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다이어리📧]봄의 문턱에 서서🌸


봄의 문턱에 서서🌸





 연수🎇

민우회 주최 소모임, 강연, 집회, 총회, 후원의날 행사 등등 참여 경력 다수!! 열혈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엄청난 팬입니다><




그날의 기억  💭


저는 저녁잠이 많은 편이라 2024년 12월 3일 그 밤에는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일찍부터 꿀잠을 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간밤에 계엄이 선포됐다가 용감한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서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너무나 비일상적인 뉴스가 온 인터넷 세계에 도배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비록 그 밤에 여의도로 달려가진 못했지만, 이제부터 지난한 집회 참석이 이어지겠구나 하고 직감했죠. 8년전 촛불집회 때도 겨울 내내 광화문에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했는데 그 상황이 또 벌어지겠구나 하고요. 



광화문, 여의도, 한강진, 다시 광화문 🚶


처음엔 평일 집회부터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평일인데도 벌써 꽤 많은 숫자의 시민들이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모여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8년 전에 봤던 그 익숙한 플라스틱 촛불들, 양초와 종이컵들을 손에 들기도 하고, 시민단체들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구나 좋아하는 것들, 소중한 것들을 표현하는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모여들었던 기억이 나요.


당연히 계엄 선포 직후에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헌재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소추안은 부결이 되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제일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의도로 갔었습니다. 여의도는 광화문처럼 넓게 트인 공간이 없어서 골목 골목까지 집회에 참석한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얼굴과 이름이 그려진 현수막을 분노한 시민들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기갈기 찢는 퍼포먼스도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현수막의 한 귀퉁이를 잡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 다음은 한강진으로 갔습니다. 모두가 국회에 군인을 보내서 창문을 부수고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을 똑똑히 지켜봤는데도, 내란수괴가 아직도 뻔뻔하게 감옥도 안 가고 따뜻한 집에서 먹고 자고 있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죠. 눈도 많이 내리고 춥기도 정말 추웠어요. 광화문에서 집회 하다가 한강진에서 민주노총이 철야 집회를 할 것이라기에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지하철을 갈아타며 도착해서 행진 했는데, 그 때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트위터리안(트위터 이용자)이 ‘간달프의 원군1) 같다’고 표현했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 간달프의 원군 중 한명이었어요.


윤석열이 수감된 이후에는 저도 잠시 이제 괜찮겠지 하고 느슨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거를 못 참고 윤석열을 또 홀랑 풀어주더라고요. 진짜 어떻게 잡아 넣었는데? 그 추운 날 길바닥에서 눈 맞고 비 맞고 질척대는 진창에서 꽁꽁 얼어가며 어떻게 집어넣었는데 그걸 풀어줬다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죠. 그 이후에 비상행동에서 집회 중에 때때로 윤석열이 풀려나는 영상을 틀어줬는데, 긴 시간 집회를 하면서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가도 그 영상만 틀어주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탄식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는 헌재의 선고를 촉구하며 3월은 매주 토요일, 그리고 평일에도 가능한 많이 집회에 나갔습니다. 내가 민주주의가 당연한 시대에 살았으니, 이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은 이제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 영화 〈반지의 제왕2: 두 개의 탑〉의 한 장면. 협곡에서 수세에 몰린 고된 사투 중 극 중 등장인물인 간달프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대규모의 원군을 몰고 햇살을 받은 언덕을 넘어오는 장엄한 광경이다. 





광장에 서서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도 우리 여성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는 직접 경험하지 않아 다소 멀게 느껴지던 독재 정권의 계엄 선포와 국가폭력의 심각성을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저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소년이 온다’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저는 1980년대보다 지금이 시민들의 민주 의식이 발달해서 독재자가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는데, 그 당시엔 많은 시민들이 빠르게 상황을 전 달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뿐, 몇 번이고 총칼 앞에 맨몸으로 나섰던 80년대, 70년대, 60년대 그보다 더 이전의 수많은 민중들의 있었구나 하고 가슴이 뜨겁기도 했습니다.


(▲ 이미지: 2025년 3월 29일 집회가 끝나고 민우회 활동가들과 지부 활동가들, 회원 연수가 민우회 깃발과 '나는 윤석열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 빨갱이, 페미다' 슬로건을 펼쳐 들고 함께 찍은 기념 사진) 


민우회 활동가들과 다른 시민 동지들을 길에서 만나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고 반가웠습니다. 함께 행진할 때, 먼저 출발한 시민들이 되돌아오는 행진과 엇갈려 지나칠 때 서로가 보게 되는 서로의 얼굴이 좋았어요. 다들 춥고 힘들고 끝날 기미 없이 길어진 상황에 지쳤을텐데,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표정들은 전부 그렇게 빛나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내 손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는 감각, 우리가 모여서 해내고 있다는 연대의 기쁨 이것들이 모두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2024~2025년도에 민주화 투쟁을 해야 하는 퇴행적인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느꼈습니다. 저는 성평등한 사회에 대해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해서 외치기 위해 또 광장에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지켜낸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순 없습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갑자기 천지가 개벽하듯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여서 함께 이뤄낸 승리는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고, 이번에는 더 넓게 더 크게 더 많은 사람들이 정당하고,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모이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