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성평등복지[후기] "서로서로 잘 돌보는 공동체를 상상하다!" 뚝딱뚝딱, '가족' 새로 짓기 집담회 3회차

2022-07-20
조회수 6122

〈뚝딱뚝딱 '가족' 새로 짓기 집담회〉 마지막 3회차! "서로서로 잘 돌보는 공동체를 상상하다!"

오늘은 법적 가족이 아닌 사람과 돌봄을 나눈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사진 설명(왼쪽): 집담회 장소 ppt화면에 시작 화면이 떠있다.)

(사진 설명(오른쪽): 집담회 장소 테이블에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고 ppt화면에는 오늘의 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다.)

 

돌봄에 대한 경험과 관심이 많은 쪼이, 채은, 캔디, 도형, 문루나, 그리고 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여는 말] 

 

 

 

(이미지 설명: 법적가족 중심 돌봄 제도 문제들이 설명된 ppt 자료)

 

본격적인 시작 전에 늘 그렇듯, 온다 활동가의 여는 말 시간이 있었어요.

‘법적 가족’에게만 보호자 자격을 부여하는 관행들, 법적 가족 중심의 현 돌봄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조목조목 살펴보았습니다.

 
 
 

[각자의 '법적 가족' 밖 돌봄의 경험 적어보고, 이야기하기] 

 

(사진설명: 돌봄 경험을 적어보는 활동지 인쇄물 사진) 

 

이번에는 각자의 돌봄 경험을 적어보고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래 항목을 채워보세요!

 

 

1. 누구를 돌보았나요?/ 누구에게 돌봄을 받았나요?

 

2. 어떤 돌봄을 했나요? / 어떤 돌봄을 받았나요?

(예: 아픈 친구의 집에 가서 주기적으로 집안일을 해주고 고양이를 돌보았어요. / 1년 간 배우자를 간병했어요. /몇 주 간 다리를 다친 동료의 출근 길을 도왔어요. / 동거인의 병원에 동행했어요.)

 

3. 돌봄에 참여한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참여한 사람의 수와 관계, 돌봄에서 각자의 역할, 비중 등을 적어주세요.)

 

4. 법적 가족이 아니어서 돌봄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같이 사는 동거인이 있어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코로나 걸렸을 때 돌봄을 받았고. 그리고 고양이를 저와 동거인이 없을 때 다른 친구들이 와서 돌봐준 적이 있어요.

 

저희 동네 페미니스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암 진단을 받아서 병원에 장기적으로 입원을 해야 되는 상황에 있었고, 그때 돌봄단을 꾸리게 되었어요. 동거인이 있었지만 돌봄을 전적으로 혼자 다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네 페미니스트 그룹과 아픈 친구의 아주 오래된 친구들, 또 그 친구가 하고 있는 소모임이 같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소모임 그룹이 당번 시스템으로 돌봄을 했어요.

 

제가 수술을 했을 때 돌봐준 사람이 법적 가족이 아니어서 겪은 어려움은 끊임없이 관계를 증명해야 된다는 것. 병원을 가거나 어딜 가거나 입원실에서 둘은 무슨 사이냐 그런 걸 묻는다거나. 그리고 이 관계를 증명해야 된다는 건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원 가족에게도 계속 끊임없이, 제 동거인과 다른 가족들이 계속 저의 돌봄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원가족에게 이 관계는 어떤 관계이다 어필하기 위한 활동들을 매번 하거든요. 

 

처음에 서울에 이주하게 되면서 셰어하우스에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 제가 서울에 적응할 수 있게 병원 같은 걸 알려준다거나 '이런 게 관심 있으면 이런 쪽으로 가보세요' 이렇게 추천도 되게 많이 받으면서 이런 게 돌봄이구나라고 처음 느꼈던 순간 같고. 그리고 그 이후에 친구들이랑 같이 살게 됐을 때는 항상 돌아가면서 한 명씩 아프거나 우울한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럴 때 생계적으로 공금 같은 걸 미리 모아놓고 그 사람이 회복될 동안 도와주기도 하고, 가사 노동에서 조금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양해해 주기도 하고. 또 한 명이 수렁에 빠지면 밥도 잘 안 먹게 되고 밖을 안 나가게 되는데 여러 명이니까 끌고 나가주기도 하고. 그걸 일대일로 챙기면 되게 힘든 것 같은데 여러 명이니까 한 명이 하다가 또 다른 사람이 시도하기도 하고.

 

몇 년 동안 파트너가 암에 걸려서 아파서 간병을 했고 파트너가 사망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파트너를 돌보면서 저도 친구들하고 돌봄을 굉장히 많이 공유를 하게 된 것 같아요. (...) 저는 처음에는 내가 이 사람을 다 돌봐야 된다는 욕심, 사실은 욕심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내가 얘의 주돌봄자이다라고 하는 것을 모두에게 인지시키고 인정받는 걸 너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최선을 다했던 것 같은데. 아픈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일상적인 일들을 점점 못하게 되었을 때 돌봄은 진짜 일상적인 거였어요. 나중에는 화장실에 데리고 간다,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건강할 때는 시간에 맞춰서 밥을 세 끼 먹인다. 사실 이게 제일 힘들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고 청소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고. 먹고 입고 자고 싸고 이 기본적인 것들 해결하는 게 가장 큰 돌봄이었다는 생각을 하고요. 또 중요했던 건 병원에 같이 가는 거. (...) 그래서 친구들이 이런 것들에 많이 참여를 해주기 시작했어요. 병원에 같이 데려다주고 집에 데려다주고. 요양원에 있을 때는 요양원까지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주고 좀 상태가 좋았을 때는 같이 여행을 가주고 맛있는 것도 같이 해 먹고 이런 것들을 친구들이 계속 같이 나눌 수 있었어요. 사실 저는 잘 몰랐지만 혼자 독박으로 돌봄을 한다고 했던 건 되게 저의 무모함이었던 것이죠. 돌봄은 당연히 공유해야 하는 것? 그래야 (주돌봄자인) 저도 오랜 돌봄이 가능하고. 

 
 
 

[공통 주제 수다] 

 

공통주제1. 나는 누구와 돌봄을 나눌까? 

 

이번에는 공통 주제 수다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나는 누구와 돌봄을 나눌까?’

내가 돌봄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돌봄을 요청할 수 있을지,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돌봄이 필요하다면 내가 돌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봤어요.

 
 

저번에 직장 내규 성토 집담회에서 코로나에 걸린 상황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돌봄이라든지 네트워크에 관한 얘기를 하셨는데 어떤 분은 "친구가 있으시구나 부럽다" 하시면서 코로나 걸렸을 때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현관 비밀번호를 풀어놓고 계셨다고 하셨어요. 혹시 연락이 안 되고 이러면 직장 동료라도 와서 나를 어떻게 해줬으면 해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고독사 얘기도 많이 나오잖아요. 사회적으로, 관계 자본이 없는 사람에 대한 부분도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 돌봄을 요청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누구의 돌봄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도 이슈가 되어야 해요. 아까 내가 돌보고자 하는 사람의 부모님과의 알력 이런 얘기했는데. 돌봄이 필요한 때는 정말 취약하고 신경도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상황인데 이제 혈연 가족들은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돌보려고 하는 욕구와 의무가 충만해지는데... 난 돌봄을 누구에게 요청하고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되게 크게 됐던 부분인 것 같아요.

 

사실 아직 법적 가족, 배우자 다음으로 파트너가, 어쨌든 뭔가 애인이라든가 이런 관계가 더 인정받는 관계 혹은 서로 책임자가 되는 관계라고 여겨지다보니까, 이 관계 안에서 돌봄도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가 아프거나 할 때 도움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고, 친구의 애인도 독박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내가 도움을 더 주고 싶은데도 '조금 그런가?' '얘기해도 되나?' 이렇게 주저하게 되는 부분이 있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관계도 좀 더 확장해 나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어요. 돌봄을 더 편하게 주고받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편하게 요청받고 요청할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들기도 했습니다.

 

 

공통주제2.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돌봄은?

 

두 번째 공통주제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돌봄은?’이었습니다. 

돌봄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공동체, 관계, 환경 등의 차원에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돌봄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좀 그런데 혼자 독립적으로 잘 사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특히나 자존심이 너무나 세서 누구에게 도움 요청하기를 되게 싫어하거든요. 진짜 그게 너무 심한데, 우리 모두가 돌봄의 요청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No Sorry, Yes Thank you(미안해 말고, 고마워)' 이걸 진짜 마음속 깊이 품고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야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 요청을 할 수도 있고. 그래야 우리가 공동체가 유지가 되고 삶이 유지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친구들이 같이 살다가 한 명씩 나가게 되었는데요. 같이 묶여있을 때는, 주거를 같이 하거나 이웃하거나 옆집에 살거나 이렇게 할 때는 공동체로 유지가 됐는데 한 명이 이탈하니까 본인이 거기에서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이제 거기 구성원도 아니고 타지에 사는데 민폐가 될까 봐. 그런데 남아있는 저희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꼭 같은 동네에 살지 않아도, 같이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돌봄의 공동체라는 걸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살면서 기본적으로 영위해야 되는 필수적인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돌봄과 관련된 그런 노동을, 예를 들어 가사노동 이런 것들을 공무원이 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 돌봄 노동 시장에서 그분들 임금 책정도 되게 문제 많잖아요. 노동 환경도 그렇고. 그래서 아예 공무원으로 만들어서 나라에서 필요할 때 어떤 복지 제도로 파견할 수도 있고, 필요한 사람은 비용을 내고 할 수도 있고.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까 친구가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 했는데. 물론 친구들 그룹이 있고 이런 그룹이 생겨서 여러 사람이 개입해서 돌봄을 돌아가면서 하고 독박하지 않게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죠. 그 사람들이 주는 대체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정부의 개입이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꼭 필요한 조건인 것 같아요. 좋은 돌봄이라고 했을 때. 그런 조건이 있어야 번호 키를 풀어놓지 않아도 되는. 그건 너무 슬픈 이야기 같거든요. 

 
돌봄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제가 최근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을 해서 제가 입원 병실에 간병을 갔는데 제가 간병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환자를 일으키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제가 그런 걸 할 줄을 잘 모르는 거예요. 마음은 있지만,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까. 그래서 이런 실질적인 어떤 간병이나 돌봄, 보육이나 이런 것들도 보편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배울 수 있어야 되겠구나.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 영역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시민교육으로서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나도 할 수 있지,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라는 기본 세팅이 되는 게 인식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돌봄에 대한 인식 얘기가 나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까지가 돌봄일까에 대한 생각 자체가 너무 없다라는 거고. 돌봄이라는 단어에 너무 큰 무게가 이미 지워져 있는 거예요. '돌봄장'을 만들면서 얘기를 나눴던 건 돌봄은 정말 그렇게 큰 무게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돌본다고 하는 것은 정말 ‘물건 사서 너네 집 앞에 놔둘게’ 아니면 ‘내가 대신 주문해줄게’ 이런 것들부터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다양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내가 돌봄을 해,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돌봄이 정말 다양하다. 이것도 돌봄이잖아. 내가 너네 집 가서 식물에 물 한번! 너의 식물을 내가 함께 돌봐주었다! 이런 거까지 좀 돌봄의 범위를 넓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어떤 돌봄을 내가 필요로 하는지 아는 게 또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아팠던 경험이 거의 없고 그냥 아파도 혼자 좀 이렇게 감내하고 그런 캐릭터이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거예요. 아팠을 때, 어떠한 돌봄을 나는 원하고 어디까지 돌봄을 요청할 수 있을지를 내가 알아야지 그걸 또 경험해야지 타인을 돌봄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돌봄 받고 싶은지를 모르니까 동거인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시간이 좀 있기도 하고, 그래서 거기에서 오는 어떤 감정의 약간 삐걱거림과 어려움도 있었고.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번 친구들이랑 했거든요. 너는 어떤 돌봄을 원하니? 라고 했을 때 어떤 친구는 나는 심부름만 해주면 된다. 완전 Thank you. 그리고 어떤 친구는 아프냐, 지금 상태가 어떠냐 라는 걸 끊임없이 물어보는 돌봄을 나는 원한다. 그런 얘기를 관계망 속에서 계속하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그것뿐만 아니라 친구가 그 얘기 했거든요. 친구들하고 어떤 돌봄을 원하니?에서 약간 더 가서 어떤 돌봄을 누구에게까지 요청할 수 있냐, 그러니까 정확히 물어봤던 건 정말 네가 아파서 누워있을 때 네 똥을 누구까지 닦아달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니? 나 괜찮아? 아니면 너 엄마 괜찮아? 제 파트너는 엄마한테 그렇게 하는 거보다 너에게는 가능하다, 이런 얘기를 하기는 했는데. 그런 정말 구체적인 것들 하나하나 상상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키워드 수다] 
 

 

(사진 설명(왼쪽): 포스트잇에 키워드들이 쓰여있다. ‘돌봄 공동체’, ‘가족요양보호사’, ‘보호자 권리’)

(사진 설명(오른쪽): ppt화면에 키워드들이 나열되어 있다.)

 

본격적인 키워드 토크를 시작했어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적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키워드 1. [가족요양보호사]

 
 
저는 결혼하지 않고 살 거로 생각하고 제 원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거든요. 근데 점점 내가 나이 드는 만큼 내 부모도 나이가 드니까 저는 이제 부모 돌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제가 삼남매 K-장녀인데. 이 두 명의 동생들은 다 결혼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정말로 법적 가족을 구성하고 부양해야 되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이 연로한 부모에 대한 돌봄에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고개의 방향이 저에게로 향하고 저도 나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끊임없이 다짐하는 것은 이 부모 돌봄과 관련해서 동생들과 어떻게 배분해 나갈 것인가 그걸 고민하고 실천을 해야 된다. 하지만 가족 요양보호사들이 진짜 많이 있고 거기에 주로 돌봄 하는 1순위가 딸들이고 심지어 제가 되게 좀 충격적으로 놀랐던 사례는 조카가 이모부를 돌보는 사례도 있더라고요. 가족 요양보호사로서. 이게 정말 가부장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의 돌봄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라는 걸 느꼈는데. 그냥 언젠가 저 가족 요양보호사라는 게 나의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게 말이 좋아 가족 요양보호사지, 그냥 가족이 하게 만들어놓고 돈을 조금 주는 그런 방식인 거여서 너무 문제가 많은데. 사람들은 어쨌든 편한 사람한테 돌봄을 받고 싶어 하니까. 기댈 사람 결국 가족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너무 공감이 갔던 게 왜 제가 비혼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자동으로 돌봄에 배정되어야 되는지. 저는 다섯 시간 거리에 살고 있고 다른 형제가 더 가까운 데 살고 있음에도. 그런데 이 무게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엄마한테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나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키워드 2. [보호자권리/면회권/정보접근권]

 

 

저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동거인이 그 장례식장에 함께 3일 동안 참석하고 싶어했어요. 외할머니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근데 동거인이 직장에 경조사 휴가를 요청을 했어요.  그 직장은 그래도 나름 영리이기는 하지만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직장이라서 이야기를 했는데 직장에서 '경조사 휴가를 좀 주기에는 어렵고 재택 처리로 할게. 그래서 장례식장에 다녀와.' 그렇게 되기는 했거든요. 그나마 재택 처리가 됐던 이유는 그 상사가 페미니스트이고 저와 동거인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재택 처리조차 불가능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 보호자 권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매우 곤란했다는 얘길 드리고 싶은데. 왜냐하면 면회권이 굉장히 한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는 동성 파트너가 있는 상황이고 그 파트너의 어머니는 둘이 파트너인 상태를 전혀 모르시는 분인 거예요. 그래서 이제 나중에 호스피스에 가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호스피스는 정말 오늘내일인 거잖아요. 그런데 어머니가 들어가겠다고 하셨을 때, ‘내가 안 돼요, 내가 가야지.’ 이렇게 얘기를 절대 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법적 파트너였으면 저 어머니가 나를 제치고 내가 들어가겠다고 했을까.’ 이 생각이 되게 많이 들고. 나중에 그러다가 전화로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이 얘기 들을까 봐 되게 무서웠거든요. (...) 법적 가족이라고 하는 테두리는 정말 맨 마지막 가장 결정적인 곳에서는 힘을 발휘한다. 이 모든 정보, 나중에 진단서를 뗀다거나 아니면 도와서 같이 일을 하려고 해도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와야 되는 게 되게 많더라고요. 호스피스 갈 때도 호스피스 상담을 해야 되는데 환자가 못 움직이면 제가 대신 가야 되는데, 가면 네가 왜 오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법적 가족이 상담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 저는 환자의 동의서, 위임장 이런 거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눈물에 호소를 하고 이런 걸 해야 됐기 때문에 정말 가장 끝부분에서는 진짜 법적이라고 하는 건 이럴 때 나타나는 구나.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가까운 사람이 아파서 응급실 같이 갔을 때 코로나 때문에, 친구라고 얘기했더니 "밖에서 기다리세요." 이러는 거예요. 얘가 그래도 대화는 할 수 있고 그런 상태이기는 해서 일단 집에 가기는 했는데, 얘가 얼마나 더 아플지 모르는 상태니까 얘가 혹시나 많이 아파졌으면 어떡하지? 근데 그럴 때 나한테 연락이 오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법적 가족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 게 되게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 있어서. 그래서 비상연락망 이런 게 법적으로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되게 많이 들고. 내가 아팠을 때도 사실 지금 나랑 가까운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인데, 저기 멀리 있는 내가 몇 달에 한 번 보지도 않은 부모님한테 연락이 가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그런 생각이 너무 드는 거예요. 확실히 특히나 이렇게 아플 때나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원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한테 실질적으로 보호자 권리가 주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보호자 권리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거부할 권리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동거인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게 됐는데 저희도 ‘친구예요.’ 이렇게 말하니까 ‘따로 오세요.’ 해서... 근데 부모랑 절연을 했는데 어떻게 거기서 부모한테 전화를 하게 돼서 지역에 계시던 부모님들이 새벽에 올라와서 혼돈의 상황이... 그래서 이게 제도로 묶이고 해체되고 하는 게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
 

 

키워드 3. [돌봄공동체]

 

 

독박 돌봄을 하지 않으려면 공동체가 있어야 되고 그 공동체를 꾸리는 방법이 저한테는 사회적 가족의 형태인데. 왜 해외에도 파트너십 같은 제도로 여러 사람을 묶은 게 없을까? 했을 때 행정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가 돈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두 명도 일이 커지는데 이게 1:1:1이 되는 순간 이게 몇 배로 더 커지고 해서 절대 그 비용을 사회가 감당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저는 일대일 관계는 너무 서로에게 독박 돌봄을 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꾸릴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사회적 가족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런 거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그 간병의 경험 이후로 네트워크, 공동체 이런 것을 좀 구성을 해봐야 되나? 이런 고민을 좀 하고 있어요. 그 당시에 간병을 했을 때도 가장 병실 간병을 많이 한 돌봄자가 있었고 그다음으로 제가 같이 많이 하면서 저는 주로 아픈 사람의 집안과 그 사람의 반려동물을 거의 책임지고 청소, 빨래하고 이런 것들을 거의 다 책임지다시피 했거든요. 그리고 그 외의 친구들이 필요한 거 챙겨다주고 왔다 갔다 하면서 거의 주변의 관계 자원이 다 돌아간 거죠. 그래서 그런 식으로 가능한 사람들을 엮어서 뭔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을 항목화도 해보고 비상 연락망 같은 것도 만들고 그런 것들을 시도해봐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5년 전만 해도 다들 아픈 데가 거의 없었는데 다들 좀 아프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이제 슬슬 필요한가? 생각이 들어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너무 관계에만 기대서 해야 한다는 게 많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기도 해요.
 
저 같은 경우 독박 돌봄을 하려고 했다가 주변의 친구들이 알음알음 도와줬는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긴박해지니까 갑자기 정말 따로따로였던 세 그룹 정도 되는 친구들이 단톡방을 하나 파서 자기들이 돌봄 공동체를 만들었거든요. 그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던 건 정말 이 공동체 친구들이 제가 해야 되는 어떤 결정들을 같이 도와주거나 그걸 집행하는 것들을 본인들이 척척 나눠서 진행을 해주는 그 자체가 굉장히 실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이것은 그냥 저희가 기존에 어떻게 우리가 돌봄 공동체를 만들어 놔야지가 아니라 어떤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다 같이 모여서 대응할 것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들이 다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기존에 아픈 사람을 돌봐봤다거나 그런 경험들이 다들 조금씩 있었기 때문에 또 가능하기도 했던 것 같고.
 
돌봄 공동체 하면 정말로 누구누구 그렇게 구성원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레이어(층)가 겹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계속 겹쳐지고 흩어지려면 저는 아까 말한 것처럼 'No Sorry, Yes Thank you' 진짜 필요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 근데 그러려면 정말로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가, 지역이라는 게 되게 중요하게 작동되는데. 저의 염려 중 하나는 저는 터전이 은평이거든요. 그래서 거기 페미니스트 친구들도 있고 사무실 동료들도 있어서 레이어가 겹쳐질 것 같기는 한데 이 은평 집값이 점점 올라가면 나는 은평을 떠나게 될 것 같은 염려가 있거든요. 내가 집을 사거나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돌봄이라는 게 진짜 주거와 연동이 된다.

 

 

 

[마무리. 돌보고 돌봄 받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마무리 프로그램으로, 참여자가 모두 함께 '누구나 돌보고 돌봄 받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조건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보았어요. 
 
 
(사진설명: 집담회 참여자들이 마인드맵을 그리고 있다. )
 
 
(사진설명: 마인드맵 사진. 가운데 타원 안에 '돌보고 돌봄받는 사회'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관계-가족의 해체와 조립이 자유롭게!, 동네친구,네트워크가족,돌봄장,돌봄TF, 식구 / 권리-주거권, 돌봄거부권, 수술동의서, 정보접근권, 면회권, 보호자권리 / 인식-돌봄 1kg~1000kg, 노 쏘리 예스 땡큐, 돌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 향상, 돌봄공교육 / 제도-돌봄휴직, 돌봄공무원, 생활동반자법,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민법 779조 삭제 등의 내용이 영역별로 적혀 있다.)
 
참여자들이 완성한 '누구나 돌보고 돌봄 받는 사회를 위한 조건' 마인드 맵이에요. 
후기를 보시는 여러분도, 좋은 돌봄을 위한 사회적 조건들을 함께 고민해보시면 어떨까요? :) 
 
 
 
3회차를 마지막으로 〈뚝딱뚝딱, '가족' 새로 짓기〉 집담회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집담회는 혈연, 혼인 중심의 '정상가족' 관념 속에 구겨져 들어가 있던 수많은 권리와 의무들, 삶의 이야기들을 펼쳐내고, 
사람들의 실제 경험에 맞추어 가족을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였어요. 
 
집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협소한 '법적 가족' 기준을 바꾸기 위한 액션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뚝딱뚝딱, '가족' 관념을 새로 짓기 위한 성평등복지팀의 앞으로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