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기타[후기] 페미니즘 무상교육 {입덕} 다시 만난 세계- 두 번째

2016-07-01
조회수 12100


지난 6월 22일, 한국여성민우회 페미니즘 무상교육

[{입덕} 다시 만난 세계- 두 번째]가 개최되었습니다.
 

 

4월에 열렸던 첫 번째 강의가 정말 빛의 속도로 마감되어 버리고

못 오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셨었는데요.

그래서 이번엔 과감히! 100명이 넘게 들어올 수 있는 광활한 교육장을 대관하였습니다..! (ㄷㄷㄷ)

(사실 당일엔 막 비바람이 치는 날씨라 사람이 너무 안 오면 어쩌지 걱정되기도..)

 

 


그런데 이렇게-

거의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김홍미리 선생님의, 최신 이슈로 배우는 페미니즘:D

 

 

오래도록 여성들의 경험과 이야기는

그저 믿을 수 없거나, 너무 특수하여 일반화할 수 없거나

사소한 일로 여겨져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긴 시간 지속되어온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있었고,

우리는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그렇지만 크고 작은 움직임들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되어온 운동들,

그 각각의 움직임들이 모여 지금 이만큼의 변화가 온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5년 전, 일주일에 세 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던 때, 규탄 시위에 단 10명만 참석했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시위를 조직하고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구체적 변화를 실천하고 있다고요:)

 

강사님은 답답한 현실에서 별 소득 없이 끝나는 싸움인 것 같더라도, '저항하는 행위'는 중요하다는 것,

저항하고 나니 그에 대해 저들이 안 해도 되는 '실언'을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왔다는 것,

그렇게 입장이 드러나고, 새로운 '국면'이 생기고, 언어가, 싸움의 지형이 구체화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 얘기에 수전 손택의 글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저항해봤자 부당함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진심으로 깊이 숙고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걸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중략) 우리가 열렬히 지지해야 할 이 힘든 싸움을 넘어, 정치적 저항에 있어서는 인과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복잡하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투쟁, 모든 저항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투쟁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칩니다. 여기가 아니라면, 저기에서. 지금이 아니라면, 곧.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어느 한 모양으로 고정되기보다는 유연하게,

타인을 초대할 수 있는 여백을 가지고,

나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주는 동료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싸움을 이어가기. 그러기 위한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소감을 적는 종이에 참가자분들이 남겨주신 글귀 몇 개를 소개합니다.

 

"지금 있는 현상에만 집중했었는데, 이 움직임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향하는 과정에 있고 '중간항'으로서의 지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끊임없는, 그러나 지치지 않는 저항. 많은 분들의 그런 저항이 없었다면 저 또한 이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저항을 저도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깁니다."

 

"요즘 사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바뀔 것 같아서 괴로웠는데 포기하지 않는 끊임없는 투쟁이 조금씩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소란스러워야 문제가 드러나고 그래야 언어가 되고 구체화가 된다는 말씀 잊지 않을게요."

 

"여성혐오에 대해 남자들이 맨스플레인하고, 친절한 설득을 요구할 때 참 많이 화가 나고 슬펐는데 그런 힘빠지는 논쟁들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항에 대한 반응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지형이 드러난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늘 움직이고 있는 '중간항'이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커다란 일을 하거나, 위대한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싸움을 해나가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질문을 던져야 한다. 틀 안에 갇히지 말자.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보단 모자란 페미니스트가 낫다-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조를 지탱한다'는 말에 나를 돌아보았다. 작은 변화를 향한 시작점이 되길..."

 

"미디어에서 차별적 표현들을 보며 내 자세는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이었는데 오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행동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문제제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제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페미니즘을 할 것인지 더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세세하게 제 생각을 건드려줬거든요. 비 오는 날을 뚫고 이 강당에 들어온 것이 정말 뿌듯합니다."

 

 

 

 

끝으로 강의에 참석하신김나무 님의 후기를 전합니다.

 

 

많은 이들과 다시 만나본 <다시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세계>

 

 

대략 중학생이 되고부터 친구들과 삼척동자도 알만한 여성혐오현상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속칭 시월드라고 불리는 고된 시집살이, 워킹맘의 죄책감, 육아로 인한 극심한 피로,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조신함 등에 대한 무서움, 두려움, 분노, 멸시, 걱정, 짜증 등의 감정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통스럽고 모순된 감정들을 어떤 식으로, 어떤 말로 표현해야 될지 몰랐고 또 모르도록 교육 받았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을 보지 못했고, 고통과 모순의 감성들은 우리의 생활이 되었다. 여성혐오사회 속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창창한 미래로 나아가야 할 청년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자기모순이라는 생선가시에 목이 찔린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메르스갤러리, 메갈리아의 등장은 “우리도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생선가시 빼고 밥 좀 먹고 말 좀 해보자!”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다가왔다. 나는 메갈리아에서 연대, 언어, 신념을 배웠고 그건 민우회의 무료 입문 강좌 <다시 만난 세계>에서도 같았다.

 

나는 평소에 주로 워마드, 페이스북, 트위터를 훑어보고 페이스북에는 종종 댓글을 남긴다. 사실 그럴수록 내 안의 스트레스와 분노는 점점 더 쌓이지만 어쨌든 그거라도 한다. 팔로우 한 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강좌 신청 글을 봤고, 신청했다.

 

사실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지만 막상 당일 저녁이 되니 몸이 지쳐버린 나는 혹시라도 중간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질 까봐 택시를 탔다. 그렇게 탄 택시 안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페북, 트위터, 워마드를 뒤적였고 또 속이 울렁거리고 열이 뻗쳤다. 머리와 얼굴이 뜨거워지자 얼마 전에 버스에서 본 탈모의 원인은 두피열이라는 광고와 실제로 부분탈모 때문에 맞아본 스테로이드 주사가 뇌리를 스쳤다. 재빠르게 휴대폰을 껐다. 그 동안 겪었던 몸의 변화들이 떠오르면서 내 인생은 사랑과 희망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분노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다행스럽게 택시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길에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람 많다.]

 

처음 가본 중부여성발전센터의 이층 강당에는 정말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뭔가 상승되어있는 분위기 속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다. 김홍미리 선생님의 강의는 유쾌하게 시작했고 가볍지 않게 끝났다.

 

두 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된 강의를 한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지만, 기억에 가장 남는 건 언어와 연대의 힘, 그리고 태도였다. 뭣이 중헌 지 아는 삶의 태도는 뭐가 중요한 지 캐치할 수 있는 데서 나오고, 뭐가 중요한 지 구체적으로 알려면 결국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뭘 말하는 지는 알아야 다른 이를 붙잡고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물을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메갈리아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수많은 발칙한 단어들의 등장은 개별적이라 여겨지고 뭉뚱그려졌던 문제들을 직관적이고 총체적으로 지적하고 명명할 수 있다는 증거이자 힘이다. 성폭행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쓰인 기사 제목을 지적하고, 시댁과 처가 차이를 알고, 육아와 가사는 돕는 게 아니라는 것을 꼬집고, 책을 읽고, 고민하고, 집요하게 따지고, 쉬이 당연히 여겨지는 것을 걸고 넘어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삶의 태도로 삼고 같이 하는 것이 내가 느낀 핵심이었다.

 

또 페미니스트로 살고 페미니즘을 삶의 태도로 여길 때 의지할 만한 작은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김홍미리 선생님의 말에 왜인지 안도와 위로를 얻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동아리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만나서 공감과 경험을 나누면 짜증나는 현실에 스트레스도 받지만 정말 많이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된다. 말을 내뱉으니 머릿속에 떠돌던 언어들이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페미니즘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말에 참 많이 공감한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누를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누르는 게 별 거냐 싶지만, 그 별 것 아닌 거 하기도 자기검열과 남들 눈을 신경쓰기에 익숙하다면 힘든 법이다. 지금이야 메갈리아4, 페미디아,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신문 등 다수의 페미니즘 페이지를 팔로우 하지만 처음에는 그 ‘좋아요’ 누르기는커녕 팔로우 자체도 참 쉽지 않았다. 현관센서등처럼 켜지는 오토매틱 자기검열과 보란 듯이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친구가 좋아요 누른 김치녀 페이지들의 항연 속에서 같이 페미니즘 페이지 팔로우 하고 ‘좋아요’ 눌러주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도 못 눌렀다. 누르다 보니 별 거 아닌 거 알았고, 익숙해졌고, 같이 눌러주는 친구들이 늘었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도 서로 네가 누른 글 잘 읽었다며 대화 나눈다. 친구들 덕에 나는, 내가 누르고 싶으면 누를 수 있게 됐다. 강의와 뒤풀이가 모두 끝나고 같이 간 친구와 나는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막차가 끊긴 관계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택시를 탔다. 오는 길에 내 삶이 스트레스와 분노를 기반으로 돌아간다고 느꼈던 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고 분노하는 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불필요한 것인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고 외면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외면한다면 외면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 그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과 일치하는 지 생각했다. 페미니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배우고 말하고 다녔음에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착각하지 않았나 곰곰이 되돌아 보았다. 결국 나에게 페미니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일상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고, 가족들,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지고 싶지 않고,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분노를 연대와 공감, 실천과 신념 위에 세우면 희망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몰아세우는 건 내가 분노하는 대상들이 아니라 분노에만 그친 내가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하며 그날 하루를 마쳤다.

 

덧붙여 좋은 강의를 마련해주신 김홍미리 선생님과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올해 8월, 10월에도 세 번째, 네 번째 입덕 강좌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 제목 때문에 헷갈리시는 분 계실까봐 덧붙이면, 입덕 첫번째 ~ 두번째 ~ 세번째 는 이어지는 내용의 연속강좌가 아닙니다;;

  <다시 만난 세계>라는 타이틀을 달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각각 독립적인 페미니즘 입문 강좌입니다.

 

 

계속 무료 입문강좌를 진행하기 위한 모금함이 열려 있습니다. (6/13~10/31)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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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참여, 응원, 홍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