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ing💭]스토킹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없다: 다음을 바꾸는 공동체의 실천🔥


스토킹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없다: 
다음을 바꾸는 공동체의 실천🔥





 🔫이소희(바람)/성폭력상담소

올해 환절기 면역력이 확 떨어졌다...

곁에서 베리가 “바람 2021년에도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

모두 환절기 면역력 잘 챙기세요!






 

스토킹, 문제적 누군가에 의해 특별한 누군가만이 겪는 일이 아니다.


청소년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모르는 남성이 쪽지를 전달했다. 그동안 쭉 지켜보았다며 연락처를 공유해 줄 수 있는지 묻는 쪽지였다. 무서웠다. ‘쭉 지켜보았다.’는 말이. 가방을 챙겨서 바로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을 벗어난 후 다시는 그 도서관을 찾아가지 않았다. 주변에 말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 무서웠는데, 내 감정이 부정당할 것 같았다. 내가 겪은 일에 누군가는 “연애의 시작 장면일 수도 있지 않았겠냐?” “바보같이 왜 박차고 나왔냐?”라고 말할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침묵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작은 모임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멤버들과 가까워졌다. 멤버 중 한 명이 모임에 올 때마다 간식을 잔뜩 사 왔다.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책상 위에 매번 쌓이는 간식, 화장품, 액세서리 등 이어지는 선물이 불편했다. 거절했지만 선물은 계속 쌓였다. 어느 날 그 멤버는 누군가의 사적인 일을 “왜 본인에게 말하지 않았냐?”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냐?”며 화를 냈다. 당혹스러웠다. 그 멤버와 나는 모임원과 모임장의 관계였을 뿐이었다. 모임이 해소되는 날 그 멤버는 “모임원들과 함께 할 뒤풀이 장소로 호텔을 빌렸다.”고 말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렌트였다. “다른 멤버들이 오지 못하더라도 바람은 꼭 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멤버에게 불편함을 표현했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 동료들에게 말했다. 동료들은 내가 겪은 일이 ‘스토킹’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내가 ‘상대의 단순한 호의를 너무 경계한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했었다. 동료들의 인정 속에서 안심되었다.


(이미지: 스토킹법제화 3년, 상담사례 분석으로 현실타파 본부-지부 기획단 1차 회의)


누군가를 잃은 후 만들어진 법. 스토킹 법제화 3년 우리는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까?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최초 발의되었지만 22년 동안 법안 상정과 폐기를 반복하였다. 스토킹 범죄는 별거 아닌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범칙금 8만원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러다 00구 일가족 살인 사건 직후인 2021년 4월 스토킹 처벌법은 법제화되었다. 시민들과 여성단체들의 요구와 수많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거치고 나서야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2024년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스토킹 법제화 이후 우리는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되었다. 법도 법이지만 스토킹을 학교, 직장, 각각의 공동체에서는 어떻게 인식하고, 스토킹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4개 지부와 함께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3년 동안의 스토킹 상담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스토킹을 경험한 피해자와 조력자 14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였다.

한국여성민우회 본부·지부 성폭력상담소의 최근 3년 상담 사례에서 스토킹 피·가해자 관계 1순위는 과거애인 52.3%였고, 2순위는 직장관계자 11.4%였다. 친밀했거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는 관계에서 스토킹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관계성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폭력이 스토킹이었다. 그리고 관계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스토킹은 피해자와 가해자 단둘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폭력이 아니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정보와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피해자의 가족, 지인,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연락하고 때로는 폭력의 대상이 피해자에서 피해자 주변인으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스토킹은 여전히 사적인 일이라고 치부되거나, 가해자가 피해자를 그 정도로 좋아하는지 몰랐다며 호의로 인식되었다. 비난의 화살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쉽게 향했다. 피해자는 “예민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폭력이 ‘인기 또는 애정’으로 왜곡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였다.


(이미지: 스토킹법제화 3년, 상담사례 분석으로 현실타파 본부-지부 기획단 5차 회의)



스토킹의 예방과 중단도 공동체에 달렸다.



“무엇이 스토킹 대응에 걸림돌이 되었던 걸까?”

“내 주변에, 우리 회사에, 이 사회에 어떤 인식과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피해가 더 빨리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 있었을까?”

“지인이 스토킹 피해를 겪었을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없었을까?”

“스토킹 피해 경험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위의 질문을 품고 14명의 스토킹 피해자와 조력자를 만났다. 피해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폭력의 연속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력의 확장을 말했고, 일상의 평온함이 불쑥 박탈되는 감각을 체득하는 것이 스토킹이라고 말했다. ‘24시간 감시받는 감각’ 속에서 피해자들은 존재 자체를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자연스럽게 생활반경을 축소하고, 피해 사실을 주변에 말하면 주변에도 피해가 갈 것이라는 압박 속에서 강제된 고립을 선택하고, “비밀이 많은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무력하지만은 않았다. 아는 사람이 겪은 스토킹 피해 경험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고, 나만 경험한 폭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감각 속에서 피해 경험을 재해석하고, 재해석한 경험을 확산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내가 놓여 있는 공동체의 감수성에 따라 대응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온몸으로 습득한 지식을 공유하였다. 피해 경험을 기반으로 또 다른 피해자의 조력자가 되었다.

조력자들 역시 피해자가 겪는 폭력이 폭력이 맞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내가 개입하는 것이 맞는지,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끊임없이 혼란스럽다고 하였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주변인이 “괜찮은지?” 질문하고,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감각을 함께 발휘하고 행동했을 때 피해자도 공동체도 더 나아가기도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경험을 전했다.

올해 성폭력상담소는 법제화 이후 스토킹 상담 통계수치에 담긴 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와 주변인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피해 경험과 조력 경험을 해석하고 분석하여 스토킹 예방과 중단을 위한 공동체의 실천을 제안하고자 한다. 14명 인터뷰이의 소중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스토킹을 대하는 공동체의 변화를 위하여 본부·지부 활동가들이 열심히 상담 일지를 들여다보고, 직접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녹취록을 함께 읽고 또 읽었다. 11월 5일 〈스토킹 상담 통계 및 피해자·주변인 인터뷰 분석토론회, 스토킹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없다: 다음을 바꾸는 공동체의 실천〉 토론회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지: 스토킹 상담통계 및 피해자/주변인 인터뷰 분석 토론회 〈스토킹은 우리를 고립시킬 수 없다〉홍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