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광장에 휘날린 한국여 / 성민우회 깃발에 얽힌 이야기 🚩💬


광장에 휘날린 
한국여
성민우회
깃발에 얽힌 이야기 🚩💬




💜보라/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여기를 보라.

사랑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랑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




함께 애쓴  동료, 깃발 🙏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탄핵 선고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민우회 활동가들은 어느 때보다 광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엄 다음 날부터 탄핵 선고 다음 날까지 민우회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탄핵 촉구 집회에 총 48번 나갔어요.


광장에 나가기 직전 활동가 메신저 방엔 광장에서 어떤 일을 할지 역할분담이 공유됩니다. 역할은 SNS 업로드 담당, 사진과 영상 촬영 담당, 깃발 담당, 회원과 지부 챙김이, 홈페이지 후기 작성 담당 등이 있는데요. ‘깃발’을 누가 들 것이냐가 활동가들의 핫이슈(?)이기도 했어요. ‘깃발 마스터’가 되겠다며 깃발 담당을 자원한 활동가도 있었고, 저도 깃발 담당을 가장 선호했답니다. 여러 깃발이 함께 휘날리는 걸 보고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다는 강력한 감각이 느껴지고, 민중가요에 맞춰 깃발을 좌우로 흔들 때 심장이 쿵쾅거렸기 때문이었더랬죠. 특히 이번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는 단체나 노조뿐 아니라 개인 기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빛났던 시간이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다채로운 깃발이 함께한다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탄핵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본디 하얀색이었던 민우회 깃발은 제 색을 잃고 꼬질꼬질해졌고, 깃대는 훌렁훌렁해졌습니다. 모처럼 새로 산 깃대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던 ‘한남동 키세스 집회’ 때는 깃대가 세로로 쩌저적- 갈라져 꺾이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민우회 깃발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꼬질꼬질한 깃발은 세탁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된 것도 같습니다.)


 

민우회 깃발을 만들기까지 💬


그런데 민우회는 오랫동안 깃발이 없었어요. 언제부터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2021년에 민우회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도 없었어요.) 2022년경 퀴어문화축제에 들고 갈 깃발을 만들어볼까 했지만 활동가들 사이에서 깃발 반대파와 찬성파가 갈렸습니다. 깃발 반대파는 ‘우리가 꼭 한 깃발 아래 모일 필요가 있냐’, ‘깃발을 꽂고 나아간다는 것이 연상시키는 문화가 불편하다’ 등의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깃발 찬성파는 ‘깃발이 없어서 광장에서 민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단체 깃발 옆에 있어요”, “○○당 깃발 옆에 있어요” 같은 말을 그만하고 싶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깃발을 갖자’, ‘페미니스트가 다양한 현장에 연대하고 있음을 깃발로 드러내는 것은 중요하다’라는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양쪽의 입장이 팽팽했습니다. 무엇보다 깃발 문구를 뭐라고 할 것인지 ‘문구합의못함’으로 무산되었고요.

(당시의 뜨거운 논쟁이 궁금하다면? → 우당탕탕 민우회: 문구합의못함(영원히))


(▲이미지: 흰 배경에 검은 펜으로 그린 낙서 같은 느낌으로 네모 안에 '문구 합의 못함 괜찮아 민우회'라고 쓰여 있는 깃발 시안 이미지)



왜 한국여/성민우회냐고요? 😶


결국, 2023년 3·8 여성의 날 한국여성대회에 깃발 퍼포먼스가 있어서 거기서 들기 위해 만든 깃발을 지금까지 들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민우회 깃발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광장에서 직접 보진 못했더라도 SNS나 홈페이지 등 온라인에서 보시기도 했을 텐데요.




 

(▲ 이미지: 행진 중인 민우회 깃발 사진)


 

(▲ 이미지: 민우회 깃발과 회원, 활동가들 사진)



어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나요? 

‘한국 

여성민우회’도 아니고 

‘한국여성 

민우회’도 아닌 

깃발에 의아해 하며 광장에서 말을 걸어오신 분들도 있었답니다. SNS에도 종종 이 문구 배치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들이 올라오곤 하지요. 그래서 민우회 활동가들은 한 번쯤 이 의문을 풀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이미지: '민우회 깃발 줄바뀜 위치가 너무 신경쓰여요..'라고 쓰인 트위터(현 X) 갈무리 이미지)


(▲ 이미지: '한국여성민우회 그런데 이제 배치가... 

한국여

성민우회 

이... 이 과감한 배치... 저는 오늘의 깃발로 이것을 꼽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체 어떤 우여곡절이 디자인 할 때 있었던 것인가!'라는 글과 민우회 깃발이 휘날리는 광장 사진이 함께 있는 트위터 갈무리 이미지)


(▲ 이미지: '항상 궁금한 거,,, 

한국여성민우회 깃발은 어쩌다가 

한국여

성민우회가 됐을까,,,'라고 쓰인 트위터 갈무리 이미지


(▲ 이미지: '시위 현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볼 때마다 은은하게 황당한 점은 한국여성

민우회 라고 깃발을 뽑은 게 아니라 

한국여

성민우회 라고 깃발을 뽑았다는 점이다...' 라고 쓰인 트위터 갈무리 이미지)

 

2023년 깃발을 만들어야 했던 회원팀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깃발 문구를 뭐라고 할 것이며 어떤 디자인으로 할 것인가. ‘한국여성 / 민우회’로 하는 것이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겠지만 당시 회원팀은 그렇게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민우회가 광장에서 거대한 깃발로 ‘여성’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는 것, 그리고 그 깃발 아래에 우리가 모인다는 것에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위해서’ 활동하는 걸까요?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공고한 성별 이분법에 균열을 내고 성차별적 구조와 가부장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운동합니다. 더 나은 대안을 제안하고 모든 존재가 그 존재로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여성’으로 호명되기도 하고 때론 투쟁의 주체로서, 정치적 주체로서 전략적으로 ‘여성’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민우회는 여성 대중 운동을 지향하는 여성단체이면서 동시에 ‘여성’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여성 / 민우회’ 대신 ‘한국여 / 성민우회’라는 수상한 깃발이 광장에서 휘날리게 된 것이지요. 

 


변화의 주체들과 함께하는 광장에서🌐👩‍🦼 🏳️‍⚧️🏳️‍🌈➡➡➡ 


윤석열 탄핵을 외치던 이번 광장에서 시민들은 ‘노동자’,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정의하는 사람)’,  ‘여성’, ‘이주민’, ‘장애인’, ‘퀴어’,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거나 그러한 소수자의 존재를 호명했습니다. 소수자가 변화의 주체임을 보여준 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 깃발이 휘날려 더욱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때로 광장에서 극우 세력이 “너는 여자냐, 남자냐?” 물을 때, “탄핵 광장에서 퀴어 이야기 그만 해라”, “너의 성 정체성이 궁금하지 않다”와 같은 혐오가 나타날 때, 그에 저항하는 자리에 ‘한국여 / 성민우회’ 깃발을 들고 함께 맞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에도 민우회 회원팀은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주민, 정신질환 등을 주제로 활동하면서 혐오·차별과 싸워온 사람들과 만나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여성운동이 더 넓게, 더 깊게 다양한 존재들과 만날 때 세상이 바뀐다고 믿으며 민우회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넓고 단단한 연대를 향해 활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