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반성폭력[기자회견문] 연극계 원로배우 오00 성폭력 사건 선고 공판 기자회견 연극계 성폭력,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03/15)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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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문 

 

 

연극계 원로배우 오00 성폭력 사건 선고 공판 기자회견

연극계 성폭력,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2018년 2월,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연극계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연극계에서 영향력이 있던 자들의 성폭력 가해 사실도 공론화되었고, 연극계에서 성폭력이 묵인될 수 있었던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 사건 역시 과거에 공론화되었던 연극계 성폭력과 너무나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모 시립극단에서 함께 연극에 참여했다. 피고인은 연극계에서 60년에 달하는 경력을 가진 원로배우로서 극단 연출가가 특별 초빙한 주연배우였다. 반면 피해자는 인턴 단원으로 합류했던 사회초년생이었으며, 둘의 나이 차이는 50살 이상이었다. 피해자는 연극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선배들의 선배님이었던 피고인에게 피해 이후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우호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겪었던 연극계의 위계질서는 하루 아침에 발생하지 않았다. 연극계는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이 만연한 노동 시장 속에서 빈번하게 학벌, 지연, 사제 관계 등의 인맥 중심으로 채용이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구직자는 극단에서 영향력 있는 자의 눈 밖에 나지 않게 눈치를 보면서 관계를 맺게 되는 구조가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 아래 연극계의 성폭력은 관습적으로 이루어졌다. 2018년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성희롱·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은 전체 응답자의 57.7%였으며, 가해자는 ‘선배예술가’ 64.9%, ‘기획자 및 감독’ 52.5% (복수응답) 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성희롱·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예술계 특유의 분위기(64.7%, 복수응답)’ 가 꼽혔다.

 

 이렇게 성폭력에 관대한 문화 속에서 조증윤, 이윤택, 하용부, 조민기 등은 연극계 내 자신의 영향력과 권위를 이용하여 성폭력을 가했다. 이들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이 사건의 피해자처럼 가해자들에 비해 나이, 연기경력, 극단 내 영향력 등에 있어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연극계 성폭력은 연극계에 널리 퍼져 있는 성차별적 문화와 위계질서에 기반한 것이며, 단순히 일부 인물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피해자는 연극계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잊고 지나가자’라고 생각하며 성폭력 피해에 대해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다음 피해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갖 공격의 대상이 될 것임을 알고도 용기를 내어 고소를 결심하게 되었다. 처음에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문자를 발송하였고,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피고인은 피해자의 고소 이후 태도를 바꾸면서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하였으며, “길 안내 차원에서 손을 잡은 것”이라고 주장하여 마치 범행이 ‘손을 잡은 것’에 국한된 것처럼 성폭력 가해 사실을 축소하였다. 피고인의 이러한 행태는 본인의 성폭력을 ‘호의’와 ‘친분’으로 무마하려고 한 과거의 연극계 성폭력 가해자들과 닮아 있다.

 

 성폭력은 ‘호의’, ‘친분’, ‘관행’으로 은폐할 수 없으며, 정당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피고인의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다시 한 번 연극계 성폭력은 ‘오랜 관행’이 아닌 ‘성폭력’임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피고인은 이제라도 가해 사실을 무마하려는 행위를 중단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또한 일부 연극인들은 피고인의 편에 서서 피해자를 비난하고 성폭력 가해 사실을 은폐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연극계 성폭력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며 앞으로도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성차별적 구조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2024. 03. 15.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