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ing💭]네 제가 바로 그 페미니스트입니다만...❓


네 제가 바로 그 페미니스트입니다만...❓




💜보라/여성노동팀

롤러코스터 같은 한 해였습니다.

부디 범퍼카 정도의 적절한 난이도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왜 ‘페미니즘 사상검증’인가


2016년 넥슨 성우 교체 사건, 2021년 ‘안산 숏컷 논란’, GS25 ‘집게손’ 논란, 2024년 르노코리아 ‘집게손가락’ 논란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게임업계, 온라인상 공격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스트로 추정되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성노동자들이 분명히 경험하고 있는 부당한 일이지만 기존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으로는 충분히 설명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더 많은 사례를 모으고 알려내는 활동으로 ‘페미니즘 사상검증’, 지울 수 없는 여성노동자의 존재‘라는 제목으로 올해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먼저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너 페미니스트야?”라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상사로부터 “너 페미야?”라는 질문을 들은 사람, ‘페미’로 낙인찍혀 어려움을 경험한 창작자 등 다양하게 분노스러운 경험을 50여건의 설문과 6명의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이들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터에서 굳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은 없으며, ‘분위기가 불편해질 것을 감수’하고 페미니스트라고 먼저 밝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공통적이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비꼬려고, 아니 백번 양보해서 누군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하지만 모를 수 있다는 것조차 권력이라는 걸 이제 제발 알 때가 되지 않았나!) “너 페미야?”라고 물어봤을 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위축되어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여성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터와 일상의 간극도 인상적이었다. 인터뷰이들은 또래 여성 친구들과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당연하게 나누지만 일터에서는 말을 아끼게 된다고 했다. 오히려 남자동료들이 반페미니즘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일터에서 하기도 한다고 분노를 나누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게 말 할 수 있는 남성과 침묵을 선택하는 여성의 간극은 어디에서 오는가, 또한 일터와 일상의 간극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떤 경험이 될까 생각해보았다. 일과 내가 분리되는 느낌, 일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감각,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지 끊임없이 검열하는 시간, 반복되는 상황에 느껴지는 답답함과 괴리감 같은 게 아닐까?



법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뭐가 필요할까?


나의 경우 일터에서 어떤 문제를 인지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혹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라고 생각할 때 답답함을 느낀다. ‘일’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는 피할 수 없기에 결국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가 핵심이고, 문제 인식부터 해결까지의 일련의 경험이 동료를 신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 조직을 떠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법률은 직장 내 문제 해결의 다양한 방법 중에서 고충처리절차를 근로자의 권리로 보장하고 있다.(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제26조 등) 하지만 인터뷰이들은 직장 내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포함해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거칠 수 있는 고충처리절차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라거나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일터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퇴사를 무릅쓰고 상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한다’라고 말한 인터뷰이도 있었다. 인터뷰 뿐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 상담을 할 때도 ‘고충처리절차가 없다’거나 ‘모른다’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경험했을 때 ‘참는다’와 ‘퇴사한다’ 이외의 선택지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한 명의 주체로서 노동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동료에, 조직에 나누고 함께 해결하는 과정을 거쳐 계속해서 일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


인터뷰를 하면서 2015년경 있었던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떠올랐다. 여전한 (어쩌면 더 교묘해진)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와 오독 속에서 ‘2024년에 다시 일터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을 해야하는 걸까?’ 상상해보았다. ‘페미니스트인 직장 동료들을 모아 FEMINIST 알파벳이 한 글자씩 쓰여진 티셔츠를 나누어 입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 그러면 F인 사람이 대표로 공격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우스갯소리도 활동가들과 나누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상상해봤을 때 선언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나아가 불평등한 조직문화, 노동환경을 바꿔 나가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공격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은 정말 시끄러운 소수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당신 편이기 때문에.”

 

노동팀이 만났던 사람들은 일터에서 ‘페미니즘’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동시에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인류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려 하면서 소진되고 지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이자 구성원으로서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대응할 수 있는 장치를 제안하고, 동료들과 힘을 합쳐 노동환경을 바꿔내고 있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넘어 안전한,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무엇이 필요할지 11월 7일 토크쇼에서 나눠보고 싶다.(제발 많이 와주세요)



(이미지: 토크쇼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넘어서는 우리의 이야기 홍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