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ing💭]최소한의 권리조차 “예외”되는 상황(들)⛔


최소한의 권리조차 “예외”되는 상황(들)⛔





 🏸은수/여성노동·지역팀

배드민턴에 막 재미를 붙였는데 건초염이 생긴 슬픈 사람입니다.







(이미지: ‘필리핀 슈머우먼 밴드’ 영상이 전시된 모습 ⓒ은수)


꽤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를 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몸’을 키워드로 아시아 여성미술가의 작품을 전시1) 하고 있다. 몸은 내면, 외형, 주체, 관계, 경계 등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주제 중 하나다.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매개로 한 작품 사이로 세 명의 여성이 결의에 찬 몸짓으로 춤을 춘다. ‘필리핀 슈퍼우먼 밴드’의 영상이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자국민을 가사돌봄노동자로 활발하게 ‘수출’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필리핀이) ‘돌봄의 제국’을 만들었다는 주장의 근거를 댄다〉는 자막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1)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지난해 5월,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저출생 대책으로 이주여성을 가사노동자로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7월 서울시 주최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외국인 가사인력을 “가사사용인”으로 간주하여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외하고,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상황으로 검토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더 싸게 이주여성노동자에게 돌봄노동을 외주화할 수 있을지 그런 궁리만 가득한 자리였다. 이어 고용노동부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공청회〉를 열었고, 이주민단체, 여성단체 등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해당 사업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현장에서 시위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물론 전문가 또한 저출생 대책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해당 사업의 효용성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 본래 올해 초 시행하려던 사업을 가까스로 지연시켰다.


(이미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진행한 공청회 현장 시위 모습 ⓒ한국일보)


 그러다 올해 3월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가 다시금 도화선이 되었다. 최저임금 적용을 어떻게든 피해가고 싶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에겐 그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보고서였으리라. 하지만 다행히도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조약2)을 비준하는 국가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국제노동기구 때문에 최저임금 차별적용이 어려운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시범사업 도입을 앞두고 가까스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조차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현실에 활동가 모두 어이없는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주·여성·노동자의 권리는 예외되고 유예될 수 있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2)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 (ILO협약 제111호). 제1조에 금지되어야 할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데, 해당 조문에서 말하는 차별이란 “인종, 피부색, 성별, 종교, 정치적 견해, 출신국 또는 사회적 신분에 근거한 모든 구별·배제 또는 우대로서, 고용 또는 직업상의 기회 또는 대우의 균등을 부정하거나 저해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 그리고 “고용 또는 직업상의 기회 또는 대우의 균등을 부정하거나 저해하는 효과를 가지는 여타 구별·배제 또는 우대”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려고 하거나, 가사사용인으로 분류하여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에 대한 이야기 모두 조문에서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 (출처: https://www.law.go.kr/조약/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 (ILO협약 제111호)/(1499,19600615))


(이미지: 국회토론회 발제자, 토론자 단체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서울시는 다시 9월부터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며, 8월부터 이주가사노동자의 입국이 시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범사업 추진을 더 미루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간 해당 이슈를 둘러싸고 정부와 시민사회와 언론이 돌봄에 대해, 이주노동에 대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모아졌다. 그렇게 개최하게 된 것이 〈왜 돌봄은 값싸게 외주화되는가: 서울시-정부 ‘외국인 가사노동자’ 대응 국회토론회〉였다. 2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소회의실이 5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보통 국회토론회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고무적인 광경이었다. 토론회에 직접 참여할 수 없어 문 앞에서 머쓱하게 자료집을 가져가는 국회 관계자들도 제법 있었다. 명단에 이름과 소속을 적어야 가져갈 수 있었는데,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고르게 분포해있었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료집을 가져갔다기보다는 이 뜨거운 이슈에 대해 알아가는, 조심스러운 단계인 듯했다.




조금씩 다른 활동 영역을 가진 2명의 발제자와 4명의 토론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적용을 피하기 위해 자주 거론됐던 것이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의 사례였다. 몇몇 사람들은 홍콩에서는 우리가 주는 임금의 반절도 안 되는 ‘가격’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데 왜 나서서 “글로벌 호구짓”을 하냐고 말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아주 점잖은 말투로 차별의 논리를 경제로 포장하여 실어나르곤 했다. 이에 반박하며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가 홍콩 내 이주가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전해주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경우 공공기관을 대신하는 민간기업, 즉 알선업체에서 여러 가지 소개 비용이나 초기 정착비용 등을 빚지도록 만들어 이주가사노동자들이 착취나 학대에 굉장히 취약한 여건에 처해있다고 했다. 많은 빚을 부당하게 떠안고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법이나 계약 조건 등을 잘 알지 못하고, 무엇보다 국적에 따라 임금이 차별적으로 지급되는 문제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정치권이나 경제지에서 비용 절감을 근거로 언급되던 해외 사례의 이면을 제시하여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이 명쾌한 한편, 우리에겐 미래에 펼쳐질지 모르는 일이 홍콩, 싱가포르에선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며 복잡한 마음이 되곤 했다. 




모든 참가자의 발표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에겐 가장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질문이 많은 토론회일수록 좋은 토론회라는 생각 때문이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많은 분이 질문해주셨다. 발표자들은 청중의 질문 속에서 다시금 살펴야 할 부분을 강조하거나, 발표문에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3). 주최자로서 사람들에게 더 묻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 없는 자리가 아니었구나,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시범사업 시행 이후, 필리핀 가사노동자에 대해 교육비, 임금 지급이 지연되거나 통금시간을 두어 이들을 통제하려 하는 등 걱정스럽고 분노스러운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 2명의 이탈자가 발생하였는데, 며칠 뒤 소재지가 파악되어 붙잡혔다고 한다. 그리고 법무부는 이들에 대해 강제퇴거 명령이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된 이들에게 손쉽게 ‘불법’으로 낙인찍고 쫒아내는 일은 부당하다. 이들의 이탈이 오로지 개인의 책임일까? 허술하게 설계된 시범사업의 책임은 생활고를 해결하려던 이주노동자가 아닌 이 사업의 책임자인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져야한다. “퇴거”되어야 할 것은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쉽고 싸게 얻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 그 오만과 이주·돌봄·여성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여기는 왜곡된 인식이다.


3) 자세한 내용은 “[후기] 왜 돌봄은 값싸게 외주화 되는가: 서울시-정부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대응 국회 토론회(https://readmore.do/AaA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