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여성건강[후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국회 밖 공청회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

2020-12-09
조회수 16494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 전날인 12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낙태죄에 관한 공청회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본회의 단 하루 전이라는 공청회의 개최 시점이 너무나 요식적이고 졸속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진술인으로 섭외된 8인의 '전문가' 중 6인이 임신중지 처벌법의 유지를 계속 주장해 온 인물들이었습니다.

 

 

규탄 성명 보러 가기 >>>"[성명]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형식적이고 편파적인 공청회를 규탄한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정부는 처벌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정 임신주수 이내에만 처벌을 면제해 주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법안을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공론의 장도 마련하지 못한 국회는 이제 와서 '전문가의 의견을 듣겠다'고 마련한 자리가 이런 지경이라니!

분노스럽고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의 운영을 위임받은 자들이 우리의 입장을 이토록 적극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낙태죄 폐지를 위해 목소리 높여 왔던 온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에 나서서, 국회 앞에서, 국회 안으로들어가서 으아악다뒤집어엎어버려!!!!!! 

...하고 분노를 들이밀어 줘도 시원찮을 상황인데요. 

코로나19 감염 확산 추세 때문에 방역수칙이 강화되고 있어 다수가 모이는 게 불가해져버린 답답한 현실ㅠㅠ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민우회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과 함께,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는온라인액션(내용보기 클릭)을 진행했고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국회 밖 공청회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 사회 : 이지수(변혁당 여성사업팀장), 박은주(한여성단체연합 활동가), 김지윤(녹색당 정책팀장), 강혜란(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 발언 :

1) 모낙폐 성명 낭독 :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 앎(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2) 발언 :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대표)

3) 발언 :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

3) 이후 자유 발언 총 28명 

 

긴급하게 마련된 기자회견임에도 28명의 시민들이 발언자로 참여해 주셨고, 시간관계상 발언을 못하고 현장에서 1인시위로 함께해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국회 안에서 '태아 생명 경시'와 '문란한 성 관계' 운운하는 말도 안되는 공청회가 진행되는 바로 그 때,

국회 앞에서는 낙태죄 폐지만이 유일한 답이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완성이 아닌 시작점이라는 분명한 외침이 울려퍼졌습니다. 

 

 

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진행된 본 기자회견은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되었습니다.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전체 기록영상보기 ▼▼▼

 

 

 

▼▼▼ 현장에서 자유발언으로 참여해주신 분들의발언문을 일부 공유합니다. ▼▼▼

 

 

1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2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3 지완

4 세민

5 신민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6 김규리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7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8 써니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9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

10 최예훈 (산부인과 의사 / 성적권리와재생산건강정의를위한센터 SHARE)

11 파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12 심지선 (고양파주여성민우회 대표)

13 조영숙 (수원여성회 대표)

14 이정수 (수원여성회 사무처장)

15 박들샘 

16 미래 (전국연대)

17 율 (행동하는 간호사회)

18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19 김보영 (성적권리와재생산건강정의를위한센터 SHARE)

20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

21 이아란 (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 대표)

22 스머프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23 서린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24 장캡틴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25 춘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26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27 이진심 (여성의당 전략기획실장)

28 정다빈 (여성의당 당원)

 


 

안소정, 신지예, 신민주, 김규리, 써니, 최예훈, 심지선, 조영숙, 이정수, 미래, 김보영, 이진심 (1, 2, 5, 6, 8, 10, 12, 13, 14, 16, 19, 27) 님은 발언문이 남아있지 않아요ㅠㅠ,

발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위 기록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3. 지완 님 

 

 

여전히 낙태가 죄로 존치하는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임기 여성입니다.

 

최근 있던 당근마켓의 일화를 다들 아시나요? 출산을 했으나 돌봄노동을 수행할 수 없어 아이를 상품으로 올렸다는 웃픈 그 이야기 말입니다. 이 일화를 들은 제 친구 엄마는 처음으로, 낙태죄는 폐지되어야겠구나,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형법상 죄로써 존재하는 임신중절은 여성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독실한 크리스찬 신자인 모부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당연히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아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막상 가임기 여성이 되자 그 교육은 점차 논쟁화 되었습니다. 입는것 먹는것 뿐 아니라 누구와 결혼 후에 어떤 가정을 꾸려야 하는지까지도 통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피임이 중요하다는 합의를 보고 임플라논 시술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갔습니다만, 교회를 다녀온 모부님의 발언은 바뀌어있었습니다. 딸의 성욕을 부추기는 건 아니냐, 성적 문란함을 키우는 건 아니냐,가 주 이유였습니다. 일단 낳아라, 내가 키워주겠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혹시나 강간, 성폭력을 당해도 일단우 낳아라, 낳아서 입양보내면 될 거 아니냐, 아빠는 당신의 딸에게 그렇게 조언했습니다. 일방적 통보 속에서 모체, 자궁만이 존재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꾸리고 결정하는 사람은, 여성은, 나는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부님과는 어떠한 논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일 수 없었으니까요.

 

다발로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몰래 집에 쟁여두었습니다. 주수가 너 낮아야 더 싸니까요. 혼자 병원에 가면 사후피임약도 잘 처방해주지 않으니까요. 혼자 돈을 모아 임플라논 시술을 받고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습니다. 모두가 저의 잘못이라고, 저의 책임이라 비난했습니다. 그 비난과 실질적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저도 여느 여성들 같이 그 모든 과정을 저 혼자 치뤄냈습니다.

 

제발 2021년에는 다른 세상에 살기를 바랍니다. 주체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꾸릴 수 있는 세상에서 다른 출발점을 모색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더이상 가임기 여성 1이 아니라,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 지완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4. 세민 님 

 

안녕하세요. 이번 완전한 낙태죄 폐지를 위한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여하게 된 세민입니다.

 

오늘 9시부터 이렇게 국회 앞에서 낙태죄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오는 길이 참 많이 화도 나고 우울하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저는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는 이 당연한 말을 2020년의 끝자락까지 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의 대립으로만 임신중절 합법화를 이야기하는 이 지긋지긋한 구도가 심지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국회에서 계속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 원통하고 답답합니다. 그래도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취한 변화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2019년 4월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결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현재 법사위에 올라온 정책안들 중에는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안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크고 작은 유무형의 변화들, 모두 낙태죄가 어떻게 여성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한하고 얼마나 여성을 위험으로 내모는가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에서 연대한 여성과 시민들의 힘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싶습니다. 오늘도 공청회를 앞두고 걱정되는 마음이 한가득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함께 연대해왔고 앞으로 낙태죄 없는 세상을 함께 그려 나갈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국회에서는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법사위 공청회가 진행됩니다. 공청회가 저희가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법사위 의원들의 구성이 참 미심쩍기 때문입니다. 낙태죄 전면 폐지 입장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 권인숙 의원이 트위터에 작성한 글로 그 내용을 대신해보겠습니다.

 

“이번 공청회는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진술인 8명 중 국민의힘에서 추천한 진술인 4명은 모두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며 여성의 임신중단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발언을 해 온 법조계, 의료계, 학계 전문가입니다. 이렇게 낙태죄 폐지를 전면 반대하는 진술인으로 추천하였다는 것은 원치 않은 임신, 출산으로부터 안전한 임신중단을 원하는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낙태죄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국민인식 변화에도 부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공청회가 자칫 국민여론을 왜곡하는 공론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임신중단 여성에 대한 처벌과 통제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낙태죄 폐지가 논의되어야 할 때입니다.”

법사위 인원 구성을 보고 낙태죄의 완전한 폐지에 대한 기대,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 시스템의 전면적 개정에 대한 기대가 더 큰 우려로 바뀐 순간인 거 같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임신 중절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것과 저것 사이에 주어지는 선택권의 개념이 아닙니다. 관련하여 저희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완전한 피임은 없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은 아주 긴 시간이 투여되는 신중해야 하는 결정이다. 어쩌면 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 걱정 말고 그냥 엄마에게 말해라. 다 해결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해결이란 불법 임신중절 시술을 알아 봐준다는 것이겠죠. 저는 저희 어머니께서 너무나 단호하고 명확하게 말씀해주셔서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는 것은 알았어도 그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 일화가 짚어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임신중절이라는 사건은 재생산 능력이 있는 여성에게 그다지 특이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이하기 보다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 수 있는 사실은 여성이 임신을 유지하고 이후에 아이가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상당히 인위적인 결정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이 결정에 따른 부담이 여성에게 과중하게 부여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 압니다. 낙태죄의 폐지만으로는 한참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형법에 낙태죄가 남아있는 현실에서는 저희 앞에 놓인 더 많은 과제들을 해나가기 너무나 어렵습니다. 국회는 저희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낙태죄의 유지로 고통 받는 삶과 억압받는 권리를 명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내십시오. 어떠한 이득도 권리도 보장할 수 없는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폐지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이 보장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하십시오.

 


 

7. 권수현 님(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2018년 8월 16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행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 429명의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 당시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가 낭독한 발언문의 전문)


40여 년 전, 제 어머니는 낙태(인공임신중절수술)를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가난이었습니다.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던 어머니는 아이 세 명을 키우기에는 집안형편이 녹록치 않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아버지와 의논해서 낙태를 결정했습니다.


경상도라는 보수적인 공간에서 태어났고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 제 어머니는 국가가 하는 말이라면, '다 무슨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국가가 하라고 하면 그에 잘 따르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더욱이 박정희 정권이 그래도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줬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떻게 박정희 정권 시절에 낙태를 했고, 할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는 "그 당시에는 모두가 낙태를 했다, 안 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며 "낙태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자보건법이 1973년에 제정됐으니 낙태는 이미 불법인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가 불법이 아니게 된 것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인구가 많다며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고, 1970년대 산아제한 정책 구호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습니다. 정부에서 둘만 낳으라고 했고, 이미 둘을 낳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낙태를 했고, 일반병원에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낙태를 해줬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낙태를 불법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낙태를 하는 것이 국가 정책을 잘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낙태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정의 빈곤이었지만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때문이었습니다. 국가가 법을 어기면서 낙태를 합법화했고 오히려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해 정부 정책을 따라 낙태를 한 저희 어머니가 범법자입니까? 법을 어기면서 정책을 시행한 국가가 범법자입니까? 낙태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입니다.


산아제한을 이유로 낙태를 합법화했던 국가가 이제는 인구증가를 이유로 낙태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낙태의 합법화와 불법화를 결정하는 이유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존중은커녕 아이에 대한 생명 존중도 없습니다. 그저 인구가 많아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해관계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태어난 생명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차디찬 바다 속에서, 뜨거운 유치원 차량 안에서, 지하철 선로에서, 대형마트 엘리베이터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아이들을 방치해놓고 있으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임신한 청소년의 학습권도 보장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성에게 '부도덕한 여성'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한부모 가정의 자녀에게 '비정상 가족'이라는 낙인을 씌우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에게 '책임감이 없다' 비난하고, 전업주부를 '맘충'이라 비난하는 것을 묵인·방조하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을 분리하지 마십시오. 우선순위를 매기지 마십시오. 여성의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이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의 신체를 단지 아이를 낳는 도구로 보고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국가의 시선부터 바꾸십시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들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 건강권과 안전권을 인정하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하십시오. 생명이 중요하다면, 여성들에게 낙태의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불평등이 세습화되고 있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각자도생의 불안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낙태 때문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구조와 정책이 아이를 낳지 않도록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남성들이 추진한 국가의 잘못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으로 인한 인구감소의 책임을 왜 여성들에게만 전가하려고 합니까?


국가는 구성원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하는 의무를 갖고 있지 통제하고 억압하는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가 지속적으로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국가가 원하는 목표 달성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십시오.

 


 

9. 황연주 님(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

 

먼저, 이 추운날씨에 또 거리에 서게 만든 국회 법사위를 규탄하며 이 자리에 함께 한 여성분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국민의 대표라는 분들께서 매번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논의를 이어가고 이 사회를 후퇴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이 싸움의 끝은 언제나 우리 여성들의 승리가 있을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서 이야기했듯이 저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고, 폭력을 일삼을 때 정해진 레파토리가 있었습니다. 집안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대로 던지고, 부수고, 엄마를 밀치고, 때리고, 그 옆에서 악을 쓰고 울며 하지 말라고 외치는 저와 동생에게, 아버지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니 엄마가 니 동생을 죽였어!”


그 소란 속에서 갑자기 왜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 폭력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고 본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임을 어린 나이였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 저는 ‘동생을 죽인’ 엄마에 대한 배신감이나 충격, 증오는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력을 일삼는 아빠란 인간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그래서?”라는 말이 맴돌았습니다. 엄마가 동생을 죽였다는데, 엄마가 죄인 같지는 않았습니다.


동생을 죽였다는, 엄마를 비난하고 탓하는 그 말을 엄마가 이혼하고 그 집에서 벗어날 때까지 들었습니다. 매번 폭력이 일어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었습니다.


고백하자면, 미친 소리 같겠지만, 저는 사실 그 말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한명은 이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 한명 때문에 내가 더 힘들어질 뻔 했는데 다행이다. 저는 그 실체 없는 ‘죽은 동생’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엄마와 제가 더 중요했습니다.


좀 더 커서 알고 보니 그것은 임신중지를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전 엄마를 더 두둔하게 되었습니다. 낙태에 대해 사회는 비윤리적인 프레임을 씌우며 낙태를 행한 여성을 죄인으로 몰아갔지만 저는 그것들을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생명은 소중하다. 낙태는 살인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낙태한 여성들을 살인자 취급하는데, 제가 본 살인자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란 인간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았습니다. 폭력이 없는 날이면 언제 다시 폭력이 시작될까 전전긍긍하고, 폭력이 있는 날이면 이 폭력은 언제쯤 끝이날까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은, 동네 이웃들은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경찰서에 전화를 걸거나, 엄마가 경찰을 불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온 경찰들은 동네 시끄러우니 잘 해결하라고 말만 했습니다. 죽겠다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는데, 살려주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엄마가 잘못했다며 엄마를 비난합니다.


이후에 엄마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엄마를 둘러싼 모든 환경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겠죠. 자세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최선이었을 거야. 엄마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거야. 그리고 죄책감을 내비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안도했습니다. 엄마는 선택을 한 거지, 죄를 지은 게 아니야.


돌이켜보면 이상합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어떤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오히려 비윤리적이라는 프레임에만 노출되어 있었을 때였음에도 어린 저는 엄마의 선택을 이해했습니다. 여성을 어떻게든 ‘죄인’으로 낙인 찍는 거, 그 낙인은 여성혐오적인 가부장제를 답습하고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매우 편하고 쉬운 억압 기제입니다. 제 아버지가 그랬듯, 폭력을 일삼는 죄인은 버젓이 떳떳하게 살아가며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구속하려듭니다. 폭력의 피해자는 어떤 선택을 했다고 해서 죄인 취급을 받습니다.


나랑 섹스는 해야 해. 하지만 넌 순결해야해. 난 피임 안할 거지만 너는 임신하면 안 돼. 난 책임 안질거지만, 넌 낙태하면 안 돼. 이 모든 게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려는 데서 오는 것들이고, 낙태죄의 존치는 국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승인한다는 것 승인한다는 것입니다. 국가로서 책임 방기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음에도, 정부와 국회는 헌재 판결을 역행하는 안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간담회는 졸속적이고 형식적이었고, 이 문제의 당사자인 여성의 의견은 듣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낙태죄 관련 법 개정안은 형법 처벌조항을 유지하고, 주수 제한을 하고, 상담과 숙려기간을 의무로 두고, 의사의 거부권까지 두면서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권리에는 양과 한도가 없습니다. 권리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그 권리를 어떤 기준에 따라 제한하고 허용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여성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은 채 결국 또 다시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여기에서 국가는 또 뒷짐지고 가부장제 권력을 영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낙태죄’의 처벌을 유지한 채 국가가 인정하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처벌을 면하게 하겠다는 것은 여성의 몸을 또 다시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입니다. 국가는 여성이 임신중지를 선택하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책무가 있지만, 그러한 책무는 지지 않은 채 또 다시 여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런 후퇴한 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걸 수 있는 마지막 기대는 국회에 있지만, 과연 기대를 걸 수 있는 국회인가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오늘 여기에 모인 이유가 이 국회의 무능함과 무책임함 때문입니다.


법사위 공청회가 진행 중입니다. 공청회에 전문가라고 증언하게 된 이들의 명단을 보니 기가 찹니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개헌에 반대한다며 성평등 개헌 논의 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차별금지법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며 말하고 다니는 이들이 낙태죄 전문가랍니다.


야당의 추천을 받은 네 명의 진술인 중 음선필이란 작자는 법대 교수라는 직위를 걸고 전문가 행세를 합니다. 동성애·동성혼 개헌반대국민연합이라는 곳에서 활동하며, 외국인과 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 하고 성평등이란 용어가 ‘동성애 합법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여성가족부의 젠더 정책도 반대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생명권은 태아에게만 존재하는 것인지, 태어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법사위 구성은 어떻습니까.

법사위원장 윤호중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성소수자 문제 등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들과 연합은 어렵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누군가의 인권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성의 재생산권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사안에 따라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목회자를 만나 “다수의원이 반대”한다며 “법안 막아내겠다” 약속을 했습니다. 또 윤한홍 의원은 ‘6주 미만’의 주수제한을 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낙태죄 관련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도 참여했습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20대 국회 법사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법무부와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양성평등교육 예산을 1억원으로 삭감하며, ‘성평등’이란 ‘용어’가 동성애·동성혼을 옹호한다며 예산 삭감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남성이 없다며 문제 삼은 전력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의 인권, 평등권조차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법사위 회의장에 앉아서 태아의 생명권을 이유로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낙태죄를 존치시키려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생명권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이들이 말하는 엄마와 태아가 모두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태어난 아이도 지키지 못하면서, 장애가 있다고, 성소수자라고, 온전히 나답게 살지 못하게 혐오를 일삼으면서 어떻게 생명권을 운운하며 여성의 권리를 박탁하려 하십니까?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낙태죄에 반대하고, 젠더 정책에 반대하면서 드는 근거가 건강한 가족과 사회를 파괴한답니다. 누구에게만 건강한 가족인지, 누구에게만 건강한 사회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적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여성과 남성이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정상적인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가부장제 사회의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법사위 외 나머지 국회 구성은 어떻습니까. 평균 55세 남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여성의 의견을 반영하고 법안을 발의해줄 의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낙태죄 폐지뿐만 아니라 강간죄 개정, 스토킹처벌법 제정 등 여성의 안전을 담보해줄 법안을 발의해줄 의원이 부족합니다. 남성 중심의 국회에게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안전을 맡겨야 하는 현실이 참담합니다.


여성의 안전뿐만 아닙니다. 이들이 정녕 국민의 생명을 중시하는지는 오늘 이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어떻습니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데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ILO 비준하라는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고 계십니까. 모두 국민의 생명과 관련 있는 법들입니다. 정작 태어날 아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들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무슨 생명권을 운운하십니까. 소중한 생명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그들의 명목이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당시 냈던 환영 성명 일부를 읽겠습니다.


“낙태죄를 통해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여성의 존엄한 삶을 위한 결정에 낙인을 찍고, 동시에 우생학적 사유를 들어 예외적 임신중지를 허용해 온 국가의 기만적인 행태는 평등한 개인들을 출산해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존재해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재단하며 모욕과 차별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모든 여성은 물론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 빈곤층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삶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해 왔다. 그렇기에 이번 헌재의 결정은 이러한 차별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고 또 그러해야 한다.

2012년 헌재의 합헌 결정 후 6년 만에 압도적인 다수로 이루어진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평등과 존엄을 향한 발걸음은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잘 나타낸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어받은 국회와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이제 성별, 장애, 연령, 인종,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경제적 상황, 지역적 조건, 혼인여부, 가족 상황, 국적, 이주 상태 등 그 어떤 사유에도 상관없이 성적 건강과 재생산권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형법, 모자보건법과 관련 정책의 개정은 물론 모든 차별적 구조를 바꾸는 제도적 장치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11. 파랑 님(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세상에 낙태하기 위해서 임신을 하는 여성은 없습니다.

낙태죄에 대해 전면적인 폐지로 이어지지 않는 한. 낙태로 인해 여성이 처벌받는 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문화된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라.

이 당연한 말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이 지겹습니다.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당시 지방에서 살고 있던 저는 당장이라도 헌법재판소 앞으로 뛰어가 판결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법이 여성을 위해서 움직이는구나, 시대가 바뀌었구나,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구나 싶어 기뻤습니다. 한 번도 여성의 목소리를 국가가 반영한다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판결의 내용을 반영한 개정 입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현재 시점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가 아닌 임신 주 수 제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금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좌절스럽기만 합니다.

 

한국의 형법상의 낙태죄는 여성의 낙태 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려는 방법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사실상 사문화된 법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또한, 낙태를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여성만 처벌하며, 임신중절 여부의 결정 최종 권한을 남성인 배우자에게 주는 것은 성차별적이고 불평등한 법령으로 여겨왔습니다.

 

한국의 낙태죄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이상한 법입니다. 1960년대 가족계획사업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인구증가억제책을 진행하였을 때에는 산아조절과 산아제한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가족계획을 주제로 하는 계몽 교육과 피임 보급이 진행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평균 출생 6명을 1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출생 건을 막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국민들은 피임 실패에 따른 보완적 방법으로 낙태의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이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도왔다는 여러 증거도 존재합니다.

1970년대 모자보건법을 제정하면서 특수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진행할 수 있게 했지만, 이는 낙태죄 관련 형법은 유지하면서 모자보건법을 통해 예외적 낙태를 허용한 구조였습니다. 이 시기 마련한 낙태죄 관련 규정은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6~70년대에는 낙태가 법으로는 불법이었으나,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은 낙태가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합계출산율 1.17명의 초저출산 현상이 시작되면서 2003년부터 국가는 출산장려정책이 시작하였고, 또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불법 낙태, 인공임신중절 시술 병원에 대한 검찰 고발이 진행되면서 ‘낙태’에 ‘태아의 생명’ 이 적극적으로 기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는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 계획을 발표하는 등 낙태 수술에 대해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임신 중지 수술비가 10배 이상 올랐고, 해외로 원정 임신 수술을 하러 가는 일도 나타났습니다. 2012년에는 수능시험이 끝난 뒤 수술을 받던 18세 여성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해당 병원의 시술 의사는 내원한 여성에게 현금 650만 원을 인공임신중절 시술 비용으로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말한 사건뿐만 아니라 이 시기 수많은 여성이 낙태죄로 인하여 법적, 의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임신 중지 수술로 인해 많이 죽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요.

이렇게 한국에서는 낙태를 통해서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가부장적인 구조로 통제해왔습니다. 인구 증가가 필요 없는 시기에는 만연하게 낙태 허용 사유를 이용하고, 인구증가가 필요한 시기에는 낙태죄를 적용하면서 말입니다.

이미 근대 시기에 우리는 우생학적 정책에 대해 국가가 개인의 재생산권을 통제하고, 인간을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누며, 공동체의 재생산을 관리하려 한, 결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역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생학이 잘못된 과학과 신념으로 비롯된 과거 학문일 뿐일까요? 이 우생학의 기획과 형법 제270조를 개정해 낙태를 엄중 처벌하고, 또 입법 예정에 있는 15~24주 이내에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죄가 적용되는지 아닌지 결정하겠다는 태도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요. 태아에게서 장애가 발견되었을 때와 같이 어떤 임신 중지는 가능하게 만들고, 어떤 출산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것의 의미와 과거 우생학적 논리와 어떤 점이 다른 것일까요?

또 예고 안에는 다른 의료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 서면동의서나 의사의 거부조항도 있습니다. 이 조항이 있는 한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여성은 임신 중지 시술을 거부하지 않는 의사, 거부하지 않는 부인과 병원을 찾아서 계속해서 연락하고 돌아다녀야 합니다. 기존 낙태죄가 죄였던 시기와 무엇이 달라지는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이 조항을 포함함으로 인해 여성의 임신 중지를 거부하는 의료인들에 대한 명분이 세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임신 중지는 의료행위입니다. 의사들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후기 임신 중지로 넘어가는 경우 불법 수술로 내몰려 법적 의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임신 14주 차는 실제적인 임신 3개월이 아닙니다. 임신 주 수는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합니다. 따라서 임신 14주는 한두 번 생리를 건너뛰고 생리를 왜 안 할까 의심이 들 때쯤의 시기입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기 쉽겠지만, 몸의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거나, 생리 불순이 심하고, 생리 주기가 불규칙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임신 14주 차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임신 14주 까지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낙태죄가 있는 사회에서 여성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낙태죄 폐지가 모든 여성의 행복을 책임져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낙태죄가 없더라도 여성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을 때, 이에 대해 기뻐하는 여성들을 두고 스텔싱을 하겠다는 악성댓글이 난무했습니다. 스텔싱은 남녀가 성관계 도중 상대방 동의 없이 콘돔 등 피임기구를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낙태죄가 사라졌으니 동의하지 않는 계획되지 않는 임신을 시키고, 낙태를 시키겠다는 태도였습니다.

낙태죄는 가부장적인 국가가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런 낙태죄가 사라진다고 하니 다른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는 자들은 스텔싱을 하며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괴롭히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같이 기존 국가와 사법체계가 가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태도가 모두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국가정책들을 점검하고, 여성을 포함한 모든 개인의 재생산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방향이 전환될 수 있도록 활동할 것입니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국가가 다른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태도 또한 지속해서 모니터링할 것입니다.

너무나도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에 있어 낙태죄 폐지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낙태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더 불행해질 것이라는 것은 확신합니다.

그러니 낙태죄 폐지는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그리고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상식입니다.

낙태죄를 유지하겠다는 국가의 자세는 참으로 시대착오적입니다. 국가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여성의 재생산권,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말하기 이전에 이미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아동과 또 정상 가족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낙태하기 위해서 임신을 하는 여성은 없습니다..

낙태죄에 대해 전면적인 폐지로 이어지지 않는 한. 낙태로 인해 여성이 처벌받는 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문화된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라.

 


 

15. 박들샘 님

 

안녕하세요. 인터넷에서 여성민우회의 글을 보고 '국회 앞 4시간 이어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저에게 수많은 질문을 낳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아이가 생긴다면 겸허히 최소 20년 자신의 인생을 육아에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인생만 바치면 몰라,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가능은 한 일일까요?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아이는 여자 혼자 만드나요? 근데 왜 처벌은 여성 혼자 받아야하나요? 저는 이부분에서 큰 의문이 듭니다 정말로 종교계에서 생명존중과 교리를 이유로 낙태죄유지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아버지도 처벌가능하게 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해야하는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정말 그들의 진정성이라도 인정해 줄 텐데 지금의 행태는 그다지... 그냥 여성을 처벌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근데 우리나라 인구 전체가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닌데 왜 종교계분들은 우리나라 국민 전체에게 영향 받는 법을 종교적 이유로 주무르려 하는 걸까요? 이것부터 너무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네요. 당신들 신자나 신경 쓰세요. 저는 그 신 안 믿으니까.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강해서 낙태를 하지 않겠다?'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종교를 믿기는 하지만 내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임신중단을 선택하겠다?'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다' 역시 개인의 선택과 자유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고 출산육아보다 중요한 것이 있어 임신중단 선택하겠다.' 당연히 개인의 선택과 자유입니다. 이게 어려운가요?

또 제가 인터넷에서 본 가당치도 않은 글들이 있었는데요. '낙태하지 말고 피임하면 되지 않느냐'입니다 학교 성교육시간에 잤나요? 100% 피임법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포궁을 적출하지 않는 한? 가장 흔한 피임법인 콘돔의 피임확률은 80~85%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흔한 경구피임약도 확률이 100%는 아닙니다. 게다가 여성의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2주 이상 꾸준히 섭취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사실을 몰랐나요? 이 사실을 몰랐을 정도로 여성의 몸과 출산에 관심이 없다면 임신중단 논의에 왈가왈부 할 자격이 있을까요?

 


 

17. 율 님(행동하는 간호사회)

 

안녕하세요 행동하는간호사회 율입니다. 작년에 헌재 앞에서 간호 학생으로서 낙태죄 완전 폐지의 발언을 했는데,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발언대 앞에서 서있다는 게 마음이 착잡합니다.

 

오늘은 저 개인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스무살 초반, 자신의 성욕을 이유로 피임을 하지 않았던 사람 때문에 극심한 임신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저는 임신을 원치 않았지만,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모든 책임은 제가 져야만 했습니다. 임신 중절을 하고 싶어도 그 법적인 책임 또한 제가 져야만 했습니다. 피임을 실천하지 않았던 것은 그 사람인데 모든 처벌과 두려움과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사람은 저였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낙태죄 존치가 만들어낸 모습입니다. 임신 중절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여성 우리 모두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여성들은 너무도 답답합니다. 임신과 출산 앞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바로 여성 자신이어야 하며, 실제로 가장 숙고하는 당사자는 여성의 파트너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공청회에 오신 국회의원 분들은 여성의 결정을 신뢰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으로 태어날 생명이 귀중하십니까. 이미 태어난 생명도 귀중합니다. 이미 태어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모든 생명이 소중한데 왜 이미 태어난 이들의 삶은 고려되지 않는 것입니까.

 

그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낙태죄는 정상 가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낙태는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말입니다. 낙태가 남용될 것이라 우려하시는 분에게는 세상이 마치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도화지 같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성한 태아, 혹은 그렇지 않은 세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이사이에는 촘촘하게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택해야 했던 사람부터 낙태를 강제당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지금 이 앞에서도 제발 흑과 백이 아닌 다양한 세상을 봐달라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태아의 생명 여부를 떠나서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논의가 지체되지 않을 수 있도록 공청회에 오신 국회의원 분들은 현실을 직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18. 이서영 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안녕하십니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 간사 이서영이라고 합니다.

낙태가 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많습니다.

의학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해도 낙태는 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회의원들이 이것을 몰라서 낙태죄를 존속하는데 침묵하는 것은 물론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국회의 근무 태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뭐 하셨습니까? 20일 남짓 남았는데 공청회를 여는 것이 법사위가 할 일입니까? 그것도 이렇게 편파적인 인원구성은 기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는 국민들 앞에서 선출직인 국회가, 낙태죄 같은 오래된 악법을 존치시킨다는 것은 게으른 겁니다. 그리고 선출직이 게으른 건 나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누구입니까? 지금의 국면에서 가장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다름아닌 국회입니다. 낙태죄는 정치적 득실에 따라서 취하거나 버릴 수 있는 카드가 아닙니다. 국회가 낙태를 그저 '이해당사자'가 많아서 골치아픈 문제로 여기거나 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문제로 치부하는 동안 죽어가는 여성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체 하지 마십시오.

 

낙태가 죄라서 낙태시술은 음성화되고,

낙태가 죄라서 여성들은 그늘로 숨어든 병원과 약을 찾아 헤매야 합니다.

낙태가 죄라서, 적절한 의료적 시기를 놓치고,

낙태가 죄라서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비를 개인적으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낙태가 죄니까 의료행위의 질 관리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건강 위해는 고스란히 임신중지가 필요한 몸들에게 부과됩니다.

낙태가 범죄면 이런 고통은 다시 세상에 꺼내어지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증언해 왔고 낙태죄 헌법 불합치까지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국회는 뭘 하고 있었습니까?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낙태죄로 인해 죄인이 되는 사람이 없게 한 다음에도 여전히 경제적, 사회적, 구조적 불평등들이 건강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국회는 이런 장벽을 없애는 일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법사위가 편파적인 공청회에 시간을 낭비하고 정부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20. 신지혜 님(기본소득당 대표)

 

방금 서울시장 예비후보 등록기자회견을 마치고 첫 일정으로 이 곳에 왔는데요. 추운 날씨에 낙태죄 완전 폐지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러 와주신 많은 여성분들께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10월 정부가 낙태죄를 ‘존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어느새 두 달이나 흘렀습니다. 두 달 동안 기본소득당은 낙태죄 폐지를 원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정부와 국회에 똑바로 전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뒤집어버린 정부 입장이 발표되자마자,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페미니스트 600명의 목소리를 모아서 전달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살인자’라며 맞불집회를 하던 현장에서 분노를 담아 ‘낙태죄 폐지’를 힘껏 외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힘에서 남성의원들이 ‘낙태죄 존속’ 법안을 입법하겠다고 밝혔을 때 5000명의 의견을 모아 법안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낙태죄를 오롯이 폐지해야한다고 온힘을 다해 외치고 있는데, 국회와 정부는 두 달째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오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낙태죄’ 공청회를 연다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아시겠지만, 공청회 진술인 중 대부분은 ‘낙태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있는 여성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열리는 공청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공청회는 말 그대로 ‘공개적으로 의견을 청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입법절차에 반영하고자 열리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법사위 국회의원들은 정작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하는 공청회를 열고서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도 정도껏입니다. 법사위 국회의원들은 오늘 공청회가 아니라 지금 여기, 영하의 추위 속에서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 낙태죄 폐지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추미애가 잘못이다, 윤석열이 잘못이다, 몇 달째 정쟁으로 다투면서도 낙태죄 유지에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여야를 보며, 끔찍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성교육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강의하는 대신 영상을 틀어줬습니다. 영상은 45분 수업시간을 꽉 채우지 못할 정도로 길진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내용이 생생합니다. 흔히 낙태라고 부르는 임신중절 수술 장면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생생한 건 수술 장면을 보여준 탓도 있지만, 그 영상이 강조했던 메시지 탓도 있었습니다. 영상은 임신중절 수술하기 싫으면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시기 학창시절을 보냈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한 피임방법은 왜 알려주지 않는지, 그리고 임신은 쌍방의 책임인데 왜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요하는지 말입니다. 처음으로 낙태한 여성이 처벌받는다는 것을 안 것은 대학에 와서였습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기혼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문란한 여성이 낙태를 할 것이라는 편견은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삭제하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이 돼서야, 제가 보았던 임신중절 영상 너머에 있었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 뒤에 있었던 여성들의 처절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4월 11일, 저 역시 헌법재판소 앞에 갔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이어말하기에 함께하고 계신 많은 분들도 그 현장에 함께하셨을 것 같은데요. 폴리스 라인을 두고 두 세계로 나뉘어있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납니다. 한쪽에선 낙태죄 폐지를, 다른 쪽에선 낙태죄 유지를 외쳤었습니다. 낙태죄를 유지하고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살인자 취급했습니다. 중학교 때 봤던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사진을 들고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을 대한민국을 망하게 할 사람들이라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낙태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으면서 낙태죄 폐지를 옹호한다며 혼을 냈습니다.

 

그 날 환호를 지른 건 낙태죄 폐지를 외쳤던 여성들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헌법불일치로 판결했습니다. 66년 만에 드디어 임신하고 출산해야 하는 몸이 아닌 여성의 몸 그 자체를 존중하는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상은 차갑게 빗나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낙태죄를 역사 속으로 없애버리는 대신 그대로 두는 선택을 했습니다. 여성에게는 자기 몸에 대한 결정보다 처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의사에게는 진료거부권을 행사하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낙태죄는 66년 만에 역사 속에 사라지는 대신 더 잔인하게 부활하려 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성들을 경악하게 했던 가임기 지도처럼 말입니다.

 

전국에 가임기 여성이 몇 명이나 사는지 지도로 만들었던 가임기 지도와 낙태죄는 같은 맥락 위에 있습니다.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서가 아닌 출산하는 몸이기 때문에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전제 말입니다.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은 출산을 의무로 여길 때만 가능합니다. 의무를 져버리는 것은 범죄가 됩니다. 범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들키지 않아야 하고, 여성은 계속 위험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뿐입니다.

 

정부가 보장해야 하는 것은 임신중절에 대한 의사의 진료거부권이 아닙니다. 정부는 여성의 재생산 권리, 원치 않는 임신이라면 안전한 의료행위로써 임신중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합니다. 의사에게 의료행위 임신중절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졌는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모자보건법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중입니다. 이제 국회에서도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여성들이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낙태죄’ 하나만은 아닙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고 통제하려는 남성 중심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낙태죄 폐지 목소리는 국가가 여성을 출산하는 몸으로써 통제하려는 시도를 2020년에는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빼앗는 대신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보장하며, 여성의 삶에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가 여전히 여성을 그 시작이 바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87년생인 저는 학교에서 낙태를 ‘죄’라고 배웠고, ‘순결해야 한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듣고 자랐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온전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여성인권의 미래는 낙태죄 폐지 이후에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우리는 다시 상기해야 합니다.

“자기결정권에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

 

헌법재판소의 위 판결문 내용은 여성의 몸과 여성의 삶에 가장 최선의 결정은 오직 여성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성이 인공임신중지를 결정할 때 더이상 국가의 허락은 필요 없습니다.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것은 여성들이 건강한 의료행위로써 인공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게 할 권리입니다.

 

여성은 정부와 국회의 여성에 대한 통제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이미 수많은 여성들은 내 몸에 대해 결정할 때, 국가의 허락은 필요 없고, 국가가 나를 처벌할 단 하나의 이유도 없다는 것에 대해 의견을 냈습니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낙태죄 폐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장이 될 것입니다.

 

낙태죄 폐지는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인권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낙태죄 폐지는 내 몸은 내 것이라는 당연한 말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이제 여성들의 힘으로 이미 사회에서 죽어있는 낙태죄를 아예 법전에서 삭제합시다.

 

감사합니다.

 


 

21. 이아란 님(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 대표)

 

반갑습니다. 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에서 대표로 일하고 있는 청년진보당 당원 이아란이라고 합니다. 우선 추운 날씨에도 함께 해주시고 발언 자리 열어주신 모낙페 선생님들과 참여자 여러분들께 따뜻한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낙태죄 폐지라는 역사의 진보를 눈앞에 두어야 할 시기에,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정하게 웃으며 보내야 할 연말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분노와 한탄을 쏟아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정부안을 받아들고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그래서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다는 건데?' 였습니다. 주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임신중절 자체를 규제하는 것도, 낙태라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여성의 몸과 결정에 재갈을 물리는 것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사회경제적 이유로 임신중절 시 상담의무와 숙려기간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해야 만족하실 지 정녕 모르겠습니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낙태죄를 어떻게든 존속시켜보려는 정부에게 대선과 집권 초반에 약속했던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약속조차 남아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숙려기간과 상담 동안 여성을 어떻게든 붙들어 매는 것이, 시술과 치료의 골든타임을 엄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단 말입니까?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의료행위 거부 또한 경악할 문제입니다. 이 모든 상담과 숙려절차를 다 지나 의료행위에 들어서는 순간, 의료인이 거부하면 또 다시 찾으러 다녀야 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여성을 이리로 저리로 빙빙 돌리시려는 겁니까? 여성청소년은 병원진료와 숙려기간과 상담의무와 의료인의 거부 속에서 도대체 뭘 어떻게 임신중절을 하라는 것입니까?

 

임신중절의 주수를 제한하는 이 법이, 성평등자문위도 무용지물로 만들어가며 강행한 이 법이, 소위 '답정너' 식으로 이미 만들어져 밀어붙이는 이 법이, 여성의 생존권과 자기결정권을 여전히 무시하는 이 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과 몸이 여전히 처벌받는 이 법이 낙태죄 폐지라며 역사적 진보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꼴은 전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임시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오늘, 국회 공청위에서는 6:2라는 희대의 비율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낙태죄 존치 측이 과반수를 넘는 기울어진 공청회입니다. 국무조정실 문건에서 나온 내용 그대로, 답은 정해져있으니 여성은 따라오라는 정부와 국회의 선전포고입니까? 여성들이 아무리 말해도 우리는 낙태죄 존치로 갈테니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인겁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낙태죄는 위헌으로 판결이 났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시대의 흐름과 위헌 판결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답은 낙태죄 전면폐지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임신테스트기를 붙잡고 제발 비임신으로 나와달라고 기도하던 심정으로 절실히 촉구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시고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해답은 오로지 낙태죄 전면폐지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낙태죄 존치로 뭉개고 가겠다면 날다의 활동가들을 포함하여 여성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세상의 절반이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끝끝내 보여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2. 스머프 님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스머프입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2012년의 한 순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는 지금만큼 낙태죄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때가 아니었습니다. 제 주변에서 낙태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낙태죄’로 처벌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저에게 당시 헌재의 결정은 생소하게만 다가왔습니다. 그저 모든 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실효성도 없어 보이는 법을 굳이 유지하겠다고 결정한 헌재가 참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임신중지 수술을 받던 10대 여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당시의 언론들이 이 일을 ‘10대 여성의 일탈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 정도로 묘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낙태죄의 존재가 문제였다’는 시각으로 보도한 뉴스를 본 기억은 없습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어쩌다 일이 저렇게 되었을까. 참으로 불운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던 건 보다 꼼꼼하게 뉴스를 읽고 난 후였습니다. 사망한 여성의 부모들이 임신중지 수술을 위해 비밀상담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병원을 직접 수소문 했다면 임신중지를 만류한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을 찾기도 전에 상담 사실이 새어나갈지를 가장 먼저 걱정했다니 너무 이상했습니다. 제가 만일 누군가를 위해 병원을 수소문 했다면 그 병원에 실력 있는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인지, 의료사고가 있지는 않았는지, 과잉진료를 하거나 몸에 무리가 가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그리고 의사는 친절한지를 가장 먼저 물었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계속 생각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임신중지는 처벌되는구나. 낙태죄는 아직 존재하는구나. 임신중지는 단지 의료행위가 아니라 처벌이 되고 그래서 금기시되는 일로 여겨지고 있구나. 그래서 비밀유지가 되는지를 가장 먼저 물었구나.

심장이 주저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낙태죄’가 없었다면 그 사람은 가장 안전하고 가장 최선인 병원을 찾았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낙태죄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법은 사람을 벼랑으로 내몰고 위험에 내던지는 그런 법이었습니다.

 

처벌받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위험에 내몰리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드러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SNS에서 ‘나는낙태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유된 많은 경험들은 ‘낙태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모멸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을 겪는지를 드러냈습니다. 많은 경우 임신중지를 선택한 사람들은 암암리에 병원을 찾고 찾았으며 의료행위 과정에 대해 제대로 질문조차 하지 못 하고 등을 떠밀리듯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벌 받을지도 모를 임신중지를 부탁하는 사람은 의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나라는 임신중지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기는커녕 원치 않는 임신은 중단할 수 있다는 것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에 많은 경우 여성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병원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굳이 임신중지를 해야겠냐는 의사, 잘못을 했으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는 의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어떤 의사가 병원을 찾은 사람에게 이렇게 오만하고 굴욕적이며 비인간적인 요구를 합니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습니까.

작년 4월 10일 저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를 위한 133일 간의 1인 시위의 마지막 날에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1일에는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역사적인 선고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긴 시간 이어져온 싸움 끝에 이제는 낙태죄가 사라진 세상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겨울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시 거리에 섰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향해 한발 걸어간 사회가 다시 뒷걸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공정과 정의를 실현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청와대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낙태죄를 존치하고 14주의 허용기간을 두겠다고 했습니다. 24주까지는 예외적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한 사유와 조건을 늘렸기에 최선의 법안을 마련한 셈이라며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것이 부처 간 논의의 결과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했던, 그런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서라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순진한 믿음이고 희망이었습니다. 입법안은 사람들을 비웃듯 국무회의에서 신속하게 통과되었고 결국 국회로 전달되었습니다.

당시 정책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낙태죄 관련 입법 개선 절차’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최선이요? 개선이요? 대한민국 정부에 말합니다. 기만하지 마십시오. 오만 떨지 마십시오. 말장난 하지 마십시오. ‘낙태죄’가 폐지되는 것 외에 그 어떤 개선도 최선도 없습니다. 14주의 주수제한, 예외적 허용사유 추가, 상담과 숙려기간 의무화가 실효성도 없고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나며 오히려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 명백함은 이미 많은 분들이 훌륭히 비판해주셨기에 제가 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점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더 많은 예외를 만든다고 해도, 국가가 나서서 어떤 임신중지는 처벌을 받을 일이고 어떤 임신중지는 그렇지 않다고 구분하는 현실은 결국 여전하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애매하게 나눠진 그 기준 속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처벌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그래서 위험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해야만 하게 될 것입니다.

 

임신중지, 낙태, 이런 단어들을 잠시 지우고 이야기 생각해봅시다.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단할 수도 있음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 도리어 그런 일이 처벌받아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상황, 이런 위험 때문에 배우자나 파트너로부터 고발의 빌미가 잡히는 상황, 그리고 최선의 의료적 선택을 하고 의사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으며 의료행위 과정을 통제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 몸에 대한 기본권이 박탈되도록 법이 조장하고 국가가 방조하는 상황. 한 국가 내에서 이런 일이 집단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를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이것은 대규모의 인권 탄압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기본권 박탈입니다. 집단적인 억압이자 국가 폭력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지금 무슨 일이 저질러지고 있는지 알겠습니까.

국회로 넘어온 정부의 법안은 타협조차도 아닌 퇴행입니다. 사실 타협이나 협상조차도 해선 안 됩니다. 임신중지는 여성의 기본권입니다. 기본권은 원칙에 따라 관철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임신중단은 괜찮고 어떤 임신중단은 그렇지 않다는 법률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임신중지는 안전할 권리, 신체에 관한 권리, 헌법상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기에 결코 처벌할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선언이 바로 ‘낙태죄 폐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저는 남성이며 동성애자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제가 낙태죄와는 가장 무관한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이어져온 낙태죄 폐지 집회에 함께하며 그런 저에게 ‘낙태죄’란 어떤 존재인가를 늘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는 낙태죄 폐지 운동의 의미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행진하며 힘을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여성주의를 배웠던 공동체의 사람들은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시선을 통해 논의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페미니즘적인 사유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하고 고민하며 그 일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왜 임신중지를 처벌할까요? 모든 형벌은 인신을 구속하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집행됩니다. 때문에 사회는 결코 아무 행위나 형벌로 규제하지 않습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등 우리가 이 사회에 살며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거나 지켜야만 하는 규칙을 어겼을 때에 형벌이 가해집니다. 즉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임신중지도 바로 그런 일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임신중지를 처벌한다는 말을 거꾸로 뒤집어봅시다. 임신을 하면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여성은 반드시 출산을 해야만 하는 존재,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다시 반복하자면 낙태죄의 존재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한다는 성역할에서 벗어날 때, 그런 일을 처벌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젠더는 시스템이며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여러 요소가 맞물려야만 작동할 수 있다고 배워왔습니다. 여성에게 ‘어머니’라는 성역할이 강요되기 위해선 무게와 성격이 분명 다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남성의 ‘아버지’ 성역할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낳고 기르라는 성역할을 강요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반드시 이성애에 기반 한 결합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족안의 누군가는 ‘딸’로서 누군가는 ‘아들’로서 따라야 할 역할을 주입받으며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만들어집니다. 사회는 이런 삶에 정상성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몰거나 아예 없는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전통적인 성역할과 이성애 중심주의,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유롭게 존재하거나 평등하게 존중 받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낙태죄를 만들어 낸 시스템이자 동시에 낙태죄로 인해 유지가 가능한 사회체제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에 상대방의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지정된 성별을 거부하고 횡단하고자 하는 사람 모두가 그런 사회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낙태죄 폐지는 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성소수자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성애자로 살고 결혼을 했지만 강요되는 성역할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맞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니 그런 욕구가 없다고 해도 ‘정상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굳이 부부라는 형식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한 형식의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여자답게, 남자답게, 여성은 이렇게 살아야한다, 때가 되면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야 한다, 이런 말들에 지친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제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이야기 드리며 발언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낙태죄의 존재는 분명 여성에 대한 집단적인 인권탄압이자 억압입니다. 낙태죄는 여성의 삶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낙태죄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낙태죄는 여자들의 문제지’, ‘나는 낙태죄와 상관없어’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 아니요 이것은 당신들도 연관된 문제이며 분명 상관이 있는 일입니다. 또한 낙태죄의 유지가 가능하고 또한 낙태죄로 존재가 가능한 지금의 사회는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순응하지 않고 ‘아니요, 더 이상 이런 식의 세상을 유지하는데 동참하지 않겠습니다’라며 거부할 때 세상이 바뀝니다. 그러니 요구합니다. 방관하지 마십시오. 물러나 있지 마십시오.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동시에 이제는 정말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주장해주십시오. 모두를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말입니다.

물론 낙태죄를 폐지한다고 성역할이나 이성애 중심주의, 성차별과 성별규범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낙태죄 폐지는 중간과정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이제 시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낙태죄 하나조차 제대로 끝장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해방과 진보가 가능하겠습니까. 낙태죄조차 폐지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회를 어떻게 지금보다 더욱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낙태죄 폐지는 움직이길 거부해온 사회가 스스로에게 채워놓은 족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족쇄를 직접 박살낼 것입니다. 저는 국회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제라도 그 과정에 함께하기를 지금도 너무 늦은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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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린 님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안녕하세요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린입니다. 대학생이자 기후활동가 이기도합니다.

 

오늘 발언준비하면서 17년부터 대학에서 친구들과 함께 참여 했던 활동들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피켓을 만들고, 기자회견에 나가고, 퍼포먼스와 검은시위에 참여했던 사진들이 참 많았습니다. 잠시 추억을 회상하면서 열심히 투쟁해왔구나 한편으로 생각했습니다. 2017년 청원 23만명, 2017년 검은시위, 2018년 9월 269명 피켓퍼포먼스, 19년 #해냇다_낙태죄폐지 헌법불합치 선고 그리고 곧 2020년이 지납니다. 우리는 정말 가열차게 우리의 임신중지권을 위해 재생산권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그렇게 가열차게 싸워서 저희가 얻고자 했던 것은 이것들이 아닙니다. 낙태라는 처벌의 시대를 끝장내고, 낙태죄라는 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길 바란 것이었지. 몇 주는 합법이고, 또 몇 주는 불법이 되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말이 되면서 부모님이 가입해주신 사보험이 있어서 이번년도 산부인과 진료를 본 처방전을 뽑으러 산부인과에 들렸습니다. 산부인과 진료는 국가보험처리도 되지 않지요. 사보험은 다른 진료보다 제출해야하는 서류들도 더 많고 까다롭지만 산부인과 진료를 보험처리를 해줍니다. 하지만 저는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그 처방전은 따로 뽑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후피임약 처방은 진료비와 약값이 다른 진료보다 비싸도 사보험도 국가에서도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습니다. 100퍼센트 개인부담이지요. 이 사례만 봐도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생각하는 수준이 보입니다. 임신중지를 얼마나 국가에서 통제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언니들을 보면 낙태경험이 많고 사후피임약을 처방받는 것 조차 창피해합니다. 그걸 숨기고 싶어합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감기 걸릴 때 집 앞 어느 병원에서도 처방전을 받고 진료를 받는 것처럼 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시작입니다. 형법상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다시금 입법안을 마련하고, 처벌이 아닌 권리를, 허락도 제한도 필요 없습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세대로 불리며 ‘낙태죄’ 폐지의 시발점인 ‘검은 시위’에 참여했던 우리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은 ‘낙태죄’가 전면 폐지되는 그날까지 함께 싸워 나갈 것입니다. 변혁당학생위원회도 그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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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장캡틴 님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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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가 100명 태어날 때 남아는 116 (백열여섯)명이 태어났던, 여아감별낙태가 절정에 달했던 악명 높은 해에 운 좋게 태어날 수 있어서 여기서 이렇게 발언합니다.

 

30여년 전 젠더사이드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저는 무사히 초등학생이 되었고, 5학년 토론 수업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낙태에 관한 찬성 VS 반대 토론이었습니다.

 

토론에 앞서서는 교육 영상이랍시고 다들 본 적이 있을, 앞서도 많이 말씀해주셨던 영상을 시청합니다.

 

이제는 조작 영상이라는 진실이 밝혀진, 그 시절 흔히 낙태 비디오라 불렸던 (소리 없는 비명 The Silent Scream)영상입니다. 어쩌면 그 수업은 토론 결과에 상관없이 목적이 정해져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들은 토론에 충실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낙태 찬성 편에 앉아서 목에 핏대를 세웠습니다. 당시 재생산권은커녕, 자기결정권이 뭔지 주체적인 성적 권리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은 당연히 없었지만 태어날 아기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원치 않게 임신하게 된 여성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은 5학년의 상식과 감수성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이 곧 나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사실 20년 전 이 토론의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토론이 한창 불붙은 막판에 결국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면서“자기 뱃속의 아이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낙태를 해야만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하며 울며불며 하던 11살의 제 모습 때문입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태아를 죽이는 낙태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상황이 불가피해 낙태를 선택했더라도, 낙태를 한 여성은 마음에 짐을 얹고,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11살의 여자 아이는 그 죄책감,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감정이입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여성에게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게 억울해서도 아니였고, 국가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취급하는 게 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임신중절을 받기로 결정하고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여성의 그 심정이 안타깝고 가여워서 울었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여기 서있는 저는 더이상 죄책감에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느껴야 할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라 안전하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는 안도감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2

비록 학교나 사회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이렇게 소리치는 이유는 단지, 여성도 시민 구성원의 한 명으로 온당히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고자 위함입니다.

 

여성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여성들은 이미 너무나 합당하고 논리적으로 낙태죄 이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단지 이 굳건한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도구로만 여기는 국가가 귀를 닫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제대로 알고, 얘기해왔습니다.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낙태의 권리가 여성의 삶 전반을 규정하는 중요한 권리이자, 여성 시민이 평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지, 그 자체로 종착점은 아니라는 것.

 

숙련된 의료진에 의해 권장되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받는다면, 임신중절 자체는 매우 간단한 수술이고, 다음 임신이나 전반적인 건강 상태에 위험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

 

낙태죄가 남성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경제적 통제를 위한 도구로써 활용되어 왔으며, 기독교가 그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마련하고 부응해왔다는 것.

 

한국의 낙태 범죄화 낙인은 기본권적으로 국가에 요구해야 하는 기초적 재생산 서비스조차 정당하게 제공받을 수 없게 하고,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논의를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여성과 개인의 결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성혐오이자 국가 폭력의 발로라는 것.

 

작년 4월 11일, ‘다시 만난 세계’와 ‘아모르파티’가 울려 퍼지던 안국역의 저녁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이기는 경험을 함께했습니다.

 

1953년 낙태죄가 시작된 이래, 66년의 역사를 끌고 온 낙태죄...그 악법의 폐지를 위한 노력의 결실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벅찼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이렇게 쉽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낙태죄를 형법에 부활시켰습니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형법을! 주수 기한, 사회경제적 사유, 상담 여부 등을 들먹이며 교묘하게 낙태죄를 부활시켰습니다. 아니, 교묘한 방식이었다면 오히려 이렇게 분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꺼내놓은 개정안은 여성을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성과 재생산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며, 여전히 여성의 몸을 억압하며 통제하겠다는 속이 너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기만입니다.

 

국가는 이렇게 게으른 방식으로 다시 낙태죄라는 카드를 손에 쥐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낙태죄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억압할 것입니다.

국가는 낙태죄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규범적이고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를 강제할 것입니다.

국가는 낙태죄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지속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폭력을 자행할 것입니다.

국가는 낙태죄라는 카드를 손에 쥐고, 계속해서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3

다음 세대는 교실 안에서 낙태 찬반 토론이 아닌,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유림들은 갓을 쓴 채로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할 거라고 소리쳤지만 지금은 한 때 유행했던 유머처럼 인터넷상을 돌아다니는 호주제처럼, 낙태죄도 구시대적인 발상의 지나간 역사로만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마구잡이로 망쳐 놓은 세상에서 기후 위기에서부터 약자 혐오까지.. 앞으로도 계속 싸우며 이곳에 살아남아야 할 다음 세대에게 낙태죄라는 유산까지 건네주고 싶지 않습니다.

 

되도 않는 조건이나 숫자로 장난치지 말고, 더이상 여성들을 기만하지 말고 국회는 낙태죄를 전면 폐지 하십시오. 이제는 다음 칸으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낙태죄 폐지 이후를, 상상해야 합니다.

 

4

정부는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실제적 조화”를 이루는 방향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임신중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분법으로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관해서는 <배틀그라운드> 속 윤정원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여 읽으며 저의 발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배틀그라운드> 78페이지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중지 / 윤정원

 

#모두에게_건강을_추구할_권리를

“생명권 대 선택권의 이분법으로 임신중지 이슈를 바라보기는 쉽다. 그리고 생명은 너무나도 강력한 가치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 답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임신이 일어나고 있는 여성의 몸, 삶, 시간은, 그리고 인생의 어떤 시점, 어떤 환경에 있는지는 그 이분법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중략)...

“출산이든 임신중절이든, 그것이 진정 여성의 오롯한 선택이었던 적이 있는가. 낙태 근절 비디오가 아니라 월경주기와 가임기 계산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약국에서 약사와 눈 마주치며 “피임약 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고, 파트너의 성기에 내가 좋아하는 향의 콘돔을 끼울 수 있고, 임신했다고 학교에서 퇴학당하지 않고,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출산을 지원받을 수 있고, 임신중절과 출산에 똑같이 건강보험을 적용 받고, 무엇을 선택하든 소독된 진료대 위에 누워 경험 있는 의료진에 의해 안전하고 적절한 시술을 받을 수 있고, 아이 걱정 없이 직장에 다닐 수 있고, 내 아이가 엄마만 있는지 부모가 다 있는지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때, 우리는 출산을 ‘선택’할지 임신중지를 ‘선택’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적어도 현재를 ‘살고’ 있는 순간순간의 선택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건강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안전한 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나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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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춘 님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저는 정부가 지나치게 강조하며 얘기해왔던 30대 가임기 여성입니다. 현재 남성애인과 거주 중이며 어떤 누군가는 그런 저를 문란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저를 보는 시선과 비슷합니다. 현재 상태에서 제가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신체적으로는 국가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가임기 여성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원하는 ‘정상성’과는 살짝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이성애를 하고 임신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긴 했는데 혼인 신고 항목이 누락되었군요. 국가의 마음에 쏙 드는 일은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출생률에 그렇게나 집착하면서도 국가가 허락한 정상가족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반기지 않습니다. 아니 차갑고 냉담합니다. 장애도 있어선 안 되고, 너무 가난해서도 안 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문란한 동거 커플이 감히 아기를 가지다니... 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국가의 태도에 반발심만 커졌습니다. 그들이 설정해 놓은 정상성에 질려버리는 바람에, 결혼하라는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사는 불효 k장녀가 되었습니다. 다른 문제는 그저 덮어두고 여자로 태어났다면 응당 거쳐야 할 관문인 숭고한 임신 경험이라는 말로 퉁쳐 버리는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밖에 개인적인 신념으로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여성을 벌줌으로서 끌고 가려는 정책방향성으로 저 같은 여성 개인이 출산에 대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정부는 똑똑히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국가는 아십시오. 놀랍게도 여성은 생각할 줄도 알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 원치 않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묻고 싶습니다. 과거에 낙태한 셋째 아이가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는 저희 어머니도 처벌 대상으로 보이시는지요. 젊은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것을 아니꼬워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건 저만의 기분 탓일까요?

 

여성의 말을 신뢰하십시오.

여성도 국민입니다.

저는 가임기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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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지원 님 (여성의당 공동대표)

 

지난 10월 16일, 중고거래 어플인 당근마켓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생후 36주인 갓난아기를 입양한다는 조건으로 20만원을 받는다는 게시글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어떻게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팔 수 있냐며, 아동을 유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식의 논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유감입니다. 사람들이 그 아이의 안전을 고민하는 동안 그 여성이 왜 그런 글을 작성해야 했을지는 고민하지 않더군요. 그 여성과 그 아이의 사연이 바로 오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관련 공청회가 의미 있게 치러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여성은 아이가 36주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이를 낳은지 3일 만에 글을 게시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직인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부모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답니다. 아이의 아빠는 양육할 능력도 되지 않으며, 함께 책임지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국회는 이런 사연들을 이미 여러 번 접했다고, 이건 여성의 잘못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합니다.

국회의 그러한 태도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볼 수 없습니다.

 

1.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단을 선택할 권리

2. 혼인 관계와 무관하게 임신중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인프라

3.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사법 정의

4. 여성의 재생산이 존중받을 수 있는 노동권의 보장

 

저는 이 네 가지 항목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편파적인 사법 정의의 문제를 더 강조하려 합니다.

 

임신은 여성 혼자서 실행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형법으로 처벌하는 대상은 여성과 의사 뿐입니다. 심지어 국회는 의사에게는 본인의 신념에 따라 시술을 거부할 권한을 부여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처벌을 받게 될 대상은 여성 뿐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처벌과 낙인은 오로지 여성에게만 가해집니다. 그에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는 어떠한 처벌과 규제도, 비난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국회는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하고, 안전하고 평등한 임신중단의 기회를 보장하고,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그동안 법조문에서 누락되어 왔던 남성에게 부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관련 공청회는 이렇게 본회의 하루 전에서야 열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남성에게 전가된 책임을 면제하려 했겠지요

공정과 정의를 내세워 남성에게 전가될 책임을 우리 사회가 나누어 부담해야 한다 평등과 자유를 내세워 남성에게 전가될 책임을 여성도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

이런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공청회를 열고 토론회를 열며 수 개월을 투자했을겁니다.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다는 말을 언제까지 해야합니까

 

공청회에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법안 심사를 해서 국회 본회의 안건상정과 의결을 하루 만에 해내겠다는 것은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제스처입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부의 역할을 하는 국회는 과연 얼마나 적극적이었습니까.

올해 개원한 21대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의는 총 18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법사위의 18명의 의원들 중 여성은 백혜련, 전주혜, 조수진 의원 단 3명 뿐입니다. 윤호중, 김도읍, 김남국, 김용민, 김종민, 박범계, 박주민, 소병철, 송기헌, 신동근, 최기상, 유상범, 윤한홍, 장제원, 최강욱 남성 의원은 15명입니다.

 

국회에는 정부 개정안 외에도 4개의 발의안이 제출되어 있고, 발의안 대부분은 낙태죄 전면 폐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도 10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열린 공청회 진술인 8명 중, 낙태죄 전면 폐지에 대한 입장을 진술할 사람은 오직 2명 뿐입니다.

 

법사위 위원 18명 중, 15명은 남성. 공청회 진술인 8인 중, 6명은 반대 입장. 국회 본 회의 바로 직전에 소집된 공청회.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여전히 남성 국회의원들이 여성 국민들의 삶과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9년 미국 텍사스주 동부에 있는 와스콤시 의회도 그러했습니다. 전부 남성 의원으로 구성된 와스콤시 의회는

정말 손쉽게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했습니다. 임신중단이 남성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국회는 국민의 삶과 현실을 고려하고 그것을 입법의 형태로 개선해나갈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국민이 여성일 경우에는 참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여성의 삶은 입법을 통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을 통해 제한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낙태죄처럼 문제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고, 여성의 생명권, 경제권, 노동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을 제한하듯 말입니다.

 

오늘의 법사위 공청회와 내일 이뤄질 국회 본 회의는 참으로 역사적인 장면일겁니다.

여성의제를 숱하게 기각시켰던 20대 국회를 지나 21대 국회에서도 뻔뻔하게 여성들의 목소리를 묵살하는지, 여성의당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지켜보겠습니다.

 

법사위 위원님들. 오늘, 내일 이렇게 어떻게든 넘어가면 될 거라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습니다.

위원님들께서 안심하는 동안, 여성들은 기를 쓰고 국회, 시의회, 정부, 각계각층에 진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원님들께서 무심코 지나쳤던 그 여성들은 임신중단이 여성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도록 만들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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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다빈 님 (여성의당 당원)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서 온 여성의당 경남도당 권리당원입니다. 오늘 회의를 하고 계신 법제사법위원회 윤한홍 의원님 지역구이지요.

 

그래서 오늘 의원님께 직접. 제 목소리를 전하고자 나왔습니다

 

발언에 앞서,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콘돔착용을 거부한 관계후 월경주기가 되어도 월경이 시작하지 않아서 두려움이 몰아쳤습니다. 관계 후 2주 이내였기 때문에 테스트기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낙태죄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굶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아이가 생기고 있거든 영양부족으로 "자연유산"이 되도록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의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상황에 문제가 생겨 제 꿈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의원님. 저는 재능 있는 여성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동네에서 독특하면서도 아름답게 말을 하는 아이로 유명했습니다. 학창시절엔 백일장에서 수차례 수상을 했습니다. 그랬던 끼를 살려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계속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조금 더 나은 글쟁이가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스페인어, 코딩, 자전거 수리, 영화 분석, 철학, 금융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내가 소중한 생명입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면, 저 역시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회는 지금까지 저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습니까.

 

저는 천 구백구십년대 초반 여아낙태가 극심하던 시절, 아들을 낳으려고 수차례 낙태 후 오진으로 낳은 아이입니다. 그래도 사주에는 아들 노릇을 한다며 어른들의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던 어릴 때는 언제나 제 존재가 불편했습니다. 여자아이라는 것이 왠지 눈치가 보였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여자아이의 몸은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아이를 가질 몸이기 때문인데요. 격한 운동을 하거나 크게 다치면 안 된다, 항상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흔히 들었습니다.

 

내가 나라서가 아니라 내 몸에 아이를 가지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소중한 기분을 아십니까?

 

90년대 초반 태어난 여성들은 지금, 소위 말하는 결혼적령기가 되었고 그중 하나인 저는 이자리에 나왔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십시오. 그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아이를 낳으라고 국가가 강요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운좋게 태어난 저는 낙태죄 폐지 이슈를 볼 때마다, 낙태죄 찬성론자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가 트렁크 가방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담아 옮기는 여행용 캐리어요.

 

저는 가방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명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소중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뱃속에 아직 있지도 않은 아이가 아닌 저를 보십시오.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십시오. 여성이 자신이 계획한 미래를 꿈꾸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낙태죄 폐지는 지금 살아있는 생명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제가 당장 일부러 헤프게 섹스를 하고서 임신을 한 뒤 낙태를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매체를 통해서 계속 보고 있습니다. 그 말은, 그들 자신이 살인이 불법이 아닌 세상이라면 자신이 살인자였을 거라는 고백입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낙태죄 위헌 판결이 난 지 1년도 넘었습니다. 낙태죄 폐지 이후 낙태의 ‘남용’을 걱정하기보다 어떻게 더 건강한 성문화를 정착시키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한다는 것을 주요한 판결취지로 명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 개정되는 법도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공청회장에 앉아 계신 분들은 자기 결정권에 대한 이해가 있으십니까? 자격도 없는 사람들끼리 둘러 앉아 얘기한 뒤 나오게될 졸속 법안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저는 사실 지금 제가 참여한 이 기자회견 같은 일이 왜 일어나는지 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정한 방향대로만 법을 개정하면 되는데, 왜 그것을 고려하지도 않은 법안이 나와서 이렇게 에너지소모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 낙태죄를 폐지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지역은 현재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원실에 제가 전화를 했을 때에도 우리 지역구는 평균연령이 높아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게 좀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모든 지자체에서 출생률 제고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젊은 층이 일을 하고 세금을 내야만 그 도시가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 운용비용도 그에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젊은이가 살기 좋은 도시가 곧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속가능한 도시일 텐데, 근시안적인 태도로 고령층의 목소리만을 집중해서 듣는다면 그것이 포퓰리즘과 다른 게 무엇입니까?

 

마산회원구를 대리하는 국회의원이시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지역의 생존을 치열하게 고민하셔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에 걸맞는 책임감을 보여주십시오.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으시려면, 지금 당사자들이 외치고 있는 낙태죄 폐지가 가장 상징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이제, 낙태죄가 있어야 출생률이 높아질 거라는 착각은 집어치우십시오

 

청년이 살기 좋은 지역, 청년이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지금 떼십시오.

이상입니다.

 

 



 

 

국회 밖에서 4시간 동안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는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국회 안에서는 법사위 공청회가 결국 진행되었습니다. 

(공청회는 온라인 생중계 되었는데요.... 임신 가능한 몸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0.00001도 생각해본 적 없는 듯한 

 몇몇 진술인들의 한심하기 그지없는 발언을 보며 다같이 경악하고 분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화면 아래 댓글란도 처참...심란....

 하지만 그와중에도 꿋꿋이 "낙태죄 폐지!!!" 댓글 같이 써주신 분들 이자리를 빌어 다시금 하이파이브!♥ 입니다!) 

 

 

이제 올해의 국회 일정은 임시국회만을 남겨두고 있고, 헌재가 정한 낙태죄 개정입법 기한인 2020년 12월31일이 3주 뒤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란 상황 앞에 안전한 임신중지라는 선택지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임신중지서비스가 의료로서 보장되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불안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을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국회와 정부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이대로 개정입법 없이 12월31일이 지난다면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법- 현행 낙태죄는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낙태죄 없는 2021년"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 절반은 낙태죄 폐지를 위해 맹렬히 싸워 온 결과이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성의 현실에 대한 국가의 의도적 무지와 무시, 태만에 의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처벌법만 없어진다고 해서 안전한 임신중지가 모두에게 가능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고요. 

 

우리는 계속해서 입법자들과 정책책임자들의 행동을 주시하며,

주수나 사유에 따라 허락해주며 임신중지를 범죄로 남기는 모든 시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임신중지 형사처벌법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해야 합니다. 

 

낙태죄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세상에서, 이제는 임신출산 여부에 대한 통제와 처벌이 아닌 

여성인권과 건강권 보장을 기초로 한 새로운 법/제도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