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후루룩딱딱 스쳐지나가버렸던...
미디어 다양성 토크쇼 <보고싶다/보고싶지않다> 행사 후기를 전합니다.
OTT 플랫폼, 유튜브, TV, 영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성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인물/이야기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은 장면/인물/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
#다양성 이라는 키워드 아래 5명의 발표자를 모시고,
보고싶고/보고싶지 않은 미디어 속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시민들을 모셨습니다.
(사진) 행사장 붙은 전시물들. '보고싶다', '보고싶지 않다' 팻말과 각종 보고싶고/보고싶지 않은 장면들이 그려져있다. 일러스트는 hanyo 작가님.
토크쇼는 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 여경의 사회로 시작되었어요.
(사진) 행사를 여는 인사말을 하고 있는 여경 활동가.
1
첫 번째 발표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남지 활동가가 진행해주셨습니다.
<어서와 이웃집 쩐티프엉은 처음이지?: 틀리거나 과장되거나 삭제되는 방식으로 이주여성을 재현하는 한국사회의 성/인종차별적 미디어>라는 제목으로, 2022년에 진행한 유튜브 모니터링 결과에 덧붙여, 최근 미디어/언론에서 등장한 이주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점을 방송, 유튜브, 언론, K-pop, 웹툰, 게임 영역까지 폭넓게 소개해 짚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주여성을 상상했을 때 가장 먼저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결혼이주여성을 이주여성으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떠올리시는데요. 한국은 현재 많은 이주여성 분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약 110만 명 정도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중에 결혼이주여성은 30만명 정도이고요. 이 중에서도 귀화자가 16만명 이기 때문에, 약 10%만이 결혼이주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주여성은 결혼이주여성으로만 소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책에서요. 그마저도 여성정책은 아니고, 가족중심의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굉장히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
방송, 유튜브, 언론, K-pop, 웹툰, 게임 영역에서의 여러가지 사례들을 소개해주셨는데요. (상세내용은 녹취록 및 자료집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추후 11월중 홈페이지 업로드 예정)
"우선 방송에서는 여러가지 규제 장치들이 있다보니 다른 콘텐츠에 비해 차별적/노골적 성적 대상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엉뚱발랄 외국 미녀'와 '고집불통 며느리' 이런 식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주여성을 비롯해 많은 이주민들의 한국어실력을 조롱과 유머 소재로 삼는 것은 기본이고, 특히 이주여성 며느리와 한국 시어머니의 경합을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방송이 굉장히 많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어리고 순종적이며 생활력 강한 신부와의 성공적 매칭을 다루는 영상,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에 인종차별을 곁들인 영상이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 어린 신부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를 반영한 콘텐츠들, 국제결혼하기 좋은 나라들 이런 식의 콘텐츠가 많이 있고, 홍보를 위해 미성년 이주여성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는 불법적 내용까지 등장하는 실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고싶지 않은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 다 설명을 드리지 못할 정도인데요, 더 많이 보고싶은 콘텐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놀라울정도로, 이주여성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소개해드릴 콘텐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주여성이 삭제되지 않고, 이주여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눈에 띄려면 너무나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 속 이주여성 재현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까지 직면했을 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여성 당사자가 창작자인 콘텐츠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주여성의 서사를 명확하고 다채롭게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갈수록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성/인종차별적인 미디어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는데요,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모든 차별을 규제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청중박수)"
(사진) 일러스트레이터 hanyo 작가님과 함께 제작한 '보고싶은/보고싶지않은' 장면을 담은 스티커와 포스터 이미지.
2
두 번째 발표는 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노새 활동가(저예요)가,
<"여성서사...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OTT 드라마 속 폭력장면/50+ 중고령캐릭터 모니터링한 내용을 짧게 공유하였습니다.
"폭력장면 모니터링 결과, OTT 드라마가 현실보다
성폭력범죄는 과소재현하고 있고, 여성가해자와 남성피해자는 과잉재현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디지털성폭력/데이트폭력 등 성폭력 재현에서 남성피해자 비율은 현실보다 5배 높게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토킹범죄의 여성가해자와 남성피해자 에피소드,
<사냥개들> 납치/감금/폭행당한 뒤 디지털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남성(그런데 재벌인...) 에피소드,
<살인자ㅇ난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사이코패스 여성 살인마 캐릭터를 통해
왜곡재현되는 드라마 속 설정들이 어떻게 현실과 다른지, 그 간극에서 느낀 아쉬운 점들을 짚었습니다.
이어 50세 이상 중고령캐릭터를 모니터링한 사례들을 소개했어요.
"OTT 드라마 21편에 등장한 중고령캐릭터 318명을 분석했습니다. 8명을 제외한 97.5%가 조연으로 등장했고,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한 8명 중 7명이 남성캐릭터였습니다. 이 8명의 캐릭터, 궁금하시죠? 사진을 가져와보았는데요,
이정은 배우가 연기한 <운수 오진 날>의 황순규 캐릭터 단 한 사람만이 여성캐릭터였습니다."
(사진) 조연으로 등장한 여성캐릭터와 남성캐릭터의 사진을 모아둔 모습. 중고령 여성 조연 캐릭터는 핑크색, 빨간색 등 붉은색 계열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인물이 많았고, 중고령 남성 조연 캐릭터는 군인, 경찰 등 고위급 간부를 상징하는 제복을 입은 인물이 많았다.
"'모성서사 빠진 여성서사는 없나요?'라는 질문을 가지고 OTT 드라마에서 재현된 여성 중고령캐릭터 사례를 몇 가지 가져와보았습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다 큰 딸을 돌보는 #친구같은엄마, 다 큰 딸을 우주 끝까지 쫓아가 돈을 뺏는 #원수같은엄마
<선산> #아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들 정도로 #희생하는엄마
<사냥개들> #아들 #유약한엄마 #밥상차리는엄마 #대사속성차별
<마스크걸> #아들 #집착하는엄마 #뛰어난습득력 #맹목적모성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딸을 가진 어머니와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조금씩 다르게 재현되는 점도 보일랑말랑 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유형의 어머니 캐릭터가 등장했는데요, 모성을 둘러싸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여성 중고령 캐릭터들이 '모성'과 '돌봄', '희생', '헌신'과 같은 기존의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여전히 더 많은 여성서사가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레이스>에 등장한 취미부자 비혼 여성CEO 김희영 캐릭터,
유능하고 다정하고 투쟁하고 연대하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등장한 수간호사 송효신 캐릭터,
울퉁불퉁한 삶을 역동적으로 헤쳐나가는 <마스크걸> 김경자 캐릭터처럼
더 많은 더더더 다양한 여성서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작품 속에 10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10명 모두가 여성이어도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OTT 드라마에서 발견한 긍정적인 여성 캐릭터 사례를 소개하는 장면.
3
세 번째 발표는, 일다의 기자이자 최근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이만큼 여자를 사랑하기는 힘듭니다..여자 사랑 분야의 권위자로 임명합니다(?))라는 책을 낸 저자이기도 한 박주연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있었지만 없었고, 있을 뻔 했지만 없었던 (대중) 미디어의 퀴어 재현> 이라는 제목으로 미디어 속 퀴어 재현에 관해 발표해주셨어요.
"올봄에 굉장히 당돌한 제목의 책을 냈는데요. 일종의 제 개인적인 얘기를 담은 에세이 같은 것인데, 저는 부산 출신의 80년대생 사람이에요. 어릴 때 제 주변에, 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현실에 오랫동안 방황을 많이 했는데, 가이드가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러다 학창시절에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뭔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제가 영화와 드라마에 빠지게 된 일련의 과정들, 그 안에서 제가 사랑했던 퀴어 서사와 캐릭터들에 대해 쓴 책입니다."
"미디어 속에서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는게 저한테는 그냥 단순히 즐겁다기보다, 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들이 스크린에 나온다는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거죠. 왜냐면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어떤 존재가 등장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국 그 존재를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현실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디어에도 나오지 않으니까. 미디어에서 본 적이 없는데, 현실에서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없는 존재로 인식하겠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들, 이해할 수 없고 몰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혐오하기도 쉬워지는 거죠. 왜냐하면 나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고, 내 주변에는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 눈에 안 보이면 그냥 무시해도 되고, 만날 일도 없고, 나랑 너무 다른 사람들 같으니까.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 될까요?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퀴어들은 살기가 더 힘들어지는 거죠.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고,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퀴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미디어에 어떤 존재가 나온다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보고싶지 않은 장면을 이야기하는 슬라이드에 '그냥 아예 안 나옴/존재 자체가 없음', '우울/불행/죽음'이라고 적혀있다.
한국 콘텐츠는 퀴어 인물/서사를 다룬 좋은 콘텐츠들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어요. '없을 無' 한자를 띄워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좋은 퀴어 콘텐츠가 나오지 않아 화가 난 퀴어 페미니스트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에 웃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해외 퀴어 콘텐츠를 소개해주실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클리셰라도 좋으니까 퀴어 로맨스물 제발 좀 보여주면 좋겠다. 클리셰 범벅되어 있어도 내가 다 볼테니 그냥 좀 줘라." 고 외치며, 2개의 태국 드라마와 1개의 일본 드라마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더 많은 좋은 사례들은 책 속에 있다고 하네요, 궁금하신 분들은 박주연 작가님의 책을 찾아주세요!
4
네 번째 발표는, 백세희 변호사님을 초청했습니다.
백세희 변호사님은, 2022년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변호사가 바라본 미디어 속 소수자 이야기>라는 책을 쓴 작가님이시기도 해요. 책 속에는 서울중심주의, 에이지즘, 인종, 젠더, 장애, 노동, 퀴어와 같은 키워드가 등장하는데요. 행사를 준비하면서 운명처럼(!) 이 책을 발견하고, 초대드리자 '어쩜 이렇게 꼭 맞는 기획이 있냐'며 흔쾌히 발표자로 수락해주셨답니다.
이번 토크쇼에서는 미디어 속 '비서울지역(민)' 재현에 대한 발표를 요청드렸어요.
"앞서 발표해주신 분들이 모니터링도 많이 하시고, 관련된 직업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저는 문화예술분야에서 벌어지는 법률적인 사건을 많이 다루고 있는, 서울 인근의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서울말을 쓰는 변호사입니다. 제 의견이 너무 설익은 의견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지만 우리 모두 미디어의 소비자이긴 하잖아요? 미디어를 소비하고 이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책도 내게 되었습니다."
"사투리 얘기를 할 건데요, 이 드라마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모래시계>. 광주에서 태어난 세 명의 남성이 주요 인물입니다. 주인공 최민수는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나 출세길이 막히는 바람에 고향 광주를 전전하다가 조직폭력배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런데 표준말을 써요. 그리고 한 사람은 사법고시출신의 검사인데, 역시 표준말을 써요. 그리고 악역으로 등장하는 나머지 한 인물이 있는데, 그 친구 한 사람만 구성진 광주사투리를 씁니다. 고향친구, 광주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들이라는 설정인데, 한 사람은 주인공이니까 서울말을 하고, 한 사람은 고위 공직자이기 때문에 서울말을 하고, 악역인 한 사람만 사투리를 써요. 어딘가 어색해요.
여기 등장한 최민수의 아주 유명한 대사, "나 지금 떨고 있니?" 그거는 사실 '나가 시방 떨고 있냐' 이렇게 되겠죠.(청중웃음)"
"모든 등장인물이 신나게 사투리를 쓴 <응답하라 1994>에서도, 1화에서 주인공 성나정이 남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편은 고향에서 함께 나고 자란 인물이죠. 그런데 두 사람 다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말로 대화합니다.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서울말을 쓸 수는 있는데, 동향 출신의 남매처럼 지내온 두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부부 사이에 서울말로 대화를 한다는 건, 미성숙한 어릴 때에는 사투리를 쓰지만 성숙해진 어른이 되어서는 응당 서울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미디어가 만들어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힐링과 피난처로만 소비되고 있는 시골', '승리자의 서울/패배자의 지방' 이라는 꼭지를 통해 도시와 대비되는 힐링, 느림, 치유, 낭만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지점을 '내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과 함께 소개해주셨습니다. '지방/지역'이 주로 사건의 배경으로만 드러날 뿐, 지방의 차별 문제를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 변호사/의사들이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의 배경이 서울이나 대도시인 것, 도시에서 잘 나가던 의사가 수술에 실패하면 좌천되는 곳으로 소비되는 지방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낭만닥터 김사부>의 경우 귀향을 당한 의사가 다시 도시로 복귀하는게 아니라 쫓겨난 지방에서 계속 그곳을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묘사해가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 중심주의에 균열을 낸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슬픈 것은, 서울이 모든 지방의 자원을 다 빨아들이는 것 말고도,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의 공간적 배경마저도 수도권에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미래에 대한 막막한 불안감을 지닌 청년이 어딘가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장면은 다 대도시의 옥탑방에서 수많은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막막하게 우수에 젖어있는 모습 아닐까요? 거기에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서울 거주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때로는 화면 속 주인공과 공감하는 나의 감상이 특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5
마지막 발표는,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드라마 속 '고아' 모니터링을 진행해온 자립준비청년 손자영님을 모셨습니다. 자영님은 <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캠페이너이기도 한데요, 드라마/영화 속 '고아' 캐릭터를 모니터링/분석한 내용, 차별적 장면을 패러디한 일러스트,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인터뷰 등이 실린 전자책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관련 웹페이지 바로가기). 이번 토크쇼에서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과 모니터링 결과를 축약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말을 짧게 설명드리면, 고아원/그룹홈/보육원 등에서 나와 자립해야 되는 친구들을 말합니다. 저는 1살 때부터 19년 정도 보육원에서 살았는데,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름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자주 읽던 동화책 <미운 오리 새끼>, <콩쥐팥쥐>, <신데렐라>에서도 부모님이 없는 여자아이들이 구박을 받으며 자라는데,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왜 그렇게 가훈을 적어오라고 하는지,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보육원에 사는 사람 있냐고 묻는지, 어딘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 같고,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보육원을 나와 자립하면서도 쫓아다니더라고요. 어디 손씨냐, 부모님은 뭐하시냐, 부모님 없다고 하면 없다고 뭐라고 하고. 자립한지 꽤 지나면서 분노가 쌓여서, 왜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경험해야 하나 생각을 했고,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고아, 보육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런 이미지들을 TV를 보면서 느꼈어요. 우리가 보는 저녁 드라마에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고아들이 진짜 많이 나오는데, 걔들이 사고도 많이 치고, 여성 캐릭터들은 그렇게 불륜을 저지르고, 부정적인 역할로 나와요. 보고 있으면 왠지 얼굴이 부끄러워지면서 보육원 친구들 표정을 살펴보게 되는데, '왜 또 고아냐/우리가 제일 만만하지/그래야 시청률이 높게 나오나봐' 그런 얘길 나눴어요."
"저는 그 때 '너희들은 안 그래.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저 캐릭터랑 실제 너네는 달라', 라고 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질까? 생각해보면, 실제로 가정이 아닌 곳에서 자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난 경험이 적은 거예요. 자꾸 미디어랑 언론에서 그려지는 부정적인 인상들만 습득하게 되니까, 옆에 있어도 잘 모르고, 당사자들은 당사자라고 얘기를 잘 안 하게 되고, 구호단체 NGO에서는 불쌍한 모습으로만 재현하니까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래서 한땀한땀 드라마 속 대사, 캐릭터를 엑셀로 입력하면서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 공식을 찾아간 자영님의 프로젝트는, 비난 대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좋은 미디어 사례가 있으면 시상식도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제작자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러면 어떻게 고아 캐릭터를 그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진짜 우리의 모습이 담긴 우리 팟캐스트를 들으세요, 우리 유튜브를 보세요. 거기에 진짜 이야기가 있어요."라고 답하곤 했다고 합니다.
"미디어 속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렇지만 또 상처받고 화나는 누군가가 있잖아요? 이 사이를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지, 함께 질문으로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청중박수)"
자영님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만 그리는 것, 나는 그냥 보통의 사람인데 이상하고 문제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 그래서 더 움츠리게 되고 분노가 쌓이는 지점들이 성소수자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분 무슨 기분인지 알것 같아요', 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는데, 이런 마음을 함께 모아 자립준비청년들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미디어가 있으면 앞으로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사진) 토크쇼 발표를 듣고 있는 참여자들의 모습.
*
5명의 PT발표가 끝나고, 참여자들이 사전에 남겨준-
미디어 속에서 더 보고싶은 장면/인물과 보고싶지 않은 장면/인물을 짧은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이어지는 시간은, 빙고게임과 토크프로그램이었는데요.
PT 발표가 길어지는 바람에, 다소 부랴부랴...(ㅜㅜ) 짤막하고 숨가쁘게 흘러가버린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저녁행사라고 아랑곳하지 않고(?) 3-4시간짜리 긴긴 마라톤 토크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빙고게임!
미디어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보고싶은 장면들을 빙고게임으로 담은 '보고싶은BINGO' 종이를 함께 채워보았습니다.
각 빙고칸 속의 문제에 해당하는 콘텐츠 제목을 적어서, 가로/세로/대각선 1줄을 채우면 1빙고!
토크쇼에서는 3빙고를 채운 분들, 그리고 모든 칸을 채워 올빙고!에 성공한 분들께 hanyo 작가님의 귀여운 일러스트가 담긴 포스터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후기를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빙고칸을 채워보세요! (재미보장...)
***
짧은 토크시간에는- 참여자들과 함께 빙고에 쓴 작품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시간,
플로어의 질문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
토크쇼에서 나눠드린 보고싶다/보고싶지않다 스티커에 일러스트를 그려주신 hanyo 작가님과의 짧은 인터뷰(?),
그리고 미디어에서 다양한 존재/인물/장면/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나눴습니다.
(사진) 발표자들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모습.
빙고에 쓴 추천작품들로는
아역배우가 입체적으로 잘 그려진 <유괴의 날> (불편한 점은 아역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어른을 가르치는 것. 하지만 아역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합니다.)
휠체어를 탄 인물이 등장하는 어린이 만화 <변신자동차 또봇> (남성이 밥 차리는 장면, 흥미로운 중장년 여성도 등장합니다.)
여성 인물의 끈끈한 연대가 등장하는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지>, <럭키아파트>, <브러시업 라이프>, <너와 나>
흥미로운 중장년 캐릭터가 등장하는 <마스크걸> (좋은 점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아쉬운 점도 갖고는 있지만!)
성소수자 캐릭터가 2명 이상 등장하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좋은 점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아쉬운 점도 갖고는 있지만!)
사투리..는 아니지만 이주민의 서툰 언어를 쓰는 인물(카리나 델루카)이 긍정적으로 재현된 작품 <그레이 아나토미(시즌14)>
정신질환을 납작하지 않게 그려내면서 남주와 여주를 로맨스로 엮지 않는 <새벽의 모든> (PMS와 정신질환을 등치시킨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소개되었어요.
(사진) 발표자들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모습.
마지막 질문은, 미디어에서 왜 다양한 인물/장면/이야기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였는데요.
이하 패널들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는 힘이 세니까.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보여줄 수도 안 보여줄 수도 다르게 보여줄 수도 있는데, 그 재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움직이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을 좋은 곳에, 좋게, 재미있게, 여기 모인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쓸 수 있게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노새)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제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작자/제작자가 굉장히 중요하고,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퀴어 서사에 가려진 부재와 삭제는, 그냥 어떤 캐릭터 하나만의 삭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기회를 같이 더 많이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연)
"오늘 이 자리에 이주여성 당사자가 오는 것, 제가 오늘 한 이야기를 당사자 활동가 혹은 당사자 여성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미디어의 영향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더 많은 사람을 담아 보여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지)
"우리의 몸, 시간, 재화,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경험하며 깨달을 수 있는 것도 너무 너무 제한적인 것 같아요. 결국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좀 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반드시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희)
"오늘 이 자리에서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고요. 최근에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면서 엄청 울었어요. 왜냐면 제가 들었던 말들, 제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미디어가 누군가의 삶을 치유하기도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디어가 가진 힘, 자본이 가진 힘이 센데, 잘 활용해봐야 하지 않을까. 작가협회 같은 곳들이 있던데, 그런 곳과 연계해서 뭔가 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자영)
"저는 설레고 싶어서, 라고 답하고 싶어요. 어떤 콘텐츠를 보면서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삶, 존재들을 보며 설레고, 기대하고, 꿈꾸고 싶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더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이야기 나눈 것처럼, 소수자들이 미디어 속에서 보통의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보통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디어에 더 많은 존재, 더 많은 이야기가 등장할 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차별하고 혐오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경)
(사진) 발표자들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모습.
같은 질문을 토크쇼 참여자분들께도 던져보았는데요,
빼곡하게 답변을 남겨주셔서 몇 가지 답변을 함께 소개하며 후기를 닫습니다.
Q.미디어에서 더 많은/다양한 인물/장면/이야기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존재하지 않으면 쉽게 상상해버리거나(그래서 쉽게 혐오하거나) 혹은 현실에도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리기 쉽기 때문에.
- 내 이야기이기 때문에.
- 문화란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 나는, 우리는, 그들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여져야 하고, 현실이 반영되어야 한다!
- 다양한 인물과 서사가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야, 일상 속에서도 ‘생각보다’ 다양한 존재가 살아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지 할 수 있기 때문에.
- N명의 사람이 있다면 N명의 삶이 있기 때문에.
- 미디어와 하루 종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의 ‘삶이 곧 미디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 잘못 다루는 것만큼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회와 삶을 얄팍하게 만들지만, 얄팍해졌다는 것조차 인지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 우리의 세상은 사실 좁고 작잖아요. 대개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미디어는 그런 세상을 넓혀주는 도구라 생각해요. 우리 주변의 삶을 이해하고,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 힘이 있는. 그렇기에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이야기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사진) 토크쇼 참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보너스. 드라마 <정년이>에 원작 웹툰의 주요인물인 부용이와, 고사장이 등장하지 않는 것에 분개한(?) 참여자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본 행사는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후루룩딱딱 스쳐지나가버렸던...
미디어 다양성 토크쇼 <보고싶다/보고싶지않다> 행사 후기를 전합니다.
OTT 플랫폼, 유튜브, TV, 영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속에서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고, 성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인물/이야기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은 장면/인물/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
#다양성 이라는 키워드 아래 5명의 발표자를 모시고,
보고싶고/보고싶지 않은 미디어 속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시민들을 모셨습니다.
(사진) 행사장 붙은 전시물들. '보고싶다', '보고싶지 않다' 팻말과 각종 보고싶고/보고싶지 않은 장면들이 그려져있다. 일러스트는 hanyo 작가님.
토크쇼는 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 여경의 사회로 시작되었어요.
(사진) 행사를 여는 인사말을 하고 있는 여경 활동가.
1
첫 번째 발표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남지 활동가가 진행해주셨습니다.
<어서와 이웃집 쩐티프엉은 처음이지?: 틀리거나 과장되거나 삭제되는 방식으로 이주여성을 재현하는 한국사회의 성/인종차별적 미디어>라는 제목으로, 2022년에 진행한 유튜브 모니터링 결과에 덧붙여, 최근 미디어/언론에서 등장한 이주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점을 방송, 유튜브, 언론, K-pop, 웹툰, 게임 영역까지 폭넓게 소개해 짚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주여성을 상상했을 때 가장 먼저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결혼이주여성을 이주여성으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떠올리시는데요. 한국은 현재 많은 이주여성 분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약 110만 명 정도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중에 결혼이주여성은 30만명 정도이고요. 이 중에서도 귀화자가 16만명 이기 때문에, 약 10%만이 결혼이주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주여성은 결혼이주여성으로만 소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책에서요. 그마저도 여성정책은 아니고, 가족중심의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굉장히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
방송, 유튜브, 언론, K-pop, 웹툰, 게임 영역에서의 여러가지 사례들을 소개해주셨는데요. (상세내용은 녹취록 및 자료집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추후 11월중 홈페이지 업로드 예정)
"우선 방송에서는 여러가지 규제 장치들이 있다보니 다른 콘텐츠에 비해 차별적/노골적 성적 대상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엉뚱발랄 외국 미녀'와 '고집불통 며느리' 이런 식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주여성을 비롯해 많은 이주민들의 한국어실력을 조롱과 유머 소재로 삼는 것은 기본이고, 특히 이주여성 며느리와 한국 시어머니의 경합을 주요한 소재로 다루는 방송이 굉장히 많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어리고 순종적이며 생활력 강한 신부와의 성공적 매칭을 다루는 영상,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에 인종차별을 곁들인 영상이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 어린 신부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를 반영한 콘텐츠들, 국제결혼하기 좋은 나라들 이런 식의 콘텐츠가 많이 있고, 홍보를 위해 미성년 이주여성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는 불법적 내용까지 등장하는 실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고싶지 않은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 다 설명을 드리지 못할 정도인데요, 더 많이 보고싶은 콘텐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놀라울정도로, 이주여성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소개해드릴 콘텐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주여성이 삭제되지 않고, 이주여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콘텐츠가 눈에 띄려면 너무나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 속 이주여성 재현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까지 직면했을 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여성 당사자가 창작자인 콘텐츠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주여성의 서사를 명확하고 다채롭게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갈수록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성/인종차별적인 미디어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는데요,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모든 차별을 규제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청중박수)"
(사진) 일러스트레이터 hanyo 작가님과 함께 제작한 '보고싶은/보고싶지않은' 장면을 담은 스티커와 포스터 이미지.
2
두 번째 발표는 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노새 활동가(저예요)가,
<"여성서사...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OTT 드라마 속 폭력장면/50+ 중고령캐릭터 모니터링한 내용을 짧게 공유하였습니다.
"폭력장면 모니터링 결과, OTT 드라마가 현실보다
성폭력범죄는 과소재현하고 있고, 여성가해자와 남성피해자는 과잉재현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디지털성폭력/데이트폭력 등 성폭력 재현에서 남성피해자 비율은 현실보다 5배 높게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토킹범죄의 여성가해자와 남성피해자 에피소드,
<사냥개들> 납치/감금/폭행당한 뒤 디지털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남성(그런데 재벌인...) 에피소드,
<살인자ㅇ난감>,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사이코패스 여성 살인마 캐릭터를 통해
왜곡재현되는 드라마 속 설정들이 어떻게 현실과 다른지, 그 간극에서 느낀 아쉬운 점들을 짚었습니다.
이어 50세 이상 중고령캐릭터를 모니터링한 사례들을 소개했어요.
"OTT 드라마 21편에 등장한 중고령캐릭터 318명을 분석했습니다. 8명을 제외한 97.5%가 조연으로 등장했고,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한 8명 중 7명이 남성캐릭터였습니다. 이 8명의 캐릭터, 궁금하시죠? 사진을 가져와보았는데요,
이정은 배우가 연기한 <운수 오진 날>의 황순규 캐릭터 단 한 사람만이 여성캐릭터였습니다."
(사진) 조연으로 등장한 여성캐릭터와 남성캐릭터의 사진을 모아둔 모습. 중고령 여성 조연 캐릭터는 핑크색, 빨간색 등 붉은색 계열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인물이 많았고, 중고령 남성 조연 캐릭터는 군인, 경찰 등 고위급 간부를 상징하는 제복을 입은 인물이 많았다.
"'모성서사 빠진 여성서사는 없나요?'라는 질문을 가지고 OTT 드라마에서 재현된 여성 중고령캐릭터 사례를 몇 가지 가져와보았습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다 큰 딸을 돌보는 #친구같은엄마, 다 큰 딸을 우주 끝까지 쫓아가 돈을 뺏는 #원수같은엄마
<선산> #아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들 정도로 #희생하는엄마
<사냥개들> #아들 #유약한엄마 #밥상차리는엄마 #대사속성차별
<마스크걸> #아들 #집착하는엄마 #뛰어난습득력 #맹목적모성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딸을 가진 어머니와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조금씩 다르게 재현되는 점도 보일랑말랑 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유형의 어머니 캐릭터가 등장했는데요, 모성을 둘러싸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여성 중고령 캐릭터들이 '모성'과 '돌봄', '희생', '헌신'과 같은 기존의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여전히 더 많은 여성서사가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레이스>에 등장한 취미부자 비혼 여성CEO 김희영 캐릭터,
유능하고 다정하고 투쟁하고 연대하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등장한 수간호사 송효신 캐릭터,
울퉁불퉁한 삶을 역동적으로 헤쳐나가는 <마스크걸> 김경자 캐릭터처럼
더 많은 더더더 다양한 여성서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작품 속에 10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10명 모두가 여성이어도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OTT 드라마에서 발견한 긍정적인 여성 캐릭터 사례를 소개하는 장면.
3
세 번째 발표는, 일다의 기자이자 최근 <누가 나만큼 여자를 사랑하겠어>(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이만큼 여자를 사랑하기는 힘듭니다..여자 사랑 분야의 권위자로 임명합니다(?))라는 책을 낸 저자이기도 한 박주연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있었지만 없었고, 있을 뻔 했지만 없었던 (대중) 미디어의 퀴어 재현> 이라는 제목으로 미디어 속 퀴어 재현에 관해 발표해주셨어요.
"올봄에 굉장히 당돌한 제목의 책을 냈는데요. 일종의 제 개인적인 얘기를 담은 에세이 같은 것인데, 저는 부산 출신의 80년대생 사람이에요. 어릴 때 제 주변에, 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현실에 오랫동안 방황을 많이 했는데, 가이드가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러다 학창시절에 우연히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뭔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제가 영화와 드라마에 빠지게 된 일련의 과정들, 그 안에서 제가 사랑했던 퀴어 서사와 캐릭터들에 대해 쓴 책입니다."
"미디어 속에서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는게 저한테는 그냥 단순히 즐겁다기보다, 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들이 스크린에 나온다는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거죠. 왜냐면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어떤 존재가 등장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건, 결국 그 존재를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현실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디어에도 나오지 않으니까. 미디어에서 본 적이 없는데, 현실에서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없는 존재로 인식하겠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들, 이해할 수 없고 몰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혐오하기도 쉬워지는 거죠. 왜냐하면 나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고, 내 주변에는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 눈에 안 보이면 그냥 무시해도 되고, 만날 일도 없고, 나랑 너무 다른 사람들 같으니까.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 될까요?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퀴어들은 살기가 더 힘들어지는 거죠.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고,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퀴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미디어에 어떤 존재가 나온다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보고싶지 않은 장면을 이야기하는 슬라이드에 '그냥 아예 안 나옴/존재 자체가 없음', '우울/불행/죽음'이라고 적혀있다.
한국 콘텐츠는 퀴어 인물/서사를 다룬 좋은 콘텐츠들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어요. '없을 無' 한자를 띄워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좋은 퀴어 콘텐츠가 나오지 않아 화가 난 퀴어 페미니스트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에 웃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해외 퀴어 콘텐츠를 소개해주실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클리셰라도 좋으니까 퀴어 로맨스물 제발 좀 보여주면 좋겠다. 클리셰 범벅되어 있어도 내가 다 볼테니 그냥 좀 줘라." 고 외치며, 2개의 태국 드라마와 1개의 일본 드라마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더 많은 좋은 사례들은 책 속에 있다고 하네요, 궁금하신 분들은 박주연 작가님의 책을 찾아주세요!
4
네 번째 발표는, 백세희 변호사님을 초청했습니다.
백세희 변호사님은, 2022년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변호사가 바라본 미디어 속 소수자 이야기>라는 책을 쓴 작가님이시기도 해요. 책 속에는 서울중심주의, 에이지즘, 인종, 젠더, 장애, 노동, 퀴어와 같은 키워드가 등장하는데요. 행사를 준비하면서 운명처럼(!) 이 책을 발견하고, 초대드리자 '어쩜 이렇게 꼭 맞는 기획이 있냐'며 흔쾌히 발표자로 수락해주셨답니다.
이번 토크쇼에서는 미디어 속 '비서울지역(민)' 재현에 대한 발표를 요청드렸어요.
"앞서 발표해주신 분들이 모니터링도 많이 하시고, 관련된 직업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저는 문화예술분야에서 벌어지는 법률적인 사건을 많이 다루고 있는, 서울 인근의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서울말을 쓰는 변호사입니다. 제 의견이 너무 설익은 의견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지만 우리 모두 미디어의 소비자이긴 하잖아요? 미디어를 소비하고 이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책도 내게 되었습니다."
"사투리 얘기를 할 건데요, 이 드라마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모래시계>. 광주에서 태어난 세 명의 남성이 주요 인물입니다. 주인공 최민수는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나 출세길이 막히는 바람에 고향 광주를 전전하다가 조직폭력배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런데 표준말을 써요. 그리고 한 사람은 사법고시출신의 검사인데, 역시 표준말을 써요. 그리고 악역으로 등장하는 나머지 한 인물이 있는데, 그 친구 한 사람만 구성진 광주사투리를 씁니다. 고향친구, 광주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들이라는 설정인데, 한 사람은 주인공이니까 서울말을 하고, 한 사람은 고위 공직자이기 때문에 서울말을 하고, 악역인 한 사람만 사투리를 써요. 어딘가 어색해요.
여기 등장한 최민수의 아주 유명한 대사, "나 지금 떨고 있니?" 그거는 사실 '나가 시방 떨고 있냐' 이렇게 되겠죠.(청중웃음)"
"모든 등장인물이 신나게 사투리를 쓴 <응답하라 1994>에서도, 1화에서 주인공 성나정이 남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편은 고향에서 함께 나고 자란 인물이죠. 그런데 두 사람 다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말로 대화합니다.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서울말을 쓸 수는 있는데, 동향 출신의 남매처럼 지내온 두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부부 사이에 서울말로 대화를 한다는 건, 미성숙한 어릴 때에는 사투리를 쓰지만 성숙해진 어른이 되어서는 응당 서울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미디어가 만들어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힐링과 피난처로만 소비되고 있는 시골', '승리자의 서울/패배자의 지방' 이라는 꼭지를 통해 도시와 대비되는 힐링, 느림, 치유, 낭만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지점을 '내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과 함께 소개해주셨습니다. '지방/지역'이 주로 사건의 배경으로만 드러날 뿐, 지방의 차별 문제를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 변호사/의사들이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의 배경이 서울이나 대도시인 것, 도시에서 잘 나가던 의사가 수술에 실패하면 좌천되는 곳으로 소비되는 지방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낭만닥터 김사부>의 경우 귀향을 당한 의사가 다시 도시로 복귀하는게 아니라 쫓겨난 지방에서 계속 그곳을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묘사해가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 중심주의에 균열을 낸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슬픈 것은, 서울이 모든 지방의 자원을 다 빨아들이는 것 말고도,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의 공간적 배경마저도 수도권에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미래에 대한 막막한 불안감을 지닌 청년이 어딘가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장면은 다 대도시의 옥탑방에서 수많은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막막하게 우수에 젖어있는 모습 아닐까요? 거기에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서울 거주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때로는 화면 속 주인공과 공감하는 나의 감상이 특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5
마지막 발표는,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드라마 속 '고아' 모니터링을 진행해온 자립준비청년 손자영님을 모셨습니다. 자영님은 <나 손자영 열여덟 어른>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캠페이너이기도 한데요, 드라마/영화 속 '고아' 캐릭터를 모니터링/분석한 내용, 차별적 장면을 패러디한 일러스트,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인터뷰 등이 실린 전자책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관련 웹페이지 바로가기). 이번 토크쇼에서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배경과 모니터링 결과를 축약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말을 짧게 설명드리면, 고아원/그룹홈/보육원 등에서 나와 자립해야 되는 친구들을 말합니다. 저는 1살 때부터 19년 정도 보육원에서 살았는데,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다름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자주 읽던 동화책 <미운 오리 새끼>, <콩쥐팥쥐>, <신데렐라>에서도 부모님이 없는 여자아이들이 구박을 받으며 자라는데, 기분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왜 그렇게 가훈을 적어오라고 하는지,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보육원에 사는 사람 있냐고 묻는지, 어딘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 같고,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보육원을 나와 자립하면서도 쫓아다니더라고요. 어디 손씨냐, 부모님은 뭐하시냐, 부모님 없다고 하면 없다고 뭐라고 하고. 자립한지 꽤 지나면서 분노가 쌓여서, 왜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경험해야 하나 생각을 했고,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고아, 보육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런 이미지들을 TV를 보면서 느꼈어요. 우리가 보는 저녁 드라마에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고아들이 진짜 많이 나오는데, 걔들이 사고도 많이 치고, 여성 캐릭터들은 그렇게 불륜을 저지르고, 부정적인 역할로 나와요. 보고 있으면 왠지 얼굴이 부끄러워지면서 보육원 친구들 표정을 살펴보게 되는데, '왜 또 고아냐/우리가 제일 만만하지/그래야 시청률이 높게 나오나봐' 그런 얘길 나눴어요."
"저는 그 때 '너희들은 안 그래.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저 캐릭터랑 실제 너네는 달라', 라고 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우리에게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질까? 생각해보면, 실제로 가정이 아닌 곳에서 자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난 경험이 적은 거예요. 자꾸 미디어랑 언론에서 그려지는 부정적인 인상들만 습득하게 되니까, 옆에 있어도 잘 모르고, 당사자들은 당사자라고 얘기를 잘 안 하게 되고, 구호단체 NGO에서는 불쌍한 모습으로만 재현하니까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래서 한땀한땀 드라마 속 대사, 캐릭터를 엑셀로 입력하면서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 공식을 찾아간 자영님의 프로젝트는, 비난 대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좋은 미디어 사례가 있으면 시상식도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제작자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러면 어떻게 고아 캐릭터를 그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진짜 우리의 모습이 담긴 우리 팟캐스트를 들으세요, 우리 유튜브를 보세요. 거기에 진짜 이야기가 있어요."라고 답하곤 했다고 합니다.
"미디어 속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렇지만 또 상처받고 화나는 누군가가 있잖아요? 이 사이를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지, 함께 질문으로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청중박수)"
자영님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를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만 그리는 것, 나는 그냥 보통의 사람인데 이상하고 문제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 그래서 더 움츠리게 되고 분노가 쌓이는 지점들이 성소수자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분 무슨 기분인지 알것 같아요', 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는데, 이런 마음을 함께 모아 자립준비청년들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미디어가 있으면 앞으로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사진) 토크쇼 발표를 듣고 있는 참여자들의 모습.
*
5명의 PT발표가 끝나고, 참여자들이 사전에 남겨준-
미디어 속에서 더 보고싶은 장면/인물과 보고싶지 않은 장면/인물을 짧은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이어지는 시간은, 빙고게임과 토크프로그램이었는데요.
PT 발표가 길어지는 바람에, 다소 부랴부랴...(ㅜㅜ) 짤막하고 숨가쁘게 흘러가버린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저녁행사라고 아랑곳하지 않고(?) 3-4시간짜리 긴긴 마라톤 토크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빙고게임!
미디어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보고싶은 장면들을 빙고게임으로 담은 '보고싶은BINGO' 종이를 함께 채워보았습니다.
각 빙고칸 속의 문제에 해당하는 콘텐츠 제목을 적어서, 가로/세로/대각선 1줄을 채우면 1빙고!
토크쇼에서는 3빙고를 채운 분들, 그리고 모든 칸을 채워 올빙고!에 성공한 분들께 hanyo 작가님의 귀여운 일러스트가 담긴 포스터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후기를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빙고칸을 채워보세요! (재미보장...)
***
짧은 토크시간에는- 참여자들과 함께 빙고에 쓴 작품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시간,
플로어의 질문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
토크쇼에서 나눠드린 보고싶다/보고싶지않다 스티커에 일러스트를 그려주신 hanyo 작가님과의 짧은 인터뷰(?),
그리고 미디어에서 다양한 존재/인물/장면/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나눴습니다.
(사진) 발표자들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모습.
빙고에 쓴 추천작품들로는
아역배우가 입체적으로 잘 그려진 <유괴의 날> (불편한 점은 아역이 너무 어른스러워서 어른을 가르치는 것. 하지만 아역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합니다.)
휠체어를 탄 인물이 등장하는 어린이 만화 <변신자동차 또봇> (남성이 밥 차리는 장면, 흥미로운 중장년 여성도 등장합니다.)
여성 인물의 끈끈한 연대가 등장하는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지>, <럭키아파트>, <브러시업 라이프>, <너와 나>
흥미로운 중장년 캐릭터가 등장하는 <마스크걸> (좋은 점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아쉬운 점도 갖고는 있지만!)
성소수자 캐릭터가 2명 이상 등장하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좋은 점과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아쉬운 점도 갖고는 있지만!)
사투리..는 아니지만 이주민의 서툰 언어를 쓰는 인물(카리나 델루카)이 긍정적으로 재현된 작품 <그레이 아나토미(시즌14)>
정신질환을 납작하지 않게 그려내면서 남주와 여주를 로맨스로 엮지 않는 <새벽의 모든> (PMS와 정신질환을 등치시킨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소개되었어요.
(사진) 발표자들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모습.
마지막 질문은, 미디어에서 왜 다양한 인물/장면/이야기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였는데요.
이하 패널들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는 힘이 세니까.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보여줄 수도 안 보여줄 수도 다르게 보여줄 수도 있는데, 그 재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가능성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움직이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을 좋은 곳에, 좋게, 재미있게, 여기 모인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쓸 수 있게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노새)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의 이야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제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작자/제작자가 굉장히 중요하고,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퀴어 서사에 가려진 부재와 삭제는, 그냥 어떤 캐릭터 하나만의 삭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기회를 같이 더 많이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연)
"오늘 이 자리에 이주여성 당사자가 오는 것, 제가 오늘 한 이야기를 당사자 활동가 혹은 당사자 여성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미디어의 영향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더 많은 사람을 담아 보여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지)
"우리의 몸, 시간, 재화,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경험하며 깨달을 수 있는 것도 너무 너무 제한적인 것 같아요. 결국은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좀 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반드시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희)
"오늘 이 자리에서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재밌었고요. 최근에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면서 엄청 울었어요. 왜냐면 제가 들었던 말들, 제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미디어가 누군가의 삶을 치유하기도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디어가 가진 힘, 자본이 가진 힘이 센데, 잘 활용해봐야 하지 않을까. 작가협회 같은 곳들이 있던데, 그런 곳과 연계해서 뭔가 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자영)
"저는 설레고 싶어서, 라고 답하고 싶어요. 어떤 콘텐츠를 보면서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삶, 존재들을 보며 설레고, 기대하고, 꿈꾸고 싶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더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이야기 나눈 것처럼, 소수자들이 미디어 속에서 보통의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보통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디어에 더 많은 존재, 더 많은 이야기가 등장할 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차별하고 혐오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경)
(사진) 발표자들과 함께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모습.
같은 질문을 토크쇼 참여자분들께도 던져보았는데요,
빼곡하게 답변을 남겨주셔서 몇 가지 답변을 함께 소개하며 후기를 닫습니다.
Q.미디어에서 더 많은/다양한 인물/장면/이야기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진) 토크쇼 참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보너스. 드라마 <정년이>에 원작 웹툰의 주요인물인 부용이와, 고사장이 등장하지 않는 것에 분개한(?) 참여자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본 행사는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