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미디어[논평] 천안함 사태, 안보과두체제가 빚어낸 공포의 현실

201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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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천안함 사태, 안보과두체제가 빚어낸 공포의 현실

원인이 무엇으로 밝혀지든 간에 천안호 사태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총체요 폭발이다. 천안호는 군 작전 중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지만 얼마든지 지혜롭게 수습할 수 있었다. 실종자의 가족들이 겪은 슬픔과 상처도 사회적으로 나누면서 치유해나갈 수 있었다. 침몰 원인과 실체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신속한 사후대처만 했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군과 언론은 천안호 사건을 사태로 만들어 놨다. 납득할 수 없는 사후 대처, 은폐와 왜곡, 거짓 해명과 알리바이 짜깁기로 가족들과 시민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군은 새떼를 향한 경고사격에서 고속 북상하는 미확인물체를 향한 사격으로, 부표 설치 사실 번복, 민간어선의 천안함 함미 발견에 대한 왜곡, 15-16회 이동하던 작전지역이었다는 설명에서 당일 기상에 따른 피항으로, 열상감시장비 활영영상과 교신내용 미공개, 북 어뢰 관련설 등 브리핑만 했다하면 말을 바꾸고 은폐하는 행보를 해왔다.

군의 횡설수설에 정부는 단호한 조치를 하지 않고 시간만 벌어왔다.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함몰 직후인 3월26일 오후 10시 최초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이래 지금까지 네 차례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정부가 한 일은 ‘내용을 공개하라’고 다그친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 사이 북한 관련설은 국방장관과 군 고위관계자 그리고 조선.중앙.동아 찌라시와 방송3사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유포되었다. 천안함 사건을 천안함 사태로 키운 핵심 고리가 바로 이 지점이다. 군과 정부가 하나의 알리바이를 놓고 역할 분담하며 기민한 대응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군이 정부에조차 진상을 보고하지 않고 기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권력과 군대와 극우전쟁세력과 보수언론의 ‘안보’ 과두체제가 빚어내는 허구와 폭력의 실체이다.

조선,중앙,동아는 국방장관과 군 관계자의 검증되지 않은 코멘트에 기대 결정적인 증거도 없이 북관련설을 유포해왔다. 극우전쟁세력은 과거 정부가 ‘KAL 007 피격’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폭파’ 때 즉각 소련이나 북한정권의 도발로 단정해 국민의 분노를 슬기롭게 관리했다며 이명박 정부를 추궁했고, 이 찌라시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위기 대처에 무능하다고 다그치며 공포를 조장했다. 4일 저녁 MBC 뉴스가 사건일지를 보도하기 전까지는 지상파 방송3사의 뉴스도 다르지 않았다. MBC는 단지 사건일지를 보도했을 뿐인데 그래도 MBC라는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저널리즘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웅변하는 안타까운 단면이다.

실종자의 가족, 한주호 준위의 가족, 98금양호의 가족 그리고 시민사회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도 10일째가 되도록 사건의 실체조차 확인되지 않는 기이한 세상이다. 이 가공할 정체불명의 세상을 폭로하고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은 결국 ‘안보’ 과두체제의 고리에서 자유로운 저널리즘과 시민사회 밖에 없다. X-파일과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쇠고기 사태에서 그랬듯이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비판적 집단지성의 활약만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고 모든 이들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2010년 4월 5일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미디어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