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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소모임 후기] ‘어쩌면 실격당한’ 장애 X 페미니즘 책모임

2022-08-02
조회수 1947

‘어쩌면 실격당한’ 장애 X 페미니즘 책모임

 

 
 
 

민우회 안에는 다양한 회원들이 있지만, 그간 장애 이슈를 함께 나눠보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책모임을 개설하였는데요. 마침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이 이슈가 되며 많은 분들이 모임에 관심을 보이며 참여해주셨어요~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정해진 책은 바로 이 두 권입니다.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공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그래서 모임 이름도 책의 앞머리를 붙여서 ‘어쩌면 실격당한’으로 우연히(?) 정해지게 되었지요.

 

4월부터 5월까지 총 다섯 번에 걸쳐

날씨, 오롯, 버터, 집곰, 쟤, 묘랑, 그리고 담당활동가인 리오가 함께 줌으로 만났습니다.

 

각 회차마다 책에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여기서 이어지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는데요.

그 중 일부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 발화자는 익명(A~F)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1장. 노련한 장애인 (한 문장 요약: 노련함의 딜레마)

 

D: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자 등 소수자에게 강요되는 '노련함'에 대해서, 견뎌내야 하는 모욕의 양에 대해서, 우아하지 않다고, 품격이 없다고 '내용'이 아닌 '형식'을 거론하며 진짜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 이준석과 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토론 영상의 댓글을 보니 박경석 대표를 향해 '과격하다', '우긴다', '불편을 준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을 봤다. 박경석 대표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긴 했을까? 당연한 권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품격'만을 잣대 삼아 말하는 사람들이, 그것이 혐오인지 모르고 내뱉는 말들이, 너무 많은 말들이 아팠다. 또 다른 소수자인 나를 향하는 말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3장.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한 문장 요약: 피해자 되기를 거부하고)

 

78쪽.

일본의 푸른잔디회 강령

1. 우리는 우리가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2. 우리는 강렬한 자기주장을 행한다.

3.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거부한다.

 

80쪽.

사랑과 정의는 물론 ‘비장애인의 문명’까지 거부한다는 푸른잔디회의 강령을 내가 정확히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충격은 생생하다.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완전한’ 문장들을 만났다고 느꼈다.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부정.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에 대한 부정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조차 부정하는 순수한 부정. 이 부정에는 어떤 연극적 요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F: 장애인 집회 현장에서 딴지를 거는 비장애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비장애인 주제에 왜이리 말이 많아?!” 그때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이 말에는, ‘비장애인 문명을 거부한다’는 감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장애여성공감 창립 20주년 슬로건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진 문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참 멋있다고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91쪽.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련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이야말로 적극적 부정의 한 예이다. 사랑과 정의를 부정하겠다는 선언은 노련미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르막길에서 휠체어를 1.8초에 한 번씩 밀기 위해 0.4초를 버티지 않는, 이를테면 손을 놔버리는 행위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요새 안에 들어앉아 있는 나의 자아를 배신하는 실천이다.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고, 지적이고, 신체적 결함을 보완하는 정신적 매력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압박. 사무실의 생수통을 갈지 못하는 대신 인사성 바르고 동료들의 생일이라도 잘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E: 극복해내고 우아하고 초연하고 심지어 유머러스한 장애당사자여야 받아들이는 정상성 사회에서 그에 맞는 자아상을 연기해야 하는, 혹은 그조차 할 수 없는 소수자들의 입장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보고 오히려 피해자 되기를 멈추자고 이야기하는 주장에 매우 놀랐습니다. 왜냐면 피해자되기 조차 잘 되지 않는, '강자들의 억울함'의 사회이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혁명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중증환자로서 아픈 몸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이 저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불쌍하고 안타까운 여자라는 시선을 깨고 싶어 실제로 저를 관통하는 슬프고 어려운 상황들을 애써 뒷전으로 두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 복잡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시선을 아예 부정하는 시도부터가 필요하다는 아주 전복적인 이야기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실천하고 동료를 만들 수 있을지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C: 1-3장을 읽고 얘기를 나누며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날씨님의 각자가 원하는 대로 하자는 말씀이 떠오르네요. 막간의 tmi를 하자면 어제의 토론을 보면서 저희가 얘기 나눴던 '노련함'을 생생하게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ㅇㅈㅅ의 뻔뻔하고 몰상식하게 '노련한' 태도에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분노가 일었지만.. 이 분노를 동력삼아 책모임도 더 열심히 참여하고 또 더 여기저기 떠들며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다들 마음이 어지러우셨을텐데.. 그럼에도 우리 모두 파이팅입니다

 

 

A: 저자는 서문에서 1, 2, 3장을 ‘인간적 상호작용’으로 분류하면서, 본문에서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건 상식아닌가 싶지만 그 상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이라 이 문장을 오래 곱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존엄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이 개개인에게 요청하는 책임(?)으로도 느껴지구요. 무엇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나 온라인 상에서 넘쳐나는 혐오의 정서를 멈추기 위해서 필요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 대한 공격을 문제로 여기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 또한 그런 분위기에 묻어가려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통합교육에 대하여

 

A: 현재의 통합교육은 재구성이 필요한 것 같다. 장애인들에게 맞는 환경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함에도 이러한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B: 그래서 지금의 통합교육은 장애인을 특별하고 불편한 존재로 만드는 꼴이 된다. 장애학생은 학교에서 도우미 친구가 필요한 존재로 셋팅해놓고, 이에 대한 공통의 이해와 감각이 만들어지지 않다 보니 장애인은 ‘도움받는 사람’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되는 거 같다.

 

A: 이동권 투쟁현장에서 이형숙 님이 발언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기성세대는 장애인을 연민하고 동정이라도 하지만, 지금의 청년층은 ‘왜 우리한테 피해끼치냐?’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C: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제대로 만날 기회가 없이 일방적인 통합교육을 하니까 이에 대한 반발로 피해의식이 늘고 있는 것 같다.

 

B: 장애인에게 필요한 도움은 응당 받아야 하는 것인데, ‘내가 줬다’, ‘베풀었다’, ‘배려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D: 막연하게 우리 사회 내 장애인의 가시성이 높아지면 비장애인의 인식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통합교육 세대가 아니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삶 속에서 장애인을 대면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만 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교육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채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도우미' 역할을 하고, 교실에서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학생이 '전시' 될 때 과연 비장애인의 인식이 바뀔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고, 이 질문은 나를 많이 반성하게 했다. 모임을 통해 내 막연한 추측 또한 하나의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공감)

 

 

   *목차   

   1부. 이상한 몸

    통증: 진화하는 장애,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 (글: 조미경)

    나이 듦: 죽음 곁에서 욕망하며 살기 (말: 박김영희 / 글: 강진경 나영정)

    섹스: 나는 뉴페이스를 원해 (말: The ReD / 글: 나영정)

    몸: 부푼 가슴으로 비틀거리기 (글: 배복주)

 

    2부. 관계 맺는 몸

    양육: 장애와 살아가는 삶을 물려주기 (말: 경순 / 글: 이진희)

    활동보조: 나는 남의 손이 필요합니다 (글: 김상희)

    연기: 오늘도 내일도 무대에 오른다 (글: 서지원)

 

    3부. 경계를 넘는 몸

    노동: 일상의 자리에서 일하는 삶 (말: 조화영 / 글: 오희진)

    노동: 나의 노동, 우리의 운동 (말: 안인선 / 글: 오희진)

    탈시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을까? (말: 영진 / 글: 강진경)

 

    에필로그: 실패를 위한 활동, 포기하지 않는 몸 (글: 이진희)

 

 

 

‘어쩌면 이상한 몸’은 장애여성 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서 만든 책으로 14명의 장애여성의 일상과 삶, 투쟁과 역사가 담겨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나온 기사가 있어서 함께 읽기도 하였는데요.

장애 ‘여성’에게 이동권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다 2022-04-03)

https://www.ildaro.com/9313

 

장애여성의 경험을 생생하게, 그리고 다양한 결로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들을 참여자들과 나누었어요. 장애와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다는 말씀을 전하며, 후기를 이만 마치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건 정말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지는데, 당사자성으로서 장애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어떤 소수자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더 넓게 생각해보고 뭔가를 넘나드는, 유연함을 가진 페미니스트 시민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참가자 후기

 

오롯:

안녕하세요. 오롯입니다!

 

소수자 특히 최근 장애인을 향한 혐오를 드러냄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시기를 지나는 와중에, 이 책모임을 만난 것은 무척 행운이었어요. 이번에 함께 읽은 책 2권을 통해 장애인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읽는 내내 반성과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지만 또 같이 이야기하며 연대와 희망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상을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많이 헤맬까 걱정을 하기도 하였는데, 함께 해주는 분들이 따뜻하게 소통해주서서 저도 더 용기낼 수 있었어요. 모두 바쁘신 와중에도,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준비와 진행을 해주신 리오님 정말 감사드려요!

 

이번 만남을 계기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어디선가 또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금요일 보내시고, 모두 응원할게요!

 

마무리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처음 혼자 읽었을 때 위로를 받았던 부분을 공유하고 싶어서요. 하필 요 부분 함께 읽는 날에 제가 불참을 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후기를 기회로 공유 드립니다!

 

"더 이상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당신이 장애아를 낳든, 장애인으로 태어나든,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든, 혹은 그 밖의 복잡한 사정들로 인해 당신이 오로지 '개인적인' 세계 안에서 외롭게 굴을 파 내려가고 있다고 믿는다면, 조금은 각도를 틀기 위해 애써봐도 좋다. 완전히 수직으로만 내려가지 말고 단 1도라도 방향을 틀어보라. 어느순간 당신은 다른 동굴과 만날 텐데, 그곳에 예측하지 못했던 정체성의 서사가 존재할 것이다.“

 

 

날씨: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읽기를 막 끝낸 주였습니다.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한 분이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출근이 늦어 애를 먹었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비장애인인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 제 친구도 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는 장애인인데 그 친구도 출근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하는 시위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며 당사자의 주장을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모임을 하기 전의 저였다면, 적합한 언어를 찾기 어려웠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과 대화로 몇 개의 단어라도 갖게 된 저는 그 분에게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위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그에게 "시위 말고 다른 방식으로 이동권을 말했을 때 뉴스도 대중들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님도 지금 알게 되지 않았나요?"

"친구에게 '이동권은 기본권이니까 누구나 편하게 원하는 만큼 이동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야. 비장애인인 우리가 잠깐 불편하면 되지'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비장애인 친구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걸 알고 그 친구 분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잠시 불편하지만 장애인은 평생 불편하지 않나요?"

 

제 지인은 자신이 차마 드러내지 못하던 불편함을 장애인 당사자인 친구가 인정해 주니 편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편함은 비장애인인 우리가 늘 소유하고 있었던 거죠.

 

잠시 생각에 잠기던 지인은 "생각해보니 이동권을 예산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 왜 반영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불편함을 넘어선 관점으로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모임에서 나눈 대화들이 저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언어를 주었습니다.

모임에서 읽은 책들은 비장애인 제가 감히 상상하지 못한 장애인의 일상 속의 도전과 눈물과 웃음을 볼 수 있게 해 주었고요.

 

6주간 나눈 이야기가 오랫동안 힘을 줄 것 같습니다. 다들 감사했어요!

 

 

:

책모임의 두 권의 책을 이미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요, 책모임을 통해 다시금 그 의미를 함께 확장할 수 있다는 것, 참여해주시는 분들의 이야기에서 또 배우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장애는 누가 규정하고 누가 선을 긋는 것일까요. 왜 저는 지금까지 장애당사자의 입장을 마음 가까이에 두지 못한 것일까요. 이번 기회로 오랫동안 용기내지 못했던 것에 한발짝 다가서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어렵기만 하지만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장애 당사자와 함께 활동해보는 옹심이(장애인을 옹호하는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활동에 신청했어요. 저의 삶이 조금씩 확장되길 바랍니다. 어쩌면 실격당한 모임에 감사드려요.

 

 

ps. 올해 상반기 ‘함께가는 여성’의 회원 다이어리 코너에 쟤 님이 이번 소모임 뿐만 아니라 아픈몸으로 살아가는 당사자의 경험을 글로 작성해주셨는데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womenlink.or.kr/archives/2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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