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같은 집에서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수잔💫 사람이 불편하지만 너무 좋은 내성 외향인.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려고 민우회에 가입했다.
9월의 어느 아침,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밥그릇을 비운 뒤 개수대로 향해 설거지하기까지의 과정이 꼭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귀찮아서 그냥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당장 해치우겠다 결심하는 순간도 없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개수대를 닦으며 알았다. 밥을 차려 먹고 치우기까지의 과정이 자동화되었음을. 그런 아침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집안일이라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던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 밥을 잘 차려 먹는 어른으로의 성장은,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부엌을 가졌다는 뜻이다.
집을 이루는 것들 🏠
일련의 사건들로 급하게 독립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처음 1년은 고시원에서 지냈었지만, 지급 집에서 지낸 시간만 따져도 7년이다. 7년 동안 내 집은 쓰레기집 상태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따금 외부의 도움으로 반짝 치워졌다가도 금세 다시 쓰레기집이 됐다. 그간 나를 거쳐 간 모든 심리상담사에게 집 얘기를 했다. 집이 더러운 게 얼마나 힘든지 말했다. 동시에 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벗어나려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집이 좀 더러워도 신경을 안 쓰기도 해요. 그런데 수잔은 아니에요. 오히려 집에 압도당해서 엄두가 안 나는 것 같아요.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해봐요.”
매일, 조금씩. 가장 합리적이고, 정답에 가까운 조언이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해보려던 시도 역시 여러 차례 좌절됐다. 집은 계속 더러웠다. 계속 더러운 내 집에 대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아주 슬프고 처참한 심정이 됐다. 늘 쓰레기 속에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울음을 그치고 노력하는 날도 있었다. 종종 청소 서비스를 이용했다. 효율적인 가구 배치에 대해 고민했다. 정리정돈 블로그를 정독하며 방법을 찾으려 했다. 원인을 파악하기도 했다. 내 집에는 규칙이 없고, 물건은 많았다. 모든 물건이 잡동사니 같았다. 언젠가 청소를 도와주러 왔던 친구가 훼손된 잡동사니 하나를 가리켜 물었다.
“이건 버리는 거지?” “그건 소중한 거야.” “이렇게 만들어버렸으면 소중한 게 아니지.”
속상했지만, 정답 같은 그 말을 참 오래 곱씹었다. 소중한 물건들을 소중하게 대하려면 정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정리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공간이 생기려면 정리를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때 내게 소중했던 물건들을 아주 많이 버려야 했다.
(이미지: 얼마 전 버린 지갑. 좋아했던 마음이 생생하지만, 너무 훼손되어 버렸다.) 집을 치우는 것 말고도 버거운 게 많았다. 가족 없이 홀로 서야 했다. 정신과와 심리상담소에 다니며 조울증 치료를 받았다. 사회초년생으로 적응해야 했다. 정리는 자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래도 가끔이나마 시도했던, 집을 돌보려는 노력이 모여 오늘의 나에게 밥상을 차려주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집 🍚
부엌을 완성하는 열쇠는 설거지였다. 부엌에서 무엇을 하든 설거지는 필요하므로 중요하다. 설거지 양이 많아도 한 번에 건조할 수 있게끔, 또 개수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설거지 바구니를 쌓아 올렸다. 바닥까지 구멍이 송송 뚫린, 적층 가능한 바구니가 내 설거지 바구니다. 물기 없이 마른 그릇들은 찬장을 열어 가장 아래 칸의 큰 바구니에 포개 정리한다. 또 개수대 밑 수납공간에는 설거지 비누와 천연 수세미가 모여있다. 설거지에 필요한 것들은, 필요할 때마다 새로 꺼낼 수 있다.
(이미지: 설거지 바구니.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적층하지 않고 포갤 수 있다.) 설거지는 겨우 부엌을 완성했을 뿐임을 안다. 부엌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여전히 버려지거나 정리될 때를 기다리는 잡동사니가 많다. 버리기엔 너무 작고 소중하지만, 더 이상 아무 기능이 없어 정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버리냐 마냐 하는 고민은 뒤로 하고 부엌에 서면, 그래도 집 같은 집에서 사는 것 같다. 나는 이 집에서 밥을 짓고, 양배추를 삶고, 식사를 할 수 있다.
(철제 냄비에 지은 밥, 백미와 찰현미, 렌틸콩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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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사람이 불편하지만 너무 좋은 내성 외향인.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려고 민우회에 가입했다.
9월의 어느 아침,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밥그릇을 비운 뒤 개수대로 향해 설거지하기까지의 과정이 꼭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귀찮아서 그냥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당장 해치우겠다 결심하는 순간도 없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개수대를 닦으며 알았다. 밥을 차려 먹고 치우기까지의 과정이 자동화되었음을.
그런 아침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집안일이라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던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 밥을 잘 차려 먹는 어른으로의 성장은,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부엌을 가졌다는 뜻이다.
집을 이루는 것들 🏠
일련의 사건들로 급하게 독립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처음 1년은 고시원에서 지냈었지만, 지급 집에서 지낸 시간만 따져도 7년이다. 7년 동안 내 집은 쓰레기집 상태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따금 외부의 도움으로 반짝 치워졌다가도 금세 다시 쓰레기집이 됐다. 그간 나를 거쳐 간 모든 심리상담사에게 집 얘기를 했다. 집이 더러운 게 얼마나 힘든지 말했다. 동시에 그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벗어나려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집이 좀 더러워도 신경을 안 쓰기도 해요. 그런데 수잔은 아니에요. 오히려 집에 압도당해서 엄두가 안 나는 것 같아요.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해봐요.”
매일, 조금씩. 가장 합리적이고, 정답에 가까운 조언이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해보려던 시도 역시 여러 차례 좌절됐다. 집은 계속 더러웠다. 계속 더러운 내 집에 대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아주 슬프고 처참한 심정이 됐다. 늘 쓰레기 속에서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울음을 그치고 노력하는 날도 있었다. 종종 청소 서비스를 이용했다. 효율적인 가구 배치에 대해 고민했다. 정리정돈 블로그를 정독하며 방법을 찾으려 했다. 원인을 파악하기도 했다. 내 집에는 규칙이 없고, 물건은 많았다. 모든 물건이 잡동사니 같았다. 언젠가 청소를 도와주러 왔던 친구가 훼손된 잡동사니 하나를 가리켜 물었다.
“이건 버리는 거지?”
“그건 소중한 거야.”
“이렇게 만들어버렸으면 소중한 게 아니지.”
속상했지만, 정답 같은 그 말을 참 오래 곱씹었다. 소중한 물건들을 소중하게 대하려면 정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정리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공간이 생기려면 정리를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때 내게 소중했던 물건들을 아주 많이 버려야 했다.
(이미지: 얼마 전 버린 지갑. 좋아했던 마음이 생생하지만, 너무 훼손되어 버렸다.)
집을 치우는 것 말고도 버거운 게 많았다. 가족 없이 홀로 서야 했다. 정신과와 심리상담소에 다니며 조울증 치료를 받았다. 사회초년생으로 적응해야 했다. 정리는 자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래도 가끔이나마 시도했던, 집을 돌보려는 노력이 모여 오늘의 나에게 밥상을 차려주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집 🍚
부엌을 완성하는 열쇠는 설거지였다. 부엌에서 무엇을 하든 설거지는 필요하므로 중요하다. 설거지 양이 많아도 한 번에 건조할 수 있게끔, 또 개수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설거지 바구니를 쌓아 올렸다. 바닥까지 구멍이 송송 뚫린, 적층 가능한 바구니가 내 설거지 바구니다. 물기 없이 마른 그릇들은 찬장을 열어 가장 아래 칸의 큰 바구니에 포개 정리한다. 또 개수대 밑 수납공간에는 설거지 비누와 천연 수세미가 모여있다. 설거지에 필요한 것들은, 필요할 때마다 새로 꺼낼 수 있다.
(이미지: 설거지 바구니.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적층하지 않고 포갤 수 있다.)
설거지는 겨우 부엌을 완성했을 뿐임을 안다. 부엌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여전히 버려지거나 정리될 때를 기다리는 잡동사니가 많다. 버리기엔 너무 작고 소중하지만, 더 이상 아무 기능이 없어 정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버리냐 마냐 하는 고민은 뒤로 하고 부엌에 서면, 그래도 집 같은 집에서 사는 것 같다. 나는 이 집에서 밥을 짓고, 양배추를 삶고, 식사를 할 수 있다.
(철제 냄비에 지은 밥, 백미와 찰현미, 렌틸콩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