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우리(마녀🎇, 빨갱이😡, 퀴어🌈)가 다시 쓴다 - "TK의 딸이고요, 퀴어 페미입니다"
백미록/한국여성민우회 사업감사 주소는 자주 바뀌어도 변함없이, 고양이 만과 성의 엄마이자 민우회 회원 요즘은 국가, 감정, 주류화에 관심이 가는 정책 연구자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한다'는 목적으로 그의 남고 동창 '형제'들을 주축으로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022년 그의 대선 공약은 '여성가족부 폐지'였으며 여성 정책의 피해자 남성들을 대변하겠다고 공언했다. 윤 정부는 그간 반페미니즘으로 우파 포퓰리즘 세력을 규합했으며 탄핵 국면에 이르기까지 그의 타깃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과 조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장려했다. 윤 정부는 여성들을 그의 국민에서 배제했으며, 국가 위기라는 환상을 구성하고 '빨갱이', 페미니스트, 장애인, 농민에 대한 지속적인 손상과 적대를 통해 정치적 동력을 축적한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것이 위협적인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윤 정부가 운영한 국가의 젠더는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을 따라 탄핵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감응과 움직임, 발언, 장소성이 무엇으로 조합되고 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필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언어를 탈취당하고, 페미니스트 안전권이 없는 사회를 사는 시민으로서 탄핵 광장에 대한 관찰과 참여 경험에 기반해 이 글을 쓴다.
윤정부 집권 기간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욕설로 통용되고 수치심을 주는 정체성이 되고 물리적인 공격을 우려할 정도의 민감한 용어로 오용된 것은 그가 본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제도화된 페미니즘 언어를 전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1) 페미니스트 지식인 R.W. 코넬(Connell)은 국가나 제도의 젠더를 권력관계로 접근하며 '헤게모니적 남성성' 개념을 제시했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스스로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여성성과 퀴어성을 억압하는 지배적 젠더 체제를 설명한다. 윤석열 정부의 남성성은 여성과 성평등 삭제, 구조적 성차별 부정, 정부조직으로서 여성가족부에 대한 무시 등 적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비상계엄 선포시에는 국민을 계몽하고 군림할 수 있다는 폭력성으로 전화했다. 그의 정부는 반페미니즘 정부였다.
1) 윤석열은 2022년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남성이 약자일 수도, 여성이 약자일 수도 있다”고 인터뷰 했고 “성인지 감수성에 예산이 불필요하게 많이 책정됨으로써 정작 예산 투입이 필요한 군사 부문에 돌아오는 몫이 적어졌다(「한국일보, 2022.2.27.」)”고 해 차별이나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언어를 오용했다.
적대적 남성성 국가/지역/가족을 전복하는 '마녀' : '술집여자', 'TK의 딸'
남성성 국가에서 국민은 이성애 가족, 군복무, 출산율, 생산성 등을 기준으로 승인되며, 이러한 특징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국민으로 호명되지 못한다. 2024년 12월 11일 부산 서면 탄핵 촉구대회에서 "온천장에서 일하는 노래방 도우미, 술집 여자"라고 소개한 발언자는 자신은 '시민'으로 칭하고,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를 선택한 이들은 '국민'이라고 부른다.2) 발언자는 쿠팡 노동자, 용주골 철거, 동덕여대, 장애인, 교제폭력, 성소수자 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전라도 지역 혐오 등 이슈를 짚으며 이들에 대한 관심이 곧 시민에 요청되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이 여성은 페미니스트 저항의 계보에 있는 '마녀'3)처럼, 공적 공간에서 국민으로 승인 받기를 거부하고 우경화된 국민과 이를 승인한 권력을 비판했다. 2024년 12월 7일 등장한 'TK 선언문'은 대구 경북 여성들이 만든 선언문이다. 그들은 "TK의 딸이 말한다. 내 아버지의 표는 내 표로 상쇄될 것이다. 내 어머니의 지지는 내 목소리에 묻힐 것이다. 부모와 상사의 표를 무효로 만드는 길에 내 자매와 동료와 친구들이 함께할 것이다."라고 해 지역 가부장제의 미래 종식을 선언했다. 이들은 대구 경북이 마치 동질적 보수 집단인 것처럼 상정하고 이루어지는, 그들 가족과 부모 세대의 보수적 성향은 다음 세대로 무한히 재생산될 것이라는 남성성 국가의 기대를 거부한다.
2) 김효실 기자, '"제가 '술집 여자'라 밝힌 이유는..." 부산 여성 시민 인터뷰', 한겨레, 2024. 12. 15.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73182.html 3) 실비아 페데리치(2023),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갈무리
남태령 : 배제를 배제하는 퀴어한 주체들의 ‘알아가겠다’의 윤리
트위터리안(트위터 이용자)이자 청년 농업인 김후주는 전국농민총연맹과 페미니스트 시민들이 만난 남태령을 "동료시민을 향한 공격, 차별과 혐오를 기반으로 한 배제를 배제하는" 장소라고 설명한다.4) 남태령에 달려간 시민들은 양곡법 등 농민 투쟁 이슈를 "모르지만 들어보러 간다"라고 했고, '논바이너리(자신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퀴어)' 시민을 '딸'로 부른 농민은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고 답했다. 이 '알아두겠다', '알아가겠다'는 지역에서 커밍아웃과 환대의 윤리로 확산 돼 "2030 진주에 살고있는 성소수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퀴어 페미니스트입니다" 는 발언에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로 답하는 또 다른 발언을 가능하게 했다. 남태령은 성소수자, 여성 농민, 도시빈민, 학교밖 청소년 등이 밤새 발언하고 고(故) 백남기 농민, 변희수 하사, 강남역 사건 피해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소환하며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된 시민들 간의 대화, 환대의 윤리를 정동적 상호작용으로 가시화했다.
4) 이유정,신지현,최윤주,이지윤,탐,박수빈,김후주,생강,엄지효(2025),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롤링다이스.
'페미니스트'의 퀴어한 재사용 : 적대적 젠더 체제를 전환하는 주류화 정치
퀴어함은 무엇인가? 사라 아메드(2017)5)는 LGBTQ 연구에 공헌한 공로로 케슬러 상을 수상하면서 퀴어 단어의 사용에 관해 강의했다. "퀴어는 불안하게 던져진 역겨움과 같은 단어였지만 퀴어라는 단어의 사용은 퀴어를 혐오가 담긴 말로 들리게 하고, 그 언어를 사용했던 역사를 비판한다"고 했다. '퀴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재사용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덧붙인다. 아메드는 퀴어함이 자신의 몸이 사회와 잘 맞지 않는다는 불편함을 감각하는 것이라며 퀴어함은 정치적 감각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남태령과 한강진, 국회, 광화문 그 모든 탄핵 광장에 모인 성소수자, 이주민, 농민, 도시빈민, 지역 거주자들은 퀴어함을 공유한다. 이 사회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모든 주체들은 적대적인 남성성 국가에 불편함을 감각하는 정치적 범주로서 퀴어 페미니스트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다시 만드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퀴어한 사용 가치를 발생시킨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모욕이 아니라 탄핵 광장에서 인식되고 실천된 새로운 여/성 운동과 새로운 체제에서 주류화의 정치를 실현할 언어로 다시 사용되어야 한다. 동덕여대, 세종호텔, 옵티컬 하이테크 현장으로 이어진 페미니스트 시민 연대의 방식, 비상행동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은 향후 여러 공론장과 민주주의의 장마다 원칙이 될 것이다.
낡은 남성성 정치구조와 불화하는 퀴어 페미니스트들은 균열의 틈에서, 그 싸움을 정성스럽게 설명하고 알기 원하고 알아가고 있다. 탄핵 광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적대적 남성성 국가의 국민이 되기를 거부하고 광장의 시민이 되기를 선택한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공론장이다. 제도적 민주화 시기 이후 태어나 세월호와 이태원을 경험한 페미니스트 시민들이 국가와 직접 소통하고, 그 정치 공동체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국민국가가 승인해서가 아니라 자기 서사가 주는 권위로 시민권을 스스로 구성한 퀴어 페미니스트들이다. 민우회의 '나는 윤석열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 빨갱이, 페미다'는 '윤석열'이 상징하고 대표하는 폭력적 자본주의, 가부장제, 우파 정치에 저항하는 주체들을 '페미니스트'로 호명했다. 여러 겹의 정치적 연대를 확장하는 페미니스트 시민을 나는 퀴어 페미니스트라는 말로 아메드식의 언어 사용을 시도해 본다. 이제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들은 '남성성 정치 구조에서 누가 말할 수 없는가?' '누구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가?' '무엇이 정상인가?'를 질문하며 탈국민적 정치 공간을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오용된 '퀴어'와 '페미니즘'을 되찾고 사회 개혁의 거대 의제들에 대해 탄핵광장에서 그러했듯 퀴어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개입과 실천, 정책 구성을 주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젠더 주류화 정치가 멀리 있지 않다.
5) Kessler Lecture 2017 Sara Ahmed, CLAGS: The Center for LGBTQ Studies |
- "TK의 딸이고요, 퀴어 페미입니다"
백미록/한국여성민우회 사업감사
주소는 자주 바뀌어도 변함없이, 고양이 만과 성의 엄마이자 민우회 회원
요즘은 국가, 감정, 주류화에 관심이 가는 정책 연구자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한다'는 목적으로 그의 남고 동창 '형제'들을 주축으로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022년 그의 대선 공약은 '여성가족부 폐지'였으며 여성 정책의 피해자 남성들을 대변하겠다고 공언했다. 윤 정부는 그간 반페미니즘으로 우파 포퓰리즘 세력을 규합했으며 탄핵 국면에 이르기까지 그의 타깃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과 조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장려했다. 윤 정부는 여성들을 그의 국민에서 배제했으며, 국가 위기라는 환상을 구성하고 '빨갱이', 페미니스트, 장애인, 농민에 대한 지속적인 손상과 적대를 통해 정치적 동력을 축적한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것이 위협적인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윤 정부가 운영한 국가의 젠더는 무엇이었을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을 따라 탄핵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감응과 움직임, 발언, 장소성이 무엇으로 조합되고 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필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언어를 탈취당하고, 페미니스트 안전권이 없는 사회를 사는 시민으로서 탄핵 광장에 대한 관찰과 참여 경험에 기반해 이 글을 쓴다.
윤정부 집권 기간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욕설로 통용되고 수치심을 주는 정체성이 되고 물리적인 공격을 우려할 정도의 민감한 용어로 오용된 것은 그가 본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제도화된 페미니즘 언어를 전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1) 페미니스트 지식인 R.W. 코넬(Connell)은 국가나 제도의 젠더를 권력관계로 접근하며 '헤게모니적 남성성' 개념을 제시했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스스로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여성성과 퀴어성을 억압하는 지배적 젠더 체제를 설명한다. 윤석열 정부의 남성성은 여성과 성평등 삭제, 구조적 성차별 부정, 정부조직으로서 여성가족부에 대한 무시 등 적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비상계엄 선포시에는 국민을 계몽하고 군림할 수 있다는 폭력성으로 전화했다. 그의 정부는 반페미니즘 정부였다.
1) 윤석열은 2022년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남성이 약자일 수도, 여성이 약자일 수도 있다”고 인터뷰 했고 “성인지 감수성에 예산이 불필요하게 많이 책정됨으로써 정작 예산 투입이 필요한 군사 부문에 돌아오는 몫이 적어졌다(「한국일보, 2022.2.27.」)”고 해 차별이나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언어를 오용했다.
적대적 남성성 국가/지역/가족을 전복하는 '마녀'
: '술집여자', 'TK의 딸'
남성성 국가에서 국민은 이성애 가족, 군복무, 출산율, 생산성 등을 기준으로 승인되며, 이러한 특징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국민으로 호명되지 못한다. 2024년 12월 11일 부산 서면 탄핵 촉구대회에서 "온천장에서 일하는 노래방 도우미, 술집 여자"라고 소개한 발언자는 자신은 '시민'으로 칭하고,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를 선택한 이들은 '국민'이라고 부른다.2) 발언자는 쿠팡 노동자, 용주골 철거, 동덕여대, 장애인, 교제폭력, 성소수자 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전라도 지역 혐오 등 이슈를 짚으며 이들에 대한 관심이 곧 시민에 요청되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이 여성은 페미니스트 저항의 계보에 있는 '마녀'3)처럼, 공적 공간에서 국민으로 승인 받기를 거부하고 우경화된 국민과 이를 승인한 권력을 비판했다.
2024년 12월 7일 등장한 'TK 선언문'은 대구 경북 여성들이 만든 선언문이다. 그들은 "TK의 딸이 말한다. 내 아버지의 표는 내 표로 상쇄될 것이다. 내 어머니의 지지는 내 목소리에 묻힐 것이다. 부모와 상사의 표를 무효로 만드는 길에 내 자매와 동료와 친구들이 함께할 것이다."라고 해 지역 가부장제의 미래 종식을 선언했다. 이들은 대구 경북이 마치 동질적 보수 집단인 것처럼 상정하고 이루어지는, 그들 가족과 부모 세대의 보수적 성향은 다음 세대로 무한히 재생산될 것이라는 남성성 국가의 기대를 거부한다.
2) 김효실 기자, '"제가 '술집 여자'라 밝힌 이유는..." 부산 여성 시민 인터뷰', 한겨레, 2024. 12. 15.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73182.html
3) 실비아 페데리치(2023),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갈무리
남태령
: 배제를 배제하는 퀴어한 주체들의 ‘알아가겠다’의 윤리
트위터리안(트위터 이용자)이자 청년 농업인 김후주는 전국농민총연맹과 페미니스트 시민들이 만난 남태령을 "동료시민을 향한 공격, 차별과 혐오를 기반으로 한 배제를 배제하는" 장소라고 설명한다.4) 남태령에 달려간 시민들은 양곡법 등 농민 투쟁 이슈를 "모르지만 들어보러 간다"라고 했고, '논바이너리(자신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퀴어)' 시민을 '딸'로 부른 농민은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고 답했다. 이 '알아두겠다', '알아가겠다'는 지역에서 커밍아웃과 환대의 윤리로 확산 돼 "2030 진주에 살고있는 성소수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퀴어 페미니스트입니다" 는 발언에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로 답하는 또 다른 발언을 가능하게 했다. 남태령은 성소수자, 여성 농민, 도시빈민, 학교밖 청소년 등이 밤새 발언하고 고(故) 백남기 농민, 변희수 하사, 강남역 사건 피해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소환하며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된 시민들 간의 대화, 환대의 윤리를 정동적 상호작용으로 가시화했다.
4) 이유정,신지현,최윤주,이지윤,탐,박수빈,김후주,생강,엄지효(2025),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 롤링다이스.
'페미니스트'의 퀴어한 재사용
: 적대적 젠더 체제를 전환하는 주류화 정치
퀴어함은 무엇인가? 사라 아메드(2017)5)는 LGBTQ 연구에 공헌한 공로로 케슬러 상을 수상하면서 퀴어 단어의 사용에 관해 강의했다. "퀴어는 불안하게 던져진 역겨움과 같은 단어였지만 퀴어라는 단어의 사용은 퀴어를 혐오가 담긴 말로 들리게 하고, 그 언어를 사용했던 역사를 비판한다"고 했다. '퀴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재사용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덧붙인다. 아메드는 퀴어함이 자신의 몸이 사회와 잘 맞지 않는다는 불편함을 감각하는 것이라며 퀴어함은 정치적 감각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남태령과 한강진, 국회, 광화문 그 모든 탄핵 광장에 모인 성소수자, 이주민, 농민, 도시빈민, 지역 거주자들은 퀴어함을 공유한다. 이 사회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모든 주체들은 적대적인 남성성 국가에 불편함을 감각하는 정치적 범주로서 퀴어 페미니스트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다시 만드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퀴어한 사용 가치를 발생시킨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모욕이 아니라 탄핵 광장에서 인식되고 실천된 새로운 여/성 운동과 새로운 체제에서 주류화의 정치를 실현할 언어로 다시 사용되어야 한다. 동덕여대, 세종호텔, 옵티컬 하이테크 현장으로 이어진 페미니스트 시민 연대의 방식, 비상행동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은 향후 여러 공론장과 민주주의의 장마다 원칙이 될 것이다.
낡은 남성성 정치구조와 불화하는 퀴어 페미니스트들은 균열의 틈에서, 그 싸움을 정성스럽게 설명하고 알기 원하고 알아가고 있다. 탄핵 광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적대적 남성성 국가의 국민이 되기를 거부하고 광장의 시민이 되기를 선택한 퀴어 페미니스트들의 공론장이다. 제도적 민주화 시기 이후 태어나 세월호와 이태원을 경험한 페미니스트 시민들이 국가와 직접 소통하고, 그 정치 공동체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국민국가가 승인해서가 아니라 자기 서사가 주는 권위로 시민권을 스스로 구성한 퀴어 페미니스트들이다. 민우회의 '나는 윤석열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 빨갱이, 페미다'는 '윤석열'이 상징하고 대표하는 폭력적 자본주의, 가부장제, 우파 정치에 저항하는 주체들을 '페미니스트'로 호명했다. 여러 겹의 정치적 연대를 확장하는 페미니스트 시민을 나는 퀴어 페미니스트라는 말로 아메드식의 언어 사용을 시도해 본다. 이제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들은 '남성성 정치 구조에서 누가 말할 수 없는가?' '누구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가?' '무엇이 정상인가?'를 질문하며 탈국민적 정치 공간을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오용된 '퀴어'와 '페미니즘'을 되찾고 사회 개혁의 거대 의제들에 대해 탄핵광장에서 그러했듯 퀴어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개입과 실천, 정책 구성을 주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젠더 주류화 정치가 멀리 있지 않다.
5) Kessler Lecture 2017 Sara Ahmed, CLAGS: The Center for LGBTQ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