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후기] "우리는 수치의 역사가 아닙니다" ―〈침묵을 깨고, 책임을 묻다: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소송의 의의와 쟁점〉국회토론회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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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공동주최단위 및 패널 중 6명이 테이블에 앉아 피켓을 들고 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토론회 제목이 크게 쓰인 전광판이 있다. ⓒ주한미군성착취규명공대위


3월 6일 금요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국회토론회 〈침묵을 깨고, 책임을 묻다: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소송의 의의와 쟁점〉(이하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전체 사회 |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이정아

축사 및 인사말

1부

원고단 발언

발표1. 우리는 왜 원고가 되었는가: 주한미군 성착취 범죄와 소송의 배경 | 새움터 고미라

발표2. 주한미군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의 내용과 쟁점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송대리인단 허주희

발표3. 애국적 '위안부' 만들기: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의 책임 |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미군 '위안부' 소송 협력연구자모임 박정미

발표4.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소송의 법적 의의 | 경북대학교 법학과 교수 김창록 


2부

사회 | 한성대학교 교수, 미군'위안부' 소송 협력연구자모임 대표 김귀옥

발표5. 주한미군 성착취 규명 소송과 국제연대의 확장 | WCDMZ 여지연

발표6. 어트 카투사의 증언: 미군들은 왜 한국을 '천국'으로 여겼나 | 한국여성평화연구원 윤보영

발표7.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진연종

전체토론

<표> 토론회 상세 프로그램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 기지촌은 미국과 한국 정부의 군사적·외교적 이익을 목적으로 초법적 공간으로 간주되어, 미군의 성구매 과정에서 주한미군 기지촌 '위안부'(이하 미군 '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 성폭행, 폭행, 살인 등 피해가 양 국가의 방관 속에서 제대로 된 구제·보호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국가적 책임을 물으며 미군 '위안부' 당사자를 중심으로 원고단이 꾸려졌고 2014년 대한민국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후 2022년, 기지촌이 처음 조성된 1957년으로부터 65년,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8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이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소송은 미국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 미군 '위안부' 원고단은 이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이날 개최된 토론회는 왜 이전 소송에서는 미국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는지, 왜 지금은 물을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맥락을 살피고, 당사자의 증언 속에서 이번 소송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사회적으로는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살피는 자리로 마련되었어요.


본격적인 발제와 토론에 앞서, 원고단인 미군 '위안부' 당사자 분들의 발언과 대독이 이어졌습니다. 


" (..) 미군들은 자기 맘대로 안 해준다고 저희를 때렸습니다. 이유도 없이 막 때릴 때는 너무 억울해서 미치도록 괴로웠어요. 처음에는 나이도 어리고 모르는 게 많아서 미군에게 맞아도 신고도 못했습니다. 전화기도 없고 맘대로 포주집에서 나갈 수가 없으니 신고를 못했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 사건이 생겨 신고를 했는데 미군부대 경찰은 미군 동족이라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데려가고, 대한민국 경찰은 외국인한테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가고, 미군부대 사람도 모른 척 하고, 저희는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어요. (..)"

"어떤 미군이 성병에 걸렸다 하면 미군부대는 어느 여자와 잤냐고 해서 그 여자를 찾아서 미군 병원으로 끌고가 치료도 했습니다. 그걸 미군들은 '컨택'이라고 합니다. 저도 미군에게 컨택이 찍혀서 부대로 끌려 들어가 미군 병원에서 약을 먹었습니다. (..) 그리고 미군 트럭이나 미군 지프차를 가지고 나와서 성병에 걸린 '위안부'들을 낙검자 수용소로 끌고도 갔습니다. (..) 낙검자 수용소는 교도소 같은 곳입니다. 자유가 없고 나갈 수도 없고 거기에 갇혀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습니다. (..)"

"(..) 우리는 매주 강제로 성병 검진을 당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곧바로 '몽키하우스'라 불리던 격리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좁은 방에 갇힌 채, 굵은 바늘로 독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했습니다. 주사는 너무 독해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도 못했고, 어떤 여성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의 상태를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항의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실험대상처럼, 죄인처럼 취급 당했습니다. (..)"

"(..) 저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겠습니다. 오늘 제 목소리가 다른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반드시 우리의 진실을 인정하고, 우리의 명예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동료 피해자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몸이 불편해 나오지 못한 분들, 아직도 수치심과 두려움 속에 숨어 계신 분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수많은 언니들과 동생들. 저는 그분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어떤 경로로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일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폭력을 경험했는지, 미군과 한국 경찰은 이들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 원고단의 발언은 부당하고 억울한 심정과 함께 이제는 그 피해 경험에서 벗어나 제대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굳게 담겨 있었습니다. 현장에 함께 한 약 2~30여명의 원고단은 다른 피해자의 발언을 들으며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며 목소리 높여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원고단은 2022년 미군 '위안부'에 대한 폭력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판결을 통해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일상 속에서 미군 '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마주하고 있어 "왜 우리를 멸시하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국가적 책임을 인정받는 일과 함께 오랜 시간 고착화된 사회적 편견을 바꾸어 나가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단단히 얼어붙은 역사적, 사회적 침묵을 깨고 책임을 묻는 원고단의 발언이 남긴 여운 속에서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첫번째 발제를 맡아주신 새움터 고미라 대표는 지난해 9월 5일,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주한미군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미군 '위안부'들은 오래 전부터 미군 '위안부' 문제의 진짜 주범은 미국"이라고 생각했고, "한국과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통해 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군 '위안부'들이 맞서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강대국이었고 수십 년 동안 미군에 의한 성착취와 범죄 피해 속에 놓여"있었던 미군 '위안부'들에게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전에는 지금보다 더 "미군 '위안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심각"했기 때문에 소송의 결의가 실제 소송으로 바로 이어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군 '위안부'들이 2014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8년 간의 지난한 싸움 끝에 미군 '위안부' 제도와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게 있음이 입증된 2022년 판결은 미군 '위안부' 에게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피고가 한국 정부로 한정된 탓"에 해당 판결은 "한국 정부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인정하는 범위"에 머물렀고, 사실상 제도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유지해 온 미군 당국의 범죄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는 판결 범위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소송에서 참여했던 원고 일부는 "생애 마지막 과제로 미국 정부와 주한미군의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을 결의"했고 2021년부터 미국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22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났고, 이로 인해 더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미국 소송에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미라 대표는 작년 9월 제기하게 된 주한미군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주 목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첫째, 미 군대는 군사적 이익을 이유로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성착취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했고 사실상 허용·조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미군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둘째, 미 군대와 미군 병사의 불법행위로 인해 미군 '위안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알리고 이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셋째, 미국 정부와 미 군대의 사과와 피해 보상,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과 제도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넷째, 미군 '위안부'들의 피해 회복을 지원체계를 확대하고 강화하기 위해


앞서 있었던 원고단이 발언을 통해 증언한 바과 같이 미군 '위안부'의 대부분은 미군 기지촌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인신매매, 납치, 사기알선 등 위법적 요소가 있었으며, 일부 미군 부대에서는 자치회와 업주를 통해 직접 미군 '위안부'를 모집하고 성매매 장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성매매를 허용·조장했다고 합니다. 미군의 성구매 과정에서 미군 '위안부'를 대상으로 살인미수, 감금, 폭행, 강간 등의 중대한 폭력피해가 발생하였으나 미군은 피해 상황에 놓인 미군 '위안부'를 구조하거나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 군대는 미군의 성병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유로 미군 '위안부'를 통제·관리했는데, 성병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접법한 절차나 권한 없이 미군 '위안부'들에게 강제로 페니실린 주사 치료를 하거나 격리수용시설로 연행했다고 합니다. 끌려가는 과정에서 미군에게 폭행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의료적 진단과 당사자 동의 없이 집단 강제 주사 치료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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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 전경 사진이 실린 자료집 PDF를 캡춰한 이미지 ⓒ 2025 기지촌여성 인권 아카이브 동두천 편


원고단은 미군 '위안부'로 유입되는 과정부터 미군의 성구매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 피해에 대해 미군이 범죄 조사 의무가 있었으나 이를 위반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매일 순찰을 도는 미 헌병이 미군 '위안부'를 폭행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군 '위안부'의 신고를 무시한 점, 범죄 피해를 신고하면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 미군을 즉시 분리하여 미군 부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범죄자를 은닉함으로써 범죄 사실을 은폐했다는 혐의를 제기합니다. 


또, 성병 관리를 명목으로 미군 '위안부'의 몸에 가해졌던 통제·관리 속에서 강제적이고 과도한 약물 처치의 부당함과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인한 피해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군 '위안부' 성병 관리를 목적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미군 '위안부'들의 사진, 이름,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자치회, 보건소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수집한 바 있으며, '컨택'이나 '낙검'에 걸린 미군 '위안부'의 사진을 기지 내에 전시하는 등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공개했다고 합니다.


이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국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 대리인단 단장인 하주희 변호사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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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8일 '기지촌 미군 위안부 주한미군 대상 손해보상청구소송'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 연합뉴스

고미라 대표의 발제가 원고단을 중심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두 차례 진행하게 된 사회적 배경, 그를 바탕으로 본 소송의 역사적·사회적 의의를 살펴보았다면, 하주희 변호사의 발제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먼저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법적 한계 등을 살펴보고, 군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부대 내 군인들에게 사실상 성매매를 허용, 정당화한 것에서부터 군사 병력의 안전을 위해 성병 검진을 목적으로 미군 '위안부'에게 과도한 약물 투여 등 조치한 행위의 불법성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0a19aa90bb918.png1953년 8월 8일 서울 경무대에서 외무부장관 변영태와 미국의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본 조약에 가조인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대한민국정부


한미상호방호조약(1953)을 통해 맺어진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하는 조약,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 즉 SOFA 조약 중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아메리카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고용원 또는 그 군대에 파견 근무하는 대한민국의 증원군대(增員軍隊) 구성원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의 청구 및 그 밖에 같은 협정"이 주한미군민사법에 규정되어있습니다. 


쉽게 말해, 한미상호방호조약(1953)상 국가배상법이 주둔군에 의한 불법행위는 우선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고, 배상액에 대해 추후 해당 국가에 구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 건에 적용했을 때, 미국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법적 한계 속에서 2014년 손해배상소송에서 우선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하여 대한민국 정부에게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물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 2014년 판결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정부 뿐만 아니라 미국 또한 미군 '위안부'가 겪은 피해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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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한국여성대회 무대 화면에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축사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화면 우측 하단에는 실시간으로 수화통역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 한국여성민우회


2022년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이 인정되었고 미군 '위안부'에게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후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성평등과 여성 인권을 담당하는 성평등부 장관으로서 피해자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것이 최초의 입장입니다.


한편, 2022년 승소하였으나 해당 소송이 주로 대한민국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미군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앞서 이야기했었죠.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이제는 지난 해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 '위안부'에게 배상할 배상금을 미국에게 분담할 수 있도록, 즉 미국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소를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소송의 형식적인 피고는 대한민국이지만, 주한미군이 한국 정부와 손잡고
어떻게 '적극적으로' 기지촌에서의 성매매를 정당화, 조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규명하는 최초의 소송"


미군 당국은 기지촌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미군에게 업소 출입을 허용하며 성병 통제를 위해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클럽 업주들과 특별구역을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의미인데요.


또, 주한미군에 대한 인종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미군 '위안부'는 "성매매의 동등한 기회 보장"(???)을 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황당하고 분노스러운) 내용의 공식 문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서독에서 주둔하는 미군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포괄적 차별철폐조처, 흑인 병사 이익 대변을 위한 계열 사무소 설립 등 상식적인 해결방안을 시행한 것과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성병 관리를 위해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제로 격리·치료를 시행한 것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던 지점입니다. 페니실린 치료법은 미국에서 1953년 여성에 대한 격리치료가 모두 사라졌음에도, 미군은 70년대의 한국에서 미군 '위안부'에 대한 격리조치를 강력히 요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한국에서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던 일반적인 양보다 약 4~6배 가량에 달하는 480만 단위에서 600만 단위를 권장했다는 기록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일견 군사적 이익을 위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 것처럼 보이는 미군의 요구가 자국 내 성병 관리 제도나 통상적인 의료처치 기준과 다르게 미군 '위안부'를 대상으로 매우 차별적이고 폭력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된 <한국의 미군 '위안부', 진실을 향한 투쟁>을 한 번 살펴봐주세요. 


미군 '위안부'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부당한 폭력 피해에 제대로 된 책임을 미국 당국에 물을 수 있도록 한국여성민우회 또한 앞으로도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을 함께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