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여성건강팀 내부 팀세미나 후기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한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고, 의사들이 낙태수술 전면 중단 선언을 할 때쯤, 달력을 보니 월경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섹스를 하게 되었던 순간부터 가지고 있었던 임신에 대한 공포의 최고치를 그날 겪었던 것 같다. ‘이렇게 전면 중단 선언이 있는 상황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수술은 할 수 있는 걸까’,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큰 비극이다.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냥 한 번 낳아볼까?’, ‘애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등 수많은 생각이 나를 스쳤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달에도 월경은 시작되었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작년 9월 보건복지부의 낙태를 비도덕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예고안이 나온 뒤 기자회견을 비롯해1, 2차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 등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저항이 거셌다. 모든 일정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와중에 공동의 목표(낙태죄 폐지)를 위해 모인 사람들 안에서의 차이를 감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My body my choice.”, “자궁 있는 사람만 말하라.” 등의 구호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 “생명권 대 선택권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 등을 마주한 지점들이 그랬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우수한 인구’를 만들고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숨은(또는 공공연한) 기조일 때, 국가는 여자들이 얼마나 ‘걸리적거릴’까. 몸이란 게 워낙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몸이란 자꾸 어디론가 흐르고, 외부의 수많은 것들과 연동되면서 인구를 생산하는 힘까지 있으니. 이 완벽하게 구획되기 힘들고 계획되기 힘든 몸을 가진 개인들은 그래도 가능한 한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꾸려갈 권리, 그러지 못했을 때에도 최대한의 삶의 질과 선택지를 받쳐줄 시스템이 필요한데, 국가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던 거다. 지금까지는.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2월 초, 여성건강팀 활동가들의 책상에 의문의 종이뭉치가 배달(?)되었습니다.
종이뭉치의 정체는 인공임신중절,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여성건강팀 내부세미나의 읽을 자료.
2월 13일(월) 첫번째 팀세미나를 시작으로,
2월 17일, 2월 28일, 그리고 3월 3일까지 총 4회의 내부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간략한 내용과 소감을 공유합니다.

(△세번째세미나 때 들른 카페에서 인생샷...)
첫번째 세미나에서는 피임과 낙태와 관련해서 발의되었던 국내 입법자료들과, 관련 정책들의 변화를 살펴보았어요. 상당히 많은 수정 입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대부분이 임기만료로 폐기된 사실이 흥미로웠고, 발의된 내용이나 기각된 사유들을 살펴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가고, 막히고, 통과되었는지를 보여주어 흥미로웠습니다.
두번째 세미나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정리된 성과재생산포럼의 자료집을 열독하였어요.
'낙태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낙태한/하는 여성에 대한 이중메세지: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삶이 삭제된 생명, '생명 권 대 결정권' 논의의 허상을 넘어서기 위하여',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이건 건강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보조생식기술시대'에 낙태논쟁, ''장애를 가진 생명의 태어날 권리'? 누가 판단하는가?'
각 발제의 제목들이 보여주듯, 인공임신중절과 관련한 주제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논의주제의 확장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각 발제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일뿐만 아니라, 흥미롭기도 하여 서로 메모해온 단상들과 고민들을 나누기도 하였어요.
세번째 세미나에서는 25명의 여성의 '낙태' 경험을 담은 사례집 있잖아, 나 낙태했어를 읽고 모였습니다.
2013년에 민우회에서 출간한 책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요.
작년에 진행된 검은 시위에서, 거리에 나와 '낙태'의 경험을 발언하던 여성들의 용기를 떠올리며, 25명의 25개의 사연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눴습니다.
책에서 읽은 인상깊은 내용들은, 조만간 카드뉴스로도 찾아갈 계획입니다.

(여러분 '있잖아, 나 낙태했어' 책 내용 너무 좋은데 왜 아직 2쇄 찍지 못했을까요...얼른 소장해줘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낙태 이슈를 통해 임신과 출산, 비출산과 여성건강, 삶에 대한 결정권 등을 살펴보다보니,
한국 사회 '저출산' 이슈에 대한 논의들도 궁금해졌어요. 그래서네번째 (추가)세미나는, 성평등복지포럼 자료집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출산이 '정말' 위기인지, 한국사회에서 '저출산 위기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기능하고 있는지,
거기에서 여성운동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간의 운동에서 놓치고 있었던 지점들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진행된 네 차례의 세미나, 활동가들의 소감들을 짧게 나눕니다.
세미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이렇게 일상적인 공포와 맞서고 있을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던 국가 권력의 민낯(?)을 알리면 어떨까, 생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생명을 무시하고 있는지 근거를 보이면 어떨까,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볼까, 낙태죄 폐지는 너무 어려우니 혼외출산에 대한 광범위한 허용을 주장해볼까… 팀 세미나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과제는 남아있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낙태죄의 모습을 뚜렷하게 파악하게 되면서, 한 해의 활동을 꾸려가며 ‘낙태죄 폐지’로 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장애, 이성애 중심의 사고를 뛰어넘는 ‘낙태’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나의 정체성에 기반하여 ‘낙태’ 문제를 사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넘어선 다양한 입장을 담아낼 수 있는 활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는 ‘낙태’ 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더 많은 고민과 더 깊은 생각, 더 넓은 관점, 이것을 놓치지 않는 활동을 해 나가야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후기를 마친다. (마무리가 이상한데...? 그래도 끝!)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
어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인구가 많아야 나라가 산다'며, '쪽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애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육성으로 터져나오는 욕을 참아낸 나를 대견해한 순간이. 말은 쉽지만, 삶은 쉽지 않은데, 삶의 무게에 대한 고민 없이 가볍게 내뱉는 말들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생명, 모성, 국가경쟁력. 그런 말들과, 그런 말을 쉽게 쉽게 뱉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낙태이슈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마음속 대화상대를 '생명' 찬양론자들로 상정해 뜨겁게 싸우고 대치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네 번의 세미나를 지나오며, 만나지 못할 이들, 서로 설득할 수 없는 이들과의 (정신적) 대치에 쏟는 에너지를 가져다가, 만날 수 있는 이들, 만나야 하는 이들과,더 많이 연대할 수 있는 에너지로 치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미나가 끝이 나고, 예전 자료들 속에서 몇해 전 민우회 활동가들이 토론하고 고민했던 회의자료들을 읽어보았다. 비슷한듯 반복인듯 싶은 고민이면서도, 그때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던 일들이, 지금은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들'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동일한 점은 여성의 삶으로부터, 여성의 목소리로부터 이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 (올해 기획한 여러 활동들이 그 순간들을 잘 담아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
“나는 임신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moral property of women)임을 프랑스정부가 보장할 것이다(윤정원,2016)”_ 당시 프랑스 보건부 장관 Claude Évin의 말 재인용 미페프리스톤은 여성이 마취를 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약품의 이름이다. 이미 주요 선진국을 비롯해 61개국이 승인한 약품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도입 논의조차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프랑스 제약회사가 이 약품을 개발할 당시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거셌다. 임신중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시위와 여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러한 분위기는 제약사 스스로 시장 철수를 결정하게 하였다. 그러나 극적 반전은 정부로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 정부와 보건국은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해당 기업이 약품을 계속 생산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프랑스 보건부 장관 Claude Évin은 “나는 임신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moral property of women)임을 프랑스정부가 보장할 것이다(윤정원,2016)”라고 말했다. 2017년 우리가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부를 만들고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
국가가 뭘 하는 존재인가 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많이 하게 되는 세미나였다. 갖가지 정책과 법안을 통해 국가가 외치는 ‘생명’과 ‘국민 건강’, ‘복지’ 등등의, 기본적으로 참 좋은 뜻을 가진 단어들은 구성원인 내가 생각했을 때 으레 예상하는 지향점이 아닌 엉뚱한 데를 바라보고 서 있다. 원래 국가라는 것이, 아니면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국가라는 게 생긴 이래로 어쩌면 단 한 번도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정책이나 통치가 이뤄진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찾아볼수록 국가의 ‘생명’이며 ‘건강’이며 하는 말들은 대놓고 표는 안 나도 실상 ‘부국강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진짜 많은 보통의 사람들)는 부국강병엔 정말이지 1도 관심이 없는데. (중략) 누구나 원하는 경우 안전하고 평등하게 임신을 중단할 권리, 마찬가지로 원하는 경우 안전하고 평등하게 임신하고 출산할 권리를 위한 운동을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까 파고들다 보면 그저 ‘여성’이라는 말로 똑같이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임신중단을 종용당하는 사람들, 또는 사회가 임신-출산을 선택해봄직한 미래로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 ‘내 몸은 내 거니까 국가 넌 빠져’라고만 얘기해서는(물론 그 말이 너무 필요한 순간도 있음)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사회, 내가 원하는 권리를 얻기 힘들겠다 싶다. 그래서 참 복잡하고 어렵기도 한데, 요즘엔 바로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같이 싸울 사람들이 더 많고 어느 순간엔 더 힘쎈 목소리로 연대할 수 있는 것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려) 한다. ‘밖’의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면서 낙태죄 폐지, 그리고 그걸로 다 이룰 수 없는 진짜 살고 싶은 세상을 여기로 가져오는 활동을 해야지, 하고- 세미나뽕을 먹고는 긍정적인 마음을 다져보는 요즘이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
(...) 모든 일정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와중에 공동의 목표(낙태죄 폐지)를 위해 모인 사람들 안에서의 차이를 감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 이번 낙태죄 세미나를 통해 그러한 차이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미나에서 다룬 텍스트들은 여성들 안의 교차성(성소수자, 장애여성, 이주여성에 등에 관련하여)에 대해 질문하며, 지금까지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담론이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자기결정권)”으로 이야기되어왔던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국가가 시대에 따른 출산정책, 그리고 그에 적용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을 도구화하여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서 국가성장주의를 고취해왔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이렇듯 복잡한 내용을 반영해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 채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표지점으로 삼는 것은 낙태죄 폐지, 나아가 보다 평등하고 따라서 존엄한 사회의 성취라는 페미니즘의 거시적 지향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느낀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
2017 여성건강팀이 함께 읽은 세미나 자료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중 “국내 피임과 낙태 관련 법 제도, 입법발의 및 판례”, “피임과 낙태 정책 관련 주요 쟁점”(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4) 「성과 재생산포럼 IL과 젠더포럼: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성과재생산포럼, 2016) 『있잖아 나 낙태했어...』(한국여성민우회, 2011) 「저출산대책의 쟁점과 딜레마」(신경아, 2010) 성평등복지포럼 <저출산을 질문하다> 자료집(한국여성민우회, 2015) |
2017 여성건강팀 내부 팀세미나 후기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낙태수술을 포함한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고, 의사들이 낙태수술 전면 중단 선언을 할 때쯤, 달력을 보니 월경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섹스를 하게 되었던 순간부터 가지고 있었던 임신에 대한 공포의 최고치를 그날 겪었던 것 같다. ‘이렇게 전면 중단 선언이 있는 상황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수술은 할 수 있는 걸까’,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큰 비극이다.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냥 한 번 낳아볼까?’, ‘애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등 수많은 생각이 나를 스쳤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달에도 월경은 시작되었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작년 9월 보건복지부의 낙태를 비도덕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예고안이 나온 뒤 기자회견을 비롯해1, 2차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 등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저항이 거셌다. 모든 일정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와중에 공동의 목표(낙태죄 폐지)를 위해 모인 사람들 안에서의 차이를 감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My body my choice.”, “자궁 있는 사람만 말하라.” 등의 구호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 “생명권 대 선택권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 등을 마주한 지점들이 그랬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우수한 인구’를 만들고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숨은(또는 공공연한) 기조일 때, 국가는 여자들이 얼마나 ‘걸리적거릴’까. 몸이란 게 워낙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몸이란 자꾸 어디론가 흐르고, 외부의 수많은 것들과 연동되면서 인구를 생산하는 힘까지 있으니. 이 완벽하게 구획되기 힘들고 계획되기 힘든 몸을 가진 개인들은 그래도 가능한 한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꾸려갈 권리, 그러지 못했을 때에도 최대한의 삶의 질과 선택지를 받쳐줄 시스템이 필요한데, 국가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던 거다. 지금까지는.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2월 초, 여성건강팀 활동가들의 책상에 의문의 종이뭉치가 배달(?)되었습니다.
종이뭉치의 정체는 인공임신중절,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여성건강팀 내부세미나의 읽을 자료.
2월 13일(월) 첫번째 팀세미나를 시작으로,
2월 17일, 2월 28일, 그리고 3월 3일까지 총 4회의 내부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간략한 내용과 소감을 공유합니다.
(△세번째세미나 때 들른 카페에서 인생샷...)
첫번째 세미나에서는 피임과 낙태와 관련해서 발의되었던 국내 입법자료들과, 관련 정책들의 변화를 살펴보았어요. 상당히 많은 수정 입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대부분이 임기만료로 폐기된 사실이 흥미로웠고, 발의된 내용이나 기각된 사유들을 살펴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가고, 막히고, 통과되었는지를 보여주어 흥미로웠습니다.
두번째 세미나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정리된 성과재생산포럼의 자료집을 열독하였어요.
'낙태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낙태한/하는 여성에 대한 이중메세지: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삶이 삭제된 생명, '생명 권 대 결정권' 논의의 허상을 넘어서기 위하여',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이건 건강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보조생식기술시대'에 낙태논쟁, ''장애를 가진 생명의 태어날 권리'? 누가 판단하는가?'
각 발제의 제목들이 보여주듯, 인공임신중절과 관련한 주제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논의주제의 확장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각 발제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일뿐만 아니라, 흥미롭기도 하여 서로 메모해온 단상들과 고민들을 나누기도 하였어요.
세번째 세미나에서는 25명의 여성의 '낙태' 경험을 담은 사례집 있잖아, 나 낙태했어를 읽고 모였습니다.
2013년에 민우회에서 출간한 책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요.
작년에 진행된 검은 시위에서, 거리에 나와 '낙태'의 경험을 발언하던 여성들의 용기를 떠올리며, 25명의 25개의 사연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눴습니다.
책에서 읽은 인상깊은 내용들은, 조만간 카드뉴스로도 찾아갈 계획입니다.
(여러분 '있잖아, 나 낙태했어' 책 내용 너무 좋은데 왜 아직 2쇄 찍지 못했을까요...얼른 소장해줘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낙태 이슈를 통해 임신과 출산, 비출산과 여성건강, 삶에 대한 결정권 등을 살펴보다보니,
한국 사회 '저출산' 이슈에 대한 논의들도 궁금해졌어요. 그래서네번째 (추가)세미나는, 성평등복지포럼 자료집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출산이 '정말' 위기인지, 한국사회에서 '저출산 위기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기능하고 있는지,
거기에서 여성운동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간의 운동에서 놓치고 있었던 지점들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진행된 네 차례의 세미나, 활동가들의 소감들을 짧게 나눕니다.
그리고 비장애, 이성애 중심의 사고를 뛰어넘는 ‘낙태’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나의 정체성에 기반하여 ‘낙태’ 문제를 사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넘어선 다양한 입장을 담아낼 수 있는 활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는 ‘낙태’ 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더 많은 고민과 더 깊은 생각, 더 넓은 관점, 이것을 놓치지 않는 활동을 해 나가야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후기를 마친다. (마무리가 이상한데...? 그래도 끝!)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어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인구가 많아야 나라가 산다'며, '쪽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애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육성으로 터져나오는 욕을 참아낸 나를 대견해한 순간이. 말은 쉽지만, 삶은 쉽지 않은데, 삶의 무게에 대한 고민 없이 가볍게 내뱉는 말들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생명, 모성, 국가경쟁력. 그런 말들과, 그런 말을 쉽게 쉽게 뱉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낙태이슈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마음속 대화상대를 '생명' 찬양론자들로 상정해 뜨겁게 싸우고 대치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네 번의 세미나를 지나오며, 만나지 못할 이들, 서로 설득할 수 없는 이들과의 (정신적) 대치에 쏟는 에너지를 가져다가, 만날 수 있는 이들, 만나야 하는 이들과,더 많이 연대할 수 있는 에너지로 치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미나가 끝이 나고, 예전 자료들 속에서 몇해 전 민우회 활동가들이 토론하고 고민했던 회의자료들을 읽어보았다. 비슷한듯 반복인듯 싶은 고민이면서도, 그때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던 일들이, 지금은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들'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동일한 점은 여성의 삶으로부터, 여성의 목소리로부터 이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 (올해 기획한 여러 활동들이 그 순간들을 잘 담아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미페프리스톤은 여성이 마취를 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약품의 이름이다. 이미 주요 선진국을 비롯해 61개국이 승인한 약품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도입 논의조차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프랑스 제약회사가 이 약품을 개발할 당시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거셌다. 임신중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시위와 여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러한 분위기는 제약사 스스로 시장 철수를 결정하게 하였다. 그러나 극적 반전은 정부로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 정부와 보건국은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해당 기업이 약품을 계속 생산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프랑스 보건부 장관 Claude Évin은 “나는 임신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moral property of women)임을 프랑스정부가 보장할 것이다(윤정원,2016)”라고 말했다.
2017년 우리가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부를 만들고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국가가 뭘 하는 존재인가 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많이 하게 되는 세미나였다. 갖가지 정책과 법안을 통해 국가가 외치는 ‘생명’과 ‘국민 건강’, ‘복지’ 등등의, 기본적으로 참 좋은 뜻을 가진 단어들은 구성원인 내가 생각했을 때 으레 예상하는 지향점이 아닌 엉뚱한 데를 바라보고 서 있다. 원래 국가라는 것이, 아니면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국가라는 게 생긴 이래로 어쩌면 단 한 번도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정책이나 통치가 이뤄진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찾아볼수록 국가의 ‘생명’이며 ‘건강’이며 하는 말들은 대놓고 표는 안 나도 실상 ‘부국강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진짜 많은 보통의 사람들)는 부국강병엔 정말이지 1도 관심이 없는데. (중략)
누구나 원하는 경우 안전하고 평등하게 임신을 중단할 권리, 마찬가지로 원하는 경우 안전하고 평등하게 임신하고 출산할 권리를 위한 운동을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까 파고들다 보면 그저 ‘여성’이라는 말로 똑같이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임신중단을 종용당하는 사람들, 또는 사회가 임신-출산을 선택해봄직한 미래로 상상하지 못하게 만든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 ‘내 몸은 내 거니까 국가 넌 빠져’라고만 얘기해서는(물론 그 말이 너무 필요한 순간도 있음)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사회, 내가 원하는 권리를 얻기 힘들겠다 싶다. 그래서 참 복잡하고 어렵기도 한데, 요즘엔 바로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이 이슈에 같이 싸울 사람들이 더 많고 어느 순간엔 더 힘쎈 목소리로 연대할 수 있는 것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려) 한다. ‘밖’의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면서 낙태죄 폐지, 그리고 그걸로 다 이룰 수 없는 진짜 살고 싶은 세상을 여기로 가져오는 활동을 해야지, 하고- 세미나뽕을 먹고는 긍정적인 마음을 다져보는 요즘이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 모든 일정이 정신없이 진행되는 와중에 공동의 목표(낙태죄 폐지)를 위해 모인 사람들 안에서의 차이를 감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
이번 낙태죄 세미나를 통해 그러한 차이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미나에서 다룬 텍스트들은 여성들 안의 교차성(성소수자, 장애여성, 이주여성에 등에 관련하여)에 대해 질문하며, 지금까지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담론이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자기결정권)”으로 이야기되어왔던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국가가 시대에 따른 출산정책, 그리고 그에 적용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을 도구화하여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서 국가성장주의를 고취해왔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이렇듯 복잡한 내용을 반영해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 채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표지점으로 삼는 것은 낙태죄 폐지, 나아가 보다 평등하고 따라서 존엄한 사회의 성취라는 페미니즘의 거시적 지향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느낀다.
(내부 팀세미나 후기 중)
2017 여성건강팀이 함께 읽은 세미나 자료
「피임과 낙태 정책에 대한 쟁점과 과제」중 “국내 피임과 낙태 관련 법 제도, 입법발의 및 판례”, “피임과 낙태 정책 관련 주요 쟁점”(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4)
「성과 재생산포럼 IL과 젠더포럼: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성과재생산포럼, 2016)
『있잖아 나 낙태했어...』(한국여성민우회, 2011)
「저출산대책의 쟁점과 딜레마」(신경아, 2010)
성평등복지포럼 <저출산을 질문하다> 자료집(한국여성민우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