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사회현안[논평] 反여성, 反성평등, 反민주주의의 윤석열 정부 1년 - 우리는 반동을 저지하며 전진할 것이다.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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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反여성, 反성평등, 反민주주의의 윤석열 정부 1년

- 우리는 반동을 저지하며 전진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1년이 지났다. 집권 전부터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백래시와 여성혐오를 땔감처럼 활용했던 대통령이다. 반전은 없었다. 오랜 시간 어렵게 쌓아 온, 사회 정의를 향한 변화들이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변화를 만들어 온 주체와 도구는 무력화되었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힘을 얻었다. 정치 뉴스를 보며 환멸을 느끼는 일에 익숙해졌다. 사회가 총체적으로 퇴행하고 체계적으로 망쳐지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그로 인한 무력감이 팽배해졌다. 그러나 환멸과 무력감에서 그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하고 부정의한 퇴행을 마치 거대한 자연현상인 양 놓아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분노와 그에 기반 한 행동이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후퇴시켜왔는지를 적시한다.

 

 

일하는 여성을 집으로 등 떠민 정부, 가부장적·성차별적 노동정책으로 일관

 

‘주 120시간 일하고 마음껏 쉴 수 있어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한다’ 등 후보 시절 망언이 집권 후 고스란히 정부 정책으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지난 1년, 정부는 여성/성평등 노동정책을 삭제하고 유예하며 국가로서 책임을 방기했다. ‘주 69시간 근무제’ 발표,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법’ 발의, 노조의 정당한 파업에 위법적 업무개시 명령으로 대응, 그밖에도 지지율 위기 때마다 노조 탄압을 강행하며 노동혐오를 보여줬다. 노동 환경이 후퇴될수록 가장 먼저 영향 받는 것은 노동취약계층 그리고 여성노동자다. 더욱이 장시간 근무가 당연시되는 직장에서, 돌봄 담당자로 호명되는 여성은 덜 채용되고, 덜 승진하고, 더 차별받고, 더 해고되고, 더 사직한다. 불평등한 노동시장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출근은 바로 투쟁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채용부터 해고까지 노동시장 안에 버젓이 존재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더욱 강화시키는 가부장적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공공성 축소, 국가 책임의 삭제와 가부장적 가족주의로의 회귀

 

전국의 사회서비스원이 통폐합·예산 삭감 등으로 무력화되고, 국공립돌봄시설 확충 및 초등돌봄교실 지원 예산 등이 대폭 삭감된 가운데 돌봄 사회서비스를 민간주도로 개편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공적 돌봄이 축소될 때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데에 동원되는 것은 여성이다. 또한, 각종 소득지원과 공공일자리 정책이 축소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5조 7천억원이 삭감되었다. 이러한 사회안전망의 축소 역시 구조적 차별의 대상인 여성의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근거하여 가구 단위로 설계 및 운영되는 기존 복지체계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자 했던 정책 목표를 철회했다. 또한, 시장에서 돌봄서비스를 구매할 비용을 각 가정에 일부 지원하는 방식에 그치며 돌봄을 재가족화하는 한편 양육 주체를 부모로만 상정하는 ‘부모급여’ 지급을 보육 정책으로 내세운 데서 잘 드러나듯 그 지원조차 ‘정상가족’ 통념에 갇혀 있다. 이처럼 복지제도에서 성차별적 가족 내 성별 분업을 전제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강화되면, 기존 가족구조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 온 여성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다.

 

 

"내 편 아니면 적", 이분법적 언론관이 후퇴시킨 민주주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을 압박하고 언로를 차단하는 불통의 언론관을 보여주었다. 미국 순방 비속어 논란을 보도했던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고, 급기야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을 답하던 ‘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또한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하며 공영방송을 위협하고, 공기업이 보유한 YTN 지분을 매각하여 민영화를 강행, 미디어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 양당 대결 구도에 좌지우지됐던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방식을 개선하고자 하는 방송법 개정안에는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미디어 산업 경쟁 심화로 인해 정치적 편향성이 강화되고, 갈등과 분열이 조장되며, 폭력성·선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가 공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고민되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미디어에 대한 몰이해 속 언론탄압, 공공성 파괴, 규제완화가 민주주의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

 

 

‘진짜’ 피해자 가려내기에 급급해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방조

 

윤석열 정부가 ‘무고죄 처벌 강화’를 성폭력 관련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출범한 이래,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2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건,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 사건,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폭력 사건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는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변경하는 비동의 강간죄 개정 계획에 대해 ‘억울한 사람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상 백지화했다. 또한 성폭력 처벌법상 피해자다움의 관점에서 범죄 유무를 판단하는 ‘성적 수치심’이란 기존 용어를 삭제하고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라는 사회적 요구와 양형위원회의 권고에도 같은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정부 기조는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라는 이분법을 강화하여, 피해자들이 무고죄로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확산시켰다. 여전히 성범죄 신고율이 3% 미만인 현실 속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피해자들의 신고를 가로막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며 용인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과 ‘성평등’ 지우기로 지역사회 성평등 추진체계 와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동하며 성평등 추진 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성평등’ 지우기를 감행하였다. 구조적 성차별을 보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정부는 민선8기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추진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역 내 성평등 정책을 추진할 실천주체인 전담부서와 정책연구기관, 위원회 등의 명칭이 변경되었고, 기구는 통·폐합되었으며 비상설화되어왔다. ‘여성’은 ‘인구’와 ‘가족’으로, ‘성평등’은 기계적인 양성평등의 수준으로 대체됨으로써 지방행정에서 여성정책은 사라지고 복지정책이나 가족정책만 남는 퇴행이 본격화되었다. 또한, 행정추진체계 내의 젠더 전담관이 축소·개편되었고, 여성커뮤니티센터 등 공간은 폐쇄되고, 성평등 사업 예산이 삭감되면서 성평등 실현을 위한 추진 동력은 사라지고 있다. 이는 수십 년간 성평등한 조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왔던 모든 노력을 무화시키는 명백한 과거로의 퇴행이며, 성평등이 국가와 지방조직의 책임임을 방기하는 처사이다.

 

 

 

이토록 전방위적인 퇴행과 그것을 자유나 공정 같은 말로 포장하는 현 정부의 뻔뻔함은 우리가 작게나마 일구어 오던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대를 상실케 한다. 그리고 그 절망감이 만드는 각자도생의 세상은 다시 이러한 퇴행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평등과 인권을 위한 싸움의 역사는 자기 삶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부정의한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이 결국 정치적 퇴행을 차단하고 전환해 왔음을 일깨워준다. 지금 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은 단지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무지와 무능만이 아니다. 남은 4년,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해 이 퇴행을 중단하고 바로잡고 나아가 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할 정치적 주체들에게 그 책임을 다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할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철폐되고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우리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2023년 5월 8일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