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성평등복지세입자들의 선언 '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

2014-10-06
조회수 5042

 

 

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
: 최저주거기준이 아니라 적정주거기준을 말하다

 

 

우리는 돈이 없다.
시간당 최저임금 5,210원 시대. 매달 내야 하는 집세와 공과금은 벌이의 절반을 요구한다.
우리는 왜 뼈 빠지게 일해서 집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걸까.

 

살만한 집이 없다.
세상에 이렇게나 집이 많은데 왜 몸뚱이 하나 편히 뉘일 곳이 없을까.
여름엔 한증막 체험을, 겨울엔 야외취침 체험을 집 안에서 해야 하는 옥탑방,
창문은 모양만 창일뿐 환기가 안 돼 곰팡이와의 동거가 숙명인 반지하,
매일 밤 이부자리까지 침범하는 해충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낡은 집,
곰팡이를 닦으려 벽을 뜯었다가 스티로폼에 벽재를 붙인 가벽을 보고 알게 된 불법개조 집,
잠금장치가 부실한 유리 새시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에 침입하려는 취객과 싸워야 했던 불안한 집,
수리 해주지도 않는 집주인과 실랑이 하는데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아서 5시간을 틀어놔도 따뜻해지지 않는 보일러를 참고 살아야 하는 집…
가진 돈 탈탈 털어 힘들게 구한 집들은 왜 이 모양인가.

 

우리는 살고 싶다.
하지만 정부의 주거정책은 세입자로 살기 서러우면 빚내서 집을 사라는 정책들뿐이다.
생활비도 없는데 이자를 내고, 원금을 갚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을 살라는 말인가.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정책은 정녕 없는가.

집이 삶을 지배하지 않길 바라지만 이것이 2014년, 한국 세입자들이 처한 주거현실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내 소득으로 적정한 집에 안정적으로 사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

 

 1. 우리는 적어도 바깥보다는 덜 춥고 덜 더운 집을 원한다.
 2. 우리는 햇빛이 들고 환기가 되는 집을 원한다.
 3. 우리는 이부자리를 깔고도 움직일 공간이 있는 크기의 집을 원한다.
 4. 우리는 결로 걱정 없이 보일러를 틀 수 있는 집을 원한다.
 5. 우리는 외부 시선에 노출될 걱정 없이 창을 열 수 있는 집을 원한다.
 6. 우리는 문이나 창이 외부의 침입에 안전한 집을 원한다.
 7. 우리는 집밖 소리가 집안 소리처럼 들리지 않도록 기본적인 방음을 갖춘 집을 원한다.
 8. 우리는 부실한 단열, 누수 등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곰팡이가 양산되지 않는 집을 원한다.
 9. 우리는 부실한 마감과 통풍, 높은 습도 등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해충이 양산되지 않는 집을 원한다.
10. 우리는 부엌과 욕실에서 동시에 물을 쓸 수 있는 수압을 갖춘 집을 원한다.
11. 우리는 아무리 청소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하수구 냄새가 없는 집을 원한다.
12. 우리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쓸데없는 신경전과 책임회피를 하지 않는 집주인이 있는 집을 원한다.

 

2014년 10월 6일
세계주거의 날

 

지금도 새로 집을 구할 걱정을 하며 밤잠을 설치고,

어렵게 구한 집이 왜 이 모양인지 한탄스런
전국의 세입자들이 세상풍파에 지치지 않을 수 있길 바라며.
당신의 집에 평화가 깃들길!

HOUSE & PEACE

 

 

 

10월 6일 오늘은 세계주거의 날입니다.

1986년에 UN에서 주거가 기본 인권임을 알리기 위해 매년 10월 첫째주 월요일을 세계주거의 날로 제정했지요. 이날은‘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주거가 필요하다’는 정신을 기억하는 기념일 입니다.

 

28번째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변을 둘러봅니다. 한국의 주거권은 지금 어떤가요?

임금은 낮고, 주거비는 높고, 주택 소유를 지원하는 부동산 정책은 많지만 안정된 거주를 지원하는 복지정책은 취약하지요.주거 불안이 더이상 철거민과 노숙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소득층 세입자인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에도 집이 기본권임을 기억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 있습니다.

주택법에 명시되어 있는 '최저주거기준’입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12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7.2%에 불과합니다. 대학생, 청년세대와 비혼여성의 대부분이 주거 불안을 느끼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7.2%라는 숫자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지요. 최저주거기준이 과연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주거환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기준이 맞는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래서 기준을 다시 만들어 봤습니다. 살기에 적정한 집에 대한 현실적인 기준을요.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과 시민이 함께한<세입자 주거권 액션단>에서 만들었어요.

 

거창할 것도 없는 이 기준들이 사실은 존엄한 삶을 위해 꼭 지켜져야 하는 기본권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함께 기억하기를 바라며,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이를 <적정주거선언문 ‘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를 발표합니다.

 

이 선언은반지하에서, 옥탑방에서, 어느 낡은 빌라나 숨 막히게 좁은 원룸에서 오늘도 고충을 겪고 있을 수많은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선언이며, 이 목소리에 대해 정부가소유자 위주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이 아닌, 세입자여도 적정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게 해줄 주거복지 정책으로 응답할 것을 요청하는 바램입니다.

 

* 본 선언문의 내용은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은 2014년 4월~8월에 진행한 비혼여성 세입자 릴레이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 민우회는 저소득층 세입자, 그 중에서도 비혼여성 세입자들의 목소리와 바람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오는 11월 4일 <세입자말하기대회 : 내가 사는 그 집>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본 행사에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높이는데 실용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입자 주거권 안내서>도 배포합니다. 곧 있을 행사안내를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