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비상행동 상황실 파견을 다녀왔습니다👷


비상행동 상황실 파견을 다녀왔습니다👷




여경/한국여성민우회 정치팀

성평등미디어팀이자 정보홍보팀이고 정치팀 활동가입니다.

요즘엔 걱정하기 게임 속에 갇혀 있는 거 같아요@_@ 

행사 제목을 페미니스트 대(大)행진이라고 했는데 10명밖에 없으면 어쩌죠? 

근데 다들 5/10에 뭐하세요?






내 생에 첫 상황실 파견👷


한국여성민우회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상황실에 활동가 파견을 결정했다. 나와 은사자가 함께 파견되어 작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행사기획팀에서 일했다. 행사기획팀은 무대, 조명, 음향, 사회, 발언, 공연, 행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집회를 기획․추진하는 일을 총괄한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날 어떤 장면을 보고 듣고 느끼고 갈지 고민하며 그 내용을 채워가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은사자와 나는 집회의 발언 부분을 담당했다. 집회에서 꼭 다뤄지면 좋을 주제를 시의성 있게 기획 발언으로 배치하고, 사전접수한 시민 발언문의 혐오표현 여부와 발언 시간의 적절성을 판단하여 발언자와 소통하기가 주된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발언문을 수어 통역사에게 전달하고, 집회 당일 발언자들을 맞이하고 약속문을 안내하며 함께 리허설도 하고, 집회가 끝나면 감사문자를 보내는 등의 일을 했다.



광장의 말을 살피고 모아내며💬🙌


시민들의 발언을 가까이서 접하며 느낀 것이 많았다. ‘광장식 자기소개’라고 일컬어진 발언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과정은 한 명의 발언자가 미처 발언문에는 담지 못한 윤석열 파면의 이유를 상상해보게 만들기도 했고,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내가 페미니스트라서, 성소수자라서, ‘빨갱이’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장애인이라서 차별받거나 쉽게 배제되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조금씩 쌓아갔다. 17년 차 활동가인 내가 다시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이 실제로 공격받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들의 자기소개는 큰 용기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보다 평등한 광장을 만들기 위해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문을 만들고, 그것을 집회 시작 전 사회자 발언으로, 대형 LED화면으로, 발언자와 공연자 가이드라인으로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 약속문을 만들고 선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No윤No쓰(윤석열도 쓰레기도 없는) 집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도 추가하는 등 부족한 부분은 갱신해나가는 수정 가능성이 참 좋았다.


(이미지: 광장 약속문. 12월 12일 민우회 몽실이 집회 사회를 보던 날 민우회가 제안하는 버전의 광장 약속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광장은 멀기만 한 단어로 느껴지던 ‘연대’라는 단어의 실체를 보게 했고, 아무리 분노스러워도 누군가를 혐오하는 방식으로는 의견을 표출하지 말자는 약속. 이런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면 함께 중단시켜 이 광장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확장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변화의 장이었다.


(이미지: 귀찮아도 헛소리는 참지 않는 페미니스트 깃발 사진) 




편안하기 위해 불편한 시간을 보낸 우리💦


광장은 광장에 함께한 저마다의 인생에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크게 힘들고 크게 배웠다. 자그마치 123일이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승리감. 파면 선고가 나지 않았다면 지금 또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모두를 알게 됐다. 광장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마주할 때 가만히 있기보다 무엇이라도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느낌이다. 앞으로 활동가로 살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쏟아져 나온 것을 보았다. 엄혹한 시기에도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애써온 시간들이 지쳐있던 마음에 힘을 채워줬다.


“연대의 물결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수많은 정체성과 집단 속의 개인으로서, 우리는 손잡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경계와 규범을 넘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토론해야 하고, 사랑하기 위해 갈등해야 하고,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해야 하고, 편안하기 위해 불편해야 하고, 공감하기 위해 분노해야 하고, 타오르기 위해 냉철해야 하고, 자유롭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비상행동 집회 시민 발언자 박시온 님의 발언문 중에서

 

광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살고 있을까? 광장에서의 기억은 어떤 방식으로 소화됐을까? 그때의 열기와 환호와 간절함은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또 다른 소수자들이 초대에 응답하는 방식이 되었을까?




3·8에 윤석열이 구속 취소된 건에 대하여😡💢


윤석열이 체포 52일 만에 구치소에서 석방됐던 날은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이었다. 비상행동 집회에 앞서 올해 4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대회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를 준비해둔 날이었다. 전날부터 석방이 예고된 상황이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선언하며 대통령이 된 자가 비상계엄을 일으켜 놓고도 풀려나는 날이 3월 8일이라니. 속이 상했다. 화가 났다. 일 년 중 가장 크게 페미니즘 이슈를 알리고 나누며 축하하는 자리를 준비하며 애써온 동료 활동가들의 얼굴이 광장 곳곳에서 보였다.


윤석열 구속취소에 분노하며 광장에 나온 이들 중에는 지금이 페미니즘 운운할 때냐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윤석열 탄핵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했다. 그건 너희끼리 모여서 하라며 지겨워서 못 듣겠다며 무대로 와 항의하고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간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항의가 조금은 이해될 정도로 내란수괴의 구속취소는 큰 충격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라면 언제가 되어야 광장에 나와서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장애인, 농민, 외면받는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말하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저마다 광장에 나오는 이유를 배우기 위해 애써온 시간을 지나오지 않았나?


비상계엄을 겪고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보내고 나서도 6.3 대선이 확정되자마자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며 소수자 인권, 노동권 얘기는 쉽게 삭제되는 모습을 보자니 참 씁쓸하다. 역시나 내란수괴 파면은 시작일 뿐 변화를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빛의 광장’을 겪고 달라진 우리의 감각과 괴리되어 본인들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들에게 다시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윤석열 파면한 페미니스트 대행진을 해보자🚶👩‍🦼 🏃🚩


상황실 파견종료 이후에는 5/10(토)에 있을 ‘윤석열 파면한 페미니스트 대행진’을 준비하느라 바삐 보내고 있다. 100여 개의 여성시민사회단체노조가 함께 [성평등정치로 가는 페미니스트 공동행동]을 꾸렸고 차별과 혐오차별선동의 ‘용산시대’를 밟고 마침내 윤석열 파면을 만들어낸 ‘빛의 광장’으로 행진하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내란동조자들이 아무런 반성없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아직도 당당하게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 서부지법 폭력사태를 부추기던 이들과 성차별주의 정치인이 쏟아낼 혐오 선동을 막아내기 위해서 다시 한번 페미니스트 유권자의 요구를 모아내면 좋겠다.


비상행동 행진트럭 3대를 후원받았다. 빌려둔 트럭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된다. 하지만 몇 명이 모이든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를 안 하고 6.3 대선을 맞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난 광장을 경험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바로 세운 우리의 힘과 요구를 저들이 함부로 지울 수 없게 더 끈질기게 신나게 외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을 기억하며 페미니스트로 참 가열 차게 살았고, 다음을 상상할 힘을 받았다고 기쁘게 나눌 수 있기를. 


(이미지: 윤석열 파면한 페미니스트 대행진 "차별과 혐오선동 정치에서 성평등 정치로!" 포스터)


“윤석열 파면은 페미니스트 시민의 승리다. 그러나 우리는 윤석열 파면에서 멈추지 않고 혐오와 차별에 평등으로 맞설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있는 사회, 성평등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의 존재가 당연한 사회, 모두가 돌보고 돌봄 받을 수 있는 조건과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자. 그 누구도 차별 속에 남겨지지 않고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한 우리의 연대는 더욱 견고하게 이어질 것이다.”

- 4월 4일, 윤석열 파면선고 당일 민우회가 발표한 성명 내용 중에서