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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후기] 『S&M페미니스트』 읽기 소모임: 페미/퀴어/성향자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2024-05-24
조회수 983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성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며, 성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남들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졌다고 하여 그들이 병들고 멍청하고 뒤틀리고 세뇌되었거나, 협박을 받았거나, 가부장제의 호구이거나, 부르주아 퇴폐의 산물이거나, 나쁜 양육 습관으로 인해 피난민이 된 것이 아니다. 성적 다양성을 억압해놓고 그것을 설명으로 해결하려는 습관은 깨져야 한다. (게일 루빈, 『일탈: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2015), 272 p.)

 

안녕하세요, 『S&M 페미니스트 읽기』 소모임의 이끔이 은수입니다!

 

처음 페미니스트이자 성향자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S&M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읽다가,
‘이 책은 혼자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나누는 게 좋겠다’고 생각습니다.
어쩌면 나와 같이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갖고 BDSM 성향자(이하 성향자)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모임을 모집하게 되었어요.

 

기쁘게도 성원을 이루게 되어,노랑,마이농,세모,은희,은수(이끔이)
이렇게 총 5명이 소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망의 첫 모임날, 민우회의 최근 활동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앞으로 모임을 어떻게 운영할지 간략하게 규칙을 공유했습니다.


BDSM 관계 모델을 차용하여, 모임 시작 전에 오늘 기분은 어떤지,
어떤 생각으로 왔는지 등 참가자의 근황을 나누는 “체크인” 시간을 갖고,
모임을 마치기 전에는 오늘 모임을 진행하면서 어땠는지 혹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등을
기탄없이 나눌 수 있도록 “애프터케어”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그리고 소모임에 앞서 홍보 게시글에 명시한 준비물(?)을 잘 챙겨오셨는지도 확인했답니다.

 

<『S&M 페미니스트』 읽기 소모임 사전 준비물>

1) 책 『S&M 페미니스트』

2) 누군가에겐 삶인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자세

3) BDSM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릴 마음의 준비

 

1회차 모임: 페미니스트/퀴어/성향자

모임을 시작하며 후기를 위해 혹시 텍스트로 기록을 남겨도 괜찮을지 먼저 여쭙고 시작했는데요. 성향자로서, 혹은 성향을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또 진솔하게 나눠주셔서 열심히 타자를 치려고 올려놓은 손을 조용히 내려놓았어요. ‘관찰자’나 ‘기록자’의 위치에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모임원 분들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모임을 신청하게 된 계기들은 제각각이었지만, BDSM와 페미니즘을 함께 말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다는 마음과 하지만 페이지 수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비슷해서 재밌었어요.

 

나눠주신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은 페미니스트,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성향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만큼 성향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사회적으로 짙게 깔려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며 첫 모임을 마쳤습니다.

 

2회차 모임: 내 몸을 돌려받고 싶었다

2회차 모임에는 은수, 세모, 노랑, 은희가 함께 이야길 나눴어요.
읽고 오기로 했던 부분의 첫 파트인 ‘난 당신 판타지 속에 나오는 섹스에 환장한 음란녀가 아니야’에 대해 구성원들이 많은 공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섹스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섹스하면서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이미지들을 어떻게 내면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들은 포르노나 그림, 에로티카 등을 통해서 내면에 들어왔으리라. (169쪽)

 

“내 섹슈얼리티가 거의 다 공연 같았던 기간”에 특히나 공감했습니다.성적 관계 안에서 동등한 위치에 놓이기 어려운 여성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기 때문인데요. 또,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섹슈얼리티를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책에서 클라리스 쏜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겨울 정도로 남성중심 사회가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자기 안에 겹겹이 쌓인 벽을 깨나간 경험을 계속해서 이어 말합니다.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느끼고, “어떻게 보여야 하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떻게 섹스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열심히 말하는 것 같은 세계로부터 ‘내 몸을 돌려받고 싶었다’”는 구절은 구성원 모두가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에쎄머, ‘진짜’ 돔/섭에 대한 유구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화도 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자신의 성향을 밝히면 오히려 그걸 근거로 경계를 침범하는 “역할경찰”들에 대한 이야길 나눴습니다. 예를 들어, 디그레이디*성향을 가진 섭은 당연히 (멜돔인 내가 요구하는) 수치스러운 상황에 응해야 “진정한 디그레이디”라고 말한다던지.. 성향은 하나의 유형인 셈인데, 자신이 생각하는 편견, 선입견에 기반해서 “너는 ○○이니까 ~할 것이다”고 상대를 재단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욕망만 강요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모두들 분노했답니다. 문득, 클라리스 쏜이 글의 소제목으로 썼던“당신의 판타지 속”의 ○○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실은 이러한 지독한 “대상화”를 “판타지”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벗어나고자 하는 맹렬한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들었습니다.

 

또한, BDSM은 가학적 욕망을 가졌느냐 피학적 욕망을 가졌느냐에 따라 어느 한쪽의 의사에 좌지우지되어도 좋은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서로 다른 성향을 기반으로 서로의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되 함께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기 위해 보다 치밀하게 소통하는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이외에도 자신의 성향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는 불쾌한 경험과 함께 자신을 성향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불안에 대한 이야길 나누며 뜨거운 2회차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3회차 모임: 누구나 파트너와 동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건 아니야

3회차 모임에는 은수, 마이농, 은희 이렇게 세 명이서 오붓하게 진행했답니다.
BDSM만 다룬다고 생각했던 책에서 다양한 주제들이 나와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소감이 나왔던 모임이었는데요.

 

‘아프리카의 섹스 ABC’라는 파트를 통해 저자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사실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섹스 긍정적 페미니스트 저술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계급적으로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늘 안고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HIV 바이러스 예방 캠페인 활동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에서 성교육 활동을 했던 저자가 콘돔 사용을 현지 주민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파트를 읽으며 조금은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어요.

 

저자는 계몽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콘돔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전하는 메시지들이 (의도와 다르게) 수신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콘돔 논의에서 신뢰를 중심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힙니다. “연인이고 뭐고 아무도 믿어서는 안되니까 콘돔을 쓰세요”라는 메시지가 “전파하기엔 참 추한 메시지”라며, 콘돔 사용을 선택하는 관계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그 말은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일종의 선물로, 혹은 신뢰의 기표로 보도록 청중들을 부추길 뿐”이라는 의견을 덧붙입니다. 또, 불평등한 관계 구도를 무시한 채 “어떤 콘돔 권장 캠페인들은 주민들에게 ”그건 당신의 책임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몸을 존중하고, 그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말한다며, “그러나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먹히는 캠페인이지만,파트너와 협상할 입지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잔인한 메시지“라고 말합니다.

 

모임원 분들과 HIV/AIDS 바이러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한국HIV/AIDS 감염인*연합회 KNP+(HIV/AIDS감염인 자조모임 연합체)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정보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러다 모임원 분 중에 한 분이 이전에 한 영화제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영화제에서 AIDS 감염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AIDS 감염인, 감독과 함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GV가 끝난 뒤 AIDS 감염인 당사자 분이 돌아가며 악수도 하고 그랬는데, 분명 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 등에 대한 문제점에 관심을 갖고 온 사람들일텐데 관객들이 그를 피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이 AIDS 감염인에 대한 모순된 태도를 보여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이끔이가 가져온 러브포원 에이즈 관련 자료를 보며, 90년대에 매스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HIV/AIDS 바이러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
당시 인터넷 통신 게시판에서 퍼진 AIDS에 대한 혐오 표현 등 각자가 기억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4회차 모임: 악마화도 성역화도 모두 잘못됐어

 

4회차 모임에는 은수, 마이농, 세모, 은희가 참석했습니다.

 

이번에 읽어 오기로 한 파트엔 좀 더 깊은 주제의 글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요. [3부 우리가 정말 깊이 들어갈 때 복잡해지는 것]에서 ‘BDSM과 학대에 대해 더 분명히 사고하기’라는 장에서 BDSM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그런 사회적 편견과 BDSM 커뮤니티가 싸울 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많은 이야길 나눴습니다.

 

우리는 ‘BDSM은 언제나 학대’라는 비난에 겁을 먹었다. 그리고 ‘BDSM을 좋아한다는 당신들은 가부장제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고 있을 뿐이고 당신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다’는 어떤 페미니스트들의 비난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찍힌 BDSM 낙인의 악마들과 싸울 때도 많다. 우리는 우리의 성적 욕구가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있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보이는 것에화가 난다.

그래서 우리는 BDSM 커뮤니티 속에서 일어나는 학대에 대해 즉각적으로 이렇게 반응할 때가 많다. “입 닥쳐! 여기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러나 이것은 문제다. (475쪽)

 

저자도 경험했듯이, 모임원들 또한 “BDSM은 곧 폭력이며, 피·가학적 성향을 가진 페미니스트란 존재할 수 없고, 그런 욕망의 존재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여성 인권의 후퇴를 불러일으킨다”는 비난에 상처받고 화났던 일화들, 그와 동시에 BDSM 커뮤니티 내에서 자신을 성향자라고 소개하며 정작 BDSM 관계의 기본적이고도 엄격한 규칙인 상호합의, 동의를 무시하고 성희롱, 성폭력,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이들을 만났던 일화들로 분위기가 고조됐습니다.

 

젠더폭력 생존자인 모임원의 일부는 도대체 내가 왜 이런 피·가학적 욕망에 이끌리는지, 분명 나의 경험을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그런 욕망에 이끌리는 게 어떤 정신질환의 징후는 아닌지, 혹은 트라우마 증상 중 하나가 아닌지 고민했던 일화들을 나눴는데요. “BDSM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관계에 작동하던 나쁜 권력 역학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현재 관계에서 나쁜 권력 역할을 조정하거나 파괴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과 반작용을 조작함으로써 자랑스러움과 자기 인식, 자유를 찾을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 피해 당사자가 성향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모순, 그로 인한 자기 경험과의 괴리감 등을 설명할 수 있는 단초를 얻기도 했습니다.

 

또, 동의하지 않은 것은 폭력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욕망을 존중받고 또 그에 따라 서로 간에 합의하고 통제된 조건과 환경 속에서 긴밀하게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호흡하는 BDSM 플레이가 제3자가 보기에는 ‘표면적으로’ 이전의 폭력과 행위상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야길 나눴습니다. 무엇이 폭력인가를 말하는 사회적 기준이 현재는 너무 모호하다는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이 책을 읽으려고 했고 또 소모임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나의 피·가학적 성향은 양립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소모임에 와주신 페미니스트이자 성향자인 모임원 분들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얻어갈 수 있었어요.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선물 같은 시간을 받고 또 함께 고민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한 순간들에 제가 더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모임원 분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요.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공유하며, 긴 후기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앞으로도 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페미니스트-소수자가 가진 정체성을 이유로
그가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함께 모여 존재를 확인하고 존중받는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어디선가에서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래요. 감사합니다.

 

※주의※ 각 구성원의 이미지는 이끔이가 임의로 캐릭터 설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1. 『S&M페미니스트』 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은수: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을 몇 개 공유해보려고 해요.

 

“학대받은 경험과 섹슈얼리티가 연관되어있는 에세머라고 해도 상호합의적인 킨크를 행하는 한 다른 사람들보다 ‘덜 정당하다’고 느낄 이유가 없다. SM을 정당하게 만드는 것은 동의이기 때문이다.” (116쪽)

 

“일단 내가 ‘헤픈 여자’가 되면, 영원히 걷잡을 수 없는 판단 기준을 넘어 춤춘다면, 나는 탈선한 여자가 된다. 이 사회는 내가 헤픈 여자가 되면 어떤 남자도 나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새롭게 말하는 방식을 언제나 더 발전시키는 것 같다.” (207쪽)

 

“중요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 선천적인가가 아니라, 성행위에 연관된 모든 성적 파트너들이 동의하는 성인들인가 하는 문제뿐이다. 슬프게도, 전 세계에 걸쳐 본능적으로 대안적 섹슈얼리티를 역겨워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문제를 달리 고쳐 말하는 방법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행위들이 어떻게 그냥 잘못된 것이고 우리의 동의와는 관계가 없는지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을 탕탕 두드리며 호통치는 사람들에게 그렇듯이 어떤 페미니스트와 문화적 체제 지지자들에게도 진실일 것이다.” (360쪽)

 

은희: 제가 인상 깊게 들여다본 챕터는 두 군데였는데요. '복종은 여성의 역할: 잘못된 질문 '챕터는 SM과 여성주의의 교차 지점들을 깨닫게 해주는 구절들이 넘쳤습니다. 저는 마조 성향이면서, 때로는 (스팽커로서) 스팽킹도 즐겼는데, 여성이 통제권을 갖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파트너도 있었습니다. 여성으로부터 스팽 당하는게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여성의 '복종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 책의 저자조차도 성적으로 서브미시브이기 때문에 여성 해방을 배신하고 있다는 이상한 공포를 느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이 성적으로 복종적이라는 편견은, 여성의 복종과 남성의 지배를 강조하는 문화가 심어준 편견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BDSM 문화에서 여성의 지배와 남성의 복종은 자주 지워지면서, 현실의 팸돔과 멜섭의 좌절을 정당화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BDSM 서브컬쳐 바깥에서 수집한 샘플보다 BDSM 서브컬쳐 안의 샘플에서 서브미시브 여성의 비율이 더 높습니다. 여성의 복종을 강조하면서 지배자적 특질이 강한 여성들을 소외시키는 BDSM 서브컬처 모임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 복종은 여성의 역할'이냐는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249쪽)

 

BDSM의 섹슈얼리티에는 이미 낙인이 무수히 많은데, 여성들은 커뮤니티 내에서까지 복종의 역할을 강요당하며 이중고를 감내하는 상황이 씁쓸합니다. 335쪽에서의 언급처럼, 부정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여성에게 훨씬 더 가혹합니다.

 

저는 저자가 "나는 스와핑하는 사람들과 폴리아모리들을 전우라고 생각한다. "고 단호하게 밝힌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BDSM과 학대에 대해 더 분명히 사고하기’ 챕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BDSM이 권력을 통제하고 전복하며 조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BDSM에서 사람들은 과거의 관계에 작동하던 나쁜 권력 역학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현재 관계에서 나쁜 권력 역학을 조정하거나 파괴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과 반작용을 조작함으로써 자랑스러움과 자기 인식, 자유를 찾을 수도 있다. " (475쪽)

 

여성도 BDSM을 통해 충분히 권력을 통제하고 전복하며 조정할 수 있을 거예요. 성역할을 벗어던지고 각자의 성향에 충실하다 보면 건강하고 즐겁게 플레이를 할 수 있겠죠^^

 

2. 초보 성향자였던/인 나에게 필요했던/한 건?

노랑: 저는 지금 파트너로 인해 저의 성향을 알게 되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며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고 있어요.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오는 걸 보고 신기함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초보 성향자로서 주저하지 말고 궁금한 것에 대해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시도해보는 것이 참 좋아요. 언제든 나의 쾌락에 대한 욕구를 주저하지 말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는 것. 성향자여도, 바닐라여도 잊지 않기로 해요 우리❤

 

3. 페미니스트와 성향자, 두 정체성은 양립 가능한가?

 

마이농: 페미니스트와 성향자, 두 정체성 양립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는 논란이 되는 것 같아요. 2회차 모임 후기글에 대한 온라인 반응도 제 생각보다 뜨거웠고요. 하지만 저는 두 정체성이 양립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페미니즘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싸우죠. BDSM 또한 동등한 관계가 아니면 성립할 수 없어요. 상대의 동의 여부를 끝없이 확인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이상한 존재라고 규정짓고 마냥 비난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세모: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욕망을 최대한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을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한 결과가 지금의 성향자들이 말하는 세이프워드, 애프터 케어와 같은 장치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에세머들은 여기에 페미니즘적 시각이라는 필터를 하나 더 갖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무언가는 페미니즘과 같이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한 번 쯤 해보신 페미니스트라면, 그리고 페미니스트 성향자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모임 종료 후에 다시 한번 읽는 중이랍니다!


은수: 이 질문이 이 책으로 저를 이끌었고, 이 모임을 만들게 한 계기이며, 이 후기를 쓰는 이유 중에 하나였는데요. 그 질문의 답을 모두에게 설득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생각을 계속해왔는데요. 후기를 쓰다가 문득 BDSM 성향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양립 가능하냐는 질문은 여성으로서 헤테로 섹슈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안전한 섹스가 가능하냐는 질문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와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고 감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누군가와 성적 행위를 할 때에 동의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왜 여성으로서 그 과정이 필요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전제조차 인지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때문에 그 질문의 답은 가능한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전한 섹스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 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고민이 시작되어야만 나의 파트너, 그리고 나 자신이 동의하는/동의하지 않는 감각을 표현하고 읽어내고 묻고 살피는 과정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소모임 후기를 들려주세요!

 

마이농: 이번 소모임을 통해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한 사람들과 BDSM-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아주 즐겁고 행복했어요. 페미니스트 에세머는 너무 당연한 존재라는 사실도 다시 깨달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소설의 한 구절을 놓고 갑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

 

“애인 사이에서 부당함을 느끼는 대우는 디엣일 때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동등한 파트너니까요. 디엣도 애인도 같은 출발선을 전제한다고 생각해요.”

 

세모: BDSM과 페미니즘을 함께 고민해본 책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안전한 장소에서 좋은 분들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성향 입문 초읽기 중인 저에게는 너무나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이 변덕스레 바뀌는 봄날에도 항상 따스한 나날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모두들 잘 지내세요!

 

은희: SM과 페미니스트의 조합이라니!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을 일으켰습니다. BDSM에 찍힌 낙인 때문에 저는 스스로를 성향자로 정체화하기까지 혼란스러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저의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볼 기회는 박탈당한 채, 성폭력 후유증에 의한 일탈 정도로 여기는 심리상담사들을 만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SM 플레이는 위험하니까 자제하는 조언은 덤이었고요.

 

그런데 SM플레이 전에 어느 정도의 구체적 협상은 필요했기 때문에(도구에 대한 합의, 시간, 세이프워드) 오히려 안전한 방식의 성적 소통을 했던 경험은 있습니다. SM 플레이에서만 통제권을 갖게 되니까 그 방식에 편안함을 느꼈고, 삽입 섹스가 필수 요소도 아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겪은 저로서는 서로의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경험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더 섬세하게 성적 합의를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좋겠지만요.

 

SM 관련 책을 찾기 어려워서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소모임은 단지 플레이에 그치지 않고 여성주의 시각으로 BDSM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소모임 참여자들과 민우회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말하기를 한 것은 강렬하고 긍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저의 성향을 더는 혼란스러워하면서 부정하지 않아도 되고, 감정에 충실하게 BDSM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언젠가도 이 주제로 소모임이 이어지길 고대합니다.

 

노랑: 민우회 소식지를 보다가 익숙한 책에 대한 모임이 있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저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을 때 파트너가 권했던 책이었답니다. 하지만 두꺼운 크기에 엄두가 안 나고 있었어요. 민우회 모임 덕분에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어서 무척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직장이 갑작스럽게 너무 바빠져서 참여를 잘하지 못했지만,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시간은 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책의 구절을 생각해보며 의견을 나누었던 일들. 언제나 민우회 모임을 갈 때마다 받았던 ‘넌, 혼자가 아니야’ 라는 느낌의 연장선이었습니다.

 

모임 열어주시고 이끌어주신 은수 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회원분들과 유쾌한 시간 가질 수 있었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주석]

 

디그레이디*

디그레이디는 수치를 당하는 상황을 즐기는 성향을 말한다. 해당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마조히스트라고 해서 사디스트로부터 모든 맞는 행위를 즐기고 동의하지 않듯) 디그레이디마다 수치를 느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어떤 수치는 플레이에서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쉽게 말해, 혈액형, 별자리는 물론 MBTI 등을 통해 분류된 성격유형에 해당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 노력을 하기보다 “너는 ○○이니까 ~할 것이다”라고 간주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성격 유형을 속단하는 일보다 BDSM 플레이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함을 요한다. (글쓴이 주)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면역세포를 공격해 면역력을 서서히 떨어뜨리는 바이러스. HIV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면역결핍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치료를 빠르게 시작하지 않으면 면역력이 약해져 에이즈 상태로 전환될 수 있다. (출처: HIV/AIDS KNP+ 웹사이트)

 

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HIV로 인해 면역력이 많이 약해지면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염성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되어 각종 감염성 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상태를 ‘AIDS(에이즈)’라고 한다. (출처: HIV/AIDS KNP+ 웹사이트)

 

HIV/AIDS 감염인*

HIV 감염인은 몸 안에 바이러스가 들어와있지만 일정한 면역수치를 유지하면서 몸에 뚜렷한 증상이 없는 상태입니다. HIV 감염 상태를 빨리 알고 적절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HIV를 가지면서도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에이즈 환자는 HIV에 감염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면역체계가 파괴되어 면역세포 수가 200 cell/mm3 이하이거나 에이즈라고 진단할 수 있는 특정한 질병 또는 증상이 나타난 경우를 말합니다. (출처: HIV/AIDS KNP+ 웹사이트)

 

[참고]

 

한국HIV/AIDS 감염인연합회 KNP+ 웹사이트: https://knpplus.org/info

게일 루빈, 『일탈: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2015)

서보경,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반비(2024)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감정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오월의봄(2023)

세진, 윤수종. (2023). BDSM - 개인적 경험과 커뮤니티의 특성. 문학들,(73), 236-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