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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후기] 많은 사람들이 당신 편이기 때문에_토크쇼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넘어서는 우리의 이야기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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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입니다. 민우회는 2016년 넥슨 성우 교체사건, 2018년 IMC게임즈 사건을 비롯해 이어져온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에 대응하고 성평등한 일터,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관련 민우회 활동은 본 후기 가장 하단에서 모아보실 수 있습니다)

 

게임업계에서 나타난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좋지 않은 선례가 쌓이며 게임업계 뿐 아니라 다양한 일터에서 백래시로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4년 올해 여성노동팀은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일터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고 여성노동자들의 일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페미니즘 사상검증', 지울 수 없는 여성노동자의 존재라는 제목의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일터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43건의 설문과 6명의 심층 인터뷰로 모았고, 이를 정리해 지난 11월 7일 목요일 저녁 토크쇼에서 발표했습니다. 토크쇼에는 40여명이 자리를 꽉 채워주셨습니다.

 

토크쇼는 여성노동팀 신혜정 활동가의 사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진: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순서로 배찬민 활동가가 사업을 진행하게 된 배경과 계기를 소개하고, 설문조사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을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발표자료: 2024년 '집게손' 억지논란에 굴복한 기업/기관)



2024년 르노코리아 신차 홍보 영상에서 '집게손' 동작을 했다는 이유로 남초 커뮤니티에서 억지논란이 발생했고, 이에 당사자가 영문도 모른 채 사과문을 게재하고 업무 정지 조치가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볼보와 현대차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빙그레는 아예 홍보 캐릭터의 손가락을 없애기로 하고, 서울우유도 최근 인플루언서들에게 홍보를 섭외하며 "논란의 손동작"을 주의하라고 표현해서 시민들이 그럼 요거트 뚜껑을 어떻게 열라는 거냐며 어이없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무색해지고, 근거 없는 편견과 차별이 기업의 방침으로 이어지는 양태에 대해 기업과 기관은 소비자 혹은 대중의 요구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이유를 내세웁니다.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대응이 정당화되고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표자료: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이 지속, 확장되는 것에 대한 고민)


민우회는 페미니즘 운동 단체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이렇게 켜켜히 나쁜 선례가 쌓이며 확장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을 바라보며 고민이 깊어졌고 본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6~7월에 진행한 설문조사에 총 43건의 사례가 접수되었습니다. 응답자의 61%가 30대, 64%가 20대로 사회초년생인 20대부터 어느 정도 경력을 가진 30대까지, 고용형태에 무관하게 사상검증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본 사업 설문조사 및 인터뷰는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발표자료: '일터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89%가 경험이 있다고 답함)



(발표자료: '문제제기 하거나 대응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72%가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함)


대응 여부를 물었을 때, 72%가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했는데요. 가장 큰 이유로는 ‘대응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서’, 그 다음으로는 ‘상사 및 직장 동료들의 미움을 살까 두렵고 주변 사람들이 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사상검증을 경험한 노동자로 하여금 조직문화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들이 근거 없는 불안은 아닙니다. 대응을 한 경우에도 예를 들어 형사 고소로 유의미한 판결을 받거나, 행위자의 행위를 중단한 경우도 있었지만 차별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하는 조직 차원의 조치나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비자발적 퇴사를 한 결과도 있었습니다.

 

(발표자료: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소개)


설문에 응답해주신 분 중 6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이름은 모두 가명처리하였으며 직업 또한 필요에 따라 각색하였습니다.

 

[주원]은 손가락 일러스트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비난 여론이 형성되어 회사로부터 SNS 통제, 추가 노동을 지시받은 바 있다고 합니다.

 

[하영]은 비정규직으로 방송출연일을 하는데요, 어느 날 현장에서 관리자가 "혹시 여기 페미 있냐. 있으면 손 들어라."라는 얘길 들었다고 합니다. 관리자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팀장님 페미는 좀"이라고 반응했다고 합니다.

 

[은정]은 대학에서 페미니즘과 관련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 내용에 대해서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학생들, 강의 자체에 외부 민원이 제기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우영]은 갑자기 식사 자리에서 상사가 "페미해?"라고 물어 당황하여 얼버무렸는데, ‘꼴페미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훈수를 들었다고 합니다.

 

[영주]는 어느 날 갑자기 같이 밥을 먹던 윗사람이 "혹시 인터넷 방송인 00 아냐?"고 물어서 모른다고 답했더니, 00을 페미들이 싫어한다면서, 모른다니 페미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얘길 들었다고 합니다.

 

[소명]은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공개 지지 발언을 SNS에 표명한 이후, 출판사로부터 SNS를 자제해줄 것을 요구 받았고 이후 아무런 기별 없이 계약이 종료되었다고 합니다.

 

설문조사와 인터뷰에서 파악된 ‘페미니즘 사상검증’ 유형은 크게 SNS 검열, 색출과 검열, 채용과정의 불이익, 조직으로부터 통제/배제 경험, 불필요한 이중노동이 있었습니다.

 

일부 사례를 공유하자면,

 


SNS 검열

“사측에서 조직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지만 관리자급 직원들이 공유한 적 없는 직원들의 sns계정을 몰래 염탐하고 있었고, 가끔은 본인들에게 거슬릴만한 발언을 한 경우 일부러 그 주제를 꺼내면서 내가 다 보고있으니 말조심하라는 티를 내기도 했습니다.” (설문 참여자) 

관리자가 직원의 개인 SNS를 염탐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감시하고 있는 것을 감추지 않고 알리면서 직원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018년 IMC 게임즈에서 직원의 SNS를 사찰하고, 민우회를 팔로했다는 이유로 근거로 사상검증을 했던 사례가 있었죠.

 

2021년 GS25 포스터 사건 이후로 양상이 달라졌는데요. 이제는 당사자가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 실제 그 작업을 한 사람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커뮤니티에서 ‘혐의가 제기’되고, 정보가 확산되며 비난 여론이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이버불링, 개인정보유출 등의 피해가 발생하고, 여성노동자 혹은 기업은 사과문을 게재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죠. SNS상에서 무분별하게 정보가 유포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피해와 낙인만 남는 결과로 남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페미니스트노동자가 감당해야하는 현실입니다.

 


색출과 검열

색출과 검열은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일어나는데요. 설문에서 확인되는 사례들은 여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트위터 어플이 깔려 있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파트너와 분담한다는 이유로, 성희롱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숏컷을 했다는 이유로 등 웃지 못할 이유 들인데요.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과 페미니즘의 ‘표식’이라고 믿는 것들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일들입니다.


 

채용과정에서 겪는 불이익

입사지원자를 대상으로도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이루어집니다. 채용과정에서 일어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차별행위이지만, 면접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묻고 그에 답했던 것이 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입사지원자의 입장에서는 입증이 어렵습니다. 때문에 여성/페미니스트노동자들은 그저 짐작하고 추측하며 자신을 검열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조직으로부터 통제, 배제 경험

일터에서 시사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 예를 들면 “데이트폭력이 무슨 폭력이냐”라는 상사의 말에 “데이트폭력도 폭력이다”라고 답했더니 특정 사이트를 거론하며 ‘페미니스트는 우리 팀에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고 이후 업무 배제를 경험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사서 일을 하는 분은 도서관의 자료입수 업무를 할 때 페미니즘 도서는 제외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공공도서관에서 성평등 도서를 유해도서나 금서로 지정하여 제외, 폐기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 공분을 산 바가 있지요.

 

이렇게 조직 내 관계망에서는 물론, 업무적으로도 통제, 배제되는 경험은 여성/페미니스트 노동자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불필요한 이중노동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여성/페미니스트 노동자는 불필요한 노동을 해야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 작가님이 전에 썼던 것도 되게 그런 여성 영웅 서사가 돋보여서 되게 상도 많이 받고 했던 작가인데, ‘나는 이 책 안 팔릴 것 같으니까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이래버리면. 근데 이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얘기를 못하니까 편집자 분한테 막 따로 가서 얘기하고 저는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그럼 이제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죠.” (우영)

 

이렇게 노동자들이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 지속가능한지 질문하게 됩니다.

 

“회사 내에 괴롭힘에 대한 보호조치가 부재했고, 자진퇴사로 연결되었다.”(설문 참여자)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으나, 향후 계속해서 SNS에 그런 걸 올린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업무 배제 및 계약 해지는 당연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이익은 없었지만, 불안했습니다.” (설문 참여자)

 

“불이익은 없었지만 기분이 불쾌했습니다. 예전에 여자 욕할 때 김치녀 된장녀 쓰던 게 페미로 대체됐구나 싶었습니다.” (설문 참여자)

 

설문 답변 중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었다고 답한 분들조차, 불안함, 두려움 등을 느꼈다고 답했습니다. 이건 과연 ‘불이익’이 아닐까요?

 

이미 앞선 사례들을 통해 채용과정에서부터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경험하고,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이후 그 일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실질적이고 엄청난 불안 속에서 노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이익을 받았던 경험이 있나요?’ 하면 없죠.

거기까지 진행된 적이 없으니까. (..) 근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하영)

 

저희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일어나는 조직의 환경, 조직문화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인터뷰이들에게 회사 분위기를 여쭈어봤습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희화화하거나 회사의 중요한 정보가 흡연시간 중에 공유되거나 회식을 ‘도우미’가 있는 단란주점 같은 곳으로 가는 등의 조직문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문화에서 자유로운 구성원은 없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지, 기존의 문화가 누구에게 차별적으로 작용하는지 살피는 감각이 모두에게 예외 없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패널 토크가 이어졌습니다.

 

(사진: 패널들이 앉아있다)


패널로는 ‘편견 없는 파편들의 사회’를 쓴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님,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을 쓴 이슬기 기자님을 모셨습니다. 발표에 이어 배찬민 활동가, 사회에 신혜정 활동가도 인사를 시작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현미: 연세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 김현미입니다.


이슬기: 프리랜서로 기사 쓰고 있는 이슬기 기자이고요. 전에는 서울신문에서 젠더 담당 기자를 했었습니다. 물론 페미니스트입니다.(웃음)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에 대한 고민

 

김현미: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상이 아니라) 몇몇의 단서, 그 사람의 표현이 숏컷이냐, 이력서에 여자대학을 나왔냐, 화장을 안 했냐 이런 것으로 쉽게 페미니스트로 단정하잖아요. 제가 본 많은 경우는 일터에서 싫기도 하고 경쟁 상대인 여성에게 ‘너 페미냐’라고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축시키는 하나의 남성 전략이거든요. 그래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라기보다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통하여 여성혐오를 교묘한 방식으로 조장하는 것이고 괴롭힘이죠.

 

신혜정: 2016년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이유로 넥슨 성우가 교체되는 사건이 있을 당시엔 그 사건을 ‘메갈사태’, ‘메갈논란’, ‘성우 교체 논란’으로 명명되다가 2018년 IMC 게임즈 사건 때부터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명명이 등장한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안티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스트를 색출하려는 행동이) 문제이니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이 이제 그 문제의식은 사라진 채 누군가를 색출하고 낙인찍고 걸러내는 정도로 납작하게 사용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찬민: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은 시민단체에서 먼저 사용했지만, 이는 비판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예를 들면 여순 사건이나 보도연맹사건 등 사상검증 사건을 보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상검증’에 대해 역사적으로 해소된 경험이 없는 것 같아요. 보편적으로 사상검증 사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명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문제의식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고민들 속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사업을 진행하며) 나누었습니다.

 

신혜정: 그래서 여성/페미니스트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겠냐 말씀해주시기도 했죠.

 

이슬기: 최근 연재한 칼럼에 쓰기도 했는데, 페미니스트 사상검증, 페미 색출이라는게 객관적인 상황판단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가해자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페미니스트 노동자에 대한 직장 안팎의 괴롬힘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백래시로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신혜정: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양상을 보면 점점 공격의 허들이 낮아지며 당사자가 페미니스트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정보가 확산되며 사이버불링, 정보유출, 악의적 소문 등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여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트위터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파트너와 분담했다는 이유로 등 선입견과 대상화에 근거해 ‘페미니스트 색출과 검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기자님은 사회부에 계시면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감각하고 계셨나요?

 

이슬기: 페미니스트에 대한 직장 안팎의 괴롭힘은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의 위상과 같이 연동되어 나타났던 것 같아요. 안산 선수에 관한 공격이 터무니 없는 공격인 걸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데 많은 언론들이 이걸 정말 논란이 있는 것처럼 ‘숏컷 논란’이라고 호명을 하면서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어느 정도 효능감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도 ‘집게손 논란’, 무슨 논란 하면서 사실은 가해와 피해가 있는 사건에서 가해와 피해를 동등하게 다루면서 ‘이게 중립적인 기사야’라고 하는 기사들이 범람하기 시작해요.

 

이런 상황들을 겪다보니 기사에 ‘페미니즘’이 들어가면 댓글이 자동완성처럼 페미X가 달리고, 제가 공격받는 건 무감한 편이지만 제 기사에 나오는 인터뷰이가, 페미니스트가 그런 공격을 받는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한때는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고 페미니즘 말하기를 했었습니다.

 


강력한 남성중심적 무기 “너 페미냐”


김현미: 저는 학자고 교수니까 사상을 갖고 있는 여자고(웃음), 페미니즘이 자산이고 역사죠. 근데 기독교 대학이기도 한 연세대에서 ‘젠더’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하기도 해요. 페미니즘의 주요 분석 언어인 젠더를 썼다는 이유로 저도 시련을 당했죠. 우리나라에는 양성평등기본법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양성평등은 또 지지한다고 말해요. 양성평등은 지지하고, 많은 여성들이 일터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건 지지하지만 ‘꼴페미’, ‘메갈페미’는 곤란하다, 색출해야한다고 하거든요. 하지만 기업이나 대학에서 수치적 평등이든 실질적 평등이든 이룩하려면 투쟁과 보완이 있어야 하잖아요.

 

한국의 기업이 남성중심적이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남성동성사회룰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능력있는 여성(노동자)을 원하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너 페미냐’ 이런 말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거죠. 그래서 저는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너 페미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심리적 해고 상태를 선언당했다고 봐요. 심리적 해고상태라는 건 ‘네가 어떤 식으로든 조금 더 페미니즘적인 형태로 드러내고 발화하면 진짜 해고가 다음에 올거야’라는걸 경고하는 심리적 해고 통지라고 보는 거에요.

 

40~50대 상사가 20~30대 여성들에게 ‘너 페미야?’하기보다는 비슷한 연령대의 20~30대 남성들이 경쟁 구도 안에서 행사하는 강력한 남성중심적 무기라서 (상황을 중단시키는) 상관의 태도가 중요해요. 중간관리자나 의사결정자가 ‘그런 말을 왜 하냐’, 혹은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은 직원들 간에 좋지 않다’라고 한마디 하면 싹 없어질텐데 상사들이 그걸 안한다는 거에요.

 

신혜정: 언론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으로 여성노동자 혹은 페미니스트 노동자들이 겪는 불이익이 마구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페미니스트라는 걸 드러내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생각해요. 채용성차별공동행동 간담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요.

 

배찬민: (학교에서) 여성학 수업을 들은 것이 나중에 취직에 마이너스가 될지 걱정하기도 했고, 페미니스트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이력에 써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뺐더니 빈 이력서가 되어버리는, 구직자에게 미치는 상황을 알 수 있었어요. 구직이 절실한 면접자 입장에서는 이력서, 면접, 포트폴리오 등 과정에서 심증만 있고 채용되지 않은 이유가 사상검증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이력서에서 빼게 되는 어려운 현실 속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김현미: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는데요. (어떤 학생이) 페미니즘 활동을 활발하게 하다가 취업할 땐 다 지워버려서 추천서에 써줄 게 없는 거예요. 페미니스트 교육자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고, 학내에서 인권운동, 페미니즘 축제를 통해서 많은 걸 받고 사상적으로 성장했으면서 내가 어떻게 선택되어질까에 대해 허구적인 이미지로 상상하게 되는 거에요. 안타까운 일이죠.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들이 (여성 청년들을) 위축시키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론 난민 활동, 이주 인권 활동은 (페미니즘 활동과 달리) 액티비즘적이고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살피는 활동으로 여겨요. 페미니즘 관점이 있어야 난민 활동도 잘 할 수 있어요. 이렇게 N개의 이력서를 만들고 통합되지 않은 자아로 누군가의 앞에 있을 때 성공하기 어렵다고 봐요. 왜 훌륭한 20대 여성을 이렇게 불안하고 전전긍긍하게 만드냐는 거죠.

 

신혜정: N개의 정체성으로 자아를 분열시켜 살아가는 현실, 하지만 그렇게 분열시켜도 ‘너 페미냐’라는 질문 앞에서 불안에 떨어야 하는 현실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개인의 고민과 대응 뿐 아니라 필요한 제도적인 변화나 대안에 대해서도 설문조사 참여자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변화와 대안

 

(발표자료: 대응방안으로 업종별 실태 조사 실시, 노동부 등 관련부처의 관리감독 강화, 피해자 지원 체계 구축,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차별금지법 제정 등 법률상의 기반 마련, 의무교육과정 내 노동인권 및 기초노동법 교육과정 의무화)  


배찬민: 설문조사결과에서는 법제화, 교육 의무화 등 제도적 보완과 사회적 인식 개선에 대해 큰 차이가 드러나지는 않았고, 다 함께 이루어져야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문 응답자들이 인식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좀 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고 좀 더 널리 쓰여야 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이 ‘너 페미야 너 왜 그래?’ 이렇게 물었을 때 ‘야, 페미가 뭐 어떻다고 그래?’ 이런 식으로까지 갈 수 있게끔. 용어가 좀 더 널리 보편적으로 쓰여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기가 되게 힘들겠죠.” (영주)

 

“많이 더 인정받아야 될 사람들이 인정 못 받게 되는 일이 자꾸 생겨서. 일단 조직 안에서 힘이 좀 세져야 될 것 같아요. 이들 숫자도 늘고 좀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부처도 필요하고 장치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 이런 일을 해도 안 잘린다라는 장치라든가, 혹은 이런 일을 떠맡게 된 사람들이 이 일을 잘하든 못하든, 이로 인해 너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합의있잖아요. 그게 너무 필요한 것 같아요.” (은정)

 

소명님은 2020년 한 게임사가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무대응했던 사례가 있는데 그런 선례가 더 드러나고 쌓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우영님은 신입사원의 경우 대응이 어렵고 기업에게 맡기는 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막아줘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신혜정: 두 분은 시급하게 해결될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슬기: 모두 다 시급하죠.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인식변화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저는 여러분들이 언론에 기사 똑바로 쓰라고 압력을 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언론이 가해와 피해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다루면서 작금의 상황을 낳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거든요. 가해의 목소리와 피해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다루면서 있지도 않은 ‘남성혐오’를 여성혐오와 같은 수준으로 다뤘잖아요. 요즘 기업 마케팅, 홍보 담당자들이 혐오표현 걸러내기 피곤해한다는 보도들이 나오기도 해요. 그 기사는 뭘 위한 기사일까요? 사회적 성차별을 무화시키는 보도들이잖아요. 최근에 ‘이세계 퐁퐁남’ 웹툰 때문에 네이버 웹툰에 대한 불매 운동이 있었고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잖아요. 언론에도 많이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데스크에는 댓글보다 직접 전화 하는 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왜 페미니스트에 대한 괴롭힘을 남성혐오로 이야기하고 논란이라고 기사화 하느냐’, ‘왜 성차별을 무마하는 보도를 하느냐’라는 목소리를 많이 내주셔서 페미니스트 기자들도 힘을 얻고, 소위 ‘중립’이라고 하면서 반반 보도하는 기자들에게도 경각심을 줘야하다고 생각해요.

 

김현미: 일터에서 여성들을 인터뷰 하면서 여성들이 ‘선생님 우리 기업에는 페미 나밖에 없나봐요’라고 하면서 다들 페미 어디갔냐고 물어봐요. 있겠죠. 3인 원칙이라는게 있잖아요. (문제적인 발언이 있을 때) ‘팀장님 그런 이야기 하면 큰일나요’하거나 무마해주는 여성 동료가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라고도 봅니다. 목숨을 걸고 하는 투쟁이라기보다 그냥 그만하세요.(라고 중단할 수 있다)



 

패널 토크 이후 이어지는 플로어 토크에서는 노동조합 내부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 부족, 페미니스트 동료로서 서로를 돌보며 어떻게 페미인 걸 드러내자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등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나누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백래시를 겪으며 화나는 마음도 위축되는 마음도 들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크쇼는 함께 있는 페미니스트 동료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이들이 남겨준 동료 여성/페미니스트 노동자에게 하고 싶은 말로 토크쇼를 마무리했습니다.



(발표자료:  “혼자인 것 같지만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걸 생각하면 좋겠고 너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정말 시끄러운 소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당신 편이기 때문에.”)


-후기 끝-


**'페미니즘 사상검증' 관련 민우회 활동

2016년

▶넥슨 성우 교체사건(2016.7.)

-넥슨 성우 교체사건 등 대응 해시태그 '#말하기는_계속되어야_한다'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6666&bmode=view

 

*2018년

▶IMC게임즈 사건(2018.3.27.)

-2018.3.27. [입장문] 게임제작사 imc게임즈의 노동권 침해 및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규탄한다

https://womenlink.or.kr/statements/?idx=85738065&bmode=view

 

-2018.4.11. [라운드 테이블]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6633&bmode=view

 

-2018.7. 일터에서의 페미니즘 백래시 제보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7128&bmode=view

 

*2019년-2022년

▶2019.11 게임업체 티키타카스튜디오 페미니즘 '블랙리스트'

-2019.12.23 [기자회견] 게임업계 사상검증과 블랙리스트 규탄 및 피해복구 촉구 기자회견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7098&bmode=view

 

▶2019.12. 보도 "삼성, 직원 연말정산 정보 뒤져 ‘진보단체 후원’ 수백명 색출"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2158.html

 

▶2020.1.2. 게임 명일방주 일러스트레이터 작업물 삭제

-2020.1.2. [입장] 게임 〈명일방주〉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

https://x.com/womenlink/status/1212653586137542656?s=20

 

-2020.02.28 [공동성명] 삼성의 '꼼수사과'를 규탄한다 : 삼성의 불법사찰, 위장사과에 분노하는 시민사회의 입장

https://womenlink.or.kr/statements/?idx=85737873&bmode=view

 

-2020.07.14 [기자회견]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 -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침해다!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7085&bmode=view

 

▶2021.5. GS25 '집게손' 논란

-2021.6.14 [함께쓰는성명] 노동권 침해하는 백래시, 그러나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TM7fQ%3D%3D&bmode=view&idx=28807065&t=board

 

*2023-2024년

▶2023.7 프로젝트문 사건

-2023.09.27. [카드뉴스] ’사상검증‘은 하지 않는다지만, 페미니즘은 검열하는 게임업계. 유저들의 여성혐오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라!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7026&bmode=view

 

▶2023.11.26 넥슨 ‘집게 손’ 억지논란

-2023.11.28 [기자회견] 25,511의 연대와 함께한 기자회견: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억지 논란을 멈춰라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6547&bmode=view

 

-2023.12.8 [국회 긴급토론회] "페미니즘 마녀사냥을 멈춰라!" 온라인 집게 손가락 억지 논란,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https://womenlink.or.kr/notice/?idx=28799088&bmode=view

 

-2024.3.6.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출범 및 신고센터 운영

https://womenlink.or.kr/minwoo_actions/?idx=28807017&bmode=view

https://womenlink.or.kr/notice/?idx=28799054&bmode=view

 

▶2024.6 르노코리아 집게손가락 논란

-2024.7.2. [공동성명] 집게손가락,‘남성혐오’모두 허구이다! - 르노코리아 등 집게손가락 논란은 여성혐오이다 -

https://womenlink.or.kr/statements/?idx=45703606&bmode=view

 

▶2024.7.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수구 꼴페미의 나쁜 광고 즉시 철거하라!"

-[공동성명] 배제와 차별의 언어로는 어떤 노동자도 지킬 수 없다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비판하며

https://womenlink.or.kr/statements/?idx=45705530&bmode=view

 

▶2024.8.8. [긴급기자회견] 서초경찰서는 성차별적 풍토에서 벗어나 성평등한 수사를 진행하라!

https://womenlink.or.kr/statements/?idx=61434702&bmod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