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잘해보자! -몽실이의 서울 상경기🚚
몽실☁ 별자리 탄생주간이 ‘어린이 주간’임을 알고 해방감을 느낀, 별게 다 궁금한 활동가!
(이미지: 서울에서 찍은 사진) 서울살이는 ~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조금은 어려워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몰라 (오지은-서울살이는 中)
서울아, 안녕! 잘 해보자! 🌆
9월 후원 행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오지은 가수의 ‘서울살이는’은 나의 노래인가 싶어서 감동과 동감의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절대 원고분량을 채우기 위함이 아님을 필자 강조!). 2023년 1월 31일 새벽, 나의 본격적인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대학 생활부터 시작하여 어언 30년이 된 광주 생활을 얼레벌레 서둘러 정리하고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서울로 이사를 왔고 망원동 민우회로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광주에서 함께 했던 정든 활동가들은 언제든 꺼내 볼수 있게 마음속 사진첩에 간직한 채 홍은동 집과 망원동 사무실을 오가는 서울살이를 호기롭게 시작했더랬다.
감각 총동원령 1호 발생 👀
하나부터 열 가지, 아니 아흔아홉, 백 가지 모든 게 달라진 생활환경에 나의 모든 감각은 아주 예민하게 총동원되어야 했다. 일단 달라진 가족 환경부터 말해볼까. 주말 부부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광주에서 보던 배우자와는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합가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떨어져 있기 마련인 것 같던데, 예기치 못했던 합가로 서로를 맞춰가는 연습을 우당탕탕하고 있다. 그리고, 비싼 서울 집값을 익히 알던 터라 예상은 했지만 더 큰 비용으로 더 작은 집에 살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사는 동네는 그리 번화가는 아니니, 이 정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광주에서 살던 집보다 더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구 구성원은 더 늘게 되었다. 현재 성인 4명과 야옹이 2마리까지 다그다글 살고 있다. 게다가 상근활동가의 출근과 퇴근시계로 하루를 산다는 것도 나에게는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피곤한 하루하루로 모든 세포들이 곤두섰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는 것을 느꼈다. 온전히 그 감각을 몸소 느끼면서도 그걸 바라보는(?)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아서 말로만 듣던 유체이탈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살이 잘 적응하고 있어? 🚇
이런 질문에 1,2,3단계를 잘 마쳤다고 난 곧잘 이야기하곤 한다. 이 단계는 이동패턴을 통해 나의 서울살이 적응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자차를 이용해서 주로 이동하였지만, 서울에서 운전하기란 서울살이 초짜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자차가 있어도 넓은 도로와 요란한 표지판,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에 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네비는 안 알려주고, 주차할 공간도 주차비도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공영주차장을 근근하며 가끔 이용하지만 나의 일차적 이동수단으로는 적합치 않았다. 우선, 나의 적응 1단계는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다. 지하철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하철을 타는 건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역까지의 이동은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단계는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다. 버스 승강장에서 목적지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해진 때가 왔다. 이때 핸드폰에 장착된 지도 앱은 그 경로들을 자세히 알려주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 유용한 앱이 되었다. 3단계는 지하철과 버스를 연결하여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연결하여 타면 목적지까지 좀 더 빨리 갈수 있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3단계를 수행하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얏호!’를 외쳤다. 그 다음은 번외로 따릉이(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거, 정말 해보고 싶었는 데 내가 거주하는 곳이 천세권이어서 ‘따릉이’를 타고 천변을 따라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용료는 1년에 3만원(1일 1시간이용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깜짝 놀라며 지금껏 잘 이용하고 있다. 요즘처럼 선선한 날씨에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 출퇴근하는 거 너무 좋~다.
(이미지: 따릉이 타는 몽실)
그리고 사람들! 💗
서울은 사람이 정말 많다. 알람처럼 울리는 안전안내문자 속 실종자와 찾는 사람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울려대는 앰뷸런스와 사람들,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어떻게든 몸을 쑤셔넣어보는 사람들, 밤낮 상관없이 빽빽한 도로위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 서울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나는 혼밥, 혼술, 혼여행을 하기는 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게 더 재밌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울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민우회 사무실에도 내가 있던 광주보다 2배나 사람들이 많고, 회의도 많고, 활동도 많다. 지난 1년 동안은 이슈와 활동을 따라가느라, 회의의 내용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느라, 나와는 다른 매력과 개성이 넘치는 활동가들을 좇느라 몸은 더디고, 마음은 조급한 시간들을 보냈다. 순간순간,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내가 아닌 나를 발견할 때 공중에 한 10센티는 떠있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그 시간이 그저 통과된 것은 아니었다.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천천히 해요! 밥 같이 먹어요! 말과 눈빛으로, 그리고 그들의 시간을 내어준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그 길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오지은님의 노래처럼 서울사람들이 조금은 어려워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던 순간을 거쳐 함께 그 시간을 보내다 보니 희노애락의 순간들에 함께 반응하며 공동의 감각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나의 2년 차 서울살이가 이제 좀 재밌어진다.
|
몽실☁
별자리 탄생주간이 ‘어린이 주간’임을 알고 해방감을 느낀,
별게 다 궁금한 활동가!
(이미지: 서울에서 찍은 사진)
서울살이는 ~ 조금은 외로워서
친구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조금은 어려워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몰라
(오지은-서울살이는 中)
서울아, 안녕! 잘 해보자! 🌆
9월 후원 행사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오지은 가수의 ‘서울살이는’은 나의 노래인가 싶어서 감동과 동감의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절대 원고분량을 채우기 위함이 아님을 필자 강조!). 2023년 1월 31일 새벽, 나의 본격적인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대학 생활부터 시작하여 어언 30년이 된 광주 생활을 얼레벌레 서둘러 정리하고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서울로 이사를 왔고 망원동 민우회로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광주에서 함께 했던 정든 활동가들은 언제든 꺼내 볼수 있게 마음속 사진첩에 간직한 채 홍은동 집과 망원동 사무실을 오가는 서울살이를 호기롭게 시작했더랬다.
감각 총동원령 1호 발생 👀
하나부터 열 가지, 아니 아흔아홉, 백 가지 모든 게 달라진 생활환경에 나의 모든 감각은 아주 예민하게 총동원되어야 했다. 일단 달라진 가족 환경부터 말해볼까. 주말 부부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광주에서 보던 배우자와는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합가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떨어져 있기 마련인 것 같던데, 예기치 못했던 합가로 서로를 맞춰가는 연습을 우당탕탕하고 있다. 그리고, 비싼 서울 집값을 익히 알던 터라 예상은 했지만 더 큰 비용으로 더 작은 집에 살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사는 동네는 그리 번화가는 아니니, 이 정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광주에서 살던 집보다 더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구 구성원은 더 늘게 되었다. 현재 성인 4명과 야옹이 2마리까지 다그다글 살고 있다. 게다가 상근활동가의 출근과 퇴근시계로 하루를 산다는 것도 나에게는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피곤한 하루하루로 모든 세포들이 곤두섰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는 것을 느꼈다. 온전히 그 감각을 몸소 느끼면서도 그걸 바라보는(?)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아서 말로만 듣던 유체이탈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살이 잘 적응하고 있어? 🚇
이런 질문에 1,2,3단계를 잘 마쳤다고 난 곧잘 이야기하곤 한다. 이 단계는 이동패턴을 통해 나의 서울살이 적응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자차를 이용해서 주로 이동하였지만, 서울에서 운전하기란 서울살이 초짜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자차가 있어도 넓은 도로와 요란한 표지판,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에 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네비는 안 알려주고, 주차할 공간도 주차비도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공영주차장을 근근하며 가끔 이용하지만 나의 일차적 이동수단으로는 적합치 않았다. 우선, 나의 적응 1단계는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다. 지하철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하철을 타는 건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역까지의 이동은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2단계는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다. 버스 승강장에서 목적지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수월해진 때가 왔다. 이때 핸드폰에 장착된 지도 앱은 그 경로들을 자세히 알려주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 유용한 앱이 되었다. 3단계는 지하철과 버스를 연결하여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연결하여 타면 목적지까지 좀 더 빨리 갈수 있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3단계를 수행하게 되었을 때 마음 속으로 ‘얏호!’를 외쳤다. 그 다음은 번외로 따릉이(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거, 정말 해보고 싶었는 데 내가 거주하는 곳이 천세권이어서 ‘따릉이’를 타고 천변을 따라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용료는 1년에 3만원(1일 1시간이용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깜짝 놀라며 지금껏 잘 이용하고 있다. 요즘처럼 선선한 날씨에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 출퇴근하는 거 너무 좋~다.
(이미지: 따릉이 타는 몽실)
그리고 사람들! 💗
서울은 사람이 정말 많다. 알람처럼 울리는 안전안내문자 속 실종자와 찾는 사람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울려대는 앰뷸런스와 사람들,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어떻게든 몸을 쑤셔넣어보는 사람들, 밤낮 상관없이 빽빽한 도로위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 서울은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다. 나는 혼밥, 혼술, 혼여행을 하기는 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게 더 재밌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울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민우회 사무실에도 내가 있던 광주보다 2배나 사람들이 많고, 회의도 많고, 활동도 많다. 지난 1년 동안은 이슈와 활동을 따라가느라, 회의의 내용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느라, 나와는 다른 매력과 개성이 넘치는 활동가들을 좇느라 몸은 더디고, 마음은 조급한 시간들을 보냈다. 순간순간,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내가 아닌 나를 발견할 때 공중에 한 10센티는 떠있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그 시간이 그저 통과된 것은 아니었다.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천천히 해요! 밥 같이 먹어요! 말과 눈빛으로, 그리고 그들의 시간을 내어준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그 길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오지은님의 노래처럼 서울사람들이 조금은 어려워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던 순간을 거쳐 함께 그 시간을 보내다 보니 희노애락의 순간들에 함께 반응하며 공동의 감각을 조금씩 갖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나의 2년 차 서울살이가 이제 좀 재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