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여성건강[일본심포참가기]민우상근자 봉달, 여행을 떠나다

2007-02-09
조회수 9368

 

[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주최 심포지엄 참가기]
민우상근자 봉달, 여행을 떠나다^^

 

 

여행은 이방인이 되는 경험이다. 낯선 것들과의 대면. 그 속에서 일상적으로 규정되던 나와는 다른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경험에 대한 기대가 여행을 기다리게 한다. 그리고 때로 기다리던 기회는 우연히(^^) 다가온다.

일본의 한 대학이 황우석 사태와 관련한 심포지엄 발표자로 민우회를 초청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민우회!!! 마침 나는 민우회 상근자였고, 또 우연히도 황우석사태와 관련한 건강팀 활동가이기도 했다. 이런 우연의 연속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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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월 첫날 아침의 나는 도쿄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힘들고 복잡했던 1월과 심적, 공간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설레었다. 서울에서 대전보다 조금 더 갔을까 하는 시간이 지나자 이미 난 일본에 도착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들어선 도쿄에서는 도로와 건물과 그 그림자들만 보인다. 버스가 고가도로 위를 주로 달리는 탓이다. 고가도로가 발달한 복잡한 도시. 도쿄에 대한 첫인상이다.

문득 이불과 빨래가 온 벽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가 보인다.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거리와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국과 너무 비슷해 그게 더 생경하다. (◁사진:도쿄전경)

 

 

 ‘찻물’ 여자대학

 

1171012518.gif오차노미즈 여자대학, 민우회를 초청한 대학이다. 오차는 ‘(마시는) 차’, 미즈는 ‘물’을 뜻한다. 말 그대로 ‘찻물’ 여자대학. 도쿄에 있는 2개의 공립여자 대학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교문에서 학생증 검사를 한다.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하는 대학교. 그런데 전후 사정이 있다.

 

일본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함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보통 그 유치원에 입학하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대학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유치원입시 경쟁이 대학입시 만큼이나 치열하다고 한다. 오차노미즈 여자대학도 그런데, 지난해 유치원 입학을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벌어졌단다. 그 이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하여간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 조금은 살벌하고 오싹한. 교문을 들어서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성들. 이런 유치원은 반드시 누군가가 아이를 데리러 오도록 한다는데, 그게 누구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오차노미즈 여자대학 정문)

 

 

‘젠더연구의 프론티어’ 사람들.


행사 전날, 심포지엄을 주최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오차노미즈 대학에서 젠더문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젠더연구의 프론티어’ 사람들이다. 지난해 민우회를 방문했던 몇몇 분들과는 낯이 익다. 행사장 주변 안내문과 화살표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들. 얼핏 보니 행사준비는 우리와 별다를 것이 없다. 그 중에는 한국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의 모델을 한 적이 있다는 여성분도 있었다. 나중에 사진집을 봤더니 사진작가 박영숙씨의 ‘미친년 프로젝트’의 모델이었다. 민우회에 오래도록 붙어있던 포스터가 생각나서 반가웠다. 낯선 곳에서는 사소한 연관도 큰 무게감을 갖는다.


행사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데, 사람들이 발표 내용 중 ‘호락호락 캠페인’에 대해 묻는다. 일본에서도 식지 않는 호호캠페인의 인기!!! 그리고 한 국회의원이 여성을 ‘애 낳는 기계’라고 말해 큰 논란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논란이 커지자 사과를 했는데 사과 도중 부인을 ‘家內(집사람)’라고 해서 더 큰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여성의 ‘호칭’에 대한 고민과 논의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의 의식 수준도 어쩌면 그리 비슷한지... 다르면서도 비슷한 것 혹은 낯설지만 공감하는 것.

 

[심포지엄]황우석사건과 여성의 자원화 - 한국여성민우회를 초청하여
: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이학부 3호관 701교실


1171012603.gif제목이 너무 거창하여 긴장된다. 민우회의 발표와 토론자들의 코멘트, 질의응답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 할까? 가늠할 수 없어서 더 긴장된다.

시작 시간인 1시가 지났는데, 200석 규모의 계단강의실 701교실은 썰렁하다. 뭐 그 정도야. 시간이 좀 지나자 어느새 50~6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심포지엄에 대한 소개와 인사말 후에 바로 ‘민우회 활동과 한국 여성운동’에 관한 은날의 발표, ‘황우석 사태와 여성인권’에 관한 봉달의 발표가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순차 통역이라 실제 발표는 1시간. 그리고 3명의 토론자들의 코멘트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예상보다 많은 질문들이 쏟아 졌지만, 모든 질문에 답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의 병역제도와 여성운동과의 관계, 정부의 불임시술 지원에 관한 입장, 난자기증에 대한 보상 문제, 난소적출의 문제, 생명과학기술의 최근 동향에 대한 입장, 난자소송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에 관한 질문들. 이외에도 한국에서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지위, 성소수자와 관련된 민우회 활동에 대해 묻는 질문들도 있었다. 그리고 4시 30분에 정확히 끝내는 진행팀. 마이니찌 신문과의 인터뷰를 끝으로 공식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기억하기... 이방인으로서의 감수성.

 

평소 자주 간다는 인도 카레집에서의 저녁식사 겸 뒤풀이.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돌아가면서 소감을 말한다. 이런 모습도 낯설지 않다. 저마다 기억에 남은 것, 공감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성의 동의도 없이 난소를 적출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는 말, 여성들이 국가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말, 생명과학기술에 대해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말 등. 그들의 생각과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난 그들의 말과 반응에 신경을 집중하고 또 집중한다. 비록 통역을 통해서지만. 그리고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사진: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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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그곳의 장소, 사람, 습관에 집중하고 또 인정하게 되는 경험. 그것은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해 보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쉽게 소통하고 공감한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려 했던 모습은 강한 카레향 만큼이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국 자료를 읽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누군가의 열정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떠남으로서만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나의 경계를 넘는 것. 그래서 내가 익숙하지 않은 영역과 소통하려는 노력. 이번 오차노미즈 대학의 방문은 그렇게 낯선 일본의 여성주의자들과 진하게 통~한 경험이었다.

 

-----봉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