불합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 나도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어떻게 이걸 참고 있는 거지?’ 했어요. 너무 막 끓어오르는데. 다들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잖아요. 그게 너무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거예요.
■ 인내심 레벨 엄청 높아지고. 지금은 훨씬 행복하게 느껴지겠네요, 그런 순간들에 비해서는.
● 응. 회사생활하면서는 다들 속에서는 끓는데 겉으로는 태연해야 하잖아요. 분노를 표출할 수 없고, 표현하면 아주 잘 표현해야 하는데. 화내고 벌컥 나가서 될 일도 아니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고민하면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있어야 하는 거? 그게 정말 힘든 일인 거 같아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다정의 아침 행복
*제이의 아침 행복
딱 한마디
■ '저 쇼핑몰 차리려고 해요'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친구에게 당신이 딱 한마디 말만 해줄 수 있다면 뭐라고 해줄 건가요?
● ‘하고 싶으면 해!’ 라고 할 것 같아요. 저도 아직 1년차라ㅎㅎ 신입의 자세로 열심히 배우는 중인데, 그나마 힘을 실어 얘기할 수 있는 깨달음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판로를 공부해본 건 잘한 일이었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제품을 예쁘게 포장해서 만들었다 해도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창고에 쌓여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더라구요. 여러분이 어떤 제품을 검색했을 때 촤르르 나오는 순서들이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ㅜ 첫 제품 등록하고 검색해봤는데 20페이지쯤에 있었나? 그땐 정말 막막했어요.
■ 우문현답이네요. 솔직히 ‘이것만은 하지 마라’, ‘이건 해라’ 이런 답을 예상했어요ㅋㅋㅋ
● 그런 건 없어요ㅎ
■ 그니까요! 그런 류의 규칙이 있을 거라는 기대 자체가 틀렸어!ㅋㅋㅋ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어쩌구 이런 치트키를 원하는ㅋㅋㅋ
● 제이는 뭐라고 할 거 같아요? 누가 활동가 되고 싶다고 하면?
■ 어 하고 싶음 하라고 할 거 같은데?ㅋㅋ ‘해봐.’ 역시 그렇네요. 사람마다 다르니까, 해봐야 알지.
활동가 일의 빛과 그림자 (?)
*제이 한정*
● 제이는 뭔가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 ‘자기 일’이라는 건... 내가 오너가 되는 일이요?
● 네.
■ 네. (함께 폭소ㅋㅋㅋㅋㅋㅋ)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책임지는 일 말이죠?
● 응, 아예 어릴 때도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 어릴 땐 특히 더 없었고요ㅎㅎ 음. 일단 민우회는 협업이면서도 주도적인 면이 꽤 보장되는 곳이기도 하고... 글쎄요, 기본적으로 별로 혼자 일하고 싶진 않은 거 같아요. 아까 얘기한 거 같은 과몰입의 문제 때문에도 그렇고ㅎ 불안이 많은 타입이어서인 것도 있어요. 근데 주도성은 또 중요하거든요? 내가 동의가 되는, 내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일에 참여하는 거? 그런 건 저한테 중요한 거 같은데, 어떤 일을 전적으로 내가 다 기획하고 끌어간다고 했을 땐 좀 막막해지는 느낌?
사실 민우회는 사회 운동을 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서도, 긴 시간을 거쳐 체계가 갖춰진 단체로서 움직이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자발적 개인들끼리 새롭게 결성한 단기적 그룹이거나 어떤 개인 활동가로서가 아니라? 그런 점에서 저랑 잘 맞는 면도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좀더 의지할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체계적인 구조가 있을 때 그 안정감 속에서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타입 같아요. 그냥 허허벌판에 나를 갖다놓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하면 오히려 회의적이 되어버리는 타입? 그래서 지금도 완전 허허벌판에서 뭔가를 완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사람들 보면 되게 신기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완전 새롭게 시도해나가는 일을 하기도 하고 더 많이 해야 하지만, 그 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인 체계 속에서 같이 하니까, 저의 지나친 불안을ㅎㅎ 상쇄해주는 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제 아이디어에 대한 회의감이 많아서 나 혼자 뭐 하라고 하면 에이 이거 안될 거 같은데 라고 접는 편ㅋㅋ인데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냈을 때 어 그거 괜찮은데? 이렇게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거기에 또 다른 아이디어가 붙고 이러면서 확신이 자라나잖아요. 그런 과정이 저한텐 도움이 돼요. 그런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나의 감각이나 관점에 대한 신뢰가 생겨나고. 그러면서 전보다는 뭔가 더 치고 나갈 수 있게 되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온전한 내 일’에 대한 욕망은 잘 모르겠네요.
● 활동가가 아니면 뭘 했을 거 같아요?
■ 오래 전엔 버스운전기사 같은 일이 제게 로망이었어요. 정해진 루트가 있고 정해진 범위의 일을 하고, 어느 정도 공공에 기여하면서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는 일? 근데 전적으로 로망 차원에서요. 현실 속 업무 환경은 꽃밭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는 뭐 일단 운전면허도 없고요ㅋㅋㅋ
근데 꼭 구체적 어떤 직업에 대한 얘기라기보단, 활동가는 멀티플레이어로서 막 이것저것 다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과 사안들의 범위가 되게 넓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바운더리가 딱 있는 일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해요. 완전 다른 일. 저는 또 생각이 쩌어어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오버씽킹러ㅎㅎ라서 더욱 그래요.
제가 얼마 전에 연극을 봤는데, 그 중 한 꼭지가 십대 초반 청소년들이 워크샵을 통해 직접 만든 낭독극을 올린 거였어요. 보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이런 워크샵의 경험을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 경험해봐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 과정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이런 일 재밌겠다는 생각이 엄청 오랜만에 들었거든요? 활동가 일이랑 비슷한 면도 있겠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 소수의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하는 일에 일단은 집중하는 일이랄까. 굳이 더 깊이 생각을 해보자면야, 그 일도 끝없이 확장될 수 있고 나름의 지옥도가 매일 펼쳐질 수 있겠지만ㅎ
민우회에서 일하는 건 대사회적인 변화를 일구어나가는 일의 어려움과 부담이 있는가하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변화나, 새로운 관계들, 그 사람들의 눈빛 같은 것을 직접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그 안의 또다른 어려움도 있고요. 이 드넓은 스펙트럼과 다차원성이 매력이라면 매력인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많은 걸 다뤄나가야 하는 게 제겐 어려움이기도 해요. 저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일을 파고들어서 하는 편이라서, 층층이 다양한 일들을 내가 기대하는 퀄러티만큼 해나가려면 자꾸 무리하게 되는 고질적 문제가 있어요.
● 그 퀄러티라는 거는 내가 정하는 거예요?
■ 그런 면도 있겠죠? 저는 좀 욕심이 많은 편인 거 같고요. 근데 그런 개인적 차원 말고도... 성평등은 당장 오지 않잖아요. 우리가 어떤 행사를 했다고 되게 큰 변화가 있진 않고, 사회적으로 엄청 의제화되지도 않고. 그러면 아 뭘 해야 될까 이게 끝이 없잖아요. 그리고 꼭 내가 뭘 잘한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다같이 하는 일이고. 그런 건데도 자꾸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닥 건설적이지 않은 막연한 울적함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근데 다행히 여기가 유해한 조직문화가 아니어가지고.... 제가 만약 이런 기질로 되게 문제적인(?) 조직에서 일했으면 진짜 더 망가졌을 거 같은데ㅋㅋ 멀리 보고, 크게 보고, 내려놓고, 협업하는 과정들, 결단하고 실험하고 다음을 내다보는 과정들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 일 자체에 있는 어려움도 분명히 있는 거 같고요.
● 어떻게 보면 활동가에 최적화된 거 아닌가요?
■ 엥 글쎄요, 저는 제가 더 낙천적이면 더 잘 맞았을 거 같아요. 담력과 담대함. 사회운동가로서 보게 되는 좌절스러운 국면들에서 초연하달지. 예를 들어 한심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어떤 정치인의 지지율이 너무 높다 이런 황망한 상황 앞에서도 동요 없이 뚜벅뚜벅 초연히 가는 사람이고 싶은 거예요.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건 꼭 활동가에게 맞는 자질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 정신 붙들고 잘 살아가기 위해 갖추면 좋을 점이겠네요. 근데 저는 제 기질을 바꿀 수 없단 걸 알아요ㅎㅎㅎ 전 아마 그냥 걱정이 많고 너울을 뛰는 사람으로서, 동료들을 붙들고 잘 살아갈 거예요.
생각에 대한 생각
● 인터뷰를 하다 보니깐 제가 너무... 생각을 깊이 안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ㅎ
■ 불필요한 생각 별로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전 같이 사는 친구에게 어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태평할 수 있냐는 말을 들어요ㅋㅋ
■ 엇 저는 제가 같이 사는 친구에게 그 말을 하는 입장인데ㅋㅋ 사실 부럽기도 해요. 근데 다정 친구나 제가 다정처럼 따라하려고 하면 불안해서 망할(?) 거예요. 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거겠죠!
알아서들 할 일
■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다 보니 어쩐지... 자영업.. 너무 장밋빛으로 묘사되는 거 같은데..? 이렇게 좋단 말야? 그럴 리 없어ㅋㅋㅋㅋ 이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안돼ㅋㅋ 다 때려치고 쇼핑몰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싶네요(농담). 알아서들 할 일이겠죠? ㅋㅋ
● 음... 자영업 안 좋은 점 또 뭐가 있을까?
■ 아니에요, 쥐어짤 필요는 없어요ㅋㅋㅋ
● 그들도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죠ㅋ
■ 네, 그리고 또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요.
##
■ 마지막으로! 민우회 회원들에게 한 마디 남겨 주세요.
●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곧 만나서 맥주 한 잔 해요!!! 상상만 해도 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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